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은 왜 싸우는가? - 정체성의 투쟁, 중동사 21장면
박정욱 지음 / 지식프레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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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동에서의 충돌이 본격적으로 확장될 우려가 큰 가운데 모호하게만 두었던 중동에 대한 상식을 확장하기 위해 중동 관련 저작들에 손이 갔다. 도서관의 유용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중동 관련서들을 몇몇 읽는 중인데 이 책이 그 두 번째 책이다.

 

부제가 [정체성의 투쟁, 중동사 21장면]이듯 중동사 전반을 아우르며 중동사에 주목할 대목들을 21개의 장으로 나누어 설명해주는 책이다.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은 날부터 예언자를 누가 계승하는가가 문제가 된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 오스만 제국, 이란이 시아파가 된 이야기, 사우드 가문과 와하비즘,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이라크가 자리잡은 배경, 터키 공화국의 성립, 이스라엘 건국, 1~4차 중동전쟁, 이슬람 원리주의의 성장, 레바논, 이란의 혁명, 이란-이라크 전쟁, 팔레스타인의 인티파다, 쿠르드족의 투쟁, 알카에다와 911 테러, 시리아 내전까지 중동사의 의미 깊은 대목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물론 중동의 역사 중 주목해야 할 대목이라던가 저자가 주목한 국가와 분쟁들에서 배제된 지역들의 역사는 언제든 역사적 중요성이 재정의되며 어디는 다시 줌인 되고 어디는 줌아웃 될지도 모를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의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낯선 이야기인 중동사를, 넓으면서도 맥락 깊게 설명해주는 저작이라는 감상이 들게 한다.

 

부제 마따나 이 책의 서술 전체가 중동에 정체성이 부여되고 그 정체성을 뚜렷이 하기 위해 투쟁하는 역사가 담긴 내용으로 이슬람 원리주의가 왜 그리 배타적이며 저항적인지 알 수 있기도 한 것이 오스만 제국을 패퇴시키고 중동의 지도를 재정립하려는 서구세력이 중동에서 행한 유럽 간의, 또 영국과 이슬람 간의, 또 유대인들을 향해서 한 삼중 조약이 문제가 되었고, 서구가 인도를 지키기 위해 이란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을 향했던 적대적 책략, 현대에 이르기까지 산유국들을 향한 책략들 그 외에도 이슬람 각국을 향했던 이익 추구의 행위들은 서구세력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외교 정책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침탈당하는 입장에서는 뼛속 깊이 아로새겨지는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서구세력들의 이런 양상은 이슬람의 의식있는 인물들이 정체성을 되찾고 공고히 하고자 하는 태도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와하비즘이 자정을 위해서였다면 이슬람 원리주의는 저항을 배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느껴졌다. 무슬림 형제단도,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쿠르드 노동자당도 외부와 자신을 선 그으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의지가 표출된 것이다. 그들은 저항함으로써 자신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저항하는 타자는 그들의 반경에서 멀던 가깝던 외부인 것이다. 자신들이 선 그은 이것이 무슬림이고 이것이 이슬람이라는 그 선보다도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저항 방식에 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저돌적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심정적인 한 부분으로는 우리는 이슬람이 저항하는 자세의 어느 치까지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일제강점기하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저격도 다 한발만이었는지, 도시락 폭탄도 단 한 명에게만 피해가 가도록 세밀히 조율되었는지, 독립운동단체들이 상대국 민간인들에게는 절대 인명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했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나라를 잃거나 자주적인 권리를 잃은 이들이 불균등한 무력차 앞에 놓였을 때 선택할 수 있는 하나는 테러일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상대국의 지식인이 나는 안다. 테러리스트의 슬픈 마음을”(코코아 한 잔 - 이시카와 다쿠보쿠)이라고 노래한다고 해서 그가 나라 잃고 자주적 권리 잃은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평화의 시대에 평화에 젖어버린 우리로서는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어렵다.

 

그저 그들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지만 과격하기에 문제는 커진다라던가 정치적인 인물들로 인해 사태가 확장되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는 이제 평화와 안락에 젖어 테러리스트의 심정이 우리 심정이던 날을 잊은 세대다. 그들의 심정과 그들의 견해는 우리에겐 이제 낯설다. 모순적이게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들과의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시절이 시대가 그런 아이러니에 우리를 몰아넣었다.

 

그들과 공존하는 법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잃어버린 자주적 권리를 되찾아 준다 해도 그들의 이슬람 원리주의는 그들 내부에서 곪아터지기 쉬운 상태 같다. 복종을 뜻하는 이슬람이라는 용어대로 복종하는 가운데 남는 여분으로의 여성 인권과 자유에 겨우 만족하는 그들이지만 언제까지 그런 상태로 머물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의 신본주의만큼이나 대다수 국가의 인본주의도 분명 문제는 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수긍할 때 인본주의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해도 신본주의에서는 문제를 수긍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금의 문명의 충돌을 거치고 잦아들 때 그들 내부의 격돌이 시작될 것이고 그런 내부의 격돌을 무마하기 위해 그들은 다시 외부의 적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돌고 도는 도돌이표 같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듭한다고 기독교도들이 찾는 예수 재림으로 오는 천년왕국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 천년왕국이 온다면 그건 온 민중이 자신의 뇌를 BCI 기술의 역설적인 작용으로 완벽히 기계에 통제당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해 주는 것 그 이상은 아닐 것이다.

 

너무 많이 나간 것 같은데 정리하자면, 이 시절을 알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격렬한 맥락들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 중 중동의 역사와 분쟁의 쟁점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해의 한 뼘을 위해 이 책이 그리고 저자가 해주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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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하와이 - 하와이를 가장 멋지게 여행하는 방법, 2023~2024년 최신판 리얼 시리즈
김화정 지음 / 한빛라이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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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라이프의 리얼 시리즈는 [리얼 푸껫 끄라비 피피]로 처음 만나보았었는데요.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전하는 여행 정보들이 유익했었습니다. 아직은 푸껫도 끄라비도 피피도 가보지는 못했지만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으로도 여행지만의 특색이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이번 [리얼 하와이]는 한때 한국의 해외 여행지 1순위이기도 했던 하와이를 어떻게 담고 있으려나 기대되기도 했습니다. 하와이가 워낙 경관이 수려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곳이라 각 지역으로 향하는 교통편과 숙박 문제만 잘 소개되어도 탁월할 것 같은데 본서에서는 그런 면에 세심한 것 같아 미덥기도 합니다. 하와이는 우리나라 해외 여행지 1순위였었다 해도 저처럼 낯선 분도 많을 텐데 하와이의 절경과 특색있는 요리와 쇼핑 아이템까지 소개하고 있으니 이미 언급한 하와이 내에서의 교통편과 지리, 하와이 요리까지 하와이 여행을 제대로 즐겨볼 기회가 될 것도 같습니다. 마음 여행이 아니라 실제 여행이 되면 어떨까 기대도 하게 됩니다.




 

즐길거리와 먹을거리를 하와이 각 지역별로 다루고 있는데 건성이라기에는 빼곡하게 다루고 있어 무엇을 즐길지 고르고 골라보며 여행 계획을 세우는 재미도 있을 듯합니다. 대략적으로도 해변 드라이브 코스, 서핑, 스노클링, 카약, 웨일 와칭, 화산, 일몰, 골프, 하이킹, 아트 러버, 가족여행, 스냅 촬영, 스몰 웨딩 등으로 나누고 있고 앞서 말했듯 하와이 명소별로 다시 권장하고 있어서 첫 여행이라 무엇을 할지 어디를 가야 할지 검색을 어떻게 해봐야하는지 당황스러울 여지를 안주는 책입니다.



 

부록으로 스마트맵북이 있는데 간편하게 여행에 필수적인 어플들을 나열하고 여행지를 지도화해 폰에서 찾아보는 것보다 메모해 가면서 여행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부록만이 아니라 책 전체가 하와이 여행뿐 아니라 저처럼 해외여행이 익숙치 않은 분들에게 첫 여행의 당황스러움과 무얼할지 계획이 서지 않을 때 안정적으로 정리해 주는 감이 있습니다. 첫 여행은 어플만으로 검색만으로는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분들이 많으실텐데 심리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상당히 도움이 되리라 기대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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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IS 지하디스트 그리고 이슬람
곽영완 지음 / 애플미디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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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출간한 책이다. IS를 서두로 이슬람의 역사와 세계관, 정체성 등을 그려내고 있다. 책의 부제와 같이 한국인의 시선에서 이슬람을 분석하고 있어 서구의 IS와 지하드에 대해 불편하고 거북해 하는 묘사와는 다른, 우리 입장에서 나름 편향되지 않은 서술을 하는 책이다. 현재는 IS가 그다지 주목받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슬람 세계의 외부에 대한 태도가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대중의 이슬람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대한 시선도 다르지 않으니 읽어보아 나쁠 건 없을 거다. 다만 이슬람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대목이 다소 역사 요약 같은 느낌이라 건조하게 다가온다. 저자의 시선이랄까 해석이 담기기도 했지만 약술하고 있다. 


본서가 이슬람의 지하드에 대한 관점을 접하는 첫 책이었으나 뉴스 등에서 다룬 내용만으로 추정만 한 것과 크게 결이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슬람이라는 어휘의 뜻이 복종과 평화를 의미한다며 시작하는 이슬람의 관점이 처음으로 와닿는 듯했다. 복종, 그건 타자의 자신들에 대한 복종 이전에 신에 대한 복종일테지만 신에 대한 복종이라는 자체가 자신들의 율법에 복종하라는 것이기에 이슬람의 주의가 화합이나 평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들에게는 "복종하면 평화가 있다 평화로울 것이다"라는 의미도 되겠지만 이슬람에 복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어떤 결과가 있는지 과거 참수 당한 김선일 씨의 사례나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점거하는 지역마다 그곳 거주민들이 겪는 피해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슬람의 세계관은 삶이 종교와 일체화를 이룬다고 해석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알라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근본주의가 있기에 샤리아(율법) 중심으로 세계와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것 같다. 다만 그러한 통제에 복종하는 사람들 곧 무슬림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같은 민족과 다름 없이 대한다는 기본적인 룰은 있는 것 같다. 그렇기에 코란을 믿고 아랍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과는 같은 이슬람으로서 민족에 준하는 동질감이랄까를 갖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도 중동 각국의 계산이 다를 것이라 가볍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물론 각국 수반이 지닌 계획이 다르다고 해도 팔레스타인이 공격받을 때 그들 중 공적인 발언이거나 공적인 결정으로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두둔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기본 원칙이 어긋날 때 그들 각자의 자국국민들에게서 신뢰와 지지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근본적으로 같은 무슬림(신앙인)이라는 데서 부터 동일시를 시작하고 공동체로서 동일시를 하는 대중의 집단의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게 현재의 이스라엘-하마스 충돌이 중동 전체로 확장되고 세계대전으로 확장될 우려가 있는 현실에서는 부정적일 수도 있는 요소 같기도 하지만 자신의 집단이나 자기 나라가 피해자의 입장이 될 때 두둔하고 지원해줄 다수국가의 대중이 있다는 게 피해자의 입장에 서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힘이 될 거라는 생각도 든다.


다만 그들의 이슬람 원리주의는 타자와의 분열, 이성간의 차별, 과격한 행동주의 등으로 표출되고 있기에 긍정적인 면을 보려해도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면이 지적되는 경향을 갖는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보여주는 폭력성과 여성 인권의 궤멸을 보면서 저 종교와 저 민족(?)들과 공존하는 길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깊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IS가 중동에서 격렬히 활동하던 당시 보여주던 폐해들, 다른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보여주는 폐쇄적이고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던 양상들은 상세히 서술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들은 왜 그토록 타자를 파괴하고 차별을 일상화 했을까? 그건 이슬람 원리주의 자체가 기독교 원리주의와는 다르게 내재적 문제를 인식하고 타파하려는 방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외부세력과의 충돌에서 비롯되어 자신들의 것만을 신봉하고 고수하려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애초에 갈등하고 상대를 배격하기 위한 운동이 이슬람 원리주의인 것이다. 몰론 자신들 스스로는 결속하기 위한 방식이겠으나 그 결속한다는 움직임이 어떤 세계상황을 불러오고 그들 자신의 자국민들을 어떻게 대하고 죽여왔는지 알기에 더더구나 수긍이 안되는 주의가 아닌가 싶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사항들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본서를 통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사안은 이슬람과 그 세계관이었기에 우선 그에 대해 간략히 옮겨보았다. 본서는 2015년 출간된 책이고 그사이 중동에서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 다시 말해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세력은 변천이 다소 있었고 본서의 타이틀인 IS는 언론에 노출 되는 기세가 한풀 꺽였기에 본서를 읽어볼 생각은 그리 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분량이 작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슬람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어 보이는 목차 때문이었다. 앞서 말했듯 본서에서는 이슬람의 기원, 세계관, 역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분량이 보여주듯 약술하고 있는 경향이 있으며 그 해설이 무척이나 상식적인데서 머무르는 단점이 있다. 그럼에도 빠르게 이슬람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 분들에게는 어느 정도 유익이 있으리라 판단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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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 전쟁편 - 벗겼다, 끝나지 않는 전쟁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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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를 경제편으로 시작해 사건편, 잔혹사편에 이어 전쟁편까지 4권째 읽었는데 역사 분야에서는 이만한 저작이 없는 것 같다. TV 프로그램으로도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방송은 자주 보지는 못했다. 방송은 방송만의 특색이 있을테지만 책도 활자만의 매력이 있는터라 책으로 읽는 재미도 쏠쏠한 편이다.

 

본서는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내용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관한 내용, 이 둘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 더욱 관심이 갔던 책이다. 하지만 읽고 보니 그보다 오히려 아편전쟁, 메이지 유신과 소말리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유고 내전이 인상적이었다.

 

아편전쟁은 영국이 중국의 차를 수입하며 금전적 손해가 막대해지자 인구 대국인 중국과의 무역임에도 불구하고 무역에서의 손실을 회복할 수 없으니 아편이라는 마약을 중국에 수출하여 손실을 수익으로 되돌리려 하고 중국이 이에 저항하며 시작된 전쟁이다. 당시 이 전쟁을 개전하려 할 때 영국 국회에서도 이긴다 해도 이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전쟁은 없다며 반대하는 여론도 컸다고 한다. 인류사에 있어 이익과 윤리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인류가 과연 윤리를 이유로 이익을 볼 기회를 철회한 적이 있었는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물론 그런 역사가 있었다고 해도 역사 사료로 남아있지 않다면 후세에서 알 도리는 없겠지만, 남아있는 역사 속에서 보이는 인간의 모습이, 이로움 앞에 도리가 사라지는 인간의 역사가 씁쓸하기도 하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의 개화가 우리 역사에 준 파급을 볼 때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청나라가 유럽 열강들의 요구에 저항하다 본 피해들을 익히 알고 서구의 개방 요구에 저항 없이 개화의 길로 들어섰다. 그들은 너무도 열렬하게 서구의 문화를 수용하고 빠르게 서구화되었다. 무엇보다 일본은 전쟁 이후 전쟁배상금으로 이익을 크게 볼 수 있음을 깨닫고는 전쟁에 연연하게 된다. 그러나 그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주목할 건 일본의 개화 과정에서 대두된 정한론이다. 물론 정한론이 있기 전에도 임진왜란이 있었고 정유재란이 있었지만, 근대 이르러 일본이 정한론에 주목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전쟁에 연연하게 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와 동아시아에 이런 참극들은 없었을 것이다. 또 야스쿠니 신사와 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 버마 대량 학살을 주도한 기무라 헤이타로, 난징 대학살을 자행한 마쓰이 이와네 등 A급 전범만도 14명이 합사되어 있다는 건 처음 알게 되었다. 일본 정치인들의 신사 참배가 우리나라 입장에서만 논란의 대상인 것이 아니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 일본의 과거와 현재가 주는 국제적인 파급이 큰 것을 보고 시절의 괴로움만이 아니라 시절의 화해를 이끌어내야 할 것도 위정자들의 판단과 행동에 따른 거란 걸 되새기게 되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영국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원거주민들과 유대인들에 대한 부동산 사기가 발단이 되었다. 종교 간의 지역 간의 갈등 국면이 드러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이 담긴 거란 생각도 들었다. 대다수 기독교도들은 예수 재림이라는 기독교 예언이 완수되기 위해 이스라엘이 중동 각국과 전쟁을 치르고 중동을 장악하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기 위한 전제가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이라니 그들이 과연 천국을 바라는 것인지 지옥을 바라는 것인지 의심스럽기도 했다. 천국이 오라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의 죽음을 바란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천국을 바래 다수가 죽으라는 게 과연 천국을 불러온다는 사람들의 요구인가 싶다. 지옥도 악마도 인간 세상과 인간인 것은 아닐까?

 

현재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테러를 자행해서 이스라엘은 보복 작전 중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비롯해 서안지구에 800km에 이르는 장벽을 설치하고 그곳에서 사람들과 물자가 왕래할 수도 없게 만들어 팔레스타인인들이 UN의 구호물품에만 의지해 살아가도록 만든 현실은 인간이 만든 지옥도가 아닌가 싶기만 하다. 이번 하마스의 테러 후 사망자들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비등했지만, 과거에 그 둘 간의 격돌에서는 대개 이스라엘 사람이 13명 죽을 때 팔레스타인인들은 그 장벽이라는 감옥 안에 갇힌 채 공격받아 이스라엘 사람 13명의 죽음에 대한 댓가로 800명 이상씩 죽어 나갔다. 물론 지옥에서 벗어나자고 다른 이들에게 테러를 행하는 게 정당화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선조가 과거에 행한 도시락 폭탄이나 저격도 타자의 입장에서 보면 테러다. 이렇다 보니 테러리스트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바가 아니다. 더군다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말이다. 되려 이때를 기회라며 예수님 오시게 확전되고 세계대전 일어나라는 일부 광신도들이 더 심각한 정신병자들로 보인다.

 

소말리아 내전은 여느 갈등 국면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UN군과 미군의 참여도 무용지물이며 이 사태가 소말리아의 해적이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 놀랍기도 했다. 외국 어선들이 대대적으로 어종을 독점하다시피 어획해 가는 것도 모자라, 부패한 정부가 자기들 바다에 외국의 폐기물들을 버리게 허가했고, 그로 인해 소말리아 어부들이 해적이 된 과정이 너무 소설 같기도 영화 같기도 개그 꽁트 같기도 했다. 이들도 처음에는 외국 대형 어선들을 협박해 소말리아 바다에서 나가도록 한 게 다였다고 한다. 그러다 외국 어선의 승선자들을 납치해 몸값을 요구하니 그게 돈이 된다는 걸 알고부터 전문 해적들이 어지러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제는 이들의 해적질이 국가 GDP에서 마저 절대적인 역할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영국에서도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 해적을 지원하며 국가의 부를 강화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무슨 해적이냐 싶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해도 각 국가의 문명과 문화 상황은 동시대이기만 한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 이해하기 쉽기 위해 그걸 평준화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러한 차이를 인정하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생소한 아프가니스탄이 그토록 열강들의 침략에 강한 나라였구나 하는 걸 알 수 있는 계기도 되었고 베트남전과 같이 미국이 이익보다는 손실을 더 남긴 전쟁 중 하나라는 인상을 남겼다. 오사마 빈 라덴을 처형한 건 미국이 역사를 정리하는 기회였겠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 사이 중앙아시아 상황은 무엇 하나 달라진 게 없지 않나 싶었다. 모자헤딘, 탈레반 등에 대한 대중적 인식만 강화해주었을 뿐인 전쟁이었다. 무엇보다 의문스럽고 부러운 건 열강과 패권자의 영향을 받지 않거나 쉽게 떨쳐내는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이다.

 

유고 내전은 사실 홀로코스트보다 더 잔인하고 참혹하게 다가왔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인식은 있는데 왜 유고 내전에 대한 인상은 그만 못했는지 모르겠다. 현대사에서 민족 간의 갈등이 이렇게까지 얽혀 파국적으로 흘러간 나라와 민족도 더는 없을 것 같다. 갈등하는 국가들과 민족들은 이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인류에 대한 정의와 사유를 더 깊이 고민하고 더 나은 역사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건 없는 건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역사이다. 우리 모두가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할 일이다.

 

[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는 역사를 다루다 보니 누구라도 가볍게 읽으며 깊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읽어본 모든 편이 그랬지만 전쟁편도 여러 감정과 함께 배움을 가져다주었다. [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 전체가 시간을 아깝게 만드는 책은 아니니 어느 편이라도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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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과 신약성서
민희식 지음 / 블루리본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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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전 [성서의 뿌리 신약편]이 신약성서 내용의 원전을 중동지역과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둔 신화들에서 근거를 찾았던 것에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다. 이번에는 신약성서가 불교 경전들을 표절했다는 것을 하나하나 불교 경전들에서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중반 이후부터는 [법화경]이라는 불경에 대해 학술적이며 신앙적 차원에서 해설해주는 내용이다.

 

본서는 [성서의 뿌리]시리즈를 집필하고 나서 [예수와 붓다]라는 책을 집필한 이후 그 둘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출간한 책 같은데 [예수와 붓다]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본서 내용을 근거해 생각을 정리해본 것이다. 본서에서도 기존의 미트라 신앙, 조로아스터교의 교리가 구약과 신약에 특히 신약의 성립과 카톨릭 성립에 끼친 영향을 재삼 언급하고는 있다. 전작들(성서의 뿌리 시리즈)에서 구체화해 설명한 내용이 그것이었다.

 

다만 본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즈음부터인 기원전 400~300년 즈음부터 불교가 그리스를 비롯해 유럽 전체에 성행했으며 당시 유럽의 영향으로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미술이 영향을 받으며 조성된 불상들을 이후 기독교에서 그대로 차용해 예수상과 성모상, 성모자상 등이 불상의 영향을 받다 못해 그대로 표절한 사례들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 이전 시기의 유럽 불상들이 유물로 출토되는 현상은 무엇보다 놀랍고 예수가 당시 성행했던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생각되기도 했다.

 

다만 본서에서는 예수의 마지막 말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Eli, Eli, lama sa-bach-thani'가 불교 진언인 Arya, Arya, Lama samyak sam bodhi를 예수의 제자들이 곡해하고 자기들 들린대로 옮긴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예수의 불제자 시절의 스승이라며 스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수위의 주장을 하려면 전거를 제시하고 그 전거가 명백히 믿을만한 사료인지부터 검증했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했다.

 

본서를 좀더 신뢰하거나 부정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전작인 [성서의 뿌리] 시리즈와 [예수와 붓다] 그리고 다른 저자분의 [예수의 마지막 오딧세이]라는 책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러기에 문제가 있다면 [예수와 붓다]는 도서관에서라도 찾을 수 있지만 [예수의 마지막 오딧세이]는 도서관에서도 찾기 쉽지 않을 지경으로 절판되었다는 게 난점 같다. 예수의 불교 수행설이랄까 불제자설이 근거가 있다면 어떤 사료에 의해서인지 어떤 고고학적 근거들이 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절실하지 않나 싶다. 그 책의 저자분은 목영일 님으로 서울대 출신이자 뉴욕대 공학박사 출신이며 국방연구소를 거쳐 UC버클리 초빙교수이자, 유네스코 아태지역 에너지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전국과학기술인협회 이사장이기도 한 분으로 대툥령표창, 국무총리상, 국방과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공학자인 분이다. 그분이 쓰신 책이라 문과적인 창의성보다는 이과적인 사실 근거한 사고를 담은 책이리라는 믿음이 다소 간다. 그래서 구하기 다소 어렵겠지만 나중엔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 중이다.

 

본서에서는 삼위일체설, 천사와 악마, 천지창조, 종말, (삼일 만에) 부활, 구세주 탄생과 사명(동정녀에서 태어나, 12세에 집을 떠나 30세에 강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12제자를 이끌고 기적을 일으키며 새로운 메시지를 전한다는 미트라교의 신화를 기독교가 차용하고 있다), 선한 목자라는 표현까지 조로아스터교(미트라교) 교리를 기독교와 유대교가 그대로 표절하였다는 내용을 간략히 언급한 후 본격적으로 기독교가 불교 내용을 표절한 것을 나열하는데 이 책에서 각략히 축약한 도표로만도 28가지의 내용 표절이 있다.

 

-수태고지, 아기예수 경배, 신전에서의 12살 예수, 예수 세례, 광야에서 시험에든 예수, 물 위를 걷는 예수,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빵과 물고기의 기적, 돌아온 탕아, 가난한 과부의 헌금, 간음한 여인, 산상수훈, 유다와 예수를 저버린 제자들, 고향에서의 푸대접, 평등한 사랑, 좋은 열매 나쁜 열매, 세례자 요한, 말세, 거짓 선지자 출현, 유아학살과 도피,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진정한 보물, 하나님과 재물은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의식주를 걱정말라, 예수의 변용, 내가 세상 끝날 때까지 너희와 항상 깨어있으리라-

 

이렇게 예수의 일화들과 예수의 가르침, 예수가 든 비유 중 대표적으로 28가지에서 각 불교 경전들이 근거가 되었다며 근거가 되는 불경들을 나열하고 그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칼 융이나 분석 심리학자들은 모든 신화에는 원형이 있기 때문이라고 단정하겠지만 이미 이전 이야기의 원작자과 이후의 이야기들의 작자 사이에 서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는 현실을 부정한 채 원형에서만 원인을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싶다.

 

이미 예수 시대 이전에 유럽 전역에 불교는 성행했다는 게 유적과 유물로도 밝혀지고 있으며 예수 당시에는 불교가 상식인 유럽과 중동이었는데 이스라엘의 예수가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수가 불제자였다는 것은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억측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지만 신약성서의 내용들이 불교경전들을 표절했다는 건 합리적인 의심을 품을 만한 지적이지 않은가 싶다.


(그리고 제가 간과하고 넘어간 대목을 다른 님께서 언급해주셔서 첨가하는 내용이다. 기독교의 장로, 집사, 마귀, 천사라는 표현도 불경에서 표절해간 내용이란 것도 본서의 내용 중 하나이다. 기존의 한문 불경이 빨리어 불경의 내용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차용한 용어들이기는 하겠지만, 그리스도교 역사 보다도 오래된 불교의 용어들을 아무 꺼리낌없이 표절한 그리스도교의 행태가 어이없기도 하다. 이제는 장로와 집사도 마귀와 천사라는 한자 표현도 천주교와 특히 개신교의 원래 용어인줄 아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거라 생각하니 이미 언급한 불경을 표절한 내용들까지 보면 이 종교는 표절이 아니고는 성립될 수 없었던 종교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전반(신약의 근거는 무엇인가)과 후반(법화경 해설)이 명확히 나눠지는 책이니 전반부의 내용은 무신론자든 타종교인이던 비신앙인이던 기독교 신앙인이던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말씀드려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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