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열림원 세계문학 1
헤르만 헤세 지음, 김연신 옮김 / 열림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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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을 처음 읽었던 건 중학 2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 즈음에는 무협지와 문학 소설과 시도 나름 좋아했었다. 언젠간 시를 다소 읽을 때는 아마도 그 시절의 향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학은 소시민이 향유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풍요로운 대상이기도 하고 말이다.

 

오랜만에 데미안을 다시 읽고 든 첫 감상은 내가 이 소설을 정말 읽었던 적이 있는 걸까하는 자기 의심 같은 것이었다. 소설 전반이 기억나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친구의 엄마에게 사랑을 느낀다거나 전쟁이 일어나 군에 징집되는 내용까지 청소년이 느끼기에 임팩트가 없지 않는 단락들 마저 전혀 기억에 없어서 더 그렇게 느꼈다. 내게 데미안은 그저 이번에 처음 경험한 것과 전혀 다름이 없다.

 

본서의 부록으로 작품해설이 있는데 데미안에 대해 문명 비판으로서의 기능을 논하고 있기도 했다. 천박한 물질 문명의 부상과 진정한 삶의 무산을 비판하기 위한 소설이라고 말이다. 그렇게까지 문학 비평가적으로 바라보지 않더라도 청소년부터 청년, 중년, 장년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든 의미로운 감상을 남길 소설이라는 감상이 깊다.

 

유년기의 아이가 청년기에 이르기까지의 역동들을 헤세 특유의 감성어린 필체로 그리고 있는 소설이 데미안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을 깨는 새의 이미지로 상징적 감상을 갖을 데미안이지만 나로서는 몇몇 상징만이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 한 명 한 명과 배경묘사 하나하나까지 무엇 하나 상징적이지 않은 것이 없게 다가왔다.

 

청소년 싱클레어의 아니마인 베아트리체와 에바 부인 그리고 그의 롤 모델인 막스 데미안만이 아니라 프란츠 크로머, 알폰스 벡, 피스토리우스, 크나우어, 그리고 싱클레어의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등장인물 모두의 상징성이 다가왔고 낱낱의 장면까지 이 함의적인 소설에서 안배된 배치들이 아마도 다시 읽고 다시 읽는다면 읽을 때마다 달리 다가올 것만 같다.

 

유년기에 마주친 크로머는 그의 부정적 행위를 약점으로 잡아 싱클레어를 통제하며 그를 점점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존재였지만 그가 아니고서는 싱클레어는 자신의 그림자를 경험해 볼 수도 자신의 아버지에게 보인 것과 같은 오이디프스적이며 자기방어기제와도 같은 양상을 자신이 보이는 상황을 경험해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대극 중 하나를 경험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였기에 크로머도 트릭스터의 외양을 띤 한명의 인도자였는지 모른다고 생각된다.

 

청소년기의 알폰스 벡은 싱클레어의 이성과 영성과는 상반되는 욕동을 자각하게 해준 존재라 여겨졌다. 데미안이나 피스토리우스와는 다르지만 벡 역시 크로머보다는 온건한 모습의 인도자였다고 생각된다. 크나우어는 그 누구보다 현실에 뿌리내린 인도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싱클레어 자신이 자신에게 갖는 심경 전반이 통합된 기대와 평가를 크나우어를 통해 다시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데미안과 에바 부인이 보이는 변성의식 상태의 양상을 청년이 된 싱클레어도 보이는데 이들 간의 교감과 영성적 소통이 크게 의아스럽게 보이지도 않는 건 오랜 세월 동안 이와 같은 류의 가르침들과 가까워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싱클레어의 정신을 성장시킨 건 크로머와 벡이 한 축이고 데미안, 에바 부인, 피스토리우스가 반대편 축에 있다고 생각되었다. 크나우어와 싱클레어의 부모는 그사이 경계에 있는 인물들이고 말이다.

 

그들에게 찾아온 전쟁은 사람이 자성하고 자각하고 성장한다고 해도 결국 세상이라는 변화는 주도해서 막거나 혁신시킬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일깨웠다. 자신의 깨달음과 깨우침이 전 우주적인 가치를 갖는 것만 같겠지만, 소수가 다수의 집단무의식을 자극해 가져온 인류적 차원의 변화나 재앙은 단 한 사람 또는 몇몇의 깨달음만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데미안을 통해 인류의 연대기나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자기 나름의 남다른 통찰을 갖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문학 비평가들이 무슨 수식어를 가져다 붙인다고 해도 데미안은 사람에게 성장이란 무엇인가 성숙이란 어떤 가치일 수 있는가를 인물의 성장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감상이 가장 먼저 든다. 청소년기에 한 번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또 한 번쯤 다시 읽어볼 만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여기까지 성장소설이란 방향에서 다소의 얕은 감상만 남긴다. 데미안과 싱클레어 사이의 카인과 아벨에 대한 대화에서 시작되는 긴 여정에 주목한 감상을 남기자면 너무도 장황한 언변들이 이어져야 할 것 같기에 성장소설과 심리에 대한 짧은 감상만을 남긴다.



[밑줄 긋기] 

- 작가들은 소설을 쓸 때면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되는 양, 그래서 어떤 인간사를 훤히 꿰뚫어보고 이해하며, 신이 자기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기라도 하듯 그렇게, 아무것도 은폐하지 않고 어디서나 의미있게 서술할 수 있는 것처럼 굴곤 한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작가들이 그렇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어떤 작가에게 자신의 얘기가 중요한 것 이상으로 내게는 내 이야기가 중요하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이자, 한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길이자, 그 길로 가고자 하는 시도이며, 어느 좁은 길에 대한 암시라고 하겠다. 일찍이 그 누구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누구나 그렇게 되려고 애를 쓴다. 누군가는 막연하게, 누군가는 보다 확실하게,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애를 쓴다.

 

새는 힘들게 싸워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숴야만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 데미안이 남긴 쪽지에

 

“... 만일 자연이 당신을 박쥐로 만들었다면 자신을 타조로 만들려고 해선 안 되겠죠. ...” - 피스토리우스

 

지금 우리가 아브락사스라는 이름을 붙여준 우리의 새로운 신앙은 아름다워요. 친구여, 그 신은 우리가 가진 최상의 것이라오. 그런데 그 신은 아직 젖먹이죠!. ...” - 피스토리우스

 

그래, 넌 내게 멋진 성자지! 네게도 죄악이 있다는 걸 난 알아! 현자처럼 행동하지만 나와 모든 사람처럼 똑같은 오물에 비밀스레 매달려 있지! 넌 돼지야. 나 같은 돼지라고, 우린 모두 돼지라고!” - 크나우어

 

나는 전에 자주 미래의 형상들과 유희했었다. 어쩌면 시인이나 예언자로서 또는 화가나 다른 어떤 것으로서 내게 배정되어 있을 역할들을 꿈꿨었다. 그런 건 모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시를 짓거나 설교를 하려고, 그림을 그리려고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건 모두 부수적인 결과로 생겨날 뿐이었다. 각자에게 진짜 소명은 단 하나였다. 그건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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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독일사
제임스 호즈 지음, 박상진 옮김 / 진성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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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에서 큰 축을 이루고 있는 독일사이지만 대개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소하지 않을까 싶다. 나로서도 축구와 자동차, 나치와 홀로코스트, 난민수용과 메르켈 총리 외에는 독일에 대한 키워드 조차 떠오르는 게 없어 더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이 책은 그런 파편적이고 짧디 짧은 독일에 대한 상식을 조금이나마 확장시켜 주지 않을까 해서 기대했던 책이다.

 

책의 분량을 볼 때 그다지 짧다고 여겨지지 않는데 [세상에서 가장 짧은 독일사]라는 제목이기에 의아하기도 했다. 책을 읽고 보니 출판사에서 번역과 함께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추가한 [역사 속의 역사]라는 28개의 장이 더해져서 그렇지 본문만으로는 상당히 간소하게 정리한 책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역사 속의 역사][독일 여행자를 위한 핵심 가이드]가 추가되지 않았다면 역사서치고는 상당히 짧은 분량의 책이었을 것이다.

 

상당히 촉박하게 읽다 보니 제대로 이 역사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읽었다. 서술된 역사 내용을 요약하기보다 서술 방식에 대해 짚어야 할 것 같다. 본서는 [1부 게르마니의 탄생 기원전 58~526, 2부 게르만, 로마를 복원하다 526~983, 3부 게르만을 위한 전쟁 983~1525, 4부 두 갈래 길로 가는 독일 1525~1924, 5부 독일, 유럽의 미래 1924~현재] 구성되어 있는데 독일사를 영국인이 서술하다 보니 유럽 타국가에서 바라보는 독일에 대한 시각이 어떠한지가 정리되는 느낌도 다소 들게 했다.

 

카이사르가 야만족의 땅이라는 의미로 게르마니아로 이름 지은 이 지역에서 메로빙거와 카롤링거 왕조를 거치며 정체성을 찾게 된 과정부터 나치 독일의 출현까지 그리고 동서독의 분리와 통일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돌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문득문득 외국인이 쓴 독일사구나 느껴지기도 하는 때가 있는 게 1차 세계대전을 기술하면서도 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될 1차 세계대전 전쟁배상금 문제를 짧은 언급 하나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본서는 독일사 전반을 신속하게 약술하고 있어 역사적인 주제들에 주목하자면 국내 출판사가 추가한 [역사 속의 역사]라는 28개의 장을 통하지 않고는 그다지 재미를 찾을 수 없기도 하다. 그렇긴 하지만 유럽인이 아닌 이국의 시선에서 중요하다고 주목되는 대목이 다르고 유럽인이 애써 외면하거나 간과하는 대목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본서는 전체가 빠르게 지나가는 크로키와 같이 약술로 서술되어 지나가는 느낌이고 그걸 크로키가 아니라 스케치라고 본다면 [역사 속의 역사]라는 장들이 다소나마 스케치에 암영과 빛깔을 주는 느낌의 책이기도 하다. 세계대전 대목은 특히나 [역사 속의 역사]란 장이 없다면 독일인들이 나치당에 주목하게 된 대목만이 부각된 서술로만 기억하게 되었을 듯하다.

 

전체사를 짚으면서도 일화별로 주목할 서술에 주의했다면 다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따분하게 서술되어 있는 책은 아니고 제법 쉽게 읽히는 번역이다. 번역자의 노력과 주의가 담긴 번역이 책을 살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독일사에 대해 깊이 알고 싶지는 않지만 윤곽은 잡고 싶다는 분들께서 선택할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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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독일사
제임스 호즈 지음, 박상진 옮김 / 진성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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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사에 대해 깊이 알고 싶지는 않지만 윤곽은 잡고 싶다는 분들께서 선택할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독일사를 크로키처럼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느낌인데 [역사 속의 역사]라는 장에서 암영과 빛깔이 다소 주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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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휴먼 - 당신의 무한한 잠재력을 끌어내는 방법
디팩 초프라 지음, 김윤종 옮김 / 불광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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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팩 초프라 씨의 책은 [사람은 늙지 않는다]로 내 기억으로는 중고딩 시절 접해 보고 그 후 그다지 가까이해 보지 못한 듯하다. 중고딩 때는 그가 투머치토커라는 생각은 그닥 안 했었는데 이번 독서로 그가 왜 그리도 유명한 투머치토커로 불리는지 알 것도 같았다.

 

본서는 명상서로서는 양자물리학, 유전자학, 뇌 과학, 인류학, 고고학, 심리학 등을 넘나들며 의식과 그 초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이다. 한마디로 우주와 만물과 인류는 하나의 의식이며 우리는 뇌와 자의식, 현실 지각을 넘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상 의식 너머에서 우리는 온 마음 그러니까 하나의 의식으로 일상을 초월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메타를 초월로(그 너머로) 정의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가상의 현실이며 메타 현실이 진정으로 우리가 각성하고 살아가야 할 세계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가상의 현실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양자역학적으로도 원자론으로도 우리가 지각하는 견고한 세계는 실재일 수 없으며 우리가 자각하는 것은 우리의 뇌가 지각하고 창조해내는 바이기에 하나의 가상현실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감각하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 같기에 우리는 현실을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우리는 우리의 허용(수용)의 영역을 바꿈으로서 현실을 달리 창조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달리 창조하는 방향에서 인식의 전환과 명상을 권하고 있기도 하다. 나로서도 최근 과학계의 발견으로는 사람 개개인의 뇌가 오감을 지각할 때 같은 영역대의 수용체계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알게 되었는데, 그를 통해 보아도 우리는 각자의 세계에서 살고 있지 모두가 공유하는 견고한 하나의 세계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보는 색깔로 다른 사람이 보는지 내가 감각하는 촉각과 온감, 냉감을 타인도 똑 같이 느끼는지 내가 느끼는 맛과 향기를 나와 같이 느끼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지금까지는 철학적 논의였으나, 과학이 우리는 유사하지만 다른 영역대로 감각을 지각한다는 걸 증명해낸 것이다. 이 견고하지 않은 세계는 결국 각자의 가상의 현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이 견고하다고 믿었던 가상의 세계를 넘어 이상과 바람이 공존하고 이루어지는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으며 메타휴먼이 되어 그런 메타 세계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장황하게 전개되는 내용들에 넋을 잃었다가 어떻게라는 사안에서 다소 상식적으로 변하기에 약간 김이 새기도 했다. 저자가 논하는 주제는 명확하지만 주제를 풀어내기 위한 소재가 광대하기에 넋을 잃을 만도 하고 취향이신 분들은 재미와 의미도 깊을 책이다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지가 전해지는 불가의 게송과 같은 핵심을 찌르는 짧은 글이 더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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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신화다 - 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인가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 미지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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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JESUS MYSTERIES]이다. 예수는 신화일까 역사일까 미스테리다라는 의미와 그 당시 존재하던 이교의 가르침과 의례들을 미스테리아로 칭하면서 논하는 서이기에 중의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제목이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한국어 제목 자체가 도발적이기에 이후 [예수는 역사다][예수 신화? 예수 실화!] 등에 제목의 저작이 잇따라 출간되기도 한 모양이다. 나로서는 본서가 있다는 사실을 안 시일이 얼마 되지 않아 그런 내용을 알지 못하다가 본서를 검색하다 보니 여러 유사 제목의 책들이 출간되어있는 걸 알게 되었다.

 

본서는 예수 이전 시대부터 예수의 수태와 탄생과 생애, 죽음과 부활, 그 가르침까지 예수라는 존재의 전부가 예수 탄생 이전부터 존재하던 이교의 신적 존재의 역사와 가르침과 일치한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 예수는 실화가 아닌 신화였다는 내용이 근간을 이루는 책이다. 본서를 보면 예수라는 존재의 전승 하나하나의 원본 텍스트를 제시하고 있고 본문에서는 매끄러운 서술을 하기 위해 빠르게 전개하고 있지만 (본문만 390쪽에) 120쪽에 이르는 후주가 존재하는 책으로 그 하나하나의 근거가 무언지 깊이 천착하며 공부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을 내용이다.

 

이미 [성서의뿌리 구약편][성서의 뿌리 신약편], [법화경과 신약성서] 등을 통해 예수를 믿는 종교가 그 이전부터 오랜 역사를 통해 존재해온 다른 종교의 내용과 가르침을 표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과거에도 [2의 성서 아포크리파], [숨겨진 복음서 영지주의], [이것이 영지주의다], [유다복음서, 진실 혹은 거짓?] 등의 책과 방송을 통해 영지주의와 그 원류가 되는 가르침에 대해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이토록 예수는 표절이며 신화일 뿐이다라는 논지를 전개하는 책이 참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긴 세월을 예수는 실존했고 그의 생은 역사이며 실제라고 믿어왔었기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본서는 예수를 믿는 종교의 전제인 예수 자체가 신화의 짜깁기이지 실체가 없다는 데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초기에서부터 신약성서가 갖춰지며 교세가 안정되기까지의 역사도 서술하고 있다. 예수의 생존 당시 예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시대의 문장가들, 학자들은 누구 하나 예수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현재의 그리스도교도들이 주장하는 예수의 실존 증거라며 내세우는 기록들은 모두 그리스도교의 교세가 확장된 이후 로마의 학자들이 그리스도교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어 남긴 것뿐이라고 한다. 이는 실제로는 총독이었던 적이 없고 로마에서는 그저 사령관이었던 본디오 빌라도를 그리스도교가 로마에서 확산한 이후 그리스도교도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총독으로 기록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예수 사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나 본디오 빌라도가 사령관이 아니라 총독으로 기록되었다는 말이다. 예수에 대한 기록도 당시 이적을 보이며 이스라엘 지역에서 선동을 하던 사람들 중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로마 기록에는 그들 중 십자가형을 받은 이가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처녀 수태, 생존시에 보여주는 이적,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 등은 예수 이전 몇백 년 전부터 존재하던 타종교들에 신적 존재들의 내용을 그리스도교가 그대로 표절했으며, 그 가르침의 내용 역시 타종교 텍스트에서는 미스테리아로 옮기는 영지주의의 원류가 되는 이교의 가르침을 그대로 표절한 것이라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를테면 원래 복음서 중 하나에서 예수의 부활에 대해 동굴에서 시신이 없어진 것을 막달라 마리아와 몇몇 여성들이 목격했다고 부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린 결말로 마무리했었다고 한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예수가 부활하고 제자들이 확인하는 과정이 추가되었고 다른 복음서들도 그 복음서를 텍스트로 이야기를 확대 재생산한 것이라고 한다. 본서의 저자들은 예수를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다른 신화의 내용을 표절하며 창조된 인물로 영지주의자들이 그를 동물적 자아의 죽음과 함께 신적 자아의 각성을 은유하는 존재로 상징하려 한 것과는 다르게 문자주의자들(현재의 기독교를 전승하게 한 초기의 예수는 역사다주의자들)이 그를 무리하게 역사적 인물로 확정하려 갖은 모략을 써서 현재의 기독교가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초기에 베드로의 편지 등의 기록 등에서도 예수의 생애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그의 죽음만이 회자되고 있다는 것도 저자들이 그들 주장의 근거로 삼고 있다. 그리고 본서의 제목마따나 미스테리아라는 예수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영지주의의 원류가 영지주의로 계승된 후 문자주의자들과의 격돌이 있었고, 이 둘은 무수한 종파로 나뉘었는데 콘스탄티누스 시대부터 반강제적으로 이들 전체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하나로 통합하려 했다는 것이다. 당시 그리스도교 주교의 기록으로는 내 안에 있는 상대의 교리를 찢어발겼으며 상대 안에 있는 나의 교리를 찢어발겼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교리상 합의될 수 있는 내용조차도 종교회의라는 그 격돌에서 살아남기 위해 파괴되고 난자되고 만 것이라는 말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남아있는 그리스도교는 살과 피와 신경을 모조리 해체당하고 뼈대만이 남아있는 앙상한 종교라는 말이 된다.

 

기독교도도 인정하는 내용 중 하나는 바울이 초기 그리스도교가 성립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와 그의 후대에도 이단을 징죄하며 그리스도교의 본체를 확립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고 말이다. 문제는 바울이 상당히 영지주의를 중시했으며 바울이 남겼다는 영지주의 문서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CE 160~220년 생존했던 테르툴리아누스라는 문자주의자의 이단을 비판하는 기록은 후대에도 줄곧 인용되리만치 명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적극적인 문자주의자이며 이단비판자였고 여성차별주의자여서, 당시에 주교와 예식 주도자와 일반교인의 역할을 집회할 때마다 제비뽑아 결정하며 여성과 남성의 무차별까지 모든 방면에서 전혀 차별없이 진행되는 종교모임을 갖던 영지주의자들을, 주교의 권위와 남성우월주의를 유지하는데 적대적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문자주의자들과 테르툴리아누스는 영지주의자들 전체를 적으로 간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논란이 될만한 것은 그도 그의 생애 후반기에는 영지주의자로 전향했다는 것이다.

 

본서는 예수가 실제했느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성립과정과 예수라는 인물이 설정되는 과정까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정치적 목적으로 그리스도교가 강제적으로 통합되는 과정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지주의가 어떤 역할을 했으며 그 영지주의가 그 당시까지 존속했던 타민족의 미스테리아를 표절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저자들의 표현으로는 차용하고 수용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문자주의자들은 이후 자신들 이전에 예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이적과 똑같은 내용을 보여주는 그 미스테리아와 예수 이전 시대의 전승을 모두 악마의 모방이라고 부르고 있다. 예수가 태어나서 어떻게 살고 죽을지 알고 있던 악마들이 그 이전에 그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이적을 모방해 예수의 이미지를 깎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악마들이 성스러운 대상을 전도시키려던 것이라는 주장인데 이 문자주의자들의 주장을 이 시대에 대입하자면 500년 전 곡을 그대로 모방한 작곡가가 (예전의 아름다운 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싶었다고 말하면 될 것을) “내가 이 곡을 작곡하려는 걸 500년 전에 미리 안 악마가 나를 표절한 것이다라고 앙탈과 억지를 부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다. 이런 수준의 억지라면 도둑이 따로 없어 보이고 이걸 믿는 것도 바보가 따로 없는 것 같다.

 

본서는 한국어 제목을 주지하고 읽으면 예수는 실제했는가 그리스도교는 신앙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종교인가라는 데 주의하며 독서하게 되고, 영문 제목에 관심이 꽂히면 미스테리아란 무엇인가 영지주의란 무엇인가에 주의하며 읽게 된다. 나그함마디 문서에 대한 이해와 고대 이교의 종교들에 대한 연구에 비교종교학적 견해가 더해져 집필된 저작이라 크리스찬이 읽게 되면 영지주의에 대한 관심까지 확장될 테고 비신앙인과 무신론자들이 읽는다면 그리스도교의 실상을 알게 된 것 같을 수 있다. 하지만 저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카톨릭과 개신교 역시 그 역사 속 불법과 범죄들과 함께 신앙인들에게 준 마음의 평화 또한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본서에서 그리스도교 초기에 영지주의자는 구약성서는 신이 인간에게 저지른 범죄를 나열한 목록서라고 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문제 많은 신이 문제 많은 인간을 창조했고 그렇기에 인간 세계가 문제투성이라고 한다고 해도 그 문제들을 양산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인류 문명이 발전해 온 것 역시 사실일 것이다. 나도 한때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단순한 주지만 시키고 인간을 세계로 내보낸 것은 바이러스나 암처럼 증식만 하라는 것과 무엇이 달랐나 싶었지만, 인간이 성장하고 성숙하고 성취하고 의미를 찾으라고 했다고 한다 해도 그 모든 의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존재 자체에서 만끽하는 자체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생육하고 번성하는 과정(살아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살아있음을 만끽할 수도 있었지 않은가 생각이 이르니 일자()가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접게 되었다. 문제 많은 신이라는 관점도 인간이 자신의 문제 많음을 신에게 투영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자들의 주장으로는 구약과 신약의 연결고리를 지은 것은 그리스도교 초기의 문자주의자들이 예수의 존재함의 가치를 신앙인들이 수긍하게 하기 위해 구약을 이용할 필요와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문제 많은 시대에 문제 많아 보이던 신의 이미지가 이용되었던 것이 구약이라면 그 신을 빛이자 사랑으로 진화시킨 것이 미스테리아와 영지주의와 예수라는 상징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본서는 예수가 실제했느냐 신화였느냐에 관한 의문에 대답을 얻기 위해 읽기보다는 무엇이 인간과 일자()를 이어주어 왔고 이어줄 수 있는지를 궁금해하며 읽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예수의 실존을 믿는다고 바보라기 보다는 예수라는 상징이 이미 바보였던 인간들을 지혜의 길로 인도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은 신앙인에게도 신앙이 강화되건 무화되건 간에 읽어볼 가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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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3-12-05 0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서재의 달인 선정되심 축하드립니다 🎉
한 해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이하라 2023-12-05 00:4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님^^
저도 북플마니아와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연말 되세요.^^

서니데이 2023-12-05 20: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이하라 2023-12-05 21:2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평화로운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