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아이들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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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이 있다면 불편함 혹은 부정적인 느낌 등이었을 것이다. 호기심을 이끌기에 충분한 제목이었기에 집어 든 책이었지만, 얇다는 것 그리고 쉬운 문장이라는 점 외에 쉬운 책은 아니었다. 담고 있는 이야기의 무게가 무거워 읽는 내내 혹은 읽은 이후에 많은 고민을 가져다 준 책이 되었다.




거리의 아이들에 대한 책이다. 놀랍게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최빈 국가들이 아닌 영국이 그 배경이다. 사실 놀랍다는 말은 쓰여서는 안 될 지도 모른다. 얼마 전 일간지에서  우리나라의 거리의 청소년을 특집기사로 내보낸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 기사의 일부 내용에서는 이러한 청소년이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있어 심란한 적이 있었다. 가정이 해체되고 있는 것이 현상이듯이 가정의 울타리가 허물어진 이후 아이들의 내몰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더해 노숙인의 문제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노숙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냉정한 시선에 대해 높은 비중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이용해 구걸을 하게하고 착취하는 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나 노숙인들이 구걸을 한 돈으로 술을 먹다가 알콜중독이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쉼터나 안정된 곳에서 결국 못 이기고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간다는 이야기 등은 언제부터인가 그들을 냉정하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된 것이 사실일 것이다. 더러 어떤 이는 그들을 사회에서 제거해야 할 악성종양인 것 마냥 떠들어 대는 것도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을 외면하는 일도 익숙하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이 영국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에 대한 대처 또한 다르지 않다. 직장과 집을 갖고 싶어 하는 그들이지만 점점 더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 그렇다. 왜 그들은 일을 하지 않지?하는 보통사람의 시선으로 생각했던 사람들도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도 그들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한다. 나 또한 그랬으니 말이다. 아울러 거리로 내몰리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대처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함을 인식하게 된다. 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상상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임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의식주 외에도 투명인간처럼 혹은 다른 종족인 것 마냥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은 결국 그들을 그리고 사회를 멍들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이 경계하고 가장 큰 바는 쉘터라는 연쇄살인자의 살인을 통해 노숙인을 사회의 악이라는 생각을 가진 일반인들의 편견일 것이다. 그의 살인이 정당화 될 수 없는 이유는 이 책을 읽어보게 되면 누구나 알 수 있으리라. 결국 그들도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하나의 소중한 인간이었음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그들 스스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는, 그러니까 몇 년 전만 해도 그애 역시 어여쁜 아기였겠지. 엄마 아빠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 애의  부모 역시 한없는 사랑을 베풀었을 테고. 예쁜 이름을 지어주며 우리 아기는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까, 뭐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겠지. 그런데 그 예쁜 아기가 자라 비닐봉다리라고 불리며 남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연명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버렸지만, 신경 쓰는 이 하나 없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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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요 언덕
차인표 지음, 김재홍 그림 / 살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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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어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엿 볼 수 있다. 차인표라는 남자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긍정적인 인상은 있었는데, 이 책을 읽은 이후에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삼았음에도 아프지 않고 따뜻하게 어루만져 준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그 속에서 관계맺음을 어찌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시대적으로는 일제강점기. 일제가 대동아 공영이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총칼로 우리 민족을 억압하던 시기였다. 순박하지만 세태에 어두웠던 우리 민족은 그들의 노예요 먹이가 되었다. 그런 시기였다. 백두산 자락 작은 마을도 벗어날 수 없었다. 순이와 할아버지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던 날들 때로는 백두산 호랑이를 잡겠다며 내로라하는 포수들이 거쳐 가기도 했던 그곳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호랑이가 출몰하여 생긴 마을이기에 호랑이 마을이라 불리운 곳에는 어여쁜 처녀 순이가 사는 곳이기도 했다. 7년 전 용이가 잠시 머물렀지만 어머니를 잡아간 백호를 찾아 원수를 갚기 위해 아버지와 시베리아로 떠났었다. 무한히 솟구치는 복수심을 잠재우기 위한 여정은 아버지를 여의는 그날까지 지속된다. 7년 뒤 용이가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일본군이 순이를 잡아간 후였다. 모든 일본군이 짐승 같았던 것은 아니었다. 마을 사람을 도와 망친 농사를 바로잡아주기도 했던 이웃 같은 이들도 있었다.




허나 모든 이가 같은 뜻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같은 민족이라 해도 제 앞길을 위해 서슴없이 민족을 팔아먹는 이가 있었던 것처럼 때로 일본제국의 하는 짓거리를 한숨 쉬며 통탄한 가즈오 같은 인물도 있었다. 다른 뜻을 가졌다 한들 한낱 힘없는 개인일 뿐 시대가 원하는 대로 민족은 아픔을 겪어야 했으며 유린당할 수밖에 없었다.




순이는 결국 나라를 잃은 여인이 그렇듯 힘든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다. 그런 여인의 모습을 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인터뷰를 보고 난 후 집필의지를 가졌다고 하는 저자의 글이 그러한 생각을 보탠다. 또한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 하는 곳을 모색하고자 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도 용서와 화해가 아닐까. 어머니를 잡아간 백호를 찾고자 유랑했던 용이 부자의 모습이 안쓰러운 이유처럼 무조건적인 증오는 고통스럽다. 이러한 증오를 거둘 수 있는 일은 용서다. 중요한 것은 용서는 우선 사과가 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인이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홀로코스트 이후 독일의 전후세대 또한 많은 고통이 있었지만 무시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노력이 없지 않았다. 그들 깊은 곳을 들여다본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상생하는 길임을 알고 있다. 일본과 싸우고 증오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것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바람도 아닐 것이다. 당연히 받아야할 사과를 받고 그들을 용서하고 마음의 증오를 내려놓는 것이 바람인 것이다. 그러한 마음을 전하고픈 저자의 바람이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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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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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독서클럽 모임에서 북크로싱으로 받은 선물 도서였다. 최근 영화화 된다고 했던 책인지라 기쁜 마음으로 받은 책이었지만, 읽고 있던 책들이 산적해 있던지라 읽기를 미루고만 있던 책이었다. 그래도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미리 읽어야지...했건만 계획이 어긋나 버렸다. 영화를 먼저 보게 되었던 것. 어떤 이는 원작이 좋다 영화가 좋다하지만 언제나 내게는 비교 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둘 모두 내게는 넘치는 기쁨을 주는 그 이상이니 말이다.




그렇게 먼저 영화를 보았다.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풍부한 감정연기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 번에 드러내지 않는 듯 한 비밀스러움, 옛 시대적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여러 요소들 그리고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 등 소위 말해 요즘 찾아보기 힘든 영화라는 느낌이 더욱 특별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바로 책을 펼쳐 들었다. 비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별함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었다. 영화에서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을 찾고 싶은 욕구도 없지 않았다.




내용을 미리 봐서인지 쉬운 내용이 아님에도 쉽게 읽혔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난해했을 것 같다. 그리 쉬운 책은 아니라는 말이다. 더 리더라는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책 읽어주는 한 남자, 그리고 여자가 나온다. 둘은 15살 그리고 36살이라는 터울이 있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연인 사이가 되었다. 여자는 소년을 꼬마라 불렀고 소년은 여자를 한나라 불렀다. 사랑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처럼 되었을 때 한나는 책을 읽어줄 것을 원했고 꼬마는 그렇게 했다. 읽는 책의 종류는 대부분 고전이라 불리우는 것들이었으며 둘 모두 책의 내용에 빠져들었다.




사랑하는 일과 책을 읽는 일은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둘 사이가 오래도록 지속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한나가 떠나 버린 것. 당시 성장을 경험하던 소년의 감정이 갈등이 일어날 때쯤이었으므로 소년은 마음 속 깊이 미안한 감정을 감춰두었었다. 그리고 다시 한나를 보게 되었을 때에는 무엇 때문인지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한나를 보게 된 곳의 영향이 없지 않았다. 그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복잡한 감정을 지니게 되었지만 말이다.




승진의 기회를 버리고 소년을 떠난 한나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직전의 수용소에서 감시원 활동을 하던 중 폭탄이 떨어져 불이 난 교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행위로 재판을 받게 된다. 차장으로 일하던 한나가 수용소 감시원으로 자리를 이동하게 됨으로써 떠나게 된 경위는 얼핏 이해할 수 없다. 뭇 사람들의 시선으로서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필사적으로 숨기려는 다른 피고인들과는 달리 자신의 행위를 순순히 시인하는 행위 또한 그렇다. 이러한 행동은 피고인들에게 불안함을 전해주었고 이들은 합심하여 한나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게 만들었다. 보고서에 나온 내용은 모두 한나의 소행이며 그녀의 책임이었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필적 비교를 위해 필기도구를 한나 앞에 놓았을 때 그녀는 자신의 책임이었음을 시인했다. 이 모두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소년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였다.




한나의 죄가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모든 책임을 떠맡기에는 알고 있는 바가 너무도 많았던 남자는 괴로웠다. 한나가 이 모든 일을 문맹이라는 이유로 인한 수치심 때문이었는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은 지속되었다. 재판의 날들은 계속 되었고 한나는 종신형을 언도받는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을 때 남자는 여자에게 책을 읽는 자신의 목소릴 테이프에 담아 교도소에 보낸다. 여자는 책읽기에 매달렸으며 스스로 읽고 쓰는 일을 터득해 남자에게 편지를 쓰지만 남자는 이에 대한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더 세월이 흘렀을 때 여자가 출옥을 하게 된 날짜가 다가왔고 여자를 보기 위해 남자는 그곳을 방문했다. 허나 어떠한 편지를 보내지 않았듯 남자는 여자에 대한 거리두기를 좁히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나는 출옥을 앞둔 그날 자신의 방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남자가 그 방을 찾았을 때 짐은 꾸려져 있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만으로는 이 책을 이해 할 수 없다. 이 책이 쓰여진 곳이 독일이었다는 점과 나치 시절의 죄를 지은 여자와 사랑에 빠진 소년이 후에 겪었을 여자에 대한 이해와 죄를 부인하지 못했던 점으로 인한 고민이 그것이다. 여자를 이해하지만 수용하고 인정할 수 없었다는 점 그럼으로 인해 거리두기를 멈출 수 없었다는 사실은 전후 세대들의 이전 세대를 받아들이는 그 무엇과도 닮았다. 인간의 내적인 갈등과 고민, 현실과 이상의 괴리로부터 전해오는 고통 등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온갖 감정들을 교차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것밖에 확언 할 수 있는 것은 무엇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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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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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개봉될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원작이다. 이미 영화를 본 이들이 말하기를 원작의 매력이 너무도 강하다는 평이다. 아직 영화를 보기 전이므로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원작의 뛰어남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또한 높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므로. 내가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 혹은 감독이었다면, 성공을 예감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재미가 있고, 줄거리가 탄탄하며 감동이 샘솟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0억 루피라는 거대한 상금의 벽에 다가서기 때문에 긴장감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상금을 거머쥘 수밖에 없는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는 과정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10문제를 맞추게 된 경위는 람 모하마드 토머스라는 주인공의 이름만큼이나 다채롭다.




인도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나라이기에 매력을 지녔다.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로 최근 볼리우드라고 일컫는 인도 영화산업의 단면을 살펴볼 수도 있고, 중산층들의 모습과 너무도 대비되는 인도의 빈민지역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모습도 다양하여 그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기일 수 있다.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인생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모험이라 불리울 만한 인생이었다.




어느 날 퀴즈쇼에 참가한 람 모하마드 토머스는 최고의 영예를 얻는다. 정식 교육을 받은 적도 온전한 가정의 울타리에서 자란 적도 없는 그가 퀴즈쇼에서 최고의 상금을 거머쥐자 퀴즈쇼 제작팀에서는 그를 의심하고는 부정에 의한 무효를 주장하며 경찰과 합심하여 체포한다. 체포된 뒤에는 혹독한 고문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러던 중 한 여인이 등장하고 그를 위해 변호한다. (이 여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은 마지막으로 놀라움을 선사할 뿐이다.) 그리고 그동안 퀴즈쇼에서 제시된 문제를 어떻게 맞힐 수 있었는지에 대한 여인의 물음이 있었고 람 모하마드 토머스는 진실을 들려준다.




독자는 그를 변호하는 여인처럼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첫 번째 문제에서 마지막 문제까지 풀어가는 과정을 듣다보면 운명이라는 것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절로 갖게 한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들마저 이날을 위해 준비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인도의 총체적인 문제를 쏟아내는 듯 한 이야기들 속에서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그것을 관습이나 관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겨내려는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모습에서 안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아마도 큰 감동을 전해주었던 것 같다. 퀴즈쇼는 순차적으로 문제를 내었지만, 이야기는 시간적으로 보았을 때 뒤죽박죽이다. 관련된 사건을 이야기하는 방식이었으므로.




이 방식이 더더욱 마음에 드는 것은 책을 읽는 내내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는 점이었다. 또한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권선징악이라는 명제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는 점도 좋았던 점으로 꼽고 싶다. 그의 사랑을 위해 용기 있게 행동했던 일들이 결국엔 큰 행운으로 다가왔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결말이 있을까. 때로 삶은 힘든 것이지만, 인내하고 순간을 잘 살아내는 것이 결국에는 행운이 아닐까하는 긍정적인 사고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유쾌한 이야기였다. 곧 영화로 퀴즈쇼 아니 자신 인생에서 진정한 승자가 된 람 모하마드 토머스를 다시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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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나 - 한 초보 부부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의 가족 만들기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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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에도 인간과 개에 관한 영화는 있었다. 개의 종류와 주인공은 매번 달랐지만 이야기는 비슷해서 영화를 보지 않고도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영화나 책을 탐하게 되는 이유는 이야기 속에서 언제나 기쁨과 감동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말리 이야기에서도 그러했다. 물론 대부분의 개 이야기에서의 영리함은 찾을 수 없었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이마저도 사랑스러운 개 말리였으니 말이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 장애는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징후가 아닌가보다. 래브라도 리트리버에게도 나타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매우 온순하게 생겼지만, 근육으로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고 지나치리만큼 뿜어내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모습은 그간 이 개를 알았던 정보와 상반되어 놀랍다. 이렇게 큰 개를 기를 수 있는 여건이 되지도 않겠지만, 내가 개를 산다면 이 녀석은 안되겠다는 생각을 할 만큼 주의가 필요한 개임에 틀림없었다.




고의는 없었지만 망가뜨리고 침을 이곳저곳에 튀기며 묻히고 흘리기까지 해 주인의 손이 필요한 개, 천둥번개 소리에 예민해 이곳저곳을 파괴할 만큼 문제가 있던 개, 주인이 한 시도 눈을 팔 수 없게 하는 개는 주인의 대단한 인내심 없이는 돌 볼 수 없는 개일 것이다. 그러한 말리는 내 기준으로 본다면 매우 좋은 주인을 만났다. 존 그로건은 매우 자상했으며 인내심도 대단했다. 허나 이 모든 것이 개로부터 배운 우정이었음을 안다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어릴 적 개와 함께 성장한 존에게 이러한 인내심을 발휘는 일은 특별할 것이 없었으며 그 아내 제인도 특별한 시기가 아닐 경우에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에서 힘겨운 과정을 가까운 곳에서 위로해준 친구가 또한 말리였기에 이후 삶의 과정에서 말리는 꼭 있어야할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남들의 시선에는 비합리적인 것일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최고의 친구였음에 틀림없었다는 것이다.




언제나 충직한 우정을 보여준 말리에게 다가온 시련은 안타까움을 유발한다. 가까이 이 모습을 지켜보는 존과 제인 그리고 아이들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활기찬 모습을 잃지 않았던 말리. 늙어서 움직임이 굼뜬 이후에도 변치 않고 보여준 행동들은 감동을 전하기에 알맞다. 이를 직접 겪어본 식구들은 어떠했을까. 또한 결국 죽음을 맞이한 말리의 마지막을 지켜본 이의 심정은 또한 어떠했을까. 나또한 어릴 적 귀여워하던 개를 잃고 이후로는 개를 기를 수 없을 정도로 큰 아픔을 겪은 적이 있기에 공감할 수 있는 슬픔이었다.




개를 좋아하는 이가 아니라도 이 이야기를 읽는 이들은 감동과 따스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를 좋아하는 이라면 지금 기르고 있는 자신의 개를 떠올리는 일이 잦아 슬픔에 잠길 순간이 많을 것 같다. 개와 인간의 우정과 믿음은 말리 이후로도 수많은 이야기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개와 인간이 걸어온 시간이었고 변치 않는 관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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