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음악을 돌아본다, <대한 인디 만세 (한국 인디 음악 10년사)>와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고, 책은 눈으로 보는 것이지만 그 둘이 만나면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내게 마련이다. 잡을 수 없는 그리움 같은 음악이 활자로 기록될 때, 우리는 그 아름다움과 위대성을 또 다른 형태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방향은 조금 다를지언정 우리 음악의 소중함을 더욱 알리고자 노력한 두 권의 책이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 '인디만이 살 길이다!'라는 구호 아래 꾸준히 인디 문화 정착에 힘 써온 박준흠의 <대한 인디 만세 (한국 인디 음악 10년사)>(2006, ;세미콜론)와 나우누리 대중음악 동호회 뮤즈(Muse) 출신인 신승렬, 김영대, 박찬우, 오준환이 함께 쓴 <90년대를 빛낸 명반 50>(2006, 한울)이 그것이다.

박준흠의 의견에 따라 한국 인디 음악 신 형성을 가장 빠르게 1994년 펑크 클럽 '드럭'의 탄생에서부터 본다고 하면, 두 권의 책은 1990년대의 메인 스트림과 언더 그라운드를 아우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대중음악을 조망한 책들이 대부분 90년대 이전이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이제 21세기에 들어서 새롭게 세기말을 정리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대한 인디 만세 (한국 인디 음악 10년사)>는 작가가 과거에 발표한 저서 <이 땅에서 음악을 한다는 것은>(1999, 교보문고)과 비슷하게 그의 설명과 뮤지션의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다.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연대기별로 주목할 만한 앨범과 아티스트를 선정, 그들에 대해서 집중 조망하는 형식으로 정리된 이 책은, 언니네 이발관부터 허클베리 핀, 바셀린, 이장혁 등을 거쳐 소규모 아카시아밴드까지 아우르고 있다.

무엇보다 박준흠이 정리한 '인디 음악에 대한 정의, 오해, 역사, 의미, 제안', 그리고 '인디 음악 10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통해, 평소 일반 대중들이 갖고 있던 인디 음악에 관한 분산된 의견을 하나로 종합하는데 주력한다. 또 인디 뮤직은 오로지 마니아의 점유물이라거나 오버 장르에 비해 '있어 보인다'는 기존의 편견을 제거하고, 그들의 역사 및 음악성과 상업성 모두를 지극히 현실적으로 기술한 점이 돋보인다.

오로지 음악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뭉친 사람들의 저서 <90년대를 빛낸 명반 50>은 1990년대를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로 정의한다. 그 시기는 탄탄한 팬덤을 통해 뮤지션이 가장 인정받은 때였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1990년부터 99년까지의 음반 중 50장만을 네 저자의 투표와 토의 과정을 거쳐 선정, 당시의 사회 상황과 맞물려 사랑을 받은 가요들을 총정리 했다.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1991)이나 서태지와 아이들 <1집>(1992), 넥스트의 (1994) 등 기존에 이미 인정을 받은 앨범들을 포함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했던 댄스 음악인 노이즈 <2집>(1994), 박진영의 <썸머 징글벨>(1996) 등도 다뤘다. 또한 당시의 언더라고 할 수 있는 크래시의 (1995), 델리스파이스 <1집>(1997), 미선이 (1998)도 포함, 90년대 화제가 되었던 모든 음악을 구분 없이 수용하여 과거의 찬란했던 기억들을 오롯이 발굴해냈다.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간격이 가장 적었으며, 인디 신이 태동하기 시작한 1990년대. 경제적 불황과 급변하는 매체의 이동 때문에 예술 · 산업적으로 가장 침체기를 겪고 있는 요즘의 음악계에서 분명 19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의 변천 과정은 우리가 주의 깊게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이 두 권의 책은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직시하며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그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음악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2006/10 신혜림 (snow-forg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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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2.0 강추리스트ㅣ BOOK
2006.10.20 / 편집부 

카이에의 영화 수업
<카이에 뒤 시네마 영화이론 1, 2>(안느 위에, 엠마뉴엘 시에티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프랑스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는 영화잡지 그 이상이었다. 작가정책, 정치적 모더니즘 등 현대영화의 굵직한 이슈들을 제기한 그들이 영화이론의 주요 개념들을 정리한 총서를 내놓았다. '카이에 뒤 시네마 영화이론' 시리즈는 카이에와 프랑스 문화성이 공동 기획한 '프티 카이에' 시리즈 중에서 일부를 선별한 책이다. 먼저 출간된 것은 1권 '시나리오'와 2권 '쇼트-영화의 시작'. 이후 몽타주, 시점, 대사, 영화음악, 애니메이션, 특수효과 등을 다룬 책들이 차례로 선을 보인다. 영화이론의 요람답게, 각 권마다 1부는 주제를 이론적으로 풀이한 해설을, 2부에서는 이론을 적용한 실제 사례들을 실었다. 특히 이론적 개념을 예시와 분석을 통해 해설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1권 '시나리오'에는 <400번의 구타> <무셰트> 등의 시나리오 예시,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의 시퀀스 분석이, 2권 '쇼트'에는 샤트야지트 레이의 <길의 노래>, 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에 대한 쇼트 분석이 수록돼 이해를 높이고 있다. '프티 카이에' 시리즈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 감독론이나 작품론을 다룬 2차분 시리즈도 기획 중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가장 꼼꼼한 분석서
<이미지의 제국>(김준양 | 한나래)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한 심도 깊은 본격 분석서가 나왔다. 일본애니메이션학회 국제 회원이자 <애니메이션, 이미지의 연금술> 등을 썼던 애니메이션 연구가 김준양은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일본사회와 그 근대사에 있어 '일본 애니메이션’이 갖는 실질적인 의미를 탐구한다. 데즈카 오사무의 <철완 아톰>부터 오토모 가츠히로의 <아키라>, 그리고 안노 히데아키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이르기까지 주요 작품들에 대한 꼼꼼한 분석도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다각적이고도 진지한 접근이 인상적이다.

장난 아니게 섬세한 그림
<해적 이삭> 1~2권(크리스토프 블랭 | 세미콜론)

세상에 그림 잘 그리는 인간이 한둘이 아니다. 만화 <해적 이삭>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18세기 파리 뒷골목에 사는 화가 이삭이 뜻하지 않게 해적선에 오르게 되면서 벌어지는 모험담을 그린 이 만화는, 사실 이야기보다 그림 보는 재미가 더하다. 풍랑, 선상 반란, 욕망으로 꽉 차 있는 유곽 등 기이한 18세기의 삶을 그려낸 작가는 해군 복무시절 극지방을 탐험하며 얻은 경험담을 바탕으로 <해적 이삭>을 만들었다고. 아무나 이렇게 그릴 순 없다. 2002년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청춘예찬’ 하려 해도 돈이 있어야지
<천 유로 세대> (안토니오 인코르바이아, 알레산드로 리마싸 | 예담)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고 싶지만, 쥐꼬리만 한 월급에 쩨쩨하게 살 수밖에 없는 게 청년실업 시대 우리들의 실상. 아니 근데 유럽 청춘들도 돈에 목마르기는 마찬가지란다. ‘천 유로 세대’라 불리는 그들의 다이내믹하게 궁핍한 일상이 이탈리아 청년들에 의해 소설화됐다. 집세, 생활비 걱정이며, 마트에서 계산기 끼고 사는 모습이며, 정규직이 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며 어쩜 그리 우리네 청춘과 다를 바 없는지. 시트콤을 보는 듯 위트와 풍자가 넘치는 이 책을 손에 쥐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된다.

파리의 조선궁녀 리심
김탁환 | 민음사

100여 년 전, 초대 프랑스 공사 빅토르 콜랭과 사랑에 빠졌던 궁중 기생 리심. 조선여성 최초로 유럽과 아프리카 땅을 밟았던 리심의 일대기가 세 권의 책에 펼쳐진다. 근대 여성의 삶을 가장 빨리 체현하지만, 남편이 프랑스 공사로 재부임한 후 궁중무희로 복직되면서 봉건적 폭압을 견디지 못하고 자결한 불운의 여인이기도 하다. 김탁환은 리심의 눈에 발견된 놀라운 기록들을 가상의 기행문에 담는다. 짧게 남겨진 기록을 보충한 것은 결국 김탁환의 발품이었다. 리심에 관한 기록을 모자이크처럼 추적한 작가의 1년 반의 노력이 경이롭다.

가라, 아이야, 가라
데니스 루헤인 | 황금가지

범죄소설, 특히 하드보일드는 도시의 산물이다. 그만큼 도시의 무드를 정확히 잡아내는 장르란 없다. <살인자들의 섬> <미스틱 리버> 작가 데니스 루헤인의 켄지&제나로 시리즈를 읽다가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심리학자 로빈 윌리엄스가 천재소년 윌 헌팅이 보스턴의 사우스 출신이라는 말에 잠깐 놀라움을 표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하버드, MIT가 있는 보스턴, 이주민들의 첫 정착지였던 보스턴은 실상 계급과 인종 갈등이 낡고 음습한 벽돌 하나하나에 어려 있다.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은 박력 넘치는 범죄 스릴러의 세계라기보다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도시의 그 사무치는 공기다.

흡연의 역사
샌더 L. 길먼, 저우 쉰 | 이마고

그야말로 흡연에 관한 모든 것. 그러나 ‘모든 것’이라는 이름하에 엉성한 구성,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들이대진 않는다. 흡연의 역사와 문화, 예술과 문화 속의 흡연, 성과 민족성에 따른 흡연 태도, 현대의 흡연과 건강 논쟁까지 모두 다뤄지지만 각 토픽들을 다양한 입장에서 살펴보는 저자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이번 한국어 번역판에서는 조선후기 담배문화의 멋과 여유에 대한 명지대 안대희 교수의 글까지 수록됐으니 이만하면 편집자의 노력도 담보할 수 있다.


심리학 콘서트
다고 아키라 | 스타북스

추석이다. 설날과 더불어 최고의 명절인 추석이면 동네방네 집집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열심히 ‘만화책’을 들여다보기 일쑤다. 알록달록한 ‘만화책’, 즉 화투 패다. 영화 <타짜>까지 나온 마당이다. <타짜>가 그리고 있는 ‘섯다’는 순전히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이니 그 핵심은 심리전이다. 상대를 알아야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법. <심리학 콘서트>는 감춰진 상대의 속마음을 파악하고 나아가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심리술을 세세한 항목별로 나눠 소개한다. 추석 큰판을 앞둔 마당에 한번 읽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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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10-21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라 아이야 가라 강추합니다!!!

키노 2006-10-21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추리소설의 대가 물만두님^^ 언제 물만두님이 쓰신 추리소설을 한번 기대해봅니다^^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문학을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지난 8월 <미스터리 게스트>라는 프랑스 작가의 전기 출간을 앞두고 이런 고민에 휩싸인 출판 제작자 제퍼리 르펜도프는 ‘YouTube(유튜브)’라는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를 홍보매체로 선택하고, 1만 달러를 투자했다. 투자금액은 책 내용을 단편 비디오로 제작하는데 고스란히 쓰였다. 책 속에 숨겨진 의미를 전달해주는 배우들의 연기, 영화적 화면, 풍부한 음향이 조화된 이 단편 비디오 클립은 동영상 사이트에 올려져 빠르게 클릭되었고, 곧 <미스터리 게스트>는 서점에서 히트를 기록했다. 영화 예고편, 즉 무비 트레일러가 아닌 ‘북 트레일러’라고 이름 붙여진 이 비디오는 새로운 영화 스타일의 ‘책 예고편’이다. 이 새로운 마케팅 전략은 출판계가 절망으로 부터 찾아낸 새로운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한 달에 약 2,000만 명의 방문객이 드나드는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사이트에서 본 책 예고편은 블로거들에 의해 여기저기 옮겨지고, 실제 구매로 연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 영화 스타일의 ‘책 예고편’의 등장과 히트는 출판계와 영화산업의 틈새시장을 반기는 영화계 모두에게 고무적이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수연 LA 통신원 200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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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09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에 생각나는 것은 사신 치바(지금 읽고 있어서 그런지), 커피 향기 등의 이야기가 뚜렷하고 명료한, 궁금증을 일으키기가 손쉬운 책들이에요. 혹은, 키노 님께서 보내주신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도 쉬울 것 같아요. 한 번 읽었지만 다시 아껴 읽고 있답니다. 두번째 읽는 책들은 `내가 처음 읽을 땐 이 부분에서 멈추었지'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래 전의 나와 만날 수 있는 느낌이에요.

마노아 2006-10-0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아이디어 좋은걸요. 영화 예고편처럼 책 예고편을 만든다는 거죠? 전 시간 여행자의 아내가 생각났어요.(어차피 영화로 만들지만..^^;;)

키노 2006-10-11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드님/전 책이나 영화는 한번 봐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두번 보거나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 느낌도 색다르고
마노아님/저 아이디어 괜찮은 것 같아요^^
 

가족, 그 엽기성에 관하여

추석은 가족의 시간이다. 이른바 민족 대이동이라고 불리는 그 엄청난 교통난을 겪는 것 자체가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기 위해서 벌어지는 일이고, 연휴를 만들어주는 것도 바쁜 일상에 한번쯤 시간내서 가족끼리 한번 모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풍요로운 계절, 풍요로운 마음으로 가득한 채로 가족이 모여들어 모두들 행복한 웃음을 짓는 따듯한 광경…. 뭐, 그렇게 끝나면 좋겠지만, 이야기는 계속된다. 모처럼 모였고 반갑기도 하지만, 같이 모여도 뭐 별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반가움은 한때, 무료함 내지 심한 경우 껄끄러움은 나머지 만남 내내. 게다가 만약 여성이라면 그 끝없는 가사노동은 또 어떤가. 여하튼 어서 끝나고 나머지 연휴기간 동안은 난데없던 대가족의 향연에서 벗어나 푸욱 쉬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도 그렇게 양심에 걸릴 일이 아니다.

바로 그럴 때, 만화책은 좋은 동반자다. 집에서 편안히 쉬면서 볼 수 있고, 은둔해버리지 않더라도 서로 귀찮게 하지 않고 각자 혼자 몰두하며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왕이면 가족에게 시달린(?) 김에, 만화도 가족에 관한 작품들을 한번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무슨 가족의 아름다움, 따뜻한 가족애가 지상 최고의 가치라느니 하는 감동의 교훈 작품 같은 것은 사절이다. 꼭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이미 현실에서 가족의 감동도 스트레스도 다 받은 상황에서 별로 당기지 않을 법하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상쾌한 도피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화끈하게 엉망진창인 가족에 대한 만화를 집중적으로 읽어볼 것을 권한다. 사실, 가족애가 전혀 없는 완벽한 콩가루 가족에 대한 작품은 드물다. 하지만 ‘알고 보니 숨어 있는 따뜻함’보다는(<이씨네 집 이야기> 등 전통 가부장 가정에 대한 찬미로 가득한 가족만화들), 확연히 드러나는 가족간 애증 섞인 알력과 그들의 좌충우돌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 정도만 되어도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자리에 몇 가지 그런 작품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우당탕탕 괴짜가족>(전 31권), <원조! 괴짜가족>(8권 발행 중) 하마오카 겐지/ 서울문화사

황당하리만큼 괴짜질을 일삼는 가족 성원이 한명 있다고 치자. 나머지 가족 성원은 그 뒤처리로 참 고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아예 온 가족이 다 그렇다면 어떨까. 그렇기에 오오사와기 집안 사람들은 그럭저럭 잘 살아나간다(물론 주변 이웃과 친구들에게는 엄청나게 민폐지만 말이다). 꼬마 남자애는 막나가는 장난꾸러기, 아버지는 난폭 열혈 택시 운전사, 할아버지는 록 마니아, 어머니와 누나와 아기는 괴력 레슬러, 장남은 폐인. 이 가족이라면 하루하루가 엽기 개그가 된다. 마치 고전 우스개마냥 각종 화장실 개그로 범벅된 엉터리 이야기들이 거침없이 펼쳐진다. 둥글둥글하면서도 항상 맑은 눈으로 부담스럽게 만드는 그림체도 효과만점.

<납골당 모녀>(4권 발행 중) 강현준/ 학산문화사

가족이란 경우에 따라서는 취향마저 닮아버리는 법. 예를 들어서 어머니와 딸이 같은 남자 취향, 그것도 미소년 취향이면 어떨까. 가업으로 으스스한 납골당을 운영하기에 그다지 남자운이 없던 모녀가, 우연히 굴러들어온 미소년을 쟁탈하기 위해 벌이는 뜨거운 신경전과 개그로 가득한 작품. 모녀라는 관계가 오히려 서로를 잘 알기에 더욱 치열한 경쟁으로 몰아넣는 악순환이 주인공들에게는 마음의 고통을, 독자에게는 마음의 웃음을 안겨다준다. 언뜻 진지하게 나갈 법하다가도 어느 틈에 다시 욕망에 충실하기에 가족이고 뭐고 서로 골탕 먹이기에 최선을 다하는 이 가족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 속 가족과의 신경전에서 온 스트레스가 어디론가 날아가버릴 것이다.

<심술가족> 이정문/ 묵찌빠닷컴(온라인)

이정문의 심술 시리즈는 한국 명랑만화 장르의 보물이다. 70∼80년대 다른 명랑만화들이 장난기 가득하고 때로는 멍청하지만 사실 더할 나위 없이 착한 개구쟁이들의 모험을 그렸다면, 심술첨지, 심똘이, 심쑥이, 심술통, 심통이와 심뽀 등등 심술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정말 심술맞다. 물론 길창덕의 ‘순악질 여사’도 심술로는 가히 최고봉이었으나, 이정문은 아예 온 가족이 다 심술꾸러기인 작품을 탄생시켰다. 애들은 애들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각자의 눈높이에서 사람들에게 마음껏 심술을 부린다. 다소 부덕한 짓을 저지른 사람들을 갖가지 사소하지만 집요한 심술로 괴롭혀서 뉘우치게 만드는 에피소드도 많지만, 역시 가장 돋보이는 경우는 가족이 심술로 서로서로를 골탕 먹일 때다. 심술의 고수가 더 엄청난 고수에게 당하는 모습의 즐거움인 셈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사악함이라기보다는 마치 놀부와 같은 해학의 묘미가 있다. 이제는 명랑만화라는 장르 자체가 고전이 돼버렸지만, 특유의 항상 화나 있는 표정의 가족을 다시 만나는 것은 역시 반갑다.

<신한국 황대장>(전 5권) 김진태/ 서울문화사 또는 이코믹스(온라인)

모 영화의 성공 덕분에 ‘한국형’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금 꽃피고 있다. 한국형 영웅은 평범한 가장이고, 별다른 능력보다는 그냥 한국적 오기와 평범한 생활을 지키려는 가치관 하나만으로 의외로 강력한 적들도 여차저차 해치우는 것이다. 이런 흐름의 원조에 가까웠던 것이 바로 ‘황대장’이었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황대장으로 한때 활약했고, 아들 역시 영웅의 길을 걸어서 신한국 황대장이 되었다(당연히, 한창 신한국을 부르짖던 90년대 초반의 분위기도 반영되었다). 출동할 때 운동복을 주섬주섬 입고 보자기 망토를 두르는 이 영웅 부자는 필살기도 두 다리를 붙잡고 사타구니를 반복해서 밟는 ‘처절한 응징’ 등 아주 통쾌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한 집안에 대물림으로 두 영웅이 있을 때, 그 미묘한(?) 분위기는 어떨까 즐겁게 웃으며 지켜보는 것도 포인트.

<콩가루> 박성훈/하나포스+작가 홈(http://paranoia.anipy.com)에서 연재 중

진정한 콩가루 가족의 진수. 특별히 가족 성원 한명한명이 괴짜라기보다는 가족간 관계가 어느 불륜 아침드라마보다도 더 극단적으로 망가져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가족의 틀 속에서 적당히 버무려져 있기에 일류 부조리 개그가 된다. 화장실 개그나 엽기적 설정과 달리 철저하게 막나가는 관계 자체에 집중해서 웃겨주는 코미디. 은근히 진지하고 딱딱해 보이는 그림체에서 오는 괴리감이 그런 개그의 효과를 더욱 더해준다.

<폐인가족> 김풍/ 미디어다음(온라인)

사실 특별히 가족이 폐인이라기보다는 김풍 만화가가 자신의 출세작인 <폐인의 세계>에서 만들어낸 온라인 폐인 캐릭터를 사용해서 만들어낸 가족코미디. 아버지는 무능하고 어머니는 귀 얇은 주부고, 아들은 재수·삼수생이고, 딸은 영악한 고교생이다. 가장의 권위 따위는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간 지 오래며 누구 하나 서로를 존중하지 않지만, 여하튼 가족은 대충 굴러가는 상태. 어찌보면 별로 과장하지도 않은 한국식 현대 가정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폭발적 웃음의 개그보다는 사회 세태 풍자의 매력이 더 강한 작품.

<쥐>(전 2권) 아트 슈피겔만/ 아름드리

지금껏 개그물을 소개했는데, 사실 뭔가 엉망인 가족 관계를 가지고 과장된 패러디와 개그가 아니라 진지한 접근을 해버리면 상당히 무겁고 부담스러운 작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개그도 아니고 지나치게 엄숙하지 않게 접근하면서도 얼마든지 진지한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 <쥐>의 가족이 그렇다. 대학살의 생존자인 아버지와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는 만화가 아들. 이들 사이에 있는 것은 서로 다른 세상을 경험하며 살아온 과정, 서로에 대한 거리감, 가족으로서 가지는 연결 등 여러 요소들의 미묘한 균형이다. 이 작품이 걸작의 반열에 오른 것은 홀로코스트의 묘사 때문이라기보다 그것이 바탕이 된 현재의 모습들, 예를 들어 ‘가족’의 관계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제3권 태종실록편) 박시백/ 휴머니스트

가족의 굴레, 부자의 애증, 형제간의 다툼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끝나는 비극, 그 모든 것을 극복해내기 위한 정진. 때로는 어떤 가상의 드라마보다도 재미있는 것이 바로 역사다. 조선왕조 초기, 왕의 가족만큼 콩가루 가족의 진수를 보여준 것이 또 있을까. 어차피 대부분 대략의 줄거리야 잘 아는 이야기일 테지만(하다못해 드라마 <용의 눈물>을 통해서라도 말이다), 이왕이면 이번에는 정치권력의 쟁탈전보다는 가족드라마로서 한번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 정사에 충실하며 설명이 명료하고, 뚜렷한 그림체와 연출를 구사하는 작품을 통해서 말이다. 아아, 가족이란.

<문조님과 나>(6권 발간 중) 이마 이치코/ 시공사

사람 가족에 대한 작품이라면 아무리 콩가루라도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근친상간과 난교 같은 금기 소재를 마구 꺼내놓고도 명랑한 분위기를 유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물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면 한층 편하다. <문조님과 나>는 원래 요괴기담 만화를 통해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든지 소외 이야기를 심어오곤 했던 작가가 펼치는 새장 속 문조 가족에 대한 관찰담이다. 그런데 문조를 많이 오래 키우다 보니 그 짝짓기의 가족 관계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촌수를 따지는 것이 무의미해질 정도의 문란한 번식, 그리고 언제나 어떤 관계에서나 암컷/수컷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모습들. 행여나 그냥 동물 육성만화로 착각할까봐 작가가 중간중간 다시 가계도를 상기시켜주는 것도 여간한 악취미가 아니다. 아니 그런데, 결정적으로 상당히 가볍고 개그스러운 풍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더 즐겁다. 많은 이들은 이 작품을 애완동물 육성 만화 정도로 볼지도 모르겠지만, 이것 은근히 엽기가족만화다.

<사고뭉치! 피스전기만물상>(전 24권) 노다 다쓰키/ 대원 CI.

천재발명가 아저씨 칸타로, 그리고 그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장남 켄타로. 이들 둘이 중심이 된 피스 일가의 전기만물상에는 항상 소동이 그칠 일이 없다. 아들은 아버지를 뛰어넘고 싶어하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밀려서 뒤안길로 물러나기 싫어하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아들은 아버지를 구닥다리 취급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미숙한 애 취급한다. 도라에몽(동짜몽)의 전통을 이어받은 듯한 수많은 재미있는 발명품들이 엮어가는 재미있는 소동과 모험이 주가 되지만, 어째서인지 이들 부자의 티격태격을 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는 멋진 가족만화.

이외에도 꼭 진짜 가족은 아니더라도 의외로 가족적인 분위기의 엉망진창인 작품들도 재미있게 찾아볼 수 있다.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소규모 조폭 집단의 모습에 아기가 하나 끼어들 때 생기는 유사 가족의 모습 속에서 포복절도 개그를 만들어내는 <키드갱>(신영우/ 삼양) 같이 말이다. 혹은 전혀 관계없어 보였는데 알고 보니 모두 가족이었다는 것은 어떨까. 알고 보니 서로 피튀기며 싸운 88명의 전사들이 모두 아버지가 같았다는 충격적인 설정의 <세인트세이야>(구루마다 마사미/ 서울문화사)라든지 말이다. 여하튼 추석 연휴는 만화책을 제대로 읽기에는 너무 짧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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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장


1001 Albums You Must Hear Before You Die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장”

과연 우리는 죽기 전까지 몇 장의 음반을 듣게 될까? 닉 혼비의 소설 '하이 피델리티(High Fidelity)'를 영화로 각색한 <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의 주인공 롭 고든(존 쿠삭)은 광적인 '음반 중독자'로 등장한다. 마치 음악이랑 결혼이나 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현실에서도 그와 비슷한 인물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음악에 죽고 사는 사람들! 그들은 왜 그렇게 음악에, 또 음반에 미쳐 사는 것일까.

음반 모으는 재미에 한번 빠져본 이들은 음반만 바라봐도 배가 부르다고 말한다. 거의 병적으로 음반 수집에 집착하는 이들 중엔 똑같은 음반을 두 번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가령 자신이 애착하는 음반이 국내반이거나 원판과 커버가 다를 경우, 똑같은 음반을 수입 앨범으로 또 구입한다. 비틀스 전집을 모으는 중인데, < Please Please Me >가 빠져 있다면 기어코 훗날 그 빈자리를 채워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정말 못 말리는 음반 애호가들이다.

가수 이은미는 “음반은 가장 훌륭한 음악선생님”이라 말한 적 있다. 다시 말해 이는 음반의 중요성을 역설한 말이다. 그만큼 음반은 소중하다. 그러나 디지털 음악 파일이 범람하는 요즘시대에 음반은 소외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제는 돈 주고 굳이 음반을 사지 않아도 최신 유행 음악을 얼마든지 공짜로 다운받아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반을 많이 들어야 될 감수성 풍부한 청소년들이 음반 구입을 꺼리기조차 한다. 알고 보면 사회적 손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음반 중독에 시달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음악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해줄 책 한 권이 금주에 출간됐다. 해외에서 원서로 먼저 소개됐던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장(1001 Albums You Must Hear Before You Die)'의 번역본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1001장의 음반이라니, 그 수만 봐도 흥분이 절로 된다.

어느 누군가가 책 천 권을 넘게 읽었거나, 천 편도 넘는 영화를 봤다면 그 열성에 우린 감탄사를 내뱉곤 한다. 음반도 마찬가지다. 책이나 영화 못지않게 '천 장'이란 음반 수는 만만찮은 수량이다. 집안에 가요든, 팝이든, 클래식이든 음반이 천 장 이상 장식장에 꽂혀있다면 그 사람은 음악을 단순히 즐기는 수준을 떠나, 음반 수집에 약간의 병적인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수천 장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음악 마니아의 기준이 꼭 거기에 국한될 필요는 없지만, 천 장이 넘는 수는 외형적으로 그 사람이 얼마나 음악에 중독돼 있는지 쉽게 말해주는 수치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왜 하필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이 천 장도 아니고, 만 장도 아니고 1001장인가? 그 해답은 간단하다. 이 책은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1001 Movies You Must See Before You Die)'의 시리즈물인 까닭이다. 국내에서는 이미 1001편의 영화 책이 번역본으로 나와 나름대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음반은 늘 영화에 비해 소외되곤 했다. 주변에서 극장엔 자주 찾지만, 음반은 구입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본다면, 현재 대중음악이 멸시받는 현상은 국내에선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때문에 이 1001장의 앨범 책이 그나마 번역본으로 나온 것만도 반갑기 그지없다.

누구는 나이 서른 넘도록 음반을 구입한다고 해서 가족들에게 미친 놈 취급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친구들도 한결같이 말한다. “mp3 공짜로 다운 받으면 되지 그까지꺼 뭐 하러 돈 주고 사냐?” 이 질문은 바꿔 말한다면 한 영화 애호가에게 “영화 공짜로 인터넷 다운받아서 보시면 되지 뭐 하러 돈 주고 극장에서 보시나요?”라고 묻는 멍청한 질문에 한결 다를 바 없다.

지금도 꾸준히 음반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재차 말하지만 음반은 소중하다. 30대 중반의 모 노총각 한 분은 지금도 음반을 구입할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왜 그 분이 그렇게 끊임없이 음반을 사는 지는 그 사람의 내면세계로 들어가 보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 모른다.

어쨌든 당신이 팝 음악을 좋아한다면 이 책을 놓치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책 제목이 말하고 있지만, 사실 죽기 전에 이 책에 담긴 음반을 모두 다 들을 필요는 없다.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으니까. 그런데 당신이 음악에 늘 종속된 사람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회가 된다면 꼭 책을 보고, 앨범까지 소화하면 더 좋을 듯하다.

물론 이전에도 명반 책은 수없이 많이 접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1001장의 앨범들은 단순한 명반 리스트가 아니다. 록 전문지 < 롤링스톤 >을 위시해 해외 유수의 음악 매체가 선정한 명반뿐 아니라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었던 앨범까지 방대하게 실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로큰롤 50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1001장의 앨범을 줄줄이 다룬다.

시대별로 적정량의 앨범을 나눈 것도 눈에 띤다. 록의 황금기인 1970년대(279장) 앨범에 집중되지 않고, 80년대(210장)와 90년대(239장), 그리고 2000년대(99장)까지 거의 동등한 비율로 리스트가 짜여졌다. 흔히 비틀스의 모든 앨범은 다 명반이라고 말하지만, 이 책은 비틀스의 전 앨범을 리스트에 집어넣지는 않는다. 기존 명반 가이드와는 달리 좀 더 다양한 뮤지션들의 앨범을 포괄적으로 수록됐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니라 프랭크 시내트라의 < In The Wee Small Hours >(1955)를 시작으로 최근 화이트 스트라입스의 < Get Behind Me Satan >(2005)까지 시대별로 되짚어본다. 그렇다보니 총 750팀의 1001장을 장장 960페이지에 걸쳐 다루기 때문에 방대한 앨범 자료집으로 충분한 가치를 띤다. 거기에 올 컬러의 좋은 재질을 사용해서 대학 전공 서적 그 이상의 메리트를 전해준다. 책 가격이 조금 비싼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평상시 쉽게 구할 수 없었던 아티스트들의 희귀 사진도 흥미롭게 담겼다. 음반이 나왔을 당시 뮤지션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한 134장의 화보는 참 인상적이며, 무려 91명의 필진이 참여해 각 필자들만의 독특한 필체를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참여 필진들의 이력을 보면 영미 음악 저널리스트가 가장 많고, 그 외에 잡지사 편집장, 대중문화 평론가, 자유기고가, 방송작가, 밴드 뮤지션, 영화감독, 대학 강사와 클럽 DJ 등 실로 다채롭다. 다양한 음악전문가들의 다양한 시각을 빌려온 리뷰들이라 그만큼의 가치를 지녔다.

뿐만 아니라 각 뮤지션들이 자기 음반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도 실어 앨범 리뷰에 무게를 실어준다. 빌리 조 암스트롱은 < Dookie >에 대해 "공연을 하고 파티를 즐기는 것이 평크다"라고 말했고, 닉 케이브는 < The Boatman's Call >에 관해 “육신은 사라지지만 가사는 남는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링킨 파크의 마이크 시노다는 < Hybrid Theory >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주류 밴드가 아니다. 주류가 우리에게 왔다”

이 책에 있는 음반이 집안에 다 구비돼 있다면, 굳이 이 책을 구입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언컨대, 여기에 있는 음반을 다 갖고 있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로큰롤, 재즈, 펑크, 일렉트로닉, 소울, 힙합, 월드뮤직까지 주류와 비주류 등 다양한 장르를 광범위하게 다루기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라이선스로 발매되지 않은 앨범들도 꽤 많은 까닭에 수입상을 통해 구하지 않고서는 이 책에 담긴 1001장의 앨범을 다 듣기란 좀 무리가 따른다. 꼭 구입하기 힘들다면 책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음악 애호가인 당신이 오늘 당장 술자리가 생긴다면, 옆 사람과 한번쯤 이런 내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 죽기 전에 여기 있는 음반을 다 들을 수 있을까, 없을까?”

출판사: 마로니에 북스
책임편집: 로버트 다이머리
역자: 한경석 외 5인
가격: 3만 9천원

  2006/09 김獨 (quincyjone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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