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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배꼽, 그리스 - 인간의 탁월함, 그 근원을 찾아서 ㅣ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그리스 여행기이다. 의과대학을 다니던 한 청년은 단골 책방의 서가를 둘러보다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라는 책에 시선이 꽂히고, 단숨에 그 책을 읽어내려간다.이름도 낯선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 그리스 작가의 책은 한 청년의 콩닥거리게 만들었다. 그 이후 20년이라는 시간은 훌쩍 지났고, 지천명의 나이가 되기 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나라 그리스를 속속 들여다보기 위해 그곳으로 떠난다. 이 책은 이십대의 청년이 가슴에 새긴 꿈을 나이 오십을 앞두고 실현한 여행의 기록이다.
그리스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필자의 말대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떠오르는가? 그의 저서 그리스인 조르바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기에 충분히 익숙해진 이름이 아닌가? 혹시 그리스 신화의 수 많은 신들이 떠오르는가? 그리스는 아름다운 신들과 수 많은 신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 요즘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외환위기로 국가 위기에 처한 그리스가 떠오르지는 않는가?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여행의 출발지는 펠로폰네소스로 정했다. 바로 이곳 펠로폰네소스가 그리스 문명의 어머니이자 서구 문명의 자궁이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코린토스, 미케네, 올림피아, 스파르타 외에도 미스트라, 모넴바시아, 글라렌자, 에피다우로스 등 고대 그리스 문명의 씨앗들이 뿌려지고 싹튼 땅이 바로 펠로폰네소스이다. 우리는 흔히 그리스 하면 조건반사처럼 아테네를 떠올리며 동일시한다. 펠로폰네소스에서 싹튼 씨앗이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은 곳이 바로 아테네가 있는 아티카 지역이다. 그런 까닭에 그리스라는 미궁의 출발점은 펠로폰네소스여야 했다.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의 표지에는 '박경철 그리스 기행 1' 이라고 쓰여있다. 이 책은 시리즈이다. 그리스 전체를 횡단하며 발길 닿는 곳에서 시간의 강을 종단하는 이 여행은 펠로폰네소스에서 시작해 아테네가 속한 아티카, 그리스 북부 지역인 테살로니키 그리고 고대 그리스 권역을 아우르는 마그나 그라이키아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며, 각각의 여행은 제1부 펠로폰네소스 편 세 권, 제2부 아티카 편 네 권, 제3부 테살로니키 편 한 권, 제4부 마그나 그라이키아 편 두 권 등 모두 열 권의 책으로 정리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나는 문명과 역사를 다루되 여행기의 형식을 빌려 공간 이동을 이야기에 중심에 놓고자 한다. 즉 시간에 따른 공간 이동이 아니라 공간에 따른 시간 이동을 하는 셈이다. 굳이 공간에 따른 시간 이동을 취하려는 까닭은 연대기적 서술이 지루해서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서술이 공간이 담고 있는 풍부한 이야기를 놓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구체적인 삶의 자취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공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공간은 지금까지 덜 주목받았던 게 사실이다. 실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하물며 수천 년의 역사를 거슬러 문명의 격랑이 파도쳤던 그리스의 경우라면 더더욱 쉽지 않다. 저자는 연대기의 틀을 고수할 경우 왕조나 지배 계급을 중심으로 한 주류의 이야기에 머물 수 있음을 경계한다. 역사에 명멸했던 그 모든 문명이 주류들의 몫이라 잘못 전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명의 배꼽을 찾아 떠나는 여행>
이 책은 다른 여행 가이드, 관광홍보 책자와는 조금 다르다. 여행기이라고는 하지만, 여행에 대한 직접적인 TIP과 가이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를 역사적, 철학적으로 조금 더 들여다 볼 수 있게 만든다. 읽으면서 당장 그리스로 떠나고 싶다며 여행을 꿈꾸기보다는, 문명의 그리스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는,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다소 낯설고 밋밋하기도 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문명의 배꼽, 그리스>는 문학, 철학, 정치,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보기 드문 ‘르네상스적 인간’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특유의 깊은 통찰과 사색의 흔적을 따라 한 여행기이다. 또한, 책에 나오는 해외 자료 등의 방대한 참고문헌에서 저자의 노고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혹시 그리스 여행을 하려 하는가? 그리스의 하늘과 바다가 하나의 쪽빛을 이루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 그것도 좋기야 좋다. 하지만 그 풍경 뿐만 아니라, 문명의 배꼽 그리스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어떠한가?
평생 동안 내가 간직했던 가장 큰 욕망들 가운데 하나는 여행이어서 - 미지의 나라들을 보고 만지며, 미지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지구를 돌면서 새로운 땅과 바다와 사람들을 보고 굶주린 듯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든 사물을 보고, 천천히 오랫동안 시선을 던진 다음에 눈을 감고는, 그 풍요함이 저마다 조용히, 아니면 태풍처럼 내 마음속에서 침전하다가 마침내 오랜 세월을 걸쳐서 고운체로 걸러지게 하고, 모든 기쁨과 슬픔으로부터 본체를 짜내고 싶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 그리스 순례, 영혼의 자서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