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을 다시 읽다 05 -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한국문학을 다시 읽다 5
이효석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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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문학 시간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국어책 가득 빈 공간을 메우는 깨알 같은 설명들이 나를 어지럽게 했던 것 같다. 하나하나 설명들을 머리에 집어넣고자 노력하였지만, 알 수 없는 낱말들이 서로 조우하지 못했다. 옛 글들이다 보니, 나이 어린 나로서의 최선의 방법은 그저 외우고 또 외우는 것이었다. 문학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되,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것이어야 함을 그 때는 몰랐었던 것이다. 그런 우리를 못마땅해 하는 선생님을 이해하고도 남는 요즘이다.

책읽기에는 때가 있는 경우가 있다. 같은 책이라도 시기에 따라 느끼게 되는 경우가 다른 경우가 그 때문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 알게 되는 것도 있고, 아는 것이 늘어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지기도 한다. 특히 문학작품을 다시 꺼내 읽게 되면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도 중고등학생들에게 고전이나 시를 읽히게 하는 교과내용에 불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나조차도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그 때 접했던 작품들이 아직도 문학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게 하므로. 그래서 이 책도 선택하게 되었다. 옛 시절을 떠올리며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제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읽는 것이 잘 되지 않았다. 그저 읽고 느끼는 바가 주류가 되는 책읽기가 되었다. 다행한 것은 이러한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라도 하듯, 한 작품이 끝날 때 마다 친절한 설명이 덧붙여있다. 그것으로 꼼꼼히 되돌아보기가 가능할 수 있었다.

소설은 한국문학을 다시읽다의 시리즈로써 단편들로 구성되었다. 장편보다는 단편을 실어 더 많은 작품을 알리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5권에서는 이효석, 박화성, 박태원 유진오, 이무영, 강경애님 9인의 작품들이 모아져 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우리민족이 가장 힘들었던 일제강점기에 활동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은 읽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삶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느낄 수 있다. 다만 느낌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나, 문학을 읽는 이유가 삶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는 목적에 있다면 가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겠다. 단지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은 살기 힘들었다는 식은 곤란하다. 당시 민중의 삶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느끼는 바를 함께 느끼는 것이야말로 그 시대를 이해하는 지름길이 되리라 보는 것이다.

작가들의 작품이 다양하게 실려 있기 때문에 식민지 시대의 민중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순수 문학에 몰입한 이효석님의 “메밀 꽃 필 무렵”,“수탉” 등은 은유의 마법을 엿 볼 수 있기도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메밀꽃 필 무렵은 다시 읽어도 감동이 덜하지 않다. 꿈처럼 몽롱함을 글로 나타내는 그 솜씨는 역시 대단하다라는 말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박태원님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성탄제”는 식민지 하의 지식인의 내적갈등과 여염집에서의 고단함을 사실적이면서도 치밀하게 표현함으로써  당시 민중들의 의식을 잠시 들여다 볼 수 있겠다. 가장 치명적인 느낌은 강경애님의 “지하촌”에서 받게 된다. 불구의 칠성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당시 민중의 삶 그 자체다. 처절하고 먹먹해질만큼 암담한 현실이 삶을 갉아먹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느 장르 소설이 이보다 더 무서울까 할 정도로 말이다.

한 작품 그리고 또 한 작품이 주옥같다. 요즘 소설류의 참을 수없는 가벼움 혹은 직접적인 서술에 싫증 난 이라면 옛 우리 문학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은유의 미덕이 곳곳에 숨어있어 발견하는 이의 기분이 좋아지고, 사색의 순간에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으며 당시 민중의 삶속에서 우리의 살아갈 날들에 대한 모색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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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 2008년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주영선 지음 / 문학수첩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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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하면서도 일상적인 느낌을 모두 간직한 책이다. 아니 특별한 듯하지만, 일상의 모습과 너무 닮은 소설이다. 읽는 동안 주인공이 나 인 듯 느껴질 때가 많아 그녀의 힘겨움만큼이나 힘들었다. 내가 사는 세상과 그녀가 살아 내야하는 세상이나 소통의 부재가 발목을 잡는다. 그로인한 감정의 소모가 하루하루 기력을 빼먹는 무엇임을 느낄 때마다 세상에 홀로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고 세상을 바로보기 하기가 겁이 났다. 모든 인간사가 그렇다고 한다면 누구나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하지만, 그녀의 직업이 공무원이라서 그런가. 비슷한 구석이 없지 않아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느 시골마을처럼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이 창밖 풍경을 메운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삶들이 한층 풍요로워 보이는 시골마을이 소설의 배경이다. 어느 날 보건진료소의 준공식 행사장을 첫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마을잔치라고 볼 수 있는 흐뭇한 풍경과는 다르게 그 속에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수상하다.

박도옥과 장달자라는 마을 할머니들의 세력다툼은 수상함을 넘어서 도를 넘는다. 더군다나 새로 지은 보건진료소의 준공식 이후 진료소장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데, 여의치 않자 둘이 합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적이 있으니 공동의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리라. 이는 살면서 종종 찾아오는 인간관계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이상한 것은 마을 사람들의 태도였는데, 진료소장 앞에서는 따뜻한 충고와 위로를 아끼지 않으면서도 박도옥과 장달자와 함께 할 때에는 아귀 무리들처럼 진료소장을 헐뜯는 행태를 보인다. 서로 박도옥과 장달자의 몰상식함은 인정한다고들 하면서 편에 끼지 못해 안달이다.

마을 이장들과 반장들의 모습은 안이한 태도로 사태를 방관하는 보통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야비해 보이기도 했는데, 이는 소설을 통해 나를 비판하고 있는 듯해 뜨끔하기도 했다. 선뜻 나라고 해도 소위 총대를 메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의 모습이 더욱 보기가 싫어졌다. 여기에 진료소장을 지치게 하는 이가 있으니 상급기관이다. 상급자가 보호해 주어야하는 것은 아니나, 부당한 행위로부터 곤란을 겪고 있는 경우 사실여부를 따져볼 의무는 있는 것이 상식이 아닌가 하는데, 이 또한 답답한 소리다. 결국 주인공의 올바를 처사에도 불구하고(물론 마을사람들이 원하는 바와는 상당히 다른) 고립되어 간다.

“왜 내 삶은 소통이 안 되는 것투성이인가, 정상적으로 자라지 않는 아이와 정상적으로 나를 대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웃음을, 관계를 잃어 갔다. p.115”
"이 세상의 모든 기준, 그 기준에 미달되어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아이는 아침에 눈을 뜨면 또다시 소통되지 않는 세상으로 나와 이방인으로 하루를 살아야 할 것이다. p.239"

이 시점에서 소설의 결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사람들과의 소통의 부재로 인해 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로서는 소설 내용을 통해 현실도 이와 다르지 않다라는 느낌을 받고는 무기력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지금까지 나를 사로잡았던 작가의 현실인식은 해결에 있어서도 확연한 답을 주리라 여겼다. 몇몇 사람의 입을 빌려 넌지시 이야기하고 있는 해결책인가. 제 기분을 죽이며 살랑살랑 밥이나 술을 대접하는 방법 외에는 없는 것일까. 아니다. 작가는 주인공의 심정을 빌려 이를 올바른 해결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인격모독을 서슴지 않는 사람에게 자신을 굽히는 일이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아웃’이다. 그들의 의기투합은 결국 진료소장을 밖으로 아웃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고야 말았다. 그들의 협박에는 힘이 있었다. 사람들의 본성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동조하지 않으면 희생물이 될 수도 있음을 끊임없이 세뇌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조인공은 소통의 부재의 세상 속에서 자폐증을 앓는 사람처럼 자신을 가두고 만다. 소통이 되지 않는 삶을 바꿀 요량은 없는 것인가가 내 머릿속을 메운다. 사회와 소통하지 못했으나 깨달음을 통해 자신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책을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소설의 결말에서 느꼈던 무기력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나를 위한 구제책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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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면기사, 피로 얼룩진
가쿠타 미쓰요 지음, 민경욱 옮김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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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 TV프로그램에서 최근 사회 기사에서 이슈화 되고 있는 “묻지마 범죄”를 다루었다. 일본에서 흔해 보이던 이러한 범죄가 왜 꾸준히 잦아지고 있으며 원인은 무엇이고 대안은 없는가를 전문가들이 분석해 보려는 시도였던 것 같은데, 묻지마라고 했듯이 이유가 없어서 더 위험하다라는 결과를 내보내 더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건가하며 무섬증을 호소해보기도 하지만, 대안이 없다니 막막해져버렸다. 이 책에 나오는 기사들은 이유가 있었다. 막연한 이유이라는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이 책은 최근 일본의 사회면 기사 중에서 이슈화 된 사건들을 꼽아, 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파헤친다. 이러한 의도는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본다면 그렇지 못하다. 우선 바람직하다는 것은, 범행 동기를 살펴보게 함으로써 조금 더 사회적으로 공공의 노력으로 사건을 미리 방지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회가 발달하고 어느 면에서는 진일보한 면이 있으나, 결국 소외받고 고통 받는 사람이 늘어감에 따라 등장하게 되는 부작용을 같이 짊어지고 나아감을 호소해 어느 정도 수긍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역시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인간에 대한 파괴욕구를 정당화하는 부분이 있어 그렇다. 물론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라는 말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상식이라든지 인간으로써의 마땅히 지켜야할 무언가가 결여되었다는 점이 그런 생각을 더한다.

유독 동양인들은 사건의 배경을 파헤치기 좋아한다고 한다. 범인의 범행에 앞서 그가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지나친 각색과 설명은 동의를 불러일으켜 결국에 가서는 죄를 가벼이 여기게 하는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함께 모색하고 대안을 찾는 것은 좋지만 이러한 의도는 생각 밖으로 죄질을 가볍게 함으로써 다수의 선량한 시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될 것이다. 범인들의 범행동기가 현대사회의 소외였던 점을 부각시켜 이해를 높이는 이 책도 그러한 평가를 지나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다. 책 뒷면에 책 소개란에 이런 글귀가 있다. “평범한 인간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묘파한 가쿠타 미쓰요의 연민에 찬 시선”, 이 책의 몇 가지 에피소드들은 한눈에 사로잡을 정도로 엽기적인 사건들이다. 그 사건들에 보내는 연민에 찬 시선이라...물론 책 내용도 그러한 시선으로 쓰여 졌다. 일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작은 행복에 연연해한다. 그들은 소외되었으므로 소설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연민의 기분을 자아낸다. 빨간 필통의 미치와 영원의 화원의 아미의 시선을 좇다보면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어, 범행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 수준까지 다다른다. 어느새 감정이입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결국 인간에 대한 동정일지는 모르나 지나치게 되면 안된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이 책을 읽기 전 주의할 사항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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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견쟁이 신들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7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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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 신이치라는 작가의 작품은 이번이 두 번째다. 쇼트쇼트 스토리는 이제 조금 익숙해진 정도다. 여전히 이야기에서 얻게 되는 인상은 강렬하다. 짧지만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는 글들이다. 참견쟁이 신들이라는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인간 세상은 논리나 이성으로 따지고 들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전제하에서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어릴 적 듣던 귀신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인과응보라든지 선과 악에서 선의 승리라는 보편적인 진리가 숨어있는 글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신들의 이야기 중 단연 으뜸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들일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제 멋대로 활약하는 이야기들은 다시 살펴보아도 재미있다. 인간들의 모습에 못마땅해 하며 참견해대는 모습을 기억하는데, 이 책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저것 참견하는 신들의 모습은 동과서가 어찌 그리 닮았는지. 아마도 인간은 신의 존재를 믿고 싶어하는가보다. 인간 사회의 팍팍한 고단함으로부터 위안을 얻고 싶은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를 포함하기도 하지만.

참견쟁이 신들 중 내게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이야기는 밤의 목소리였다. 가장 보편적인 이야기이지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어느 날 찾아온 이상한 환영과 목소리...귀신을 느끼는 경로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야기의 남자도 마찬가지다. 친구를 죽이고 자해를 해서라도 죄를 감추려는 이 남자는 자신이 떨어뜨린 꽃병에 맞아 기절해 위기를 모면한다. 사건의 장소를 찾은 좀도둑이 결국 죄를 뒤집어쓰고 만다. 제정신을 차린 후 그 사실에 안도하는 남자는 화들짝 놀랄만한 소식을 접한다. 어제 일처럼 생각했던 남자의 회상과는 달리 사건이 일어났던 것은 3년 전. 그동안 유죄판결을 받은 좀도둑은 사형을 당하고 만다. 눈감으면 떠오르는 목소리와 환영은 그 남자의 것이었다. 살아갈 날 동안 느끼게 될 귀신의 존재는 이 남자에 대한 벌이다. 신의 존재를 통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이들을 벌주고 있다.

신의 존재가 인간사회만큼 아니 훨씬 더 오래전이라고 믿게 된 것도 인간들의 믿음에 의해서였다. 참견쟁이 신들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요구가 만들어낸 결과였으며 결국 인간사회를 지켜주는 막을 형성해 왔다고 생각된다. 인간에 의해 그 존재의 불안정함 속에서도 여전히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신들. 이 책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극한 반전을 보이면서도 우리에게 크게 낯설지 않은 이유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 같다. 참견쟁이 신들을 통해 인간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사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며 잔혹한 것을 다루는 이야기가 아님에도 인간의 모습을 헤집듯 파헤치는 저자의 글들에 빠져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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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두 번 떠난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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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왜 두 번 떠날까...하는 의구심에 책을 들었지만, 호기심을 채울 수 없었다. 제목과는 상이한 남자들의 이야기로 내용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에서나마 이유를 찾고자 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처음이다. 처음이지만, 일본 소설이 대개 그렇지 하는 느낌이어서 마치 그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읽기는 쉬운 책이었다. 막히는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남녀 간의 이야기라서 그러했는지는 모르겠다. 읽기 쉬운 책이라고 남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닌데, 어쩐 일인지 책읽기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내안에서 이야기들이 빠져나간 느낌이다.

이야기들이 허무함을 느끼게 하고 마는 성격을 가진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의 이야기는 젊은 시절 유희에 가까운 만남과 그 이별을 담고 있다. 아직은 여물지 않은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심정으로 시작된 만남은 책임이란 단어를 내뱉기에는 부족한 사랑이다.

어린 시절의 사랑에 대한 감정은 모르기 때문에 열정적이기도 하지만 두려운 것이어서 실수를 범하게 된다. 이러한 실수는 되돌아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그 실수에 대한 후회라는 감정을 가져오게도 하는데, 이 책을 보고 있노라면 젊은 날의 후회를 젊은 날의 우물 속에 처박아 놓기보다는 꺼내어 드러내어 참회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실수나 후회는 드러내놓고 반성할 때에야 그 짐을 덜 수 있는 것이므로.

그렇게 내 나름대로 해석하고 나니 그들이 밉기 보다는 가엽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이야기가 여자의 시선으로 보던 처음과는 달리,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역시 허무함을 어찌하지는 못하겠는지 책읽기를 마친 직후에도 글을 쓰기 못했다. 서평을 써야하는 부담이 있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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