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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밤 - 서양 중세 사람들은 밤을 어떻게 보냈을까
장 베르동 지음, 이병욱 옮김 / 이학사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밤이란 테마를 통해 중세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밤이란 긴 실타래는 끊임없이 이어지며, 때로는 긴장감을 조성하고 때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끔 조율한다. 이 작품은 서구에서 오래 전에 싹튼 미시사의 전형으로서, 너무도 사소한 밤(night)이란 소재를 통해 중세의 구조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것은 마치 셜록홈즈가 우연히 발견한 종이조각 - 아주 사소한 것 - 을 통해 사건을 실마리를 풀어나가듯,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론이다. 또한 모렐리가 작품 속의 사소한 징후를 통해 작품의 진위를 감정하는 것도 동일한 방식이다. 장 베르동 역시 밤이란 일상의 소재를 통해 중세사회의 구조 및 중세인들의 인식구조 등의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먼저 저자는 밤이 지니고 있는 보편적인 이미지로부터 접근한다. 즉 어둡고 불안하며 공포스러운 밤에 벌어지는 일탈현상인 폭력 절도 강도 강간 등이 이에 해당된다. 물론 예상할 수 있듯이, 다음에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그러한 일탈현상을 어떻게 극복하고자 했는가의 문제이다. 중세인들이 어둠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어떤 조명술을 개발했으며 경비를 강화하고자하는 등의 인위적 시도들이 그 대표적 사례였다.
그러나 그러한 방식들은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저자는 밤의 공포에 대한 중세인들의 인위적 대응이 한계에 달하면서, 신에 의존하는 종교적 승화의 세련된 형태를 지향했다고 지적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견지에서 그것은 몹시 비합리적인 방식이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중세인들의 의식구조 속에선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귀결이 아니었을까 한다. 과학기술이 한계에 직면한 상황에서 밤의 공포에 체념하기 보단, 내일의 빛을 기다리며 신에게 의존하는 태도야말로 그들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시의 정전으로 시스템이 완전히 마비되는 현대인의 밤은, 과학기술에 의해서도 밤의 공포가 여전히 미해결되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