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일어나 김밥 17줄과 유부초밥과 삼밥김밥을 만들고, 옥수수와 고구마와 달걀을 쪘다. 그외에도 미리 장 본 바나나와 귤과 토마토와 과자와 음료수, 커피, 물 등을 바리바리 차에 싣고 6시가 조금 못 되어 출발했다. 해람이는 아직 자고 있었고, 제 생일을 맞아 여행을 떠나는 기쁨에 마로는 뜻밖에도 일찍 일어나 제 발로 차에 탔지만 곧 도로 잠들었다.
싸온 음식으로 차안에서 아침을 때웠다. 담양까지 고속도로를 타는 대신 호남고속도로 백양IC에서 내렸다. 덕분에 장성호를 끼고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는데 '전망 좋은 곳'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잠깐 들른 곳이 '장성호문화예술공원(장성군 북하면 쌍웅리)'이었다. 시비와 장승으로 제법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편이긴 한데, 목적지로 갈 곳은 아니다.
사실 우리의 첫번째 목적지는 죽록원(담양군 담양읍 향교리 산 37-6)이었다. 가능하면 이른 아침에 도착해 인적없는 산책을 즐기자고 의논했는데, 새벽부터 서두른 보람이 있어 잠깐 샛길로 빠졌는데도 10시가 조금 넘어 도착해 그럭저럭 호젓한 멋을 즐길 수 있었다. 점심 역시 싸온 음식으로 해결하며, 모든 산책로를 슬금슬금 다 돌고 한옥체험마을까지 유유히 누볐다. 까페에서 딸아이의 생일케이크 나눠먹는 시간까지 누리느라 장장 4시간을 노닥거린 셈.
순오기님이 일러주신대로 죽녹원 주차장에서 징검다리를 건너 관방제림으로 향했다. 영산강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된 것으로 추측되는 관방제림의 경우, 푸르른 여름날이 아닌 게 조금은 아쉬웠지만 겨울 푸조나무와 느티나무가 주는 운치가 제법 그럴싸하고 날도 따스하여 해바라기와 걷기를 즐겼다.
원래의 여정대로라면 메타세콰이어길을 보고 대나무박물관에가서 죽제품체험을 하는 것이었는데, 옆지기도 나도 추월산세에 눈이 꽂힌 터라 금성산성(전라남도 담양군 용면)으로 일정을 급변경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건조기 산불예방을 목적으로 입산금지가 되어 있어 아랫자락에서 잠시 소요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쉬운 마음에 네비게이션에도 안 나오는 연동사를 표지판만 보고 무턱대고 찾아 헤매봤다. 이곳은 고려시대 불상 주변을 노천법당으로 꾸미고, 그 위에는 동굴(?)법당도 꾸미고 있어 특이했고, 금성산성이 고려시대 성곽일 뿐 아니라, 조선시대 동학혁명 당시 격전지임을 알려주는 비도 세워져 있어 제법 소득있는 여정 변경이었다.
갑자기 어둑해지는 걸 느껴 서둘러 산을 내려와 숙소로 향하는 길, 이번엔 담양호를 끼고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었다. 잠시 저수지도 구경했는데, 농림수자원공사?의 관리사무소 건물이 풍경과 근사하게 어우러져 지금이라도 공무원시험을 봐서 저기에 취직할까 농을 나누기도 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나무와 전봇대, 전깃줄에 빼곡히, 수백 마리도 넘는 새가 앉아있는 모양이 장관이었는데, 아쉽게도 사진을 못 찍었다. 숙소에 짐만 풀고 인터넷 맛집정보에 의존하여 우후죽순 늘어선 담양떡갈비 대신 돼지갈비로 일대를 평정했다는 '감나무집(담양군 수북면 수북리 415번지, 061-383-6123)'에 갔더랬다. 맛과 양, 서비스 모두 대단히 만족스러웠을 뿐 아니라, 한지등과 꽃살로 장식한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었다. 1인분에 9천원이라는 가격도 무제한 반찬/쌈 추가가 가능한 걸 생각하면 싸다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애들이 쉬지 않고 먹으니 부모는 흐뭇할 수 밖에. 떡갈비 5인분 + 냉면 + 공기밥 1 + 누릉지 2! 숙소에 돌아와서는 윷놀이 한 판과 맥주 한 캔에 완전히 뻗어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