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야구공
전리오 지음 / 초봄책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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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것 같았다. 내 손에 들린 야구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더니 그 안에 봉인되어 있던 어떤 고상한 할머니의 정령이 소환되었고, 뒤이어 그녀를 꼭 닮은 외손녀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외손녀가 신비한 마법을 부리며 나에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전리오의 <할머니의 야구공>, '작가 후기' 가운데


야구공을 손에 들자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이끌려 쏟아진다. 그 속에 뜨거운 가슴을 억누르며 시대를 방황했던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엇갈린다. 전리오의 <할머니의 야구공>은 일제라는 암울했던 시대에서 출발해 한일수교를 지나 먼 훗날일 현재에까지 방대한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이문열의 <변경>을 떠올리게 될 정도의 길고도 넓은 무대가 펼쳐진다.


방송PD인 윤경은 외할머니 유품을 받아 정리하던 중 너무나 잘 관리된 야구공을 발견한다. 그리고 '108개'라는 야구공의 실밥수처럼 다난할 <할머니의 야구공>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할머니와는 전혀 관계없을 것처럼 여겨졌던 야구와 야구공, 그 속에 숨은 사연에 가슴 한 켠에서 계속 답답하고도 뭔가 모를 울컥함을 느끼게 된다.


할머니의 유품에서 나온 야구공은 1940년 일본 고시엔 대회에 사용됐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해 식민지 조선의 대표로 대회에 참여했던 팀은 영산상업. 그리고, 경상남도 영산은 바로 할머니 김순영의 고향이었다. 윤경의 추적으로 하나하나 의문이 풀리면서, 할머니의 그날-1958년 남자고등학교 운동장에 서있었던 이유-에 대한 미스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의 대표로 열도로 건너갔던 서영웅(일본명:오우치 히데오), 그리고 김순영이 대한민국과 일본이라는 가깝고도 낯선 공간을 두고 교차되는 시간은 급격히 빨라진다. 태평양전쟁, 일본의 항복과 광복 등 거대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서영웅은 도일, 성공, 입대, 이탈, 투옥 등 마치 격량과도 같은 삶을 이어간다. 그 속에 김순영의 기다림은 단단하면서도 아픈 시간으로 남게 되고.


<할머니의 야구공>이 단순한 러브스토리로 읽히지 않는 것은 두 사람의 사연과 배경에 시대상이 담담하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민단과 조총련. 힘없는 개인에게 피아 구분조차 명확치 못했던 시절의 아쉬움은 두 사람을 더욱 아프게 한다.


서두에 작가의 후기를 소개했다. 그 말 그대로 <할머니의 이야기>는 야구공에서 시작된 손녀의 마법처럼 바로 옆에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낸다. 작가는 '물성(物性, physicality)'이라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직접 보고 만지고 느껴봐야만 비로소 좋은 글이 써진다고 설명한다. 책장 한 켠에 놓여 있던 야구공을 꺼내 다시 잡아보게 했다. <할머니의 야구공>의 감정이 혹시 전해지지 않을까 여운을 담아.(*)


*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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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
시가 아키라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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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하고, 책임감없는 남편을 피해 유치원생 딸을 데리고 무작정 도쿄로 도망쳐 온 다카요. 그러나 '싱글맘'의 생활은 버텨내기 고단할 뿐이다. 몇 달 째 밀린 각종 세금과 월세로 이제 그나마 버텨왔던 작은 보금자리에서마저 쫓겨날 지경이다. 콜센터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까지 앓게 돼 일자리 찾기도 쉽지 않은 그녀가 기댄 곳은 결국 사채.



시가 아키라(志駕晃)의 <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원제:そしてあなたも騙される)>는 싱글맘 다카요를 통해 불법사채의 속성을 드러낸다. 그 속에 독자를 완벽하게 속여내는 트릭이 숨어있어 책의 긴장도를 한껏 높여 준다. 전반부 '속는 사람'과 후반부 '속이는 사람'으로 구성된 <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는 책장을 다 덮고 나서도 다시금 복기하게 되는 작품이다.


정상적인 금융권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다카요는 '소프트 금융(ソフト闇金)'을 하는 '미나미'를 만나면서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게 된다. 일본에서 '소프트 금융'이란 사채지만 이용자들에게 친절하고 정중한 이미지로 접근해 불법적인 대출을 하는 것을 뜻한다. '소프트'라는 말이 붙어있지만 분명한 불법 사채다.



"최악의 궁지에서 이런 사람을 만나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지옥에서 만난 부처님이라는 속담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돈 때문에 궁지에 몰린 사람, 온갖 독촉에 시달릴 대로 시달려 더이상 버틸 여력마저 잃은 경우에 놓인 다카요에게 '미나미'는 의심이 가지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그 이름이 본명인지, 그 사람의 성별이 뭔지도 모르지만 다카요의 삶은 미나미가 베푸는 '친절'에 익숙해져 간다. 



사채업은 필요악인가, 수요가 있으니 누군가는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인가. 우리는 <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를 통해 사채의 위험성과 그 달콤한 유혹을 충분히 알게 된다. 또 한 사람의 인생을 뒤틀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옭아매는 거대한 사슬이 될 수 있는 불법 사채가 현시대에 얼마나 '영악하게' 스며들고 있음을 경계하도록 한다.(*)


*컬처블룸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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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하라 죽이기 - #퍼뜨려주세요_이것이_진실입니다
도미나가 미도 지음, 김진환 옮김 / 라곰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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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본 듯한, 혹은 어디선가 일어났을 법한 이야기를 다룬 도미나가 미도(冨長御堂)의 <A하라 죽이기>. 해시태그를 붙인 부제는 '#퍼뜨려주세요_이것이_진실입니다'. 원제는 <その炎上、濡れ衣です(그 악플, 누명입니다)>며, 역시 '#拡散希望(#확산바람)'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다.


도쿄 우에노에 있는 유명 호텔의 웨딩 플래너로 일하는 아이하라 히카루는 지극히도 평범한 직장 여성이다. 몇 명의 게임친구가 있고, 퇴근 후 그들과 대화를 나누지만 그다지 특이하다고는 할 수 없다. 현실에서의 자기 일을 사랑하며 붙임성도 좋다. 일에 대한 책임감도 높아 회사에서 높은 실적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이 여성이 황당한 논란의 중심이 된다. 조금은 특이한 신혼부부의 결혼식을 접수하고, 새로운 담당자에게 업무를 넘길 때까지 전혀 눈치챌 수도 없었던 일. 새 담당자와 회사, 그리고 신혼부부와 그들의 지인이 벌인 일은 히카루를 결코 평범한 회사원으로 두지 않는다.


사내에서도 무책임한 업무 태도로 유명한 미노는 히카루로부터 인계받은 신혼부부의 결혼식을 완전히 망치게 되고, 이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이들은 그릇된 방향으로만 열심히 뻗어 나간다. 신혼부부와 지인은 자신의 피해를 보상받고, 누군가에게 강력한 책임을 묻기 위해 익명에 숨어 희생자를 찾고 있던 비난자들을 향해 외친다. '#A하라를용서할수없다'고.


아무런 죄도 없이 하루 아침에 '최악의 웨딩 플래너'라는 꼬리표를 얻고, 게다가 신상까지 탈탈 털려버린 히카루. 방관에 열심인 회사는 창업주의 아들 미노를 보호하고, 사태를 조용히 덮기에만 골몰한다. 결국 히카루는 제3 도쿄 변호사 회관을 찾게되고, 쿠인 하자쿠라 변호사와 만나면서 대반격을 준비한다.


<A하라 죽이기>는 SNS에 숨어 있는 역기능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히카루가 자신에게 새겨진 '디지털 타투'를 지우고 명예를 회복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우리가 SNS를 통해 얼마나 타인에게 무책임한 말과 행동을 보이고 있는가 짚어보게 된다. 몸에 새겨진 문신보다 더욱 악랄한 디지털 타투는 '메시아 컴플렉스'로 치장한 한심한 작자들이 만들어 낸 악의일 뿐이다.


잔잔한 일상을 소개하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A하라 구하기>. 사건이 진행될 수록 긍정과 희망을 놓지 않는 히카루에게 진심어린 응원을 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카페 'Book u love'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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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의 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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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야마현 가사오카시의 중학생 3명이 어른 몰래 배를 타고 밤낚시에 나선 장면으로 책은 시작된다. 그들이 목격하게되는 기이한 경험-바다에서 사람이 솟구쳐 오른 뒤 다시 낙하하는-은 무려 23년 뒤 벌어지는 '비탈섬'에서의 사건을 알리는 서막이다.


히가시가와 도쿠야(東川篤哉)의 <속임수의 섬(仕掛島)>은 한 출판기업이 소유한 '비탈섬'에 자리한 거대한 저택 '화강장'에서 벌어진 사건을 그린 미스터리다. 잘 알려진 대로 긴박한 상황 속에서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유머는 책이 가진 강력한 무기다.


<속임수의 섬> 표지 그림대로 마치 스키 점프대를 연상케하는 모양새를 가진 '비탈섬'이 배경이다. 급경사라기보다 오히려 수직이거나, 보기에 따라 벼랑 위쪽이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듯 보이는 섬의 모습은 그야말로 바다에 솟은 바위 병풍, 단애와 절벽을 합친 단애절벽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기괴한 섬, 그리고 기괴한 저택은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가 된다. 다시 말해 책은 건물이나 배경 자체가 미스터리를 안고 있는 류의 소설이다.


 "날 너무 무시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당신들도 잘 알잖아. 내가 그 비밀을 까발리면 어떻게 될지 정도는."


사망한 출판기업 사장의 유언에 따라 '화강장'에 모인 유족들. 겉으로 보기엔 막대한 유산의 분배가 그들의 목적이겠지만, 그들이 숨겨온 과거와 인연은 새로운 사건을 불러오게 된다. 소심한 고문변호사 아버지 덕에 대신 '비탈'으로 향하게 된 변호사 사야카, 유명 탐정의 아들로 등장하는 다카오. 이들 듀오는 '유머로 뭉친' 원팀으로 활약한다.


"범인은 이 책을 읽는 독자라는 뜻이지. 야, 거기 너 말이야, 너!" 책을 소개하면서 등장하는 느닷없는 대사는 독자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역시 하나의 트릭일 수도. 말 그대로 '속임수'가 난무하는 <속임수의 섬>에 같힌 독자는 '화강장'만큼이나 복잡한 상황을 겪게 된다. 참으로 다양한 트릭과 반전, 그리고 언제 터질지 모를 웃음을 <속임수의 섬>은 선사한다.(*)



*문화충전200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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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완벽한 실종
줄리안 맥클린 지음, 한지희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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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미스터리 장르의 매력에 푹 빠지게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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