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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평점 :
일시품절
오랜만의 별 5개짜리 책이다. 최근 몇개월간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좋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리학이라... 비록 문과는 아니었지만 학생 때 '적당히' 이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교양' 차원에서 심리학과 강의를 두세개 들어주었으며 그러는 동안 심리학이라는것이 내 환상만큼 우아하고 형이상학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뇌 구조를 분석하고 동물 실험을 실시하는 생물학쪽에 가깝다는 것을 슬쩍 눈치채고 관심이 점점 사그러들었었다. 이 책은 오랜만에 나의 심리학에 대한 관심에 다시 불을 붙여주었다고나 할까.
심리학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을 '인간, 특히 심리학자들에 대한 관찰'을 다룬 책이라고 하고 싶다. 이 책에서는 부제대로 20세기에 실시되었던 심리 실험 10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10가지 실험 자체로도 대단히 흥미진진한 내용이다. 멀쩡한 사람이 정신병원에 들어간다든가, 가짜 기억을 이식한다든가..제목만 봐도 얼마나 결과가 궁금한가 말이다. 하지만 실험의 내용이나 결과야 객관적인 사실이므로 다른 심리학책을 찾아봐도 되고, 그것도 귀찮다면 인터넷에서 몇몇 키워드를 입력한 후 검색하면 어렵지 않게 대략적인 내용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이 이렇게 마음에 든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점은 저자가 실험을 실시한 심리학자 (혹은 이미 사망한 경우 가족이나 제자, 또는 실험 대상)들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말버릇, 자신의 주장을 역설하는 모습, 개인적인 상황을 관찰하고, 의견을 듣고난 후 왜 그들이 그런 특정한 실험을 하게 되었는지를 저자 나름대로 납득하려고 한 점이다. 즉 실험의 결과보다는 그러한 실험에 이르게 된 '과정과 배경'에 보다 주목하고 있다. 심리학자들도 사람일진대 사생활이 있고, 어린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개개인의 성격상 특징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점을 '이해한' 후에 도대체 그들이 각각의 실험에서 '진정으로 무엇을 추구했는가' 하는 것을 저자 스스로 계속 추적해나간 발자취라고 하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에피소드는 해리 할로우의 Monkey Love 편이었다. '사랑'의 근본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탐구했던 심리학자.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모순되게도 원숭이들에게 '잔혹한' 행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의 운명이 너무 가슴아팠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닿았던 구절도 바로 이 에피소드에 있었다. What is love? Then, Harlow saw. The best way to understand the heart, was to break it.
이 책의 저자는 꽤나 매력적이다. 나는 이 저자를 '열혈 심리학자이자 저돌적인 아줌마'라 부르겠다, 그녀는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으며 독자들을 어느 한쪽으로 유도하지도 않는다. 스키너의 실험을 스스로 입증해보기 위해 남편을 설득해 밤에 우는 어린 딸을 내팽개치고, 멀쩡한 정신으로 정신병원에 상담을 가는가 하면, 약물 중독을 실험해보기 위해 스스로 모르모트가 되어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10가지의 실험과 그 배후에 있는 심리학자들의 '심리'를 이해하려는 그녀의 열정은 진실하고, 그래서 이 책에서는 사람냄새가 난다.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주위의 모든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인간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될테니까.
사족으로 한가지 궁금한 것은, 번역서와 원본의 순서가 다르다. 예를 들면 로젠한의 정신병원 실험은 원본에서는 3장인 반면 번역서에서는 6장이다. 목차가 바뀐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