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교양 115 - 중국 어문교과서 수록 필수 암송 한시 115수
이규일 지음 / 리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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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에 대해서는 전통문화에 관심이 깊은 분들과 장르 소설 등을 통해 접해보고 빠져드는 분들도 의외로 많다고 한다. 오래전이지만 자주 찾던 웹소설 창작 사이트에서도 중학생 웹소설가의 작품에마저 등장할 정도로 어느 장르에서는 필수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한시(漢詩)라고 하면 중국 외에도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다수 국가의 옛 시도 포함하는 관계로 한시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현대시와 구별하기 위해 고시(古詩)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고시 즉 옛 시라는 이 표현과는 다르게 중국에서는 초등학교부터 학생 모두에게 한시를 기본적으로 암송하게 한다. 이 교육은 암기 위주로 보이기도 하지만 중국계 미국인인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양젠닝 씨에 의하면 어릴 때 외운 이 시가 세월이 지나 70대가 넘으며 이해가 가고 공감하게 되더라고 말하고 있다. 배송(背誦)이라고 한다는 이 암송하는 과목에서 공감에 이르기도 하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아이들에게 한시를 외우도록 하는 것이 학교 교과목이면서 동시에 부모들에게는 아이의 재롱이기도 하다고 한다. 중국인 일상과 일생에 함께하는 것이 한시인 것이다.

 

더욱이 한시는 중국 지도층이 신년사와 당 대회 또는 외교적 언사를 통해 자주 사용하고 있는 실생활에 일반적인 문화이다. 그래서 미국 등 타국가 정치인들이 중국을 방문하면서도 한시의 한 귀절 정도는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중국의 문화가 세계적 문화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 표현 중에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있으니 중국의 한시에 대한 예는 우리도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키울 계기로 삼을 만한 본보기가 아닌가 싶다.

 

리뷰를 쓰고 있는 본인은 원래 전통 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지라 중학시절부터 전통 무예와 시조와 한시 등을 좋아했지만 한자의 압박으로 거리감을 크게 느낀 적이 많았다. 그러다 오래 한시를 잊고 지냈는데 본서는 한자와 중국어 간체자 그리고 유투브 등을 통한 원어민 낭송까지 더해진 책이라 시적 감성 충족과 한자 공부 그리고 중국어 발음 공부까지 일석삼조의 저작이라는 생각이 들어 오래 뜸을 들이다가 구해보게 되었다. 격일이나 하루 3편의 한시 정도는 부담 없이 읽고 들을 수 있기에 여러 각도에서 한시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듯하다.

 

본서는 우리로 치면 국어 교과서인 중국 어문 교과서에 실린 75편의 초등 암송용 한시와 40편의 중등용 한시가 수록된 책으로 한자의 난이도도 점층적으로 상승할 것이기에 한시를 학문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분들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즐기며 배워갈 수 있는 책이다. 본서에는 한자로 수록된 내용을 다시 중국어 간체자로 간추린 단원이 따로 할애되어 있어 중국어 병음을 보며 음성파일을 듣는다면 중국어 학습에도 아주 유용하고 유효할 것이다. 한시가 좋다거나 중국어 발음을 재미지게 익히고 싶다는 분들에게 권할만한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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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창비세계문학 44
다자이 오사무 지음, 신현선 옮김 / 창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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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단편과 중단편 10가지가 실려있는 소설집이다. 나로서는 딱히 인상적인 소설이 없었다. 지난 월요일에 다 읽은 책인데 읽는 동안 제법 괜찮았던 건 등롱’, ‘피부와 마음’, ‘비용의 아내’, ‘사양’, ‘향응 부인정도다. 그런데 읽고 나서는 벌써 등롱의 내용을 잊었다.

 

이 소설집은 다자이 오사무가 여성 화자가 되어 풀어낸 이야기를 일관되게 싣고 있다. 그런데 다소 억지스러운 건 그렇다고 다자이 오사무가 페미인 것처럼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버젓이 소설집 말미에 작품 해설이라고 여성,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나다라고 다자이 오사무를 연구해온 역자가 해석해 주고 있다. 나로서는 공감이 되지 않았다.

 

소설 속 여성 화자들이 진취적이라거나 여성 권익을 주장한다거나 여성에 대한 인식을 보다 낫게 해주는 인물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남성에게 의지하거나 권위와 세상의 보이지 않는 강압에 수긍하는 편인 여성들이다. 그러다 역자가 혁명으로 해석한 대목들은 세상의 관습에서 일탈하는 정도(비용의 아내)거나 도덕적 문화적 전통을 깨뜨리는 수준(사양)도 있지만, 그들은 전혀 남성의 권위에는 도전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다자이 오사무는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바를 중시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수준까지 타자를 또는 남성을 자신보다 중시하는 여성상을 이상적으로 보는 듯했다. 그러한 (다자이 오사무가 보여주는 바로 해석할 때) 전통적이고 기품있는 여성상에 일탈적인 선택을 하는 여성상을 그 시대에 새로운 여성이고 진취적인 여성상이라 정의하고 있는 듯했다.

 

다자이 오사무가 생존한 시대적 제한과 그 자신의 유소년시절과 청소년 시절에 모성의 결핍으로 의식의 한계가 있을 수는 있다지만, 겨우 그런 여성관을 가진 이의 작품을 들어 페미라거나 여성을 잘 이해한다거나 나은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하는 자체가 우습게 느껴진다. 다자이 오사무는 여성도 아니고 권할 만한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지도 않다. 권위와 관습에 억압되어 있으면서 정숙한 부인이 접대를 하거나 빛을 잃은 귀족 여인이 한 번 본 남자의 첩이 되어 생계를 이어가려하다가 여의치 않자 그의 아기를 가졌다며 일탈적인 결론을 맞이한다고 그게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여성상인지 의아스럽다. 물론 의존만 하려던 여성이 자신의 힘으로 아기와 자신을 책임지려 하는 의식의 전환을 가진 것은 다자이 오사무에게도 내적 치유의 의미가 될 수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다자이 오사무는 여성이 아니다. 그리고 그는 결코 버지니아 울프일 수도 그렇게 될 수도 없다. 그저 화자를 여성으로 가정한다고 자신이 상상해낸 여성상을 잘 묘사해낸다고 페미적인 인물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적어도 이 시대의 여성이 보고 귀감이 되거나 배우는 바가 있는 인물이라도 그렸다면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여성이 나서서 예찬하는 상황을 수긍할 수 있었겠다.

 

게다가 여학생이란 작품은 본 소설집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은데 다른 번역서의 작품에서 본 내용에 의하면 진짜 여학생인 소설가 지망생이 다자이 오사무에게 어떤지 평가를 바라고 보낸 작품을 그가 그대로 베껴서 여학생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고 한다. 보자, 고은 시인은 성추행을 이유로 그의 작품이 실린 교과서들에서 퇴출되었다. 그런데 성추행이 나쁘다고 여성의 노력과 성취를 모조리 빼앗는 행위보다 더 나쁠까? 여성의 꾸준하고 성실한 노력과 그 결과인 성취를 수작으로 가로채는 바가 언어나 시선이나 접촉으로 행하는 성추행(도 분명 나쁘지만)보다 과연 가벼운 범죄인가 말이다. 회사에서 학계와 과학계에서 성추행하는 인물이 있다면 처벌하면 되겠지만, 여성의 노력과 성취의 결과를 술수로 가로채는 경우 과연 여성들은 그런 남성을 감당하고 싶은가? 여성이 자신의 노력을 다자이 오사무에게 도둑질당한 현실을 보고도 그가 페미라고 생각하는가? 여성의 권익을 위해 그가 노력해온 바도 없는데 지나친 대우가 아닌가 싶다. 그를 페미라고 언급한 역자와 이 시대의 문학 비평가들이 나로서는 향응 부인처럼 보인다. 향응 부인을 헌신과 인간의 고결함으로 해석하는 바가 나로서는 우습기만 하다. 향응 부인 같은 여성상을 여성이 여성에게 권한다면 미친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으로서도 닮아야 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인간 실격]이 다소 인상적이라 그의 대표작이라는 사양이 담긴 이 책도 읽게 되었다. 하지만 처음 받았던 그의 작품에 대한 인상을 지켜나가기엔 너무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으로서는 어떤지 몰라도 나은 인식을 주는 소설집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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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다자이 오사무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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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네 계집질도 이쯤에서 그만두라고, 이 이상은 세상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세상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인간의 복수(複數)일까요? 어디에 그 세상이라는 것의 실체가 있을까요? 하지만, 어쨌거나, 강하고, 엄격하고 무서운 것이라고 여기며 지금까지 살아왔으나, 호리키에게 그런 말을 듣고 문득

세상이라는 건 자네가 아닐까?”

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호리키를 화나게 하는 것이 싫어서, 말을 삼켰습니다.-

 

요조는 흔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서투르고 세심하고 여린 자신을 숨기려 익살스런 가면을 썼지만 그는 능란한 사람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조심스러운 삶에서 고교 시절 호리키를 만나고 그는 일탈을 알게 되고 예기치 않은 동반자살을 시도하게 되었고 자살방조죄로 갇히게 되며 가정에서 축출됩니다. 물론 하숙이랄까 위탁상황이기는 했지만 그 시대 대개의 동양 사람들이 그렇듯 떨어져 있더라도 가정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신세였을 테니까 그로부터 버림받는 상황은 축출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가 머물던 집의 넙치라는 인물은 제가 받아들이기에는 오델로의 이아고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마치 자신이 요조에게 적선을 하는 듯 위장하고 그의 가정으로부터 오는 지원금을 마치 자신이 내주는 듯하면서 그래도 대학은 가기를 바라는 그의 부모의 뜻을 마치 자신이 도와주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학비를 걱정하는 요조가 대학 생활과 그 이후의 삶의 경로라는 기회비용에서 멀어지고 끝내 막장의 인생경로를 향하도록 했으니까요.

 

넙치가 자신이 선심을 쓰는 듯 가장하지 않고 요조의 가정에서 학비는 선뜻 내주려 한다고 솔직히 토로했다면 학비를 걱정하며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인생 항로를 요조는 선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한순간의 다른 이가 주는 혼선으로 요조의 삶은 막장을 향해 흘러갑니다. 동거나 술집 여성과의 관계, 장애인 미망인 약사와의 관계 등이 그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 당시의 그를 이후 술집 여성이 떠올리며 그는 신과 같은 사람이었다고 회상하는 것으로 보아도 요조 자신이 보는 자학어린 자신에 대한 평가와 외부의 평가는 달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종래에 그는 정신병원과 약물 중독자가 되는 말로를 맞이하지만 당시 그는 겨우 27세였을 뿐입니다. 생의 몇 막과 몇 장을 암연을 연기했더라도 다른 막을 그는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인생 실격]은 작가가 요조라는 인물의 수기를 입수해 책으로 출간한 형식을 띠고 있지만 작가가 그는 죽었냐는 물음에 지인인 술집 여성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가 어쩌면 이후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열린 결말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네요.

 

여리고 민감해서 연약해서 세심한 정서라서 삶의 많은 대목에서 부대끼고 치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끝내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전후 일본 국민들의 정서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의 분위기는, 이 시대 상황과 닮아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시절에 좌절하고 절망하여 자살하는 많은 이들이 어쩌면 '요조'와 '다자이 오사무'의 닮은 꼴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상만으로 세상에 대적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그림자에 희망과 꿈이라는 빛을 비출 수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감상이 담기는 소설이었습니다.

 

붓다는 무상(無常)을 이야기했습니다. 변하지 않는 건 없다고 말입니다. 자신의 고통과 상처, 세상의 무거움과 짓누름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 같지만 어느 순간에는 벗어날 수도 있으리라는 말일 겁니다. 짙고 치명적인 트라우마도 적절한 대응과 노력으로 끝내 나은 경우들도 있습니다. 괴로움과 아픔과 슬픔과 절망은 하나의 터널일 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못 벗어날 것 같아도 결국 벗어나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자신의 터널에서 끝내 못 벗어나리라 스스로도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는 없는 문제입니다. 다른 터널이 또 올 테지만 다음번에는 면역력이 작용할지도 모르고요. 모른다는 것만으로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자신의 삶이 자신에게 어떤 감상을 남길지는 극이 끝나봐야 알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곧 지나갑니다. 어떻든 어쨌든 말입니다.


그리고 붓다는 무아(無我)와 공(空)을 이야기했지요. 어느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절대적인 정의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겁니다. 시절시절마다의 자신의 모습은 언제나 달랐습니다. 유년기의 나와 취학 아동인 시절의 나와 청소년기의 나와 청년기의 나와 직장인인 나가 언제나 일관되기만 했다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느 시절의 아련한 자신을 그리워 하는 이들이 있는 것도 그래서겠지요. 가정에서의 나와 사회에서의 나와 이웃으로의 나와 갈등과 충돌 상황에서의 나도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한 시절의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는 것이 모든 걸 끝내 버리겠노라 판단할 근거는 될 수 없습니다. 한 시절 자신의 모습은 다음 시절 바뀔 수 있고 바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집착은 집착의 말로는 헛헛함일 겁니다. 나에게 실망하고 좌절하고 이런 나를 끝내겠다는 집착도 지나고 나면 헛헛함 이상일 수 없습니다. 모든 건 결국 지나갑니다. 어떻든 어쨋든...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제가 지금까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세계에 있어서.

단 하나, 진리처럼 느껴진 것은, 그것뿐입니다.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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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캐릭터 심리 사전 - 창작자를 위한 캐릭터 설정 가이드 문제적 심리 사전
한민.박성미.유지현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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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기를 일상에서 늘 실천하고 있지는 않지만, 간헐적으로나마 창작활동을 이어오며 다소간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다만 창작이나 작문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바는 없다 보니 늘 부족함을 자각하게 된다. 그래서 더더욱 집필 관련 책들을 관심 있게 읽고는 하는데 본서는 그런 창작과 작문을 위한 정보이기도 하고 늘 흥미를 느끼는 인간 심리에 대한 정보까지 두루 담고 있다 보니 끌릴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사람이 문제만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문제를 자각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존재이기도 할 텐데 그런 이유로는 본서는 인간 심리의 문제를 다룬 책으로만 보자면 사안의 일부분만 다룬 책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사람의 심리적 문제들을 돌아보고 소설 속 인물 설정에 이런 문제들이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를 가늠해 보는 활동은 창작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역량을 다할 것만 같다. 창작만을 위해 읽는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에 몇 조각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고, 살아오며 마주친 가깝고 먼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만 같은 건 본서를 읽으며 갖게 되는 부수적인 이로움이 아닐까 한다.

 

나를 타인을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목적에서의 데이터 수용도 유익을 주지 않나 싶다. 두서없이 모으는 다량의 데이터 수집도 결국에는 그 자료들 안과 밖에서 맥락을 갖게 하고 끝내 한치 두치 만큼의 배움을 가져다준다. 어떤 의도의 독서든 영상이나 예술 감상이든 점점 더 배움을 가져다주고 일깨움을 가져다준다. 본서를 읽으며 성장할 수 있다. 그만큼의 성장 후에 좀 더 깊이 들어서면 더 큰 일깨움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창작활동에서의 이로움 만해도 본서는 마지막까지 이 이상심리에 대한 지식들을 창작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적용할 수 있을지 일깨워 준다. 실용적인 면과 성찰이란 면 어느 면에서도 부족하지 않은 저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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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이승훈 외 지음 / 마카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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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스토리 공모전'은 작년 나도 출품해본 공모전이다. 올해부터는 '스토리 대상'으로 이름을 달리해 공모전을 열고 있다. 올해도 응모해볼 생각이었는데 상반기부터 부상을 당해 집필할 시기가 애매해졌다. 당장 6월 초중순이 마감이라 단편이라도 쓰기가 애매하다. 올해는 어찌할지 가늠이 안되지만 수상작품집을 읽으며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의 시상 기준을 알 수 있겠다 싶다.


수상 작품집의 단편소설들을 읽으며 어떤 소설은 문체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기도 했고 어떤 작품은 다소 매끄럽지 못 하거나 어떤 작품은 소설보다 희곡이나 시나리오였다면 더 호응이 쉬웠으리라 싶기도 했다. 소설로서는 필력이 다소 아쉬운 경우도 있었지만 모두 하나 같이 스토리에 수준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른 공모전과 다르게 스토리 공모전은 문체의 수려함만큼이나 얽개의 수준과 스토리의 기발함을 보는구나 하는 감상이 들었다. 


지난 응모는 난생 처음한 응모였고 스토리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문체의 수준이 유치한 수준이라 당연한 결과이겠으나 앞으로는 어느 정도의 필력을 갖추어야 하고 문장 수준의 난이도도 어느 정도면 되겠다는 기준이 잡히는 것 같다. 올해는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올해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꾸준히 도전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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