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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2 - 하 -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 ㅣ 밀레니엄 (아르테)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밀레니엄 1부를 만나게 된 이후로 잠시도 이 책의 출판에 대해 무관심했던 적이 없을 만큼. 더욱이 기대가 되었던 것은 1부에서 알쏭달쏭하리만큼 비밀에 묻혀있던 리스베트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기다려온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던가? 이 책은 또 다른 기다림을 주기에(3부도 곧 출간된다고 한다) 만족스럽지만, 그 이후의 기다림은 있을 수 없기에 안타깝게 만들기도 하는 책이다. 스티그 라르손의 예정대로라면 10부작에 이르겠지만, 안타깝게도 급작스러운 이별로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그 사실이 못내 아쉽고 슬프기만 하다.
1부와 공통점이 있다면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자신의 위치에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만, 1부와는 다른 사건의 해결이라는 점에서 2부는 독립적이다. 때로 시리즈를 순서에 연연하여 읽는 독자가 있다 하더라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중간 중간 이전의 내용을 설명해주는 친절한 작가의 도움으로 어려움은 없을 듯 보이기 때문이다. 리스베트를 다시 만나볼 수 있다는 즐거움을 갖고자 한다면 1부도 꼭 읽어보아야 할 테지만.
리스베트는 돌연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와 거리두기를 하기 위해 외국으로 떠나 버리고 만다. 사랑싸움이나 이런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경험의 부족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녀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배신과 거짓이었다. 이상한 외모, 서툰 의사전달 등 그녀에게 보통아이와 같은 면모가 없다는 것은 그녀를 마음대로 평가하고 조종해도 된다는 암묵적인 동의를 얻는 것과도 같았다. 스웨덴을 최고의 복지시설이 갖추어진 나라라는 평가에 힘을 실어주는 사회복지기관, 법원, 정신병원, 위탁가정, 후견인 제도 등은 이 소설에서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알맞을 정도이다. 물론 소설이니 실상은 다르겠지만. 아무튼 그동안 끊임없는 배신으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세상과 동떨어진 껍질 안으로 숨어버리고 마는 리스베트는 미카엘에 대한 이상한 감정을 감지하고는 이전의 방식대로 차단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리스베트의 귀국과 동시에, 미카엘에게는 『밀레니엄』의 방향과 의도에 맞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이 손을 내민다. 미카엘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정의를 위해 불의에 맞선 용감한 인물인 다그 스벤손이다. 주요 주제는 미성년자에 대한 성매매 관련이었는데, 그녀들을 이용한 포주 및 이용자(?)들에 대한 폭로가 그 목적이다. 성매매 금지 법안이 가장 강력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법망을 피해 더욱 질이 낮은 범죄가 행해지고 있었다. 어느 날 책을 집필하던 중 돌연 그의 아내 미아와 함께 살해되고 만다.
현장에 남아있는 것은 리스베트의 지문이 묻어있는 닐스비우르만 변호사의 총이었다. 닐스 비우르만도 비슷한 시각 살해되었다는 점이 리스베트를 용의자로 지목하게 되는 이유다. 경찰과 밀레니엄, 리스베트가 잠시 일했던 밀턴 시큐리티사는 제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사건을 조사하게 되는 것이 중요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심적으로는 리스베트가 아니라 생각하지만, 사건의 정황을 볼 때 그녀가 아니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소설은 치밀한 전개를 보인다.
세계최고의 해커 리스베트는 자신의 집에서 경찰 및 밀레니엄의 미카엘의 컴퓨터를 넘나들며 수사를 하게 되면서 범인의 윤곽이 손에 잡히기 시작한다. 다그 부부, 닐스 비우르만 사건은 연개성이 부족해보이지만 모두 ‘살라’를 알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살라’는 성매매 관련 기사에서 종종 이름을 보이기도 하며 사람들이 밝히기를 꺼려한다. 군나르 비에르크는 비밀경찰 ‘사포’에 몸담았던 자로 닐스 비우르만과 ‘살라’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고 리스베트가 용의자로 지목된 이후로 연일 까발려진 기사에서 삭제된 해에 관한 1991년 보고서를 작성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인물에 대한 탐색 도중 발견된 것은 그동안 은밀한 요인에 의해 리스베트의 인생이 엉망진창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는데, 이 과정을 이곳에 모두 담을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미리 알게 되면 소설 읽기의 재미가 반감될 것이라는 기우도 있기에.
‘살라’를 찾는 과정이 책의 주요 골격이라고 해서 나머지가 모두 그에 대한 배경인 것은 아니다. 추리 소설을 읽다보면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내용은 그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소설의 특징은 추리의 과정 모두가 하나의 추리라고 할 만큼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전개 과정은 어느 새 숨을 고르게 할 만큼 흡인력이 뛰어나다. 물론 갑작스러운 전개가 아니라 여겨질 만큼 사건의 전 후 이 보다 훨씬 이전의 모든 내용에 복선이 깔려있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모든 내용을 빠뜨리지 않고 읽는 실수를 했다면 처음부터 다시 읽는 수고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묘미는 곳곳에 있는 퍼즐 조각을 맞추듯 읽는 재미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