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 엔젤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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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 손짓은 한없이 다정하고, 치유는 끝이 없으며, 아낌없이 주기만 할 뿐 앗아가는 법이 없다. 그것은 마치 깨끗하고 순수한 눈옷을 걸친, 천사와도 같은......" 일명 '스노우 엔젤'로 불리는 완벽한 마약-의존 약물이라고 표현되는-을 책은 이렇게 표현했다.


인체에 전혀 해가 없으며 부작용도 없는, 그러면서도 오로지 뇌 마약으로 작용해 인간에게 '여기가 천국'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의 깊은 평화를 선물하는 약물이라. 이같은 '마약'이 존재할까, 과연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가와이 간지(河合莞爾)의 <스노우 엔젤(スノウ・エンジェル)>은 이처럼 '세상을 지배할 마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책에는 마약밀매와 관련된 수사물에 그치지 않고, '마약'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그리고 '나쁜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함께 녹아 있다.



전직 형사 진자이 아키라는 자신이 사랑했던 동료 형사 히와라 쇼코를 죽음에 이르게한 주범을 찾아 도망자 신세에 놓여 있다. 당시 다섯 명의 살해범을 그 자리에서 사살했지만, 그들을 사주한 진짜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 신분을 벗고 이름도 숨긴 채 9년 째 방황하고 있다.


하루하루 일용직 노동자의 삶을 보내면서 '도망의 이유'조차 아득해질 즈음, 전 상사였던 경시청 기자키 헤이스케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면서 <스노우 엔젤>의 진실을 향해 수사를 시작한다. 기자키의 소개로 진자이가 만난 사람은 후생노동성의 마약 단속관, 속칭 '마토리'인 미즈키 쇼코. 공교롭게도 진자이의 품안에서 숨을 거둔 쇼코와 이름이 같다.


진자이가 잠입수사를 통해 얻어내야하는 것은 '스노우 엔젤'의 실체, 그리고 이 약물을 만들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검거하기 위한 증거 확보다. 수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사망한 백발의 샤로노프가 완성했던 '최후의 레시피', 바로 '스노우 엔젤'이 일본에서 출현하는 것을 막아야한다는 미션이다. 진자이는 스스로 마약판매상의 보조 노릇을 하면서 '스노우 엔젤'에 한걸음씩 다가가는 과정이 숨가쁘게 진행된다.



"요컨데 국가란 놈은, 어떤 국가든 국민의 건강보다는 돈이 중요한 거에요."


진자이를 고용한 마약판매상 이사 도모히코의 설명은 알코올, 담배, 설탕, 카페인 등 그 해로움이 약하더라도 의존성이 강한 성분을 국가의 이익을 위해 합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으니 '인체에 무해한 마약'이라면 같은 이유에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궤변이지만, 궤변으로만 들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의존성 강한 물질을 팔아 챙기게 되는 국가의 세수가 어마어마하므로.


책에 등장하는 일본에서 소비되는 각성제는 5조 엔 정도. 일본의 1년 국가예산의 약 5%에 달하며, 지하경제이므로 비껴간 소비세만 무려 400억 엔 수준이라고 한다.



고령화 사회로 연금은 바닥나고, 실물 경제는 아래로만 향하고, 복지예산은 턱없이 치솟기만 하는 일본 정부의 고민은 바로 재원 마련이다. 이미 아베 신조가 주장했던 세 개의 화살에 더해 'G계획'과 'W계획'이 <스노우 엔젤>에 제시된다. 운 두 개의 화살에 대한 가정이 흥미를 끈다. 도쿄올림픽-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됐으며, 지금은 성공개최가 요원하지만-을 통해 국가 재건을 꿈꾸는 왜인들이 생각한 계획이 '도박과 의존약물'이라는 상상에 소설은 바탕을 둔다. 'G'는 도박, 'W'는 '하얀 석유'의 앞자리 영문 글자다.


미즈키와의 밀약을 통한 진자이의 분투, 그리고 마약상들과 머리싸움이 긴박하게 진행된다. 특히 죽은 쇼코를 향한 '도망자' 진자이의 내면 묘사가 치밀하다. '죄인을 용서하라'는 신의 메시지, 즉 종교에 대한 물음도 <스노우 엔젤>은 던지고 있다. 마약판매상 이사는 마약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법이 무르기 때문이란다.


" 죄인을 용서하라는 저주의 말 때문에 인간은 앞으로도 영원히 범죄라는 비극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야. 세상에는 결코 용서해서는 안되는 죄도, 결코 용서해서는 안되는 인간도 셀 수 없이 많이 존재하는데 말이지." 일견 일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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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화염
변정욱 지음 / 마음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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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23분 30초.  광복절 기념식이 열리던 남산 국립극장에서 터진 총성에 대한 기록, 변정욱의 <8월의 화염>이다. 소설은 24살 재일교포 문세광의 단독범행이 아니라는 가정하에서 그날의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 사건으로 과연 누가 가장 이득을 보았는가'라는 합리적 의심에서 출발한 <8월의 화염>은 아직 풀리지않고 있는 미스터리를 소상히 다루고 있다.



'백전백패'라는 불명예를 안고 사는 인권변호사 민규는 피폐해진 가계를 살리기 위해 세상과 손을 잡을 채비를 한다. 자본을 거머쥐고 있는 기업주, 권력을 맘껏 휘두르는 정치인과의 승산없는 싸움은 낡아빠진 자신의 구두처럼 더없이 고단해진 상태. 행운인지, 불운인지 그에게 문세광을 변호하라는 요청이 떨어진다. 그저 반전의 기회로 여기던 민규는 사건을 분석하면서 점차 충격적인 실체에 접근하게 되고, '세상과 타협할 때가 아닌 세상과 맞짱 뜰 시간'임을 직감한다.


오사카를 떠나 중앙정보부 요원이 득실거리던 조선호텔에 여장을 푼 문세광. 트랜지스터라디오를 풀자 금속 물체가 우르르 쏟아 진다. 스미스앤웨슨 38구경 리볼버 한 자루와 총알 다섯 발. 어설픈 위조여권과 금속 무기를 지닌 채 김포공항을 무사히 통과한 과정이나, 자유의 몸으로 누릴 마지막 일주일간의 행적에서 문세광을 사주한 배후세력의 존재를 <8월의 화염>은 느끼게 한다.



"그날 그 시각, 오전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저녁노을이 지기 전처럼 세상이 침침하고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책은 단순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역대 영부인 가운데 가장 국민적 사랑과 추앙을 받은 고 육영수 여사가 남긴 에피소드와 그를 떠나보내는 국가의 아픔을 소상히 묘사하면서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야만 했는가'라는 의문을 더욱 강하게 드러낸다. 광화문에서 동작동 국립묘지까지 200만이 넘는 인파 속에서 거행된 영결식 장면은 그날의 사건이 얼마나 큰 충격과 상처로 남아있는지 알려 준다. "목련화를 닮은 조국의 어머니는 가셨습니다"는 멘트에 모든 아픔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문세광에 의해 저격된 것이 아니라면, 문세광의 단독범행이 아니라면 도대체 진실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8월의 화염>은 각종 드러난 사실과 증언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질문한다. '대중은 큰 거짓말일수록 더 잘 속는다'는 히틀러의 말은 실체를 향한 민규의 수사를 독려한다.


"너 이 새끼, 빨갱이야!"

"당신들 생각에 반대하면 무조건 다 빨갱이입니까?"


빨갱이라는 이름의 주홍글씨면 모든 진실을 뒤엎고 남을 당시 권력 주변을 둘러싼 미개한 인간들의 '비릿한' 행태는 사건만큼이나 불편함을 전한다.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 가발공장에 취직한 여공들이 몇달치 밀린 월급을 요구하다 군화발과 몽둥이에 무참히 짓밟히는 장면, 과도한 노동의 대가로 기계에 의해 손목하나가 잘린 힘없는 노동자가 낸 손해배상 청구가 '조국의 근대화'라는 이름하에 단칼에 묵살되는 모습이 그러하다.



"너 이 새끼, 적페야!"

"당신들 생각에 반대하면 무조건 다 적폐입니까?"


권력을 쥔 자들의 '비릿한' 행태는 여전히 불편하다. 속전속결로 진행된 문세광의 재판, 그날 그를 기소한 서슬퍼런 검사는 몇 해 전 끝내 수갑을 찬 채 압송되는 처량한 뒷모습을 가진 노인으로 작가의 시야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 노인을 보며 작가가 가진 생각은 울림이 크다. '이 세상에 알아서는 안되는 진실은 결코 없다'는 것. 


자신의 영웅과도 같은 육 여사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기대에 들떠있던 합창단 소녀의 죽음은 힘든 시기 보통사람이 가졌던 꿈, 그리고 그 꿈이 어떤 세력에 의해 속절없이 무너지는 슬픈 과거를 보여 준다. 소녀가 남긴 '비겁자는 천 번 죽고, 용자는 한 번 죽는다'는 경구가 지금 시대에도 진한 감동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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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범죄
요코제키 다이 지음, 임희선 옮김 / 샘터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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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리거나, 혹은 그 존재로부터 배신을 당해 스스로의 위치조차 아득해질 때 사람은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어디론가 돌아갈 곳. 고향이나 부모님이 계신 곳처럼 예전의 평온한 자리가 될 수도 있고, 놓아두었던 사회적 위치 혹은 무작정 과거의 어느 시점이 될 수도 있다. 그저 지금과는 다른, 어딘가 스스로의 위치를 확연히 매김할 수 있는 곳이라면.


요코제키 다이(横関大)의 <그녀들의 범죄(彼女たちの犯罪)>는 바로 '돌아갈 곳'에 대한 이야기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한 남자,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 명의 여자는 어쩌면 '돌아갈 곳'을 찾아 복잡하게 얽힌 동선을 그려 나간다. 일본에 살고 있는 여자들이 그들의 시대와 치열하게 싸워나가는 투쟁기로도 읽힌다.



"자기는 도모랑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뭐야?"

"그건...... 프러포즈를 받아서요."


마뜩잖은 답이다. 유복한 집안의 자식이자 정형외과 의사인 진노 도모아키와 결혼한 유카리. 평범한 간호사였던 그녀는 부모님께 반항하고자 하는 도모아키의 욕심을 모른채 '결혼'이라는 제도를 받아들인다. 결혼 전 성인 엔도 유카리라는 이름의 시신으로 발견될 때까지 아내, 며느리라는 이름의 하녀와 같은 일상에 갇혀 '돌아갈 곳'을 희구한다.


도모아키의 불륜 상대인 히무라 마유미. 도모아키의 대학 후배로 학창시절 치어리더팀을 거쳐 대기업 홍보과에 근무하는 미모의 여성이다. 결혼이라는 티켓을 손에 넣더라도 그 티켓이 쓸모없어지는 불행한 여자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출발점에 서지도 못한 자신, 모처럼의 상대가 유부남임을 몰랐던 자신이 못마땅하다.



급작스런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뒤, 자신마저 죽을 곳을 찾아 방황하는 다마나 미도리는 진노 집안과 가까운 이웃이다. 도모아키의 소꿉친구이자 대학 시절 연인이었던 그녀는 막대한 유산을 배경으로 술과 여행이라는 도피처를 찾아 헤맨다. 새로운 경험의 여행이 아니라 죽어 돌아가기 위한 여행을 향해 늘 떠난다.


그리고 앞선 세 명의 여자에 형사 구마자와 리코가 더해지면서 <그녀들의 범죄>의 '그녀들의 사정', '그녀들의 거짓말', '그녀들의 비밀' 등 세 장을 만들어 간다. 자신의 삶에 순종적이던 유카리의 느닷없는 가출, 그리고 그녀의 자살 소식이 전해오면서 미스터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한적한 료칸에 일주일간 머물다 끝내 벼랑에서 투신한 여자, '돌아갈 곳이 없었던' 그 여자에 숨겨진 비밀을 시골형사 와키야와 세타가야 경찰서의 우에하라가 파헤친다. 어느 누구도 만족할 수 없을 결말을 찾아 달려간 그들이 찾아낸 그녀들의 '돌아갈 곳'이 애처롭다.



<그녀들의 범죄>에서 시간은 잔인하다. 누군가에겐 늘상 새로운 시간이 펼쳐지지지만, 누군가에겐 과거에 멈춰버린 시간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겐 반복되는 무의미한 시간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모두에게 흘러간 시간은 각자에게 잔인하게 할퀴고 지나간 흔적으로 남아 있다.


요코제키 다이의 작품 곳곳에 일본 사회가 가진 편견대한 반항이 담겨있다. 여성의 시각에서 결혼과 출산, 불륜과 이혼, 사회적 성취 등 있을 법한 불만이 등장인물을 통해 담담하게 묻어 나온다. '무난한' 이혼을 위해 상간녀에게 "내 남편과 절대 헤어지지 말라"고 당부하는 고단한 아내의 모습은 비참하기까지 하다. 


<그녀들의 범죄>속 그녀들에게 '어디론가 돌아간다'는 의미는 어쩌면 새로운 시간을 갈망하는 소박한 염원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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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수법 -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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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집에서 고서를 정리하다 바닥이 무너져 백골에 이마를 찢고, 의뢰인에게 잡혀 손가락 모양의 피멍을 팔에 달고 다니며, 조심성없는 간호사의 박치기에 자빠져 갈비뼈가 성한 날이 없는 '불행한' 탐정. 그녀의 활약(?)을 들여다 보면 화려하지 못할 지언정 억세게 재수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병원신세는 그녀의 일상일 정도다. 그 와중에도 탐정으로서 능력이 차근차근 발휘되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와카타케 나나미(若竹七海)의 <이별의 수법(さよならの手口)>에 등장하는 '순수탐정' 하무라 아키라는 참으로 털털하고 소박한 매력을 풍긴다. 냉철하고 치밀한 두뇌 회전, 강인하고 세련된 외모와 체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냥 편하게 다가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이웃 누나같은 느낌이랄까.



일본에서 태어나 대학교 졸업한 이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서른 살 이후 10여 년간 하세가와 탐정사무소와 계약해 프리랜서 탐정으로 일했다. 지금은 살인곰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로 근무하고 있는 여자. 현재 나이는 40대, 여전히 남자와의 인연은 없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설명대로 <나쁜 토끼(悪いうさぎ)> 이후 13년 만에 <이별의 수법>으로 모습을 드러낸 탐정 하무라 아키라의 약력이다. 허탈해질 정도의 아무것도 없는, 오히려 불쌍한 여자들만 모여사는 셰어하우스 '스타인벡 장'은 그녀의 집이다.


살인곰 서점 점장 도야마의 지시로 책 인수를 위해 철거 중인 고택으로 자전거를 돌린 하무라. 예상치 못한 백골 시신을 발견한 하무라는 수십년 집 아래 묻혀있던 살인 사건을 해결해내면서 <이별의 수법>은 시작한다. 하무라의 불행, 그리고 입원과 함께.



"20년 전, 스물네 살 때 집을 나갔죠. 나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딸의 생사를 알고 싶어요. 그래서 당신이 딸을 찾아줬으면 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왕년의 스타 여배우 아시하라 후부키의 요청에 고민하던 하무라는 결국 정에 이끌려 사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딸을 찾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본격적인 불행'은 비단 후부키만의 것이 아니다. 은막을 주름잡던 여배우가 감추고 싶던 비밀이 하무라의 조사에서 하나둘 밝혀지면서 책은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질주한다.


"그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라져요."


20년 전 후부키의 딸을 찾기 위해 나섰던 탐정, 전 매니저의 동생, 가사 도우미, 이모 할머니로 불리던 대모, 그리고 자신의 딸까지. 미스터리한 실종과 사망이 얽히고 섥히며 <이별의 수법>은 흘러 간다.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건의 에피소드가 정교하게 배치된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이별의 수법> 속에는 가족의 가치가 들어 있다. 인간의 욕심, 그로 인한 불행이 자신 만의 것이 아님을 책은 설명한다. 무책임을 돌려서 드러내는 사회,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인정많은 집주인, 세금을 납부하는지 아닌지로 인간이 구분되는 삭막한 세상도 함께 그려진다.


하무라 앞에 나타나는 또 한 명의 캐릭터 도마 시게루 경부. 고압적이면서 이해할 수 없는 패션감각을 지는 도마 경부와의 인연은 '살인곰 서점의 사건파일'이 계속될 것을 암시한다. 경찰에 약점을 잡혀 심부름을 떠맡기까지 하는 '어리버리한' 탐정 하무라의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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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의 주인 - 23일 폐쇄구역
지미준 지음 / 포춘쿠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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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덕근이와 칠백이 있었으며, 지금도 우리를 쳐다보며 생각할까. 복종이냐 복수냐 사이에서. 지미준의 <게토의 주인>은 인간과 동물-개와 고양이-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한다. 버림받은 유기견 덕근이와 상처입은 길냥이 칠백이는 조화로운 삶을 영위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꿈이나 본능은 아니다. 하긴 한자인 유기견과 우리말 신조어 길냥이의 차이에서 두 종간의 거리는 이미 드러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게토(Ghetto).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세운 유대인 강제거주구역이다. 소설 <게토의 주인>의 제목은 그만큼 인간과 동물의 거리를 표현하고자 한 게 아닐까. 1943년 4월 유대인들을 마지막으로 아우슈비츠로 강제 이송할 당시 바르샤바의 게토는 '인권'이라는 단어조차 어색할 잔혹한 본성만이 살아 움직인 공간이었다.



<게토의 주인>은 공원 벤치 아래 변을 참으며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덕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덕근이 엄마 아빠에게 가장 먼저 배운 말은 '기다려'였다. 기다릴 줄 알아야 상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먹이에 혀를 길들여야 했고, 주삿바늘의 따끔거림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그런 엄마 아빠가 '믹스견'이라는 단어를 오르내리고부터 달라지더니 숫자 몇 개에 덕근이를 여기에 남겼다. '기다려'와 함께.


공원 벤치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던 덕근은 짧은 수일간 몸에 새로 생긴 상처만큼이나 엄청난 경험을 겪게 된다. 철없는 아이들로부터 이유없는 폭행을 당하고, 육포 몇 조각에 개 수용소로 끌려갔다 탈출하기까지. 다시 공원을 찾는 사이 일어난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인간'이란 존재가 있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냄새 속에서 엄마 아빠를 찾아 기억하는 덕근. 결국 물음이 떠오른다.'나는 버려진 것일까?'


이러한 덕근을 바라보던 또 하나의 시선. 귀 한쪽이 잘려나갔으며 생식능력을 잃어버린 고양이 칠백이다. 물론 인간에 의해서 저질러진 일이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분노로 변화하는 덕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순응으로 변화하는 칠백이 대화한다. <게토의 주인>이 주는 메시지가 여기에서 감지된다.



"왜 너를 사랑했을까?" 세상 풍파를 겪은 칠백이 혼란스러운 덕근에게 물어본다.

"사랑하는 데 이유가 있어?" 애완견의 삶에 익숙했던 덕근의 대답이다.


"이유가 없는 게 이상한 거야. 모든 행동에는 동기와 보상이 따른다고." 그렇다. 사람은 덕근을 통해 만족감, 우뤌감, 대리만족 등 보상을 원했다는 것이 칠백의 생각이다. 엄마 아빠가 아닌 그저 '개주인'일 뿐이라는 것. '믹스견'이라는 주위의 시선으로 인해 그 동기와 보상이 사라진 순간 덕근에 대한 '사랑'은 생명을 다한 것이다.


그런 덕근과 칠백, 유기견과 길냥이의 공원에서의 동거가 시작된다. 여기에 성대를 제거당한 암캐 매기가 합류하고, 칠백의 옛 동료-같은 무리가 맞겠다-마루와 호박이도 함께 하면서 개와 고양이 조합의 덩치는 점점 커져 간다. 서로 싸우지 않고 상생하는 버려진 동물의 집단이 모습을 갖춰 간다.


투견 암캐 타이슨이 이들과 조우하는 과정은 읽는이로 하여금 가슴 저리게 한다. 투견장에서 이유모를 목숨 건 사투를 이어왔던 타이슨. 스파링이 시작되면 개들은 영문도 모른 채 싸워야 했으며, 가끔 '우리가 왜 싸워야 하지?'라는 눈빛을 보내는 상대가 있었다면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 되는 곳.



타이슨을 덕근과 칠백 무리로 이끈 까마귀의 말에 <게토의 주인>이 이끌고 싶은 답이 있다.  "뭔가 좀 이상해. 개와 고양이잖아? 그런데 안 싸워! 오히려 서로 돕고 산단 말이지." 철창에 갇힌 자식마저 뒤로하고 탈출한 타이슨은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 자유를 얻으려는 의지와 책임감이 가득하다.


그들의 평화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동물의 본능이 발현될 때마다 인간의 경계와 처단은 분명해졌다. 복수냐 순응이냐를 놓고 덕근과 칠백의 갈등은 시작되고, 결국 '인간과의 공존'을 두고 둘을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인간이 정한 평화와 질서, 그 속에 숨은 이기적이고 잔인한 묵인은 '게토의 23일'이라는 비극을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현실로 다가온다. 



인간과 동물의 '상생과 공존'을 여러 각도에서 들여다 보게하는 <게토의 주인>. 특히나 인간의 시각이 아닌 덕근과 칠백의 눈높이에서의 전개가 신선하다. 책을 덮을 즈음 다시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덕근과 칠백의 안식처-공원 벤치=마저 인간에 의해 위협받게되는 시점 공원 관리소장의 고민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유기동물에 대한 '정리'를 통보받은 그는 관리소 창고 안 깊숙한 곳에서 개와 고양이 사료 봉투 앞에서 탄식한다.


"이놈들을 다 우짜면 좋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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