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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 미국 인디언 멸망사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 나무심는사람(이레)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아메리카의 원(래 거)주민인 인디언들이 유럽계 백인 이주민들과 토지를 두고 벌인 전쟁사이자 인디언 멸망사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절박한 상황이 으레 그러하듯이 이 책에 두드러지는 인물들은 주로 인디언 전투추장들이고 백인들의 편에서도 군인, 정치가, 농장주 등이다. 전쟁은 힘의 논리대로 짜여진 질서를 공고화하는 기능을 한다. 이 책에서 다른 인종의 목소리는 물론이고 인디언이든 백인이든 여성과 아이들의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백인과 인디언에게 각각 해당되는 것 같았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을 전도시킨다. 백인 이주민들은 오로지 토지와 금광에 대한 이익을 위해 움직이며 법, 정치, 언론, 종교, 사상 등 소위 우월한 백인의 문명과 제도가 한갓 이익추구의 시녀로 전락한다. 이주민들이 보기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익을 뽑아내려면 인디언들은 반드시 제거해야 할 장애물일 뿐이었다.
백인들이 온갖 제도와 군대를 동원하여 원주민들을 추방하고 학살하기 시작했을 때 이들은 물질적 이익을 인간의 권리 보다 상위에 두었다는 점에서 문명에서 야만으로 건너간 셈이다. 인디언의 친구였던 백인들이 있었지만 지배적인 흐름을 거스르기에는 너무나 소수였다. 다수의 일반 이주민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인종학살의 정책을 시행하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다수의 인디언 주민들의 삶의 질을 위해 협상하거나 투쟁했던 아메리카 인디언의 민주주의에 비해 도덕적으로도 열등하다.
이 책의 각 장은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일련의 연대기적 역사로 시작하여 그 연도에 해당하는 인디언들의 역사로 본문을 채운다. 교과서적 역사가 얼마나 많은 진실을 숨기고 있는지 알려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예를 들면, 연대기에는 미국 연방 정부가 소위 '만민법'이라는 것을 통과시킨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만 우리는 그 '만민'의 범주에 인디언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또 하나의 미덕은 인디언들의 사진과 노래를 싣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사진에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점 굳어져 가는 전투추장들의 표정을 확인하며 불길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노래에서 때로는 순박한 기쁨의 탄성을, 때로는 희망이 종료된 시대를 만난 인간이 내지르는 절망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