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저갱
반시연 지음 / 인디페이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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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우리 사회에 분노가 많이 쌓이긴 했나 보다. 극악한 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나 검찰과 변호사가 돈의 노예가 되어 무전 유죄, 유전무죄를 만들어대는 세상에 아주 제대로 돌직구를 날리는 스릴러 소설이 등장했다. 사회가 처리하지 못하는 악을 대신 처리해주는 회사가 있다. 그것도 단순히 감옥에 가두는 것보다 훨씬 더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말이다. 아무도 모르는 숲속에 지어진 건물의 지하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다. 범죄 피해자의 제보를 받아 잡혀온 가해자들은 법망은 운이 좋아 용케 피해왔을지 모르지만, 이곳 지하실에서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잔인한 고통을 받는다. 온몸의 뼈가 부서지고, 살이 터지고 잘리고 죽기 직전이 되면 어디선가 초록색 옷을 입은 의사들이 나타나 상처를 치료해준다. 어느 정도 상처가 치료되면 또다시 고문이 시작된다. 미지의 공포심을 자극해 끊임없이 가해자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하얀 가면의 사내 일명 '사냥꾼'은 단 한마디만 반복해서 내뱉는다. 
"네 죄를 말해."

소설 초반을 읽으면서 '아주 골 때리는 작가가 나타났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긍정적인 의미로) 이 사회에 꽤나 쌓인 분노가 많았나 보다는 생각이 들 만큼 책에 나오는 장면과 말투들은 꽤나 저돌적이고 많이 잔인했다. 아니 이렇게 고문해도 사람이 안 죽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센 장면들을 보면서 소름 끼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이다 같은 통쾌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책에 등장하는 범죄 중에는 최근에 일어난 실제 사건에서 가져온 듯한 이야기가 많았고, 그래서 더 분노지수를 높인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싶은 범죄들이 이 세상엔 실제로 많이 존재하고, 아마 우리가 모르는 더 심한 일들도 있을 것이다. 

무저갱에는 우연히 자신의 숨어있던 폭력의 재능을 발견한 '싸움꾼', 범죄자를 미지의 공포로 몰아넣어 고문하는 '사냥꾼', 죽음을 원하는 자에게 고통 없는 죽음을 선물하는 '파수꾼'이 등장한다. 그리고 정말 대책 없는 범죄자 노남용이 있다.  

그중 '싸움꾼'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흥미롭다. 일생 동안 어떤 일에서도 성공이란 것을 해본 적이 없으며, 나름 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시장 구석에 박힌 허름한 복국집에서 하루에 12시간 야간 알바를 하면서 130만 원을 받아 겨우겨우 살아가는 일명 '야간 삼촌'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휴일에도 추가 수당 없이 불러내 당연한 듯 일을 시키는 사장 밑에서 일하면서도 다른 대안이 없기에 매일을 꾸역꾸역 살아간다. 어느날 일을 하다가 가게에 방문한 미친 정신질환 살인마를 우연히 죽이게 되면서 그는 전기 통하듯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알게 된다. 바로 폭력과 살인에 대한 선천적인 능력 같은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누군가를 해하고 죽일 수 있다는 것에 알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그렇게 그는 살면서 처음 알게 된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으로 나름의 정의감을 발휘하며 즐겁게(?) 사회의 인간쓰레기들을 응징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싸움꾼의 천부적인 재능도, 사냥꾼의 지하실 미지의 공포도 통하지 않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범죄자 노남용이다. 그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지만 여자와 아이들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강간하고 폭행하고도 전혀 죄책감이 없는 인물이다. 심지어 사디스트에 마조히스트라 고통받는 것에 성적 희열을 느끼는 인물인 것이다. 그는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도 빵빵한 집안 환경 덕에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단 몇 년의 징역형만 받았을 뿐이다. 대책 없이 센(?) 이 남자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이야기는 퍼즐처럼 조각조각 나있다가 소설의 끝에 다다를 때쯤 하나의 큰 그림으로 맞춰진다. 신기한 건 처음에 느꼈던 사이다 같은 기분이 뒤로 갈수록 점점 찜찜함으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문제를 뛰어넘어 점점 그 폭력적인 묘사에 익숙해지는 것도, 나중에 가서는 어느 쪽이 악인지 잘 모르겠다는 점도 한몫한 것 같다. 

끝에 가서야 '무저갱'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나온다. 
「지독하게 깊은 구멍, 바닥이 없어 끝없이 추락하는 시커먼 구멍」 <p.399>
성경에서 등장하는 용어인 것 같다. 사전을 찾아봤더니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 지옥으로 가는 구멍 같은 것이란다. 

그 지독한 무저갱에 빠진 것은 과연 나쁜 범죄자 뿐이었을까? 폭력에 정의라는 이름을 붙여 무차별적으로 휘두른다는 것 자체가 주는 시원함에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나 보다. 사이다 같은 시원함에서 시작해 결국 남은 건 끈적끈적하고 축축한 감정이었으니. 

무저갱은 영화로 따진다면 아마도 『악마를 보았다』와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다. 그 영화를 보면서 몇 번이나 극장을 뛰쳐나갈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무섭고 끔찍해서 앉아있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무저갱이 영화로 나온다면 딱 그런 느낌이지 않을까.
각오 단단히 하고 보시길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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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7-20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수리한테 간 파 먹히는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랑 미드 덱스터가 생각나는군요. 어릴 때는 몰랐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정의를 외쳐도 폭력은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절대악 같은 노남용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몸서리치게 후회하면 좋겠습니다.
서평 재미있습니다. ^^

다림냥 2018-07-20 14:42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폭력에 폭력으로 응대하는 것은 처음엔 시원하다가도 탄산 음료가 갈증을 유발하는것처럼 곧 다른 목마름을 가져오는것 같기도 해요~ 점점 악이라는 존재가 불분명해지기도 하고 말이지요~ 책도 재밌었답니다ㅋ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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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새하얀 종이 같았던 청소년기, 그때 느꼈던 미래란 어쩌면 미지의 세계 같은 거였을지 모른다. 장차 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또한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내 주변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인지 그 무엇도 판단할 수 없었던 때였던 것 같다. 물론 당시에 나는 나름의 심각함을 안고 진지하게 고민했었던 것 같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나 여물지 않은, 순수하다 못해 좀 부끄러워지는 시절인 것이다. 그 푸릇푸릇한, 만지면 톡 터질 것처럼 청량감 있는 청소년 시절은 반드시 시간이 오래 지나야지만 '그때가 좋았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누구나 지나쳐온 하나의 터널일 것이다. 

여기에 자신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라 생각하는 주인공 '에이자 홈즈'가 있다. 실제로 그녀는 이 소설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에 등장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소설의 주인공도 아닌 단짝 데이지의 친구역을 맡은 조연이라고 생각한다. 에이자는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아이지만 한가지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세균이 자신의 몸에 침투해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레에 감염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가운뎃손가락 끝을 엄지손가락으로 찍어눌러 피를 내고 반창고 붙이기를 반복하는 소녀이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그 무엇이(예를 들면 세균 같은 것) 자신의 몸을 구성하고 있고, 자신은 환경에 지배당할 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존재라고 느낀다.

「"전 제 생각을 통제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그 생각들은 진짜 내가 아니에요. 난 땀을 흘릴지 말지, 암에 걸릴지 말지, 클리스트리디움 디피실레에 감염될지 말지도 결정하지 못해요. 그러니까 내 몸도 사실은 내 것이 아니죠. 이들 중 어느 것도 내가 결정하지 못해요. 외부의 힘이 결정하죠. 그러니까 난 그냥 소설 속 인물인 거예요. 내가 곧 환경이라고요."」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p.182>

스타워즈를 좋아해 그 분야의 팬픽을 써서 나름의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에이자의 친구 데이지는 그에 반해 조금은 더 적극적인 아이로 보인다. 자신이 작가가 쓰는 대로 움직여지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에이자와 달리 데이지는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위치에 있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절친 소녀의 모험 이야기가 전개될 것처럼 소설이 시작된다. 하지만 실상은 그 시절 친구들 간의 사랑과 우정에 초점이 맞춰진 이야기다. 데이지와 에이자는 옆 동네에 사는 억만장자 CEO 러셀 피킷이 실종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를 찾는 자에게 현상금 10만 달러가 걸려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종된 러셀 피킷의 아들 데이비스와 어릴 적 친구인 에이자는 혹시 모를 기대를 품고 데이지와 함께 친구 데이비스의 넓은 저택을 찾아간다. 그렇게 다시 만난 친구들 사이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너 자신이 막 미워? 너로 사는 게 싫어?"
"미워할 '나'조차 없어. 내 안을 들여다보면 진짜 '나'가 없어. 그저 생각과 행동과 환경만 한 다발 있을 뿐이지. 그리고 그 대부분이 내 것으로 느껴지지 않아. 내가 생각하고 싶은 생각 혹은 하고 싶은 행동이 아니야. '진짜 나'는 어디에도 없어. 마트료시카 같아. 안이 텅 비어있고, 열어보면 더 작은 인형이 나오고, 그 인형을 열어보면 또 더 작은 인형이 나오지. 제일 작은 인형이 나올 때까지. 그리고 그 인형은 실체가 있지만 내 경우에는 실체가 없어. 그저 계속 작아질 뿐이야."」 <p.267>


「그렇게 지구와 지구에 사는 생명체의 역사에 대해 연설하고 끝으로 관객에게 질문이 있냐고 물었어. 그러자 뒤에 앉은 할머니가 손을 들고 말했지. '잘 들었습니다, 과학자 선생님. 하지만 사실 지구는 거대한 거북이 등에 세워진 평평한 땅이랍니다.'
과학자는 할머니를 골려주기로 마음먹고 이렇게 물었어. '글쎄요, 만약 그렇다면 거대한 거북이 밑에는 뭐가 있습니까?'
그러자 할머니가 답했지. '더 거대한 거북이가 있죠.'
(중략...)
나는 깔깔 웃었다. "그 아래로 계속 거북이들이 있구나."
"거북이들만 존나 있는 거야, 홈지. 넌 맨 밑에 있는 거북이를 찾으려고 하지만 그런 건 없어."
"왜냐하면 아래로 계속 거북이들이 있으니까." 나는 영적 깨달음에 가까운 무언가를 얻은 기분이었다. 」 
<p.268>

책을 읽다 보면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는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는 떡밥일 뿐 핵심은 딴 데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트료시카 인형, 거북이 밑에 끝없이 이어지는 거북이, 또 에이자가 겪는 한없이 좁아지는 나선형에 갇힌 기분 같은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인생의 첫 출발점에서 겪는 다양한 혼란과 철학적인 고민들, 하지만 그 모든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는 건 어쩌면 사랑과 우정이 아닐까. 

「네가 첫사랑을 기억하는 이유는 네가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음을, 이 세상에서는 오로지 사랑만이 가치 있음을, 사랑을 통해 그리고 사랑 때문에 네가 비로소 온전한 사람이 되었음을 첫사랑이 보여 주고 증명했기 때문이지. 」
<p.311>

세상에 태어나 '나'라는 본질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주는 존재가 어쩌면,
바로 사랑이라는 녀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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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1
백세희 지음 / 흔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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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이후부터 마음 한 켠에 우울함 한 스푼은 항상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는 밝은 척, 센 척 웃으면서도 혼자 있을 때면 괜히 눈물이 그렁그렁 서러울 때도 많았고, 수많은 좋고 나쁜 인간관계를 겪어보면서 서서히 겁도 많아지고, 그만큼 자기검열도 강해졌다. 세상에 마냥 밝기만 한 사람이 존재할까. 원래 남의 인생은 좋은 면만 보이는 법이라 나 말곤 다 행복해 보이기 마련이다. 화려한 인스타그램 스타들의 사진들을 조금만 훑어봐도 내 인생이 괜히 구질구질하게 느껴져 우울해지지 않던가.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누구나 슬픔의 결을 안고 산다.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훗!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하긴 한데, 또 떡볶이는 먹고 싶은 그 마음을 똑같이 느껴봤기 때문이리라. 우울하면 원래 먹을게 더 당긴다. 다이어트고 나발이고 먹고 죽자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일까?


재미난 제목의 책 속에는 바로 저자의 '정신과 상담 일지'를 글로 옮긴 내용이 담겨있다. 저자 백세희는 기분부전장애(심한 우울 증상을 보이는 주요 우울 장애와는 달리, 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를 앓고 있다고 한다. 차라리 극심한 우울증이라면 주변의 관심과 걱정이라도 받을 텐데,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계속해서 혼자만의 애매한 우울증이 지속되다 보니 저자는 더 괴로웠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 상태에 기분부전장애 라는 병명이 붙은 걸 보고는 오히려 안심했단다. 이것도 병이구나, 치료할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책 내용은 저자와 치료자의 실제 대화가 거의 그대로 담겨있다. 그래서 저자의 개인적인 가정사나 조금은 말하기 민망할 듯한 고민들도 가감 없이 나와있다. 그런데 그런 고민들을 읽다 보면 마치 내 얘기 같아서 뜨끔뜨끔한 순간들도 꽤 자주 나온다. 책 뒤쪽에 실린 '책을 읽은 독자의 한마디'를 살펴보면 마치 내 일기장 같다느니, 발가벗겨지는 기분에 부끄럽지만 개운하다는 말도 쓰여있다. 필명이 아닌 실제 이름으로 책을 내면서 이렇게 솔직해도 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저자는 충실히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간다. 


자존심은 센데 자존감은 낮은 것 같다는 이야기, 끝없는 자기검열에 빠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항상 녹음을 해두고 집에 와서 혼자 들어보면서 안도하거나 혹은 이불킥을 한다는 이야기, 남에게 의존적이면서 동시에 독립적이고 싶은 마음, 사람들을 대할 때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 눈치 보는 심리, 외모에 대한 고민 등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본 적 있는 감정 아닐까 하는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다. 



자존심은 센데 자존감은 낮은 것 같다는 이야기에 나도 혹시 그런 상태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슬쩍 들고, 녹음을 해서 들어볼 정도는 아니지만 사람들을 만나서 내 이야기를 많이 늘어놓고 온 날에는 혹시 실수 한건 없을까 하는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는 날도 많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어느 날엔 스스로 쓰담쓰담해주고 싶을 만큼 자랑스럽다가도, 어떤 날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감정의 문제는 참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상황에 따라, 몸 상태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상태를 진단해주는 상담을 보면서 나름의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다. 나만 이런 거 아니구나, 다른 사람들도 때로 이런 걱정을 하면서 사는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책 속 상담은 2권에서 계속된단다. 열두 번의 상담으로 저자의 상태가 완치되기에는 과연 무리가 있었나 보다. 우리네 인생이 그런 것처럼 저자의 상태가 완치되는 드라마틱하고 사이다 같은 결말은 없다. 하지만 꾸준히 자신을 돌이켜보고 좋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의 인간을 지켜보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던 이야기였다. 


다만 저자가 20대라서 그런가 20대 특유의 걱정처럼 보이는 요소들도 보인다. 나이 어린 여동생의 걱정 상담을 해주는 느낌이랄까. '나도 저랬었지'하고 공감은 가지만, 그런 건 시간이 해결해줄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점들도 분명 있긴 하다. 20대를 벗어나 30대가 되고 보니 그 당시엔 몰랐던 걸 저절로 깨닫게 되거나, 혹은 마음 편히 내려놓게 되는 부분도 하나 둘 생기기 때문이다. 


어쨌든 솔직함을 무기로 한 이런 유의 에세이가 나온 것은 환영한다. 삶의 빛나는 부분만 과시하고 싶어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어둠을 발견한다는 것도 꽤나 괜찮은 경험이니까.


"괜찮아,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어"

난 이 말에 적극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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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방문객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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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한낮에 낯선 사람이 벨을 누르면 두근두근 두려움부터 생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배 아저씨가 도착하더라도 1층 현관 자동문을 열어줄 뿐, 택배는 문 앞에 놔둬 달라고 말하는 편이다. 그만큼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아진 흉흉한 세상이다. 이런 판에 방문판매를 하는 살인마 얘기라니 오싹해진다. 아니, 애당초 문을 왜 열어주냐고! 이 사람들아! 세상이 어느 땐데.. 
실제로 일본에서는 지진 후 수돗물 오염도를 무료로 측정해준답시고 집에 들어와서는 방사능까지 걸러준다는 정수기를 비싸게 팔아치우는 방문판매 사기꾼들이 많아 한동안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가 그대로 담겨있어서 더 무섭다. 거기다 안 산다고 하면 조용히 돌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시겠어요? 아니면 살해당하시겠어요?" 
같은 으스스한 소리를 해대는 장정 6명의 방문판매원들이다. 어디, 이들과 겨뤄보겠는가? 

소설은 저널리스트 다지마가 아무것도 먹을 것 없는 집에서 굶어죽은 28세 엄마와 5살짜리 딸 모녀를 취재하면서 시작된다. 자신의 형이 혼자 살다가 몇 년 전 고독사 했기에 유독 그런 안타까운 죽음에 관심이 많았던 다지마는 모녀가 죽기 직전 수돗물까지 모조리 끊긴 상태에서 죽었다는 것을 알고 모녀의 상황을 방관한 수도 당국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것을 방향으로 잡고 사건을 조사 중이다. 그러던 중 모녀의 죽음 현장에서 과거 살인사건에 가담했던 한 남자의 지문이 나온다. 거기다 그 주변에서 방문판매업자에게 살인당하는 노부부 사건이 생겨나는데... 이 무시무시한 방문판매 업자들은 누구이며, 모녀의 죽음과 관계가 있는 걸까? 

일단 소재는 무척 흥미를 끈다. 집안에서 아사해버린 젊은 모녀와 방문판매업자의 살인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어떻게 이어붙여 풀어냈을지 무척 기대를 하고 읽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어쩌면 방문판매 살인은 하나의 트릭이었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 사이의 관계가 정신없고 좀 억지스러워서 사실은 좀 지루했다ㅠ 안 그래도 일본인 이름에 약한데 등장인물이 많아 정신없었던 데다 결론은 좀 허무하달까. 읽는 사람마다 좀 다르게 느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재미있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좀 엉뚱하다는 느낌이다.  

내가 이 작가의 작품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재밌게 읽었다는 다른 사람들의 평도 많으니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들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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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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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끝에 맴도는 말을 
품고 살았다. 

누군가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올 때가 
있었고, 내가 누군가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았다. 

뜨거운 것이 목울대까지 맺혀 
올라와 혀끝에
매달릴 때마다 
썼다. 쓰는 수밖에
없었다.

(중략)

쓰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사실을 
진리인 양 
되새긴다. 

생각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아도 
마음으로 아는 일이고, 
누군가의 손에
내 마른 손을 얹는 일이고, 
누군가를 품고, 
순리대로 떠나보내는
일이다. 
<프롤로그 작가의 말 중에서>

에세이의 프롤로그를 읽다가, 책을 읽기도 전에 울컥했다. 아픈 누군가를 바라보다가 괜찮냐고 묻는 것, 아프지만 씩씩한 척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을 때 별것도 아닌 그 한마디로 목울대가 뜨거워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리라.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고, 마음으로 아는 것이고, 괜히 쓸쓸해지는 것이고, 때론 혼자 히죽 웃게 되는 일이다.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 했어도>는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저자가 쓴 짧은 글들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에세이집이라고는 하지만 저자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저자가 사랑하는 작가와 책, 그림,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라 책을 살짝 들춰봤을 때 낯익은(하지만 대부분은 이름만 아는) 작가 이름이 많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기대를 했다. 하지만 작가의 단상 위주로 짧게만 언급하고 넘어가는 글들이 많아 전반적으로는 내용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긴 한다.  감성적인 제목에 비해 내용은 불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단상이 주를 이루는 것이다. 제목에서 느끼는 감성을 기대하고 책을 읽는 분들에게는 다소 의외의 내용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책이나 예술에 조예가 깊은 분들께는 또 다른 기쁨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작가의 서재였다. 저자 함정임은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달맞이 언덕에 살고 있다. 어린 시절을 부산 해운대 쪽에서 보냈던 터라 달맞이 길은 나에게도 익숙한 곳이다. 지금은 멀리 떠나와 살기에 아주 가끔씩만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해 마음먹고 찾는 곳이 되었지만. 

소설가란 족속은 세상의 사라져가는 모든 것을 끝까지 사랑하는 인간. 나는 틈만 나면 바닷가 언덕에서 해안가 철길로 달려 내려간다. 해가 뜨는 아침에는 해와 정면으로 맞서서 동쪽, 구덕포 지나 송정 쪽으로 걷고,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에는 청사포 지나 해운대 쪽으로 걷는다. 청사포를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자리 잡은 구덕포와 미포는 황석영의 걸작 단편 <삼포 가는 길>의 ‘삼포’는 아니지만, 포구마다 그에 못지않은 사연을 품고 있어 누구든 이곳에 며칠 머물며 또 다른 <삼포 가는 길>을 꿈꾸기 좋은 곳이다. 
<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 했어도 p.94 >

해를 정면으로 맞서서 해가 떠있는 방향을 따라 송정 쪽으로, 해운대 쪽으로 걷는다는 저자의 생활이 부러웠다. 바다가 옆에 있으면 확실히 그만의 예술적인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다. 갑자기 창 너머로 넘실거리는 바다가 보이는 서재가 간절해졌다. 

그런 서재에서 
끝없이 무언가를 끄적거리며
나는 괜찮은지, 
당신은 괜찮은지 묻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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