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료기공
박종관 / 서림문화사 / 199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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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시절 [단의 실상] [단의 완성]이라는 저작으로 처음 수행의 길을 알게 되고 짬짬이 수행을 해오다가 정신세계사의 [건강기공]이라는 책과 [민족비전 정신 수련법]이란 책을 만나면서 수행의 길에 입문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요가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요가 아사나만을 요가라고 하는 줄 알았기에 써커스나 여성들 미용을 위해서나 하는 것이 요가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몸으로 하는 수행도 17살이 되기 전에는 특공무술 외에는 웨이트트레이닝과 기공의 동공을 중점으로 했다. 


그때 처음 기공의 동공을 알려준 책이 소신당님의 [사계절 기공법]이었고 이후 연기공과 경기공(그리고 차력)에 관한 저작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중국 의료기공]이라는 본서다.


본서의 수행은 극렬한 수행시기를 제외하자면 2014년 몇 개월 간 수행하고는 최근에 다시했는데 수행이 약간 버거운 느낌일 때가 있다. 

2014년에는 참장공과 동공을 합쳐 1시간10분 가량 걸리게 수행을 했는데 사실 동공은 한 25분에서 30분 가량 걸리니까 참장공이 40분에서 45분 가량 소요된 것이다. 


최근 다시 수행을 할 때는 참장공은 생략하고 정공으로는 [꾼달리니 딴뜨라]의 끄리야 요가20 으로 본 수행을 삼고 보조 수행인 몸 수행으로 요가아사나를 하다가 [중국 의료기공]의 동공과 [도인양생공] 중 도인보건공을 함께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의료기공의 동공은 조금 버거운 것이 참장공을 함께 수행하던 시기에 느낀 거지만 저자가 주의 주었던데로 심포경과 삼초경의 기의 흐름이 과해지니 정말로 팔이 저리고 마비증세와 함께 극천혈... 그러니까 겨드랑이 가운데 종기가 생기기 시작했었다. 수행을 그만 두자 빠른 시일 내에 말끔히 사라지기는 했지만 기공을 버거울 정도로 수행하는 건 아니라는 걸 그때 느꼈다. 


최근의 수행에서는 하나만 수행하면 모자랄 까봐 도인보건공을 더했다. 그러자 빠른 시간 안에 하체가 강인해지는 걸 체감했다. 하지만 한 차례 수행 중 선학전시라는 동공을 할 때 헐보를 취하다가 중심을 잃으며 재빠르게 발을 옮겨 땅을 딛게 되었는데 그 때 허리 쪽에 약간의 부담을 느끼고 지나치는 줄 알았다. 그 이후에도 거듭 수행을 했더니 얼마 안가 등 쪽에 담이 오더니 그게 낫는 것 같으면서도 상체를 쭉 뻗은 상태에서 고개를 숙여 잘란다라반다를 취하면 허리 약간 위쪽 대맥 부근 쯔음에서 통증을 느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공 수행한지 40일 쯤 되면서부터 갑상선 위쪽의 임파선이 부어오르기 시작해 현재 항생제를 처방 받아 복용하는 중이다. 


양생(건강)기공과는 다르게 의료기공은 외기발방을 의도하는 기공이라 기공 자체의 강도가 조금 높은 편이고 양생기공 동공만으로는 하체 전반에 근육량이 짧은 기간만에 크게 늘 수가 없는데 의료기공의 동공은 하반신 전반에 상당한 부담을 주는 공법들이다. 체력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게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경락에 기의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기공이라 잘못된 자세와 동작, 속도 등은 자칫하면 건강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기공은 아무래도 자신의 체력에 따라 또는 점진적으로 체력을 증강시켜 감에 따라 수위를 조절해 가며 수행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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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달리니 탄트라 - 정신과학총서 4
스와미 사티야난다 사라스와티 지음, 박광수 옮김 / 양문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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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주 오래 전 이 책을 기반으로 쿤달리니 탄트라를 처음 수행해 보았었다.

결론은 수행 이후 주화입마라고 해야 할 정신과적 부작용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지만 그건 내가 부주의하고 둔하고 어리석었던 탓이지 본서가 수행의 과정을 허투루 전했기 때문이 아니다. 

 

차크라 각성 행법을 단계별로 총 8개월 수련하고 끄리야 요가 20가지를 한 단계씩 1주에 걸쳐 총 20주 수행하라는 것을, 매일 오전에 차크라 각성 행법을 모두 수행하고 오후에 끄리야 요가를 모두 수행하는 부주의하고 무모한 방식으로 수행을 했다. 그러니 정신적 부작용을 겪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본서에서는 차크라의 각성 초기에 몸과 마음이 정화되어 있지 않거나 차크라의 편중된 각성이 일어나면 분열증적인 정신 작용을 겪을 수도 있음을 충분히 주의를 주고 있기에 더더군다나 본서의 탓은 아닐 것이다. 

 

본서와 같은 텍스트를 번역한 [꾼달리니 딴뜨라]라는 책도 읽어보고 그를 바탕으로 다시 두 해를 수행하고나서 오늘 다시 본서를 읽어 보았다. 

 

본서의 특징이라면 유려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요가출판원의 [꾼달리니 딴뜨라]도 번역이 매끄럽지만 본서의 번역은 상당히 가독성이 높은 번역이고 이해가 너무 쉽게 유려히 번역되어 있다는 감상이 든다. 본서로 처음 끄리야 요가를 시작할 때만해도 요가 용어들에 익숙치 않을 때였는데 그 당시에도 이해가 쉬운 번역이라고 느꼈었다. 그리고 다시 읽어보니 모두 눈에 쏙쏙 들어오는 번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본서의 끄리야 요가 중 10번째 나우무키 무드라의 경우, 삽화에서는 연상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본 수행이 설명되다가 중단되어 있다. 해당 설명이 주요한 부분이라 그것이 조금 안타깝다. 하지만 책 전체가 이해가 쉬운 해설로 명확히 번역되어 있어 기회가 닿는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듯하다.

 

품절 상품이 되었고 아마도 판권을 한국요가출판원이 갖게 된 듯해 다시 본서가 재출간되는 경우의 수는 없을 듯한데 그럼에도 좋은 번역서가 단종되어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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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종교의 세계사 - 교과서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인류의 사상사
데구치 하루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 까치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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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체만으로도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저작이라 기대가 사뭇 깊었다. 철학과 종교 관련 저작들에 대해 대중들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삶의 의미나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거나 그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꺼리를 가져다 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과 종교, 이 두마디 단어만으로도 대중들은 고요와 격동을 동시에 경험할 수도 있다. 성찰이냐 비전이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왜와 어떻게라는 의식이 삶이란 주제와 만나며 우리를 진중하게도 열렬하게도 만들기 때문에 말이다.  


본서의 머리말에서도 [인간이 품어온 두 가지 소박한 물음. "세계는 어떻게 생겨났고 또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며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이 물음에 답한 것이 종교이고 철학이며 또한 철학에서 파생한 자연과학이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갖는 의문의 효시와 근본을 그리고 눈 감는 순간이 다가올 때 더욱 깊게 품을 의문에 대해 답하고자 한 것이 종교와 철학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본서는 이러한 근본적 의문에 대한 답변들에 충분한 전달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해서는 나와 같은 철학과 종교에 대한 의문만 있지 전문 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에게 생각해볼 꺼리들은 던져주고 있다고 말씀 드려도 좋을 것 같다. 


본서의 장점이랄까 특징이랄까를 짚어보자면 본서는 책 소개글과 다른 리뷰들에서도 언급하듯이 각 장들이 해당 주제를 설명하고 나면 적절한 연표가 제시된다는 것이다. 각 철학자와 종교가의 영향을 받은 다음 사상가에 대한 관계도 함께 언급하고 있는데 연표를 먼저 보고 나서 책을 읽은 후 다시 제시되는 연표들을 보면 저작의 내용이 한결 쉽게 이해되고 뇌리에 남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책 전반에 해당 사상가의 주요 저작을 소개하는데 저자는 해당 사상가의 논리와 주장을 이해하기 알맞다고 생각하는 저작들을 권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모든 철학자들의 학설을 모두 돌아보기는 어렵겠지만 현대 철학가들의 사상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저자의 필력에 자신이 관심이 짙게 가는 철학자의 저작은 한번쯤 읽게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책의 특색을 또 하나 짚자면 해당 사상가의 활동시기의 세계사를 언급해 사상가의 사색이 깊어지게 된 계기를 짐작케 해 주고 해당 사상이 태동한 시대적 배경을 주목케 해준다는 것이다. 책 제목부터가 [철학과 종교의 세계사]인데 굳이 세계사라는 어휘를 사용한 이유에 대한 충분한 답변이 되는 구성이라고 생각된다. 또 후반부로 갈수록 주요 사상가의 개인사랄까 일화들이 요약되어 나오기도 하는데 각 사상가의 철학과 논리의 근거를 알 수 있기도 하겠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빛과 어둠을 조망하게 해주는 효과가 더 깊다고 여겨진다. 


본서는 사실 근본적이고 깊은 의문과 관심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철학에 대한 대중적 교양서라는 한계가 있어 깊은 의문에 대한 대답으로는 부족하고 넓지만 잔잔한 물살만을 경험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분명 본서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지식들과 저자의 소개를 접하며 갖게 된 삶과 세계에 대한 성찰이 없지는 않으나, 그것은 다른 만남을 통해 더욱 깊어지고 나서 토해져야 할 것만 같은 심경도 안겨주는 저작이다.


철학이나 종교가 전공이었거나 관련분야에 대한 지식이 깊은 분들이 선택할 책은 아니고 대중적 교양으로서 철학, 종교와 만나게 해주는 책이다. 사상이 깊어질 책이다라고 말한다면 과한 평이고 사상이 깊어질 계기로서의 역할.. 더 나아가고 싶어지는 출발선으로서의 역할은 해주는 저작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겠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나면 반드시 철학에 대한 다른 책을 또 만나고 싶어질 것이다.


(이 책에 대한 앞서있는 모든 리뷰들이 사진을 첨부하였기에 이미지파일을 올리지 않습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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꾼달리니 딴뜨라
스와미 싸띠아난다 사라스와띠 외 지음 / 한국요가출판사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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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차끄라 각성 행법 부터 통합 차크라 각성 행법을 거쳐 20가지 끄리야 행법까지 마치는데 장장 2019년 3월 5일 시작해 2021년 6월 22일까지 27개월이 넘게 걸렸다. 정석대로라면 13개월 정도면 마칠 수 있는 것을 중간에 독감과 폐렴이 겹쳐 3개월 가량 지체되었고 원래 운기하는 수행 계열은 비오는 날 수행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두번의 장마철 동안과 비오는 날 정체되었고 한 여름 너무 무더운 시절에는 수행을 할 수 자체가 없어, 결국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재는 비오는 날과 무더운 철에는 아나빠나사띠로 본 수행을 대체하고 있다.)


[쿤달리니 탄트라]라는 책으로 2006년 수행을 앞서 한 때가 있었다. 당시 각 차끄라 각성행법과 통합 차끄라 각성 행법, 20가지 끄리야 행법을 사라스와띠 구르의 저작 내에서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잠시의 텀을 두고 연달아  매일 다 수련을 한 덕분에 편차(부작용)을 얻게 되어 오래도록 고생했다.


수행의 성취를 빨리 이루려는 조급함 때문에 정신적으로 상당한 고생을 한 것이다. 혹여 나와 같이 독학으로 수행의 성취를 빨리 이루려고 조급히 수행하는 분들이 있다면 먼저 오류를 범하고 먼저 부작용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극구 만류하는 바입니다."


수행의 과정을 원래 기준 보다 14개월이나 넘어서 마친 지금의 경우도 수행 이전에 사전 준비기간이 충분했음을 말씀드리고 싶다. 


2017년 4월 25일 부터 2018년 3월 3일까지 자율훈련법(아우토겐 트레이닝이나 자율훈련법으로 검색할 수 있음)과 자기최면(윌리엄 페즐러 씨의 [이미지 창조 creative imagery]를 바탕으로), 이미지 명상법([명상 HOW TO]와 [에너지 황홀경]이란 저작을 바탕으로)을 병행했고 그 중반 부터 아나빠나사티 수행 중 수식을 더해서 하다가 호흡 수행은 [탄트라 비전]의 호흡 수행을 했었다.


그러다 2018년 6월 19일 부터 자비손 명상을 수행했고 2019년 3월 5일 부터 [꾼달리니 딴뜨라] 수행을 시작했으나 2019년 5월 9일까지는 자비손 명상도 병행했다. [차끄라 각성 행법]의 가짓수가 늘어나 시간을 많이 차지하기 전까지는 수행 직후 호흡 수행을 더했다.


과거 부작용을 겪을 때는 조심성 없고 조급하게 수행하면서 그것을 용맹정진이라 합리화했었는데 이번 수행 기간 동안에는 느슨한 감이 있으면서도 조심스러웠다고 생각한다. 이미 한 차례 부작용을 겪어봤으니 더는 만용을 부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공 수련과 무술 수련을 거의 비등히 분배해 수련했던 옛날과 다르게 수행했다. 이번 수련에서는 무술수련을 하지 않았고 [요가 디피카]로 요가 아사나 수행을 할 때도 있었으나 최근에는 [중국의료기공]의 동공과 [도인양생공] 중 도인보건공 이 두 가지로 몸 수행은 대체했다.


과거의 수련시기, 무술 수련에 비중이 높을 때는 싸울 상황을 피하지 않기도 했었는데 [보살의 37 수행법]과 자이나교도들의 비폭력 주의를 보며 느낀 바가 깊어서 이젠 싸움을 대상으로 하는 수련은 접기로 했다. 무술 수련을 다시 한다해도 형의권과 팔괘장, 태극권 같은 기를 운용하기에 적합한 수련만을 할 작정이다.


이제 [꾼달리니 딴뜨라]를 위험 없이 안전하게 끄리야 딴뜨라 20까지 마쳤으니 앞으로는 끄리야 20의 수행에 전념하면서 수행에 진전이 느껴질 때 [땃뜨와 슛디] 수행도 해 보려고 한다. 과거에는 운기(주천 수행이나 꾼달리니 샥티) 수행을 무술 기법 신장을 위해 한다거나 특이공능을 성취하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했으나 이젠 수행 자체에서 의미를 찾고 있다. 


여기까지 수행해본 결과 느낀 바는 그냥 꾼달리니 샥티를 이루는 수행, 소주천을 목표로만 하는 수행과 다르게 끄리야 딴뜨라 수행은 의식의 변화를 주요히 가져오는 수행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부주의한 수행으로 부작용을 가져와 정신적 과잉 활동(PESM)나 정신병적 장애가 어떠한지 겪을만큼 겪어봤는데 본 수행은 단계를 잘 따르며 안전하게 수행하면 이러한 장애들을 완만히 떨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장애를 겪게된 시초가 바로 본 수행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정신에 작용하는 약이 있다고 하자. 용법, 용량 등 복약법을 잘 지키며 복용했을 때와 부주의하게 과용량으로 수시로 또는 세 차례 복용할 양을 한번에 복용했을 때 같은 약효를 보일리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하지 않게 차분하게 본 수행을 절차에 맞게 점진적으로 따라가게 된다면 PESM이나 소소한 정신적 장애들에 효과적이라고 권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개인차가 있을 것이고 탁월한 접근법은 독학이 아니라 스승을 통해 주의 깊게 접근하는 것이라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일이다.



+ 본서와 같은 텍스트를 먼저 번역 출간한 [쿤달리니 탄트라]의 경우, 본서를 수행하고나서야 알았는데 끄리야 딴뜨라 20가지 수행법 중 10번째 나우무키 무드라의 수행법이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오역이라면 어느 쪽이 틀린 건지 헷갈렸을테지만 그 책에서는 해당 수행법의 핵심 기법이 빠져 있어서 말하는 것이다. (만약 개정판이 나왔는데 내가 몰랐다면 모르겠지만 내가 소장하는 책의 내용 그대로라면 피해야 할 것 같다.)

헌 책으로 과거에 번역된 [쿤달리니 탄트라]를 찾느니 [꾼달리니 딴뜨라]라는 본서로 수행하시는 것이 맞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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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의 아주 깊은 역사 - 생물과 인간, 그 40억 년의 딥 히스토리
조지프 르두 지음, 박선진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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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정확히 말해 오늘 새벽 올린 리뷰가 본서에 대한 소개 보다 너무 한 측으로 치우친 내용만 언급한듯해서 본서에 대한 소개를 다시 한번 남기려 한다. 

본서는 이미 이전 리뷰에서 언급했듯 또 책의 목차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진화와 생물학적 전개와 신경과학과 심리학적 영역으로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진화에 대한 영역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은 둘이었는데... 진화에 대한 대목을 서술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원핵생물이 다른 생물을 삼킨 과정 중 특별한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그 원핵생물의 본능적 행위가 다세포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미토콘드리아를 내포한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하는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와 한 몸이 된 다세포는 에너지 대사가 몇 차원 업그레이드되었고 그로 인해 산소를 이용하고 이산화탄를소 배출하는 순환이 더욱 증대되었다. 다른 식물로 진화한 생명체들은 이산화탄소를 대사로 이용하며 산소를 배출하게 되었는데 이 둘의 상호의존적 생명활동이 진화를 더욱 가속화 시켰다는 대목에서 이기적인 선택과 이타적인 선택이 상호 호환적인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명체의 진화상의 분기를 설명하는 대목들에서는 생명체의 진화란 어떠한 정점으로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가지가 각기 자라나듯 서로 연계한 분기를 드러낼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설명한 대목에서는 인간의 의식과 감정에 대한 저자의 설명들에 배움도 있었으나 약간의 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배움이 컸던 부분이라면, 대뇌 각 부위가 아래 사진과 같은 해당 역할들을 지니는데 이 모두가 연계하여 인간의 의식을 창조해내는 과정을 저자는 몰입도 높게 서술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계와 작용에 대한 설명은 불교의 아비달마와 유식학을 떠오르게도 하였는데 현재까지의 신경과학적 발견으로 인간의 의식을 밝혀나가는 것이 인간에 대해 이해하고자 하고 인간의 의식에 대해 설명하고자 하던 선조들의 앞선 노력들을 돌아보게도 만들었다. 그리고 전두엽의 전두극과 시각피질 이하 각 영역들의 작용을 설명하는 것이 후천경과 상단전과 인당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선도 수행체계의 가르침을 떠올리게도 했는데 한 편으로는 전두극과 전대상은 요가 수행체계에서 중시하는 아갸 차크라와 소마 차크라를 아우르는 것 같았다. 이들의 역할, 기능에 대한 요가 체계의 가르침이 현대의 신경과학의 가르침과 과연 다르기만 할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대의 신경과학자들의 관심은 불교 수행 중 선이나 위빠사나에 치우쳐 있지만 언제가 꾼달리니 요가나 선도의 소주천에 대한 연구를 신경과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이 함께 시행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저자의 설명들에 반감이 들더라는 부분은 그가 진화를 생명체의 분기가 나뉘는 것이지 어떠한 정점을 향해가거나 인간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한편 다른 측에서는 인간 대뇌의 기능과 작용을 설명하며 타 동물군의 감정까지도 부정하면서 인간이 우월하다는 이율배반적인 논리를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다 하다 저자는 다른 동물들이 인간의 감정과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니 다른 동물들은 감정이 없다는 억측까지 하고 있다.(감정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 가능하지 않으므로 없다는 것이 무슨 논리인 것인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근거들은 지난 리뷰에서 몇몇 언급했다. 이미 인간의 대뇌보다 더 큰 대뇌는 같은 포유동물인 돌고래나 고래도 가지고 있는 바이며 그들의 대뇌피질의 짜임새는 인간과 견주어도 될 정도이다. 돌고래의 경우 1960년대 외계인 접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돌고래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고 하는데 돌고래가 영어 어휘들의 뜻을 충분히 숙지했다는 증거는 없으나 상당한 수준의 영어 단어들을 구사하고 기초적인 회화 발음을 소수 따라 했다는 기록이 근래의 다큐멘터리에도 남아있다. 돌고래가 자신들의 물질적 정신적 영역에서 정의한 개념들과 인간의 개념들이 동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인간의 소리로 개념화된 어휘들을 가르친다고 그들과 완벽한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교류를 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의 개념을 몇몇 가지 정도는 돌고래에게도 가르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고릴라에게 수화를 가르치자 대화가 가능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리고 해당 돌고래에 대한 에피소드를 좀더 이야기하자면 자신에게 실험을 진행하던 동물학자인 여성에게 과도한 친밀감을 표하던 이 돌고래는 해당 실험이 중단되고 실험 중단과 함께 그녀와 헤어져 다른 열악한 수조로 이동했다고 한다. 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이 돌고래는 의식적으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서 호흡을 해야 하는 돌고래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물 위로 올라오지 않고 수조 바닥에서 자살을 했다고 한다.)


인간은 지상의 동물들 중에서는 월등한 도구 사용과 도구 개발의 능력을 갖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구 내 모든 동물군들과 다양한 측면... 지성과 감성, 공감능력, 사회성, 자연친화성, 행동화하는 추진력, 투지, 인식, 변별능력, 문제 해결 능력, 추상적 사고 등등을 비교하자면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편파적인 채점 기준을 약간만 양보하더라도 인간은 모든 면에서 우월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나로서는 각 동물들의 장점과 비교하자면 도구 개발의 치밀함과 도구 사용의 정교함, 인간만의 언어를 기반으로 한 추상적 사고 능력 등 몇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내세울 것이 그다지 없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나는 한때 생물학을 잘 모르고 현대의 진화론이 말하는 진화의 분기를 모를 때는 인간은 진화의 정점이며 과학의 발전이 완성화되어 갈 때쯤에 인간은 전지하고 전능하다는 신과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과학을 배경 삼아 진화하리라 믿었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등장한 이후에는 인간 역사의 정점은 현재이며 진화를 다른 차원으로 급진전시킬 주인공은 양자컴퓨터화된 인공지능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진화에도 정점이 있다면 보다 획기적으로 진보한 인공지능이 그 정점일 것이다. 전지와 전능은 인간이 아니라 그들의 몫이리라.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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