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는 이 여행을 도피라고 표현했지만, 그의 글에서는 무기력이나 절망보다는 오히려 생기와 여유,
그리고 삶을 사랑하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고, 즐거움과 행복이 모두 다 묻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는 자신의 고단함을 감추지 않고 담담하게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찾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여행은 현실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더 깊이 이해하고 껴안기 위해서 선택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불안한 감정조차 시적인 언어로 그려낸 그의 문장은 마치 고요한 숲길을 걷는 듯한 감정을 전달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위로하고 달래주는 것이 아니라, 힘들다는 걸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고통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이 책에서 삶의 모든 순간을 진솔하게 마주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때로는 불안한 마음조차도 그대로 꺼내놓습니다. 책 속에는 종교적인 색채가 자주 나타나는데요.
단어들과 문장 속에는 그의 고뇌와 경건함이 담겨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아버지가 선교사였고,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이 믿는 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의 종교적인 성찰은 삶 전체에 걸친 과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종교적 통찰이 깔려 있긴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신앙을 강요하거나 이질적인 느낌은 아닙니다.
그저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의 삶과 신념에 따라서 다양한 울림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불교 친화적인 무교인인 저 역시도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요.
다만, 헤르만 헤세와 종교적인 이념이 비슷한 사람들이 읽으면 무언가 느끼는 것이 다르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들기는 했습니다.
이 책은 여행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만이 담긴 책이 아니라, 여행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헤르만 헤세의 성찰의 기록입니다.
작은 풍경 하나에도 멈춰 서서 의미를 찾고, 짧은 만남과 사소한 인연 속에서도 삶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헤르만 헤세가 이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로는 철학적이고, 때로는 시적이며, 때로는 지극히 인간적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그의 글을 따라 걸으며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물론 헤르만 헤세가 바라봤던 아름답고 경의로운 장소들에 대한 상상도 하면서 말이죠.
책을 덮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헤르만 헤세는 삶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여행과 산책을 떠나는 기분으로 조용히 떠났을 것 같다고요.
그리고 진짜 천국이 있다면,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그는 여전히 그곳에서 걷고 있고, 무언가를 바라보며,
그곳에서 마주한 모든 것들을 여전히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가 표한하고 말하는 천국은 어떤 모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