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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니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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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은 좀 지루하다가 갈수록 몰입하게는 되는데 크게 재미는 없다. 

식당 로시니의 등장인물들로 세계를 그리려 했다는데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이야기의 구성이 몰입하게는 만들지만 

감동적이라거나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이지는 않다. 

다만 시나리오가 끝나고 작가가 시나리오를 계획하고 

탈고하기까지 또 영화를 제작하고 편집하기까지 전 과정에 대해 

돌아보는 내용이 나오다보니 아마도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읽어볼만한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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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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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살 때 쯤 읽고서 리뉴얼판이 나왔길래 다시 읽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의문이다. 좀머씨는 도대체 왜 죽었을까?  

오랜 전 기억과 다시 읽은 책의 내용은 다소 다른 부분이 있었다.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이렇게 말하는 심정은 이해가 갔지만 "그러다 죽겠어요"라는 말에 

한 반응이라면 좀머씨는 일생 죽음을 피하다가 죽음을 마주한 것이 아니라 

죽음 속에서 죽음을 향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고 어둡지 않은 분위기이면서도 깊은 곳을 건드리는 소설이지만  

주제를 파악하기에는 너무 난해한 것이 아닌가 싶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에게  도대체 좀머씨는 왜 죽었으며  

그의 죽음을 통해 말하려던 것은 무엇이었냐고 물어보고 싶지만  

독일어의 장벽을 뛰어넘는다해도 그의 성향상 그는 화를 내며 피해버릴 거다. 

좀머씨가 왜 죽었는지는 그렇게 많은 독자들에게 의문으로만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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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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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중 아마도 유태인인 부모님을 차례로 잃고 자신의 여동생과 멀고 먼 친척아저씨 집으로 가 농사일을 하다 군대를 다녀온 조나단. 군대를 다녀오자 여동생은 이민을 갔다며 사라지고 없고 친척 아저씨는 그를 이름도 모르던 여자와 서둘러 결혼을 시킨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4개월만에 아내는 아이를 출산하고 같은해 가을에 과일장수와 눈이 맞아 달아나 버린다. 조나단은 급기야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고 사람을 멀리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파리에서 은행 경비일과 다세대주택 건물 끝층에 자리잡을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그는 50 여세가 되자 그곳에서 터 잡고 눌러 살 작정을 하는데... 최소한의 접촉 외에는 사람들과의 어떠한 대면도 꺼리던 그에게 어느날 공포스럽기 그지없는 괴물 하나가 나타난다. 비둘기라는 괴물이 말이다. 비둘기에 놀란 그의 하루는 완전히 균형이 깨어지고 시계바늘처럼 정확하던 그의 일상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그 공포로 얼룩져 엉망이 된 하루의 끝에 짐작치 못했던 깨우침을 얻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데... 


비둘기에 대한 공포와 그로 인해 엉망이 된 그의 하루, 그사이 그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얻게 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조나단의 삶에 나타난 그 비둘기가 꼭 한번은 다녀가야 할 것 같다는 감상이 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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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바스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박종대 옮김, 함지은 북디자이너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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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에서 역자는 이 희곡을 사랑이야기로 결론 짓고 있던데 아마도 결말이 그렇다는 것을 주목케하는 의도이지 않았나 싶다. 물론 결론은 사랑이야기로 끝맺어지는듯 하지만 그것도 화자의 공허를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소리 높인 것으로 봐야 할거다. 


시작은 콘트라바스의 예찬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거듭 악기의 가격과 물가 상승을 언급하는 화자의 세속성이 바로 드러난다. 그리고 지나가며 이야기 하듯 그의 짝사랑의 대상 사라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한참을 바스 연주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이야기 하지만 결국은 바스를 병든 삼촌처럼 관심을 끌려는 관심병자로 몰아간다. 그는 바스를 엉덩이 늘어진 노파로 상징하기도 하며 자신은 예술가라기 보다는 기술자라고 자학한다. 그와 바스는 이미 하나이고 그의 콘트라바스에 대한 비하와 혐오는 자기성찰이라기 보다는 그저 자학의 하나로만 보인다. 


바스를 여자로 가정하거나 또 사라를 상상하며 사라를 안고서 콘트라바스를 연주하는듯한 장면은 그의 외로움이 극적으로 묘사된 장면이었다고 생각된다. 그의 넋두리로 드러나는 그의 일상과 그의 내면은 공허가 엿보이고 극도로 외롭고 극히 불안정한 것만 같다. 콘트라바스의 예술적 가치와 휴대하거나 거치하기 어려운 속성은 사람의 영혼과 자아의 속성을 드러내려 묘사된듯 싶다. 여성과 사랑을 나누려할 때 바스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는 화자의 말은 언제 어느 순간이던 자기를 성찰하고자 하는 인간의 내적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공연장이 차가울 때면 한참을 체온으로 콘트라바스를 데워주어야 한다는 것도 우리의 내면에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하는듯 하다. 그에게 바스는 이렇게 사랑의 대상, 예찬의 대상, 자기애의 상징, 또 걸림돌이기도 하다.


 콘트라바스와 그는 하나로서 인식되며 인간의 공허, 고독, 불안정함을 상징하고 있다. 반면 그는 세속적이면서 콘트라바스 같은 베이스적인 역할이 아니라 세상의 주류가 되고 싶어하는 깊은 열망도 지니고 있다. 사라라는 그의 짝사랑의 대상은 주류와 잘도 영합하는 속물적인 여성인데 화자의 아니마를 상징하고 있다.


연주자로서의 자부심과 그의 음악적 소양들로도 그의 공허는 메워지지 않는다. 그에게 그 모든 것은 허약한 지반이 덮고 있는 공동 위에 선 것과 다름없는 정도의 영향력만을 행사하고 있다. 그의 메마른 일상과 영혼을 구원할 한줄기 빛은 사라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그가 사라에 대해 언급한 일화들로는 사라도 빛이라기 보다는 그저 속물적인 여성일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저명인사들이 모이는 공연장에서 사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이벤트 아닌 이벤트를 준비한다. 


그는 과연 그 이벤트를 실행할까? 그 이벤트로 사라의 관심을 살 수 있을까? 사라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그녀가 과연 그의 공허를 끝내줄 진정한 빛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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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 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그림 하나, 시 하나
신현림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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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젊은 날을 사로잡은 그림 하나 시 하나'라는데... 

"작은 박물관 하나를 통째로 선물 받은 느낌"이라는 이해인 수녀님은 

역시 시인다운 감수성을 가지신 분 같다. 


그림과 시, 화가와 시인에 대한 단상은 좋았지만 

내게는 그리 기억에 남는 시가 많지 않았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림과 시를 그럴싸하게 매칭하려 

검색창을 두드린 느낌이다. 


이미 읽어볼 분들은 다 읽어보셨을 책이지만 

아직 안읽어 보신 분들에겐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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