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화로 그린 보리 아기그림책 2 - 전3권 세밀화 보리 아기 그림책 30
보리 편집부 엮음 / 보리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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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돌 선물로 받은 이후부터 세밀화로 그린 보리 아기그림책을 열렬히 아껴온 마로.
두 돌 무렵부터는 내용을 달달 외어 모르는 이들은 마로가 혼자 책을 읽는 줄 알고 경이로와했지요.
세 돌이 넘자 통글자를 하나 둘 익히기 시작하며 관심을 보여 국민서관 작은거인 시리즈도 사들이게 됐구요.

40개월을 코앞에 둔 오늘 아침,
마로는 글자 하나 하나를 손으로 짚어가며 "엄마 엄마"를 처음으로 혼자 읽어냈습니다.
"엄마 엄마."
"(호랑이/멧돼지/노루/고슴도치/여우)네 집이네."
쉬운 단어로 구성된 짧은 댓구가 반복되고, 마침내 "야, 우리 집이다." 환호하는 아기 다람쥐의 이야기를
코 찡그려가며 열심히 읽어내던 딸의 모습은 비록 사진으로 남기진 않았지만
무형의 추억으로 나와 옆지기의 기억 속에 끝까지 선명할 것입니다.

나와 옆지기의 기준에 따르면 지나치게 일찍 글자에 집중하는 거 같아 조금 걱정은 되지만,
글자가 열어줄 끝없는 이야기들의 축복에 마로가 한 발 다가선 거 같아 기쁜 마음도 큽니다.

우리 가족에게 가장 특별한 그림책이 되어준 보리 아기그림책.
기어다니는 아기들도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손바닥만하고 가벼우며,
이제 막 글자를 깨치고 있는 아이들이 처음으로 책 읽기에 도전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학교 다니면서도 도감처럼 활용할 수 있을 법한 세밀화의 정성까지.
이 책을 만들어준 이의 살뜰한 정성에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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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muko 2005-05-14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마로야 너무 축하해..^^
글자를 일부러 빨리 가르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읽어 내면서 느낄 기쁨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얼마나 대견할까요^^

미누리 2005-05-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리 그림책 다래도 무척 좋아했었어요.
마로의 첫 한글 읽기 입문을 축하해요!!!
다래보면서 얘가 언제 두발로 서서 다니나 하다가 얘가 언제 말하지? 그러다가는 언제 책 혼자 보나 그러다가는 언제 얘가 수를 세게 될까...
엄마의 바램과 욕심은 도미노처럼 진행됩니다.

balmas 2005-05-1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마로, 축하축하 ...
조선인님의 뿌듯한 심정이 뚝뚝 묻어나는 리뷰군요.^^

인터라겐 2005-05-1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책은 제가 주로 많이 선물하는 책인데...돌잔치때 현금으로 내는게 너무 성의없어 보여서 고르고 고르던 책중 저 책이 괜찮을것 같았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서 아예 고정으로 선물하는 책이랍니다..

마로의 첫 책읽기...축하드려요...

2005-05-14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5-05-15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걱정도 크고 설레이는 건 어쩔 수 없나봐요. 에, 또, 속삭여주신 분, 염치없지만, 정말 고맙습니다. 꾸벅.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2 - 서울 격동의 50년과 나의 증언
손정목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봄날이라고 여의방죽 벚꽃놀이가 연일 사진으로 올라온다. 허허벌판 모래섬이던 여의도에 어쩌다 벚꽃거리가 조성되었을까. 그 뒷 이야기가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2권에 실려있다.

1971년 봄, 재일교포 한 분이 벚꽃 묘목 2,400주를 서울시에 기증했다. 당시 서울시 기획관리관으로 있었던 손정목은 워싱턴 포토맥 강변의 벚꽃거리를 떠올리며 이 묘목들을 여의방죽에 심자고 건의했다.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걸쳐 시장을 비롯한 시청간부 전원이 나가서 묘목을 심었는데 당시 분위기는 몹시 침울했다고 한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건의 책임을 지고 시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김현옥 前시장이 벌인 또다른 대공사 여의도종합개발계획에 의해, 87만600평의 땅이 여의도에 조성되면 뭐하나. 박정희의 지시에 따라 전쟁이 일어났을 때 군사용 비행장으로 쓰일 수 있는 '훤하게 포장만 한' 대광장이 중앙부 요지에 들어서게 됐으니, 애당초의 개발계획은 공중누각이 되어버렸다. 317억의 재정적자에 허덕이던 서울시로선 여의도 택지매각이 유일한 타개책이었으나, 허허벌판의 택지는 거의 팔려나가지 않았다.

1971년 여름 새로운 여의도종합개발계획이 수립되고, 시범아파트가 성공하고, 결국 여의도는 서울의 제2도심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하지만 벚꽃을 심던 당시로선 80만평의 모래밭을 둘러싸고 있는 제방에 주말까지 반납하며 묘목을 심는 기분은 참담했으리라. 미래의 계획도 없고, 현재 진행되는 것도 없는 상황에서 나무심는 것이 유일한 일이었을 당시의 공무원들이 지금의 여의방죽 벚꽃놀이를 보는 감회는 참으로 남다를 것이다.

2권에서는 이외에도 소공동에서 화교들을 몰아내기 위해 시장이 사죄여행을 돌아다닌 사연과, 호텔사업을 통해 삼성과 롯데에 주어진 특혜의 뒷이야기도 구구절절 들을 수 있다.

* 윤중제는 일본식 한자어라는 숨은아이님의 지적에 따라 여의방죽으로 고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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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2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맞벌이의 함정 - 중산층 가정의 위기와 그 대책
엘리자베스 워런, 아멜리아 워런 티아기 지음, 주익종 옮김 / 필맥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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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공포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차례 소름에 시달렸다. 미국 중산층의 위기라고? 아니, 이 책은 우리 집의 경제적 취약성도 가차없이 까발리고 있다.

유례없는 저금리와 쾌적한 주거공간의 유혹에 넘어가 한때 우리 부부는 수입의 1/3을 집에 바쳤다. 다행히도 우린 그 미친 짓을 1년 반만에 관뒀으나, 아직도 1/5을 주택담보대출과 집장만에 묶어두고 있다.

거기에 마로의 양육비가 또 1/5. 마로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저렴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둘 다 야근이 잦다보니 추가보육료도 많고, 야외학습이나 생일잔치, 명절 등의 부대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딸과 보내는 시간이 적다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딸과 함께 쓰는 돈이 많은 편이다.

또 다른 1/5은 차량유지비와 교통비. 답답한 시내에 사는 대신 수락산 아래자락을 택한 대가로 옆지기나 나나 1시간 30분의 통근거리를 감수하고 있다. 차안에서 보내는 긴 시간과 어쩌다 외출할 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마로의 짐을 고려하여 우리 분수보다 큰 차를 선택했다. 비록 두번째 차는 없지만, 야근하는 날이면 빨리 딸을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에 날리는 택시값도 만만치 않다.

그럼 남은 수입은 우리 부부의 재량껏 쓸 수 있을까? 각종 세금 및 공과금을 제해야 하고, 수두룩하게 들은 보험료도 감당해야 한다. 자동차보험, 옆지기의 종신보험, 나의 건강보험과 개인연금, 마로의 교육보험. 보험을 들었으니 안전망을 확보한 걸까? 옆지기나 내가 죽거나 장애인이 되거나 65세가 넘지 않는 한 돌려받을 일이 거의 없는 보험료는 그저 묶인 돈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수입의 1/5만으로 생활을 꾸려야 한다. 단 한푼의 여유도 찾기 어려운 빠듯한 가계부다 보니 피치 못할 적자가 발생하곤 한다. 유난히 경조사가 많은 달, 새 정장을 사야만 하는 달, 가족들이 돌아가며 잔병치레를 하는 달이면 신용카드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꾸려나간다.

하지만 우리와 비슷한 형편의 부모나 형제를 위해 급전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신다면? 사업하던 오빠가 내 이름으로 대출받은 돈의 이자를 못내고 절절맨다면? 아주버님이 부도가 난다면? 옆지기가 입원하게 된다면? 아버지께서 노환으로 수술을 받으셔야 한다면? 맙소사, 이건 모두 만약의 경우가 아니고, 지난해부터 올초까지 실제로 벌어진 일들이었다. 우리는 보험약관대출을 받았고, 이어 카드론도 받았으며, 결국 이 빚들을 상환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한도까지 받아야 했다. 지난 3달은 정말이지 악몽같은 하루 하루였다.

이제 간신히 가계수지의 균형을 맞추게 되었지만, 맞벌이의 함정을 읽으니 오싹오싹 뒤늦은 공포가 밀려왔다. 만약 옆지기가 입원비를 후원받지 못했다면, 아버지의 수술비를 작은오빠가 대부분 감당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개인파산을 신청하여 모든 신용을 포기하고 아무 준비없이 집을 내놔야했을지도 모른다. 사치나 풍족과 거리가 먼 우리지만, 여유자금없이 고정비용으로 빽빽히 채워둔 결의서로 인해, 최소한의 생활공간마저 뺏길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새삼 등골이 오싹해졌다. 여유자금을 비축해두려면 집과 아이와 통근차량을 모두 소유하는 게 우리의 분수밖이라는 사실이 한없이, 통곡하고 싶을 정도로 서글프기도 하다. 

미국의 맞벌이 가정이 교외의 주택과 아이가 다닐 만한 학교와 안전한 통근차량을 가지고 싶어하는 걸 부르조아의 욕망이라고 그 누가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전 세계 모든 가정이 가장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복지가 아닌가.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은 개인 혹은 가족경제의 난점을 생각하면 작금의 제도에 대한 분노가 부글거리게 된다. 최소한 우리나라는 대중교통이 발달했기 때문에 미국과 달리 두번째 차를 장만하는 무리를 안 해도 된다고 위안삼을 순 없는 일. 그럼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너무나 명약관화한 답은 있는데, 이를 오답이라고, 공상일뿐이라고 떠들어댈 사람들 생각에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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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1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4-21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읽어본 가장 실감나게 무서운 마이 리뷰입니다.

조선인 2005-04-2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 지적, 고맙습니다. 꾸벅.

인터라겐 2005-04-21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다 보니깐 경제적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10억 10억하는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것 또한 들어가보면 열심히 일해서는 실현가능성이 10%도 안된다고 하니...땅투기나 뭐 로또 그런거 아니면 직장인이 평생 가족을 부양하면서 누리기엔 꿈같은 얘기래요... 전 얼마전 남의 돈 빌려서 호화롭게 사는 사람을 실제로 봤어요..로드무비님이 사시던 집의 도망간 집주인얘기가 실제로도 주변에서 일어나더라구요.
남의 돈 빌려서 외제차굴리고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티하나에 20만원한다는걸 입히고... 더 황당한건 그사람들이 하는 소리가 이러다 신용불량자 되면 파산신청하지뭐...이거였어요... 식구들 이름으로 충분히 이런 삶을 유지할수 있다나요...
그런 생각을 하는 그 부부도 문제지만 그것에 물들어 가는 식구들과 주변인이 더 문제같더라구요.... 어차피 이렇게 살꺼면 한번 폼나게 살아보구 망하자는...

그래도 희망을 가져볼랍니다...노력한 만큼 결과가 좋게 나오겠지해서요...

심상이최고야 2005-04-2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섭군요. 저도 어제 가계부를 쓰며 다음달에 들어갈 비용을 계산해보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에고고....

sooninara 2005-04-21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보고 심난해서 잠이 안오더라구요..사는게 정말 힘들죠..ㅠ.ㅠ

2005-04-22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4-22 1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lmas 2005-04-2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찌찌뽕~~
정말 이주의 마이리뷰로 뽑힐 만한 좋은 리뷰입니다.
추천 하나에 땡스투까지 드립죠. :-)
문자 받고 싶으시면 핸드폰 번호 남겨 주세요. ㅋㅋㅋ

로드무비 2005-04-2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3 문자의 미달인.
조선인님, 발마스님이 저렇게 말씀하시면 거의 된 거라고 보면 됩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이달의 리뷰까지 욕심내 봅시다.^^

2005-04-25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4-26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래식 캔디 미니 머신 뽑기랍니다요.^^

메인 화면 우측 하단 박스(인기상품)에도 떠요.


2005-04-26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실천문학사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재밌다"는 것. 조지 오웰은 자신을 정확히 알고 있었는데, '스스로 단어를 구사하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들을 직면할 수 있는 능력'이 대단히 뛰어나며, 우리는 그의 재주와 능력을 통해 1920년대부터 40년대까지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그 사형수가 웅덩이를 피해 발걸음을 딴 데로 옮기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신비감, 다시 말해 생명이 한창 절정에 달했을 때 그 생명을 앗아가는 말할 수 없는 부당함을 보았다. 이 사람은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 있는 것이다. 육체의 모든 기관은 살아 움직이고 있다 창자는 음식물을 소화해 내고, 피부는 스스로를 재생시키고, 발톱은 자라고, 세포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이 냉혹한 어리석음 속에서도 악착같이 작용하고 있다. 그가 교수대 발판에 세워지고 사형이 집행될 10분의 1초의 그 순간에도 그의 발톱은 여전히 자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이었던 인도제국 경찰로서 그는 한 버마인 사형수를 외면하지 못 했고, 자신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사형장을 향하던 죄수가 무심코 웅덩이를 피하는 짧은 순간, '한 정신이 줄어들면 그만큼 한 세상이 좁아진다'는 통렬한 깨달음을 얻고 그걸 글로 쓸 수 있다면, 그는 운명적으로 작가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웰은 작가의 길을 걷게 되어 행복했을까? 그 자신은 순전한 이기심과 미학적 열정과 역사적 충동과 정치적 목적 때문에 작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좋으면서 나쁜 소설도 못 되는 쓰레기들이 출판사들과 그들의 광고로 먹고사는 신문사의 유대 관계 때문에 끊임없이 떠받들어지는 게 당시의 풍토였다. (사실 오늘날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소설이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다고 예견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분명한 이유가 잇다. 가장 훌륭한 문학가들이 소설로 다시 돌아오도록 권유받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설은 마치 현대판 묘비나 펀치와 주디 쇼처럼 형편없이 경명적이고 절망적이며 변질된 형태로 계속 존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제국주의 영국인인 자신이 싫었던 만큼 작가인 자신도 기껍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독설과 신랄한 풍자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는 현실 속에서 나온 것이다. 구빈원으로, 빈민가의 여인숙으로, 유치장으로, 홉 열매 따기로 최하층의 생활을 자청하여 경험한 것은 객기나 변덕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부조리를 직면해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사명감이었을 것이다. 범죄자와 정신병력자, 부랑자에 대한 단종법이 합법이고, 비유럽인은 인간이 아니라고 여겼던 시대의 횡포 속에 그의 노력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이 시기에 얻은 폐병이 지병이 되어 결국 오웰은 47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으니, "체험 삶의 현장"처럼 하루의 겉멋은 아니었음이 명백하다.

 

그렇다고 오웰이 냉소적이고 음습한 사람이었다고 여기진 말자.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과 경배가 즐거운 본능이었던 작가 또한 오웬의 모습이다. 

 

우리가 실제로 아프고, 배고프고, 놀라고, 감옥이나 휴가촌에 갇혀 있지 않는 한, 봄은 여전히 봄이다. 원자폭탄이 공장에 쌓이고, 경찰이 도시를 서성거리고, 거짓말이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고 있지만, 지구는 여전히 태양 주위를 돌고 있으며, 어떠한 독재자나 관료주의자라도 우리가 봄을 즐기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를 할 수 는 있을지언정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여전히 봄은 봄이라고 여기는 작가이기에 오웰은 정치적 목적으로 계속 글을 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지. 조지 오웰은 결코 미래에 대한 절망이나 비관 속에서 동물농장이나 1984년을 쓴 것이 아니라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희망적으로 바꾸고 싶었던 것이라고 믿고 싶다.

 

안타까운 것은 "코끼리를 쏘다"를 통해 조지 오웰의 전 생애를 명확하게 느껴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옮긴이가 오웰의 에세이를 고르고 고르는 과정과 자신의 생각에 따라 5부로 나누는 과정에 오웬 인생의 중요한 전기 중 하나인 스페인 내전에 관한 일련의 글들이 숨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왜 쓰는가"를 통해 스페인 내전후 뚜렷해진 오웬의 정치성향과 글쓰기의 목적이 드러나고, 내전 당시 부상과 지병이 도져 요양하는 환자의 눈으로 더욱 참담하게 제국주의의 실상을 폭로하는 "마라케시"를 만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마라케시"는 오웰이 식민지 경찰로서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쓴 글을 모았다는 1부에 있고, "나는 왜 쓰는가"는 작가로서 오웰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2부에 속해 있다. 차라리 마라케시를 2부로 묶는 게 오웰을 이해하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스페인 내전을 다룬 자전적 소설 "카탈로니아 찬가"를 일독하는 게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오웰은 스페인 통일노동당을 지지하며 사회주의적 대의를 위해 1936-37년에 걸쳐 스페인 의용군에 합류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38년 카탈로니아 찬가를 출판한다.)

 

덧붙임) 많은 소설비평이 아마추어 비평가에 의해 행해진다면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경험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책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은 사람이 재능은 있지만 지루한 전문가보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는 것이다. -> 그 시대에 이미 독자리뷰에 힘을 실어주니 무척이나 흥겹게 단숨에 써내려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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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3-26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조선인님. 참 좋은 리뷰 읽었어요. 확실하고 분명하게 의미를 짚어내셨군요. 그러고보니 정말 많은 아마추어 비평가들이 문학계의 새로운 세력으로서 등장할 지도 모르겠어요. 글고 [카탈로니아 찬가]는 좀 지루하긴 했지만 요즘 현실에 비교해보자면 역사의 교훈 같더라구요. 정의를 실천하는 세력과 정의를 빙자한 가짜 세력에 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좋은 책이었어요. 그건 제 자신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문제였거든요.

책읽는나무 2005-04-04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지금 저 이책 읽고 있어서 말입니다..제가 읽은 부분만 골라서 대충 읽었는데...음~
역시 조선인님 이시로군요..^^
책 다 읽고 나면 다시 한번 더 차근 차근 읽어보겠습니다..
그러고 나면 또 주눅 들어 저는 리뷰 쓰기를 포기할지도...ㅠ.ㅠ
지난번 <수상한 과학>처럼 말입니다..ㅡ.ㅡ;;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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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흑백TV에 얽힌 최초의 기억은 내가 아는 유일한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의 암살과 장례식에 관한 뉴스였다. 어머니는 옷자락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셨고, 아버지 역시 눈시울을 적시진 않았으나 제법 목메어 하셨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 때 내 나이는 겨우 3살. 어쩌면 나의 기억은 진짜 기억이 아니라 뒤죽박죽 엉키고 엉뚱하게 짜맞추어진 공상일지도 모른다고 나조차 의심하고 있다. (혹은 그 이듬해 1주기 추모방송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 기억은 꽤나 여러 해가 흐른 뒤인데, TBC의 고별방송이었다. 쇼쇼쇼 같은 느낌의 프로그램으로 기억되는데, 나로선 이은하가 밤차를 부르다가 우느라 마스카라가 번져 시커먼 눈물을 흘리는 게 우습기만 했다. 특히 인상깊었던 건 당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남자 아나운서? MC?가 울었던 것으로, 어른남자도 우는구나 무척 신기하게 여겼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군인들 때문에 더 이상 똑순이를 볼 수 없다는 걸 무척이나 아쉬워했는데, 다행히도 KBS에서 달동네를 계속 방영하여 어머니를 기쁘게 했다.

정말 그런 것만 기억나? 김일 레슬링은? 날아라 태극호는? 유쾌한 청백전은? 심문하듯이 따져 묻는 대학 동기 덕분에 아, 맞다, 그런 것도 있었지. 기억나!를 덩달아 외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생생히 기억나는 건 앞의 두 사건임은 여전하다. 아마도 그 이유는 세상이 너무나 어수선하여 내일이라도 전쟁이 일어날지 모른다며 불안해하던 어머니의 모습과 어우러진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슨 일이든 거침없는 여장부인 어머니께서 지레 겁먹는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나 낯설었다. 게다가 전쟁이 나면 집을 놔두고 한뎃잠을 자며 거지처럼 떠돌며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주 무서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우리 부모님만 유난을 떨었던 걸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시 우리 가족은 창경궁 후문 산동네에 살았는데, 동네 전체가 라면 사재기를 하며 흉흉한 분위기였다. 특히 1979-80년의 경우 골목에서 총 든 군인을 보는 건 흔한 일이었고, 고개 고개 넘어가면 탱크도 볼 수 있다고 오빠들이 말해줬었다. 심윤경씨는 휴교령을 딱히 언급하지 않았으나, 그 무렵-박정희의 장례식 때였는지, 5.18 계엄조치 때였는지 기억은 불분명하다- 초등학교마저 문을 닫았었다. 그날 나와 소꿉친구는 부모님의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개구멍을 통해 초등학교에 숨어들어가 오후 내내 놀았었다. 결국 어머니와 고모, 오빠들에게 번갈아 흠씬 볼기짝을 맞아야 했지만, 하늘같은 고학년 언니, 오빠들의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그네도 타고, 모래장난도 하고, 시소도 탈 수 있었던 게 마냥 즐거웠었다.

왜 이리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장황하게 늘어놓는가 하면, 심윤경씨와 동갑내기임을 자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윤경씨가 경복궁 뒤 인왕산 서쪽 자락에 살던 적에(실제로도 심윤경씨가 그곳에 살았음은 작가 사인회에서 확인했다.) 나 역시 그 지척에 살았음을, 인왕산의 동쪽 자락에 살았음을 수다 떨지 않으면 못 견딜 심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설령 이리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하여도 그녀야말로 모실할매요, 나야말로 동구할매라 우길 수도 없고, 엿장수 이야기가 늘어졌던 것처럼 동경하던 종로 이야기를 그녀와 나눌 기회야 없겠지만, 그럴 일이 없기에 더더구나 리뷰를 빙자하여 명주실 굵기도 안 되는 인연을 우겨보고 싶은 것이다.

혹자는 박정희 암살사건이 소설에 등장하는 게 뜬금없다 하나, 1972년생인 우리로선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육영수 여사가 영부인이고, 박정희가 대통령인줄 알았는데, 뿔 달린 빨갱이가 아니라 자기 경호원에게 박통이 암살당했다는 건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무너지는 사건이었다고 항변하고 싶기도 하다. 나야 전두환을 직접 마주친 적은 없지만, 대머리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 체신이 떨어질텐데 라는 어머니 말씀에 역시 대머리인 아버지가 발끈했던 기억 또한 선연하다. (심지어 전두환은 어린 시절 내 꿈에 즐겨 출연했던 단골이기도 하다. ) 그처럼 우리 어린 시절에 깊은 골을 남긴 기억을 어찌 자전적 소설에서 빼먹을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동갑내기로, 비슷한 공간을 살았기에 대신 변명하는 게 가능하다고 둘러대면 너무 우스운 뻐김일까. 그러나 부끄러움 없이 내가 주절거린 것은 그만큼 동갑내기 작가, 그것도 어엿한 작가를 만난 기쁨이 커다랗다는 뜻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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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8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03-18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홋 어머님은 어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대머리 관련해서...) 그리고 오자 하나 있어요. TBC를 TBN이라고 쓰셨네요

조선인 2005-03-1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마태님 지적 고맙습니다. 그러고보니 대머리 얘기에 후편도 있네요. 우리보고는 절대 대머리 운운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죠. 군인들이 잡아간다고. -.-;;

2005-03-21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