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길은 너무 피곤해서 버스에 앉자마자 멍을 때리며 창 밖을 응시했다.

거의 종점 가까이에서 타므로 항상 앉아 오는데 몇 정거장이 지나 

어떤 남자분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귀에 거슬리는 큰 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엄청 큰 숨소리군!' 잠이 들락말락하며 생각했다.

듣다보니 호기심이 생기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숨 간격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

내가 한 번 쉴 때 옆 남자분은 3번을 쉬었다.

'내가 복식호흡을 하긴 하지만 이렇게 차이가 나나?, 내가 이상한건가? 이 남자가 이상한건가?'

라는 온갖 생각이 떠오르며 피곤으로 지친 머리를 휘저었다.

이윽고 내릴 곳이 되어 발이 보도에 닿자마자 언제 이런 생각을 했었냐는 듯이 

'건널목으로 건널까?, 지하도로 건널까?'라는 사소한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요즘은 버스 안에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

책을 보고 있으니 항상 시선이 밑으로만 향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까닭에 사람의 하체만 기억하게 될 뿐이다.

정열적인 빨간 바지에 빨간 반짝이 운동화로 기억되는 노년의 부인과

깊은 바다 색깔의 바지에 꽃자주색 페디큐어를 바르신 중년의 부인이 옆자리에 앉았다.

중년의 부인은 아들이 둘인데 32살, 29살이라 결혼할 때가 되었다며

딸이 없으니 딸 같은 며느리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노년의 부인이 "딸 같은 며느리는 있을 수 없어요."라며 그런 생각을 버리라고 한다.

그 뒤부터는 책은 읽는 시늉이고 부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는데,

이럴 때는 '책을 백날 읽으면 뭐하나? 삶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진짜 아닌가?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직접 경험보다는 간접 경험이 많으니 과연 쓸모가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공연히 우울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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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11-16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마실와서 둘러보는데
윗 글도 좋았지만 특히 이 페이퍼 참 좋으네요~ ^^

자하(紫霞) 2014-11-17 07: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겨울 잘 보내고 계신지요? 가을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너무 추워졌어요. ㅠㅠ
 

요즘 도서관을 가끔 가고 있다. 책 빌리러...

집에서 너무 멀어서 또...작년에 도서관에 책 반납하고 오다가 다쳐서 거리를 두고 살고 있었는데

좋지 않은 기억이라도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인지라 그리고 보고 싶은 책을 다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라 다시 도서관에 간다.

 

<킨포크>라는 잡지에 꽂혀서 보고 있고,

잡지라고는 하지만 에세이집 같은 느낌이다.

 

 사진이 많고 요리 이야기...

친구와 함께 식사하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워낙 살림살이를 늘이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 여러 명을 초대할 그릇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같이 모여서 먹고 마시면서 노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다들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서 쉽게 오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온다면 하룻밤 자야 할테고 그러면 반려동물도 데려오라고 해야 할테고...그럼 우리집이 난장판이 되겠지...

역시...아직은 안 되겠어! 이런 결론!!

 

 

 

그리고 슥 둘러보니 하얀 새책이 눈에 띄었다. 오홍~

이미 읽은 기억이 있지만 새책이니까

 다시 보고 싶어졌다는 것은

무슨 생각인지?

 

 

 

 

 

 

70여 쪽밖에 되지 않지만 이 책이 내가 읽었던 그 책이었던가 의심스러워서 집에 가져와서

비교해봤다. 개인적으로 펭귄 클래식은 나와 맞지 않는 듯...

<외투>만을 보고 싶다면 문학동네를...

다른 소설도 읽고 싶다면 펭귄 클래식을 권한다.

그나저나 치질환자 같은 안색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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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9-14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친구들 다 가고 설거지할 생각 때문에 '아직은 안되겠어'를 외치고 있습니다. ㅎㅎ

자하(紫霞) 2014-09-28 09:07   좋아요 0 | URL
설거지... 여기서 또 벽에 부딪히는군요! 털썩
 

남동생이 직장때문에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

셋이 이사와 살다가 한 사람, 한 사람씩 서울을 떠난다.

결국에는 나 혼자 남았다.

혼자 살기에는 넓은 집이라 룸메이트를 들이면 어떨까 하며 남동생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누나 성격상 안돼. 그냥 혼자 살아." 이런 대답이 돌아옴.

알고는 있다. 더러운 꼴 못 보고, 시끄러운 꼴 못 보는 걸.

그렇다고 깨끗하게 사는 것 같지도 않지만 기숙사 생활 여파인지

나갈 때도 들어올 때와 똑같이...흔적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룸메이트 대신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들여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물론 나란 인간은 책임감이 강한 인간이니 잘 보살필 것이다.

하지만 본래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강해서 내심 귀찮아할 것이 분명하다.

고로 당분간 혼자 사는 걸로...

살다 살다 외로워지면 룸 메이트를 찾아보기로...

그런 날이 올까 싶지만...

 

  도서관에서 빌려볼까 하다가 도서관 가는 것이 귀찮아서 샀다.

 1인 가구로 살겠다 라는 결심을 할 때 따르는 수많은 고민들이

이 안에 다 있었다.

예전에 지인과 혼자 살면 혹시나 나중에 늙어서 폐지 줍고 다닐까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하며 노후에 대한 불안을 내비쳤는데, 그 분은 아주 간단하게 해결책을 제시해주시긴 했지만...

어쨋든 늘어나는 1인 가구와 그에 따르는 건강 문제, 돈문제,

거주 문제...

독신을 결심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수많은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너무 좋았다.

개인적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 격하게 공감하는데 이 부분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요즘엔 니체에 빠져있다. 비트겐슈타인이 좋아보여 책을 집어들었다가 이건 무슨 소리인가?로 한참을 고민하다 아직 이해할 수준이 아니구나 싶어 나중에 보기로 했다. 니체는 읽을수록 맞는 말이야. 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통장에 돈 들어오는 날만 기다리며 니체 전집에 침을 흘리고 있다. 사고 싶은 책은 많고, 마음 속으로 우선 순위를 정해놓아도 매번 중요치 않은 문제 때문에 중요한 책을 못 사고 다른 책을 사게 된다.

아~가방 안 줘도 되니까 추석맞이 니체 전집 50% 할인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급 피곤해져서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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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mariashriver.com1024 × 767

"빙산은 빙원에서부터 열린 바다로 떠내려오다가 깨져버린 빙하의 부분이오. 빙산이 단단하면, 물 위에 떠 있는 부분과 물 아래에 잠긴 부분 사이의 비율이 1:5 정도 되지. 빙산 가운데가 비어 있으면 비율은 1:2 정도. 물론, 속이 비었을 때가 가장 위험한 경우요. 나는 높이가 40미터에 무게는 5만 톤 정도 나가는 빙산들도 본 적이 있소. 그런 것들이 배의 프로펠러에서 나오는 진동에 뒤집힐 수도 있는거요."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계절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한 변함없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올 여름은 작년 여름과 다르고 과거 어느 여름과도 다르겠지만 더위에는 아이스크림과 추리소설이면 된다.

까만 밤, 작은 스탠드를 켜놓고 누워 책을 펼치면 낮보다 서늘해진 바람에 눈보라가 휘날리는 빙하 위를 걷는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덤으로 귓 가에서 윙윙 거리는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 나오는 눈이 겨울에 내리는 눈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덴마크 출신이라지만 그린란드에 대해서, 얼음에 대해서, 선원 생활을 했다지만 배에 대해서 어떻게 이렇게 잘 아는걸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 국제 도서전에 갔다가 움베르토 에코에 대해서 아는 동생에게 말해줬는데 그 친구가 "세상엔 왜 이렇게 천재가 많은거죠?"라는 말을 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심정이 그랬다. 세상엔 왜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걸까?

한편으로는 스밀라,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할까? 50kg남짓의 가녀린 몸에서 나오는 이 엄청난 의지의 소유자를 어찌 해야할까?

......빙하는 투명해져서 주변의 색깔에 물든다. 이런 빙하는 위험하다. 나는 북극에 살지도 않고 이누이트도 아니지만 올 겨울에 쌓이는 눈은 예전에 내가 알던 눈과 다를 것이고, 내 눈길이 닿는 얼음은 과거에 내가 봤던 그 얼음과 다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사람들은 조금만 더 견디면 언젠간 좋은 날이 올거라고 생각하며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을 버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순간 순간이 모여 하나의 인생이 이루어진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신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인간이 자신에게 닥쳐온 고통을 견디기 위해 자기 최면을 걸면서 한 말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세상 일이라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으니 똑같은 인생이라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겠지 라며 긍정의 향수를 머리 위에 뿌려본다.
 

도종환의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를 읽어보면 가난, 외로움, 좌절, 절망, 방황, 사별, 해직, 투옥, 시련, 고난, 질병... 이게 다 한 사람이 경험한 일이 맞을까 싶을 정도의 삶을 산다. 시인으로서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누렸던 것들을 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그런 삶의 와중에도 그는 도중에 잠시 쉰 적은 있을지 몰라도 오로지 한 길만을 걸어왔다. 그리고 그런 순간순간이 모여 반짝이는 인생을 만들었다.

그는 말한다.
살아 있는 동안 꿈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꿈은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원하던 것을 이루는 일이 아니라 "자기 생애를 밀고 쉼 없이 가는 일"입니다. "텅텅 비어있는 꿈의 적소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입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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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9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7-31 1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혼자 살꺼면 돈이라도 많이 벌던가" 라는 말을 친한 언니에게 들었는데,

긴 말 하기가 귀찮아서 "뭐, 방법을 강구하고 있어요." 라고 대충 대답을 했다.

하지만 방법이랄 건 딱히 없고 그저 적당히 일하고 일한 만큼 돈 받고

나머지 시간엔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일자리를 구할 때 " 많고 많은 일자리 중에 제가 일할 곳 하나 없겠어요." 라며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의 걱정을 불식시켰는데

사실 돈 욕심이 크게 없다면 일할 곳은 어딘가에는 있다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어쨌든 이런 책을 이렇게 뜻밖에 만나게 되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물론 순전히 내가 게을렀기 때문이지만...

몇 년 전에 한겨레 신문 구독하면서 받은 소설책 2권 중 한 권이었던 이 책은 긴긴 세월 책장 한 구석에 존재 여부도 까맣게 잊혀진 채 고이 잠들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책 무더기가 하늘을 향해 각기 다른 양식의 탑을 쌓고

그 위에 살포시 앉은 희미한 먼지에 격한 기침을 하기 수차례...

그만 그동안 유지해왔던 평정심이 요동을 쳐  마.침.내  드.디.어  심사숙고한 끝에

정리하려고 꺼내놨던 책인데...

이런!  읽고 나서 다시 제자리에 정성을 다해 꽂아 놓았다.

한편으로는 이런 훌륭한 소설은 중고샵에 내놓아 다른 사람도 널리 읽을 수 있도록 해야

바람직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한 줄기 바람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요즘 간헐적으로 주기적으로 책들을 주변인들에게 빌려주고 있으니 가지고 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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