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에서 팔잖아. 팔지 않은 카스테라는 없다고, 당신은 생각할 것이다. 살 수 없는 카스테라는 없다고, 예전에 내가 생각했듯이. 결국 나는, 이 시시한 논리를 시시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 - 한 조각의 카스테라를 스스로 만들어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계란과 밀가루를 반죽해 빛이 나올 때까지 - 하다못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0쪽
"빨리 달리기만 하면 안 된다고. 그런 건 허무하다. 날 보면 모르겠냐? 언젠가는 무리가 온다."-0쪽
"'빠르다' 입니까?""아냐. '강하다'란다. 스피드만으로는 장거리를 겨룰 수 없다. 날씨, 코스, 경주 전개, 컨디션, 자신의 정신 상태. 그런 수많은 요소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고통스러운 국면에서도 끈기 있게 견더내며 몸을 앞으로 계속해서 옮겨야 한다. 장거리 선수에게 필요한 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강인함이다. 우리는 '강하다'고 불리는 걸 명예로 삼으며 매일매일 달리는 거다."-0쪽
"네게는 재능과 적성이 있다. 그러니 말이다, 가케루. 좀더 너 자신을 믿어라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된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끝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노인이 되어서도 조깅이나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 있듯이 장거리는 일생을 두고 할 만한 가치 있는 경기다."-0쪽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가 살고자 했던 이유는 크게는 어머니처럼 아직도 써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사이드도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는 문제삼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가 받았던 고통이란..... 사이드는 마지막 2년 동안 받은 치료로 위가 임신 말기 여성의 배만큼 부풀어 올랐다. 통증은 말로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수 없이 말했듯이 (사이드는 어머니가 골수이형성증후군 판정을 받기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렇게 연장한 기간 동안 그가 해낸 작업을 봐라."-0쪽
그때까지는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니체의 일기 가운데 햇빛 환한 분주한 거리를 걸으면서 떠들썩하게 길을 메운 인파의 활기찬 모습을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고 한편으로는 언젠가는 죽어 없어질 텐데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용감하다고, 심지어는 기특하게 여기는 대목이 나온다. 이 일기가 나에게 어떤 위안을 주었는데, 왜 그랬는지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슬로언-캐터링에서 화학요법을 받던 시기에 쓴 일기에 "명랑하라. 그리고 감정에 휘말리지 말라. 차분하라"고 다짐했다. 그러고는 바로 덧붙였다. "슬픔의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는 날개를 펼쳐라." 어머니의 죽음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어머니의 이 말이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저 케케묵은 진리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슬픔의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는 날개를 펼쳐라.-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