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기행 첫날 100220
담양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가장 잘 보존된 우리나라 전통 정원이라는 '소쇄원(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 방문이었다. 이왕이면 아침 첫 내방객이 되어 고요한 산책을 즐기고 싶었는데, 사람 마음은 다 똑같은 걸까. 우리와 똑같은 욕심을 가진 이들이 북적거려 깨끗하고 맑은 맛은 떨어졌다. 하지만 무등산 자락을 제 정원삼고, 장원봉에서 흘러내려온 물줄기로 연못을 만든 양산보의 재주는 그야말로 기묘했다.
팔자로 흘러들어온 장원봉 물줄기는
소쇄원의 뚤린 담을 통해 들어와
큰 줄기는 계곡을 만들고, 계곡 사이를 잇는 나무 수로는
작은 물줄기를 새로 내어 연못을 이루게 한 뒤 도로 계곡으로떨어지고,
합쳐진 물줄기는 대나무 숲 사이로 잠기듯 흘러간다.
계곡의 물줄기와 함께 흐르는 바람의 묘미는 광풍각이겠지만, 원경을 차경으로 끌어들이는 묘미는 역시 제월당이다. 그 툇마루에 올라서면 지금은 말라죽은 소나무 위로 달이 뜬다 했고, 그제서야 풍진을 뒤로 한 은객의 사랑방을 손님들이 떠났다 했다.
소쇄원의 자리잡은 모양새를 온 몸으로 느끼려면 장산봉을 올라가봐야 한다지만, 오후면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해야 하는 터라 뒷동산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소쇄원 나오는 길, 우연찮게 토종닭의 세력싸움을 구경하다 식영정으로 향했다. 식영정은 원래 영산강 줄기를 바라고 세운 것이었을 터이나 지금은 눈 앞에 광주호를 펼치고 있어 더 장관이 된 듯 하다.
하지만 막상 식영정에 앉아있었던 건 한 10분이나 될까? 새로 추가한 목적지, 광주호생태공원에 가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가 절로 들썩거렸다. 그리고 그날 우리 가족은 광주시민과 담양시민에게 거듭 감사인사를 올렸다. 이토록 평화롭고 아름답고 유유자적한 곳에 놀러오는 이가 거의 없다는 것에, 저 하늘과 구름과 호수와 갈대와 나무와 산과 오리떼를 모두 독점할 수 있었다는 것에... (5만6천평에 우리 가족 말고 시야에 딱 4명 더 있는 걸 봤다. ㅎㅎ)
생태공원에서 1시간을 까먹고 있느라 결국 가사문학관은 포기해야 했다. 대신 취가정과 환벽당만 휘휘 들리기로 했다. 취가정 앞에는 고인돌 모양의 의자(?)가 있었는데, 딸아이는 김덕령이 취해서 노래부르던 무대란다.
환벽당은 딱히 다가오는 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사문학관에 억지로라도 들릴 걸 싶어 후회도 했지만, 김윤제와 정철의 망년지교를 흉내내듯 부자 모녀의 기념사진으로 마음을 달랬다.
점심은 모 선생님을 만나 '전통식당'이라는 곳에서 담양떡갈비정식을 얻어먹었다. 전반적으로 약간 짜다 싶긴 했지만, 밥상을 가득 채운 밑반찬에 봄나물까지 곁들어져 그야말로 체면불구하고 그릇마다 싹싹 비웠다. 올라오는 길은 너무도 아쉬웠다. 다음에는 적어도 2박3일 일정으로 와 금성산성과 광주호 생태공원을 제대로 돌아보자 했다. 어른들에게도 빡빡했던 일정인데 아이들은 돌아오는 차에서도 꽤나 쌩쌩한 편이었다. 이젠 제법 컸구나 싶어 벌써부터 다음 여행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