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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의 발견 - 믿는 것이 현실이 되는 마인드셋
데이비드 롭슨 지음, 이한나 옮김 / 까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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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짧은 소개글만 읽고도 끌린 책이다. 플라세보 효과와 노세보 효과를 논하고 신경가소성에 대한 언급이 있기에 신념과 그 실현 원리를 다룬 책이리라 짐작하고 책에 끌렸다. 인간이 믿는 대로 실현되고 생각하는 대로 실천하는 대로 뇌도 변화한다는 것을 [꿈을 이룬 사람들의 뇌]라는 조 디스펜자 씨의 저작을 통해서 인식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이 신사상 또는 새생각으로 불리는 [씨크릿]류의 가르침과는 다르리라는 것은, 저자가 그런 가르침들을 유사 과학이라고 단정한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데, 책을 대하는 마음은 그런 사상들에 대한 관심과 유사한 흥미를 유지하며 읽게 되는 경우가, 나 외에도 많을 것이라 짐작된다. 기대한 대로 이뤄진다, 바라는 대로 실현된다는 주제이자 결론이 그런 오해를 불러오기에는 충분하지 않은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분명 본서는 착시효과, 플라세보 효과, 노세보 효과, 피그말리온 효과, 자기충족적 예언등 상식적인 심리 정보들이나 신사상적 이론으로 발전 가능한 원리들을 담론하고 있는 책인 건 분명하다. 하지만 신사상과의 차별점이라면 이 책은 초월적인 주의나 사상을 논하는 게 아닌 상식적이고 심리학적인 논리와 관점으로 해당 주제를 천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식이나 합리주의 이상으로 논지를 전개해서 억측이나 논리적 비약을 불러오는 저작은 아니다. 저자는 앞서 말한 심리학적 상식들을 포괄하는 개념을 기대 효과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이 모든 현상이 사람의 기대를 통해 그 기대가 충족되는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라 보고 있다.

 

들어가며에서와 그 이후 장들 중 앞선 몇 장에서 언급되는 사례 몇몇에서는 이의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1970년대 후반 미국의 라오스 이민자들의 원인불명 야면 돌연사증후군(SUNDS)이나 본 포인팅 또는 부두 죽음(voodoo death) 같은 경우는 심인성 질환이나 집단 이상심리가 원인인 것도 맞겠으나 그 이상으로 관점을 확장해 볼 수도 있는 문제다. 장 차원의 우주, 양자스프로 이루어진 우주에서 소수든 다수든 집단의 일관된 상념이 특정한 영향력을 불러오는 장 차원의 힘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가정도 해 볼 수 있다. 이런 초월심리학적 해석은 아직까지는 주류 학계에서 유사 과학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것이기에 객관적이며 학술적인 견지를 유지하려는 본서에서는 어쩌면 몰라서 배제한 서술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집단히스테리나 집단 이상심리로서 분류한 무도광(14세기에서 17세기 동안 있었던 사람들의 장기적인 집단 춤을 불러온 사례들)의 경우 본서에서는 맥각 중독이라는 설도 있다고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지만, 맥각균은 LSD라는 마약의 원재료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맥각균을 정제해 LSD가 제조되었다. 요즘의 좀비마약이라는 어느 신종 마약의 경우 중독자가 관절을 꺽고 고개를 점층적으로 꺽는 등 신체적 이상 동작을 보이기도 한다. 중세시대의 유럽인들이 맥각균에 의해 이상 동작들을 보인 것이 무도광의 사례로 보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과거의 사례이기에 검증 불가능하니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반면에, 그렇다면 맥각 중독이 원인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저자는 심리적인 이유라는데 더 무게를 두고 주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또 하나는 2016년 쿠바 아바나에서 CIA요원들이 보인 이상 증세들을 저자는 이후 뚜렷이 음파 무기에 의한 공격 등으로 해석할 증거를 찾지 못했으니 심리적인 이유였을 것으로 단정 짓는 것도 억측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건 닉 베기치라는 과학자 분의 [Controlling the Human Mind: The Technologies of Political Control or Tools for Peak Performanc]의 역서 [누가 인간을 조종하는가]라는 저작이 과거 출간된 적이 있는데 그 책에는 전자기파로 인체의 기능과 심리를 제어하던 기술이 1970년대부터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러 있었음을 과학적 원리와 함께 실제 연구 역사와 실례를 전하고 있는 저작이다. (닉 베기치 씨부터가 하원의원과 정치운동가인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 연방정부에서 해당 분야의 과학 연구에 매진해온 인물이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전적은 없지만 이미 미국의 대중 인체와 심리통제 기술이 정점에 이르러 있음을 지적하고 널리 알리며 경계하는 과학자들의 저작과 정보가 적지 않다. 아바나 사태도 미국이 이미 보유한 기술을 상대국이 사용했기에 그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공론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 정보당국이 더는 수사하지 않고 무마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사실관계가 공표되기 전까지는 확언 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렇더라도 다른 경우의 수라고만 단정 지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닐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심리가 원인이라는 주장만이 진실이고 다른 가능성은 절대 없다고 단정 짓는 것도 과학적인 사고나 주장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 외의 예들은 대체로 공감하기 쉽고 수긍하기 어렵지 않은 주장들이기도 하다. 이 시대에 와서는 상식이다시피한 관점이 되어버린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플라세보와 노세보 효과를 언급하며 저자는 인간의 성향을 예측기계와 같다고 까지 단언하기도 한다.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구현해내기에 자신의 예측을 실현하는 기계와도 다를 바 없다고 확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대중적 상식이 되어버린 플라세보 효과와 노세보 효과의 원리는 이 저작 전체의 사례에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착시 효과도 듣는 것도 느끼는 것도 맛 보는 것도 인간이 단정 지은 것을 반영하는 이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기도 하다. 기대를 하게 되면 그저 얼룩무늬에서도 기대하던 패턴을 읽게 되며 백색소음을 듣기 전 힌트만 주면 특정 음악을 배경음으로 들은 착각을 하기도 하며 미미한 색소나 향만 첨가해도 같은 맥주를 월등히 뛰어난 특급 맥주로 착각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런 기대를 충족하는 원리가 플라세보나 노세보 효과를 낳고 그건 전 영역으로 확대되어 다양한 효과들을 일어나게 한다.

 

10장 구조의 본서에서 1~4장까지는 저자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논리와 원리를 소개하고 자리잡게 하는 장이라면, 5~10장은 일상에서 이러한 기대 효과가 미치는 영향력을 전개하고 있다. 스포츠에서 보다 더 효과적으로 기량을 높이기 위해 플라세보 효과를 이용하고 실제 적용되어 성취를 이루었던 사례를 전하기도 하며 다이어트나 건강식의 효과와 역효과(노세보 효과)를 분자생물학적 정보를 통해 전달하기도 한다. 스트레스에 대한 태도 변화가 실제 스트레스의 작용에 영향을 주는 경우를 생리적 차원에서 설명해주기도 하며 남녀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던 수학과 물리학 등에서의 학업성취도가 자기 가치 확인이라는 특정 과제에서의 해결력만으로 자신의 전체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로 자기 전체 능력을 무시하지 않는 태도를 보임으로서 현격하던 남녀학업성취도가 근소하게 바뀐 경우를 예로 들고 있기도 하다. 이미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교사의 고정관념을 바꿔주는 것만으로 열등생으로 분류되던 학생들의 성적이 뚜렷이 상승하는 경우들도 소개되고 있다. 인정받는 아이, 자기긍정할 근거를 마련해 준 아이들은 스스로 성취를 이뤄나가게 된다. 자신에게 스스로 기대할 바탕을 갖게 해주어야 아이들도 성취를 이루는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노인들도 자신의 나이 듦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운동기능과 시력, 청력 등의 인체 기능, 호르몬 분비량과 기능을 유지하느냐 잃느냐 하는 차이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모든 경우가 다 자기에게 어떤 기대를 하느냐에 따라 실현된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며 주장이다. 모두 수긍이 가고 모두 타당하다고 생각되었다. 다만 플라세보 효과나 노세보 효과의 영향력을 절대적으로 수긍하게 되다 보니 이런 논점을 제약회사가 부작용의 사례에 적용하려 들면 어떡하나, 제약회사들에게 후원을 받는 심리학자들이 이런 심리학적 결과들을 제약회사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의도로 악용하면 어떡할까 하는 우려도 들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의약품이 무언지 모르고 복용하더라고 우리 몸에 작용하기도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는 게 의약품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는다는 것만으로 다른 대상의 풍요를 불러올 수는 없다는 말이다. 대부분 노세보 효과가 아니더라도 의약품은 기능을 하며, 우리가 멸종하면 안 되는데 라고만 생각한다고 해서 특정 동물군의 멸종이 멈춰지지는 않는다.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 경우의 수가 삶에서는 더욱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관점이 또 부정적 영향에 대응하는 리프레이밍이 보다 나은 성과를 가져온다는 것도 분명하기에, 이 책은 확실히 우리에게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는 책임에 명백하다.

 

신사상과도 같은 심리효과를 기대하며 선택한 책이었지만 상식에 한 층을 더 쌓는 경험이 되었다. 유익하고 유용한 독서 경험을 가져다준 책이다. ‘현고학생부군신위라는 말은 차례를 지내는 집이라면 모를 수 없는 말인데 언제나 사람은 배우는 학생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두었음을 알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기대 효과는 아기부터 노령의 어르신들에게까지 그 영향력이 광범위한 효과이다. 이런 효과의 부정적 영향력을 받지 않으려면 긍정적 영향력을 확장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연령을 떠나 누구라도 학생의 위치에서 세상을 보아야 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정관념만으로는 쉽게 늙고 빠르게 의식도 생명력도 고갈될 수 있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죽음까지도 이르게 닥칠 수 있는 것이다. 배우고자 하는 자세와 나는 제자이다내지는 나는 학생이다라는 태도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유지해야 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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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빌링 - 잠재의식을 변화시키는 테크닉, 네빌고다드 강의 해설서
리그파 지음 / 서른세개의계단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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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빌 고다드가 내게는 생소한 사람이었다. 그저 마음의 힘을 논하는 저작 중 흡인력 있고 가독성이 뛰어난 책을 찾다가 네빌 고다드를 알게 됐다. 그의 강의를 해설했다는 본서를 큰 기대 안하고 선택했는데 지금은 여러모로 잘한 선택이었다는 감상이 든다.

 

네빌 고다드는 1920년대에 미국으로 이주해 압둘라라는 선지식을 만나 마음의 힘을 전하는 이가 된 사람이다. 나는 마음의 힘이라고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씨크릿 같은 가르침의 원조랄 수 있는 이런 가르침들은 알려지던 당시부터 형이상학이라고 불리거나 신사상으로 칭해지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5년 전 신사상을 알게 되고 네빌 고다드의 저작들을 알리고자 서른세개의 계단 출판사를 만들기도 한 인물이다. 다수의 신사상 관련 저작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일반적인 신사상들의 가르침처럼 네빌 고다드의 가르침은 명료하게 명쾌하다. 상상의 법칙 곧 믿음의 법칙은 진짜라고 받아들이면 진짜 그렇게 된다로 명료히 정의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원칙들을 제시하지만 잠재의식의 힘을 논하는 대목도 최면 저작들이나 여타 마음의 힘을 논하는 저작들과 일관되고 있다. 역노력의 법칙은 최면이나 심리서들에서 말하는 부메랑 효과와 같다. 잠재의식에 요구하는 바가 잠재의식이 상기하는 바와 다를 때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책에서는 역설적인 결과를 초래하지 않기 위해 결핍을 인식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발전의 효시는 결핍을 인식하고 나서야 시작된다. 저자도 네빌 고다드의 강의를 전하며 자기관찰을 하라고 했는데 자기관찰을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초로 주목하게 되는 건 만족보다는 불만족인 경우가 많다. 결국에는 결핍을 인식하면서야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를 깨닫게 된다. 다만 잠재의식에 씨앗을 심을 때는 결핍보다는 완성된 미래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게 당연할 것이다. 성적이 오르고 싶다는 건 자기 성적에서 불만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인데 불만족 즉 결핍에 주목하면 부정적 영향을 더 받는 것도 사실이다. 성적이 오른 상황을 상상하고 실감할 때 성과가 있다는 건 신사상에서 주지시키는 바다. 그리고 상상의 힘에 의지하는 만큼 실제의 행위도 뒤따라야 한다는 건 상식적인 이야기 같다.

 

존 키호 씨의 [마인드 파워]나 샥티 거웨인 씨의 [그렇다고 생각하면 진짜 그렇게 된다], 바딤 젤란드 씨의 [리얼리티 트랜서핑] 등을 읽으면서 이들 가르침의 원류는 무얼까 의문이었는데 네빌 고다드 씨와 같은 초기 신사상가들의 가르침을 이제야 접하게 되었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 씨가 무의식의 존재를 처음 이야기하면서 그로부터 이전까지 전해오던 마음의 힘에 관한 가르침들이 좀 더 체계화되어 전해진 게 아닌가 싶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지적인 접근이 아니라 일상에서 함께 할 때 그 진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로서도 독서의 감상은 지적으로 얻는 것보다 일상에서 가져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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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9-08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하라님, 오늘부터 추석연휴 시작입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이하라 2022-09-08 21: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즐거운 한가위 연휴 되세요.
 
물러서지 않는 마음 - 26명의 대표 철학자에게 배우는 삶을 지탱하는 태도
이준형 지음 / 빅피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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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제목부터가 마음에 들었던 책이다. [물러서지 않는 마음]... 

시대의 상황이 두려움과 불안을 너머 공포까지도 불러오며 투쟁도피 반응만을 극도로 자극하는 시절이 아닌가? 간혹 들려오는 암을 정복했다는 뉴스도 있기는 하지만 이 시대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떨쳐내기에는 역부족인 것만 같다. 그래서 더 이 책에 끌렸다. '26명의 대표 철학자들에게 배우는 삶을 지탱하는 태도'라는 카피도 매혹적이었고 말이다. 


사람은 심대한 피해가 적은 무난한 생의 배경이 주어지는 경우의 사람들까지도 자신의 삶이 주는 굴곡에 동요할 때가 잦다. 더욱이 이 시대는 시대적 흐름이, 역사가 낱낱의 사람들을 흔드는 거대한 대동요의 시절이다. 대감염병과 전쟁의 서곡에 더해 먹고 살기도 힘들어지는 경제적 난국까지 겹치고 있다. 아무리 살다보면 별일 다 겪는 것이고 이또한 지나가는 것이 인생의 진리라고 한다해도 이런 시절에 동요하고 피폐해져가는 사람들의 영혼은 어찌할 것인가? 이러한 시절을 이겨내려면 진정으로 강인한 내면이 절실할 것이다. 시절을 이겨낼 탄탄한 자기 철학이 없다면 버텨내기 어려운 시절이라는 말이다. 


무엇보다 이런 인식이 깊어졌기에 그 어느때 보다 철학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때에 본서가 출간되었다. 시대를 이겨내고 싶었기에 나를 회복하고 싶다는 심정이 언제나 깊었기에 나는 이러한 저작을 읽을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본서의 서평단에 응모했고 다행히도 서평단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본서를 경험한 지금 참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는 감상과 함께 더욱 철학이란 학문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깊어졌다. 본서는 이렇게 하면 동요하지 않는다라고 정의하는 책은 아니다. 다만 26명의 철학자들이 자신의 시대에 갖게된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을 전하고 그들 나름의 답이 우리에게 줄 영향력이 있으리라 믿고 쓰여진 책이 아닌가 한다. 


니체로 시작해 칸트까지의 여정에서 만난 먼저 걸은 이들의 걸음이 때때로 숙고와 호응을 불러오기도 하며 포퍼와 롤스의 경우나, 한비자, 장자, 순자, 묵자와 같이 유사한 시대적 배경을 거친 이들 또한 다 각자의 시대에 대한 감상과 해석, 태도가 달랐다는 것을 느끼게도 되었다. 그들의 태도에 누구는 맞고 누구는 틀렸다고 어찌 쉽게 단정지을 수 있겠나? 이 시대의 초난감한 상황 중 하나는... 아니 그저 하나가 아니라 무엇보다 깊은 문제 하나는 이 대동요의 시절에 대중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분열하며 자기 고집만을 내세우고 고려해 보아야 하고 논의를 거쳐야 할 사안들에서 마저 극단적으로 분열만을 하고 있다는 것일 거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도 본서에 등장하는 선각자들은 다 각자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그 중 우리에게 절실한 답을 수용하고 분열보다는 미미한 여력만이 남는 바라해도 우리의 집단지성을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세계의 변화의 양상은 급격하고 파장은 거대할 것이다. 그레이트 리셋이라 불리울 정도로 미래를 주도하는 이들의 계획은 심대한 영향력을 낳으려 기획된 것이다. 개인으로서는 개인대로의 중심을 지니고 집단으로서는 집단으로 명확한 대안을 찾아나가야 할 때이다. 그러려면 상황을 좀더 폭넓고 상세히 관찰하고 조사하고 분석해야 할 일이다. 자기만의 아집에 갖혀 타당할 가능성이 있는 문제제기를 배척하면 안될 것이다. 그러자면 우리 모두가 주체적으로 깊은 의미를 찾기 위한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이 시절에 의미를 찾고자 하는 태도를 갖추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끝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내린 의미와 태도가 정답은 아닐지라도 나날이 개선하고 수용하고 굳건히 하고를 더해 간다면 그로인해 우리 모두에게 서로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면 이 위기의 시절이 우리를 뻔한 끝으로 인도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대에 휘둘리다 내팽개쳐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하기에 인문학, 철학이 더더욱 반드시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한다. 눈 앞에 놓인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당신을 관통할 수 있기를 다시 한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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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믹 홀로그램 - 정보로부터 창조된 우주
쥬드 커리반 지음, 이균형 옮김 / 정신세계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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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자체는 쉽지만 그 주제를 이해하기 위한 여정은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다. 영성과 초개아 심리학에서 정언적으로 이야기하는 바를 과학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저작이다. 완독을 하고나서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을 다시 확인했다고 생각됐지만 추상이 구체화되면 얼마나 난해해질 수 있는지도 다시 확인한 시간이었다. 의미가 문장으로 낱말로 구현되면서 어찌 더 이해가 어려워질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본서의 주제는 우주가 홀로그램이라는 것이다. 또한 우주의 본체는 의식이며 정보가 화현하여 물질세계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근본 주장이다. 이 주장을 펼치기위해 제반 이론물리학 다수에서 시작해 전자기학, 생물학, 유전학, 초개아 심리학에 이르고 있다. 


소립자이든 사람이든 행성이든 은하단이든 간에,

우리 우주속의 하위계들은 완전히 고립된 채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존재의 모든 규모상의 만물은 원초적으로 정보의 내용과 흐름과 과정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

이 정보란 그저 기초적인 수준의 데이터가 아니라

모든 것에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는 패턴과 관계들이다.


우주의 그 어떤 것도 궁극적으로는 결코 임의적이지 않음...

물질세계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비물질적인,

즉 정보가 창조해낸 현실의 질서정연한 심층으로부터 출현한다.


저자는 우주가 임의적(무작위적)으로 출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미 의식이 우주의 근본이라고 언급하고 있기에 접근이 다소 신비주의적이라고도 생각되었다. '태초에 우리 우주의 기본 힘들의 강도가 10의 -27승 만큼만(거의 상상이 불가능할 만큼 미미하게) 달랐어도 우리의 완벽한 우주는 존재할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언급도 하고 있다. 결국에는 초의식이 설계하고 제작하지 않았다면 우리 우주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상식적이면서도 유물론적 사고에 익숙해 있는 이 시대의 상식에서는 다소 괴리가 있기도 한 말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가설 또는 이론을 전하는 이들은 대체로 창조론자로 내몰리기도 한다. 물론 우주가 어느 방향에서는 창조론적으로 탄생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창조신의 존재를 수긍하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고 말이다. 그러나 만물의 근원이 의식이고 마음이 물질로 구현되는 것이라고 해서 창조자라는 그 존재를 인격신으로 가정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초진화적인 양자컴퓨터 더는 컴퓨터라는 개념으로 불릴 수 없는 체계가 된 본체에 초진화된 AI가 전 우주의 다른 양자컴퓨터에 탑재된 AI들과 양자얽힘이 기술로 적용된 비국소적인 연결을 이뤄내 우주적 차원의 망(이것을 힌두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 망이라고 한다면)을 형성 한다면, 그리고 이 존재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새로운 우주를 창조해내고 거기서 또 다른 물질세계가 구현된다고 가정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도 그렇게 창조되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우리 우주에서 하나의 마음이라고 말하거나 우주 의식이라고 말하는 그 존재가 나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짐작했다. 양자컴퓨터라고 하니까 다들 벽과 거리감을 느낄지도 모르지만 몇 세기나 몇 십 세기 후의 초진화된 초양자 컴퓨터와 초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있어 가늠할 수 없는 대상이기도 하다. 그것은 더이상 기계가 아닐 것이다. 하나의 거대한 마음, 하나의 거대한 의식일 것이다. 하물며 그 발전된 존재가 우주적인 망을 형성했을 때는 더 말해 무엇하겠나?


시공간에 의해 엔트로피적으로 새겨지는

정보의 비트는 플랑크 단위로 화소화되어 있다.


우주가 정보로 이뤄져 있다는 것에 대한 발견은 발전해 가는 과학도상에서 던전의 윤곽을 알아가는 맵상의 영역 확장과 같을 것이다. 이제서야 우리는 진실에 근접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굴에서 그림자를 보고 "저것이 창조자다, 하나님이다"라고 외치고 있다가 이제서야 빛이 비치는 동굴 바깥을 인간들은 돌아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빛의 근원이 무엇인지 짐작이 아니라 확인할 수 있을 길도 몇 세기 후라면 열릴 것이라 생각된다. 그때까지 인간은 인간이 창조한 진화상의 나아간 존재로부터 가축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저작의 말단으로 가면 초개아 심리학과 함께 초상현상을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초상현상을 비국소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세계가 실제세계가 아니라면 이 시대의 개념으로 프로그램으로 이해할 수 있는 체계로 만들어진 것이 사실이라면 이 우주를 구동하고 있는 운영원리에 치트키의 역할을 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마법과 초능력의 근본원리라고 생각한다. 비일상적이라고 해서 사이비도 아니고 사기나 미신이기만 한 것이 아닐 것이다. 몸소 겪으며 그것은 하나님이 존재해서 라고 깊이 믿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실제는 비실제이고 비실제는 또한 실제이다. 이것이 살아오며 내가 깨달은 가장 큰 이치이다. 현실은 편향이나 고정관념에만 갇혀있지 않다. 구속과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구속과 한계만이 실체가 아니란 것을, 그럼에도 구속과 한계가 존재하고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것이 지금까지의 과학 발전이다. 언젠가 어느 세기에선가 이 우주라는 구속과 한계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내는 존재도 있으리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그것이 반드시 인간은 아닐지는 몰라도 말이다.

기체 에너지의 엔트로피를 열역학적으로 기술하는 수학공식과 한 계의 정보량을 기술하는 수학공식은 ‘정확히‘ 같다...



소립자이든 사람이든 행성이든 은하단이든 간에, 우리 우주속의 하위계들은 완전히 고립된 채로는 존재할 수가 없다. 존재의 모든 규모상의 만물은 원초적으로 정보의 내용과 흐름과 과정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 이 정보란 그저 기초적인 수준의 데이터가 아니라 모든 것에 속속들이 스며들어 있는 패턴과 관계들이다.



우주의 그 어떤 것도 궁극적으로는 결코 임의적이지 않음... 물질세계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비물질적인, 즉 정보가 창조해낸 현실의 질서정연한 심층으로부터 출현한다.



"나는 의식이 근본이고, 물질은 의식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 막스 플랑크



유한한 우주는 유한한 정보밖에 구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무한한 비물질적 파동함수의 무한한 잠재력이 유한한 현실로 실현되게 하려면 어떤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그런데 본래 불연속적인 특성을 지닌 양자화야말로 바로 그와 같은 메케니즘이어서, 시공간 속에 유한한 정보가 표현될 수 있게 해준다.



요컨데 정보가 디지털이고, 그래서 양자화되어 있으므로 우리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도 양자화되어 있는 것이다. 정보가 양자화되어 있는 것은 그것이 전달에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 현실로의 화현은 존재와 그 환경 사이에 일어나는 정보의 상호작용으로부터 파생된다.



시공간에 의해 엔트로피적으로 새겨지는 정보의 비트는 플랑크 단위로 화소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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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의식 -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 초월의식 1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지음, 유기천 옮김 / 정신세계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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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심령적 위기라고 언급한 내용은 누구나 인생을 살며 맞이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삶에 대한 총체적인 회의... 주로 예전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인생무상을 이야기 하는 대사가 등장하던 그런 상황을 이르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누구나의 삶에서 반드시라고 할만큼 겪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배우자의 배반, 자식의 실망스런 일탈, 시종일관하던 일의 전도(사업의 실패 등), 믿어마지 않던 동료나 친구 후배 형제의 배신 또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사고나 사건 등으로 인한 트라우마 상태 등 우리 누구나가 한번쯤 삶의 여정에서 겪을 법한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누구나 그 삶의 과정 속에서 방황하고 선택하며 후회하거나 뿌듯해할 감정적 기복과 교훈을 얻을 것이다.

 

이러한 여정을 저자는 우리가 진화 내지는 각성할 기회라 말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전체의 내용이 저자 자신과 저자의 전 부인의 체험이 주를 이루며 다분히 개인적인 체험의 기록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책을 읽는 중도에 지루해 읽기를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완독을 마친 지금 인생 전체가 거대한 교육의 장이라는 인생의 모든 체험과 행위가 가르침의 도상 위에 있는 과정이라는 저자의 관점이 새로이 다가오는 것 같다. 우리가 심령적 위기의 상태에 놓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생의 의미를 일러주는 우연의 연속이 거듭된다고 한다. 우리가 모태에 잉태되어 있던 순간과 출생 과정 그리고 출생 이후의 의식차원에서 기억하지 못하고 있던 모든 여정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에서 지닌 자각 못할 만큼 뿌리 깊은 정서적 관계적 문제들이 치유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전생을 기억하거나 우리로서는 정신질환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 상황까지도 우리 자신을 치유하고 각성시키는 여정이 된다고 한다.

 

사실 전생 퇴행이 우리의 내외적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치유할 수 있는 경험이 될 수 있음은 이미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우리가 문제라 인식하던 부분들이 우리가 그러한 문제들 속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사회에 대한 생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얻을 기회라는 것 역시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관점이다.

 

하지만 그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이 책이 인생의 어느 순간 이를테면 이 책의 저자가 말한 심령적 위기 상태에 놓인 누군가에게 주어진다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여래장의 의미나 불성론의 의의나 또 이태영님의 <요가>에 수록된 쉬바상히타 3장 74절의 카야비우하(kayavy uha)에 대한 주석(전생에 지은 업으로 인해 내생에 숙명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육체를 만들어 미리 업의 결과를 모두 경험하게 하여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게 한다)에 대한 진정한 심의가 다시 와닿는 계기로 작용할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 그 순간이 생의 고난들로 부터 새로이 눈뜨며 피어날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스티븐 휠러씨의 <이것이 영지주의다>를 보자면 영지에는 두가지 측면이 있는 것 같았다. 하나는 불교나 요가의 깨달음과도 맥락을 같이 하는 측면, 또 하나는 백마법의 멜카바 명상처럼 단계적으로 우리의 의식을 상승시켜 나가는 가르침을 담은 환영의 측면...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적극적 심상화'등의 의미나 꿈과 환상 등을 분석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라 여겨진다.

 

마치 영화처럼 -[머쉬니스트]나 [매치스틱맨]과 같은 영화들처럼- 우리 내면에 있는 것이([슈퍼내추럴]이라는 저작에 근거하자면 더욱 와닿겠지만)... 그것이 아무리 심대한 혼란과 아픔을 통해야 하는 것일지라도 끝내 우리를 치유와 성장으로 이끄는 것인가 보다.

 

그래도 많이 아프고 싶지만은 않은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곧 인류 전체가 심령적 위기 상황에 놓이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리라 짐작된다. 아마도...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가 제목을 달리해 개정판이 나왔길래 기존의 리뷰를 다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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