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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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은 온전히 나의 것이지만. 그렇다고해서 그 생이 무한한 것이 아님을 <자기 앞의 생>을 읽고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에밀 아자르 소설의 제목대로라 생은 나와 함께 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 자기 앞에 잠시 머무르다가 떠나가버리는 것의 정체가 바로 생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모의 선언은 의미심장하다.


116.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2.


어린 화자 모모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자기 앞의 생>의 주인공은 어린 모모와 나이 많은 여자 로자다. 이 두 사람은 누가봐도 완벽한 남이다. 인종도 유태인과 아랍인이라는 점에서 다르고, 나이 차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궁핍한 생의 인연으로 만나서 엄마와 아들같은 깊은 관계로 이어진다. <자기 앞의 생>은 사랑에 관한 소설인데. 이 사랑은 가족애를 의미한다. 이것이 두 사람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게끔 한다.  


모모가 잠시 감탄했던 거꾸로 가는 세계에 대한 동경은 영화의 필름을 뒤로 돌렸을 때 나타났었다. 그것은 비현실이었다. 114.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걸음걸이의 속도와 상관없이 생은 끊임없이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 했다.  


253. 나는 달려가서 그녀를 껴안았다. 정신이 나갔을 때 똥오줌을 쌌는지 고약한 냄새가 났다.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혹시 내가 자기 때문에 구역질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257. 네가 내 곁을 떠날까봐 겁이 났단다, 모모야. 그래서 네 나이를 좀 줄였어. 너는 언제나 내 귀여운 아이였단다. 다른 애는 그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네 나이를 세어보니 겁이 났어. 네가 너무 빨리 큰 애가 되는 게 싫었던 거야. 미안하구나.


306. 나는 그녀의 몸에 향수를 몽땅 뿌려주고, 자연의 법칙을 감추기 위해 온갖 색깔로 그녀의 얼굴을 칠하고 또 칠했다. 그러나 그녀의 몸뚱이는 어느 곳 하나 성한 데 없이 썩어갔다. 자연의 법칙에는 동정심이란 게 없으니까.


생이 두 사람을 갈라놓으려 하는 순간마다 로자. 그리고 모모. 두 사람은 격렬히 저항한다. 특히, 모모가 로자를 떠나보내기 전에 보여주는 불굴의 의지를 통해 떠오르는 해의 강인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불행한 결말에 직면했으면서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모모의 행동에서 무한한 사랑. 더 나아가서 작가의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대한 인간애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로 흘러. 앞으로 다가올 모모의 생에 충만한 안녕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307.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중략)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아직도 그녀가 보고 싶다. (중략) 사랑해야 한다.


라는 소설의 지막 문장은 휴머니즘을 완성하게 하는 사랑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한다.


3.


<레이디 L>에서 엉덩이로 빌어먹었던 젊은 날의 아네트는 아르망을 사랑했지만, 아르망이 자신이 소유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를 배신한다. 아르망을 배신한 대가로 풍족한 생과 더불어 그녀의 후손은 번영을 누렸지만 소설이 기록되고 있는 순간까지 아무도 그녀를 사랑해주지 않았다. 사랑은 커녕 그녀로 하여금 소외감을 들게 하였다.  12. 세월은 참으로 야만스러웠다! 시간은 아무것도 존중해주지 않았다. 라는 냉소처럼 말이다.


<자기 앞의 생>에서 엉덩이로 빌어먹었던 젊은 날의 로자는 버림받은 아이들을 양육함으로써 그녀의 삶을 지탱한다. 그러는 동안 로자는 모모라는 특별한 아이를 만나게된다. 다른 아이보다 그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쏟는다. (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자면 로자는 아마 모모의 친어머니와 친밀한 관계였던 것 같다.)


모모는 자신을 향한 로자의 넘치는 애정을 알아차리고, 생이 그녀를 떠나간 이후에도 그녀를 지켜주는 마지막 존재가 되어준다. 비록, 그녀는 풍족한 삶을 누리지는 않았지만, 행복했을 것이다. 순수한 어린 영혼과 숭고한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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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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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만과 편견>의 거의 모든 인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 그들에게 닥친 몇차례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심지어 충격적이기까지 한 인물은 단연 베넷 부인이다.


519. 오, 예쁜 내 새끼, 리지야! 엄청난 부자에 신분은 또 얼마나 높아지겠니! 용돈이다, 보석이다, 마차다 얼마든지 갖겠지! 거기다 대면 제인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아니고말고, 어미는 정말 기쁘다, 정말로 행복해, 그렇게 매력적인 남자가! 그렇게 잘생겼고! 키도 훤칠하고! 오, 귀여운 리지! 전에 내가 그 사람 그렇게 싫어한 것 제발 미안하다고 좀 전해 다오. 그런 것쯤 아무얼지도 않게 넘길 거야, 그 사람, 리지, 리지! 런던에 집까지 있고! 멋있는 것은 모조리 갖췄잖아! 딸 셋이 결혼이라니! 1년에 만 파운드! 오, 하나님! 이러다 나 어떻게 되겠다. 정신이 나가겠어.


예외적으로 소설 전체를 통틀어서 딱 두 사람에게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빙리와 제인 같은 경우는 초반의 인품이 자연스럽게 둘을 인연으로 이끈 경우라 제외.) 이 두 사람은 처음에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연인관계를 넘어 혼인관계로 맺어진다. 이들의 애착 형성과 발전과정에서 벌어지는 심리의 세밀한 묘사(거의 대부분이 엘리자베스를 중심으로하는 3인칭 서술자의 묘사방식)를에 주목하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2.


<오만과 편견>에서의  남, 녀 주인공은 펨벌리의 귀족 다아시와 베넷가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다. 


다아시라는 인물은 높은 신분과 재력이 넘치고 인물까지 출중한 완벽한 조건의 미혼 남성이다.


9.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다아시는 소설 맨 첫문장의 감탄을 불러온 빙리보다도 요즘 말로 훨씬 더 우수한 스펙을 가진 남성이다.


그를 보는 타인의 눈동자는 모르긴 몰라도 무수하게 반짝였음에 틀림없다. 덕분에 다아시는 태어난 이후 스물여덟해 동안 자신감에 도취되었다. 또한 자신의 배경만 좇아 인정받기 위해 달려드는 여성에게 시달렸을 것이다. 그렇게 귀찮은 일에 엮이는 것을 방지하고자 타인에게는 오만함으로 비춰지는 인물로 자신을 가렸을 것이다. 


이러한 다아시의 자신감을 오만이라는 편견으로 바라본  엘리자베스라는 여인은 혼인관계가 당사자 간의 애정보다는 재력과 지위에 따라 결정되는 사회의 오래된 세태에 불만이 있는 여성이다. 그녀는 풍족하지 않은 집안환경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부여하는 바람직한 여성상의 조건1 대부분을 혼자의 힘으로 성취한 인물로 읽을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며 그녀를 파악하건대, 사회적인 조건에 연연하여 그것을 채우기에 급급하는 여성이라기보다는 성취를 넘어 인식의 확장까지 이루어낸 굉장히 매력적인 여성으로 판단된다.


캐서린 영부인과의 대화 중에서 발견한 이 문장이 그녀의 매력을 확실히 표현하는 것 같아서 가져와본다.


490. “전 단지, 제 자신의 의견에 따라, 영부인이건 혹은 저하고는 관계없는 누구의 의견이건 상관하지 않고, 제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행동할 작정일 뿐입니다.” (중략) “이 일에서는 의무니 명예니 감사니 하는 것이 제게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어요.” 


<오만과 편견>의 긍정적인 효과(엘리자베스의 영리함과 당돌함, 제인의 현명함과 온화함)는 소설 내의 인물528. 키티는 주로 두 언니들과 시간을 보낸 것이 실질적으로 큰 득이 되었다. 그동안 알고 지내던 것보다 더 나은 사람들과 있다 보니, 그녀는 크게 개선되었다. 531. 엘리자베스의 행동을 보고, 그녀는 여자도 남편에게 무람하게 굴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했다.)의 변화를 예고했을 뿐만 아니라 200년의 시간을 지난 지금의 전 세계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3.


아울러 엘리자베스의 주위에 머무르는 전지적 화자에 의해 선명하게 소개되지 않은 다아시의 기사도 정신 또한 훌륭한 남성상에 대한 모범사례로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여성이 남성에게 바라는 거의 최고 수준의 판타지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덧붙여. 다아시의 행위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순간에 이루어진 순수한 그 무엇이다. 누구나 흉내낼 수 없는...


다만, 한가지 아쉬움은 이러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맺어지는 단계. 그들의 확고한 믿음을 야기한 모든 의도(다아시가 왜 그녀의 일에 발벗고 나섰는가)가 확실하게 설득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나는 다아시가 자신을 형성한 지난 모든 것을 마치 고해성사하듯이 반성하는 이유를 솔직히 잘 모르겠다.


소설을 읽으면서 다아시가 타인과 엮이지 않기 위해서 거리를 뒀다고만 생각했지. 누군가를 그리 심하게 차별하거나 무시하고 있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그렇기에 이 문단은 다아시가 짊어져야 할 것 보다 훨씬 큰 자책과 자기비하를 감내하려고 하고 있다고 느꼈다.


505. 평생토록 저는 원칙에서는 아닐지라도 현실에서는 이기적인 인간이었어요어린 시절에 옳은 것이 무엇이라는 가르침은 받았지만제 성격을 고치라는 가르침은 못 받았어요훌륭한 원칙들을 가지게 되었지만 오만과 자만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실행했지요불행하게도 외아들이었던 까닭에, 부모님들이 버르장머리를 그르치셨던 것이지요그분들은 참 좋으신 분들이셨지만제가 이기적이고 거만하도록 내버려두고 부추기고 심지어는 가르치기까지 하셨습니다제 자신은 가문 혈족 외에는 아랑곳하지 않도록세상 사람들은 죄다 천하게 생각하도록적어도 그들의 생각과 가치가 제 것에 비해서 비천하다고 생각하길 원하도록 말입니다여덟 살 때부터 스물여덟 살에 이르기까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그리고 사랑하는 그대 엘리자베스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그랬을 것입니다당신에게 진 빚을 어찌 다 말할까요당신은 저에게처음에는 정말이지 가혹했지만 다시없이 유익한 교훈을 주셨습니다당신으로 하여저는 겸손해졌습니다제가 당신께 청혼하러 갔을 때 전 승낙받을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여자를 기쁘게 해줄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자임했지요그런데 당신은 그렇게 자임하기에는 제가 얼마나 모자라는 사람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만약에 다아시가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다면 <레이디 L>처럼 온전한 인간적인 매력에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쉬움의 공백을 인간이 소유한 매력으로 덧칠해야 이 고해성사의 내용이 설득 된다.  



   


  1. 58. 진정으로 교양 있는 여성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보통 사람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그런 말을 들으려면 적어도 음악, 노래, 그림, 춤, 그리고 몇 가지 외국어를 완벽하게 알아야 해요. 그리고 이 모든 것 이외에도 걸음걸이의 맵시, 목소리의 높낮이, 말하는 태도와 표현에 품위랄까, 그런 게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교양을 반밖에 못 갖춘 거죠. 거기에다 또 다방면에 걸친 독서를 통해 지성을 계발함으로써 더 실속 있는 내면을 갖춰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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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인문학 - 서울대 교수 8인의 특별한 인생수업
배철현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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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의 클레멘트 코스 : 마아트 프로그램


재작년에 클레멘트 코스의 창시자 얼 쇼리스가 쓴 <인문학은 자유다>를 읽었다. 그 때 나는 그 책에 대해서 지역만 다를 뿐 내용은 한결같은 450페이지짜리 에세이를 읽은 기분이다. 속은 느낌이다. 이 책은 좀 더 확실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빈곤층에게 인문학 강의를 하는 클레멘트 코스를 반대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클레멘트 코스가 어떻게 뿌리내렸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클레멘트 코스에서 했던 강연 내용들이었다.


인문학 강의의 대상이 빈곤층이 아니라 재소자라는 점이 다르지만.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이라는 점은 같다. 이들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제공하기 위해 구성한 한국의 클레멘트 코스인 '마아트 프로그램'. 그리고 마아트 프로그램에 참여한 서울대 교수진들의 강의를 엮은 <낮은 인문학>. 이 책은 강의 내용의 온전한 전달력에 온 힘을 기울인 구성이 돋보였다. 그 이전에 강의자들의 고민의 흔적에 마음이 움직였다.


6. 수용자들의 삶에 긍정적이며 혁신적인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무엇이 중요할까? 새로운 지식 전달이나 학문적인 내용보다는, 그들이 자신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도록 하며, 삶에 대한 열정을 스스로 고취시키도록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2.


1강의 당신의 마아트는 무엇인가라는 강의에서는 개개인의 존재이유와 소명에 대한 질문을 적절하게 던져주었으며, 2강의 '생각'에 대해 생각하다에서는 행복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과 생각 다스리기의 방법을 제안한다. 3강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서 개인의 소명의식에 대한 질문은 '행복하거나 건강한 삶'이 아닌 '명예로운 삶'이라는 측면으로 강화된다.


4강의 기억, 미래를 만드는 '과거'에 담긴 독일과 히틀러와 빌리 브란트. 그리고 귄터 그라스의 이야기를 통하여 과거를 제대로 알고 반성할 줄 아는 용기를 지녀야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5강의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다루는 라틴 아메리카의 문제. 뿌리박힌 제국주의 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편견과 오해의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에리히 프롬의 사상을 소개한 7강은 개인적으로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서는 바로 앞서 읽었던 책에서 느낀 이것.


어쨌든, 낙관적 진보주의로서의 진화. 이 깨달음을 막는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다윈과 도킨스의 이론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일 테다. 이것의 의미는 적자생존과 이기적 유전자라는 관점. 즉, 강한 것이 선택받고. 선택받는 것이 강하다는 점을 유일한 정상과학으로 인정함으로써 경제력의 기준을 유일한 판단기준으로 삼아 타인으로부터 선택받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결과를 통하여 다양성 속에서 커나갈 수 있을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효과가 이기적 선택이라는 과정을 등에 업고 거의 유일한 상태의 거대한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도 큰 기대치를 충족하도록 요구받는데. 이 기대치는 대중문화에 의하여 학습되고, 인문학의 부재와 맞물려 더욱 강화된다.


이것은 소유에 의거한 삶의 양식이 극대화되어 모든 사람이 그것을 기본적으로 요구받게 되는 현실로 짧게 줄여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8장의 신화 속에 담긴 삶과 죽음의 단계에서 소개하는 죽음의 다양한 성찰도 유용한 챕터였다. 그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분리, 전이, 통합을 거치는 통과의례로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는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될 걸로 생각된다. 훌륭한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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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 - 진화의 욕망이 만들어가는 64가지 인류의 미래
카터 핍스 지음, 이진영 옮김 / 김영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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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결론은 첫째, 18. 진화는 사실이다. 둘째, 212. 진리는 결과일 뿐 아니라 발달 과정의 전부가 진리이다.

셋째, 39. 우리는 그냥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변하는 과정 중에 있다.  이 세 가지가 아닌가 싶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20. 변하지 않는 '지금 이대로'로 계속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어떤 과정 속에서 계속 변하고 있고 이것들은 현재 짧은 순간을 거치고 있다. 진화 사상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 변화, 발전의 전 과정을 의미하며 이것은 우리의 정치, 경제, 심리학, 생태학에서 시작해 현실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성 오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모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의 작가 카터 핍스는 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진화혁명가들의 이론들을 설명한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의식의 진화이론을 설명하는 진 게브서의 네 개의 '의식의 구조들'(221~230) 과 문화의 진화이론을 설명하는 클레어 그레이브스의 나선형 동력이론(233~246)이었다. 이러한 진화의 단계적 발달과정을 통하여 의식과 문화의 고정성을 파괴한다. 


후에 다음과 같은 과제를 부여한다.


396. 피상적으로 받은 영감을 폭발시키거나 일시적으로 통찰력이 생기는 것에 안주하지 말고, 용기와 진정성을 가지고, 새로운 관점이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세계관이 형성되는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새로운 사상을 추구해야 한다.


2.


어쨌든, 낙관적 진보주의로서의 진화. 이 깨달음을 막는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우리 사회가 여전히 다윈과 도킨스의 이론에 고정되어 있다는 것일 테다. 이것의 의미는 적자생존과 이기적 유전자라는 관점. 즉, 강한 것이 선택받고. 선택받는 것이 강하다는 점을 유일한 정상과학으로 인정함으로써 경제력의 기준을 충족시킴으로써 선택받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결과를 통하여 다양성 속에서 커나갈 수 있을 자본주의의 긍정적인 효과가 이기적 선택이라는 과정을 등에 업고 거의 유일한 상태의 거대한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도 큰 기대치를 충족하도록 요구받는데. 이 기대치는 대중문화에 의하여 학습되고, 인문학의 부재와 맞물려 더욱 강화된다.


과학, 의식, 문화, 종교와 같은 부분에서 변화와 진화를 감지한다면 상황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주의는 가능한 현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소화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상세한 내용은 책을 정리하면서 다듬어야 할 것 같다.


208. 역사를 보면 어떤 세계관이 특정 시대에 확실히 지배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인류 역사에 걸쳐 지배적인 세계관들이 진화해온 것을 확실히 추적할 수 있다. 하나의 세계관이 특정한 사회를 이끄는 큰 관점이 되고, 그러다가 여러 이유로 이것이 갈라지고, 긴 역사를 거치면서 다른 세계관에게 자리를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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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 처음 만나는 에티카의 감정 수업
심강현 지음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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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티카. 이 용어를 <몰락의 에티카>라는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후 몇 번 빌려와서 써먹은 적이 있다. 이 블로그의 검색창에 에티카를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검색 결과에서 자연을 수호하려는 생태주의자와 그러한 관점으로 작품을 쓴 <녹색고전>의 이야기에 대하여 몰락의 길로 향하고 있다고 말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그들(자낳괴)의 관점으로서는 "유정 (살아있는 생물) 뿐 아니라, 무정(무생물)에도 제각기 의식이 있다. 그래서 인간중심주의 사고를 내려놓자"고 주장하는. 게다가 "인간은 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녹색 고전> 속의 작가들은 몰락(沒落)의 길로 향하는 밥 빌어먹는 사람들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작품을 생태주의적 관점(몰락의 선택)으로 해석하는 김욱동 선생 또한 몰락(沒落)의 길로 향하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몰락(Go Down)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더불어 침몰시킨다. 그 순간 우리의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뀐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몰락(Go Down)의 에티카다. 온 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Go Down)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 이야기를 쓸 당시에는 이 문단의 정확한 의미를 알지 못한 채 끄적였던 것 같다. <스피노자 인문학>의 힘을 빌어서야 이 문단에 적힌 의미가 무엇인지 깨우칠 수 있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가장 위에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에서 몰락(沒落)이라는 것은 자낳괴의 관점일 뿐이라고 표현했던 것 같다


이 선택을 '몰락의 길(沒落)'로 해석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 선택을 몰락(沒落)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이 연민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을 주변인의 눈으로 관찰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이것이 몰락(沒落)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몰락(沒落)이라고 발설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몰락(沒落)이라는 슬픔. 수동적 정념에 예속에 사로잡힌다. 그렇지만, 이것을 몰락(沒落)으로 인식하지 않고 능동적인 기쁨으로 인식한 당사자에게는 이것은 예속이 아닌. 자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이 몰락(沒落)이라는 용어가  멸망하여 모조리 없어짐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아니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Go Down이라면 이 몰락(Go Down)은 자낳괴가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면 몰락(Go Down)이란 인간의 본성이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경험이자. 인간이 세상과 격렬하게 부딪히는 사투의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인간이 사랑스러울 수 있는 것은 그가 건너가는 존재이며 몰락(Go Down)하는 존재라는 데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9p.>


2.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몰락은 Go Down.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것이었다." 이다. 그런 의미에서 몰락은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서 이야기하는 미움받을 용기와도 정확히 일치한다. Go Down은 미움받을 용기이자. <스피노자 인문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이성이 선택한 최선의 자유였다.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한다는 말이지.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네. 인생이란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걸세. 어떨게 사는가도 자기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고. <미움받을 용기 37 p>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살면, 그리고 내 인생을 타인에게 맡기면, 자신에게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걸, 이해해야 돼. <미움받을 용기 181 p>


3. 


뻗어나가는 상념을 이쯤에서 정리하고, <스피노자 인문학>의 이야기를 되새김해보려한다.


67. 욕망은 인간의 본질입니다.


간은 마땅히 욕망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욕망을 통해 삶을 살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 인간의 선택은 내재하는 욕망이 치열하게 겨룬 이후 가장 강력한 욕망의 발현이다. 이것을 자유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선택한 자유가 잘못된 선택이었다면 그것을 후회하면서 죄책감에 사로잡혀 봤자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때 그 시절로 되돌아 간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도록 욕망을 다스리기 위한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당신의 무의식이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을 확장시킨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성의 확장은 배움으로 가능하다. 직접적인 경험으로의 깨달음이 가장 효과적이긴 하지만,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으로도 이성을 확장시킬 수 있다.


과거의 무의식 보다 지금의 무의식이 더 나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판단할 기준은 감정상태를 들여다 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이 선택으로 인하여 신체와 영혼에 경쟁심과, 경외심과 경멸이라는 감정이 깃들거나 혹은 그 선택에 대하여 애써 정당화하려는 불편한 생각이 든다면 당신의 역량은 여전히 부족하다 판단할 수 있겠다.


스피노자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형태는 300페이지에서 설명된 1종인식에서 역량(=이성)을 갈고 닦아 2종 인식으로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서 초인을 의미하는 직관지. 3종 인식에 다다르는 것이다. 니체의 생각과 같다. 2종은 넘어, 3종 인식에 다다르게 하기 위하여 스피노자는 모든 문제를 개인의 선택에 맡기기 보다는 정치적인 제도를 개선하는 것에도 매우 큰 관심을 보였다. 공포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인간이 안전하게 자신의 심신을 개발하고 자유로이 이성을 사용하도록 말이다.


스피노자는 3종 인식인 직관지에 이르는 상태가 이상적인 형태라고 했지. 여전히 1종 인식이 만연한 현재의 상태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저 아쉬울 뿐이다. 어쩌면 어떤 것이 3종 인식인지 1종 인식인지조차 불분명하다. 


90. "즐거운 음악은 기쁜 자에게는 좋은 것이고, 장례식장에는 나쁜 것이며, 귀머거리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습니다."


107. 우리는 그것이 선하다고 생각되기에 그것을 원하고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고 욕망하기에 그것을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과 악의 기준은 관계에 의해서만 가려질 수 있는데 그것은 개인적인 기준에서 판단할 수도 있다고 본다. 스피노자는 현실 세계에서의 이 모든 진행상황 자체가 '자연'의 형태이며, 그 자체를 신이라고 칭했다.


소요슈타인 가아더가 쓴 <소피의 세계>의 스피노자 챕터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어쩌면 엄지 손사락을 네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가 네게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엄지손가락은 오직 그것의 본성에 따라서만 움직일 수 있다. 엄지손가락이 네 손에서 뛰어올라 온 방 안을 만지고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그처럼 너 역시 전체 속에서 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란다. 얘야, 너는 소피이지만 신이 몸에 달린 손가락이기도 하지."


55. 실재성은 곧 완전성이다


이것 자체가 자연이기 때문에 강제할 수 없는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 말은 즉,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몰락(Go Down) 역시 허락될 수 있는 것이다. 욕망의 싸움터에서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이유로 말이다.


"그들은 스스로 몰락(Go Down)하면서 이 세계의 완강한 일각을 더불어 침몰시킨다. 그 순간 우리의 생이 잠시 흔들리고 가치들의 좌표가 바뀐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몰락의 에티카>


141. 올바른 인식이란 부분적인 앎이 아니라 전체적인 인식.


210. 우리에게 필요한 자유(=기쁨)란?

1. 정념으로부터의 자유

2. 역량을 향한 자유


230. 이성에 인도되지 못하고 혼란된 사람은 자기 자신과 사물과 신에 대해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302. 사랑 = 기쁨 = 능동 = 이성 = 역량 = 공감 = 이해 =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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