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 라이프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열림원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예를 들어서 말이야, 미즈호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잖아, 그러면 뭐랄까, 내가 신경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늘상 서로 붙어 있으면 집사람이 숨 막혀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난 침실로 들어와서 책을 읽는다고. 그러다 미즈호가 침실로 들어오면 너무 밝아 잠을 못 잘 거 같아서 다시 거실로 나가고.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게 아니야. 함께 있고 싶으니까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옮겨다니고 있는 거지."(p41)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 남자가 떠올랐다.
너무 생각이 많은 남자.
혈액형의 stereotype을 신봉하지는 않지만 그 남자는 A형이었다.

자기 혼자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회사에서 기획안을 쓸 때
"best case" 에서 "worst case" 까지를 나누어 수익성을 예측하는 것처럼
자기 혼자 별별 생각을 다 해서,
자기 딴에는 "배려"한다고 한 일인데
상대방에게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남자.

이런 남자는 정말 상당히...피곤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남자.
(아....난 그냥 단순, 무식한 남자가 좋다!)

아내와 함께 있고 싶어서 이 방 저 방을 옮겨 다닌다는
가즈히로의 아내 미즈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서로 상대방을 너무 배려해서 좀처럼 얘길 꺼내지 못하는 상태라고 해야 하나.
있잖아, 배를 쫙 갈라서 속에 있는 걸 전부 드러내는 성격이라면 좋겠는데....
하긴, 서로 그런 성격이었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겠지만.... ."
(p64)

아....미즈호의 심정 절절히 이해한다. 공감 110%.
X레이라도 찍어 보고 싶은 마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배를 쫙 갈라보고 싶은 마음,
그냥 말을 해! 말을! 소리 치고 싶은 마음.

이 얼마나 비극적인 상황인가? 블랙 코미디!
서로 상대방을 "너무" 배려하다 보니 별거를 하게 된 부부.

요시다 슈이치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파크 라이프>.
<파크 라이프>에는 굵직한 스토리 라인이 없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책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아니고,
그 흔한 반전도 하나 없어
스피디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약간 지루할 수도 있겠다.

104 페이지 밖에 안되는 중편 치고 인물들도 많아서
듬성듬성 읽다 보면 이름이 헛갈릴 수도 있겠다.
(소설 속 애완 원숭이도 이름으로 불린다. 그의 이름은 라거펠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다 못해 신비하기까지한 요시다 슈이치의 "묘사"들은
이 소설을 다시 한번 읽고 싶게 만든다.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또렷한" 영상들이 책장을 넘기며 계속 펼쳐진다.

어찌 보면 산만한 것도 같지만
하나 하나 소품으로 봐도 매력적인 에피소드들은
지속적으로 중첩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며 강한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역시 상은 괜히 받는 게 아닌가 보다!)

" 아파트 옆집에는 젊은 여자가 살고 있는데 창가에서 전화하는 게 버릇인지 그 말소리가 내 아파트까지 들리는 경우가 많다. 아직 얼굴을 똑똑히 본 적은 없지만, 토요일 점심때가 되면 꼭 대여섯 명의 친구들에게 이제부터 어디 놀러가지 않겠느냐고 불러내는 전화를 돌린다. 기분 좋게 만날 약속을 따내는 날도 있지만 전화한 모든 친구들에게 거절당하고 갑자기 옆방에서 음악소리가 크게 들리는 날도 있다. 토요일 오후, 그녀에게 약속이 생기면 괜히 나까지 마음이 놓인다.

이 얘기를 긴토씨한테 하니까 "나도 자네랑 비슷해. 토요일만큼은 몸을 푹 쉬게 해주고 싶거든" 하고 웃었는데, 내 경우는 몸을 쉬게 하려고 그런다기보다 말을 쉬게 하려고 한다는 편이 정확할 듯싶다. 함께 있고 싶으니까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동한다는 가즈히로 씨는 아니지만, 나야말로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다는 이유에서 토요일 하루만큼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서 말없이 보내고 싶다.(p81~82)

이런 소소하지만 마음을 툭툭 두드리는 작은 이야기들이 가득한 소설,
그 작은 이야기들이 자기들끼리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또렷하고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소설.

너무도....매력적이다.
내겐 너무 매력적인 요시다 슈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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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6-10-23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제게도 매력적일것 같아요. 저도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

이게다예요 2006-10-23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요시다 슈이치 소설 읽으시나 봐요? 저도 책구입하려고 벌써부터 장바구니에 넣어놨는데 말이죠. 그래서 리뷰는 안읽으려고요. ㅋ

플레져 2006-10-23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겐 수선님도 너무 매력적이십니다 ^^

kleinsusun 2006-10-24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네...다락방님도 좋아하실꺼예요. 강추!^^

이게 다예요님, 네...요즘 요시다 슈이치 소설을 읽고 있어요. 작년에 읽은 <퍼레이드>, <동경만경>도 좋았답니다.^^

플레져님, 아...........감사합니다. 너무도 매력적인 플레져님!^^


글샘 2006-10-24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순 무식한 남자를 좋아하시는 걸로 봐서, 그리고 A형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걸로 봐서, 수선님은 비형이신가요?ㅋㅋ

kleinsusun 2006-10-24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O형이예요. ㅋㅋ 선생님 혹시.....A형이세요?^^

2006-11-06 01: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6-11-08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께 땡스투 누르고 나서 잽싸게 구입해서 읽었거든요. 전 [파크라이프]보다는 그뒤에 [플라워스]편이 더 좋았어요.

kleinsusun 2006-11-08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 방금 다락방님 서재에 갔다 왔는데...찌찌뽕! ㅋㅋ
<플라워스>도 좋아요. 특히 그 샤워장 장면... 읽으면서 움찔했어요. Thanks to 감사!^^
 
7월 24일 거리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어제 이 책을 100분 만에 다 읽었다.
헬스에서 자전거를 타는 시간 50분 + 집에 가는 버스에서 50분.

이런 가벼운 소설은 우울할 때,
뚜렷한 이유도 없이 의기소침해질 때,
그 틈새에 잡념이 마구 몰려올 때,
읽으면 딱 좋다.

일단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가독력"에 있어서 단연 최고다.
페이지가 술술 잘 넘어 간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내용이 없다거나, 경박하지 않다.
<파크라이프>로 아쿠타가와상을 탄 작가다.
팔리는 소설을 쓰면서도 놀라운 문장과 예리한 시각으로
평론가들의 인정을 두루 받고 있는 흔하지 않은 작가다.

특히, 요시다 슈이치의 "묘사"는 정말 압권이다.
매우 사실적이면서 비디오적이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도,
술술 책장을 넘기면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이 자주 드라마, 영화로 만들어 지는 건
이미지가 톡톡 책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슈이치의 묘사에
감독,PD들이 반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7월 24일 거리>는 "연애 소설"이다.
주인공은 20대 중반의 회사원 여자. (동시에 소설의 "화자"이기도 하다.)

작가가 누군지 모르고 읽는다면,
독자들은 작가를 "여자"라고 전혀 의심 없이 믿어버릴 것 같다.
진~짜 여자가 쓴 것 같다.

이렇게 여자의 마음을 잘 아는 남자랑 연애를 해 보면 어떨까?
편할까? 아님 오히려 징그러울까?

이 책에는 "인기 없는 여자"의 특징 10가지가 나온다.

1. 인기 많은 남자가 좋다
2. 남이 싫어하는 여자는 되고 싶지 않다
3. 늘 들어주는 역할이다
4. 의외로 가족 관계는 양호하다
5. 첫 경험은 열아홉 살
6. 타이밍도 좋지 않다
7. 때로 순정 만화를 읽는다
8. 밤의 버스를 좋아한다
9. 아웃 도어는 싫다
10. 실수하고 싶지 않다

나랑 참.......거리가 먼 특징들이다. ㅋㅋ

이 소설을 읽으며 "실수하고 싶지 않다." 가 내 마음을 톡톡 건드렸다.

"실수하고 싶지 않다."
- 좋아하는 남자의 가슴에 뛰어 들었다가
후회할까봐, 버림을 받을까봐, 상처를 받을까봐,
미리 온갖 걱정 다하고, 주저하고, 가슴 졸이다가
결국...포기한다. 왜?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불나방" 같은 나의 기질과 참.....먼 얘기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실수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을까?

요즘....타고난 기질인지 알았던 불나방 같은 기질이 희미해지며,
나 또한... 실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갈수록 두려움이 많아진다.
누군가에게 내 시간과 관심을 "올인"하는 게 두렵다. 망설여진다.

<7월 24일 거리>.
100분 동안 우울했던 하루의 고단함을 앗아가 준 고마운 소설이며,
동시에 불나방 → "실수하고 싶지 않다"로 옮아가는 나의 변화를
자각하게 해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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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8 1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06-10-18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싶단 생각이 화륵 밀려드는 리뷰입니다. 저도 요즘 왠지 산뜻하고 잘 읽히는 책이 고프거든요. ^^ 참. 글고 전 인기없는 여자의 특징 중 몇가지와 일치하는군요. 헉. 어쩐지. -_-;;;;;;

kleinsusun 2006-10-18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그게.....쉽나요? ㅠㅠ

달밤님, 혹시....일치하는 특징이 3,4,7 아니신가요?^^
보고 시퍼요~ 달밤님!!!

2006-10-20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16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1-16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벌써 9월 중순.
회사에서는 07년 경영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패션잡지들은 겨울 유행 아이템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제 곧 12월이 되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온 시내에 울려 퍼지고, 방송국들은 "연기대상", "가요대상" 같은 연말특집을 내기하듯 방영할 것이다.

12월엔 신문이나 잡지나, 개인들의 블로그나 어디서나
"올해의 잊지 못할 사건 Top10" 같은 걸 한다.(호들갑을 떨면서!)

곧 3분기 마감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06년 Top 10"을 떠올려 본다.
올해 내겐 어떤 특별한 일들이 있었나?
4분기에 대한 예의로 3개 정도는 빈칸으로 남겨 두어야겠지?

인색하게 7개만 리스트에 올리더라도 꼭 넣고 싶은 하나.
정미경의 소설을 만났다는 것!
정미경은 소설 나부랭이와 최소간격 이상의 평행선을 두고 살아가려 애쓰던,
나름 건조하게 살려고 노력하던 10년차 회사원의
소설을 향한 잠들어 있던 짝사랑,목마름에 불을 붙혔다.

소설 속의 여자 주인공과 작가와의 구분이 혼동스러운
신경숙이나 전경린 같은 여자 작가들의 정물화 같은 소설들에 질렸던 나는
한국 여자 작가들이 쓴 소설을 웬만하면 읽지 않았다. 정미경의 소설을 만나기 전까지!

내게 정미경의 소설은....
삶은 달걀 세개를 소금도 찍지 않은 채 연거푸 먹고 마시는
시원한 "칠성 사이다" 같았다.

소설집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 실려 있는 6개의 소설.
어느 것 하나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 나릿빛 사진의 추억
- 호텔 유로, 1203
- 나의 피투성이 연인
- 성스러운 봄
- 비소 여인
-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정미경은 비루하고도 질긴, 질기디 질긴 일상을 무섭도록 예리하게 포착해 낸다.

".....그런데 영화를 찍어가면서 , 어떤 고통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일상의 잔인한 영속성을 미옥 씨에게서 보았어요. 그걸 기록하고 싶었어요...."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中 241p)

골목시장의 영화 감독 승우의 고백처럼
정미경은 "일상의 잔인한 영속성"에 천착하고,
그 치열한 주제를 "냉정하게" 담아낸다.

정미경의 소설은 절제되어 있고
그 어떤 사건, 그 어떤 인물과도 일정 간격 이상의 거리를 두고 있다.
냉정한 서사 속에 문장 하나하나는 이글거린다. 그 절묘한 비유들이란!

내일 프랑크푸르트로 날라가는 비행기에서는 <장밋빛 인생>을 읽어야지.
오.........나의 칠성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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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6-09-17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과 느끼는게 비슷한가봐요, 저는. 저도 사실 국내여류작가의 소설들은 읽지 않았었지요. 그러다 재작년쯔음인가 정미경의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보고 바뀌게 됐죠. 그뒤로 읽는 것들이 어찌나 좋았는지요. 송은일, 정이현, 이명인등이 제가 최근에 푹 빠진 작가들이었어요. 특히 정미경은 그중 으뜸인지라 [장밋빛 인생]을 읽으시면 후회하지 않으실거예요. 비행기안에서의 수선님의 시간이 무척 부러워지는걸요. 잘 다녀오세요 :)

로드무비 2006-09-1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옥과 비소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저도 리뷰 썼었죠.
신경숙과 전경린에 대한 감상이 우리 비슷한가봐요.
프랑크푸르트라니!
지금 독일 어드멘가는 맥주 축제가 한창이라는디.
출장 멋지게 보내고 돌아와서 <장밋빛 인생> 리뷰도 올려주세요.^^

비로그인 2006-09-1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부터가 사람을 잡아끕니다.

2006-09-19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삼풍백화점 - 2006년 제51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정이현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헬스에서 자전거를 타며 읽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20대 초반 여자 트레이너 : 이런 책도 있어요?
30대 후반 실장 : 이거 삼풍백화점 생존자가 쓴 책이예요?
20대 후반 남자 트레이너 : 수선님도 참~ 삼풍백화점 무너진 지가 언제데...아직도 이런 책을?

사람 좋은 실장의 예상과 달리 <삼풍백화점>은
2006년 현재 김영하와 함께 베스트셀러 작가의 양대산맥인
정이현이 쓴 단편소설의 제목이며, 51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집을 읽으며 정이현을 재발견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사실....
정이현은 그저 팔랑팔랑, 가볍게, 감각적으로 쓰는 작가라고,
어떤 글이 팔리는지 아는, 마케팅 감각이 뛰어난 작가라고
비하(?) 또는 은근 무시했었다.

수상작인 <삼풍백화점>과 수상작가 자선작인 <어두워지기 전에>를 읽으며
정이현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삼풍백화점이 폭발하듯이
산산이 깨져버렸다.

정말...놀랐다.
그녀의 두 작품을 읽으며 느꼈다.
작가는 진화한다!

정이현의 문체는 여전하다.
톡톡 튀고, 가볍고, 도발적이다.

심사평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가독성" 면에서는 단연 최고다.
난독증 증세를 보이는 고딩들이 읽어도 일단 페이지는 넘길 것 같다.

잘 읽히는 글은 무게감이 없고 그저 가벼운 글로 오해받기 쉽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정이현의 두 작품은,
특히 <어두워지기 전에>는 정말...장난이 아니다.
누가 <어두워지기 전에>를 읽고 정이현이 "가벼운"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소설집을 읽으며 건진 또 하나의 수확은
정지아라는 걸출한 작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지아 같은 훌륭한 작가를 여태 모르고 지냈던 게 아쉽다.

이 소설집에 실린 정지아의 <풍경>은
2006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정지아의 <풍경>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이효석 문학상에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낼름 주문했고, 지금 읽고 있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별로였던 작품은,
그러니까 읽으면서 끝까지 읽을까 말까 망설였던,
살살 짜증이 났던 작품은
이응준의<약혼>이었다.

소개팅에서 스펙은 뛰어나나 너무 잘난 척을 하는 남자를 만난
그런 기분이었다. <약혼>을 읽으며 느꼈다.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많은 "지식"을 얻을 수도 있구나!
그러나..."지식"이라는 벌어진 손가락 사이로
작품의 주제의식과 독자의 흥미가 솔솔 빠져나가는 비극이...

일요일 저녁, 편한 자세로 앉아 소설을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
6시그마 BB(Black Belt) 인증 시험!

아...차라리 태권도 까만띠면 열심히, 열성적으로 준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열람실로 올라가 시험 공부를 하자!
밥벌이 보다 중요한 게 무엇이랴?

초가을 저녁, 어느 도서관 매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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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9-10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정이현을 인정했다니, 저도 그렇게 하렵니다.
-말 잘듣는 마태-

다락방 2006-09-10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이현의 단편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를 보고 그녀가 좋아졌어요. 그 단편집에 실린 동명의 소설과 바로 그 뒤에 실린 [트렁크]라는 단편이 좋아서요. 그런 정이현을 재발견 하셨다니 기분이 좋은데요? 헤헷 :)
그나저나 시험공부라니..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군요. 힘내세요, 수선님.

kleinsusun 2006-09-10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미녀 말만 잘 들으시는거죠? 음하하하

다락방님, <트렁크> 저도 잼 있게 읽었어요. 그때 까지만 해도 구성이 뛰어난 작가,하지만 넘 표피적인.....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번 <어두워지기 전에>는 정말 경탄하면서 읽었어요. 만약 안 읽으셨으면 강추!^^

시험공부 오랜만에 하니 힘드네요.ㅎㅎ 홧팅!

비로그인 2006-09-11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화가 박희정이 시대성에 있어서 세밀한 작가라면, 정이현도 그렇지요? 저는 그녀의 다른 소설집에서 각주까지 달아가며 쓴 단편들을 보고, 그리 생각했어요. 만약 타임캡슐에 넣어두면, 우리가 뭘 먹고 마시는지 다른 이들이 알기에 적합하겠구나, 하고.

moonnight 2006-09-11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녀의 전작을 좋아했지만 스타일리쉬하고 가볍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수선님 리뷰를 읽으니 필독해야 할 책이 한 권 더 느네요. ^^;
 
생의 이면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김영하의 신작이 나왔다. 그것도 장편. <빛의 제국>
최고 인기 작가답게 모든 일간지는 <빛의 제국>을 친절하고도 상세하게 보도했다.
<빛의 제국>은 북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은 잊혀진 남파간첩 김기영의 24시간을 아침 7시 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시간별로 묘사했다.
김영하의 오랜 팬 답게 책이 나오자 마자 샀다.
아침 7시~8시까지의 얘기만 읽었지만...
(지금 읽어야 할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행복한 고민^^)

제목은 <生의 이면>인데 왜 김영하의 <빛의 제국> 얘기를 하냐구?

<빛의 제국>에는 첫 챕터,그러니까 거의 처음부터
고양이한테 밥 주고, 주인공 김기영이 고양이를 쓰다듬고 하는 설정들이 보인다.

김영하는 고양이를 키운다.
(그의 여러 산문들에서 각별한 고양이 사랑을 알 수 있다.)
만약 김영하가 강아지를 키운다면,
소설의 설정은 고양이 대신 강아지가 될지도 모른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냐?
소설은 어떤 소설이나 다분히 "자전적"이다.
물론 허구지만, 최소한 어떤 소설에나 "자전적 요소"는 있다.

<生의 이면>은 각별히 "자전적"인 소설이다.
주인공 박부길과 작가 이승우가 헛갈릴 정도다.
이승우 또한 <生의 이면>은 자전적인 작품이며,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生의 이면>은 제목 만큼이나 "진중한" 작품이다.
주제는 "살부의식".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이 만큼 "살부의식" 같은 어려운 주제를 정면으로 다른 소설은 드물 것 같다.

너무나 치열해서 쇼파에 기대거나 침대에 누워서 읽기가 부담스럽다. 작가에게 미안한 기분이 든다고 할까....

하루키나 바나나 같은 다소 가벼운 소설들에 익숙한 독자라면
다소 읽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무겁고 처절하며, 게다가....장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솔직히 힘들지만(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도 하지만(너무도 치열해서),
침대나 쇼파 보다는 도서관이나 책상에 자세를 잡고 앉아 읽어야 할 만만치 않은 소설이지만,

타협하지 않고, 피해가지 않고
너무도 본연적인 인간의 문제를 정면에 부딪혀 쓴
"정통" 소설을 만나 보고 싶다면

그 하나의 선택으로 <生의 이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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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8-21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좋아서 10년 전에 책이 나왔을 때 바로 읽었어요.
'정통'에 한 마디 덧붙인다면 정통본격......
요즘은 소설을 많이 읽으시는군요.^^

moonnight 2006-08-21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무서운 -_- 소설이로군요 요즘 스스로도 너무 가벼운 책들에 익숙해져버린건가 싶어요 고민해야 하고 머리를 써야 하는 책은 자꾸 피하게 되는 것이. 반성반성 ㅠㅠ;

stella.K 2006-08-21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우 선생 글이 원래 그렇죠. 저도 책 하나 받아 놓은 게 있긴 한데 부담스러워서 언제 읽을런지 모른답니다. 흐흐

2006-08-21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6-08-22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부의식 하니까..예전에 봤던 한승원 소설이 생각나네요.10여년 전에라 제목은 가물가물---일종의 살부계였는데.친일파 아버지를 둔 자식들이 서로 상대의 아버지를 죽이는 모임같은 것이었어요.불의를 막돼 존속살인이라는 윤리를 저버리지 않는 -어떻게 보면 눈가리구 아웅하는-방식이었지요.그 살부계 주인공들과 80년대 정치인의 아들인 주인공이 두 축이었어요.책 제목이 뭐더라?

2006-08-24 2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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