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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의식 2 - 코스믹 게임 초월의식 2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지음, 김우종 옮김 / 정신세계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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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믹 게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을 [초월의식2]라는 새제목을 달아 개정판을 출간하였기에 다시 읽어보고 리뷰를 남긴다. [초월의식] 1권과 본서는 1권이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었던 책이고 각기 개별적인 책을 정신세계사측이 1권과 2권으로 연계지어 다시 재출간했다. [초월의식2]는 1권을 읽지 않더라도 충분히 독자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1권에 질려버린 분들이라도 그 정도로 지루하고 개인사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니 본서를 꼭 읽어보셨으면 싶다.

 

[초월의식] 1권은 굉장히 개인사적으로 전개되고 초개아적인 내용이 '내포'되어있는 자전적인 이야기라 흥미를 갖던 분들도 굉장히 지루해서 독서를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는 책이다. 하지만 예전 출간 제목이 [코스믹 게임]이었던 본서는 1권과 연관짓지 않더라도 초개아 심리학이랄까 초월 심리학이랄까를 직설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 애정을 갖고 읽었던 사람으로 굳이 왜 독자적인 두 책을 하나의 시리즈로 만들었는지 조금 애석하기도 하다. 1권을 읽고 질려버린 분들이 이 책도 마찬가지이리라 생각하고 관심도 주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본서는 기존의 영성서들과 맥락을 같이 하는 가르침들이 담겨있다. 현대의 초개아심리학은 심리학의 한 지류이기도 하겠지만 그 연구의 시작점이 개인심리가 아닌 개인을 초월한 아마도 집단무의식이랄까 영성이랄까가 연구의 대상이기에 본서가 다루는 내용 역시 과학과 심리학적인 내용이기도 하면서 영성이 분석의 대상이다. 물론 무신론자나 유물론적인 견해를 갖는 분들에게는 비판도 아닌 비하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내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카발라라던가 현존하는 영성서들에 관심이 깊던 분들에게는 깊은 호감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한 저작이다. 

 

개아는 전체와 같고 전체가 부분을 포함하듯 부분 역시 전체를 담고 있다는 내용이나 전체가 자신을 한정 지으며 개체아로서의 삶이 생겨난다는 내용들은 마치 홀로그램 우주론이나 카발라의 짐줌을 이야기하는 것도 같다. 악은 전체를 완성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며 악과 고통은 전체를 경험하기 위해 선과 전체성과 함께 양극적으로 이어져 있는 하나이다라는 가르침은 동양의 불교철학, 역철학, 카발라 등과 함께 모든 영성서들의 근본 주제이기도 하다. 악은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라는 이야기에도 적극 공감이 갈수밖에 없다. 주산기(출산*탄생 전후) 경험이나 윤회마저도 본서의 담론의 대상이다. 절대와 무한, 완전 등으로 수식되는 절대자가 자신 안에서 한계를 지으며 세계를 창조한데는 의도와 바람이 있을 것이며 그렇기에 근원적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아니라 이 한정된 세계에서의 경험도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도록 하는 전개도 나쁘지 않다. 무한, 절대의 본래 자신과 합일하는 것은 생명체의 근본 목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창조와 귀환의 도상에서는 경험하고나서 돌아가는 것이 바른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서는 영성에 1도 관심이 없는 유물론적 관점을 지닌 사람들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리라는 기대는 하기 힘든 책이다. 다만 명상과 영성에 대한 관심이 깊은 분들 중 심리학자의 영성 이야기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다는 분들이라면 관심을 가질만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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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의지는 없다 -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자유 의지의 허구성
샘 해리스 지음, 배현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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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의문이었던 주제가 과연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신학에서도 결국 종말에 구원되는 것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결정해둔 자들이 구원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회의라던가 카톨릭 사제들과 신학자들의 결론이다. 개신교에서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의 행위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신앙하는 행위, 도덕적인 판단과 행위가 구원이라는 판결 기준이 아니라면 인간에게 무슨 결정권이 있고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에서 나의 의문이 시작되었다.


사실 심리학에 대한 책들을 하나둘 읽어가면서 부터는 더욱 의문이 깊어졌다. 인간의 의지와 행위의 동인이 경험과 학습의 결과이거나 무의식의 발로라고 한다면 거기서 무슨 자유의지가 역할을 한다는 말일까? 우리가 반응하기 이전에 호불호는 우리 내면에 아로새겨져 있고 우리의 판단에 작용한다. 이 호불호는 우리의 모든 인식과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현재에 선행한 과거의 결과이고 이것에 우리가 반응하며 호불호가 생긴다고 해도 거의 대부분 타고난 것(태생적인 것, 유전적인 것)과 이후 우리가 노출된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구성된 것이다. 그리고 태어난지 4년까지 우리 생의 호불호의 근간이 이루어지는 기간 동안 우리는 반응하는 것 외에는 우리 생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할 여지가 없지 않았나?


본서의 저자 역시도 인간이 같은 유전자, 같은 환경, 같은 과거의 경험, 같은 뇌를 지닌 같은 존재가 되었다면 같은 선택의 기로에서 결국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겠냐고  결론을 짓고 있다.


심지어 저자는 "자유의지란 환상이다"라며 그것을 미스터리로 주장하고 있고 "과학적 관점으로 볼 때 자유의지란 도저히 성립할 수 없다"고 까지 역설하고 있다. 그의 이런 주장의 근거는 현대 과학의 이기들로 인간의 행동과 뇌파 활동을 연구한 결과, 인간이 행동 이전에 이미 어떤 행동을 할지 뇌가 그 행위를 결정하기 이전에 이미 그 행위를 결정한 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뇌파 활동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타인의 하루 일과에서 그가 무슨 행동을 할지 몇 초 이전에 다 예측 가능하다고 검증된 것이다. 인간이 행위를 결정 짓는 과정 이전에 이미 뇌가 행위를 결정한 활동을 하고 있다면 우리의 판단과 결정은 우리의 생에서 무슨 의미인 걸까?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가 우리 판단을 예지하는 것도 아니라 미리 우리를 제어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 과학적 발견은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무력감을 너머 생의 의지에 마저 혼란을 야기하는 발견이 아닐까 싶다. 


다분히 철학적인 주제를 야기하는 이 과학적 발견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타 학자의 주장을 저자는 언급하고 있다. 그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의 주장 중 일부는 정말 어불성설인가 싶었다. 인간은 반우발적인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며 인간은 자기발생적인 작은 신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자유의지를 주장하기 위해 인간이 행위의 주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정론, 자유론, 양립가능론 중 양립가능론을 주장한다는 이 반론자의 주장은 인간이 행위의 주체도 아니고 행위의 동인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에 결국은 자유의지를 부정할 수 없다는 주장인 것이다. 납득 불가의 주장이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만한 과학적 사고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들며 비결정론적 이론의 영향력은 미시세계에 한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이나 그 학설이 발전하며 파생된 홀로그램 이론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저자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만이 아니라 보조하는 주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마음의 힘을 논하는 여러 이론들이 양자역학을 근간으로 그 주장을 펼치는데 양자역학의 관찰자 효과나 양자 얽힘 현상이 반드시 인간 의지의 자율성이나 무한한 영향력을 증거하는 학설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관찰자 효과를 마음의 힘과 연계할 때는 반드시 자신의 마음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만을 가정한다. 하지만 관찰자 효과는 인간인 관찰자 외에 산소 분자나 광자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을 관찰자로 본다. 파동과 입자의 어느 경우의 수를 나타낼 때 어떤 관찰자라도 참여하면 경우의 수는 하나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건 자신의 마음만이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근거로 볼 수 있다. 내가 성장하며 나를 관찰해온 무수한 대상들이 모두 나의 현재를 결정지었던 것이고 지금도 결정 짓고 있으며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나 아닌 타자 그러니까 다른 존재에 대해서도 세계라는 현상에 대해서도 이는 같을 것이다. 나만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이것은 결정론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양자 얽힘도 마찬가지다. 타자에 대한 영향력이 나에게도 영향력을 끼친다면 어찌 나의 마음의 힘만이 절대적이랄 수 있겠나? 


홀로그램 우주론으로 보아도 이미 과거, 현재, 미래는 통으로 결정되어있는 것이다. 시간선에서 비선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해도 결론은 이미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모두 영향을 끼치며 동시에 결론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결국에는 결론은 결정되어 있다는 결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홀로그램 이론으로는 나의 현재가 이럴 것이었기 때문에 나의 과거가 그렇다. 나의 현재가 이럴 것이기 때문에 나의 미래가 저렇다는 주장을 할 수 있다. 인과는 과거, 현재, 미래에서 동시에 서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가 통으로 결정되어 있다는 결론과 다르지 않다. 인과가 비선형적이기 때문에 미래가 현재와 과거에 동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결정론적인 결론을 불러올 수 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결정된 것이 없다는 말은 관찰자가 없는 순간의 이야기이나 온 세상이 관찰자일 수 있는 상황에서는 이미 결론이 나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나만 안 보았다고 결정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서는 부록을 제외하면 겨우 84쪽의 본문으로 짧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자유의지와 삶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확증 편향을 강화해준 책으로서의 역할이 컸던 것 같다.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의 한 문장 '추락하는 것은 추락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고 성공하는 것은 성공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추락한 나이지만 이 섭리가 결국 체념을 불러다 주었고 그래서 되려 삶의 의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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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2-20 2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나서, 이하라님 페이퍼 디자인을 유심히 보니,
서재와 느낌이 참 잘 맞습니다^^

이하라 2021-12-21 00:0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북사랑님^^ 서재 디자인은 신경쓰지 못하고 선택한 건데 이제 새해가 오면 한번더 보고 선택해야겠습니다.^^
 
1700년 동안 숨겨진 절대 기도의 비밀 - 잃어버린 기도의 비밀
그렉 브레이든 지음, 황소연 옮김 / 굿모닝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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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키워드는 축복, 기도, 고통, 아름다움 이 네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축복'을 "상처 받은 감정을 다른 감정으로 대체하고 인생의 상처로 부터 해방되는 길"이라고 정의한다. 

 

"고대인들은 마음과 머리와 영혼까지 감동시키는 경험을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다"

 

"인생의 가장 추한 순간에서도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 

 

"감정의 기도는...... 단지 기도가 이미 응답을 받은 것처럼 분명하고 강력한 느낌이 피어나도록 유도할 뿐이다."

 

"기도의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아름다움과 축복과 지혜와 고통에 숨겨진 힘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고대인들은 감사하는 마음가짐의 느낌을 통해서 창조의 힘, 즉 신의 정신과 직접소통한다고 믿었다".

 

"고대 그노시스 문서 중에는 우리가 고통에 취약한 것을 치유와 생명으로 통하는 출입구라고 표현한 구절이 있다."

 

"고통받고 나서 삶을 찾은 인간은 축복받은 인간이다." - 도마복음에서 예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한데, 사랑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가끔씩 상처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패턴이 가자의 자리에 있을 때 균형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우리도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을때 가장 큰 선물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가장 큰 시련을 겪게 된다."

 

"시련을 겪어야만 깨달음을 얻는다. 이 원칙을 알든 모르든, 인생이 우리에게 어떤 시련을 주든,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이미 문제를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시련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고 있다."

 

고통과 시련에 대한 저자의 말과 인용 중 동의할 수 없던 것은 마지막 문장으로 해결하고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누구나 갖추고 있다지만 때론 그 시련으로 사람은 죽기도 하고 미치기도 한다. 저자의 말은 가진 자의 오만이나 다를 바 없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상처가 깊고 고통이 클수록 감정의 농도는 짙어진다. 가장 큰 고통을 느낄 때 가장 큰 사랑을 경험할 수 있다."

 

"상처는 경험을 해석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생기기 때문에 일어난 일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면 순환 과정상의 초점 역시 바뀌게 된다."

 

"어디에서 비롯된 상처이든 상처를 치유된 지혜의 형태로 변형시키는 힘이 우리 내부에 있다."

 

"세상은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감정들을 투여하는 양자망quatum fabric인 것이다."

 

"모든 "시작"과 "종말" 사이에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이 존재한다. 마법과 기적은 바로 그 순간에 발생한다! 그 찰나에는 아무것도 선택되지 않아서 모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틈에서부터 우리 몸을 치유하고 인생을 변화시키며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이 나온다. 모든 사건은 이 강력한 마법의 순간에서 비롯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청사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에너지 장이 마음 속의 믿음을 반영하기 때문에 기도하기 전에 상처와 분노를 제거해야 한다."

 

"기도를 시작하기에 앞서...... 모든 판단과 두려움과 상처를 일시적으로 유보하라"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행위는 치유의 길로 들어서는 관문이 된다."

 

"축복이란 현재 마음을 괴롭히고 있거나 과거에 마음을 괴롭혔던 일에 대한 감정을 다시 정의하는 생각이나 느낌, 혹은 감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축복은 상처받은 감정을 몸 안에 가두어두기보다는 해방시키고 치유의 빛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어젖히는 "윤활유"라고 할 수 있다."

 

"축복은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던지 간에 그것이 일어났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들 안에서 하느님을 사랑하기는 쉬웠다. 하지만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아름다운 경험이든 추악한 경험이든 모든 경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아름다움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을지라도 아름다움의 힘으로 고통과 상처와 두려움을 치유할 수 있다."

 

"아름다움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 힘은 깨어날 때까지 잠을 잔다.

 

"아름다움은 가슴과 머리와 영혼의 경험이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종종 "불완전"하다고 부르는 것, 즉 결점 투성이로부터 완전함을 보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고대인들은 감정, 특히 우리가 "기도"라고 부르는 특별한 형태의 감정이 온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믿었다"

"감정과 기도는 물리적인 세상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우리 앞에 던져놓은 상처와 고통을 초월해서 이미 만물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길을 찾아야만 한다."

 

"기도는 감정이 저절로 우러나올 때 마음속에 존재한다."

 

"우리가 느끼고 기도하는 것이 신의 정신에 의해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것이 바로 "인생"이다."

 

"응답을 받았을 때의 감정을 먼저 진심으로 느껴야만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다."

 

"축복의 과정을 밟을 때는 우선 상처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을 때까지 상처를 보류해야 한다."

 

"인생에 일어난 사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그는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왜 상처를 받았는지 이유를 깨달을 때 터널 끝에서 반짝이는 불빛을 보게 될 것이다"

 

"고대의 전통에 따르면 우리 주변의 세상은 실생활에 드러난 우리 자신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름다움을 발견하자고 지혜를 얻자고 감당도 못할 고통을 겪어야만 할까? 적당히 거친 파도는 유능한 뱃사람을 만들겠지만 메가쓰나미에는 배와 함께 침몰해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Nizhonigoo bil iina

(아름다움과 더불어 살고, 아름답게 살며, 아름다움을 인생의 기반으로 삼아라)" - 나바호 인디언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과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감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우리 안에 둥지를 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명령에 복종한다.     - 시에나의 성 카트리나

 

"그대 마음 속에 간직한 것을 열매 맺는다면

그것이 당신을 구원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그대를 파괴할 것이다."  - 도마복음서

 

"아름다움은 홀로 거울을 응시하고 있는 영원이다. 

하지만 그대가 영원이며 거울이다."  - 칼릴 지브란

 

"내 이름으로 직접적으로 구하라...

그러면 얻으리니. 지금까지 너희는 그러지 않았다. 

숨겨진 동기 없이 구하고. 

너의 답으로 에워싸이고. 

네가 열망하는 것으로 둘러싸이면 기쁨이 충만하리라." - 성경 요한복음의 에쎄네파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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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클럽 - 인생에 기적을 설계하는 사람들의 비밀
미치 호로위츠 지음, 오난영.김정 옮김 / 라이스메이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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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마음의 힘을 논하는 저작들에 다시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십 대 시절엔 마음의 힘을 절대적으로 믿었지만 이후의 삶에서 마음의 힘만큼이나 인간에게는 주어지는 운명이라는 것도 무서우리만치 압도하는구나 하는 감회를 갖게 되는 생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고자 하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랄 수 있는 나만의 일과 이외의 것들에서는 진취적이기보다는 운명에 수긍하는 편이 되었다. 행위의 동인이 내면에 있다고 믿는 주의에서 행위의 동인을 외부 영향력에 좌우되는 것으로 많이도 기울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미라클 클럽]이라는 본서를 YES24에서 서평단 모집을 할 때 참 반가운 느낌을 받았다. 최근 들어 다시 마음의 힘을 논하는 저작들을 가까이하고는 있지만 본서처럼 마음의 힘을 논하던 초창기 시대부터 최근까지의 신사상(이 책에서는 [씨크릿] 같은 류의 가르침을 그 같은 철학들이 태동하던 시대의 명칭 그대로를 들어 신사상이라고 한다)과 그 사상들의 원작자들을 함께 돌아볼 수 있는 책이 눈에 띠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더랬다. "그래 이 책이라면 마음의 힘을 증거하는 강력한 자료집이 되어 줄 거야!" "마음의 힘을 체험하고 마음의 힘으로 살아나갈 방법들을 확실하고 상세하게 체계화한 저작일 거야!"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본서는 방법론 면에서 그다지 상세하지 않다. 이것이 마음의 힘에 대한 이런 유의 책에 입문하기 위해 본서를 선택하는 분들에게는 하나의 단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에 더해 장점을 말하자면 하나는 신사상이라는 이런 마음의 힘을 논하는 가르침의 효시가 되었던 철학자들의 가르침들을 그들의 인생 여정과 함께 간추린 형태라도 하나하나 접해 볼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마음의 힘을 논하는 저작에서 삶의 의미 찾기 같은 깨우침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장점이 기적을 창조할 수 있다는 가르침에 무게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다시 자리하게 해주는 데 더 큰 무게가 있다고 여겨졌다.

 

저자가 책의 서두에서 한 말을 보자. 

 

"나는 기적을 꽤 단순하게 정의하는데, 기적이란 관습에 따라 자연스럽게 갖는 기대를 초월해서 일어나는 사건, 또는 상황이다. 즉 인생에서 의도치 않게 받은 선물 같은 것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더 쉽게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이 자신의 삶에서 기적을 실현하는 방법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서두의 이 말은 본서가 논하고 있는 사상의 특색이 기적을 구현해내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서 기적을 보러 왔다. 기적을 증거 하리라 믿는다. 기적을 실현할 확실한 방법을 알려주기를..."이라는 기대만 가지고 이 책을 선택한다면 실망이 작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기적을 체험하고 실현하도록 설득력 있는 구조로 접근하기 보다 저자는 신사상의 근간이랄 수 있는 사상가들의 철학과 인생을 짧게 언급해나가면서 우리의 관념과 관점의 확장을 유도하고 있다. 현대의 과학 이론의 버프를 받은 요즘 신사상에 대한 저작들은 매우 매혹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고 관점의 확장을 불러주기도 한다. 하지만 본서와 같이 신사상의 역사적 흐름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의 변화부터 시작하는 것을 권하는 책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읽어본 신사상 서로는 존 키호의 [마음으로 한다], 삭티 거웨인의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된다], 이송미의 [미라클], 그렉 브레이든의 [디바인 매트릭스], 조 디스펜자의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 [블립], 바딤 젤란드의 [리얼리티 트랜서핑1,2] 그 외에도 십 대 시절 읽어 기억도 나지 않는 최면을 기반한 책들이 있었고 영상물로는 [The Secret]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이 도서들 중 일부는 모두 극적인 변화, 극적인 기적을 기대하게 하고 그럴 수 있다고 강조한다고도 할 수 있는 책들이다. 하지만 이와 달리 [미라클 클럽]이라는 본서는 어떠한 획기적인 변화, 이를테면 시크릿류처럼 당장 돈을 끌어당겨 부자가 될 수 있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기적에 대해 과장된 기대를 갖게 하지는 않고 있다. 

 

오히려 일상에서 추구하는 단계적인 성장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가치 있다고 언급한다. 일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두루 돌아보며 그 하나하나의 가치를 인식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중 돈이라는 것 곧 부富도 사람이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이라고 언급하는 정도이지 "당신은 부자가 될 수 있다" "부를 끌어당겨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목표의 성취를 독려하는 것이 저자의 어투이다. 

 

"자신의 목표가 무엇이든 성취하지 못했다면 그만둘 수는 없는 법이다. 성공은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실제로 그것이 진실인지 확인하지 않고서는 한낱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탈세속적인 이상향만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에게 세속적인 것도 중시해야 함을 주지시키는 말이 익숙하면서도 들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또 덧붙이기를...

 

"자신이 세웠던 목표가 과연 깊은 의미를 지닌 내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었는지 .."

 

이 대목 덕분에 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던 현재의 나의 고민을 돌아볼 수 있었다. 저자는 자신의 예술가 친구와의 대화를 언급하며 자신의 친구가 대부분의 예술가는 예술로 부를 쌓은 것이 아니라 돈을 다른 일로 번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 일화를 예로 든다. 맹목적인 부의 추구가 아니라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언지 다시 또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느낀 바가 많았다. 현실도 중요한 것이겠지만 결국 현실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을 위해 한껏 노력해보지 않고서는 사람은 후회만 남기는 생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을 선택하고서 현실에 안정감을 느끼며 만족해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자신이 현실의 안정감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인지 이상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더 후회할 사람인지 가늠해 보는 시간도 필요하리라 생각되었다.

 

"모든 정신을 집중하는, 열정이 느껴지는 단 하나의 열망을 찾아라. 내 안에서 스스로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지는 욕구를 찾아라. 그러면 그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힘을 발견할 것이다."

 

저자 미치씨는 기적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의미를 찾게 해주려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감상이 이 대목에서 들었다. 내게는 과거에 목표였다가 변해버린 꿈도 있고 지금까지 불타는 열정을 갖게 하는 이상이 있다. 나는 생계를 위해 과거의 꿈을 다시 쫓으려 했으나 처음부터 그 꿈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목표였지 나를 살게 하는 이상은 아니었다. 나는 저자의 말을 듣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가늠해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깊은 깨우침을 주던 대목은 자기암시 과정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저자는 나폴레온 힐의 말을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나의 생각은 자기암시의 원리를 통해 내 마음속에 있는 잠재의식에 새겨집니다. 곧 내가 내 안에 정확하게 같은 성품을 형성하는 셈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 하십시오..."

 

"타인을 대하는 나의 행동이, 그리고 타인에 대한 나의 생각이 자기암시 원리를 통해 내 마음속에 있는 잠재의식에 새겨진다면, 즉 나의 행동과 생각이 모두 나의 성품이 된다면, 어떠한 행동과 생각도 허투루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힐의 관점을 정리하며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신조에 따르면, 타인을 향해 발산한 생각과 행동은 동시에 자기 자신을 향해서 작용한다. 다른 사람에 하는 생각과 행동은 결국 자신에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부분과 전체는 분리가 불가능하다."

 

나는 이 문장들에 다소 문제는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세상에 대한 관점과 해석은 유년기부터 내재화되어온 외부적인 요인들이 한 사람의 가치관과 현재에 마주하는 여러 요소들에 대한 해석의 틀이 되는 것이기에 타인의 나에 대한 해석이 이럴 것이라는 관점이나 타인을 대하는 시선이 모두 자신만이 원인이 아닐 거다.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의 그러한 난점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있어야지 네가 나를 이리 대했으니 나도 이렇게 밖에 대할 수는 없다는 관점은 답이 아니라고 본다. 대접을 잘못 받았다고 받은 대로만 돌려주는 것도 그릇된 양식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타인에 대한 생각과 행위가 자기 자신을 향해 작용한다는 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타인에 대한 생각과 행위가 나의 무의식에 새겨져 나의 성품이 된다는 것... 달리 말해 무의식이 결국에는 거울이 되어 나를 처단하게 되는 상황을 야기하게 된다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세상이 나를 이렇게 대했다는 생각, 자신이 입은 피해에 지나치게 주목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생각됐다. 그건 결국 보복하고자 하는 심리를 불러오던가 무의식 속에 나도 똑같이 해주리라는 반작용이 일어나 세상에 냉담하고 삭막해지는 태도를 불러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자면 내게 상처 남기지 않으려면 세상이 내게 어떠했는지에도 극단적으로 주목하지 않아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 현대의 신사상의 가르침이 양자물리학 이론으로 부분적인 버프를 받기도 또 그로 인한 비판에 직면하기도 하는 내용을 전하면서 저자 역시 자신의 생각을 토로하고 있다. 양자 중첩과 상대성 이론을 예로 들며 시간이 비선형적이라는 주장을 한다. 거기다 '다세계 해석'이라는 물리학 이론을 들어 무한한 수의 현실과 상태가 존재하며, 그 하나하나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시간 속에서 순간을 분리해 그 순간을 현실로, 또는 유일한 결과나 경험이나 기억으로 결정하는 매트릭스처럼, 우리의 생각은 무한하고 비선형적인 경험들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관점이 무언가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파동 상태에 있는 입자의 중첩처럼 잠재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것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과 감정 상태를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우리에게는 서로 다른 공존하는 현상들이 펼쳐진다."

 

이미 시간의 비선형성은 [우주의 홀로그래피]를 통해 익숙한 정보였으나 이 문제가 마음의 힘과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지 의문이 생겼었다. 아니 이미 존재하는 다세계에서 어떤 나는 행복하고 있을 것이기에 행과 불행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말자는 생각 정도는 했던 것 같다. 얻음과 잃음, 성취와 실패 모든 것에 상처받을 만큼 연연하지 말자고 말이다. 

 

 

본서는 기적을 낳는다는 사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성장의 과정에 닿아있다. 그리고 그 성장의 과정에 신사상이 이르는 기적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도 담아내고 있다.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있는 독서가 될 수 있을 거라 권해 드려도 될 듯하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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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립 Bleep - 일상의 현실을 바꾸는 무한한 가능성의 발견
윌리암 안츠 외 지음, 박인재 옮김 / 지혜의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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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양자 물리학과 뇌 과학, 양자 뇌 이론, 무작위발생기 실험, 얽힌 마음(뇌) 실험 등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함을 유효하게 역설하고 있는 책이다. 

 

도서가 분량도 만만한 편이고 서술이 단순해 가독성이 높은 것도 장점이다.

 

프랙탈 이론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 언급한 것이 다이지만 프랙탈이 확장되는 그 역순으로 미시세계에 근접해 갈수록 상위 차원의 원의식, 초의식의 영향력하에 들어서는 것으로 해석 가능한 서술도 인상적이었다. 거대 규모로 물질화되는 과정의 역순인 그 근원적 차원에서 초의식의 영향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 [물질의 궁극 원자 아누]에서의 오컬트 화학의 주장을 상기하게 해줬고 그래서 더 납득이 쉬웠다.

 

이미 독서 습관으로 순간의 리뷰에서 4차례 남긴 단상들을 제외하고 이야기 하자면, 우리의 바람(욕망)은 물질세계로 현현되는 근원적 에너지의 작용이고 우리의 의지로 드러나며 그 의지를 통해 현실을 창조한다는 이야기가 일반적인 씨크릿 류의 이야기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과학을 배경으로 참 설득력있게 전개되었다고 생각된다.

 

무작위 발생기 실험으로 개인과 집단의 의지가 실제적인 영향을 보인다는 것을 수긍하게 했고, 얽힌 마음(뇌) 실험은 우리가 양자 얽힘과 같이 우리의 마음도 얽혀서 서로에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증거가 된 듯하다. 

 

우리는 외떨어진 홀로가 아니고 서로를 통해 존재한다는 근거일 수도 있고 현실은 우리가 창조한다거나 제어할 수 있음을 증거하는 실험들이지 않은가 싶다. 

 

사실 [홀로그램 우주], [우주의 홀로그래피], [필드], [물질의 궁극 원자 아누] 등을 통해 이미 접해본 내용들이었지만 다시 한번 재확인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좋은 인상을 남기는 책이지만 실제 변화를 유도하려면 그러니까 변화의 의지를 가지려면 이런 정보들에 대한 입력이 아니라 출력... 복기와 구현, 공유 등이 뒤따라야 한다고 하는데 복기는 리뷰와 단상을 남기며 했다지만 구현하는 것은 일상에서 작은 실천들을 반복했어야 할텐데 그런면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공유는 구현의 이후에나 가능할테고 말이다.

 

* 무작위 발생기 실험은 불특정 숫자가 무작위로 발생되는 기계를 개인이나 집단이 일관성있는 (작위적인) 숫자 발생비율을 보이도록 영얗력을 행사하는 실험으로 대중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 사고 같은 경우에도 무작위적이어야 할 숫자 발생이 일관성을 띠게 되는 결과를 보인 실험이다.

 

*얽힌 마음 실험은 서로만 생각하도록 제안 받은 사람 둘을 전혀 다른 공간에 두고 한 사람의 눈에 빛을 비춘다거나 피부를 바늘로 찔렀을 때 서로 제안 받은 다른 사람의 뇌파와 심전도 변화 등이 해당 사람이 빛을 눈에 비췄거나 피부를 바늘로 찔렸을 때와 같은 변화를 보이는 결과를 가져온 실험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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