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돌의 기억들
현고진 지음 / 포럼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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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여기서 아름답다는 말은 원초적인 의미에서의 자연이 그렇다는 말이다.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이 글을 쓴 이의 의도는 다소 안타깝다. 지금의 시대를 지나치게 절망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5만여 년 전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는 말이 씁쓸함을 갖게 한다. 물론 환경문제로 인한 인류의 절멸이라는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인류의 시간을 지나치게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랑의 발견을 해결의 근원에 두려고 하는 점이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사랑이 없는 사회란 절망을 뿌리내리기 가장 알맞은 장소이므로.

5만 여 년 전, 한반도와 중국이 하나의 대륙을 이루고 있는 시기에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에 기후의 변화가 있었고 살 곳을 찾아 이동하는 일이 벌어지겠지만 이 시기에는 그곳이 시작이었다. 불과 도구를 사용했다는 그들은 어떠한 생활을 하였을까하는 궁금증은 많은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무척이나 다르다고 인식되는 그들이지만 생각해보면 현 인류의 조상인 그들의 사고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당시는 작은 무리로 이동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수렵과 채집 생활은 항상 식량의 부족이라는 문제를 직면하였으므로 규모가 지나치게 클 경우 무리의 안전이 보장될 수 없었다. 대체로 무리는 혈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책의 물보라, 하늘바람, 푸른지네, 구름호수 등도 그러했다. 무리를 이끄는 것은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었다. 채집생활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여성들의 지위가 남성들에 비해 낮지 않았다. 평등적인 관계맺음으로 무리를 이끌어갈 가능성이 높았던 것이다.

이야기에서는 두 무리의 충돌을 엿볼 수 있는데, 식량이 그 원인이었다. 항상 이것은 무리의 고민이었고 늘어가는 인구를 부양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싸움은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기적인 이유 만으로의 싸움은 훨씬 더 이후의 인류역사를 장식하였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싸움은 많은 피해를 입혔다.

결국 그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는 강한 자들이었다. 새로운 도구를 이용하고 강한 무기를 선택하는 자들이 지배할 수 있었다. 때로 이동하는 무리들이 유입되기도 하였다. 이 모든 일들이 자연처럼 당연한 일이었던 시기였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현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순응의 태도다. 이기적인 심성을 지닌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보편적인 기준으로 볼 때 이러한 태도야 말로 공동체를 이끌어가게 되는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한다. 현 문제 해결의 근원을 불의 발견보다 위대한 사랑의 발견이라는 저자의 의견이 희망적인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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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추정 1 밀리언셀러 클럽 60
스콧 터로 지음, 한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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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황적으로 볼 때 완벽한 범인이 있다고 보여 지는 경우 그를 무죄로 볼 수 있는가. 혹은 무죄로 간주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간혹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자주 마주할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나의 소지품이 사라졌을 때 정황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라도 의심의 눈초리는 누구든 범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생각들이 계속되다 보면 없는 증거들이 드러나게 되어 확신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고는 한다. 그러다 진범이 드러날 경우 상실감과 자책감이라는 이중의 고통에 휘말리지 않던가 말이다.


여기 명백한 정황적 증거가 확연한 피의자가 있다. 검찰청 수석검사로써 20여 년 동안 검찰총장의 총애를 받으며 유능하게 어려운 일들을 해내고는 했던 인물 러스티가 바로 주인공이다. 오랜 결혼 생활을 했고 만족스럽다 할 수는 없지만 가정에 충실한 편이었고, 아들을 사랑한 그는 가족들과의 삶에 안주했다. 다소 과민한 부인이었지만, 사랑으로 만나 결합한 이전의 기억을 잊지는 않았다. 사회에서는 인정받는 수석검사로써 자신의 일에서도 만족하고 있었고 욕심이 나는 일도 있었지만, 의리를 버리지 않는 도의적인 면에서 고집스러움도 갖춘 이였다.

검찰총장 선거로 열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여검사가 살해당하고 일상이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선거운동으로 바쁜 와중이었지만 사비치는 여검사 살해사건을 담당한다. 이전의 사적인 관계로 인해 선뜻 받아들인 사건이었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의지도 명백했다. 사건 수사 과정에서 B파일이라는 의문의 사건이 연계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한 사비치는 여러 방문으로 수사를 확대한다. 고위층의 뇌물 수수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여검사의 살해가 연관 있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수사는 한층 고조되었고, 사비치는 나름의 판단으로 수사를 계속해 나아간다.

그러던 도중 옛 동료이면서 새로운 검찰총장이 된 니코와 그의 직속 부하검사인 몰토에 의해 기소 당한다. 여검사를 살해한 피의자로써 살인을 저지르고 사건을 직접 맡으면서 범행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혐의였다. 나타난 증거물들은 당연히 사비치를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었다. 여검사가 살해된 날 거실에 있던 유리컵의 지문, 성관계 이후 살해되었을 것이라는 판단에 힘을 실어준 그의 정자, 그날 밤의 통화기록과 이전의 사적인 관계 등등. 명백한 범인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들 또한 누구의 말이 거짓인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양방 중 누가 거짓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까. 피의자를 무죄로 추정하고 재판에 임하라는 판사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명백한 범인으로의 증거가 이렇듯 충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사비치의 변호인 스턴의 변론이 우수했고,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음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수상쩍은 구석이 없지 않다. 사비치의 변론을 맡고 있는 스턴조차도 러스티를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외에도 전 검찰총장 레이먼드, 재판을 맡은 리틀 판사의 행적도 의심을 자아내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소설 속 구성원들의 치밀한 심리 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아마도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소설 후반부에 가서는 도대체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사실은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게 될 정도이니 말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증거가 있는 사건일지라도 말이다. 결국 범인은 의외의 곳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곳에 있었다. 이 또한 이소설의 묘미라 보여 진다. 범인의 발견과 이를 받아들이는 이들의 모습이 상당히 이색적이지만 인간적 동의를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여느 법정 소설처럼 긴박한 긴장감을 주는 소설은 아니지만, 개인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에는 이만한 책도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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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추정 2 밀리언셀러 클럽 61
스콧 터로 지음, 한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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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황적으로 볼 때 완벽한 범인이 있다고 보여 지는 경우 그를 무죄로 볼 수 있는가. 혹은 무죄로 간주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간혹 현실에서 상대적으로 자주 마주할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라. 나의 소지품이 사라졌을 때 정황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라도 의심의 눈초리는 누구든 범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런 생각들이 계속되다 보면 없는 증거들이 드러나게 되어 확신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하고는 한다. 그러다 진범이 드러날 경우 상실감과 자책감이라는 이중의 고통에 휘말리지 않던가 말이다.

여기 명백한 정황적 증거가 확연한 피의자가 있다. 검찰청 수석검사로써 20여 년 동안 검찰총장의 총애를 받으며 유능하게 어려운 일들을 해내고는 했던 인물 러스티가 바로 주인공이다. 오랜 결혼 생활을 했고 만족스럽다 할 수는 없지만 가정에 충실한 편이었고, 아들을 사랑한 그는 가족들과의 삶에 안주했다. 다소 과민한 부인이었지만, 사랑으로 만나 결합한 이전의 기억을 잊지는 않았다. 사회에서는 인정받는 수석검사로써 자신의 일에서도 만족하고 있었고 욕심이 나는 일도 있었지만, 의리를 버리지 않는 도의적인 면에서 고집스러움도 갖춘 이였다.

검찰총장 선거로 열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여검사가 살해당하고 일상이 더욱 바빠지기 시작했다. 선거운동으로 바쁜 와중이었지만 사비치는 여검사 살해사건을 담당한다. 이전의 사적인 관계로 인해 선뜻 받아들인 사건이었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의지도 명백했다. 사건 수사 과정에서 B파일이라는 의문의 사건이 연계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한 사비치는 여러 방문으로 수사를 확대한다. 고위층의 뇌물 수수 사건과 이를 조사하던 여검사의 살해가 연관 있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수사는 한층 고조되었고, 사비치는 나름의 판단으로 수사를 계속해 나아간다.

그러던 도중 옛 동료이면서 새로운 검찰총장이 된 니코와 그의 직속 부하검사인 몰토에 의해 기소 당한다. 여검사를 살해한 피의자로써 살인을 저지르고 사건을 직접 맡으면서 범행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혐의였다. 나타난 증거물들은 당연히 사비치를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었다. 여검사가 살해된 날 거실에 있던 유리컵의 지문, 성관계 이후 살해되었을 것이라는 판단에 힘을 실어준 그의 정자, 그날 밤의 통화기록과 이전의 사적인 관계 등등. 명백한 범인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들 또한 누구의 말이 거짓인지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양방 중 누가 거짓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까. 피의자를 무죄로 추정하고 재판에 임하라는 판사의 말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명백한 범인으로의 증거가 이렇듯 충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사비치의 변호인 스턴의 변론이 우수했고,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였음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수상쩍은 구석이 없지 않다. 사비치의 변론을 맡고 있는 스턴조차도 러스티를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외에도 전 검찰총장 레이먼드, 재판을 맡은 리틀 판사의 행적도 의심을 자아내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소설 속 구성원들의 치밀한 심리 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아마도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다. 소설 후반부에 가서는 도대체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사실은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게 될 정도이니 말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한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증거가 있는 사건일지라도 말이다. 결국 범인은 의외의 곳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곳에 있었다. 이 또한 이소설의 묘미라 보여 진다. 범인의 발견과 이를 받아들이는 이들의 모습이 상당히 이색적이지만 인간적 동의를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여느 법정 소설처럼 긴박한 긴장감을 주는 소설은 아니지만, 개인들의 심리를 표현하는 데에는 이만한 책도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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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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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새벽 이 책을 읽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놀라고 말았다. 퉁퉁 부은 눈이 시야를 가릴 정도가 된 것이다. 어찌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책의 내용도 눈물을 쏙 빼고야 말지만, 소설 속 그들의 엄마를 떠올리며, 나의 엄마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어릴 적 기억이 샘처럼 솟아오른다. 그 유년의 기억이 떠오르며 눈물을 한바탕 흘려버리고 말았다. 얼마 만에 소리 내어 우는 것인지, 다른 가족들이 깰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얼마 전에는 고향사진관으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이번에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책이 되었다. 두 분 모두 소중하지만, 딸의 기억으로는 엄마와의 추억이 더 애틋하다. 커 갈수록 살갑게 굴지 못하는 나인지라, 더 많이 울음을 쏟아내었는지도 모른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미뤄두고 말아버리는 진리가 뼈저리게 느껴진다.

모든 것을 자식들에게 주었지만, 자식 사랑은 만고의 진리처럼 자식들은 생각한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그저 그곳에서 나를 위해 살아가는 분이겠거니 하는 사이에 엄마는 외롭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여전하건만, 다 자란 자식은 그러한 엄마의 사랑이 버겁다. 아니 자식 된 자리에서 엄마를 걱정한다는 것이 오히려 엄마의 외로움을 부채질 한다. 그게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인 것을 어찌할까. 소설 속 자식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 같아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하겠다. 그들 또한 엄마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이 엄마를 위한 것이었다고도 말할 수 없다.

두통으로 고통 받고 있는 엄마를 왜 저들은 그리 두는가...하는 질책은 엄마를 잃어버리고 서로에게 발톱을 세우는 자식들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내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한다면 어찌할까. 이제는 어느 정도 일상으로 돌아간 다른 형제들을 고운 눈으로 볼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삶은 또 살아질 것이다. 결국 자식에게 모든 것을 털어주고 텅 비어 버린 이 소설의 엄마처럼 내 엄마도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무치게 서럽다.

결국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토록 가슴을 저미는 소설이니 제발 찾게 해달라고 읽는 내내 빌었건만.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와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어쩌면 작가는 경계를 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건지도. 네가 오늘 엄마를 잊고 있는 사이에 엄마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나이가 들어 후회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내 엄마가 내 곁에서 존재하지 않을 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들지만, 그래도 그때가 되어서 후회하지 않도록 엄마와의 시간을 소중히 만들어 가고 싶다. 더 많이 표현하고 귀를 기울이며 엄마의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나는 엄마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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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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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지어졌다. 지은이 김정현님 친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진 이글은 김정현님이 책으로 꼭 담고 싶어 할 만큼 감동적인 실화다. 아버지에 대한 아들과 며느리의 정성이 극진하다. 본인으로써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귀담아 듣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대단한 분이 아닐 수 없다. 읽는 내내 먹먹해지는 마음을 참아내느라 눈이 따가울 정도다. 아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자식의 정을 어찌 이리도 절절히 담아내었는지...

머리 좋고 능력 있던 용준은 군 제대를 앞두고 세상을 향한 열정을 마음껏 펼치리라 마음먹는다. 그러던 도중 들려온 쓰러진 아버지의 소식. 평생 자식들을 위해 사셨고 마음상할 이야기 한 번 건넨 적이 없던 아버지였다. 그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은 용준의 마음에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앞으로의 기대와 열망이 좌절되었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생각은 자신을 책망하며 반드시 아버지가 지켜낸 것을 이어가리라는 생각으로 굳어진다. 그 이후부터 용준의 생활 중심에 아버지가 있었다. 

예식장이 사양길로 접어들 무렵 용준은 아버지가 애착을 가지고 해 오셨던 사진관을 이어받기로 결심한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버지를 지키는 일이요,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고 살아가는 어머니를 지키는 일이라 여겼다. 고향사진관은 그렇게 한 구석을 지키며 이어져 가고 있었다. 고향을 떠난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용준은 친구들에게는 고향과도 같은 존재였다. 무슨 잘못을 했어도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겼어도 돌아가고 싶은 곳. 고향...그곳에 용준이 사진관을 하고 있었다.

용준의 부인 희순은 며느리로써 신혼여행도 포기하고 돌아갈 만큼 효심이 지극한 여인이었다. 불같은 사랑으로 결혼을 약속한 것은 아니었으나, 행복이란 작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는 것이라 믿는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흔들리는 용준을 바로잡아주는 것은 희순이었으며 용준이 용기를 얻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신뢰와 믿음은 오랜 지기처럼 소중한 서로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실까 하룻밤도 외지에 나가 보낸 적이 없었던 나날들이었지만 세월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보내드릴 때가 되었다. 아버지를 보내는 모습이 애잔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간의 그들의 노력과 정성이 가 닿아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평화롭게 보이는 것이었다. 보내는 마음이 어찌 평화롭겠냐만은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버지를 보내고 홀로 남은 어머니를 걱정하는 용준이 갑작스러운 암 선고를 숨기려고 노력하는 부분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남편을 잃어야 하는 부인과 아이들은 어찌할 것인가. 착한 사람은 일찍 데려간다는 그 말이 맞기라도 한 것인가. 친구들에게도 끝내 병을 알리지 않았던 용준은 자신의 삶을 조용히 그렇게 마감한다. 마지막 그의 가는 길에 아이들을 안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 만에 소리 내어 우는 울음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을 떠나는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를 떠나 보내야하는 자식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하는 짐작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 무심했던 부모님의 안부가 걱정이 더 되었고,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다. 용준의 그 마음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잔잔하게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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