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출판계와 지식사회는 어떤 책으로 독자와 만나고 소통했을까요. 중앙일보는 '2006 올해의 책'을 선정해 한 해 동안의 '책농사'를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출판전문가와 학자, 작가 등 13명의 선정위원을 구성했습니다. <명단 참조> 이들로부터 '올해의 책' 2권씩, 인문.사회, 문학, 경제.경영, 과학.실용, 어린이.청소년 분야에서 3권씩을 1차 추천받았습니다. 여기서 다수 표를 받은 후보 도서를 다시 추려 2차 투표를 실시, '올해의 책'으로 문중양 서울대 교수의 '우리역사 과학기행'과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를 최종 선정했습니다. 선정 기준으로는 책의 완성도와 문제의식, 독자들의 반응 등을 두루 고려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초정리 편지'처럼 저희가 발간 당시 소개하지 못했으나, 이번 기회를 통해 '재발견'하게 된 책도 있었음을 기쁜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후보에 올랐던 책들도 소개했으니 모쪼록 행복한 책읽기에 도움 되시기 바랍니다.
당시 눈으로 보면 역사 달리 보일걸
우리 역사 과학기행 문중양 지음, 동아시아 352쪽, 1만3000원
제목보다 부제목이 책의 특징을 더 잘 보여주는 책이 많다. 부제목이 '역사 속 우리 과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인 이 책이 그러하다. 단순히 우리 조상들의 과학적 성취를 나열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면 새삼 이 책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책은 과학적 성취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주안점을 둔다. 그 기본 관점은 근대 과학의 필터를 제거하고 전통 과학을 그것이 처해 있던 특정 시대의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예컨대 현대 과학과 유사한 형태의 것에만 주목하다보면 17세기 이후 조선의 서양 과학 수용을 놓고 서양 과학의 우수성을 적극 수용하려 한 유학자들만 훌륭한 실학자로 평가하는 잘못에 빠진다. 또한 세종 대의 찬란했던 과학기술이 이후에 잘 계승되지 못했다는 인식도, 현대 과학과 유사한 형태의 전문적인 지식들이 세종 대에 방대하게 나타났다가 이후에 소멸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 과학지식을 둘러 싼 문화적 배경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단견들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좀더 구체적인 예를 들면, 우리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금속활자를 이해하려 한다. 금속활자의 인쇄술로 인해 얼마나 폭발적으로 서적 간행이 이루어졌는가? 서적의 대량 유통이 중세적 지식의 틀을 얼마나 변혁시켰고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는 데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가? 당연히 우리의 금속활자 인쇄술은 그렇지 못했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과학사에서 말하는 'why not' 질문, 즉 동양은 왜 서양과 같은 발전을 이루지 못했느냐는 질문이 돼버리는 것이다.
이 책에 따르면 14, 15세기 고려 말, 조선 초 우리 금속활자 인쇄술 발달의 사회적 배경은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하던 유럽과 크게 달랐다. 그 시기는 우리 역사에서 유교 문화의 본격적 형성기라고 할 수 있으며, 결국 우리의 금속활자는 조선 왕조의 안정적 정착이라는 정치적 구실과 유교 문화의 형성이라는 사상적. 문화적 의의를 갖는다. 14, 15세기 우리 사회의 필요에 훌륭하게 부응한 것이 금속활자 인쇄술이었으니, 구텐베르크와 비교하면서 그 의의를 낮추어 볼 하등의 까닭이 없다.
첨성대, 석불사 석굴, 고구려 고분 벽화, 천상열차분야지도, 금속활자, 앙부일구, 훈민정음, 신기전과 화차, 거북선, 수원 화성, 혼천시계 등 우리 조상들의 다양한 과학적 성취에 대해 저자는 일관되게 그 문화적.사회적 배경과 세계관을 따져 묻는다.
저자 스스로 밝히듯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전통 과학 유산의 과학적 원리를 파악하거나, 우리 과학 문화의 우수성과 과학적 역량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독자는 실망할지 모른다. 대신 서양과학과는 다른 우리 과학의 문화적.사회적 배경과 논리 및 세계관을 이해하고픈 독자라면 흥미진진한 책이 될 것이다. 요컨대 이 책은 진정한 의미의 '과학사' 교양서라고 할 수 있다.
표정훈<출판평론가>
시간·공간·지식이 부자 밑천이래요
부의 미래 앨빈 토플러, 하이디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청림출판 656쪽, 1만9800원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이라는 강력한 은유로 일찌감치 우리에게 지식정보화 혁명이 찾아올 것임을 예고했다. 예언은 적중했으며 그가 처음으로 썼던 '재택근무' '전자정보화 가정' '프로슈머' 같은 용어는 일상어가 됐다.
지금껏 토플러는 10년을 주기로 미래를 예측했다. 1970년에는 '미래 쇼크'를, 80년에는 '제3의 물결'을, 91년에는 '권력이동'을 펴냈다. 2000년대에도 신작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으나 '권력이동' 이후 15년이 지나서야 '부의 미래'가 출간됐다. 미래학의 거장조차 부담을 느낄 만큼 변화의 속도는 빠르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 간' 우리 역시 제4의 물결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국내 출간을 앞두고 초판 매진 사례가 벌어졌을 만큼 큰 파장을 불러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의 미래'는 우리가 맞고 있는 변화는 혼란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부를 창출한다고 지적한다. 부를 창출하는 시스템은 단독으로 생성되지 않으며, 새로운 삶의 방식과 문명 그리고 전통적인 역할이나 지위의 변화와 함께 등장한다. 이미 부를 창출하는 시스템이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화 사회로 전이됐고 핵가족은 다양한 형태의 가족으로, 수직적 위계구조는 대안적 네트워크로 변했다. 따라서 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심층기반을 이해해야 한다.
앞으로 이런 변화를 이끌 부의 심층기반이란 시간과 공간과 지식이다. 시간과 인간의 관계가 달라지며 파생되는 속도의 충돌은 사회적 갈등과 위기감을 낳을 수도 있다. 기업이 시속 100마일로 변한다면 학교는 10마일로, 정치조직은 3마일의 속도로 변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의 중심이 아시아, 특히 중국으로 빠르게 공간이동을 하고 있고 지식의 활용도가 부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덧붙인다.
이 책은 부의 개념을 돈이 아닌 인간의 사회적.문화적 욕구를 포함한 문명사적 개념으로 풀어낸 점이 돋보인다.
물론 책에서 중요하게 언급된 시간.공간.지식의 개념은 빌 게이츠, 토머스 프리드만, 다니엘 핑크 등이 이미 지적한 사실과 근본적으로 달라지거나 새로워진 점은 없다. 하지만 현상을 통해 본질로 접근하고, 개별정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등 미래를 사고하는 큰 틀을 제시한다. 토플러 스스로도 자부심을 느끼듯 책은 경제학자나 금융전문가들이 말해줄 수도, 알 수도 없는 심층기반을 통해 미래를 직시한다. 경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영감으로 가득 찼다는 점에서 이 책은 '올해의 책'으로 가치를 지닌다.
한미화<출판평론가>
후보에 올랐던 책들
◆인문·사회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영훈 외, 책세상) 역사용어 바로쓰기(역사비평편집위원회, 역사비평사) 조선의 문화공간(이종묵, 휴머니스트)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김용규, 웅진지식하우스) 오빠는 풍각쟁이야(장유정, 민음in) 읽는다는 것의 역사(로제 사르티에.굴리엘모 카발로,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한학수, 사회평론) 수사학(키케로, 길) 판단력 강의 101(데이비드 핸더슨 외, 에코의서재) 교실의 고백(존 테일러 개토, 민들레) 요리의 향연(야오웨이쥔, 산지니) 예루살렘의 아이히만(한나 아렌트, 한길사)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누구인가?(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까치) 근대를 다시 읽는다(윤대석 외, 역사비평사)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존 브록만, 소소) 19세기 지식인들의 생각 창고(정민 외, 돌베개) 신의 아들(조너선 D 스펜서, 이산) 철학, 삶을 만나다(강신주, 이학사) 디지로그(이어령, 생각의나무) 사생활의 역사 5: 제1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필립 아리에스.조르주 뒤비, 새물결) 박정희 평전(전인권, 이학사) 열정적 고전읽기(조중걸, 프로네시스) 바보상자의 역습(스티브 존슨, 비즈앤비즈)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이사야 벌린, 아카넷)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김경원.김철호, 열린박물관)
◆문학(에세이 포함)
남쪽으로 튀어!(오쿠다 히데오, 은행나무) 인생수업(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이레) 글쓰기 만보(안정효, 모멘토) 히치콕(패트릭 맥길리건, 을유문화사)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렌 와이스버거, 문학동네) 앤디 워홀 손 안에 넣기(리처드 폴스키, 마음산책) 타샤의 정원(타샤 튜더, 윌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푸른숲)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서해문집) 펭귄뉴스(김중혁, 문학과지성사) 씨크릿 하우스(데이비드 보더니스, 생각의나무) 모국어의 속살(고종석, 마음산책) 근대문학의 종언 (가리타니 고진, 도서출판b)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헤르만 헤세, 뜨인돌)
◆경제·경영
롱테일 경제학(크리스 앤더슨, 랜덤하우스) 빈곤의 종말(제프리 삭스, 21세기북스) What's Wrong Korea?(이필재 외, 중앙일보시사미디어) 야만의 주식회사 G8을 말하다(노엄 촘스키 외, 시대의창) 일상의 경제학(하노 벡, 더난출판) 남자의 미래(매리언 살츠먼 외, 김영사) 머니 사이언스(윌리엄 파운드스톤, 소소) 부동산 투자는 과학이다(고종완, 다산북스)
◆과학·실용
과학해서 행복한 사람들(안여림 외, 사이언스북스)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찰스 다윈, 샘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 이마고)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대니얼 길버트, 김영사) 빛의 제국(질 존스, 양문) 검색으로 세상을 바꾼 구글스토리(존 바텔, 랜덤하우스)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스티븐 호킹, 까치)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최효찬, 예담) 사이먼 싱의 빅뱅(사이먼 싱, 영림카디널) 시인을 위한 물리학(울프 다니엘손, 에코리브르) 마인드 해킹(매트 웹 외, 황금부엉이) 행복의 심리학(대니얼 네틀, 와이즈북) 나는 침대 밑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올리버 색스, 소소) 박경미의 수학 콘서트(박경미, 동아시아) 따귀 맞은 영혼(베르벨 바르데츠키, 궁리)
▲어린이·청소년
짜장면 불어요(이현, 창비) 나좀 내버려둬!(박현진, 천둥거인) 금단현상(이금이, 푸른책들) 내 생각은 누가 해줘(임사라, 비룡소) 걱정쟁이 열세 살(최나미, 사계절) 나온의 숨어있는 방(황선미, 창비) 처음 가진 열쇠(황선미, 웅진주니어)레모네이드 마마(버지니아 외버 울프, 비룡소) 난 버디가 아니라 버드야(크리스토퍼 폴 커티스, 시공사) 길 위의 책(강미, 푸른책) 몽구스 크루(신여랑, 사계절) 나(이경화, 바람의아이들)
포토 일러스트레이션=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