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주이??): 이 글은 굉장히 길고, 두서가 없고, 장황하면서, 책과 상관없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안녕하세요.

제 소개를 조금 할께요. 저는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컴퓨터와 관련된 직업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저는 다소 특이한 편인데요, 작은 스튜디오에서 앨범을 제작해서 판매하는 인디밴드와 비슷하게 저도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파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파는 일'에 대해선 거의 신경쓰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만드는 일'이 대부분이죠. 이런 일을 보통 외국에선 ISV(Independent Software Vendor)라고 부르거나 그냥 쉽게 인디 프로그래머, 인디 소프트웨어 개발자라고 하기도 합니다. 최근엔 스마트폰 시장에서 이 용어를 곧 잘 쓰기 때문에 자기 소개가 다소 쉬워진 것 같네요.

(네, 저희 - 라고 쓰는건 미국과 유럽에 있는 동업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 회사도 아이폰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앱은 - 적어도 외국에선 - 상당히 유명한 편이기도 하지만 아이폰이 세상에 나오기 이전부터 맥과 윈도우에서 제품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아이폰 일을 하는 회사' 라는 쉬운 소개는 하지 않는 편입니다. 보통은 '에- 음 홈페이지를 봐요' 라고 하죠)

'스타트업(startup)'이란 말도 안철수씨등의 홍보로인해 이제 국내에서도 많이 쓰이게 되었는데요. 보통 스타트업은 저희 같은 인디샵 보다는 투자를 받고 뭔가 세상을 바꿀만한 것을 만들어서 빠른 성장을 추구하는 회사를 지칭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타트업은 당장 돈이 되지 않아도 사용자를 많이 끌어모을 수 있으면 괜찮습니다. 저희는 그렇지 않구요. 예를들어 카카오톡은 스타트업이고 패닉 (http://www.panic.com/) 같은 회사는 - 돈을 많이 벌어도, 투자자가 없다는 측면에서 - 인디죠. 저희는 패닉을 지향합니다. 작고 쓸만한, 그리고 여력이 있으면 아름다운 것들.

그럼 무엇을 만드냐구요? 패닉과 같이 주로 맥에서 구동되며 한 카피당 $20~40정도에 판매되는 소프트웨어를 만듭니다. 아이폰 앱들은 당연히 더 싼 편이구요. 오래된 제품 중엔 윈도우에서만 구동되는 것도 있습니다. (아래에 소개될 글은 이것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제품인지 다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거의 대부분이 '텍스트'를 다루는 것들입니다. 실제로 당신이 맥킨토시를 사용하고, 작가이거나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이면서 '맥에서의 글쓰기 환경'을 고민한적이 있고, 외국인이라면 (한국인 사용자들도 없지는 않지만 국내엔 프로모션을 전혀 안하기 때문에...) 상당히 높은 활률로 저희가 만든 제품을 사용하거나, 했거나, 최소한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같이 일하는 친구는 미국 메인주에 살고 있는데 저희는 스티븐 킹의 집에 찾아가서 (실제로 가까운곳에 살고 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만든걸 사용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자는 농담을 가끔 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 아이북 같은 것이 언급되면 상당히 설레이는 저 자신을 볼 수 있구요.  왠지 예상에 이 아저씨는 그냥 기본으로 딸려오는 소프트웨어를 쓸 것 같지만...


저는 제 일을 굉장히 좋아하고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예전부터 꿈꿔 왔던 일이구요. 아직 갈 길이 많이 멀긴 하지만 상업적인 측면에서나 (감히 말하자면) 장인적인 측면에서도 어느정도의 성취를 달성하기 위한 초입에 발을 내딛었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매일하는 우스꽝스러운 실수를 되짚어보면 이런 생각이 다 농담 같지만요. 제가 책을 읽거나 작가들의 삶에 관심이 많은것도 비슷한 이유에서 입니다. 이 일은 가내수공업과 비슷하기도 하지만 컴퓨터를 앞에두고 우리의 두 귀 사이에 있는 물건을 사용해서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측면에선 작가와 흡사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띄어쓰기 안한 글자(친구가 소스코드를 가르키며 한 말입니다)를 타이핑하며 예술혼 어쩌고 생각하면 우습죠.


제가 일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실제로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완제품'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프리랜서가 아니고, 컨설팅을 하지 않으며, 기업용이나 사내용 업무를 하지 않고, 연구소에서 실험용 코드를 작성하지도 않고, 뱅킹과 같이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를 관리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평생에 걸쳐 - 라는 말을 쓸 정도로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 제 영혼을 갉아 먹을 수 있는,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하여 굉장히 조심해 왔습니다. 무한히 복제되어 판매되는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용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저는 아주 작은 기능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가 계약관계에 의해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걸 아주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마음에 드는 부분은 사용자와의 피드백입니다. 사용자와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것은 꽤 스릴있는 일입니다. 찬사를 받을 때도 있지만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아주 가끔은 '니가 만든 환상적인 이 제품에 비해 가격이 턱 없이 싸기 때문에 나는 그냥 두번 구매했다. 잘 먹고 잘 살아서 계속 만들어라' 라는 메일을 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불평 불만으로 가득찬 버그 레포트들도 종종 날라와서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죠. (사실은 매일, 아주 잘, 잡니다) 역사에 남을 명저인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심리학'에서 저자는 자신의 코드에 대해 에고리스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버그들을 종종 자기 자신의 인간적인 결함으로 생각 되기도 하기 때문에 - '아니 어떻게 이런 멍청한 실수를 했지?' - 저도 에고리스를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피드백의 또 다른 문제는 커밋먼트인데요. <불특정 다수의 유저>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운영을 하기 위해선 유저들의 요구사항을 아주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우스를 인용하면 '모든 사용자는 거짓말을 한다!') 기업에 있을때는 대부분의 대답을 긍정적으로 하게 되지만 이 일에선 '거부'를 먼저 익히게 됩니다. 절대로 기능이나 기한에 대한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수 천만원이나 수 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특정한 요구 사항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기능을' 만든다는 것을 사용자들에게 어느정도 훈련시켜야 하죠.


그렇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서 메일을 확인하고, 그 후에 홈페이지 사용자 포럼의 새 글들을 확인하는 것은 매일 반복하면서도 다소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포럼에서 이 글을 보게 된 것은 일주일 쯤 전의 일이네요. 보통 포럼에는 메일보다 사적인 이야기를 거른채 ('난 어떤 사람인데 어떤 연유로 이걸 구매했다' 라는 식의) 요청이나 문제가 올라오기 때문에 장문의 글을 보기는 쉽지 않은 편이라 한 화면을 가득 채웠던 이 글은 꽤 귀찮게 느껴졌죠. 동업자에게 넘길까 생각을 하기도 했고. 아마 얼핏 보기에도 상당히 오타가 많았기 때문에 더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긴 설명은 다 이 글을 소개하기 위해서, 제 상황을 이해시켜드리기 위함이였습니다. 그 글에 오타가 많은 이유가 있었죠. 아주 거칠게 번역해 보겠습니다.


(이해하시겠지만 온라인상에서의 평판은 제 일의 거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전 실명세계와 익명세계를 섞지 않으려고 조심하고 있습니다. 저희 회사 이름은 '프래니'로 이 사용자가 말하는 제품 이름은 '주이'로 칭할께요.)


'친애하는 프래니 여러분께,

저는 크리스토퍼라고 합니다. 제가 여러분의 소프트웨어를 다운받기 전까지 저는 아주 괴롭고 답답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저는 맥을 사용하다가 최근 쿼드코어 VAIO 랩탑을 구매해 윈도우즈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Dragon Naturally Speaking Professional 11을 사용하기 위해서 입니다. 저는 여러가지 신체적인 문제가 있어 타이핑을 오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600달러를 투자하여 저 구술 소프트웨어를 구매하였고 이제 손이 아닌 말을 통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에디: 저도 잘 모르지만 Dragon Naturally Speaking라는 프로그램은 아마 사용자가 말을 하면 컴퓨터 화면에 그것이 표시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Dragon Pro와 완벽하게 호환되는 - 알고보니 '호환된다' 정도가 아니더군요 - 당신들의 '주이'를 발견 했습니다. 저는 1분에 120개 이상의 단어를 말할 수 있는데 '주이'의 교정 시스템은 아무런 흠 없이 동작합니다. 심지어 토픽이나 태그 그리고 '주이'의 모든 기능을 저의 입을 통해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주이'가 이 최고의 구술 소프트웨어와 호환되기 위하여 당신들이 어떠한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단순하게 최고의 코더들을 데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어쨋거나 이 '주이'는 조용하게 그리고 순식간에 제 인생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만약 당신들이 나처럼 신체적인 장애가 있다면 최고의 타이피스트보다 빠르게 구술로서 컨텐트를 작성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훌륭한 프로그램에 대한 보상으로, 당신들이 제 홈페이지에 두드러지게 홍보할 만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없다면 이참에 만들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프래니 회사의 로고를 제 홈페이지에 표시해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전 Dragon을 사용하는 장애인들에게 (문자 그대로 수십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이'를 알리기 위해 아주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주이' 를 구매하도록 설득시킨 사람들은 저에게 설득 당했다는 노트를 남길 것입니다. Dragon 사용자들이 당신들이 우아하게 제공한 기능들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처럼, 당신들도 분명하게 이러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중략. 여기부터는 어떤 기능이 있으면 좋다고 디테일한 설명이 있기 때문에 생략해도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Best Regards - and thanks again for creating such great software!'



저의 놀라움과 기쁨을 짐작하실 수 있으신지 모르겠군요. 사실 정말로 놀라운 점은, 괄호안에 제가 언급한 것 처럼, 전 Dragon Naturally Speaking이란 프로그램의 존재를 이 글을 통해 처음 알았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지 완전하게는 모릅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크리스토퍼씨의 예상과 달리 이 장애인을 위한 구술 소프트웨어와 제 프로그램이 잘 동작하기 위해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연'이라는 낭만적인 단어를 끌어 올 수는 없습니다. 짐작컨데 드래곤이라는 프로그램은 굉장히 똑똑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서 '주이'의 여러가지 인터페이스들을 인식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어떠한 특징 때문에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지 기술적인 디테일을 설명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면 제가 빅뱅이론의 셸든 쿠퍼 같이 보일테니 넘어가기로 하죠. 아마 드래곤은 대부분의 윈도우 프로그램을 5~80% 정도는 말을 통해 컨트롤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마 다른 프로그램들과 달리 '주이'의 모든 기능이 완벽하게 동작한다는것은 상당한 우연과 운이 작용한 것 같네요.

당연한 일이지만 저는 이 글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며 자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크리스토퍼씨에게 보낼 메일의 내용을 궁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몇 일 전에 '주이'의 미래에 대한 한 가지 결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주이'는 벌써 1년째 업데이트가 없습니다. 새로운 메이저 업데이트가 필요할 시기가 오고 있죠. 그런데 저는 '주이'를 만드는데 사용된 기술적인 거의 모든 것을 갈아엎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대체될 기술은 아마 Dragon Naturally Speacking과 호환이 되지 않을 것이어서 (어디서 많이 듣던 문장들이죠? 윈도우 비스타나 iOS2에서 iOS3로 넘어갈 때도 들었던 말들이군요. 긱Geek들은 언제나 호환성을 내다 버리고 싶어한답니다. 양복쟁이Suit들이 말려주어야 하는데 저에겐 말려줄 양복쟁이가 없네요.) 크리스토퍼씨와 그의 장애인 친구들은 새로운 '주이'를 사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이'에 사용된 기존 기술은 상당히 갈라파고스화 되어서 저는 점점 '주이'에 대한 개선을 생각하기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말했던가요? '거부'를 먼저 익혀야 한다고. 저는 지금 제가 느낀 기쁨을 돌려 줄 수 있는 문장들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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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3-27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쓰신 거겠지만,
이 글은 마치 한 편의 영리하게 쓰인 단편 같아요! 멋지네요. :)

에디 2011-03-27 14:22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닷! 최근 몇일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은 일이었어요. 근데 메일을 조악하게 번역하고 보니 마치 토익/토플시험 문제 같네요. 크리스토퍼가 가까운 미래에 할 일은 무엇인가?....

다락방 2011-03-27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늘 궁금했어요. 에디님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시는 걸까? 그런데 이렇게 상세하게 기술해주셨네요. 저는 에디님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르면서 그런데 소설을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어요. 에디님이 쓰실 소설은 제가 정말 좋아할 만한 소설이 될 것 같아서요.

좋은데요, 에디님. 이 글도 그리고 에디님이 기쁨을 느끼시는 것도. 기쁨을 돌려 줄 문장을 찾는 일과 그 시간들도 모두 좋으네요.
:)

(몰라서 묻는건데요, 새로운 주이를 사용하지 못한다 해도 기존의 주이는 사용가능한거죠?)

에디 2011-03-27 14:3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난 어디서 일해' 라는 말로 설명할 수 가 없다보니, 제 일에 대해서 오해가 없도록 이해시키기 위해 장황하게 설명을 하거나 그게 불가능하면 아예 이야길 안하는 편이에요. (예를들어 소셜 네트워크를 보고 제가 생각났다는 친구들도 있어요... 컴퓨터와 사업이라는 두 이미지가 만들어낸 아주 전형적인 오해....)

네 당연히 기존의 주이는 사용가능해요. 단, 주이는 저희 제품들 중 가장 외부 변화에 민감한 제품이라서 (예를들어 구글의 어떤 서비스와 연동되는데, 구글이 가끔 그 서비스 구조를 바꾼다던지..) 새 '주이 3.0'이 나오고 기존의 '주이2.5'에 대한 지원을 접게 되면 빠르든 늦든 점점 사용하기 어렵게 되는 날이 올 것 같네요.



Arch 2011-03-27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디님 안녕하세요.
전 장문의 이 글을 읽기 전에 다락방님이 좋아하겠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프로그램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메일을 보낸 분이 많이 안타까워하겠어요. 이런 미묘함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1과 0만 알았는데 무한대 소수점의 세계가 있어요.

에디 2011-03-27 22:0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아치님! 저도 이곳에 모든 글을 쓸 때 다락방님이 좋아하시길 바란답니다 : )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볼테르의 말 처럼 프로그래밍도 컴퓨터에 대한 것도 아니고, 과학도 아니다라는 말을 종종 보는데 결국 다 사람에 대한 것이겠죠.


Arch 2011-03-29 08:48   좋아요 0 | URL
다락방 복이겠지만, 다락방은 참 좋겠다~ ^^

2011-03-29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1-03-2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훠! 제가 병원에 있는 동안 이런 엄청나게 재미난 글이 쓰였군요(고작 주말과 월요일을 병원에 있었을 뿐인데, 꼭 백만년은 어딘가 감금되었다 나온 기분이라니요 ㅜㅜ)

눈이 침침해 읽고 또 읽는데, 마지막 문구는 정말 확 들어옵니다. 기쁨을 돌려 줄 수 있는 문장이 어떤 문장이 될 지 매우 궁금합니다. 와~ 하시는 일도, 글도 모두 근사한데요.

에디 2011-03-30 09:20   좋아요 0 | URL
'하이 암 쏘쏘리 벗 알러뷰'

...는 아니었구요. (아 정말 재미없다 ㅠㅠ) 두통에 입원하신건가요? 정말 답답하실거 같아요. 다른 병도 아니고 두통이라니. 진심으로 쾌차를 빌께요. 감사합니다~!


버벌 2011-03-3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장문인데. 굉장히 글 재미있게 쓰시네요.
아 죄송요. ^^ 늘 눈팅만 하다가 재미있어서 댓글은 달아야 한다는 생각이 급 들어서 글 남겨요. ^^

에디 2011-04-01 01:17   좋아요 0 | URL
버벌님 안녕하세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버벌은 무슨 뜻인가요?

버벌 2011-04-02 08:52   좋아요 0 | URL
ㅎㅎ 유주얼서스펙트에서 케빈 스페이시 극중 이름이죠 버벌킨트. 카이저소제. 거기서 온 버벌입니다. 이메일이란게 처음 생기자 바로 만든 아이디가 버벌이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어요. ^^ (일본의 엠플루의 버벌이냐 묻는이도 있던데 아닙니다~ )

에디 2011-04-07 07:00   좋아요 0 | URL
아 카이저 소제에도 이름이 있었군요. 케빈스페이시, 카이저 소제만 기억하다보니... :)
 



직장생활을 떠올릴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우울한 풍경은 파티션으로 만들어진 사무실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이렇지만... 병역특례로 연구원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은 나름대로 업무환경이 좋은 곳이었다. 요즘도 가끔 인터넷에서 그 회사의 사무실이나 카페 사진을 볼 수 있는데 거기서도 파티션을 볼 수 있다. 다소 예쁘게 꾸며 놓긴 했지만 그래도 파티션은 파티션... 다행히 팀의 관리자는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어서 내가 어디서 일을 하건 일정만 늦어지지 않으면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1년반 후 여러가지 사정으로 옮기게 된 곳은 1인실을 제공해주는 곳이었다. 그곳의 관리자도 좋은 사람이어서 거의 독서실을 다니는 기분으로 회사를 다녔다.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퇴근때까지 한 마디도 안 한 날도 종종 있었다. 일 자체가 그렇게 재밌는 회사는 아니어서 '행복했다'까지 말하긴 그렇지만, 적어도 나에게 남은 기간을 평온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다.

제이슨 프라이드는 '가끔' 자신의 회사에 출근한다. 최근에 번역된 그의 책 Rework는 상당히 좋은 책이다. 번역된 제목(똑바로 일하라?)과 부제들을 (그리고 표지를) 보면 상당히 이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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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3-10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디님. 상당히 좋은 책이라고 하셔서 저 지금 검색해 봤는데요 윽, 제가 물론 자기계발서류의 책을 안좋아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목과 표지가 정말 읽기 싫게 생겼어요. ㅜㅜ

에디 2011-03-10 12:04   좋아요 0 | URL
그죠? 번역된 제목과 소개등을 보니 완전 자기계발서라서 좀 놀랐어요. 꽤 '쌔끈'하게 홍보할수 있는 책인데 왜 저랬을까...

http://37signals.com/rework/

 


책을 보고 나서 문득 생각난 것이 있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이메일을 안지우기 시작했을까? 난 근 5년동안은 메일을 지워본 적이 없다. 적어도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지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동으로 지워지는 일도 이젠 없다. 이제 메일을 '지운다'라는건 굉장히 적극적인 의사표현이다. 내 메일함에 계속, 영원히 담고 싶지 않은 확실한 거부.


한때는 메일을 보관할 수 있는 용량이 적었거나, 보관기간이란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메일은 지우거나 지워지는 것이었다. 혹은 메일 프로그램을 쓰면 메일을 전부 가지고 와서, 인터넷 서버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지만 내 컴퓨터에만 저장되 있다는건 언젠가는 100% 확률로 유실된다는 뜻이다. 나는 지금 내가 주고 받는 이메일이 내가 죽을때까지 지니고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아주 높은 확률로 확신할 수 있지만, 과거 한때, 3~5년정도의 메일은 완전히 이 세상에서 없어졌다.

그것에 아주 애절한 사연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이 사실을 떠올리면 인생에서 작은 일부분이 상실된 거 같은 기분이든다. 나만 이런 사람은 아닐 것이다.


새벽 4,5시쯤 책의 중간쯤에서 한번 덮어버렸다. 이 책을 더 이상 보지 않는게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결말이 특별히 궁금하진 않았다. 이 책을 어느정도 심드렁하게 보거나 독특한 형식의 연애 이야기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위험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내가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책의 저자가 가장 정조준한 타입(의 남성)이 있다면 난 거기에 해당될 것이다. 레이케에겐 나와 비슷한 부분이 있고 나와 확실히 다르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많지만, 가끔은 내가 오해 받는 부분이 그와 비슷하게 보이는것들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나도 어느정도는(!) 섹스보다 메일을 원할때(!)도 있는 사람이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은 모두 언젠든지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난 1년중 대부분 제정신이고 이성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수다를 환영하고, 멜랑콜리나 우울증과도 거리가 상당히 멀고, 술을 마시는 등으로 해서 '오프라인'이 되는 일도 없다.


이들과 같이 순전히 메일로부터 시작하진 않았지만 내가 한 연애는 모두 상당한 양의 메일들을 동반된 것들이었다. 가끔은 우리가 특정 시기에 메일을 주고 받지 않았더라도 관계가 발전했을까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연인에서 친구관계로 남은 몇몇(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두명이어서, 다행이다)은 여전히 나에게 남은 여생동안 충분히 기억할만하고 인간적인 애정이 듬뿍 담긴 메일들을 보내주는데 그것들을 시시때때로 내 머릿속에서 메아리차고 나와 대화를 한다.


반대로 책을 읽고 나서 그 관점에서 생각해보니, 나와 잘 진행이 안된 관계들은 모두 메일을 주고 받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적어도 내 마음한켠에 그런 마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음. 쓰고 보니 이건 상당히 무례한 비약인것 같지만.


그래서 난, 음 에미 로트너 식으로 말해보자면

1) 난 이 이야기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는 수준을 넘어, 이와 같은 일을 내 미래에서 완전히 부정하기는 힘들다. (비포선라이즈는 자신있게 부정할 수 있다!) 그래서 뭔가 몰라도 될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이 약간은 무섭다.

2) 에미와 레오가 주고 받은 메일들은, 너무 많은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오늘 머릿속으로 떠올린 사람수는 적지 않으며, 사라진 메일의 내용들을 복기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지금 메일함에 있는 비사무적이고 비상업적인 메일들을 모조리 다시 읽을까하는 미친짓을 고려하기도 했다.

3) 그래서 돌아가고 싶다. 이 글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서 넘어가고 싶다.

4) 근데 난 후버카페 이야기가 나올 때 까지 에미 로트너가 예쁜 사람일 것이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라이케의 지적질을 보고 다시 읽었음에도 난 그걸 모르겠는데, 왜지? 이들이 독일인이라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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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2-27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끙.
저는 이 책이 에디님께 어떤 감정적인 영향을 주기를 바란게 사실이지만,
이렇게까지 깊게 영향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 이런.
 


우와. 깜짝 놀랐다.

아직 스토리는 모르지만 난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다. 스팸메일도 많이 없던 시절, 그 당시엔 '어느 어느 사이트에서 수집된 이메일입니다' 라고 친절히 설명이 있던 스팸메일이 있었는데 (이러면 법망을 빠져 나갈 수 있었나?) 그 사이트는 처음보는 어느 개인의 홈페이지였고, 난 그 사람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다. (스팸메일의 보낸사람 주소가 그 사람의 이메일 주소였다...)
 
오해를 풀자 하루키에 대한 메일이 오고 갔었고 (이메일에 midori가 있었다)

서로 꽤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한번은 꽤 진지한 어조로 만나자고 했었는데 당시 내가 마음에 여유가 없었고 그 태도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없던일로 해버렸다. 그 후엔 가끔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상담을 요청해 오곤 했다. 얼굴 없는 친구의 장점.

그녀의 상담 내용들은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이던 나에게 꽤 화려하고 신선한 - 그러면서 다소 비극적인 - 것으로 기억한다. 직장, 사랑, 불륜...


다시 책 속으로. 지금은 2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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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1-02-27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쯤은 다 읽으셨을까요? 두근두근.
 

딱히 누구를 설득하기 보단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내 생각에 김영하가 최초의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작가가 되는 것'이 완전한 블랙아트이기 때문이다. 김영하의 충고는 정규 교육을 들으라거나 하루 12시간씩 글을 쓰라는 구체적인 것이 아니었다. 문하생이 되라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것이 너무나 불확실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생에 있어 특정한 시기의 집중된 훈련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스포츠 선수나 바둑기사, 발레리나 보다 훨씬 더 뜬금없이 나타난다.


그래서 그의 충고는 모호하고 낭만적이다. 긍지를 가지고 즐겁게 계속해라.

조금 잠언적으로 바꾸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말을 떠올릴 수도 있다. '항상 자신을 보호해라'.


신춘문예에 맹목적으로 매달리지도 말고,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에고를 보호하고, 작가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계속 써라. 기회를 소수의 등단에 한정하지 말고 계속해서 가져라. 많은 기회는 많은 거절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춘문예만을 목표로 하면 1년에 몇 번만 거절을 맛봐도 된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해라.


작가를 지원하는 제도나 조직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부분 작가가 된 다음을 위한 것이다. (즉 이때부턴 사회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난한 예술가'에 대한 것이다) 그럼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어떻게 지원해주어야 하는가? 여기에 약간 거리를 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류가 아직 무지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저 개인의 방편 이상으로 만들기를 꺼리는 것이다.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을 제외하곤 이 마술이 성공하기 위해서 자신을 보호하고, 일상적인 삶을 유지시킬 수 있는 방편이 필요하다. 폴 오스터는 죽은 아버지의 유산을 바탕으로 데뷔했고 변호사를 그만둔지 18년만에 신진 작가가 된 벤 파운튼에게는 변호사 부인이 있었다. 김영하는 대학원생이었고 리뷰 잡지가 없었다면 그의 책에 나오는것 같은 회계사가 되었을지도 모를일이다. 박민규나 김애란, 김사과로 가면 이 방편이 이보다는 약간 (적어도 물질적으로는) 불안정 했을 수 있다.


외국에서도 많은 작가들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탄생한다. 바텐더, 스트리퍼, 기자. 분명히 우리나라는 삶의 일상적인 부분을 유지하기 위한 이러한 방편들이 많이 괴로운 나라이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완전히 다른 인생을 계속해서 준비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김영하의 잘못은 아니다. 복지가 잘 되어있고 사회가 안정되어 다른 일을 하면서도 예술 활동을 지망하기가 더 쉬운 환경이 되면 좋겠으나 그것이 예술가 지망생을 좀 더 동정하거나 이 모호한 집단을 좀 더 구체적이고 조직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풍족한 곳에서도 작가는 비슷하게 탄생할 것이다. 인간적인 모멸감을 덜 경험하고 작가가 될 수 있겠지만 태어나는 과정 자체를 규정하고 지원하기는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난 여전히 사람들이 투표소에서 해야 할 행동을 한 작가의 작가론에다 포화를 퍼붓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더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좋다. 하지만 전업 예술가를 어떻게 보호하고 탄생시키려는가? 이것은 여전히 낭만적일 수 있는 이야기이다.


P.S - 그 논쟁은 가난한 예술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작가가 되기 까지'에 대한 것이다. 소조는 조직적인 길드를 주창했고 김영하는 개인의 일 이상으로 나가길 꺼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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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2-26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하의 작가론(을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하지만)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어요.
작가 아니라 누구든, 자기 살고 싶은대로 사는 거니까, 그가 남에게 자기 방식을 강요하지만 않는다면야.
항상 방법이 문제고, 사람들이 분노한 지점은 그 '방법'에 있었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