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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추정 1 ㅣ 밀리언셀러 클럽 60
스콧 터로 지음, 한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평점 :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황적으로 볼 때 완벽한 범인이 있다고 보여 지는 경우 그를 무죄로 볼 수 있는가. 혹은 무죄로 간주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간혹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자주 마주할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나의 소지품이 사라졌을 때 정황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라도 의심의 눈초리는 누구든 범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생각들이 계속되다 보면 없는 증거들이 드러나게 되어 확신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고는 한다. 그러다 진범이 드러날 경우 상실감과 자책감이라는 이중의 고통에 휘말리지 않던가 말이다.
여기 명백한 정황적 증거가 확연한 피의자가 있다. 검찰청 수석검사로써 20여 년 동안 검찰총장의 총애를 받으며 유능하게 어려운 일들을 해내고는 했던 인물 러스티가 바로 주인공이다. 오랜 결혼 생활을 했고 만족스럽다 할 수는 없지만 가정에 충실한 편이었고, 아들을 사랑한 그는 가족들과의 삶에 안주했다. 다소 과민한 부인이었지만, 사랑으로 만나 결합한 이전의 기억을 잊지는 않았다. 사회에서는 인정받는 수석검사로써 자신의 일에서도 만족하고 있었고 욕심이 나는 일도 있었지만, 의리를 버리지 않는 도의적인 면에서 고집스러움도 갖춘 이였다.
검찰총장 선거로 열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여검사가 살해당하고 일상이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선거운동으로 바쁜 와중이었지만 사비치는 여검사 살해사건을 담당한다. 이전의 사적인 관계로 인해 선뜻 받아들인 사건이었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의지도 명백했다. 사건 수사 과정에서 B파일이라는 의문의 사건이 연계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한 사비치는 여러 방문으로 수사를 확대한다. 고위층의 뇌물 수수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여검사의 살해가 연관 있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수사는 한층 고조되었고, 사비치는 나름의 판단으로 수사를 계속해 나아간다.
그러던 도중 옛 동료이면서 새로운 검찰총장이 된 니코와 그의 직속 부하검사인 몰토에 의해 기소 당한다. 여검사를 살해한 피의자로써 살인을 저지르고 사건을 직접 맡으면서 범행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혐의였다. 나타난 증거물들은 당연히 사비치를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었다. 여검사가 살해된 날 거실에 있던 유리컵의 지문, 성관계 이후 살해되었을 것이라는 판단에 힘을 실어준 그의 정자, 그날 밤의 통화기록과 이전의 사적인 관계 등등. 명백한 범인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들 또한 누구의 말이 거짓인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양방 중 누가 거짓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까. 피의자를 무죄로 추정하고 재판에 임하라는 판사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명백한 범인으로의 증거가 이렇듯 충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사비치의 변호인 스턴의 변론이 우수했고,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음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수상쩍은 구석이 없지 않다. 사비치의 변론을 맡고 있는 스턴조차도 러스티를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외에도 전 검찰총장 레이먼드, 재판을 맡은 리틀 판사의 행적도 의심을 자아내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소설 속 구성원들의 치밀한 심리 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아마도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소설 후반부에 가서는 도대체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사실은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게 될 정도이니 말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증거가 있는 사건일지라도 말이다. 결국 범인은 의외의 곳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곳에 있었다. 이 또한 이소설의 묘미라 보여 진다. 범인의 발견과 이를 받아들이는 이들의 모습이 상당히 이색적이지만 인간적 동의를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여느 법정 소설처럼 긴박한 긴장감을 주는 소설은 아니지만, 개인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에는 이만한 책도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