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2 - 하 -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 밀레니엄 (아르테)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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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밀레니엄 1부를 만나게 된 이후로 잠시도 이 책의 출판에 대해 무관심했던 적이 없을 만큼. 더욱이 기대가 되었던 것은 1부에서 알쏭달쏭하리만큼 비밀에 묻혀있던 리스베트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기다려온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던가? 이 책은 또 다른 기다림을 주기에(3부도 곧 출간된다고 한다) 만족스럽지만, 그 이후의 기다림은 있을 수 없기에 안타깝게 만들기도 하는 책이다. 스티그 라르손의 예정대로라면 10부작에 이르겠지만, 안타깝게도 급작스러운 이별로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그 사실이 못내 아쉽고 슬프기만 하다.

1부와 공통점이 있다면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자신의 위치에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만, 1부와는 다른 사건의 해결이라는 점에서 2부는 독립적이다. 때로 시리즈를 순서에 연연하여 읽는 독자가 있다 하더라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중간 중간 이전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친절한 작가의 도움으로 어려움은 없을 듯 보이기 때문이다. 리스베트를 다시 만나볼 수 있다는 즐거움을 갖고자 한다면 1부도 꼭 읽어보아야 할 테지만.

리스베트는 돌연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거리두기를 하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 버리고 만다. 사랑싸움이나 이런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경험의 부족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녀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배신과 거짓이었다. 이상한 외모, 서툰 의사전달 등 그녀에게 보통아이와 같은 면모가 없다는 것은 그녀를 마음대로 평가하고 조종해도 된다는 암묵적인 동의를 얻는 것과도 같았다. 스웨덴을 최고의 복지시설이 갖추어진 나라라는 평가에 힘을 실어주는 사회복지기관, 법원, 정신병원, 위탁가정, 후견인 제도 등은 이 소설에서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알맞을 정도이다. 물론 소설이니 실상은 다르겠지만. 아무튼 그동안 끊임없는 배신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과 동떨어진 껍질 안으로 숨어버리고 마는 리스베트는 미카엘에 대한 이상한 감정을 감지하고는 이전의 방식대로 차단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리스베트의 귀국과 동시에, 미카엘에게는 『밀레니엄』의 방향과 의도에 맞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이 손을 내민다. 미카엘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정의를 위해 불의에 맞선 용감한 인물인 다그 스벤손이다. 주요 주제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매매 관련이었는데, 그녀들을 이용한 포주 및 이용자(?)들에 대한 폭로가 그 목적이다. 성매매 금지 법안이 가장 강력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법망을 피해 더욱 질이 낮은 범죄가 행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책을 집필하던 중 돌연 그의 아내 미아와 함께 살해되고 만다.

현장에 남아있는 것은 리스베트의 지문이 묻어있는 닐스비우르만 변호사의 총이었다. 닐스 비우르만도 비슷한 시각 살해되었다는 점이 리스베트를 용의자로 지목하게 되는 이유다. 경찰과 밀레니엄, 리스베트가 잠시 일했던 밀턴 시큐리티사는 제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 것이 중요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심적으로는 리스베트가 아니라 생각하지만, 사건의 정황을 볼 때 그녀가 아니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소설은 치밀한 전개를 보인다.

세계최고의 해커 리스베트는 자신의 집에서 경찰 및 밀레니엄의 미카엘의 컴퓨터를 넘나들며 수사를 하게 되면서 범인의 윤곽이 손에 잡히기 시작한다. 다그 부부, 닐스 비우르만 사건은 연개성이 부족해보이지만 모두 ‘살라’를 알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살라’는 성매매 관련 기사에서 종종 이름을 보이기도 하며 사람들이 밝히기를 꺼려한다. 군나르 비에르크는 비밀경찰 ‘사포’에 몸담았던 자로 닐스 비우르만과 ‘살라’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고 리스베트가 용의자로 지목된 이후로 연일 까발려진 기사에서 삭제된 해에 관한 1991년 보고서를 작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인물에 대한 탐색 도중 발견된 것은 그동안 은밀한 요인에 의해 리스베트의 인생이 엉망진창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이 과정을 이곳에 모두 담을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미리 알게 되면 소설 읽기의 재미가 반감될 것이라는 기우도 있기에.

‘살라’를 찾는 과정이 책의 주요 골격이라고 해서 나머지가 모두 그에 대한 배경인 것은 아니다. 추리 소설을 읽다보면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내용은 그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소설의 특징은 추리의 과정 모두가 하나의 추리라고 할 만큼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전개 과정은 어느 새 숨을 고르게 할 만큼 흡인력이 뛰어나다. 물론 갑작스러운 전개가 아니라 여겨질 만큼 사건의 전 후 이 보다 훨씬 이전의 모든 내용에 복선이 깔려있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모든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읽는 실수를 했다면 처음부터 다시 읽는 수고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묘미는 곳곳에 있는 퍼즐 조각을 맞추듯 읽는 재미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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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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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동영상으로 세계를 감동시켰던 랜디 포시 미국 카네기멜론대 교수가 결국 작고했다는 소식을 며칠 전 듣게 되었다. 늦게나마 책으로 그를 만날 수 있게 됨을 감사히 생각하는 지금이다. 처음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는 뒤표지의 사진 한 장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행복한 가장과 아이들의 모습이 슬픈 소식 뒤이기 때문인지 눈을 뗄 수 없었다. 결국 그 밑에 적힌 글귀를 읽고는 울고 말았다.

 


호기심의 왕 딜런이 나와 함께한 추억들을 오래 기억하기를,

최고의 티거인 로건이 훗날 사교 클럽의 일인자가 되기를,

클로이가 자기와 사랑에 빠진 첫 번째 남자가 나라는 사실을 알고 커주기를...... 

 

췌장암 진단을 받고 난 후 마지막 강의를 한다고 했을 때에 부인 재이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랜디 자신도 확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역시 그는 교수였고,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아이들을 위해 남겨놓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죽음이 아닌 삶에 관한 것들을.

“만약 내가 화가였다면 아이들을 위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음악가였다면 작곡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강의를 하는 교수다. 그래서 강의를 했다.”

랜디 교수의 마지막 강의는 한 시간에 그쳤지만, 이 책은 랜디의 일생과 마지막 남은 시간을 통해 아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담고 있다. 얼마나 시간에 쫓겼는지 카드결재가 두 번이 되었지만, 그냥 나올 정도다. 그러한 그가 이 책을 남기려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랜디의 태어남과 성장의 모습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개구쟁이 남자아이가 떠오른다. 특히나 랜디의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앞으로의 아이들에게 있어,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자신이 누려왔던 황금 같던 시간들이 아이들 일생에서 사라질 것이 가슴 아프다.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 것인지 이 책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책의 전반은 랜디의 일생을 사진첩을 넘기듯 추억처럼 아름답게 구성하고 있다. 후반에는 남은 아이들에게 당부하고픈 말과 아울러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남기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여럿 당부의 말을 한 번에 쏟아내다 보니 나열식인 경우가 없지 않지만, 랜디의 일생에서 얻은 깨달음을 랜디의 일상과 함께 적고 있어, 그의 강의를 듣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미소가 떠오르는 글이다. 랜디의 글에는 그의 죽음이라는 현실과는 달리 삶이라는 글자가 떠오른다.

좋은 강의는 강의를 들은 사람들의 입소문에 의해서 널리 퍼지기도 하지만, 역시 직접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직접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의 마지막 강의를 읽어보자. 삶이 오늘과는 달리 매우 소중하게 다가옴을 느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장벽이 거기 서 있는 것은 가로 막기 위해서가 아니며,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보여줄 기회를 주기 위해 거기에 서 있는 것이다.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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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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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 『우리 역사의 이해』란 주제를 가지고 서울 지역을 답사하는 것을 연수한 적이 있었다. 매우 추운 날이어서 발가락이 얼 정도였었는데, 그래서인지 처음엔 빨리 끝내지 하는 안이한 생각이 드는 것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열 강의를 펼치고 있는 교수님의 덕분인지 추위는 사그라지고 잔잔한 감동과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 아쉬운 점은 작가가 우려하고 있듯이 현실에 도움도 되지 않고 외국 여행에서 본 베르사유 궁이나 자금성 등의 궁궐보다는 초라하게 느끼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몇몇을 위한 답사로 그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서울이 조선조 500여년의 수도인 때문에 곳곳에서 숨은 역사를 느낄 수 있음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인데도, 사람들의 관심을 잃은 지 오래라 아쉬움이 남았었고, 가끔 문화재청이나 특별한 연구 목적의 흥미를 가질 수 없는 팜플렛의 한 단편으로 소개하는 내용에 부족함을 느끼던 차에, 이런 좋은 책 한 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 기쁘고 설레이기까지 해 책을 받자마자 펼쳐들었다.

자료의 풍부함과 옛 사진으로 만나는 서울의 면면을 구경할 수 있는 것도 기쁠 일이었지만, 역시 작가의 장소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설명은 처음 서울을 만나듯 생소하면서도 즐겁다.

왜 서울인가? 어릴 적엔 서울이 수도라는 말인 줄 알았다. 가끔 선생님들이 어느 나라의 수도 예를 들어 베이징을 설명할 때면, 중국의 서울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던 기억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울이라는 지명 속에도 다양한 해석이 들어있음을 제시하며 흥미를 돋운다.

서울은 애초에 계획도시다. 한양으로 천도를 계획한 사람은 정도전이었다. 정도전은 신권중심의 정치체제를 꿈꾸다가 결국 왕권중심의 정치를 원하던 이방원에게 제거된다. 둘의 동상이몽의 꿈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건국하는데 까지는 같았으나 그 이후로는 운명이 엇갈리게 된다. 이러한 둘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궁궐이라는데 정도전의 궁궐은 궐역 중심으로 이방원의 궁궐은 궁역 중심으로 나타나 후세의 우리에게도 그 의미를 전하고 있다. 궁을 즐겨 찾는 나로서는 저자의 설명에 찬탄이 절로 쏟아진다. 역시 또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똥물, 똥개라는 대목에서는 서울의 도시 하수처리에 대한 재미난 에피소드를 통해 중세 도시의 면모를 소개하고 있다. 똥물이야 그렇다지만, 똥개라니...저자말대로 똥소나 똥말은 없다. 집집마다 개와 돼지를 기르던 사연이 기막히다.

땅거지는 또 어떤가. 서울의 옛 모습과 자취만 담은 책인 줄 알았더니,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의 기원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똥개나 똥돼지 만으로는 더 이상 분뇨를 감당해 내지 못한다. 도시가 커지면서 사람이 늘면 의식주도 자연히 늘게 되는 법. 땔감 사용으로 인한 재가 하상에 쌓여 여름이면 홍수가 나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떨어진 영조의 준천 작업령에 의해 하천 양안에 두 산이 생겨난다. 거지도 그 수가 늘어 다리 밑 어느 자리도 낄 수 없던 거지들이 두 산을 파고 기어들자 땅거지가 등장하게 된다. 이들이 뱀을 잡아 팔 수 있는 독점권을 얻게 되는데 그들이 땅꾼이다. 서울로의 인구이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가 보다.

압구정과 석파정에서는 붕당정치의 폐단으로 말미암은 왕권 약화의 모습을 짐작케 한다. 산속의 정자는 왕도 능가하는 그들만의 정치가 있던 장소임을 가끔 쉬어가는 사람들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러한 붕당정치의 폐단을 막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한 영조와 정조의 탕평정치는 어찌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던 일임을 서울의 땅 소유를 통해 설명한다. 땅평이 제대로 되지 않은 끼리끼리 모여살기의 땅 소유 방식으로 말미암은 폐단이라는 것인데, 오늘날 강북, 강남의 차별도 결국 땅평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서울이 점점 커지면서, 도심과 부도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음을 종로와 전차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구도심 종로의 기억은 도심의 추억을 기억하는 이곳으로 모여드는 노인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지하철 1호선의 모습에서 아련하게 남아 기억되고 있다. 서울이 성장하며 팔각정, 시계탑, 제중원, 촬영국, 파리국 등은 추억 속에나 그 모습을 회상할 수 있는 곳으로 치부되었고, 물장수와 복덕방은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성장의 모습 이면에는 이렇듯 쇠락한 모습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쓸쓸한 기분이 들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덕수궁 분수대의 건설배경에 대해 쓰고 있는데, 덕수궁에 가 본 사람은 알리라. 석조전과 분수대의 생뚱맞음을. 조선 시대에는 죄인의 집을 헐어 못을 팠다고들 하는데, 분수대라니 했었는데, 저자의 상상력으로 완성된 하나의 시나리오는 약소국으로 전락해버린 대한제국의 수도 서울의 모습이 한스럽기까지 하다.

처음 수도 서울이 탄생하게 된 시절부터 최근의 서울 모습까지 논리적이거나 기계적인 배열이 아닌 구성으로 찬찬히 서울의 모습을 둘러보고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된 책읽기였다. 조만간 아무래도 이 책에 나온 몇몇의 장소를 둘러보고 싶다는 욕심이 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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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탄생 (반양장) - 대학 2.0 시대, 내 젊음 업그레이드 프로젝트
이어령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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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일간지에 게재된 분수대의 글은,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있었던 중요한 사실을 재해석해 내는 것으로 보는 이의 사고를 다양하고 풍부하게 해주는 듯하여, 빠지지 않고 읽는다. 어쩜 같은 사건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어 더 쉽고 정확하게 다가갈 수 있어 더없이 즐겨 읽는다.

이어령님의 글은 『디지로그』로 접하게 되었는데, 그때에도 이번의『젊음의 탄생』을 읽을 때에도 이와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각종 학문의 내용과 유명 인사들의 에피소드, 언어의 자연스러운 조화와 해석까지...담고 있어, 책 내용은 차치하고서 정말 대단한 학식을 지닌 작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어쩌면 그가 이 책 한권의 내용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새로운 창조적 지성인은 작가 본인이 그 모델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최근에는 조금 시들해졌지만, 각 대학에서는 통합논술의 비중을 늘리겠다는 방침을 주창했고, 그로인한 사교육과 공교육의 파장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학생들에게 부담만 지운다면서 핏대를 세우곤 했던 사람들이 많지만, 역시 통합논술의 중요성과 필요성만큼은 부정하지 못할 것 인줄 안다. 우리의 세계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하고 복잡한 공간으로 변한지 오래이며, 저자가 지적했듯이 현재의 ‘지구온난화’라는 문제는 CO2의 배출을 줄이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복잡 미묘한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하물며 인간의 사회란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를 주도해 나아갈 젊은이들에게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하나의 사고, 하나의 학문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통합적 사고를 통해 해결해야 함을 이 시대는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령님의 이 글은 최근 통합논술의 중요성처럼 대학생이 된 젊은이들이 그들 사고를 가두어 두고 있던 좁은 시각을 넓혀, 궁극에는 높이높이 날아가라는 것이다. 높이높이 날기 위해서는 우선 저자가 제시한 9개의 매직카드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읽은 내용 중에 특히나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게 한 매직카드를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카니자 삼각형  
   

대학생이 된 젊은이들은 대학생이 되었으므로 뜨면서 날게 되었다. 뜬다는 것은 억누르던 중력에서 갑자기 가벼워지는 것이고, 난다는 것은 자신의 힘과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므로... 저자는 이보다 더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높이높이 나는 것이다. 높이높이 나는 것과 카니자 삼각형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했지만, 곧 저자의 주장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팩맨의 유도인자로 인해 생기는 가상공간처럼 대학을 젊은이들의 상상력으로 창조적 지성의 인큐베이터로 만들어 내야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이라는 유도인자가 저절로 창조적 지성인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니 젊은이들의 지식과 상상력, 꿈을 향해 목숨을 건 바보들, 열정에 몸을 불사르는 미치광이들이 역사를 만들어왔음 강조하며 젊은이들만의 용기가 필요함을 당부하고 있다. 

물음느낌표

    

생각하는 물음표와 행동하는 느낌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매직카드로 젊은이들에게 최초의 펭귄이 되라고 말한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불확실한 세상에 용기를 내걸고 생각하고 행해야 함을 다시 한 번 다짐하게 한다.

개미의 동선

‘노이즈’, ‘잡음’, ‘기생충’의 중요성을 저자는 개미의 동선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 젊음은 끊임없이 방황하고 헤매야 함을, 새벽의 아름다움은 대기에 먼지가 섞여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지만, 먹이를 이고 직선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개미처럼 목적 없는 방황과 헤맴이 아닌 진리탐구와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가치에의 추구가 그 선이 되어야 함을 저자는 당부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대학1년부터 취직을 위해 공무원시험, 각종 고시 공부를 종용하는 듯 하여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젊음은 잠시의 헤맴도 아름다운 시기가 아닌가 말이다.

오리-토끼


최근에 많이 보아온 그림일 것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강요하던 사회에서 이것이나 저것이나의 ‘나나’사회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게 될 사회는 이도 아닌 이것도 저것도의 ‘도도’사회로 나아갈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사고의 유연성, 다양성이 기반이 되어야함을, 오리-토끼 매직카드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빈칸 메우기


첫 번째 빈칸 메우기에서는 'milk', 'silk'로 대비되는 해양문화와 대륙문화의 차이점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빈칸은 우선 결핍의 상태로 필요를 요구하게 된다. 해양문화로 대비되는 유럽의 척박한 토양을 그 결핍의 상태로 보았으며, 그 필요에 의해 목축업의 성행과 milk의 중요성이 발생하게 된다. 반면 대륙문화로 일컬어지는 'silk'는 기름지고 풍요로운 곡물문화로 인한 결핍의 부재로 밀크가 아닌 ‘silk'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다. 고기의 맛을 위해 후추의 필요성이 중요해진 유럽은 후추의 빈칸 메우기를 위해 대항해 시대의 막을 열게 된다. 산업사회까지만 해도 이러한 결핍의 필요 요구에 따라 역사는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제는 의식주의 요건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기 때문에 한 차원 높은 빈칸 메우기가 필요해 진 것이다. 두 번째 빈칸 메우기의 순서가 된 것이다. 산업사회를 넘어선 이 사회에서는 ’독재‘, ’독주‘, ’독선‘의 빈칸 메우기는 적합지 않다. 카이사르 이후 난국을 통치하는데 성공한 아우구스투스의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격언처럼 ’독창‘적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 빈칸 채우기는 그럼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있겠다. 두 번째 빈칸 메우기를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빈칸 채우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독창성이란 무엇인가. 남과는 다른 자기만의 넘버 원이 아닌 온리 원이 되는 것이다. 물건이나 생명, 마음과 생각에 존재하는 일정한 흐름과 고유한 무늬를 ’결‘이라고 한다면 개개인의 ’결‘을 인정하고 공유하는 세태가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한 빈칸 메우기가 아닌가 싶다. 저자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참으로 독창적인 사람임을 절실히 느끼는 때가 많은데, 우리가 배워야 할 ‘결’임을 잊지 않겠다.

지금까지 8개의 매직카드는 요약해 본다면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후기 정보사회로 변화해 왔고, 앞으로는 더더욱 빠르게 불확실하게 변모해 나아갈 사회를 젊은이들이 이끌어 가기 위해서 때로는 헤맴과 방황이 있더라도 용기를 가지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행동해 나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목적지에는 진리 탐구, 인간의 존엄성 등과 같은 불멸의 진리가 과정에는 나 자신의 즐거움과 다른 이들의 즐거움,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을 넣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마지막 매직카드에서는 세계화와 지역화로 나타나는 세계 속에서 앞서 나아가는 젊은이가 되기 위해서는 글로컬라이제이션이 되라고 당부하고 있다. 아마 이 시대의 화두가 바로 이 글로컬리즘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중요성은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싶다. 얼마 전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에서 읽은 글귀가 생각난다. “동양도 서양도 신이 만드셨다.” 비단 문명끼리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국가 간, 지역 간, 문화 간의 차이보다는 특별함을 볼 줄 아는, 나아가 세계화에 어울리는 보편적 사고를 지닌 젊은이가 이 시대의 새로운 인간상이 아닐까. 대학생이 된 새내기들이 가까이 두었으면 하고, 곱씹어 읽고 되새기기를 바라는 책이 되었으면 한다. 저자의 바람대로 젊은이들이 높이높이 힘껏 비상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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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3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3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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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지식채널e를 접하게 되었던 것은 ‘동기유발’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학습의욕을 고취시키는 동기유발에 관한 연수였는데 수업시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무기력한 학생들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5분정도의 영상과 음악, 나레이션은 그 효과에 있어서 탁월함을 보였기 때문에 하나의 동기유발의 방법으로 소개된 것이었다. 왜 그리고 어떻게 지식채널e는 우리를 집중하게 하는가?

그렇게 지식채널e를 만나게 되었고, 나 또한 감동을 느꼈으며 프로그램을 모두 섭렵하기에 이르게 되었다. 영상을 모으고 분류하는 작업을 통해 책으로 정리되어 있으면 참 좋겠다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곧 실현이 되었다. 지식채널e가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3권 또한 출간소식을 전해 듣고 바로 예약구매를 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관심과 기대가 컸지만 이에 부응하는 책의 탄탄한 구성과 풍부한 자료 그에 더해 영상으로는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부연설명까지 어느 것 하나 넘치지 않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만족스러웠다.

1권이 구분하기, 밀어내기, 기억하기, 돌아보기를 통해 사회적인 이슈들을 중심으로 다뤘다면, 2권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키워드로 사회 정치적인 이슈뿐 아니라 일상의 재발견과 감동적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았었다. 3권에서는 인간의 창조성과 폭력성 그리고 윤리성을 보여주고자 시도하고 있다. 1, 2권 때보다 훨씬 풍성한 자료가 보충되어 있고 구성이 탄탄하여 더 없이 만족스러운 책이다.

세 파트에서 소개되고 있는 글은 30가지이며 구성에 있어서는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역사, 일상, 국제, 모든 장르를 초월한다. 글의 구성 내용에 있어서는 모두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가슴을 뛰게 한다는 점이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노함이든...시사적으로 파격적인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슴을 뛰게 하는 글들은 일상적인 주제를 소재로 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으레 의미 없는 사실들의 나열로만 알고 있던 소재에 마법처럼 의미를 부여하고 소외되었던 무엇인가를 끌어내어 너무도 중요한 지식으로 변모시키고 만다. 중요한 무엇인가를 빼앗겼다가 되찾은 것처럼 안도되면서 다시 놓치지 않기 위해 애를 쓰게 되는 내 모습을 찾게 된다.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 제자리를 찾았을 뿐이었다.

일상의 모습을 그저 초점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가 지식e를 통해 다시보기가 가능했다고 할 수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지식e를 읽는 이들은 보고 아는 지식에 그치지 않고 느끼며 행동까지 유발할 수 있는 지식까지 얻게 될 것이므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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