백낙청 선생님의 비평처럼, 그리고 작가의 주장처럼 서정주가 종천순일파적 삶과 세계관을 일관했다면, 해방후 발표된 '국화 옆에서'가 아마테라스를 상징한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정주가 '하늘'에 대한 찬시를 쓸 때면 역겨울적도로 직선적이고 노골적인 칭송을 일삼았고 '하늘'이 바뀔 때마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적응력을 보였던 것에 비해 굳이 은유와 상징을 끌어와 예전의 하늘을 찬송했다는 것이 선뜻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국화 옆에서'가 일제시대에 쓰여진 것이라는 증거만 확보된다면 그때는 김환희씨의 비평이 확실하게 서정주를 단두대에 보낼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그러나 아마테라스냐 아니냐는 논쟁을 떠나서, 전세계의 신화와 상징에 대해 해박하던 서정주가 '국화=군자'로 이어진 고래의 은유를 버리고 국화를 '누님'으로 일본식 성전환을 시켜버린 것은 명확히 단죄받아야 합니다. 부디 이 책이 계기가 되어 국어책에서 '국화 옆에서'가 삭제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Koje님의 지적대로 일관성없는 번역으로 인해 할 수 없이 옆에 수첩을 펼쳐놓고 일일이 적어놓으며 간신히 책을 읽어야 했답니다. 이렇게 좋은 내용의 책이 이다지도 형편없이 만들어져 나오다니 화가 납니다. 지명이나 인명이 계속 뒤바뀌는 건 그나마 참겠는데 무슬림형제단이 이슬람형제단도 되었다가 이슬람동포단도 되었다가... 앞뒤 문장이 전혀 이어지지 않거나 문법에도 안 맞는 번역체도 고역이고요.가령 '그들은 고향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방편으로 빈 라덴에게 고용했다'라니 이게 대체 뭔 말입니까? 심지어 맞춤법이 틀린 부분도 부지기수요 오자 탈자도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원래 이 책의 평점으로 별4개는 주고 싶은데 번역과 교정 때문에 별2개로 깎인 거에요. 하여간 다시는 이지북 책을 보지 않으리라 결심했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책 외에는 이지북에서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출판하지 않았다는 것.
영화를 본 감동으로 책을 사본 저로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난해한 의식의 흐름을 따라잡기가 힘들었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자기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아헤매던 올랜도가 어느날 문득 여성이 되고, 300년의 방황 끝에 마침내 '어머니'로서 완성되는 줄거리를 따라가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올랜도'야말로 진정한 여성주의 영화라고 다시 한번 감복했고, 한동안은 올랜도의 사운드트랙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기도 했답니다. 책도, 영화도, 사운드트랙도 모두모두 추천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대학교에 합격하고 학생증(도서관 출입증)을 받던 날 난 참 무모한 계획을 세웠다. 매년 100권씩 400권의 대출증을 쓰리라는 우스운 결심... 스스로에게 할당한 그 양을 채우기 위해 한국소설의 '가'란부터 뒤지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1학년 봄에 만난 작가가 '강경애'였다.낯선 이름이 궁금하여 들춰본 약력은 그녀가 KAPF에서 활동한 몇 안되는 여성중 하나였으며, 해방 몇 년 전에 병사하였고, 그녀의 소설이 얼마전까지 금서였음을 말해주었다. 이 소설을 대출한 건 순전히 이 약력이 주는 호기심이었고, 그날밤 나는 잠을 설치고 말았다.하이퍼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그 어떤 화가도 그녀의 묘사가 내 머리속에 떠올리는 생생한 영상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너무나 비참하고 비참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내는 일제 시대 최하층민의 생활을 어쩌면 그토록 구역질나게 그려내는지 나는 그녀의 문장 하나 하나가 떠올라 차마 저녁을 먹을 수도 없었고, 편한 잠을 잘 수도 없었다.지금도 '인간문제'와 함께 수록되어 있는 단편 '지하촌'의 마지막 귀절이 메슥거리며 떠오른다. 하루 한 끼 먹는 것도 사치스러운 현실에 갓난아기의 머리 부스럼을 고치려고 쥐가죽을 싸매어주었던 어머니는 며칠후 죽을 것처럼 울어대는 아기의 머리에서 쥐가죽을 벗겨내었다. '거기에는 구더기가 버글버글 피고름을 먹고 있었다'
결혼을 앞둔 요즈음 이 생각 저 생각 별별 생각으로 심란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비빔툰>1은 재미있게만 봤지만 <비빔툰>2를 보면서는 웃다가도 가슴이 싸아해지곤 했습니다. 나의 어머니도 그렇게 나를 가지고 낳고 키웠겠구나 싶어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더군요.가장 기억남은 만화는 어머니를 '천사'로 보는 딸에게 좀 더 지나면 '하나님'으로 보일 거라는 장면이었습니다. 회사 선배님들은 결혼도 안한 노처녀가 이 만화의 진미를 반의 반이라도 알겠냐며 서로 빌리시겠다고 하십니다. 특히 얼마전 둘째를 보신 분은 매일 아침 한겨레를 보면서 동병상련의 2배의 기쁨과 2배의 위안을 받으신다고 하시더군요.이제 제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이 책에 대해 지금보다 더 좋은 서평을 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도 한 마디만은 꼭 하렵니다. 저를 낳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