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
아오바 유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5월
평점 :
"극적인 카타르시스는 이제 없다. 그럼에도 어렴풋한 희망을 끌어안고, 오늘도 살아간다."
그렇게 많은 이들은 살아간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인지,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인지, 무엇때문에 깨어나는 것인지 세세히 따질 수는 없다. 하나하나 잃어가면서, 그것들의 공백을 쌓아가면서 계속 살아간다. 어쩌면 그로인한 지워지지 않는 가슴 속 아픔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잔잔한 파도에 빠진다. 어디서 시작된 것인지 모를 파도는 고요하면서도 웅장하게 우리를 뒤덮어 버린다. 엄청난 일이 생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와 우리 사이에 스며들뿐이다. 그리곤 "그래, 원래 그런 것이야" 가르쳐 준다. 뒤돌아볼 필요도 없다. '잔잔한 파도'가 주는 교훈은 그렇다.
아오바 유(青羽悠)의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는 무채색과 같은 반복적인 일상 속에 숨어있던 꿈, 희망을 알려준다. 옮긴이가 알렸듯 일본장편소설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의 원제는 "잔잔함에 빠지다(凪に溺れる)"다. '나기(凪)'는 바람이 멎고 물결이 잔잔해진 것을 뜻한다. 거친 폭풍이 아닌 고요한 파도로 인해 빠져버리는 우리의 모습을 책은 그린다. 특별할 것도 없고, 유난스러울 것도 없지만 우리의 파도는 끊임없이 우리를 나아가게 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바람이 멎은 새까만 바다/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이즈
예감은 하직 허상일 뿐/파도만이 반복되지
멀리서 울리는 천둥소리/물결치는 너의 원피스
마음을 흔들어놓네/견딜 수 없이 초조해
언제까지나 길 위에 서 있어/소원을 되풀이하면서
수평선 저 너머에서/다시 만나는 두 사람
- 'the noise of tide'의 노래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
새까만 바다, 빛나는 별, 흔들리는 수면, 그리고 저 멀리 있는 수평선. 자 끝에서 서로의 모습을 찾고 있는 소년과 소녀. 두 시선은 바다 너머로 평행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그 선은 언젠가 수평선 한참 너머에서 다시 한번 얽힐 것이라 믿는다.

밴드 'the noise of tide'의 노래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와 함께 책은 흘러간다. 더 엄밀히 말하면 요절한 보컬 줏타로부터 일기 시작한 파도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TV에서 본 올림픽 선수를 무작정 동경하면서 수영을 시작한 나쓰카, 의지할 곳 하나 없이 조금씩 죽어가는 삶을 살고 있던 세이라, 일상의 틈새마다 위화감을 느끼다 문득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찾게 된 히카리. 그들 모두는 줏타의 노래에 빠져 '저 먼 곳'을 응시하게된 사람들이다.
누군가와 이어질 수밖에 없고, 누군가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 정신을 차려보면 거대한 연결 속에서 흔들리는 파도의 일부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는 우리가 잊고 있던 '무언가'에 스르륵 빠져들게 한다.(*)
*리뷰어스클럽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