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Pops In Jazz]앨범을 통해 몇가지 비슷한 팝, 락 넘버들을 재즈로 변형시킨 앨범들에 대한 기사에 이어 이번에는 좀 더 확장된 또 다른 재즈감상에 대한 기사를 마련하였다.
지난주에 재즈 메인기사로 업데이트되었던 [황덕호의 그 남자의 재즈일기]처럼 책을 통해 알게된 곡을 음반을 통해 접하는 것도 분명 재즈를 듣는 사람들에게나 다른 음악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는 일이다. 여러가지의 감상방법이 있을 수 있고, 또 이것은 재즈에서 같은 곡을 다양하게 편곡한 버젼이 존재하는 관계로 매우 다양한 앨범들을 또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많은 감상방법들이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클래식 곡들을 재즈로 편곡한 앨범 위주로 더욱 다양한 재즈의 세계를 맛볼 수 있는 음반들을 소개할까 한다. 이를 통해 좀 더 재미있게 음악을 듣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 관련 기사 목록
재즈로 듣는 팝송 Pops In Jazz

글 / 강대원 in changgo.com
디자인 / 홍선영 in changgo.com

바흐의 작품들을 재즈화하여 유명해진 프랑스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 자끄 루시에(Jacques Loussier). 최근 몇년간 그의 활동과 앨범들을 살펴보면 바흐와 다른 클래식 작곡가들의 작품에도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 그가 텍스트로 삼은 클래식 작곡가들을 살펴보면 핸델, 드뷔시, 라벨, 비발디, 사티 등이다. 올해 텔락에서 발표한 신작에는 베토벤의 7번 교향곡을 텍스트로 "클래식의 재즈화작업"을 꾸준히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앨범은 11월 중순경에 국내에 수입으로 소개될 예정에 있다.)


Jacques Loussier / Play Bach No.1
Jacques Loussier / Play Bach No.2
Jacques Loussier / Play Bach No.3
Jacques Loussier / Play Bach No.4
Jacques Loussier / Play Bach No.5


전통과 현대를 오가며 또한 새로운 음악과 다양한 스타일, 장르의 음악들로 항상 놀라움을 전해주고 있는 피아니스트 유리 케인(Uri Caine) 역시 클래식을 재즈화하는 작업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그의 초기작부터 클래식 작곡가들의 곡의 일부를 텍스트로 끌어와 새로운 곡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이후 말러와 바흐, 슈만, 베토벤 그리고 곧 발표예정 중인 앨범에서는 다시 말러의 곡에 도전하고 있다. 자끄 루시에와 다르게 유리 케인은 클래식을 재즈화하는 과정에서 더욱 현대적이고 파격적으로 변형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흐와 최근에 시도하였던 베토벤의 곡에 이어 유리 케인은 2003년 신작에 다시 한번 구스타프 말러의 곡을 텍스트로 신보 [Dark Flame]을 발표하였는데 말러의 곡에 대해 상당한 관심과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아쉽게도 현재 유리 케인의 리더작이 발표된 JMT와 W&W레이블의 수입이 중단된 상태이다.)



Uri Caine Ensemble & La Gaia Scienza / Robert Schumann Love Fugue
Uri Caine Ensemble / The Goldberg Variations
Uri Caine / Gustav Mahler-Urlicht, Primal Light
Uri Caine / Concerto koln: Diabelli Variations(Ludwig Van Beethoven)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Keith Jarrett) 역시 클래식곡들에 도전하여 몇장의 앨범을 발표한 바 있는데 그의 작품들에 대한 평가가 현재까지도 매우 상반되기에 이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보류할까 한다.


Keith Jarrett / J.s. bach : Das Wohltemperierte Klavier, Buch II
Keith Jarrett / Mozart Piano Concertos K. 271, 453, 466 : Adagio and Fugue K. 546


대체로 다른 악기들보다 피아니스트들에게서 이러한 작업들이 많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재즈 피아니스트들이 클래식을 기초로 학업하고 이후에 재즈로 전환하는 것에서 기인하지 않나 싶다. 특히 ECM에서 발표된 유러피안 피아니스트들의 경우 대부분 클래식과 유럽적인 음악 토대를 밑바탕으로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와 미국연주자들에게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사례이기는 하지만...)

V.A.(Various Artists) / Jaclassic - 재즈 명인들이 재즈로 들려주는 클래식 명곡

가장 최근에 발표된 재클래식 앨범은 이러한 클래식과 재즈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기획력이 돋보이는 음반 중 하나이다. 재즈와 클래식의 합성어인 "Jaclassic"은 다양한 클래식 작곡가들의 곡을 수록하고 있으며 또한 그 동안 듣기 힘들었던 음원들을 선별하여 재즈와 클래식의 만남이라는 이젠 너무나 진부해질 수 있는 주제를 다양한 음악들로 접근용이하게 하고 있다. 대부분 블루노트 레이블의 음원들로 돈 바이런(Don Byron), 론 카터(Ron Carter), 추초 발데스(Chucho Valdes), 제이슨 모란(Jason Moran), 엘리아니 엘리아스(Eliane Elias)같은 뮤지션들의 앨범에서 선곡되었다. 이밖에 최근 신보 Saxophonic을 발표한바있는 데이브 코즈(Dave Koz)과 사라 본(Sarah Vaughan),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 냇 킹 콜(Nat King Cole) 등의 옛 재즈 보컬리스트들의 곡까지 수록하여 더욱 흥미를 돋구고 있다.

수록된 클래식 곡들 : 모짜르트의 'Marche La Turque', 바흐의 'Air', 쇼팽의 'Prelude In E Minor', 라벨의 'Bolero'등과 이밖에 바흐, 드뷔시, 브람스, 푸치니, 포레 등 다양한 클래식 작곡가들의 곡을 재즈로 흥미롭게 들어볼 수 있다. 2CD에 총 31곡 수록.



Regina Carter / Paganini : After A Dream

재즈와 바이올린은 왠지 잘 안어울릴 듯 싶지만 이미 스윙시대부터 스테판 그라펠리(Stephan Grappelli)라는 걸출한 뮤지션으로 인해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재즈계에서 이미 그 효용성을 인정받은 상태이다. 반면 그라펠리 사후 등장한 몇몇 뮤지션을 제외하고는 현재 그다지 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뮤지션이 없어 아쉬운 편인데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 레지나 카터는 이러한 공백을 확실하게 메울수 있는 인재로 현대 재즈신에 자리하고 있다.
2003년에 발표된 본 작은 그녀의 새앨범으로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파가니니라는 클래식의 대표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에 대한 경의감을 클래식 곡들과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탱고곡 그리고 영화음악가 엔리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곡들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본 작은 미국에서 발매되고 얼마후 많은 차트에 1위에 등극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던 앨범이기도 하다.

수록된 클래식 곡들 : 이 앨범에는 파가니니를 내세운 타이틀처럼 파가니니의 곡 위주로 선곡하였을 것 같은데 실상은 다른 클래식 작곡가들의 곡과 탱고, 영화음악등 매우 이미지적인 곡들을 수록하고 있다. 라벨의 '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 포레의 'Pavane' 'Apres Un Reve' 등의 클래식곡과 피아졸라의 'Oblivion' 그리고 "흑인 올페"와 "시네마 천국"의 테마곡 등 영화음악까지 다룸으로써 선곡에서의 신선함이 음반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European Jazz Trio / Classics, Adagio

국내에 내한하기도 했던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는 "재즈(Jazz)"를 자신들의 팀이름에 붙이고 있지만 단지 재즈에 귀속되지 않는, 매우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곡들을 새로운 해석으로 들려주고 있다.
비틀즈(The Beatles)의 곡을 타이틀로 발표한 이들의 첫 데뷔작 Norwegian Wood는 좀 더 재즈적인 맛이 강한 반면 지금 소개하는 Classics, Adagio 두 앨범은 완전히 클래식 레파토리를 선곡하여 수록하고 있다. 유러피안 재즈 특유의 섬세하면서 깔끔한 연주가 매우 돋보이며 트리오 각 섹션간에 적절한 긴장과 이완을 통해 표현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

수록된 클래식 곡들 : Classics에는 모짜르트의 'Turkish March(Sonata No.1I.Rondo)', 쇼팽의 ' Mazurka No.1 (Op.46-1)', 포레의 'Pavane' 그리고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 중 라르고,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 등 오페라 곡들까지 섭렵하고 있다.
Adagio에는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24개의 카프리치오' ' G 선상의 아리아' '헝가리 무곡 제5번' 그리고 호두까기 인형 중 '꽃의 왈츠' 등 Classics앨범의 레파토리에 버금가는 다양한 곡들을 수록하고 있다.


Roland Hanna Trio / Apres Un Reve

작년에 갑작스레 운명을 달리한 피아니스트 롤랜드 한나. 그가 죽고 난후 발표된 본 작은 그의 유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오랜 기간 재즈에 본령을 두고 있던 한나 자신이 죽기 직전에 다시 한번 클래식 곡을 선곡하여 재즈 트리오로 연주했다는 면에서 상당히 특기할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베이시스트 론 카터와 드러머 그레디 테이트(Grady Tate)의 트리오로 클래식의 명곡들을 엄선하여 맛깔스러운 스윙리듬과 서정적인 터치의 피아노 연주로 새롭게 연주하고 있다.

수록된 클래식 곡들 :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와 포레의 '꿈꾸고 난 후에', 쇼팽의 '전주곡-작품번호 28, 제2번'과 모짜르트의 '엘비라 마디간' 그리고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의 테마를 따온 'Going Home' 등 8곡을 클래식 작품들로 수록하고 있다.

Emmanuel Pahud & Jacky Terrasson / Into The Blue

재즈 피아니스트로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리더작을 발표하고 있는 재키 테라송이 근래에 자신의 신작 Smile과 더불어 발표한 Into The Blue는 사실 크로스 오버성향의 작품으로 기존에 자신이 보여주었던 성향과는 다소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베를린 필의 수석 플룻티스트인 엠마뉴엘 파후드와의 만남을 통해 매우 조심스러우면서도 진지한 태도로 클래식곡을 재즈로 재편곡하고 있다. 사실 이젠 재즈와 클래식의 뮤지션이 만났다는 것이 그다지 특기할만한 일이 아닐정도로 이전부터 이러한 만남이 심심찮게 있어왔는데 파후드와 테라송은 이러한 통념적인 것을 뛰어넘어 재치와 다양한 편곡방법을 도입하여 클래식 곡들을 재즈화하고 있다. 두 뮤지션의 다양한 음악에 대한 열린 사고가 절묘하게 일치하면서 매우 흥미롭고 색다른 감상을 가능케 하고 있다.

수록된 클래식 곡들 : 라벨의 '파반느' '볼레로', 포레의 '꿈 꾼 후에',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 그리고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등을 재키 테라송의 피아노 트리오와 파후드의 쿼텟(?!)연주로 들을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피아노와 플룻의 크로스 오버적인 만남을 이미 70년대 말에 시도하였던 끌로드 볼링(Claude Bolling)의 곡이 한곡 선곡된 것으로 이들이 끌로드 볼링과 또 어떻게 다른 진행을 보여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밖에도 클래식곡들을 재즈로 하는 경우는 많은 앨범과 뮤지션을 통해 찾아 볼 수 있다. 최근에 발표된 앨범들 위주로 이번 기사의 음반들을 선정하였지만, 피아니스트 리치 바이라흐(Richie Beirach)가 작년에 발표한 No Borders와 ACT레이블에서 바이올린 연주자 그레고리 휴브너(Gregor Huebner)와 조지 므라즈(George Mraz) 등과 함께 비슷한 컨셉으로 발표한 Bartok, Round About Monteverdi같은 앨범들도 클래식 작곡가들의 음악을 텍스트로 상당한 수준의 편곡과 연주를 보여준 앨범들이다. 또한, 피아니스트 끌로드 볼링의 앨범들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대로 크로스 오버 부분에서 대중과 마니아들에게 상당한 실효성을 거둔 앨범들로 어찌보면 클래식과 재즈의 크로스 오버에 대한 적절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봐도 무방 할 것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방향의 음반과 연주자들의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다. 단순한 크로스 오버 차원이 아닌 이젠 형식화된 두 장르의 음악이 만나 서로의 좋은 점을 받아들이며 여기에 또 실험적인 면을 추가하여 발전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재즈는 이젠 단순히 고전적 차원의 곡해석이 아니라 재즈 뮤지션 스스로가 현대음악적인 스타일의 작곡과 연주를 통해 미래의 새로운 클래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재즈는 여전히 진보와 변화중!

댓글(0)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o swing or not to swing? 스윙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스윙걸즈>가 던지는 질문이 혹시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할지도 모른다. 재즈의 공작으로 알려진 듀크 엘링턴 가라사대, “스윙이 거기 없다면 그건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스윙걸즈>는 재즈의 맛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스윙의 즐거움과 흥분과 미각을 알아차리게끔 해주는 애피타이저 같은 영화다. 재즈 음반 한장 없어도, 스윙이 뭔지 알지 못해도 재즈를 즐길 수 있다. 그 첫걸음은 <리플리>의 감미로운 쿨 재즈 선율일 수도, <버드>처럼 격렬하고 뜨거운 비밥 재즈일 수도, <스윙걸즈>처럼 초심자들이 가볍게 흥얼대며 장단을 맞추는 스윙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첫걸음을 어디서 시작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횡단보도에서 나오는 시그널 뮤직인 <Coming Through the Rye>에서도 재즈를 발견하는 ‘스윙걸즈’의 발랄함만 있다면 되는 거 아닌가.

느낌으로 따라가는 빅밴드의 경쾌한 선율

1930∼40년대 스윙의 시대 - 야구치 시노부의 <스윙걸즈>

“재즈는 이해하기보다는 느끼는 음악이어야 한다.” - 아트 블래키

이 영화 한편으로 바로 스윙을 알게 됐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다만 이 영화 한편으로 스윙이 뭔지 어슴푸레 느꼈다고 한다면 그건 참말일 것이다. 재즈의 초심자로 하여금 아껴둔 쌈짓돈으로 중고 색소폰을 사고 싶은 마음을 일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즐겁다. 식중독에 걸린 학교 밴드부 대신 급조된 보충학습반 아이들이 재즈에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의 <스윙걸즈>(2004)는 재즈의 역사를 혼자 써내려간 마일스 데이비스로부터도, 재즈 마니아를 식별하는 표지인 찰리 파커로부터도, 이름만 재즈 카페지 재즈다운 곡은 하나도 틀지 않는 카페에서 겨우 인색하게 흘러나오는 쳇 베이커나 스탄 게츠로부터도 시작하지 않는다. 바로 듀크 엘링턴의 <Take the A Train>으로 시작한다.

급조된 밴드부가 처음 연습하는 곡이기도 하고, 맨 마지막 밴드부 경연대회에서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스윙 소녀’의 연주곡이기도 하며 1930∼40년대를 풍미한 ‘스윙의 시대’를 대표하는 곡이기도 하다. 이 시대는 10명 이상의 대규모 밴드가 연주하는 빅밴드 시대였다. 빅밴드를 대표하는 이름들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베니 굿맨, 글렌 밀러 등이다. <스윙걸즈>는 이 빅밴드의 시대에서 유독 우리의 귓가에 오랫동안 친숙한 선율을 남겼던 글렌 밀러의 <In the Mood>, 베니 굿맨의 <Sing Sing Sing> 등으로 재즈가 어렵기만 한 음악은 아니라는 점을 각인시킨다. 짧은 검은 스타킹 차림으로 발로 박자를 맞추는 우에노 주리(스즈키 토모코)의 경쾌한 스텝처럼 말이다. 그건 굳이 배우지 않고도 느낌만으로도 따라할 수 있는 선율이다.

재즈의 모차르트로도 불린 듀크 엘링턴은 재즈 역사상 가장 멋쟁이였고, 쉴새없이 떠오르는 멜로디로 재즈의 아름다움을 알린 장인이었으며, 데이브 브뤼벡(<The Duke>)과 스티비 원더(<Sir Duke>)까지 곡을 써서 헌정할 정도로 존경받는 예술가였다. 그의 빅밴드엔 자니 호지스(알토 색소폰), 벤 웹스터(테너 색소폰), 지미 블랜튼(베이스) 등 재즈계의 명장들이 수십년간 몸을 담았다. 1941년에 녹음된 <Take the A Train>은 지금 들어도 온몸이 들썩거릴 정도로 흥겹고, 자기도 모르게 우에노 주리처럼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어 장단을 맞추게 되는 곡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곡이 실린 <In A Mellotone> 앨범에 대해 “진정 뛰어난 음악이 불현듯 내 몸에 다가왔을 때, 어디에선가 조용히 샘솟는 깊은 공감과 넉넉한 자비”라고 썼다(<재즈 에세이>). 듀크 엘링턴이 우아하면서도 재치있는 피아노 선율로 시작하면, 바로 색소폰 파트가 그 선율을 받아서 멜로디로 진행시키는 라인은 듣기만 해도 설렌다. 우에노 주리가 자신의 왼편에 있는 색소폰 파트의 친구들을 정겹게 바라보며 음정도 안 맞는 선율을 불 때, 그 표정은 얼마나 상쾌하면서도 아름다운가. 그들의 서툰 연습 덕분에 스윙 소녀들이 눈에 갇힌 기차 안에서 라디오 선율에 맞춰 단 한명의 관객을 위해 연주한 <Take the A Train>은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스스로 흥겨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스윙의 정신이 거기에 있다(너무 ‘일본적인’ 일사불란함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연주회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은 당연히 스윙시대의 상징이라 해도 좋을 베니 굿맨의 <Sing Sing Sing>이다. 이건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다. 다만 그 감동의 크기는 예상하기 어렵다. 카운트 베이시 악단처럼 원초적이고 화끈한 스윙의 리듬은 없지만, 각 솔로 파트를 독립시켜 악단의 최상의 기량을 뽑아내는 감각이 있다(그래서 스윙 소녀들의 개성이 두루 발현될 수 있다). 맥주광고로도, 숱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도 쓰여 귀에 유독 익은 멜로디다. 듀크 엘링턴으로 가기 위해 베니 굿맨을 우회로로 택할 수도 있다(물론 찰리 크리스천과 함께한 진지한 작업도 있지만). 스윙 소녀들은 우리가 재즈의 정문이 높게 느껴질 때, 친숙하게 타고 넘을 수 있는 담장으로 인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대를 앞서간 자유정신

1940∼50년대 중기 밥의 시대 -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버드>

“파커는 최근 10년간 레코드를 만든 거의 모든 재즈 연주자를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할 수 있을 것이다.” - 레니 트리스타노

알토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그의 별명이 ‘버드’다)의 삶을 다룬 <버드>는 지켜보기에 안타깝고 슬프고 그래서 마음에 남는 영화다. 우리는 마치 버드의 아내 챈처럼 그를 낯익은 선율과 리듬 안에 붙잡아두고 싶지만 그는 마약과 술로 망명을 떠난다. 버드의 선율 또한 낯익은 ‘스윙’을 떠나 자유로운 밥의 선율로 월경한다. 그 위태롭고 고독한 운명은 ‘밥’(bop)의 운명을 닮았다. 스윙처럼 쉽지 않고, 까다로우며,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나머지 대중으로부터 환대받지 못한 ‘밥’의 운명. <버드>(1988)에서 밥 시대를 선도한 트럼펫 주자이자 지지자이며 친구인 디지 길레스피는 찰리 파커에게 “바는 열었는데 예매는 꽝이야. 아직 관객이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말한다. 미국 서부의 라디오들이 청소년에게 해롭다는 이유로 밥 연주를 금지시켰다는 소식과 함께. 찰리 역을 맡은 포레스트 휘태커가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종이봉투에 담긴 술을 마시며 힘겹게 연주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찰리 파커는 시대를 앞선 자유정신과 방탕으로 고통받았다.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찰리 파커는 더 멀리 날아올랐다.

오랫동안 마약과 술에 절어 살았지만 찰리 파커는 “테이프로 칭칭 감고 풀로 여기저기 붙인 아주 낡은 (밥 알토) 색소폰” 하나만으로 자신의 위대한 경쟁자들을 감동시킨 천재였다. 그리고 ‘여전히 관객이 도착하지 않는’ 불운한 선지자였다. 그는 모든 종류의 음악으로부터 찰리 파커다운 음을 뽑아낸 블렌딩 마스터였다. 레스터 영으로부터 우아하고 느리면서도 깊이있는 솔로를, 오페라 <카르멘>과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로부터 클래식의 느낌을, 블루스로부터 즉흥적인 선율을 이끌어냈다. 재즈의 역사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것이었지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재즈의 자유로움과 독창성은 숱한 전통을 자기만의 것으로 뽑아낸 찰리 파커의 것이었다.

그렇다고 버드가 이해받지 못한 천재의 음악만 들려주는 건 아니다. 버드에게도 달착지근한 선율은 있다. <Bird and Diz> 앨범에서 버드와 디지 길레스피는 그들 못지않게 개성적인 델로니우스 몽크의 자유로운 피아노 선율을 타고 <My Melancholy Baby>를 연주한다. 선율을 풍요롭고 유장하게 이끄는 버드의 숨결은 어떤 색소폰 주자도 주지 못한 아름다움을 안긴다. 그가 영화에서 싸구려 바에서 달착지근한 현악 오케스트라와 <Laura>를 연주할 때, 결혼식 밴드를 전전하며 푼돈을 벌 때조차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Relaxin’ With Lee>에서 오페라 <카르멘> 선율을 살짝 인용하고는 시치미 뚝 떼고 예기치 못한 밥 선율 속으로 디지와 함께 뛰어드는 대목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마찬가지 이유라면, <At Storyville> 앨범에서 거침없이 비상하는 버드의 선율에서 자유의 냄새를 맡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미국의 보수적인 공기가 버드의 비상을 이해하지 못한 탓에 여전히 버드의 음악은 참신하고 새롭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찰리 파커의 밥 선율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찰리 파커의 복잡한 내면을 탐사한다. 디지 길레스피에게 가불하고도 월급을 달라고 떼를 쓰는가 하면, 약속된 연주를 펑크내기 일쑤였고, 수시로 병원을 들락날락하면서도 마약과 술과 여자를 끊지 못한 불규칙적인 삶의 리듬과 그의 재즈의 리듬을 조응시킨다. 그리고 평생 마약값을 대느라 쩔쩔맸던 천재의 우울 속에 갇혀 있던 그의 찬란한 선율을 관객에게 되돌려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섬세함과 품위를 겸비한 지적인 재즈

1950∼60년대 쿨의 시대 - 앤서니 밍겔라의 <리플리>

“자기 생존의 특질에, 불만에, 그리고 자기 오르가슴의 기쁨, 음탕, 염증, 절규, 절망 등의 무한한 변주에 음성을 부여한 것. 재즈는 오르가슴이다.” - 노먼 메일러

부르디외는 음악적 취향이야말로 가장 첨예한 계급적 표지를 드러내는 상징자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일개 호텔 벨보이인 리플리가 디키의 옷을 빌린 뒤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고 지중해의 하늘 끝까지 날아오를 수 있는 비결은? 바로 바흐의 <이탈리안 협주곡>을 칠 수 있는 손가락이다. 그리고 디키의 아버지가 흘린 ‘재즈광 디키’라는 단서를 신분상승의 힌트로 알아들을 수 있는 재치다. 쳇 베이커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던 리플리가 <My Funny Valentine>을 부른 가수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되고, 장차 따라 부를 수 있게까지 되면서(그는 찰리 파커의 음악을 구분할 줄 알게 되면서 혼자만의 재즈 수업을 끝낸다. 재즈 수업은 디키를 만나기 위한 신분상승의 사다리다), 신분 위조의 게임이 가능해진다.

디키의 아버지는 일면식도 없는 리플리의 피아노 솜씨 하나만을 보고서, 이탈리아에 있는 천방지축 아들 디키를 잡아오라고 명을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리플리의 쳇 베이커를 흉내낸 목소리엔 나르시시즘과 질투와 불안이 엇박자와 당김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나른하고 감각적이며 도회적인 선율은 리플리의 디키에 대한 선망을 음표로 바꿔놓은 것 같다. <리플리>(1999)에 나오는 쿨 재즈는, 베트남전과 쿠바사태라는 폭풍우를 맞기 직전의 1950년대 미국 서해안의 맑디 맑은 하늘을 닮았다. 디키의 아버지는 돈은 있을지 모르지만, 곧 푸른 하늘을 뒤덮을 폭풍우는 짐작도 하지 못한다.

이른바 쿨이라고 불리는 가볍고 산뜻한 재즈는 밥처럼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는 대신 초연하면서도 지적인 재즈였다. 찰리 파커의 영향권에서 떨어져 나온 마일스 데이비스로부터 쿨 재즈가 비롯되었다. 전쟁의 참화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클래식 작곡가의 영향, 흑인이 아닌 중산층 백인의 감수성이 그 시대 ‘쿨’한 문화와 맞물려 돌아가면서 시대는 밥의 격정 대신 섬세하고 품위있는 쿨 재즈를 자신의 배경음악으로 택했다. 쿨 재즈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쳇 베이커는 마치 제임스 딘처럼 소비되었다. 쿨 재즈를 소비하고자 하는 수많은 모던한 ‘리플리들’이 그를 환대했다. 1954년 캘리포니아에서 녹음한 <Chet Baker Sings>엔 언제라도 부서질 듯한 연약하고 중성적이며 탐닉적인 쳇 베이커의 목소리가 있다.

<리플리>는 이런 쿨 재즈로 자신을 미학적으로 포장하는 디키의 욕망을 전시하며, 디키의 욕망을 욕망하는 리플리의 곁눈질도 함께 보여준다. 술집에서 리플리가 쳇 베이커를 흉내내며 <My Funny Valentine>을 부르는 장면은, 재즈가 블루스와 아프리카 음악전통과 리듬 앤드 블루스의 혼합을 넘어서서 중산층적 취향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음을 보여준다. 흔히 재즈에 대한 취향을 자랑할 때 그것이 쳇 베이커나 스탄 게츠의 말쑥한 웨스트코스트적 백인 재즈에 국한되는 건 리플리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여피나 보보스족)이기 때문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다른 재즈사적인 걸작을 제쳐놓고, 아름다운 소품에 가까운 <Blue Moods> 앨범의 <Nature Boy>를 디키의 목욕장면에 틀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옷을 벗은 디키가 욕조에서 섬세하게 물방울을 떨어뜨리며 길고 게으른 손가락으로 체스를 움직일 때, 리플리는 한없이 부러운 표정을 짓고 디키의 벗은 몸을 핥듯이 바라보며 ‘욕조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때 나른한 서정과 권태롭기까지 한 슬픔이, 마일스 데이비스의 메마르면서도 서정적인 트럼펫 선율로 흐른다. 디키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엉덩이에 나르시시즘을 느끼면서 동시에 리플리의 선망을 알아차린다. 디키의 엉덩이를 바라보는 리플리의 눈동자엔 ‘쿨’을 소유하고자 하는 선망이 넘실댄다. 감각을 미세하게 건드리는 이런 순간을 쿨 재즈만큼 폼나게 리듬으로 만들 수 있는 음악이 또 있을까.

출처;씨네21글: 이종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스타일의 대가 마일스 데이비스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지난 편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마일스는 모던 재즈사에 길이 남을 스타일의 대가라 할만합니다. 쿨을 시작으로 하드밥, 모달, 그리고 재즈 퓨전에 이르는 재즈 역사의 방대한 지형도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창조해 낸 업적이었습니다.

마일스는 동시대 다른 트럼펫 주자들과 비교할 때 뛰어난 연주력과 작곡실력을 가지진 않았지만 그의 업적은 일반적인 연주인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10년을 주기로 재즈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인물은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 말고는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스타일의 대가가 이룬 업적은 모두 그의 힘으로 된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분명 마일스는 이런 스타일에 대한 주요 컨셉을 생각해 낸 장본인이었지만 완성된 스타일이 제시되기까진 수많은 걸출한 재즈 뮤지션들이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일스는 어떤 연주의 영감을 떠오르면 이런 그의 컨셉을 제대로 구현해 줄 연주자를 찾아 나섰던 겁니다.

마일스는 퀸텟, 마일스 데이비스 노넷, 마일스 데이비스 재즈 퓨전 밴드는 마일스가 내세운 연주 스타일을 구현해내는 주체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마일스 데이비스 사단'이런라고까지 불리는 재즈계의 스타 군단을 거느리게 됩니다. 오늘은 스타일의 대가 마일스 데이비스가 일궈낸 또 하나의 업적, '마일스 데이비스 사단'에 대해 알아봅니다.

1. '버스 오브 쿨'의 또 다른 주역 길 에반스(Gil Evans)

주지하시다시피 마일스의 '버스 오브 쿨'(1949)는 재즈의 뉴웨이브 '비밥'의 대한 마일스의 대응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쿨'은 백인적인 감수성으로 흑인 즉흥 연주 비밥을 해석하는 마일스의 의지이자 연주 스타일이었던 셈입니다. 클래식적 사고와 악보에 근거한 연주의 형식미에 일가견있던 마일스는 비밥에서 한발짝 나간 '쿨'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연주를 원하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선 악보에 근거한 작곡과 편곡은 필수적인 사항이었습니다.

이를 가능하게하기 위해선 클래식 대위법에 능통한 인재가 필요했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편곡자 길 에반스는 마일스의 이런 의도를 실현화 시킬 수 있게 해준 절대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마일스의 처녀작 '버스 오브 쿨'의 실현 주체는 그가 조직한 9인조 노넷이었고 그들이 연주한 곡들은 모두 길 에반스의 손과 감성에 의해 '세련된 편곡'이란 방법으로 창조된 것입니다.

길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찰리 파커 퀸텟에 재적하던 시절 작곡한 '도나 리'(1947)의 악보를 얻기 위해 마일스를 찾아갑니다. 이것이 둘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었는데 마일스는 그 댓가로 역시 길이 작곡한 악보 하나를 요구합니다. 이를 계기로 둘의 음악적 교분은 자연스레 이어졌고 마일스는 길이 자신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을거란 기대를 갖게 됩니다. 얼마후 길은 마일스에게 바리톤 색소폰주자 제리 멀리건을 소개해줬고 셋은 길의 자취방에 모여 '버스 오브 쿨'에 대한 구상을 해 나갑니다.

'쿨'이란 연주 컨셉은 마일스가 생각해 낸거지만 그것을 연주를 통해 실현할 수 있게 뼈대와 살, 그리고 옷을 맞춘 것은 길 에반스의 몫이었습니다. 마일스는 길을 평하길 '자신에게 유일하게 평등한 백인'이었다며 그의 인품과 재능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길 에반스는 쿨의 탄생에 있어서 마일스에게 바늘과 실처럼 땔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둘의 만남은 마일스 데이비스가 메이저 레이블인 콜럼비아 레코드에 진출하면서 다시 이어집니다. 마일스와 길은 9인조 노넷의 경험을 다시살려 19인조 재즈 오케스트라를 결성해 이젠 쿨을 넘어서 좀더 다양한 스타일의 재즈를 오케스트라로 재현하는 실험을 시도합니다. 그 결과 나온 '마일스 어헤드'(1957) ,'포기 앤 베스'(1958), '스케치스 오브 스페인'(1960)은 재즈와 클래식 오케스트라의 접목이라는 미증유의 명작으로 기억됩니다. 바야흐로 재즈를 클래식에 버금가는 연주 예술로 승격시켰다는 평과 함께 말입니다.

2.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이 발굴한 숨은 거장- 존 콜트레인과 빌 에반스

1955년, 헤로인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난 마일스는 자신이 들고 나온 '하드밥'에 걸 맞는 밴드를 조직하기위해 나섰습니다.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은 이렇게 조직되게 됩니다. 마일스의 크럼펫과 필리 조 존슨의 드럼, 폴 체임버스의 베이스, 레드 갈런드의 피아노로 라인업을 확정지은 상태에서 자신의 연주에 응수해 줄 테너 색소폰 연주자를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마일스는 1954년작 '백스 그루브'에서 함께했던 소니 롤린스를 노렸습니다. 끈질긴 회유와 설득을 통해 마일스는 자신의 팀에 소니를 가입시키려고 했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이미 소니 롤린스는 당대 최고의 트럼펫 주자였던 클리포드 브라운 밴드에 합류하기로 돼 있었기 때문에 마일스와는 연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다 소니는 이미 마일스 데이비스를 겪어 본 인물이었고 이미 물망에 오른 자신이 마일스 밑에 들어가 일한다는 것이 그리 탐탁치 않았던 것도 마일스 데이비스의 요구를 거절한 한 요인이었습니다.

수소문끝에 마일스는 자신의 연주 초년병시절 뇌리를 스쳐지나간 한 테너 연주인을 기억했으니 바로 무명의 존 콜트레인이었습니다. 당시 존 콜트레인은 헤로인의 빠져있어 이렇다할 활동 없이 보내고 있었습니다. 마일스의 말을 빌리자면, '확 날려주는' 테너 연주를 원하던 그에게 등장한 존 콜트레인은 자신의 퀸텟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1955년부터 57년까지 존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 몸담으며 모던 재즈의 걸작 '라운드 미드나이트'를 녹음하고 뉴욕에 카페 보헤미언을 근거지로 활동합니다. 마일스의 침착하고도 우울한 톤은 존 콜트레인의 활화산같이 뿜어내는 테너 연주에 대비되며 연주의 정중동을 순간을 만끽게 했습니다.

그러나 존은 여전히 헤로인 중독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마일스와의 불화로 얼마후 팀을 떠납니다. 그 사이 퀸텟은 캐논볼 에덜리라는 알토 주자를 받아들이며 섹스텟으로 확장되고 연주도 코드 중심이 아닌 스케일 중심의 즉흥연주를 기반으로 하는 '모달 주법'으로 진화해가고 있었습니다. 바야흐로 '카인드 오브 블루'라는 모던 재즈 역사의 큰 방점을 찍기 위해 마일스는 창조의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변화되는 코드에 연주를 맡기는 게 아닌 그때그때 떠오르는 영감으로 스케일(음계)에 즉흥연주를 맡기는 모달 주법은 말처럼 쉬운 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연주인은 정해진 코드 내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음계를 가져와 듣기 좋은 선율을 그려가야 하는 겁니다. 기껏해야 블루스 스케일에서 맴돌던 하드 밥 연주의 제한성에서 벗어나 마일스는 이런 자신의 의도를 받쳐줄 풍성한 선율 연주에 능한 피아노 주자의 도움이 필요했고 역시 수소문끝에 클래식에 정통해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를 찾아내게 됩니다. 당시 리버사이드 레이블을 통해 활동하던 빌 에반스는 라벨과 스트라빈스키, 바르톡에 정통한 보기 드문 재즈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클래식으로 탄탄한 음악 이론을 겸비한 빌 에반스는 마일스가 원하는 모달 주법에 가장 적격이라 여겨진 연주인이었습니다.

1959년 3월 '카인드 오브 블루' 녹음을 위해 마일스는 한동안 소원했던 존 콜트레인을 다시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일스의 숨은 카드 빌 에반스를 녹음을 위해 참여시켜습니다. 단 한번의 재녹음 없이 진행된 '카인드 오브 블루' 세션은 앨범 전면에 투명하고도 거침없이 선율의 극치를 창조하는 빌 에반스의 공력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특히 Flamenco Skethches 같은 곡)

빌 에반스는 마일스에게 '필요이상 연주하지 말라'는 주문을 했고 자신의 피아노 솔로에서도 리듬 파트를 제외한 다른 악기 연주를 동원하지 않고 빈 공간으로 남겨뒀습니다. 물 흘허가듯 자연스런 즉흥 연주로 가득한 '카인드 오브 블루'의 모달 주법은 마일스는 물론이고 조연으로 참여한 빌 에반스 자신에게도 값진 연주 경력으로 남게 됩니다.


3.젊은 피들을 수혈받은 마일스-마일스 데이비스 2기 퀸텟

프리재즈,아방가르드가 어느덧 재즈의 중심에 자리한 60년대 중반, 마일스는 다시 변화의 몸부림에 들어갔습니다. 기존의 퀸텟 형식을 유지하면서 좀더 새로운 시도가 느껴지는 퀸텟을 구상하던 중 마일스는 개별 연주인의 즉흥성에 한층 무게를 실은 퀸텟을 구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연주력이 뒷받침되는 실력있는 신예 뮤지션들이 필요했습니다.

여러 수소문과 오디션을 통해 마일스는 2기 퀸텟을 꾸렸습니다. 바로 아트 블레이키 재즈 메신저에서 활동한 테너 색소폰주자 웨인 쇼터를 중심으로 피아니스트 허비 행콕, 베이스의 론 카터, 그리고 17살이란 어린 나이에 들어온 드러머 토니 윌리엄스입니다. 1965년부터 68년까지 6장의 앨범을 발표한 마일스 데이비스 2기 퀸텟은 리더의 솔로에 바탕을 둔 제한적인 즉흥성에서 벗어나 좀더 자발적인 즉흥성으로 연주를 이끌어 가는 총체적 즉흥성을 연주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여기에 기존 스탠더드보다는 멤버들의 아이디어에 기반한 창작곡 중심의 연주를 통해 좀더 펄펄 살아있고 생동감있는 연주를 펼칩니다.

마일스는 멤버들을 마치 자신의 자식마냥 멤버들을 다루고 훈련시켰습니다. 멤버들 모두 재즈 초년병들이었지만 마일스와의 연주 경험은 멤버들 모두 탁월한 솔리스트로서 향후 재즈계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각각의 멤버들의 업적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이름만 들어도 현 재즈계의 주역들임엔 틀림없습니다.


4.마일스 사단의 완성-비치스 블루와 그 주역들

60년대 말 유럽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을 바탕으로 재즈가 자리를 옮겨가며 차츰 활기를 잃어간 재즈와 달리 록은 젊은이들의 감성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비틀즈를 위시해 지미 헨드릭스와 크림이 들고 나온 강성 록은 반전평화운동 흐름과 맞물리며 그 열기는 더해갔습니다. 마일스는 이런 상황을 주시하면서 재즈 역시 록의 기운을 이식받아 환골탈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재즈를 중심으로 록의 기운을 수혈받자는 것이 마일스의 의도였습니다. 그렇게 할 때 재즈도 젊은이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마일스는 생각했습니다.

1968년 마일스는 지미 헨드릭스를 만났습니다. 일렉트릭 기타의 귀재와 한 스타일의 대가의 만남은 이후 지속되진 않았지만 이를 통해 마일스는 재즈에 전기증폭과 비트감을 입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일스는 이를 위해 새로운 개념의 밴드를 조직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의 2기 퀸텟을 과감히 해산시켰습니다. 그리고 어쿠스팃 피아노 대신 일렉트릭 키보드 주자 조 자위눌과 칙 코리아를, 드러머엔 잭 드자넷과 레니 화이트를, 어쿠스틱/일렉트릭 베이스엔 데이브 홀란드를, 록의 상징과도 같은 기타리스트엔 존 맥클러플린을 영입시켰습니다.

록의 미디움을 다각도로 표현한 1969년작 '인어 사일런트 웨이'는 새로 영입된 건반주자 조 자위눌의 곡으로 채워진 앨범이었습니다. 펑키한 리듬연주와 풍부한 색채감의 선율연주에 능통하고 'Mercy Mercy Mercy'라는 히트 연주곡을 만든 조 자비눌은 마일스가 들고나온 재즈 퓨전 물결에 빼놓을 수 없는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마일스는 드럼의 비트감과 펑키한 리듬이 더 중요할 거란 생각으로 후속작이자 재즈계의 최고 문제작 '비치스 블루'를 이듬해 발표합니다. 이 앨범에서도 조 자위눌은 'Pharao's dance'를 작곡했습니다.

마일스의 재즈 록 퓨전은 1970년을 기점으로 일반 록 페스티벌 무대에도 진출합니다. 비치스 블루에 동원된 걸출한 신예 연주인들을 포함해 이국적 리듬을 선사한 퍼커션주자 에알토 모레이라도 추가됐습니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도 1970년 한해 마일스 밴드를 거쳐갑니다. 앨범 '비치스 블루'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마일스의 자식들은 존 맥클러플린의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 칙 코리아의 리턴 투 포에버, 조 자위눌과 웨인 쇼더의 웨더 리포트라는 인기 재즈 록 퓨전 밴드로 이어지며 70년대 재즈계를 마일스 사단의 시대로 장식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내려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러고보니 수많은 재즈 대가들이 마일스 데이비스를 통해 데뷔했고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존 콜트레인을 위시해,빌 에반스, 허비 행콕, 거기에 키스 자렛까지 마일스 데이비스를 거쳐갔으니 재즈의 역사의 50%는 마일스 데이비스를 통해 창조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겁니다. 1940년대 미약하나마 자신의 연주 개념을 실현하려고 했던 마일스는 70년대 이르러 바야흐로 한 재즈 사단의 수장으로 군립하게 됩니다. 이수만 사단의 가요계, 퀸시 존스 사단의 팝계라면 재즈쪽에선 마일스 데이비스입니다. 그런데 마일스 데이비스 사단은 앞에 언급된 사단과 크게 다른점이 하나있습니다.

스타일의 대가 마일스의 업적은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결국 그런 마일스의 생각에 동조하고 청춘을 바쳤던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건 마일스와 함께 했던 뮤지션들은 이후 100% 성공가도를 달렸다는 겁니다. 그것도 자기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인정받는 뮤지션으로 말입니다. 모든 음악계에서 한 사단의 수장이 수많은 뮤지션들을 키웠지만 이후 그 사단을 통해 데뷔한 뮤지션이 지속적으로 창작력을 발휘하면서 사단의 수장의 업적을 빛나게 하는 사례는 마일스외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일스 데이비스 사단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요. 그건 마일스가 현 시대를 읽어내는 지혜와 주변 아티스트의 진면목을 집어내는 뛰어난 프로듀싱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 두가지는 결코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음악으로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겁니다. 쿨에서부터 퓨전까지 마일스는 시대가 원하는 소리와 리듬이 무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나온 컨셉을 실현할 신예 뮤지션들의 감각을 찾아 나선겁니다.

지금까지 글을 통해 얘기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왜 마일스 데이비스가 연주인이자 스타일리스트를 뛰어 넘는 시대의 본보기가 된 사단의 수장으로 기억될 수 있는 지? 이 글이 그 질문에 대한 조그마한 답변이 됐으리라 생각됩니다.

다음편에 계속...



  2006/01 정우식 (jasbsoy@hanmail.ne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