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교육
로맹 가리 지음, 한선예 옮김 / 책세상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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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맹 가리가 세상에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 <유럽의 교육>. 이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도중인 1942년 즈음을 담고 있다. 로맹 가리는 추위와 굶주림과 절망의 상징인 겨울을 배경으로 삼고서 독일의 식민지인 폴란드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다루고 있었다. 네이버 백과를 찾아보면 폴란드에서 벌어진 레지스탕스 운동을 가장 비참하다고 설명한다. <유럽의 교육>의 독립투사들이 빨치산(partisan)으로 지칭되는 이유도 아래의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33. 굶주리고 지친 사람들이 깊은 숲 속에 숨어 살고 있었다. 도시 사람들은 그들을 '빨치산'이라고 불렀고, 시골 사람들은 '산사람'이라고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들을 굶주림과 추위와 절망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생존이었다. 그들은 땅을 파고 덤불로 가려 만든 은신처에서, 사냥꾼에게 쫓긴 짐승들처럼 예닐곱씩 무리를 지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식량을 구하기가 어려웠고, 때로는 아예 불가능했다. 그 지방에 부모나 친구가 있는 사람들만이 먹을 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굶어 죽거나, 아니면 차라리 죽어버리기 위해 숲 밖으로 나갔다.


가장 비참하였던 것은 폴란드의 경우이다. 폴란드에서는 런던의 망명정부 지도 하의 레지스탕스와 스탈린의 지지를 받은 폴란드 공산당이 서로 대립하였으며, 1944년 8월 1일 전자가 바르샤바에서 독일 점령군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스탈린이 이것을 방치하였기 때문에 수만 명의 시민이 독일군에게 학살당하였다. 이와 같은 저항운동도 오늘날에는 남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볼 수 있듯이 강력한 군사적 저항으로 변모하여 레지스탕스라기보다 빨치산이라 부르고 있다.   -두산백과 레지스탕스 -


2.


139. 나는 증오를 알고 있어. 독일이 나에게 증오를 가르쳐주었어. 부모님을 잃으면서, 추위와 배고픔을 겪으면서, 땅 밑에서 살면서, 그리고 만약 길에서 독일군이 나와 마주치더라도 나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거나 나를 불 앞에 앉히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들이 나를 보며 오직 피부 속에 총알을 쑤셔박는 것밖에 생각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증오를 배웠어. 독일군에게는 오직 총알뿐이니까. 가슴을 겨냥하는 총알, 희망을 겨냥하는 총알, 아름다움을 겨냥하는 총알, 사랑을 겨냥하는 총알... 나는 그들을 증오해


이토록 독일을 증오하는 인물은 나치 독일에 부모를 잃은 열네 살의 야네크다. <유럽의 교육>은 열네 살의 소년 야네크의 공간을 중심으로 전지적 화자의 서술과 인물의 심리묘사가 소설의 대부분을 이룬다. 야네크의 시점과 일련의 일화들을 통하여 우리는 나치 독일의 습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독일 군인. 이들과 대항하기 위하여 산속에서 숨어 생활하는 빨치산의 대립을 읽을 수 있다.


<유럽의 교육>에서는 야네크의 시점이 닿지 않는 서사들도 포함하는데 이것으로 인하여 소설은 더욱 풍성해진다. 특히, <유럽의 교육>안의 또 다른 소설. 즉흥적이고 영웅적인 성향의 빨치산 무리인 도브란스키가 쓴 <유럽의 교육>이 그런 기능을 한다. 도브란스키가 이것을 쓰는 이유는 독일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당신 혼자가 아님을 일러줌으로써 반독일 정서를 강화하고, 항독 운동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의 상징이 빨치산 나데이다라는 영웅이었다.


317. 우리의 용기를 다시 북돋우고 적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우리는 빨치산 나데이다를 만들어냈어. 불사, 무적의 대장, 절대로 적에게 붙잡히지 않고, 그 어떤 방법으로도 체포되지 않는 대장, 어둠 속에 있을 때 용기를 내기 위해 노래를 부르듯이, 우리는 그렇게 하나의 신화를 창조해낸 거야. 하지만 너무나 빨리 그는 실체를 가진 존재가 되어 우리 사이에 현실로 존재하게 되었어. 경찰도, 점령군도, 그 어떤 물리적 힘도 접근하여 흔들어댈 수 없는 대단한 인물, 그 불멸의 존재에게 모두가 정말로 복종하는 것 같았어.


3.


이들의 격렬한 대립으로 피해를 입는 사회적 약자의 고통은 빠지지 않는다. <유럽의 교육>에서는 야네크가 아닌 또 하나의 시각으로 이를 표현한다. 야네크의 연인이 된 조시아의 심리 묘사가 그것을 보여준다. <유럽의 교육>의 서사 중에서 가장 탁월했던 순간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다. 


225. ... 그녀는 기다렸다. 나무 그루터기 위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녀는 즈보로브스키 맏형이 했던 말을 생각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고통을 겪는 데 '마지막'은 없었다. 그리고 희망은, 새로운 고통을 견뎌내도록 인간을 격려하기 위한 신의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기다렸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고, 공기가 얼음처럼 혹독하게 차가웠고, 까마귀가 까깍댔고, 하늘은 창백했다. 그녀는 자문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사랑하고 먹고 따뜻하게 지내는 것뿐인데, 평화롭게 사랑하는 것, 굶어 죽지 않는 것, 얼어죽지 않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지구는 둥글며 자전한다든가, 맞춤법이 어떻게 된다든가 하는 것 들 제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을 다 깨우치는 것보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기다렸다. 그녀는 나무들을 보았고, 그들의 단단한 껍질을 부러워했다. 그녀는 엄마를 생각했고, 야네크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고 있었다. '더이상 전쟁이 없게 하기 위해서 스탈린그라드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어.' 하지만 이미 그녀는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 사람들은 어떤 사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맞서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것, 병사의 힘은 분노가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것, 그리고 문명의 발자취들은 폐허일 뿐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문단을 통해 <유럽의 교육>의 모순을 조시아가 가장 먼저 깨달았음을 알 수 있었다. <유럽의 교육>이 말하는 유럽의 교육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말이다. 유럽의 교육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제국주의로 향하게 했으며, 나치 독일은 그 교육의 가장 큰 효율을 위해 움직이는 이데올로기 집단이었다.


그에 맞서 저항하기 위해 탄생시킨 빨치산 나데이다 역시 또 다른 산물이었다.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기 위한 극단적인 저항 이데올로기. 이것 또한 유럽의 교육이 낳은 비극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조시아의 말처럼 어떤 사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맞서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4.


야네크는 독일의 장교가 아닌 어떤 독일인의 죽음을 목격하고, 독일에 대한 분노를 품은 채 일반 군인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을 때. 그 순간의 부조리한 경험을 통하여, 유럽의 교육이 이 세상을 선과 악으로 구획된 것의 모순을 알게 된다. 자신이 그토록 증오한 독일이 독일이라는 이름에 속한 모든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결국, 조시아가 깨달은 것을 깨닫게 된다. 야네크는 여전히 분노에 머물러있던 도브란스키. 이것이 상징하는 전 세계의 항독 지식인 무리를 넘어선다.


327. 그는 얼어붙어 있는 주변의 세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모든 시대가 저물 때까지 변화하지 못하고, 부화하지 못하고, 부활하지 못하고, 발아하지 못하고, 재생하지 못하도록 선고받은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일급 범죄를 저지르도록, 죽이고 죽도록 선고받은 것만 같았다. 그곳에서 지평선이란 영원히 되풀이되는 과거였다. 그곳에서 미래란 새로운 무기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승리란 새로운 전투를 의미할 뿐이었다. 그곳에서 사랑이란 눈에 들어온 티끌이었다. 그곳에서는, 얼음이 배를 가두어 힘없는 팔처럼 노를 축 늘어뜨리게 만들듯 증오가 마음을 옥죄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그의 손 안에 들어와 있는 조시아의 자그마한 손도 만연한 냉기가 낳은 작은 얼음조각에 불과했다. 조시아가 그의 목에 팔을 둘러 기대더니 따라 울기 시작했다. 세계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그녀의 마음을 스쳐서가 아니었다. 그가 너무 슬퍼 보이고 너무 넋을 놓은 듯이 보이는데, 정작 자신은 도울 방법을 알 수 없어서였다.


328. 추악한 짓을 벌이는 사람은 언제나 존재해요. 타데크 흐무라가 옳았어요. 유럽에는 가장 오래된 성당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대학들, 가장 커다란 도서관들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서 가장 훌륭한 교육이 이루어지죠. 세계 구석구석에서 사람들이 유럽을 찾아와요. 공부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그 유명한 유럽의 교육이 가르치는 것은 결국, 자기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을 죽이는 데 소용이 될 만한 그럴싸한 이유들과 용기를 찾아내는 법일 뿐이에요. 얼음판 위에 스케이트를 신고 앉아서,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방아쇠가 당겨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을요.


330. 야네크는 생각했다. 믿음을 품고 영감을 받은 인간 꾀꼬리들이 이 영원하고 경이로운 노래들을 부르며 얼마나 많이 죽어갔을까? 매혹적인 목소리에 담긴 약속이 실현되기도 전에, 추위와 고통과 경멸과 증오와 고독 속에서 또 얼마나 많은 인간 꾀꼬리들이 죽어가게 될까? 또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탄생이, 얼마나 많은 죽음이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기도와 꿈이, 얼마나 많은 꾀꼬리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눈물과 노래가, 얼마나 많은 어둠의 노래가 필요할까? 얼마나 많은 꾀꼬리가 필요할까?


5.


야네크의 시간은 고작 일년이 흘렀다.  

그러나 일년의 시간동안 야네크는 성장했다. 마침내 성인이 되었다.

유럽의 교육은 야네크(로맹 가리)의 손으로 새롭게 쓰일 것이다.

로맹 가리의 첫 소설이 앞날을 예고하고 있었다.  


한편, 야네크의 성장은 어쩌면 인간의 가능성에 대하여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330. 야네크는 이제 겨우 열다섯 살이었고, 도브란스키보다살이나 어렸다. 하지만 그 대학생을 향한 거의 아버지와도 같은 보호 본능이 갑자기 뜨겁게 솟구쳤다. 그는 빈정거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우월하고 세상사에 통달한 듯이 보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는 웃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깨를 으쓱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얼마나 많은 꾀꼬리가 필요한 거냐고 신랄하게 묻지 않으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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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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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리뷰는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빈 노트에 끼적여봐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쓰고 싶었다.  

그래서 무작정 노트북을 열었다. 지금부터 의식의 흐름대로 마구 써 내려갈 것이다.



2.


내가 읽은 <투명사회>는 비판을 넘은 비난이다. 무엇에 대한 비난인가 하면 디지털 사회에 대한 비난이다. 어떤 디지털 사회인가 하면 신자유주의의 사상이 주입된 디지털 사회에 대한 비난이다. 자본과 결합된 무엇. 효율을 중시하는. 과시와 전시를 통해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행위, 혹은 실제로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행위를 위하여 인류에게 제공되는 디지털 사회에 대한 비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읽다보면 여기서 '신자유주의 사상이 주입된'은 어느새 휘발되어 날아가버렸고, '디지털 사회'만 덩그러니 남겨진다. 한병철 교수는 홀로 남겨진 디지털 사회에 대하여 무차별적인 폭력을 행사한다. 비유하자면, 부모가 신자유주의 사상이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신생아. 디지털 사회라고 볼 수 있는데 한병철 교수는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신생아인 디지털 사회 대하여 비난을 퍼붓고 있는 셈이다. 너희 부모님이 신자유주의인데. 그 사회의 부정적인 측면을 모조리 유전으로 이어받아서 너도 역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3. 


그가 현 세상의 이데올로기를 비난하기 위해 꺼내든 도구들은 지난 시대의 아이디어다. 새로운 도구로 이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시대의 도구들을 가져와서 그것을 지금의 현상에 따라서 수정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거의 대부분이 비판적인 결론으로 끝맺음한다는 것이다. 읽으면서 당황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의 이론이 지금 상황에 맞지 않는다며 마구잡이로 손질하면서도 자기 이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듯한 그의 오만함이 굉장히 거북했다.


나는 <투명사회>가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투명사회>의 상당부분은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투명사회>라는 책도 타자에게는 단지 하나의 정보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저자 자신은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병철 교수의 부정성의 철학은 굉장히 매끄럽게 읽힌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어떤 탄생물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부정성을 거쳐서 순방향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이것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배운 문학적 교훈이다.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할 가능성이 부정성의 벽에 가로막혀서 그냥 시들어버릴 가능성도 잠재한 상태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 그것을 견디기 힘들거나 아니면 이 세상이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성과를 강조하는 피로사회이기 때문에 그것을 의심하기 전에 무조건 수용부터 하게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들에게 <투명사회>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측면보다 디지털 사회를 모든 가능성의 부정에 준하는 상태로  남겨둔다는 것은. 확신할 수 없는 이 사회에 대한 잠재적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들기 보다는 이 사회에서 태어난 사실을 스스로 자조하게 만드는 비극을 초래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어떤 주장에 대하여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은 저명한 지식인이라면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4.


책을 읽으면서 모순을 발견했다. 한병철 교수는 디지털 사회는 개인으로 하여금 타자와의 관계를 끊고, 나르시시즘에 빠져들게 만든다. 개인이 나르시시즘에 빠져들면 군중은 합쳐지지 않고 분열된다. 그리하여 정치적인 합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제의사회와 전시사회의 특징을 다룬 부분을 보면 한병철 교수는 전시사회의 것들은 모든 부정성이 제거된 포르노적 사회이니 부정성이 존재하는 제의사회를 우월한 사회로 여긴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한다. 제의사회의 특징은 '분리, 구획, 폐쇄의 부정성'이다. 이것은 타자와의 관계를 끊고, 나르시시즘으로 빠져드는 디지털사회의 특징과 연결된다.


이것은 제의사회의 특징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디지털 사회에서도 제의사회의 특성을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구현한다 하더라도 모순에 따르면 디지털 사회의 제의적 특성들도 타자와의 관계를 끊고, 나르시시즘에 빠져들어 사회 통합을 방해하기 때문에 비판받을 것이다. 결국 디지털 사회는 전시적 특성 때문에 비난받고, 제의적 특성 때문에 또 비난받는다.


5.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결론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디지털 사회라는 것도 부모 말 잘듣는 빅데이터와 좋아요와 조회수와 별풍선이라는 이름의 디지털 사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디지털 사회가 있는 반면에. 부모 말 안듣는 강남역문제에 분노하고, 메피아 척결을 외치고, 노동법 개악을 저지를 외치는 착한 디지털 사회도 있다. 심지어는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북살림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디지털 사회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정말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이런 부모 말 잘듣는 디지털 사회를 뒤에서 교묘하게 이용하는 부류의 사람들. 예를 들면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는 사람들이나 조영남처럼 투명사회라는 착각에 숨은 사각지대를 이용하여 자기 가치를 부풀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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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소파
조영주 지음 / 해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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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극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장의 사진을 바라보는 두 가지의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죄와 벌>의 좌절.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보통 인간의 살인.

살인자에게 주입한 어긋난 시선은 <붉은 소파>를 빌어서 또 하나의 좌절을 탄생시킨다.


384. 누구나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는 순간이 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신의 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된다고 해서 살인을 한다면, 이 세상은 멸망해버릴 겁니다. 그런데 내가 만난 놈들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자기가 본래 그렇게 태어난 걸 남 탓을 했어요! 살인부터 계획했어요! 남을 팰 기회부터 엿봤어요! 그래서 저는 부추긴 겁니다! 자신을 해방시키도록,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도록, 그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도록!


누군가를 향한 비뚤어진 인간의 고백.

이 시선으로부터 인간의 가능성. 오마주는 길을 잃었다.


2.


232. 인간은 파노라마 사진이야. 파노라마 사진은 360도의 시각을 한번에 보여줘. 그 사진을 보면 자신이라는 인간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지. (중략) 이 사진 속에는 최호식 씨가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어떤 식으로 살았는가, 무슨 생각을 했는가, 무슨 즐거운 일이 있었는가, 슬픈 일이 있었는가, 어떻게 극복했는가, 혹은 절망했는가, 그것들의 대부분을 사진 속에서 찾을 수 있어.


재혁의 말처럼


348. 이건 단순한 사진이 아니다. 삶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 일은 우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석주의 생각처럼


석주가 충실하게 따랐던 가르침.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말한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한 사진

그 사진에 담긴 의도는 동류라고 생각한 정국의 생각처럼 비뚤어지지 않았다.


3.


만삭의 배를 살며시 어루만지던 누이에게 향한 시선.


408. 석주는 그 웃는 표정 그대로 기절한 누나를 향해, 그런 누나의 품에 안긴 채 끊임없이 울어대는 은혜를 향해, 셔터를 눌렀더랬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이 없으면서도 어떻게든 움직여 그 순간의 희로애락을 담으려 들었다.

지금, 이 순간처럼.


열두 시간의 진통 끝 미소를 짓는 어머니와 쩌렁쩌렁 울어대는 갓난 아이에 향한 시선.

모든 것을 초월한 그 순간의 숭고함에 홀렸을 뿐이었다.


석주가 찍은 다른 사진에서도.

누군가의 목에 그려진 희미한 자국에 포커스를 맞추면서도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인간에 대한 연민을 읽어냈던 것이다.


은혜의 마지막 사진에서도 그랬다.


250. 죽은 딸을 인정하기 싫어 그 딸을 살아 있는 듯 찍는 미치광이.


이것은 모든 아버지가 딸을 잃어버린 것을 부정하는 슬픔의 알레고리였다.


4.


404. 붉은 소파와의 여정, 시작은 도피였다. 추모였으며, 슬픔의 발로였다. 하지만 지금 와서 다시 훑어보니 이것은 그저, 사진일 따름이었다. 순간순간 붉은 소파에 앉은 그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보이기 위해, 그의 인간다움이 돋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정적 순간의 집대성에 불과했다.


석주는 온 정신을 바쳐 나영의 사진을 찍어줬다.

평생 해왔듯이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을 뿐이다.


408. 누나의 탈진한 얼굴을 떠올리며, 그 사진을 통해 구원받았다는 수많은 어린 생명들을 생각하며, 석주는 기대하는 것이었다. 나영에게 애원하는 것이었다. 당신의 한없는 포용력이 악으로 똘똘 뭉친 누군가의 죄악마저 감싸 안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그 누군가가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 나아가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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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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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우리는 시몽의 저돌적인 사랑고백과 그것을 받아준 폴의 불꽃같은 한달가량의 시간을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폴과 로제의 오년간의 부대낌. 64. 기쁨과 회의와 온정과 고통으로 뒤범벅된 그 오년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근데 이 소설의 아이러니는 우리가 읽어낼 수 없는 폴과 로제의 오년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점이었다. 


139.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사랑을 위해 육 년 전부터 기울여 온 노력, 그 고통스러운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옸고, 바로 그 자존심이 그녀 안에서 시련을 양식으로 삼아,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로제를 자신의 주인으로 선택하고 인정하기에 이르렀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로제는 그녀에게서 언제나 빠져나갔다. 이 애매한 싸움이야말로 그녀의 존재 이유였다.


사막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말한 것과 같은 의미로서, 폴이 로제에게 길들여지기에 오년이라는 시간은 충분한 시간이었다. 139페이지의 방식이 폴이 로제와 세상에 길들여져 머무르는 방식이다. 이것과 180도로 달랐던 시몽과의 한달가량의 연애는 비록 그녀를 잠시나마 행복하게 하긴했지만, 행복보다는 갑작스러웠고, 불편했다는 감정이 더 크게 그녀를 괴롭혔다.


131. 모든 것이 망가지고 말았다. 드레스는 그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았고, 시몽의 외모는 너무 눈에 띄었으며, 그녀의 삶은 지나치게 비상식적이었다.


2.


그녀는 확신없는 미래보다는 현상 유지를 택함으로써 시몽을 밀어낸다. 그것의 의미는 도전이 아닌 체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녀를 비난할 수는 없다. 어쩌면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 우리 앞의 진리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104. 언젠가 자신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잘못으로부터 미리 그녀를 보호하려는 듯 그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면서 과거의 어리석은 사건들과 그 자신의 비겁함과 두려움과 갑작스러운 관태감과 냐약함에 맞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섰다. 그녀를 행복하개 해 주고 그 자신도 행복해지리라.

 

132. "삶은 여성지 같은 것도 아니고 낡은 경험 더미도 아니야. 당신은 나보다 열 네 해를 더 살았지만, 나는 현재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뿐이야. 나는 당신이 자신을 천박한 수준, 이를테면 그 심술쟁이 할망구들의 수준으로 비하시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로제뿐이야. 다른 건 문제되지 않아."


폴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희망을 노래하는 시몽의 당돌함.

확신에 가득 찬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폴의 거북함과 불편함이 주는 두려움만 한층 더 가중시켰을 뿐이었다.


138. 시몽은 그 자신이 그녀의 주인이라는 느낌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오히려 손해라는 것도 모르고 무의식적으로 연극적인 동작을 동원해 의존적인 태도를 취했다. 시몽은 그녀에게 보호라도 청하는 것처럼 그녀의 어깨를 베고 잠이 들었고, 이른 아침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 했으며, 모든 것에 대해 충고를 구했다. 폴은 그런 태도가 감동적이었지만, 왠지 비상식적인 것을 대할 때처럼 거북하고 불편했다.


이 두려움의 정체는 변심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앞서 읽은 은희경의 그것처럼 말이다. 과연 시몽은 처음에 다짐했던 마음을 12년이 지난 뒤에도 유지할 수 있을까? 폴은 그것을 확신할 수 없었다.


35. 나하고 살면 인생이 바뀔 것 같아요? 그래. 왜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니까. 그럼 12년 전에는 사랑하지 않는 여자하고 결혼했던 거예요? 물론 그때는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결혼을 했겠지. 당신이 나하고 결혼한다고 해요. 그러면 12년 뒤에 똑같은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때 어떤 기힉 오면 당신은 또 이번이 진짜 사랑이고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떠나겠죠. <은희경 -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3.


35. 마음을 정하고 나니까 그래. 이렇게는 하루도 더 못 살겠어. 내년이면 나도 사십인데 지금 못바꾸면 평생 이렇게 살고 말거야. 네가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구, 알아?  <은희경 -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사강이 폴의 나이를 하필 서른아홉으로 설정한 것에 주목해볼만하다. 은희경의 소설에서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야만 할 것 같은 나이가 서른 아홉이었다. 반면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어도 시작하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한 나이로 서른아홉을 정의한다.


폴이 시간이라는 것의 진정한 정체를 피부로 체감하고 있음을 소설의 첫 페이지부터 찾을 수 있었다.


9. 그녀가 이렇게 거울 앞에 앉은 것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였으나, 정작 깨달은 것은 사랑스러웠던 자신의 모습을 공격해 시나브로 죽여 온 것이 다름 아닌 시간이라는 사실이었다.


4.


이런 복잡한 폴의 내면 속 인과관계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담아내고 있다. 이로 인하여 시몽의 연애사에 스크래치가 하나 더 생길텐데. 과연 시몽은 폴이 그를 거절한 진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까?


139. 자신이 불가피하게 상처 입히지 않을 수 없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데에서 오는 그녀의 끔찍한 쾌감은 어떤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올까? "어째서 당신은 나보다 로제를 더 좋아하는 거지? 그 무심한 사내의 무엇이 내가 당신에게 매일 바치는 이 열렬한 사랑보다 낫다는거지?"


일말의 죄책감을 품은 채 뇌리속에 떠도는 폴의 상상. 그것과 같은 형태로서 시몽이 그녀의 선택을 비난하고 다그치게될까? 이후의 결말이 어떻게 되든 간에 그건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미 폴의 마음은 닫혀버렸으니 말이다. 소설의 마지막 두 문장은 완벽한 확인사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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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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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도덕한 사랑이면 부도덕한 사랑이지.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은 대체 어떤 것일까?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의 첫 단편의 제목인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은 부도덕함의 타협점이 아닐까 싶었다. 명백하게 부도덕한 것이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한 끝에 나온 그녀의 대답이다. 그 대답에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가족애' 였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나'는 한 가정의 가장과 내연관계를 맺고 있다. 아버지의 외도 덕분에 이혼의 위기를 맞은 어머니의 딸기이도 했다.  


47. 나에게는 고독이 오랜 친근이었다, 외롭지 않다고 거짓말을 해주는 술도 있었다.

 

38. 마음속에 집착이 있을 때 사람은 혼령 같다. 무엇을 봐도 보이지 않고, 먹는지 뱉는지도 느끼지 못한다. 고독을 겪어본 사람만이 집착의 끔찍함을 아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나'로서는 이 관계가 부도덕한 것을 알지만, 외로우니까. 술로 외롭지 않다고 거짓말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며 살아야하니까 당신의 향기에 취해 다가오는 한 남자를 허락한다. 이 남자가 싱글이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불륜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부도덕한 사랑은 당신 자신이 나고 자란 가족의 파괴라는 문제와 정확히 겹친다. 


34. 가족이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아프게 깨물면 아프게 물린다. 그렇다고 가볍게 물었다가는 자칫 서로를 놓칠 수도 있다. 너무 세게 물면 - 끊겨버릴지도 모른다. 모든 사랑이 다 그렇듯이.


'나'는 그의 여자이기 전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딸이다. 그런데도 아내가 있는 그의 구애를 받아들여 그의 여자가 된다는 것은 어머니의 연적임을 인정하는 꼴이다. 결국 '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머니를 배신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부도덕함이 명백하게 자신이 감당해야 할 문제로 성큼 다가오게 된다. 


이 문제에서 가장 큰 걸림돌인 그 남자와의 관계가 예상보다 순순히 정리되어서 다행이었다.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그 남자의 말이 이 순간의 욕망을 채우고자 그녀를 억지로 설득시키고자 내뱉는 변명처럼 들렸다는 사실은 내가 보기에는 작가에 의하여 의도된 서사였다.


35. 마음을 정하고 나니까 그래. 이렇게는 하루도 더 못 살겠어. 내년이면 나도 사십인데 지금 못바꾸면 평생 이렇게 살고 말거야. 네가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구, 알아? (중략)

 

나하고 살면 인생이 바뀔 것 같아요? 그래. 왜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니까. 그럼 12년 전에는 사랑하지 않는 여자하고 결혼했던 거예요? 물론 그때는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결혼을 했겠지. 당신이 나하고 결혼한다고 해요. 그러면 12년 뒤에 똑같은 말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때 어떤 기힉 오면 당신은 또 이번이 진짜 사랑이고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떠나겠죠.

 

40. 집사람을 의존하고 살면서 마누라는 지켜워하는군요. 그 두가지는 똑같은 역할의 양면일 뿐이에요. 당신 아내와 내가 다른 게 뭐가 있죠? 당신은 내가 하는 말은 배려로 듣고 아내가 하는 말은 잔소리라고 짜증을 내죠. 자신이 낡은 달력 같은 존잭 되기 싫다고 말예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새로운 관계는 없어요.

 

덕분에 그에 대한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의 미래에 대하여 확신을 갖게될 수 없어졌다. 그 이전에 독자로 하여금 그 남자의 매력이 무엇인지 판단할 기회조차 말끔히 제거해버렸다. 결론은? 남자와 함께 살아갈 치명적인 매력이 없다고 할까? 덕분에 '나'는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에서 탈출할 수 있었으며 이것은 곧, 가족의 문제에서 어머니의 편을 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만약에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의 남자가 <인 마이 라이프>의 남자였으면 '나'는 결정을 내리기 훨씬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연적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모든 여자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인 마이 라이프>의 이 남자는 슬픔의 왕국에 찾아온 불청객이었지만, 얼마지 않아 슬픔의 왕이 되었다. 슬픔을 갖고 있는 여인들에게 그의 모습은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그를 차지하기만하면 슬픔에서 해방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남자였다.  


270. 남자는 계속 여자의 눈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남자의 눈에서 던져진 빛이 여자의 눈 속으로 깃들일 때마다 생기가 넘쳐나고 눈빛니 타올라 여자의 모습은 아름답게 빛난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운 완자의 입맞춤처럼 남자의 눈빛은 여자의 몸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생을 일깨우는 것 같았다.

 

271. 혜린의 마음속에 있는 슬픔의 나라의 법정에서는 새로운 판결문이 나왔다. 여자가 그 남편을 사랑하는 것은 더러운 죄악이며 오직 '인 마이 라이프'의 남자를 사랑하는 것만이 순결한 일이라고, 사랑이 없으면서 함께 사는 부부야말로 상대를 기만하고 삶의 아름다운 섭리를 거스르는 부도덕한 관계라고.


3.


<멍>은 대학의 교수로 있는 이진찬이 '멍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한현정의 원고를 열어보는데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이야기 속에는 동기들 사이에서 막연히 부채의식으로 기억되곤 했던 현정의 남편. 영규의 고단한 생의 기록이 담겨 있다. 현정은 영규의 생을 사회 부조리의 한단면으로 세상에 내놓기를 원했다.


그 기록은 애절했다. 겉으로 보기에 영규의 생은 나태한 인간 자체였다. 그러나 현정의 원고에 담긴 영규의 일기를 통하여 그의 멍이 자신의 나태함의 결과로 생긴 것이 아니라 그를 가로막는 타자의 벽에 의하여. 즉, 온전히 삶의 무게에 의하여 생긴 것임을 알게된다. 영규의 멍은 그러한 부조리한 현실을 새기기 위한 결과로 매일 생겼다가 사라지고, 살아있는 내내 생성과 소멸은 반복된다. 딸에게 애정어린 일기를 남기기도 했던 그는 죽음으로 인하여 멍을 새기는 행위를 그만둔다.


91. 그의 맨살은 따뜻하다. 그는 이 맨살 속에 멍이 아른아른한 누르스름으로 남아 있을 때쯤이면 늘 새로운 멍을 만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새로운 멍을 만들지 않은 덕분인지 그의 몸은 아주 깨끗하다. 멍이 없다! 내 손이 멍을 찾아서 그의 몸 이곳저곳을 다급하게 헤맨다. 그의 가슴, 그의 배, 그의 팔과 다리, 아아, 그의 하얗고 투명안 몸속!

내 손은 갑자기 멈춘다.

멍의 기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내막을 알지 못하는 동기들은 죽어버린 영규를 한심한 자식이라며 안타까워 하며,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그들 마음대로 짊어지고 있었던 부채를 갚기로 한다. 냉정하다.


93. 죽은 자들에게는 산 자의 호의를 거절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산 자들이 자신의 삶을 새로 짜맞추더라도 거기에 대해 소명할 권리가 없다는 게 죽은 자의 가장 큰 비극이다, 하긴 죽은 자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다. 애도는 살아남은 자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이게 끝은 아니다. 멍의 날카로운 일면은 영규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정의 원고를 읽은 진찬의 아내. 그녀의 손등에도 푸른 멍자국이 있다는 것이다.    


4.


개인적으로 제일 소름돋았던 작품은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였다. 이 단편소설은 세상에 홀로 남겨진 한 여인의 회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녀는 그를 상실했지만,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한다.


105. 죽음이란 삶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바뀐 것일 뿐 사라진 건 아니야. 죽은 너를 사랑하는 일이 조금 외롭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런 건 두렵지 않아. 두려운 건 너를 잊는 일이야. 너를 잊게 되면 사랑을 잃는 거니까. 한 사람의 생에서 사랑이란 단 한번뿐번인 거잖아. 

 

103. 내일이 와도 네가 내 곁에 없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내일이라는 말을 희망의 의미로 쓸 수 없게 만드는 거야. 거꾸로 오늘 다음에 어제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도 살아 있을 테고, 그리고 또 지나온 시절이 좋았던 건 결코 아니지만, 내가 이미 다 아는 일들이 닥쳐올 테니 적어도 두렵지는 않을 거 아냐.


이 소설이 대단한 것은 이유모를 자살로 생을 마감한 남자친구. 상실의 아픔에도 결코 그를 놓지 않은 그녀가 보여주는 두 장의 사진에 대한 서사. 그리고 자살한 남자가 손에 쥐고 있던 한 장의 사진에 대한 설명으로 이 연인에게 찾아온 비극에 대한 완벽한 시나리오를 머릿속으로 그려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는 사진을 설명하는데 충실했다. 오래전에 떠난 부모님의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지만, 독자인 나는 그것을 통하여 아주 자연스럽게 모든 인과관계를 캐낼 수 있었다.


119. 엄마가 사랑한 건 안경을 쓴 그 남자였어. 아버지에게 청혼을 받던 날 엄마는 그 남자의 옹색한 자취방으로 찾아갔대. 청혼받은 사실을 털어놓고 자기의 마음은 당신에게 있을 뿐이라고 고백했어. 그러나 남자는 아무런 약속도 해줄 수 없다고 했나봐. 엄마는 상처를 갇고 아버지와 결혼했던 거야. (중략) 남자에게 자시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복수심과 그 남자를 가까이에서 보고싶다는 그리움. 그리고 죄의식과 질투.


이런 인과관계를 알게 된 이후. 그녀의 부탁은 너무나 슬프게 들린다.


129. 부탁이 있어. 네가 그 사진 속에 없다는 걸 증명해줘. 너는 다른 곳에 있어야만 해. 그래야 우리의 죄로부터 결백해질 거 아냐. 어서 도망쳐. 너를 속박하는 시계와 사진,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로부터.


5.


<여름은 길지 않다>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단편이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운 유부녀의 일탈을 그린듯 싶었다. 세기말 코드도 있는 것 같았다. 남성이라는 대상을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 원룸주인과 혁희와 오래로 분리시켜 등장시킨다. 성적인 코드로서 포썸을 위한 듯한 묘사로 읽히기도 했다.


223. 몇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높은 곳에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은 언제나 탁자 아래에 있다. 낮은 곳에서 찾아야 한다. 넓어지려면 먼저 낮춰야 하는 게 보편성의 이치다, 라고 생각한다.


6.


<서정시대>라는 단편은 132.의 문장을 증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솔직히 아주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그녀의 원형탈모는 남들도 그녀의 성격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였다.


132. 과민함과 자의식, 자의식과 긴장, 긴장과 소심함과 진지함. 정작 머리카락이 유난히 많이 빠지는 데에는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 머릿속은 언제나 수많은 분석으로 터질 듯이 복잡하지만 실제로 인생에 효용이 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164. 너, 어제 보니까 땜통이 더 커졌더라. 근데 사람들은 네가 일부러 드러내놓고 다니는 줄 알아. 널 냉소적이고 위악적인 여자로고 하더라니까. 네 소설 주인공같이 시건방지고 독하다고 말이야.


7.


<지구 반대쪽>은 환상적 리얼리즘을 가미한 소설이다. 어린 시절 일가족이 모두 살해당한 기억을 간직한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누군가가 돌아와서 그의 머리통을 떼내 보자기에 싸고 매듭을 조이'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그는 착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가 벌을 내린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고통 덕분에 그는 어딘가 불안한 존재로 남아있다.


그했던 남자가 작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브라질로 떠난다. 그 여행기간 동안 그를 찾아온 기이한 꿈을 통해 남자가 오랜시간 품어왔던 트라우마가 극복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결론은 분명하지만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의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189. 그 여자는 어쩐지 그가 달라졌다고 느낀다. 종일 가야 말 한마디 없는 것은 여전하지만 그 여자가 욕설을 퍼부으면 전에 없이 언뜻 웃음 같은 것을 띤다. 그의 몸을 안을 때도 그랬다. 체온이 느껴진다. 전에 그와 잘 때는 마치 그는 없고 그의 성기와만 접촉하는 기분이었다. 그 자신은 성기를 떼내 그 여자에게 주어버리고는 아랫도리가 어둠처럼 텅 비고 푹 꺼진 채로 혼자 돌아누워 자는 것만 같았다. 늘 그는 이곳에 없는 것 같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 온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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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8-06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좋아하는데!^^

단예 2016-08-06 0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천천히 은희경작가 작품 전작중입니다. 근데 함께 읽는 책이 많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