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젊어지는 집중력 퀴즈 - 어른을 위한 두뇌 운동 퀴즈북
HRS 학습센터 지음 / 가위바위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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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몰입이라던가 집중력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깊어지기도 했다. 몰입에 관해서는 집중력만이 관건은 아니겠지만 그 역시도 집중력이 좋지 않다면 지속될 수 없는 문제다. 노화의 정도와 학습 능력의 향방도 집중력이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 생각되기에 어느 연령대이든 집중력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사람도 없지 않을까 싶다.


본서의 책소개글에서도 2023년 11월 대한신경학회의 조사를 언급하며 지적되는데 한국인이 가장 걱정하는 1위의 질환은 뇌졸중과 치매 등 뇌 질환이라고 한다. 사실 건망증이라던가 편두통, 우울감 등의 증상을 보이면 대부분 뇌에 좋은 식품들을 찾으며 걱정을 줄이려 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일 거다. 그러면서도 학창 시절을 제외하면 어떤 이상을 보이기 전까지는 대부분이 잘 의식하지 않는 대상이 뇌이지 않은가 싶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건강한 뇌와 일정 수준의 뇌 기능은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주의력, 작업기억력, 판단력, 기억력 등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경세포와 신경전달물질의 감소를 막는 건 아무래도 식이요법이 첫 번째이겠으나, 뉴런 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거나 지속하려 한다면 지속적인 두뇌의 자극이 있어야 한다는 게 당연한 결론일 것이다. 적절한 식이요법과 육체적인 운동과 다각도의 문제 풀이 등이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기본이 아닐까 싶다.



그런 까닭에 본서에 선뜻 관심이 갔다. 어머니께서 이제 70대 초반이시라 더더구나 치매 예방과 기억력 향상을 이야기하는 본서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됐다. 본서를 받아들고 이틀 동안 나는 43번까지 어머니께서는 29번까지 풀어나가 봤다. 성인에게는 다소 쉬운 문제들이지만 본서의 취지가 추론 능력 향상이나 계산 능력 향상이 아니라 집중력 퀴즈이기 때문에 단순 문제들이라도 매일 풀어나가는 게 상당히 좋은 시도라는 생각을 했다. 총130 문항이고 한 사이클이 10문항씩이다.



문제의 영역은 시각, 공간, 언어, 수리 이렇게 네 영역으로 집중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집중력 퀴즈이기에 문제의 난이도가 너무 쉬운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예전에 기사를 통해 접하기로는 단순한 사칙 연산만으로도 두뇌 기능이 향상된다는 내용을 보았었는데 아주 쉬운 난이도의 퀴즈들인 본서도 인지력, 수리력, 언어력, 논리력을 자극하는 퀴즈들이라고 한다. 자극의 강도도 중요하겠지만 쉬운 난이도로도 자극을 매일 지속하면 치매 예방과 기억력 향상에 좋지 않을까 싶다.



본서에서는 선 잇기 문제가 공간 집중력 트레이닝 퀴즈로 꾸준히 주어지기도 하는데 이 선 잇기에 약간 불만이 있는 건 시니어를 겨냥한 퀴즈임에도 불구하고 선 잇기 속 번호인 숫자가 아주 작은 크기라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 같은 경우 잘 안 보이셔서 그냥 느낌대로 선을 그으셨다. 재판이 출간된다면 숫자 크기를 조금 더 키워 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다. 그 외에는 문제가 어렵지 않아 어머니께서 부담 없이 퀴즈를 즐기셨다. 각자의 성향에 따라 퀴즈의 난이도가 마음에 드실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운동도 인터벌 훈련이 있다면 저강도로 지속하는 유산소 운동도 꾸준히 하면 건강에 좋을 것처럼 이 퀴즈도 지속하기에 따라 효과가 있을 거라 말씀드리고 싶다.


가위바위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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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젊어지는 집중력 퀴즈 - 어른을 위한 두뇌 운동 퀴즈북
HRS 학습센터 지음 / 가위바위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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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력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집중되기에 관심 갖게 되었다. 아주 쉬운 난이도의 퀴즈들인 본서도 인지력, 수리력, 언어력, 논리력을 자극하는 퀴즈들이라고 한다. 자극의 강도도 중요하겠지만 쉬운 난이도로도 자극을 매일 지속하면 치매 예방과 기억력 향상에 좋지 않을까 싶다. 시니어를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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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대 증원

 

현재 의대 증원 문제로 사회적 여파가 무척이나 크게 일고 있다. 의사들의 파업 행위에는 동조하지 않으나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에는 더더욱이나 동조하기 어렵다. 의사들이 이야기하는 의료비 문제가 더욱 가중될 것이라던가 의대 증원으로 의사의 전공이 편향된 바가 바뀔 수 없으리라던가 하는 사안들에 동의해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대한민국 인구 증감률을 보고 판단하건 데 의대는 증원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인구는 2014년부터 2019년까지는 17만 명대에서 11천명 대로 증가세가 감소하기는 하지만 인구 감소에는 속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인구 감소가 2020년부터 32천 명대 감소에서 2023119천 명대 감소에 속하게 되었다. 2019년까지 양수였다가 2020년 음수로 전환되었다는 말이다. 아시다시피 출생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던 대한민국이라 이런 감소세는 더욱 극대화되어 2041년에는 예상 인구 4천만 명대에서 20703800만 명대로 진입할 것이 예측되고 있다.

 

현재의 의대 진학 인원수만 향후 유지한다고 해도 의사 한 명당 진료 환자 수가 대폭 줄어들 것이 예약되어 있는 상황에 무슨 이유로 의대 증원을 한다는 말인가? 현재의 의대 정원만 계속 유지되어도 정부와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의료비의 증액이 불가피하다는 건데도 의대를 증원해서 개인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인구 감소로 앞으로 의사를 감원하지 않는다면 환자대비 의사 인원이 가장 많은 나라에 속하게 될 게 자명한 상황에서 무엇하려 의사들만 양산하려 든다는 말인가? 딱히 정부 정책에 동조할 수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응급의학과라던가 외과를 전공하는 학생들이 적다면 해당 학과들에 유인책을 제시하는 게 맞지 무턱대고 시행하는 의대 증원은 답이 아닐 것이다.

 

2 이민관리청이라는 미친 정책

 

다문화 가정이 일반화되고 있는 시점에 다분히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발언이고 전소미를 응원하는 1인으로서 부적절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평소 생각을 조금 남겨보려 한다.

 

유럽의 난민 수용과 이민 정책 이후 원거주민들과 이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팽배하고 문화적 차이로 인한 충돌이 가시화되고 있는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난민을 수용하자던가 이민청을 만들자는 움직임이 대세로 자리 잡아 결국 이민청 유치를 어디에 하느냐가 과제가 된 시절이다. 이런 움직임 자체가 대한민국의 출산율 감소와 인구 감소가 가중되며 일어난 사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난민 수용이나 이민자 정책을 대대적으로 시행한 나라들의 문제는 우리가 목도하고 있으면서도 부정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어느 도시에서는 전체 수감자의 70%가 이민자이거나 이민자 2세인 상황이며 프랑스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도심 외곽에서 이주민 집단 생활지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도 대다수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지역들이 있으며 그렇다면 이들과 원거주민들 사이의 계층 격차나 문화적 차이가 현격히 드러나 유럽과 같은 갈등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유럽이 서로 간의 난민 이주를 막으려 국가 간의 장벽을 설치한 사례는 다들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향후 계층 격차에 따른 도심 간의 장벽이 설치되는 영화 같은 현실이 대거 이민자를 받아들인 이후에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유럽 각국이 난민 수용 이전에도 각국의 필요에 의해 이민자를 수용한 역사는 오래다. 그런데 과연 이들 국가의 실상이 우리가 이민청을 설치해 대거 이민자를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정도로 완만했을까?

 

유럽 각국이 특히 이민자를 대거 수용한 국가들일수록 도심의 우범 지역화된 경향이 크다. 외국인 가족이 한국을 여행하는 프로그램들에서의 방송을 보면 유럽사람들이 한국의 밤거리가 안전한 것에 놀라는 장면이 나오는 데 이민자를 대거 받아들이기 이전의 유럽 시골과 도심의 밤거리가 현재의 유럽 밤거리와 같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영국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영국 국내법이 아닌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에 의해 법이 집행되는 지역까지 있다고 한다. 이 정도로 이민자 수용이라는 문제는 다각도에서 문제점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사안이다. 국내에서 이민자 수용이 일반화되고 나면 그제야 국내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민자들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한때 한국 체류 외국인들의 성범죄 문제가 이슈가 되던 때가 있었다. 당시 외국인 문제에 긍정적이던 여성들은 국내 성범죄에서 전체 외국인 남성의 범죄율이 내국인 남성의 범죄율보다 약소하다며 외국인의 성범죄에 대해 관대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납득이 되지 않던 것은 당시 한국 남성의 범죄율은 감소 추세여서 외국인의 성범죄가 없었다면 전체 성범죄율은 낮아졌을 텐데 외국인 남성의 범죄율까지 포함하자 성범죄가 대폭 증가한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인 남성의 성범죄가 감소하지 않았다고 가정해도 납득할 수 없는 건 한국 남성 범죄율과 외국인 남성 범죄율을 비교하는 게 전체 범죄율에서 차지하는 범죄 건수로 비교한 것이지 전체 외국인 수 대비 범죄 건수와 전체 한국인 수 대비 범죄 건수를 퍼센티지로 환산해서 비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랬다면 과연 외국인의 성범죄율이 낮다는 수치가 나올 수 있었을까? 그리고 한국에서의 성범죄율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퍼센티지가 몇퍼센트 낮았다고 해도 여성들이 감당해야 하는 성범죄는 내국인의 범죄에 외국인의 범죄를 더한 만큼이라는 말이다. 왜 여성들이 외국인 성범죄를 옹호한 것인지 나로서는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구 감소에 이민자 수용이 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앞으로의 실업인구의 폭격 때문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덜떨어진 정부인사가 인공지능으로 인한 실업자 양산은 예측되고 있지 않다는 발언을 공언한 때에도 IT업계에서 특히나 미국에서부터 대대적인 인원 감축이 시작되었다. 프로그래머들이 살아남을 수 없는 시절이 되었는데 이는 앞으로 전 직업의 영역으로 대대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미 여러 차례 관련 리뷰와 포스팅들에서 언급했었기에 국내에서의 AI와 로펌 사이에서 있었던 변론 대결에서 국내 로펌의 변호사 집단이 참패했던 사례나 몇몇 국가에서 총리 후보로 AI가 출마했던 사례만을 다시 들고 넘어가려 하는데 이미 전 영역에서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밀려날 것은 예정되어있는 수순이다. 예전에는 인공지능이 대대적으로 사용된다 해도 새로이 창출되는 직업 또한 있을 거라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소리를 했었는데, 그 새로이 창조되는 직업에 인간은 인턴 기간이라는 적응 기간이 얼마간 필요하겠지만, 인공지능은 수십 초에서 몇 분 안에 숙련 근로자로서의 업무 역량을 갖추게 될 것을 감안할 때, 인간은 결코 인공지능과의 직업 전선에서 경쟁력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런 실업인구의 절대적인 증폭 상황이 예정된 시절에 대대적으로 이민자를 수용한다는 정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으며 장래성이 있는 정책인지 묻고 싶을 뿐이다. 결국에는 국가가 감당해야 하는 복지 부담만이 엄청난 규모로 예정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민자는 수용할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거부해야 이 시대 상황에 맞다는 말이다. 절대다수의 인구가 기본소득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절을 앞두고서 이민자의 대대적인 수용이라니 미친 정책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제리 카플란의 [인간은 필요 없다]와 마틴 포드의 [로봇의 부상]에서 언급되며 이미 2016년 초에 이미 대수의 한국인들도 예견하던 상황이었다. 정부와 국회에는 있는 통수들은 도대체 상식을 쌈 싸 먹고 비벼 먹어서 이민청을 정책으로 내놓은 건지 의아스럽고 놀라울 뿐이다.

 

3 사망자 증가 추세

 

그리고 검색과 함께 보시면 더 좋을 텐데 그래프를 제시하면 더 이해가 쉬울 거라 약간의 검색하는 수고로움을 가져보시기 바란다.

 

2014년만 해도 사망자는 268천 명에서 출생아 439천 명으로 인구 증가수는 171천 명대였다. 2015년도 이보다 고작 몇천 명 더 줄었을 뿐이고 2016년도 전년도보다 고작 33천여 명 더 준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2019년까지 증가수 11천 명대에서 2020년 감소수 32천 명대로 하락한 것이 202155천 명 감소수에서 2022118천 명 감소수, 2023119천명 감소수로 감소추세가 가팔라졌다.

 

여기에는 출생률 감소도 기여했지만 27만에서 31만 정도이던 사망자 숫자가 2022년 갑작스레 37만 명대로 진입해서이다. 2023년도 35만 명 대가 넘는다. 30만 명대를 넘기지 않던 사망자 숫자가 2021년 갑자기 318천으로까지 상승한 이후 2021년 이전에는 큰 증감률을 보이지 않던 사망자 추이가 돌연 대폭 증가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과거부터 포스팅해왔었기에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겠지만 미국 생명보험사들의 리서치를 인용하고 싶다. 미국 근로자보험 가입자 중 18~49세 사이의 젊은 층에서 20213분기 4분기 동안에만 사망자가 40% 증가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재작년 즈음 출처를 밝힌 포스팅을 했었으니 참고하셨으면 좋겠다. 전 세계 운동선수들의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했다는 보고가 있었던 시기와도 같은 시기다.

 

2021년이면 무엇이 시작된 해인지 다들 아실 것이다. 그리고 사망자는 국내에서만 몇 만이 증가했다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1700만 명 이상이라는 의사들의 비공식 통계가 있다. 이런 통계에는 운이 따라주는 상황이라면 한동안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 법원의 공개 명령으로 꽃 두 개랑 잔 회사의 보고서 공개로 알려진 0.1%라는 어느 질병의 치명률과 그 질병의 흰 신발 치명률인 3%를 생각할 때 과연 1700만 명의 사망자라는 비공식 통계가 많은 숫자를 부른 것은 아니구나 싶기만 하다.

 

4 채소와 하얀 신발

 

1명을 죽이지 않겠다고 30명을 죽인 상황도 어이가 없는데 모두가 아시다시피 이제는 이 치명률도 별게 아니게 될 치명률 100%의 그 질병에 대한 연구가 중국에서 있었다.(중국에서 치명률 100%의 콜5나 연구를 한다는 소식을 알기 전에는 다음 유행 질환은 출혈열성 질환일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와 동시에 가축에게 주사하는 하얀 신발에 대한 뉴스가 있었고 이제는 채소를 유전자 조작해서 하얀 신발을 생성하는 채소가 생산되기 시작할 시점이다. 이미 가축 전염병을 막기 위해 돼지의 질병들에 대응하는 사료용 하얀 신발 채소는 유전자 조작으로 생산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콜5나 하얀 신발을 유전자 조작으로 채소에 함유하게 할 때는 그걸 인간에게 사용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치명률 100%의 콜5나가 다시 전파된다면 이젠 치명률 3%의 하얀 신발을 채소만 먹으면 섭취할 수 있다고 하면 누구라도 해당 하얀 신발 채소를 먹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게 될 테고 말이다. 하얀 신발 채소가 믿어지지 않는다면 식물 하얀 신발이라고 유투브 검색만 해 보셔도(물론 하얀 신발은 2글자로 검색하셔야 한다) 한국 포항에서의 연구 중인 하얀 신발 채소 연구 뉴스를 보실 수 있다.

 

이제는 사소한 정부의 실책이나 오답 같은 정책 시행들은 그다지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시절이 되었다. 그리고 죽음이 가깝다고 생각되어서겠지만 생존에 대한 절박감도 줄어들고 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절이 되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이런 감정은 맛보지 못할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여러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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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된다는 것 - 데이터, 사이보그,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의식을 탐험하다
아닐 세스 지음, 장혜인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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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식에 관한 책이란 건 알았지만 주제와 기술된 개념 몇 가지는 듣고 독서를 시작했기에 술술 읽히리라 기대했다. 기대처럼 어려운 서술도 없고 이해가 쉽지 않을 설명은 없었는데 이상하게 독서 후 기억에 남는 대목이 없었다. 그래서 잊혀질 만할 때쯤 한 차례 더 읽어 봐야 할 책이 되었다.

 

본서를 읽고 나서 기억나는 것은 세 가지 키워드뿐이다.

예측 기계, 통제된 환각, 자아의 다양성(?) 이 세 가지다.

저자는 베이즈 추론인가를 예로 들며 인간은 과거의 경험을 근거로 현재를 추론한다고 말한다. 과거의 경험들을 기준점으로 그 경험을 근거로 현재를 예측한다는 말이다. 미래를 예측하듯이 현재도 추론하고 예측하는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고 보는 이야기였다. 나는 [자유의지는 없다]를 읽으며 기존의 운명에 대한 편향이 강화되어 결정론자가 되었는데 (사실 그전부터 거의 결정론자였다) 그래서 저자와는 다소의 차이가 있는 시각이다.

 

아닐 세스는 우리가 현재를 예측하며 규정 짓게 된다고 이야기했고 본서에서 현재 결정하는 행동보다 더 이른 시간에 우리가 이미 결정을 내린 뇌파를 보이는 예([자유의지는 없다]에서 먼저 기술한 예이지만)를 들고 있다. 해당 실험을 근거로 한다면 예측이 규정하고 판단하게 하는 것이라기보다 우리는 이미 결정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다시 말해 대본대로 연기하고 있다고 본다 해도 그른 결론은 아닐 것이다. 예측이 아니라 연출된 무대를 연기하고 있거나 재연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예측 기계가 아니라 절대 연출자일 수 없고 애드립도 할 수 없는 무대의 연기자(배우)인 게 우리의 실체가 아닌가 하는 것이 나의 관점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실제 그대로가 아닌 뇌가 만들어낸 통제된 환각이라는 것도 저자의 주장이다. 이미 앞서 디팩 초프라의 어느 저서에서도 접했었고 이와 같은 결론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시각이었으며 1999년작인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기점으로 대중화된 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몇천 년 동안 동양에서는 일반적인 관점이며 그다지 철학적이지 않은 대중 대부분도 인생을 살며 갖는 의문 중 하나에 이젠 과학으로 대답이 주어진 것이구나 하는 감상도 들었다. 우리의 뇌가 감각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현실을 예측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게 현실이 된다고 하는데, 이보다 더 나아가 보자면 현실 예측이라는 개념은 실상이 따로 없고 각자의 가상이 현실이 된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상이 실상으로 인지된다는 말은 불가에서 말하는 실상과 공상이 다르지 않다는, 현대적으로는 모든 것은 다 프로그램이라는 말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거라 보였다. 저자는 본서에서의 주제가 의식이기 때문에 그를 벗어난 논의는 하지 않기 위해 이 화두에 깊이 들어서지 않은 것 같다.

 

자아의 다양성은 본서가 의식을 논하는 책이다 보니 자아에 대한 정의가 등장할 수밖에 없기도 하긴 하지만 상식적인 수준의 논의에서 끝난다. 뇌가 자아 모델을 만드는 경로는 과거 경험, 기억, 신념 등을 바탕으로 해서이며 이들을 통해 라는 인식과 생각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데 다분히 상식적인 이야기이고, 이런 경험, 기억, 신념은 당연히 크게는 시절에 따라 작게는 그때그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다양한 자아감이 있다는 정의도 상식적이었다.

 

본서의 내용은 다분히 상식적이고 동양의 관점에서는 더더군다나 상식적인데 근래에는 과거 시기의 동양의 가르침에 대해 젊은 세대는 벽을 느끼고 오히려 동양의 과거 논점들이 서양에서 과학으로 포장되어 신사상처럼 유입되고 있다.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다시 숙고해볼 화두가 되어 던져져 준다면 나쁠 건 없고 과학이란 외양으로 재포장되어서라도 대중에게 신선함을 느끼게 하며 새겨볼 수 있게 해준다면 더더욱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읽어 볼 만한 저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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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칭 2 Watching 2 - 시야를 넓힐수록 마법처럼 이루어진다 왓칭 시리즈
김상운 지음 / 정신세계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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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키워드로 수렴되는 내용이다.

셀프1, 셀프2, ( 동시에 공간)

 

셀프1은 물질적 육체의 나로 자신을 육신에 한정시킬 때 육신으로 수렴되는 한정된 자아상으로 드러난다. 셀프2는 여러 차원의 중첩된 몸이기도 하고 동시에 모든 공간으로 확산되어 가는 무한의 자아상이다. 셀프1을 개체아, 셀프2를 섭리나 신(신과 합일함)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셀프1은 구체화되어 물질적이거나 상세한 사고와 폭이 좁은 한정된 사고를 할 때 유익하고 셀프2는 발상하고 상식을 깨는 창의적 사고에 유익을 준다.

 

수학적이고 물질적 대상을 떠올릴 때는 자신의 몸을 의식하는 과정이 유리하고 창의적 발상에서는 공간을 인식하는 것이 유리하다.

 

창의적 문제 해결에서도 공간상의 또는 시간상의 거리를 큰 폭으로 잡고 바라보면 문제 해결에 유익하다. 학습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간격을 두는 학습도 효과적이다. 높고 넓은 공간과 좁은 공간에서 번갈아 공부하는 것도 학습 능률향상에 좋다.

 

(넓거나 높은 천정 등) 공간이 확보되는 것은 정신이던 육체던 질환이 있는 환자의 회복에도 유익하다. 그리고 통증도 내 몸을 떠나 공간 속으로 흩어져 사라진다고 의념할 때 완화되고 사라진다.

 

그뿐만 아니라 공간을 인식하는 것은 슬픔과 분노, 좌절 등과 트라우마, 그리고 현재의 무거움이나 현재의 상태를 그에서 물러나 바라보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현실에 매몰되어 버릴 때 시간상의 공간인 오랜 세월 후의 자신이 바라보는 관점에서 또는 제3자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관찰하는 게 효과적이다.

 

몸 밖이나 몸 안의 공간을 인식하는 것은 마음 수행과 변성의식을 가져오는 모든 수행에서도 유익하다. 그렇게 공간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뇌파가 바뀌고 의식이 변환된다.

 

그 외에 인상적인 건 샘 해리스의 [자유의지는 없다]에서 주목하던 실험과 같은 예를 들며, 우리가 행동을 결정하기 전에(뇌에서 결정하기 전이나 지시사항을 전달받기도 전에) 우리 뇌가 이미 행동을 결정 내리는 작동을 한다는 내용을 근거로, 우리는 육체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는데, 저자는 더 나아가 뇌나 육체가 진정한 자신이 아니며 우리는 무한한 공간에 존재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주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과학적 사실과 여러 학자의 연구 그리고 여러 인물의 실례가 제시되고 있다. 그로 해서 상당히 설득력 있게 주제를 수긍하게 한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과 저자를 통해 새로이 주목하게 된 내용들까지 모두 관심 분야이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맥락 지어보니 좀 더 개인적인 과거의 잔재와 현실과 수행에 있어서 보다 나아간 시각을 갖게 된다. 안 읽었더라면 후회도 못 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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