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집행관 프랑스 현대문학선 23
미셸 폴코 지음, 이인철 옮김 / 세계사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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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유의 책은 접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책을 가까이 하고자 해도, 베스트셀러가 넘치는 세상인지라, 옛 시절에 출판되어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오르지 못한 프랑스 소설(낭만적이지도 않은)이라니...한 편집자의 권하는 책 목록에 들어있던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우연치고는 강렬한 느낌을 가지게 했던 책이었다. 책을 한 장 넘기자 작가의 사진과 말이 담겨있다. 우선 사진을 본 뒤 작가의 말을 읽었는데, 이 책을 내게 된 이유가 독특하다.

『어렸을 때 나는 내가 망태 할아버지였으면 했다. 그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신과 같은 위대한 처형자가 되고 싶었다. … 세월이 흘렀고 나는 집행관이 되지 못했다(그 자리는 비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결코 될 수 없었다.(사형은 폐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기념으로 이 책을 썼다.』

작가의 사진을 다시 들여다 본 뒤에는 섬뜩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워낙 살이 없고 퀭한 눈매가 그런 느낌을 가지게 만들었다. 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예전의 사형제뿐만 아니라, 각종 신체적인 벌이 주로 사용되던 중세 시기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합리적이라는 생각은 가질 수 있다. 다만 상황의 전개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이전의 시기라는 것이 불합리함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은 사형집행관이 없던 한 남작령의 사형집행관이 생기게 된 경위를 담고 있다. 주인공의 탄생에서부터 사형집행관이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1683년 8월 루에르그 지방, 벨레로카이유 남작령에 영아살해 사건이 일어난다. 세공업자인 크레스피아제는 벌에 쏘여 향료를 필요이상으로 쏟아 부은 피에르 갈린을 몽둥이질해 벌을 주었다. 이에 앙심을 품은 피에르 갈린은 세공업자의 아들을 잘게 저며 음식으로 만들어 그의 부모에게 먹인 후 잡혔다. 이 사건은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끄는 사건으로 살인자의 처형만이 화를 잠재울 수 있었다. 허나 안타깝게도 남작령에는 사형집행관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도 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작의 얼굴은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때마침 감옥에 잡혀 들어온 좀도둑 3인이 있었으니, 어릴 적에 코를 물려 코가 없는 쥐스티니엥이 그 중 하나였다. 양부모의 사랑으로 성장했으나, 유랑단의 여인에게 홀려 수도원에 불을 지르고 양부모의 돈을 훔쳐 달아났던 이 청년은 같이 붙잡혀 온 2인에게 도둑을 맞고 복수를 하려던 중 한패로 몰려 감옥에 잡혀 오게 된 것이었다. 정의는 돈에 있는 것으로, 감옥에서 대서 작업을 하게 되어, 감옥 관리이 보루이의 마음에 들게 된다. 왕의 갤리선 노잡이로 끌려갈 뻔 하다가 보루이의 도움으로 사면을 받게 될 운명에 처한다. 운명은 그에게 사형집행관이 되라하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쥐스티니엥은 완벽하게 사형집행관의 업무를 준비하고 마친다. 여러 차별이 있지만 특혜도 많은 사형집행관의 업무는 그를 시작으로 사형제가 폐지 될 때까지 대를 걸러 지속된다.

위의 줄거리가 중심 내용이라면 남작이 훌륭한 기사로써 활동하던 중세의 배경을 그리고 있는 것은 부가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당시의 정의란 무엇인지 오늘날과 비교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 사형제의 존속 혹은 폐지라는 오늘날의 분위기도 옛 시대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정의는 영원성을 지녀야 한다지만, 역시 시대에 따라서 요구가 달라지고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정의란 진정 무엇이어야 하는 걸까? 하는 의문을 가져본다.

『열한번째이자 마지막 가격을 할 때 쥐스티니엥은 온 힘을 다해 그의 배꼽을 내리쳐서 척추를 으스러뜨리고 여러 개의 힘줄을 절단시켰으며 열두번째 갈비뼈와 콩팥을 으깨어 버렸다.』-정의는 실현되었다. 사형수가 금세 죽는 것은 사형집행관의 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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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동안의 과부 1
존 어빙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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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어빙에 대한 찬사가 인터넷 서점의 메인을 채울 무렵부터 관심을 가졌던 소설이다. 글짓기의 목수라는 타이틀을 가진 존 어빙.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솜씨를 빗대어 그를 표현한 것이라면 단연코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여겨졌다. 뿐만 아니라 책의 제목에도 이상하리만치 강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사실 이 책을 읽은 지금에서는 왜 “일 년 동안의 과부”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딱히 추천할 만한 제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글의 특징을 한 줄로 표현하기에는 내용의 넓이에 그 원인이 있을 수 있겠다.

소설가 존 어빙의 작품은 인간의 삶을 통찰한다.”라고 그를 평가한 이에게 동감의 한 표를 던진다. 이 작품도 그러했다. 등장인물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소재가 많은 것도 아니건만 방대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우연과 필연의 교차로에서 수 만 가지의 갈림길이 생기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일 권에서는 매리언과 테드 콜의 평범하지 않은 부부생활이 주축을 이루고, 이 권에서는 두 부부에게 남겨진 아이 루스의 이야기를 주를 이룬다는 것을 제외하면 굳이 요약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겠다. 허나 역시 저자의 글 솜씨는 대단한 것이어서, 서로 다른 등장인물과 이야기임에도 어느새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소설의 후반부가 되어서야 눈치 챌 수 있을 만큼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라 여기며 읽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말이다.

소설가로 시작했지만, 동화작가로써 명성을 구가하고 있는 테드 콜은 매리언과 결혼 후에도 나이어린 여성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도 어찌어찌 하여 사내 아이 둘과 여자 아이 하나를 얻게 된 그들은 잘 해 나아간다. 결혼생활을 지탱해 주었던 두 사내아이를 사고로 잃은 직후부터 부부사이의 위험해지긴 하지만 말이다. 두 아들을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매리언은 사진 속에서 살아간다. 일 권 내용의 대부분이 사진 설명 일만큼 매리언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진이었다. 이러한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위태롭다. 두 부부가 그렇고 아이가 그렇다. 이 때 등장한 소년 에디는 매리언과의 성적인 결합과 부부 결별의 매개체가 된다. 후에 에디는 루스 콜의 낭독회에서 루스와 재회한다.

루스의 낭독회라고 했듯이 여자아이는 소설가로 성장했다. 아버지 테드 콜에 비해 소설로 재능을 인정받았으며 그로 인해 각 국에 홍보 차 가는 여행도 잦다. 대부분은 과부에 관한 글을 썼는데, 열성 팬 만큼 비난하는 독자도 많았다. 미혼이었던 그녀가 과부의 심정을 알 리가 없다며 비난을 일삼는 여인이 대표적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는 소설 구상을 위해 유리창 방문을 하던 중 살인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남은 생을 과부로 지내라던 여인의 저주 탓인지 루스는 과부가 되었고 과부로 지낸지 일 년 후에 암스테르담에서 구상했던 소설을 쓰게 된다. 소설이 그녀가 목격자였음을 알리는 단서가 되어 사랑을 찾게 되는 루스의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이다. 어머니와의 화해와 사랑의 완성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줄거리를 요약할수록 책에 대한 소개가 덜 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요약이 불가능한 소설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플롯이 될 만한 짜임이 덜하다고 생각되지만, 날실과 씨실이 엮어 지듯이 절묘함이 들어맞는 소설이 이 책에 대한 적절한 평가가 될 수 있겠다. 극적인 반전이나 커다란 사건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지는 않지만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의 생각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동감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이 가진 묘미가 되리라. 책 속 문장을 통해 이 소설이 가지는 매력을 대신하려 한다.

하리는 주로 소설을 읽었다. 소설에서 인간 본성의 참다운 묘사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리가 좋아하는 소설가들은 인간의 가장 나쁜 행동이 바뀔 수 있다는 암시를 결코 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캐릭터를 도덕적으로 지탄할 때도 있지만, 소설가는 본래 세상을 바꾸는 개혁가가 아니다. 소설가는 평범한 수준 이성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야기꾼이고 좋은 소설가는 그럴듯한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따름이다.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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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1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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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원한 사랑에 대한 꿈, 정신적 사랑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어볼만 하다. 이 책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그러하니까 말이다. 완벽한 몸매와 조각 같은 얼굴의 남자가 자동차 사고로 바비큐와 같은 처참한 몰골로 전락하고 만다. 재생된 몸의 껍데기가 다시 벗겨지는 고통의 순간이 찾아오는 동안 이겨내고자 하는 목적은 단 한 가지. 완벽한 자살을 위해서이다. 심한 화상환자의 모습을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부분에서는 이전의 뜨거운 것을 집었던 기억과 함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 이 남자가 이전의 사랑과는 다른 사랑을 되찾는 과정이 이야기의 큰 줄거리가 된다.

사랑의 주인공은 마리안네 엥겔로, 이 둘의 재회(그 이전에도 만난 것을 가정으로)는 특별했다. 이상한 머리와 눈빛 그리고 가장 이상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마리안네는 정신병동에 입원한 환자였던 것이다. 사고 이후 아무도 찾지 않았기 때문일까 정신병자임에도 금세 그녀를 궁금해 하고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곧 이야기들에 심취한 남자는 둘의 사이가 연인 사이였음을 듣게 된다. 700여 년 전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화상을 당한 남자를 만났고, 사랑하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이 아니었다. 마리안네가 말한 옛 이야기는 어느새 남자의 가슴속에 진실한 사랑의 모습을 심어주게 된다. 이전에 사고를 당하기전 살았던 남자의 사랑보다 깊고 충만한 사랑을 마리안네를 통해 발견하게 된 것이다.

둘이 사랑하던 옛 시기에는 남자가 성당 등에서 석공 일을 했지만, 현재는 마리안네가 가고일 조각하는 일을 하며 남자의 치료비를 마련한다. 마리안네가 조각하는 가고일은 중세 유럽의 사원의 지붕이나 처마 등에 붙여 빗물을 모아 흘려보내는 역할 을 하던 괴물 조각상을 말하는 것으로, 신을 섬기는 중세인들의 믿음에 기반 한다. 이 책의 제목이 가고일인 것은 아마도 남자를 비유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남자는 스스로 뱀이 몸속에 자리한다고 생각했고, 끔찍한 자신의 모습을 추악한 괴물과 동일시 여겼다. 마리안네의 보살핌은 마치 그녀가 조각하고 있는 괴물들 중 하나처럼 남자를 새로 조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돌 속의 영혼을 되살리듯, 남자의 영혼을, 사랑을 일깨워주는 조각가 마리안네는, 그녀의 임무를 다 마쳤다는 듯이, 어느 날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남자의 몸에 있던 커다란 상처자국은 전생의 둘의 인연에 대한 암시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불멸의 사랑을 지지하는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어찌 보면 판타지 소설처럼 보이는 이 소설은 그보다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 본다. 소설의 중간 중간 삽입된 이야기는 이러한 느낌을 더해준다. 오랜 시간동안 소설쓰기에 공을 들인 저자의 노력이 자칫 지루해질 이야기들에 숨을 불어 넣는 것도 이 소설의 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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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일 2 - 불멸의 사랑
앤드루 데이비드슨 지음, 이옥진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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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사랑에 대한 꿈, 정신적 사랑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어볼만 하다. 이 책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그러하니까 말이다. 완벽한 몸매와 조각 같은 얼굴의 남자가 자동차 사고로 바비큐와 같은 처참한 몰골로 전락하고 만다. 재생된 몸의 껍데기가 다시 벗겨지는 고통의 순간이 찾아오는 동안 이겨내고자 하는 목적은 단 한 가지. 완벽한 자살을 위해서이다. 심한 화상환자의 모습을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부분에서는 이전의 뜨거운 것을 집었던 기억과 함께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 이 남자가 이전의 사랑과는 다른 사랑을 되찾는 과정이 이야기의 큰 줄거리가 된다.

사랑의 주인공은 마리안네 엥겔로, 이 둘의 재회(그 이전에도 만난 것을 가정으로)는 특별했다. 이상한 머리와 눈빛 그리고 가장 이상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마리안네는 정신병동에 입원한 환자였던 것이다. 사고 이후 아무도 찾지 않았기 때문일까 정신병자임에도 금세 그녀를 궁금해 하고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곧 이야기들에 심취한 남자는 둘의 사이가 연인 사이였음을 듣게 된다. 700여 년 전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화상을 당한 남자를 만났고, 사랑하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이 아니었다. 마리안네가 말한 옛 이야기는 어느새 남자의 가슴속에 진실한 사랑의 모습을 심어주게 된다. 이전에 사고를 당하기전 살았던 남자의 사랑보다 깊고 충만한 사랑을 마리안네를 통해 발견하게 된 것이다.

둘이 사랑하던 옛 시기에는 남자가 성당 등에서 석공 일을 했지만, 현재는 마리안네가 가고일 조각하는 일을 하며 남자의 치료비를 마련한다. 마리안네가 조각하는 가고일은 중세 유럽의 사원의 지붕이나 처마 등에 붙여 빗물을 모아 흘려보내는 역할 을 하던 괴물 조각상을 말하는 것으로, 신을 섬기는 중세인들의 믿음에 기반 한다. 이 책의 제목이 가고일인 것은 아마도 남자를 비유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남자는 스스로 뱀이 몸속에 자리한다고 생각했고, 끔찍한 자신의 모습을 추악한 괴물과 동일시 여겼다. 마리안네의 보살핌은 마치 그녀가 조각하고 있는 괴물들 중 하나처럼 남자를 새로 조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돌 속의 영혼을 되살리듯, 남자의 영혼을, 사랑을 일깨워주는 조각가 마리안네는, 그녀의 임무를 다 마쳤다는 듯이, 어느 날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남자의 몸에 있던 커다란 상처자국은 전생의 둘의 인연에 대한 암시를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불멸의 사랑을 지지하는 저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어찌 보면 판타지 소설처럼 보이는 이 소설은 그보다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라 본다. 소설의 중간 중간 삽입된 이야기는 이러한 느낌을 더해준다. 오랜 시간동안 소설쓰기에 공을 들인 저자의 노력이 자칫 지루해질 이야기들에 숨을 불어 넣는 것도 이 소설의 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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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월요일 - 참을 수 없는 속마음으로 가득한 본심 작렬 워킹 걸 스토리
시바타 요시키 지음, 박수현 옮김 / 바우하우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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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다보면 간혹 매료되어 주인공이 되어버린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허나 이 책은 그런 착각이 아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가 마치 내 이야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들어맞았다. 이런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직장인들의 생활이 다람쥐 쳇바퀴 구르듯 매일이 같은 날처럼 느껴지는 것 같지만, 돋보기로 확대해 들여다보면 나름의 고민과 사소한 행복이 나날을 지탱해 주고 있음을 알고 있다. 주인공 네네의 일상에도 간혹 특별한 사건이 대부분은 소소한 일상의 지루함이 자리한다. 더불어 순간의 소중함도 깃들어 있다.

그리 예쁘지 않은 얼굴, 원칙을 중요시해 뻗댄다라는 평가를 받는 네네. 낙하산 입사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메우기도 해 매사에 조심할 만큼 남의 평가에 민감하기도 한 그녀는, 평범한 경리부 직원이다. 지나치게 평범한 일상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그녀의 일과는 월요일부터 고민의 시작이다. 회사 동료와의 가벼운 실갱이가 회사 생활의 활력을 잃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법한 머릿속 생각들, 마음속 말들을 하소연하는 네네를 보고 있노라면 나를 보고 있는 착각이 든다. 이럴 때엔 으레 불평이 쏟아지기 마련으로 네네의 상대는 골드미스 사촌 언니다. 월요일부터 하소연을 듣게 된 언니의 일침이 나를 뜨끔하게 만들고 말았다.

『지금 일이 재미없다든가 하는 충고할 것도 없는 불평은 하지 마. 그렇게 쉽게 회사를 관들 수 없다는 건 알아. … 불만이 있는데 그만둘 수는 없고, 그래서 불평이 나온다, 그것 자체는 어쩔 수 없어. 하지만 그런 건 동료들과 술 한 잔 하면서 불평하라고, 나를 불러내서 그런 비 건설적인 푸념을 늘어낸들 술맛만 떨어질 뿐이니까 p.26』

이런...냉소적인 사람을 보았나 해 보았자다. 나의 고민은 고민을 털어낸 후에 상대방이 네네의 사촌언니처럼 생각할까봐, 혹은 사소한 마찰 정도도 부드럽게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생각할까 우려되는 것이다. 결국 고민은 고민대로 푸념은 푸념한 행위 자체로 스트레스가 되어 돌아오게 된다. 나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소설 속 주인공일 정도이니 혼자만의 고민이 아닌가보다. 아무튼 네네의 무수한 혼자만의 고민들은 어떻게 해소되고 있을까? N게이지용 모형 만들기가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행복의 원천이었던 것. 여자라면 보석 혹은 명품 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역시 이런 여자도 있어, 하는 느낌? 모형을 만드는 시간은 하루 중 그녀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만들기 시작한 회사의 모형. 죽은 듯한 시간에 생기를 불어넣는 시간의 네네는 행복하다.

『사진 데이터를 컴퓨터로 전송하면서 이것저것들을 생각해 보니 행복이 발끝에서부터 심장을 향해서 서서히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p.71』
『“그거 입고 어디 갈 때라도 있어?” 라든가 ‘보여줄 사람은 있어?’ 따위의 질문은 멍청한 것이다. 이런 건 자기 혼자서 몰래 비밀스럽게 즐기는 것이다. 스스로를 위한 사치. 이게 진짜다.p.86“』

일과의 피곤함 등으로 무작정 잠에 빠져들고 싶지만, 동동 구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 또한 충전의 시간을 만든다. 책은 하루에 한권이라도 읽고 싶어 라든지. 나를 위해 이 정도는 선물하고 싶어 하며 주문하는 책들. 도착한 책을 확인하고 읽을 때의 행복이란 대부분 월요일이 아닌 화요일 정도가 좋아 하는 것은 네네처럼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 잡기 위한 나만의 방책인지도 모른다.

몇 년 동안 같은 일을 하다보면 제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행운을 지닌 사람도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다. 초심을 잃어버린 것이 원인이겠지만 항상 같은 기분을 유지하기란 어렵지 않은가 말이다. 구직하기도 힘든 이 시기에 섣불리 이야기하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한다. 일주일에도 기분은 일정치 못하고 스스로를 위한 사치도 효과가 줄어들 때 즈음 네네처럼 주문을 외워보기도 한다. “내 마음을 살찌워 주세요. 좀 더 둥글둥글하게 살찌워 주세요.” 좀 더 부드럽고 유하게 나를 만들고 싶지만 쉽지 않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엔 조금 더 유함을 발휘할 수 있기도 하다. 주말이라는 보너스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랄까. 항상 거리를 두던 동료와도 모처럼의 기회를 통해 인식을 달리할 수도 있다. 살면서 내가 확고하게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때가 오는데 그때마다 온 힘을 다해 받아들이고 싶다. 각진 정사각형의 내 마음을 동그라미로 만들어줄 기회가 될 테니까.

매번 같은 날이지만 월요일 같은 날도 주말 같은 날도 있다. 반복되는 듯 보이는 것은 눈멈이다. 당장 짜증이 난다고 혹은 복잡한 일이 생겨 귀찮게 되었다고 하는 얄팍한 감정 때문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진실이다. 그런 때가 오는 경우에는 어쩔 수가 없다. 마음껏 고민하고 나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 보기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네네처럼 살아감의 소중함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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