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수업 - 영원한 세계 명작 11
알퐁스 도데 지음, 가나 명작 기획팀 옮김 / 가나출판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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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퐁스 도데는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이다. 그의 감각적인 단편소설들은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별'은 몇 해 전 고등학교 국정 국어교과서에 실려 가장 인기있는 작품 중의 하나로 읽혔고, '마지막 수업'은 오래 전 국민(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기억이 있다. 무심코 배우며 읽었던 도데의 작품들에서 어딘지 모를 이데올로기적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별'은 그야말로 순수문학이라 할 수 있지만, '마지막 수업'의 경우는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 과정에서 어느 초등학교와 한 학생의 창을 통해 본 애국심을 테마로 다루고 있다. 물론 그 작품 자체야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러한 작품을 국어 교과서 그것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어야 했던 사정은 과거 우리 나라의 이데올로기 및 이념과 분리돼 생각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별 역시 순수문학을 지향한 듯 하지만, 정치적 무관심성을 은연중 강조한 군사독재의 이데올로기와 연계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소설자체의 결함에 의해서라기 보다, 소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점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그럼에도 순수문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도데의 소설은 너무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에 틀림없으며, 예민한 감수성을 자극하기에 더도 없이 훌륭한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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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동학농민혁명의 쟁점
이달순 외 / 집문당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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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에 대한 명칭상의 변화는, 역사적 시각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변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최초로 등장했던 '동학난'은 말 그대로 동학교도들이 일으킨 반란 정도로 치부되었다. 전제군주적 지배세력의 입장에서 동학교도들의 봉기는 그들의 정권안위에 위협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방이후 4.19혁명이 발발하고 진보세력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동학은 혁명으로서의 지위 즉 '동학혁명'이라는 영예의 칭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 동학은 '갑오농민전쟁'이라는 객관적 평가를 받고 있다. 혁명의 기본요소인 지배계급의 변화, 기존 지배정권의 전복 등이 동학에 의해 야기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이러한 이유로 혁명으로서의 지위보다는 진보적 농민전쟁으로서의 위상에 더 적합하다는 논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교도들이 봉기과정에서 내걸었던 기치들을 살펴보면, 부르죠아혁명이나 프롤레타리아혁명에서 내걸려지는 구호들과 유사한 요소들을 보게 된다. 공화제사상 남여평등 신분차별의 극복 지주소작관계의 시정 내지 폐지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렇다면 동학교도의 봉기가 단지 실패로 돌아갔다는 이유에서, 이 사건이 혁명의 위상에서 미달된 것일까? 이 책을 통해 동학혁명의 현재적 의의를 되새겨볼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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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과 수령제 사회주의
스즈키 마사유키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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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사회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이론들이 창출된 바 있다. 그 중 와다하루끼는 유격대국가란 틀로서 북한사회를 특징지움으로써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간략히 설명하면 김일성을 유격대의 지도자로 인민들을 유격대원으로 설정함으로써 최고지도자를 정점에 위치시킨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설정한 바 있다. 이보다는 덜 참신하지만 이미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이 바로 북한사회를 수령제로 파악한 스즈키 마사유키의 견해이다. 물론 현대의 많은 소장학자들은 북한의 수령제를 정치적 현상뿐만아니라 현재의 경제구조를 초래한 중대한 이정표로 규정짓는 등, 그 이론을 풍요화하는데 기여하였다. 물론 마사유키의 수령제사회론이 현재에 와서 매우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북한사회를 바라보는 틀로서 유용하며, 연구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수정주의로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에 관한 연구도 지금에 와서 많은 이들이 식상하게 느껴지겠지만, 처음 등장할 때 얼마나 많은 반향을 일으켰는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쨋든 그러한 아이디어를 고안해낸 마사유키의 공헌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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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식민지 근대화론 비판 - 우리시대의 지성 5-010 (구) 문지 스펙트럼 10
신용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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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일제 강점기를 경과하면서 한국의 근대화가 달성되었다는 발상이다. 과연 이러한 이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근대화의 개념을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산업화가 그 기본요소 중 하나라는 것만은 확실한듯 하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한 대표적 외국학자로 카터 에커트를 들 수 있다. 그는 김성수 일가의 자본축적 과정을 다룬 '제국의 후예'라는 저작을 내었는데,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서울대학교의 안병직 교수가 최초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 식민지시기의 침략적 수탈에 의한 악감정 및 여러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안병직 교수의 논리는 많은 저항에 직면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신용하 교수의 이 책도 그러한 논리의 비판을 위해 저술된 책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했던 다 수의 논문들은 논리적이라기보다 감정적 비판에 치우친 면이 많이 있었고, 이 책 또한 그러한 경향이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발상의 폐해는 무엇보다 일제시기의 경험에 의해 자본축적과 공업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결과론적 측면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취약해 보인다. 과연 현대의 재벌구조라든지 정경유착 등 현대 경제문제의 상당 수 모순이 식민지 근대화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할 듯 하다. 물론 그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먼저 근대화에 대한 개념규정이 엄밀히 이루어져야 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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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99인 1 친일파 99인 1
반민족문제연구소 엮음 / 돌베개 / 199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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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가 들어서려는 이 시점에서 우리 역사의 정통성 회복과 통일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친일세력의 척결일 것이다. 유럽의 독일과 프랑스가 나찌즘을 척결하고 역사적 정통성을 회복한 후, 당당히 유럽의 정치 경제 문화를 선도하는 초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이웃 나라들(?)의 경험으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채, 국가적 역사의식의 실종이라는 오명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을 단지 추상적 의미에서의 역사관 실종이란 언어도단 정도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친일청산의 실패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가시적 측면에서 수량화할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부작용들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으로 인한 재벌구조의 성장과 정치적 부패 및 노동운동 탄압, 반공이데올로기의 양산에 의한 민주화세력 탄압 등 친일세력의 잔재는 무늬만 바꾸어 입었을 뿐, 국가 사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끼친 바 있다. 물론 당시의 친일파 중 생존해있을 사람은 극소수겠지만,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사회단체나 정당 혹은 언론기관 등의 기득권 유지 활동을 통해 아직도 사회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다.

해방 후 친일세력은 애국적 민족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자들의 공세에 직면해, 반공이데올로기와 친미이데올로기로 외투를 포장하였다. 물론 그 이유는 해방공간의 격앙된 분위기에 직면해 위축되었던 자신들의 입지를 추스르고 기득권을 유지함으로써 사회의 중추세력으로 다시금 재등장하기 위한 술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차 대전 후 미소의 대결로 인한 냉전구도가 강화되면서, 남북간의 이데올로기적 대결구도 역시 강화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기존의 친일세력은 그 기회를 적절히 활용하기 시작했다. 즉 애국세력을 보증하는 증표로서 반공이데올로기를 강조하였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매국노로 몰아 붙였다. 물론 일제시대 하 항일독립운동에 기여했던 사회주의 세력은 기존 친일세력의 공세 - 미군정과 긴밀히 연계된 - 에 밀려 지하로 잠적하거나 월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기회주의적 수법은 냉전구도아래에서 효과적인 방패막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주의권의 노선변경과 남북간 화해무드가 일기 시작하면서 진보세력이 많은 공감을 얻게 되자 그들의 입지는 축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진보진영이 승리했다는 사실은 친일세력의 명맥을 암암리에 이어온 그들의 사회적 영향력에 큰 타격을 입혔다. 그것은 실종된 한국의 역사관이 제 궤도에 진입하고 있다는 청신호라 생각된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여전히 정당이나 언론단체를 통해 그들의 세력유지와 강화를 위해 새로운 도약을 모색할 것이다. 물론 우리의 시민의식이 많이 성숙된 이상 그들의 도약은 쉽지 않겠지만, 여전히 정부적 차원의 대응과 성숙한 역사의식의 함양이 절실하다고 본다. 이 책을 통해 친일파의 청산문제가 정말 시급한 문제임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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