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 1 - 천연두파티
M. T. 앤더슨 지음, 이한중 옮김 / 양철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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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반역자 옥타비안은 출생 이후 혼자만의 생각이 가능하게 된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자신의 모습에 고민하기 시작한다. 가령 음식을 섭취한 후 용변을 보게 될 경우 금으로 만든 용기에 담아 무게를 재는 행위들이 이상하다라고 느끼는 경우 등을 말한다. 이전에 미처 느끼지 못한 이질감이 옥타비안의 내부에 작은 균열을 만들었고, 오랜 교육의 결과로써 관찰과 물음이 지속되었기에 더 많은 파장을 가져왔다.

몸이 검다는 것 외에, 한 나라의 공주의 아들이었기에 왕자처럼 길러진 옥타비안은 기트니씨 및 석학협회의 ‘젊은친구’들처럼 귀족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성장한다. 다양한 학문, 예술, 문화를 배울 기회는 어디에든 있었으며 집안의 다른 검은 노예와는 달리 우월한 지위를 타고난 듯 보였다. 이때가 18세기 미국의 독립전쟁의 발발 직전의 일이기에 사뭇 색다른 느낌을 받은 이유였다. 20세기는 되어야 흑인의 인권이 공론화 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옥타비안의 이러한 지위와 대우에 대해 사뭇 의아한 것이었다.

아무튼, 이러한 성장기의 옥타비안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비밀의 방의 문을 열게 되고 자신의 성장이유를 알아차리고 만다. 실험대상으로서의 검은 아이 옥타비안. 엄마의 뱃속에서 아메리카에 도착한 이후부터가 실험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흑인은 백인처럼 사유하고 교육받음으로 인해 달라질 수 있는가?하는 의문으로 시작된 실험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변화를 맞는다. 샤프씨의 등장과 함께. 조금 더 인종차별주의적인 샤프씨의 등장은 그동안의 옥타비안의 성과는 무용지물로 취급받는다. 인종적으로 반항적이고 저항적이며 금새 교육의 효과를 잊기 만할 뿐인 흑인을 위해 과도한 지출을 늘리고 있는 석합협회의 연구에 종지부를 찍고 마는 것이다. 이후 실험은 대개 드러나지 않은 혹은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하도록 하는 실험의 방법만을 고수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독립전쟁이 발발한다. 자유를 위한 대의를 위해 총을 겨누는 식민지 군은 자신을 대신해 자신의 노예를 전쟁터에 보낸다. 자유를 위해 싸워야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자유를 열망하는 노예를 전쟁터에 보내는 모습이 역설적이다. 영국군은 이러한 식민지군에 맞서 노예들의 자유를 보장해줄 것을 약속하며 노예반란을 부추긴다. 결국 식민지의 대부분의 주인은 영국군의 총과 노예들의 반란을 막고 단속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흑인들에게는 더 많은 억압과 자유를 위한 대의를 싸운 결과로 적절하지 않은 대가만이 남을 뿐이었다. 석학협회에서 벌인 ‘천연두 파티’이후 어머니를 잃고(이마저도 석학협회의 적절하지 않은 실험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부검을 목격하고는 도망자가 된 옥타비안은 결국 석학협회에 잡혀오고 만다. 탈출 이후의 옥타비안의 여정은 2권에서 만나봐야 할 것 같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유를 지지하는 이들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그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아프리카 흑인 무역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모순적이지만 진실이다. 그래서 더욱 미국의 이중적인 잣대에 많은 질타가 있는 것 일지도 모르지만. 바야흐로 세월은 흘러 흑인대통령이 선출되기에 이르렀다. 세월은 흘러갔지만 여전히 미국의 이중적 잣대는 유효한 것 같다. 평화를 외치며 자국의 군대를 세계 최대 혹은 최강으로 유지하는 모습이나 자유무역을 외치면서도 보호무역을 일삼는 일이나...일반화하기는 무리가 있는 이야기이겠지만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느꼈던 비인간적이면서도 이성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이 오늘에도 이어지는 이러한 모습들을 떠올리게 한다. 옥타비안의 반역은 자유를 얻고자 하는 모든 이들의 바람과 같을 뿐이었다. 오늘 날 미국이라는 나라에 세계 여러 나라가 원하고 있는 모습도 옥타비안의 바람과 어느 면에서는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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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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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아일랜드’라는 영화를 보고 곧 현실이 될 것이라는 예감에 좋지 않은 기분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산 사람을 사거나 납치해 신체의 일부를 갈취하는 사건들이 신문지상에 오를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생각한 대안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에 기관들을 배양하는 것을 고려되기도 했었는데, 이 역시 윤리적인 측면에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었다. 인간이란 본래 생명을 유지하고픈 본능이 있는 것이겠지만, 타인과 다른 생명체에 대한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측면에서 강하게 제지되어 왔었다. 허나 최근 몇 년 기술의 진보로 인해 조금 다른 인식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는 죽어가는 사람을 그대로 방치해 죽음에 이르는 것이 또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쟁점이 반영된 것이리라 여겨진다.

오랜 논쟁의 끝이 보이지 않듯 선뜻 선택은 쉽지 않다. 이 책을 읽다보면 결국 이도저도 선택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비양심적인 주체에 의한 행위란다면 분노의 불을 지필 수 있겠지만, 이 글의 내용은 그렇지 않다. 내 자식이 죽어가고 있다. 타인의 골수 혹은 줄기세포 등이 일치하지 않을 때 과연 부모로서 나의 선택은 어떠할까? 아직 부모가 되어보지는 못했지만, 어렴풋이 그 고뇌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또 다른 아이의 입장이다.

소설에서 안나는 언니 케이티의 죽음을 늦추는 혹은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유일한 탈출구다. 태어날 때부터 목적이 있어 태어난 안나는 이후로 수많은 의료행위를 통해 언니에게 자신의 혈액과 골수 등을 준다. 자발적 동의는 아니었지만,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모든 것이 케이티 위주로 돌아가는 생활, 안나의 일상은 케이티의 일상과 닮았다. 건강한 안나는 아픈 케이티와 다를 것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열 세 살의 안나는 신장이식을 남겨두고 변호사를 찾는다. 변호사를 통해 자신의 몸을 사용할 권리를 되찾고자 부모를 고소하게 되면서 가족의 울타리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안나의 입장이 되어보라. 과연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또한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부모가 오로지 케이티만을 위한다면 쉽게 적대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안나 또한 그들의 소중한 딸이 아니던가. 안나가 그만두기를 바란다는 것은, 곧 케이티의 죽음이 찾아온다는 뜻이었다. 두 딸의 엄마 사라는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상황을 악화시키려는 안나의 뜻을 꺾고자 하지만, 용이치 않았다. 안나의 심정도 복잡하기는 매한가지다. 자신의 선택이 곧 언니의 죽음일 것이라는 죄책감. 곧 나를 잃거나, 언니를 잃거나 둘 중 하나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상황은 그 누구에게도 쉬운 선택이 아닐 것이다.

결국 법정공방이 오고가고 그 대안을 찾기 위해 등장인물들의 노력이 있지만, 그들 모두 이 사건의 해결이 쉽지 않다라는 것을 안다. 가족이기 때문에 고통을 동반하고자 하는 노력은 어느 경우 모든 것을 제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이 반토막 나는 것일지라도. 혹여 자신을 위한 선택이 가능하더라도 스스로의 죄책감을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소설은 가족의 분열 내지는 파국으로 몰아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전의 존재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던 안나라는 한 인간에 대해 진솔한 관심과 생각들이 싹트게 되었다. 이는 저자의 이야기 전개가 사뭇 힘이 있는 이유가 되리라 생각한다.

우여곡절 끝에 법정은 안나의 편을 들어주었다. 이 모든 것이 케이티가 원해왔던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케이티의 입장 또한 안나와 같지 않았을까. 나를 위해 그것도 희망이 극히 적은 일을 위해 동기를 희생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의 치료와 입원은 결국 본인을 지치게 하여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에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결국 가족 내의 구성원 모두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이었음을 알게 된다. 누구도 이들을 비난하거나 몰아세울 수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선택이 쉽지 않듯 결론을 내기 어려운 탓인지, 갑작스러운 안나의 사고는 너무나도 급작스럽다. 결국 뇌사 상태의 안나의 장기를 케이티에게 이식해 건강을 되찾는다는 결론은 조금 허무하기 까지 하다. 허나 가능성 있는 소재와 갈등을 미묘하게 살려나가는 이야기 전개 그리고 세밀한 개인의 고뇌를 담은 이 책은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사회적 논의와 공감이 필요한 부분이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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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2 - 하 -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 밀레니엄 (아르테)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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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밀레니엄 1부를 만나게 된 이후로 잠시도 이 책의 출판에 대해 무관심했던 적이 없을 만큼. 더욱이 기대가 되었던 것은 1부에서 알쏭달쏭하리만큼 비밀에 묻혀있던 리스베트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기다려온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던가? 이 책은 또 다른 기다림을 주기에(3부도 곧 출간된다고 한다) 만족스럽지만, 그 이후의 기다림은 있을 수 없기에 안타깝게 만들기도 하는 책이다. 스티그 라르손의 예정대로라면 10부작에 이르겠지만, 안타깝게도 급작스러운 이별로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그 사실이 못내 아쉽고 슬프기만 하다.

1부와 공통점이 있다면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자신의 위치에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만, 1부와는 다른 사건의 해결이라는 점에서 2부는 독립적이다. 때로 시리즈를 순서에 연연하여 읽는 독자가 있다 하더라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중간 중간 이전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친절한 작가의 도움으로 어려움은 없을 듯 보이기 때문이다. 리스베트를 다시 만나볼 수 있다는 즐거움을 갖고자 한다면 1부도 꼭 읽어보아야 할 테지만.

리스베트는 돌연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거리두기를 하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 버리고 만다. 사랑싸움이나 이런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경험의 부족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녀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배신과 거짓이었다. 이상한 외모, 서툰 의사전달 등 그녀에게 보통아이와 같은 면모가 없다는 것은 그녀를 마음대로 평가하고 조종해도 된다는 암묵적인 동의를 얻는 것과도 같았다. 스웨덴을 최고의 복지시설이 갖추어진 나라라는 평가에 힘을 실어주는 사회복지기관, 법원, 정신병원, 위탁가정, 후견인 제도 등은 이 소설에서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알맞을 정도이다. 물론 소설이니 실상은 다르겠지만. 아무튼 그동안 끊임없는 배신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과 동떨어진 껍질 안으로 숨어버리고 마는 리스베트는 미카엘에 대한 이상한 감정을 감지하고는 이전의 방식대로 차단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리스베트의 귀국과 동시에, 미카엘에게는 『밀레니엄』의 방향과 의도에 맞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이 손을 내민다. 미카엘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정의를 위해 불의에 맞선 용감한 인물인 다그 스벤손이다. 주요 주제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매매 관련이었는데, 그녀들을 이용한 포주 및 이용자(?)들에 대한 폭로가 그 목적이다. 성매매 금지 법안이 가장 강력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법망을 피해 더욱 질이 낮은 범죄가 행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책을 집필하던 중 돌연 그의 아내 미아와 함께 살해되고 만다.

현장에 남아있는 것은 리스베트의 지문이 묻어있는 닐스비우르만 변호사의 총이었다. 닐스 비우르만도 비슷한 시각 살해되었다는 점이 리스베트를 용의자로 지목하게 되는 이유다. 경찰과 밀레니엄, 리스베트가 잠시 일했던 밀턴 시큐리티사는 제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 것이 중요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심적으로는 리스베트가 아니라 생각하지만, 사건의 정황을 볼 때 그녀가 아니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소설은 치밀한 전개를 보인다.

세계최고의 해커 리스베트는 자신의 집에서 경찰 및 밀레니엄의 미카엘의 컴퓨터를 넘나들며 수사를 하게 되면서 범인의 윤곽이 손에 잡히기 시작한다. 다그 부부, 닐스 비우르만 사건은 연개성이 부족해보이지만 모두 ‘살라’를 알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살라’는 성매매 관련 기사에서 종종 이름을 보이기도 하며 사람들이 밝히기를 꺼려한다. 군나르 비에르크는 비밀경찰 ‘사포’에 몸담았던 자로 닐스 비우르만과 ‘살라’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고 리스베트가 용의자로 지목된 이후로 연일 까발려진 기사에서 삭제된 해에 관한 1991년 보고서를 작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인물에 대한 탐색 도중 발견된 것은 그동안 은밀한 요인에 의해 리스베트의 인생이 엉망진창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이 과정을 이곳에 모두 담을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미리 알게 되면 소설 읽기의 재미가 반감될 것이라는 기우도 있기에.

‘살라’를 찾는 과정이 책의 주요 골격이라고 해서 나머지가 모두 그에 대한 배경인 것은 아니다. 추리 소설을 읽다보면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내용은 그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소설의 특징은 추리의 과정 모두가 하나의 추리라고 할 만큼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전개 과정은 어느 새 숨을 고르게 할 만큼 흡인력이 뛰어나다. 물론 갑작스러운 전개가 아니라 여겨질 만큼 사건의 전 후 이 보다 훨씬 이전의 모든 내용에 복선이 깔려있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모든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읽는 실수를 했다면 처음부터 다시 읽는 수고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묘미는 곳곳에 있는 퍼즐 조각을 맞추듯 읽는 재미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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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의 사람들 - 프랑스에 간 카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강혜경 옮김 / 시공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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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는 나도 카티처럼 파리가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워낙 많은 영화와 소설 등으로 많은 소개를 받은 터라 생소하지는 않겠지만, 파리를 여행한다면 카티처럼 순간순간 행복에 달떠오르리라. 프랑스에 간 카티의 이야기다. 그것도 생애 가장 소중한 경험인 결혼을 하기 위해 파리로 가게 된 것이다! 아름다운 파리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니, 카티의 즐거움은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명랑하고 유쾌하며 놀람에 인색하지 않은 카티는 사랑하는 렌나르트, 에바와 함께 파리를 향해 떠난다. 그리 부유하지 않은 이들이 찾은 숙소는 라탱구역의 학생들을 위한 저렴한 곳! 천장이 발자국 소리로 시끄럽고 그리 아늑한 공간은 아니지만, 이곳에 묵었던 퀴리 부인과 로베스피에르라는 인물을 상상하는 것은 낭만적인 곳으로 변모시킨다. 결혼식은 무척 간소하게 치러져 오히려 사랑의 충만함을 느끼게 하는 역설을 낳고 만다. 오직 둘만을 위한 결혼식이 되었을 테니까.

파리에 묵으며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상상 속에 있던 일들을 경험하는 이야기는 카티처럼 열정적이다. 다소 산만한 듯한 여행기가 되었지만 달뜬 카티의 기분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다고 할까. 오래된 도시 파리를 걷고 활보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파리를 걷는 다는 것은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리라.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떠올리며 눈물짓는 카티의 모습이 흥미롭다. 또한 현대의 모든 유행을 일으키는 근원지에 선 기분일 것이다. 다양한 패션의 거리를 지나칠 수는 없는 일. 이전에 그녀가 책으로 오감을 대리만족을 했듯이 상상 속 파리를 만난다.

파리는 여행지였기 때문에 곧 남겨두고 떠나야 했다. 떠날 때의 그 느낌이란, 훗날 이곳을 다시는 오지 못하리라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그때의 느낌은 여행을 떠나본 자는 알 것이다. 곳곳에서 느껴지는 아쉬움은 곧 돌아갈 곳에 대한 만족감이 되어 돌아온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현실에서의 삶이었는데, 여전히 상상력이 풍부한 카티와 현실감각이 뛰어난 렌나르트 간의 사이를 불안하게 하기도 한다. 사랑싸움이니 이런 것 보다는 결혼 한 이들이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한 결혼 후 겪어야 할 난관이라고나 할까. 물론 사랑으로 극복하게 되는 이상적 부부의 모습으로 돌아온 카티와 렌나르트는 곧 귀여운 아기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한 삶을 이어나간다.

이 책은 여행기라고도 볼 수 없고, 소설로도 적당하지 않은 단순한 구도를 가지기에 언뜻보면 엉성한 느낌이다.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는데, 기쁨을 느끼고 위안을 주는 책임에는 분명했다. 읽는 동안에 카티의 행복이 전해져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는 책이었으니 말이다.

『세상에는 동화도 있고 노래도 있고 책도 있어. 꽃은 쓸모 있지는 않지만 아름답단다. 그게 꽃이 존재하는 이유지. 정말 아름답고 황홀하지 않니? 그리고 숲과 호수와 산과 강과 도시들이 온 세상에 고루 퍼져 있단다. 삶은 선물이야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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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머리 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4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김양미 옮김, 김지혁 그림 / 인디고(글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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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맑고 명랑한 소녀 빨간머리 앤을 다시 만났다. 출간된 지 100년, 즉 한 세기가 되었다는데, 앤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는 듯하다. 서점가엔 앤 관련 책이 즐비해 고르기 어려울 정도이니 말이다.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초록지붕의 앤은 상상력의 부재로 인해 메마른 요즈음 누구보다 다시 만나고픈 주인공이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금 내 마음의 마른 대지가 푸른 이슬을 머금은 듯 촉촉해진 느낌이다. 아...앤 얼마나 그리운 소녀였던지...

어릴 적 TV만화로 만났던 앤. 만화 속 앤의 모습이 일러스트의 앤과 일치하지 않지만, 여전히 떠오른 건 옛 모습이다. 그 시절 나레이션을 맡은 성우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차분한 음성으로 앤의 모습을 읽어주셨던 기억이 있는데, 꿈결처럼 한가로운 에이번리의 풍경과 매우 잘 어울렸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그분의 음성으로 다시 읽는 느낌이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충만한 무언가가 가득해 진다.

줄거리야 너무도 유명해 굳이 늘어놓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앤의 이야기이다. 고아 소녀로 자라온 나날에서도 상상력의 힘으로 의지를 모았던 앤. 어느 날 오해로 커스버트씨네에 맡겨진 앤은 천성적인 재치와 명랑함으로 계속 머물 수 있게 된다. 이후 마을에서 황당한 사건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앤만의 매력을 인정받는다. 명석한 머리와 사려 깊은 마음씨, 제 또래 여느 소녀처럼 달콤함을 풍기는 분위기, 누구보다 멀리 그리고 깊이 생각하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엉뚱한 상상력을 소유한 앤은 자라면서 더욱도 매력적이고 예쁜 아가씨로 성장한다.

소소한 시골마을에서 하루하루 한 순간도 기쁨을 느끼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앤의 이야기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 속 어딘가에 행복의 불씨를 당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입술이 벌어지며 미소를 짓게 되는 그런 이야기라고나 할까. 앤이 들려주는 에이번리 마을의 풍경을 머릿속에 상상하노라면 꽃과 나무의 내음이 맡아지는 착각이 절로 들 정도가 된다. 앤의 상상을 듣고 마릴라 아주머니와 매슈 아저씨가 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처럼, 앤을 사랑하게 되어버린다고나 할까.

아이들과 어른들 모든 마을 사람들의 심성은 모두 제각각이지만, 인정이 넘친다. 마릴라 아주머니의 앤 교육과 양육에 관한 고민들은 따뜻함을 심어주고 선생님과 목사님 등의 인물들의 말에서 사려 깊음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의 고민과 소녀들의 우정 등의 주제도 놓칠 수 없는 이야기다. 앤이 자랄수록 상상력은 그녀를 반짝이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앤의 이야기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리라.

길버트와의 관계는 마지막 부분에 와서야 화해를 하게 되어 무척이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앤의 교사로서의 생활은 어떠할지. 여전히 반짝이는 상상력을 더욱더 빛나게 할 것인지...기대가 가득해진다. 길버트와는 결혼을 하게 된다는데, 그 뒷이야기가 몹시 궁금하다. 곧 앤의 이야기를 전집으로 만나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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