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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일요일. 집에서 뒹굴뒹굴하며 김영하 산문집 <랄랄라 하우스>를 읽었다.
김영하 옛날 단편 중에(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남자친구랑 헤어질 생각으로 삐삐를 버린 여자가 삐삐를 찾으려고 난지도를 뒤지는 얘기가 나온다. 삐삐 소리가 지금도 울리고 있는 것 같은 환청을 들으며 한밤에 난지도로 가 쓰레기를 뒤지는 여자. 아....그 심정 절절히 공감할 수 있다. 내가 왜 그런 미친 짓을 했을까...후회에 가슴을 치며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여자.
이번 산문집에도 난지도 얘기가 나온다. 어떤 부부가 부부싸움을 했다. 감정이 격해진 여자가 "이 결혼은 무효야!"하며 결혼앨범을 버렸다. 그 다음날, 정신을 차린 남자가 난지도로 달려 갔다. 다행히도....그 남자는 앨범을 찾았다. 극적으로, 3박 4일을 새워 뒤져서 찾은 건 아니고 난지도에서 일하는 사람이 찾으러 올 것 같은 쓰레기를 미리 분류해 뒀다고 한다.
난지도까지 달려가서 앨범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부부는 3년 후에 이혼했다고 한다.쩝.
난지도 얘기를 읽으니 쓰레기 더미를 어쩔 줄 몰라하며 뒤지고 있던 커플이 생각났다.
4월달에 방콕 출장갔다가 새벽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친구가 마중을 나왔다. 가는 길에 을왕리에 들려 칼국수를 먹고 가자고 했다. 피곤하긴 했지만 인천공항까지 나온 친구의 제안에 따라 을왕리에 가서 칼국수를 한 그릇씩 먹고 바다를 바라보며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쳐다 보니 한 남자가 조개 껍데기와 음식 찌꺼기가 마구 뒤섞인 쓰레기 더미를 쭈그리고 앉아 뒤지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여친으로 보이는 여자가 어쩔 줄 몰라하며 서있었다.
우리가 그 쪽을 흘끔흘끔 쳐다보자 식당주인이 말했다. "어제 여기서 조개구이를 먹고 반지를 빼놓고 갔데요."
아....재활용품도 아니고, 신문 수거함도 아니고 손도 다치기 쉬운 조개 껍데기를 미친듯이 뒤지고 있는 그들을 보니 너무도 안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반지가 쓰레기 더미 속에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 같았으므로....
왜 조개를 굽다가 반지를 뺐을까? 반지 낀 손으로 목장갑을 끼기 싫었을까? 아님 조개를 까먹다가 비린내 베인 손을 깨끗하게 씻으려고 그랬을까?
식당에 뭘 두고 갔다고 한들, 종업원이 "아무것도 없었는데요." 하면 그만이다. 증거도 없고, 거기에 두고 왔다는 확신도 없다. "정말 없었어요?" 몇번 더 물어보면 사람 의심한다는 말 듣는다. 뭐든 잃어버린 사람 잘못이고 책임이다.
새벽부터 쓰레기 더미를 미친듯이 뒤지던 커플.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반지를 찾았을까? 혹시....반지 때문에 싸우다가 헤어지지는 않았을까? 반지를 잃어버린 여자친구를 오히려 위로해 주는 남자에게 반해 그들의 사랑이 더 두터워졌을까? 그 매스꺼운 쓰레기 더미를 뒤지다 그 날 점심은 먹었을까?
그 커플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