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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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에게서 신은 떠나간지 오래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인간. 의지할 곳 없는 인간. 인간을 대표하는 작중화자는 흰 것이라는 결벽에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다. 그녀는 흰 것의 속성에서 신을 발견하고, 신의 절대성을 흰 것에 투영한다. 그러므로 화자에게 흰 것은 어린아이다. 어린아이는 순수하다. 순수한 것은 완전하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흰 것에 발자국을 찍는 일이다.


2.


한강의 소설 <흰>은 수상과 단상. 그리고 질서라는 방식에 의존한 소품형태의 소설이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시에 더 가깝다.


같이 읽고 있는 <글쓰기 동서대전>에 따르면, '수상'이란 그때그때 떠오르는 느낌과 생각을 의미하고, '단상'은 문득 스쳐가는 단편적인 생각을 뜻하며. '질서'란 떠오르는 생각이나 스쳐 지나가는 깨달음이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써 내려가는 글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소품'은 글의 길이나 분량에 구속받지 않고, 장르나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소재나 주제에 상관없이 느낌이 있는 대로 혹은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분방하게 써 내려가는 산문의 일종이다.


이 책에는 마음을 적시는 구절이 한가득이라 어떤 부분을 인용해야 할지 도무지 가늠이 서지 않는 장점이 있다. 그렇지만 그 중에서도 이 문장을 가장 먼저 옮겨오고 싶어서 기록해본다. 당신에게 흰 것을 주고 싶다는 바람은 완벽함을, 부활을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단순한 의미의 소망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품고 있는 소망.


40.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흰 것들을 건넬게.


더이상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게.


이 삶을 당신에게 건네어도 괜찮을지.


3. 어둠이 있기에 더욱 빛날 수 있는


118. 나는 당신에게 깨끗한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잔혹함, 슬픔, 절망, 더러움, 고통보다 먼저, 당신에게만은 깨끗한 것을 먼저. 그러나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종종 캄캄하고 깊은 거울 속에서 형상을 찾듯 당신의 눈을 들여다봤다.


<흰>은 명백하게 흰 것들을 말하고자 한다. 표제로 삼은 단어들은 모두 흰 것의 특성을 지닌 단어들이며, 표제 속의 문장에서 그들의 흰 성질은 아름답고, 강렬하고, 순수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러한 흰 것은 작중 화자의 기억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냐면. 검은 것들과 공존하고 있는 이미지 속의 흰 것으로 존재한다. 흰과 검의 대비 속에서 강렬하게 빛나는 흰. 그렇게 작중화자의 흰 것에 대한 갈망은 더욱 깊어진다. 본문 중간중간에 배치된 차미혜 작가의 사진은 그것을 시각적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34.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희어 보인다.  

 

 

 

 

69. 달이 유난히 커다랗게 떠오른 밤, 커튼으로 창들을 가리지 않으면 아파트 구석구석으로 달빛이 스며든다. 그녀는 서성거린다. 생각에 잠긴 거대한 흰 얼굴에서 스며나오는 빛, 거대한 캄캄한 두 눈에서 배어나오는 어둠 속을.


126.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 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 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


4. 소멸되어가는 흰 것. 찰나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다.


오로지 작중화자의 수상과 단상으로 부터 기록된 문장이라서 이 책의 서사가 완벽한 형태로 구축되어 있진 않다. 그렇지만 35페이지 '빛이 있는 쪽'에서 <흰>에 숨겨진 서사의 도화선을 읽을 수 있다. "이 도시의 유태인 게토에서 여섯 살에 죽은 친형의 혼과 함께 평생을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남자의 실화"를 따라감으로써 작중화자는 자기가 태어나기 몇 전에 조산으로 사망한. 그녀가 삶으로 빛나기 전에 죽음으로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언니와 오빠의 기억을 꺼내온다. 이 기억을 떠올리며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낀다.


117. 만일 당신이 아직 살아 있다면, 지금 나는 이 삶을 살고 있지 않아야 한다.

지금 내가 살아 있다면 당신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어둠과 빛 사이에서만, 그 파르스름한 틈에서만 우리는 가까스로 얼굴을 마주본다.

 

감사함과 미안함. 그리고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동시에 품고 있는 언니라는 존재. 작중화자의 언니는 위에서 언급한 유태인 남자처럼 작중화자의 삶 속에 존재함으로써 화자 대신에 어둠으로부터 흰 세상을 바라보는 상반된 장면들을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살아있는 내가 아닌 이미 죽어서 떠도는 그녀의 의식이 바라보는 흰 것은 위의 사진처럼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흰 것이 아니다. 소멸되어가는 찰나의 흰 것. 언젠가는 사라질 흰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것 역시 흰 것의 아름다움을 지탱하는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했다.


58. 물과 물이 만나는 경계에 서서 마치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파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동안(그러나 실은 영원하지 않다- 지구도 태양계도 언젠가 사라지니까), 우리 삶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만져진다. 부서지는 순감나다 파도는 눈부시게 희다. 먼 바다의 잔잔한 물살은 무수한 물고기들의 비늘 같다. 수천수만의 반짝임이 거기 있다. 수천수만의 뒤척임이 있다(그러나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


59. 삶은 누구에게고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이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5. 질문들


63.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얼굴로, 몸으로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을 거슬러 그녀는 계속 걸었다.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67. 어느날 그녀는 굵은 소금 한 줌을 곰곰이 들여다봤다, 희끗한 그늘이 진 굴곡진 입자들이 서늘하게 아름다웠다.


71. 레이스 커튼이 창을 가리고 있다. 더렵혀지지 않는 어떤 흰 것이 우리 안에 어른어른 너울거리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정갈한 사물을 대할 때마다 우리 마음은 움직이는 것일까?


74. 왜 흰 새가 다른 색의 새와는 다른 감동을 주는 것인지 그녀는 알지 못한다. 왜 특별히 아름답게, 기품 있게, 때로 거의 신성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81. 그때 왜 우리는 하필 백목련을 골랐을까. 흰 꽃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걸까, 아니면 죽음과? 인도유럽어에서 텅 빔과 흰 빛, 검은과 불꽃이 모두 같은 어원을 갖는다고 그녀는 읽었다. 어둠을 안고 타오르는 텅 빈 흰 불꽃들- 그것이 삼월에 짧게 꽃피는 백목련 두 그루인 걸까?


81페이지의 문장이 위의 궁금증에 대한 질문에 답을 주는. 그리고 소설 <흰>의 흰 것과 어두운 것들을 설명해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흰 빛은 텅 비어있고, 검은 것은 불꽃과 닮았다고 한다. 어둠을 안고 타오르는 텅 빈 흰 불꽃들이라고 했다. 사실 좀 어렵고, 긴가민가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작가는 흰 것이 내포하는 상반된 의미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흰 것은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완벽하게 순수한 공간일수도. 이미 소멸되어 사라져버린 텅 빈 공간이기도 하다. 앞의 흰 것은 삶을 의미하고, 뒤의 흰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작중화자는 앞의 흰 것으로 삶의 속성을 보며. 작중화자의 언니는 뒤의 흰 것으로 죽음의 속성을 본다. 앞에서 몇 번 이야기했던 박경리 선생님의 삶의 문학, 죽음의 문학 이것을 한꺼번에 포용하여 <흰>이라는 작품으로 만들어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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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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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정. 경쟁. 그리고 영혼의 성장


25. 그날 저녁 돈 아킬레의 현관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층계를 난간을 따라 한 계단 한계단씩 올라가기로 결정한 그 순간 릴라와 나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일인칭 전지적 시점의 화자인 '엘레나 그레코 = 나' 와 릴라라고 불리는 라파엘라 체룰로 간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작가 엘레나 페란테는 우정으로 끈끈하게 이어져있는 두 소녀를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 인물로 만들어냄으로써 긴장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 한가지를 만들어낸다.

'나'가 관찰하는 인물인 릴라. 실질적인 주인공인 릴라는 선천적으로 영리한 아이었다. 영리한 만큼 이기적이고, 굉장히 자존심도 세서 주변 사람들과 마찰을 자주 일으킨다. 그와는 반대로 화자인 '나' 엘레나는 섬세한 관찰력으로 인물의 개성과 인물간의 미묘한 관계를 잘 읽어내는 소녀로서, 그것을 바탕으로 타인의 호감을 사는데 능하고 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참을성이 강한 온화하면서도 다소 내성적인 성향의 소녀였다. 

4부작 소설의 제 1부인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의미하는 인물은 릴라다. 엘레나 페란테 작가는 릴라의 타고난 능력으로 엘레나를 이끌어주었던 일화들로 그녀의 유년기를 추억한다. 엘레나와 릴라는 이러한 성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망설임없이 서로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단짝 친구로 지낸다. 엘레나로서는 감탄사가 흘러나올 정도로 놀라운 릴라의 언어감각과 학습능력에 열등감을 느낄 때도 제법 많았지만. 그녀를 시샘하지 않고, 오히려 릴라로부터 적극적으로 배운다. 릴라도 엘레나에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항상 똑똑하고 멋진 친구로 남고 싶어서 엘레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는다. 그렇게 사람 모두 성장한다.


29. 오르막길이든 내리막길이든 릴라와 나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고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끔찍한 그 무엇인가를 향해 나아가야만 했다. 살아온 세월이 길지 않을 때에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바탕에 있는 혼란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해야 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것이다. 어른들은 어제, 그제, 길어봤자 한 주 전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며 내일을 기다린다. 그들은 그 이상의 것에는 관심이 없다. 


2. 다른 방식의 '부'


나폴리 4부작의 제 1부 <나의 눈부신 친구>의 두 소녀는 서로 다른 방식의 삶선택하게 된다. 엘레나는 릴라와 자주 의견을 나누었던대로 '정신적인 '부'를 선택한다. 반면에, 릴라는 '물질적인 부'를 선택한다. 그 이유는 그날 밤 벌인 폭죽놀이 사건에서 '경계의 해체'라는 경험(114p)을 했기 때문이다. 그 날 그녀는 '부'에 의해서 난폭해지는 인간의 본성을 발견한다. '부'에 지배되어버린 오빠의 광기는 그 날 그녀가 본 가장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그날 밤의 심리묘사.


114. 날씨가 아주 추웠는데도 갑자기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너무나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너무나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구역질이 나면서 그녀를 비롯한 모든 이를 감싸고 있던, 언제나 존재했지만 그때까지 한 번도 인지하지 못 했던 철저히 물질적인 그 무엇인가가 사람과 사물의 테두리를 잘게 부수며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릴라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폭발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연기가 자욱한 테라스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고함소리에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의 외침에서 나는 울림은 알 수 없는 세계의 새로운 법칙의 지배를 받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구역질이 더 심해졌고 사투리가 뒤섞인 사람들의 말투가 어색하게 들렸다. 단어 하나하나가 사람들의 축축한 입에서 분비되는 타액으로 젖어드는 것이 참을 수 없게 느껴졌다.


릴라는 혐오감과 함께 자신도 그 본능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음( '불품없는 존재들이구나')을 깨닫게 되면서, 항복을 선언하듯 자의반 타의반 물질적인 '부'를 선택한다.


릴라의 마지막 선택.

330. 부의 의미가 다시 한 번 변했다. <작은 아씨들> 같은 책을 출판해 부와 명성을 얻고 제복을 입은 하인들이 금화로 가득 찬 보물 상자를 들고 행렬을 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성에 쌓아둘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지만 우리 존재를 확고하게 해주고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소중한 사람들의 '경계의 해체'를 막아줄 시멘트 같은 돈의 이미지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부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구체성과 일상적인 행동, 그리고 협상이었다.

사춘기 시절 부에 대한 이미지는 여전히 둘도 없는 신발 같은 어린 시절의 공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귀족처럼 돈을 쓰고 싶어 하는 리노의 광폭한 욕구의 형태로 나타났다. 또 부는 환심을 얻으려고 텔레비전, 파스타, 반지를 사는 마르첼로에 의해서도 나타났고, 온갖 종류의 햄을 팔고 빨간색 오픈카를 가지고 있으며 4만 5천 리라쯤이야 푼돈이라는 듯이 돈을 쓰고 릴라의 그림을 액자에 넣고 치즈 같은 식료품 말고도 신발을 팔기 위해 자재비와 인건비에 투자하고 자신이야말로 동네에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도래하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스테파노에 의해서도 재현되었다 부라는 것은 생활 속에 이미 내포된 것이다. 거기에는 영광도 화려함도 없었다.  


릴라는 그날밤을 시작으로 '부'를 얻기 위한 욕심 때문에 평점심과 의지력 무너지는 모습을 여러번 목격하고, 무너짐의 순간에는 어김없이 '악'의 얼굴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의 속성을 깨달은 그녀는 '부'의 노예가 될 바에야 차라리 '부'를 다스려야겠다고 결심한다. 어릴적 두려워했던 돈 아킬레의 '부'(25p)를 부의 본모습으로 인정하고,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게 된다. 이런 내면의 논리적인 정당화 과정을 거쳐 '부'를 선택한 결과. 릴라의 가문은 구두수선으로 푼돈을 버는 흙수저 가문이었지만, 부유한 스테파노과의 결혼을 결심함으로써 마침내 신분의 상승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421. 그 허영에 찬 모습이란! (...) 이들은 모두 귀족처럼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내가 알기로는, 아니 모두가 알다시피, 옷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돈을 빌려야 했을 것이다. (...) 사람들이 허례허식을 차리는 데 쓴 돈은 이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렇게 릴라는 악마와 손을 잡았다. 악마와 손을 잡아 '부'를 검어쥔 릴라는 자신이 타락했음을 잘 알게 되었다. 그래서 릴라는 416.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엘라나에게 전한다. 이 소설에서 '눈부신 친구'는 원래 릴라였지만, 이제 릴라는 자신의 내면을 키워가는 엘레나를 향하여 릴라의 '눈부신 친구'로. 뛰어난 사람이 되어달라고 말한다.


3.


난 너와 같은 무리를 한 번도 미워해본 적이 없노라.

부정을 일삼는 모든 정령 중에서도 / 너 같은 익살꾼은 내게 조금도 짐스럽지 않구나.

인간의 활동이란 쉽사리 느슨해지고 / 언제나 휴식하기를 좋아하니 내 기꺼이 그를 자극하여 /

악마의 역할을 해낼 동반자를 그에게 붙여주겠노라.

작가는. 그리고 우리는 부자와 결혼하는 릴라를 보면서 왜 악마와 손을 잡았다고 비난할까?

그것은 이들이 일군 부가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

197. 솔라리네 주점은 과거부터 고리대금을 하는 마피아 집단과 밀수꾼들의 소굴이었고 왕정복고주의자들의 자금모집 수단이었다고 한다. 그는 또 돈 아킬레가 나치와 파시스트들의 스파이 노릇을 했고 스테파노는 그 애비가 검은색 가방에 모은 돈으로 식료품점을 키운 것이라고 했다.


199. 저들의 돈은 다른 사람들의 굶주림 덕분에 생긴 거고 이 자동차는 대리석 가루가 섞인 빵과 암시장에서 썩은 고기를 팔아서 마련한 거래. 저 정육점은 화물기차를 털어서 훔친 구리로 마련한 거고 저 주점은 마피아와 밀수꾼과 고리대금업자의 소굴이야.

200. 어두운 죄악으로 골수까지 오염된 이들은 모두 그녀의 눈에 냉혹한 범죄자나 아니면 고작 빵 부스러기 때문에 범죄자에게 협조한 공범자들로 비춰졌다.


릴라는 이러한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결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여성의 제한적인 권리와 가부장제의 관습 때문에 사랑하지도. 아니 증오했던 솔라리 가문의 마르첼로와 결혼하게 될 위기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기왕 저질러 질 일이라면. 차악을 택하자 싶은 마음(1부에서는 스테파노에게 마음이 있었다)에 그녀는 스테파노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보았다.

정당하지 못한 힘을 빌리는 한이 있더라도 릴라가 꿈꾸었던 번째 부의 지도(수제화 명문 가의 꿈)를 완성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는 혼인을 하기로 마음먹고 귀부인처럼 생활한다. 한편, 릴라의 변심과 불안정한 상태를 곁에서 지켜보며. 물질적인 '부' 보다는 정신적으로 안정된 '부'가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는 것을 굳게 다짐하며 공부에 힘을 쏟는 엘레나는 릴라의 화려함을 구경하면서 잠시동안 아래와 같은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


429. 그녀는 그 찬란한 세계에 스스로 갇혀 그곳에서 가장 좋은 것만을 취했다. 그녀가 취한 가장 좋은 것은 그녀 옆에 있는 청년과 이 결혼과 이 예식 그리고 오빠와 아버지를 위한 신발 놀이였다. 이 모든 것은 면학도로서 내가 걸어온 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이다. 나는 완전히 홀로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

4.


이제 고작 1부가 끝났다. 아직 확실하지 않은 소설에 대하여 이렇게 길게 말하는 이유는

첫째, 60대의 릴라를 담은 프롤로그에서 그녀의 선택을 후회하는듯한 발언(17. 릴라는 말 그대로 증발하기를 원했다. 그녀를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뿔뿔이 흩어져서 그녀에 대한 그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을 엘레나에게 했기 때문이며,

둘째, 소설 속의 엘레나와 소설을 쓴 엘레나의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만약, 이 소설이 자전적 소설이라면 엘리나의 선택이 옳고, 릴라의 선택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또 하나의 근거가 된다.

셋쩨, 소설의 흐름이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과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과 닮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1부의 끝에 다음과 같은 반전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구두는 릴라의 순수한 꿈과 관련이 있다. 마르첼로가 그녀가 만든 신발을 신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가 선택한 '부'에 균열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442. 마르첼로는 체룰로 부자가 만든 남성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것도 진열장에 전시된 금색 버클이 달린 모델이 아니었다. 마르첼로가 신고 있는 구두는 예전에 릴라의 남편 스테파노가 구입한 바로 그 신발이었다. 릴라가 수개월 동안 두 손을 망가뜨려가며 만들었다 분해하고, 다시 만들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완성시킨 바로 그 신발이었다.

2부가 출간 된 상태였다면 이어서 곧바로 읽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출간될 때까지 조금은 기다려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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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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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진은 왜 살인마가 되어야 했나?


작가의 말. "인간은 살인으로 진화했다"의 첫 문단을 보면 정유정 작가는 "인간은 악하게 태어난 것도, 선하게 태어난 것도 아니다. 인간은 생존하도록 태어났다." (...) "선이나 악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선과 악이 공진화했으며, 그들에게 살인은 진화적 성공, 즉 경쟁자를 제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라는 데이비드 버스라는 진화심리학자의 주장을 소개한다. 이 주장은 <종의 기원>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모든 유전자의 작동 원인은 그것이 이타적이든 이기적이든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그 행위가 각 개체의 유전자 보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이기적 유전자>의 특성과도 맞물리는 이 주제는 누군가에 의하여 생존을 위협받던 사이코패스 주인공을 각성시켜 살인 기계로 만들어버렸다. 한유진이라는 사이코패스의 첫 살인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나지만, 악마가 깨어난 다음부터는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왜냐하면, 한유진이 살기 위해서는 한유진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아는 - 정체를 안다는 것은 생존을 위협한다는 뜻이므로- 주변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본능이 시키는대로 한유진은 살인하는 것에 매우 충실하게 반응했다. <종의 기원>은 유진이 저지르는 몇 건의 살인 기록과 살인 전과 후의 심리변화와 한유진의 주변세계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29. 책상 너머 테라스 유리문 안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염소 뿔처럼 곤두선 머리칼, 껍질이 홀랑 벗겨진 것처럼 시뻘건 얼굴, 흰자위만 불안하게 번득거리는 눈. 시각적 충격으로 정신이 다 아뜩해왔다. 저 시뻘건 짐승이 나라고...?


81. 수천 개의 감각들이 느릿느릿 나를 통과해갔다. 머리를 얼리는 한기, 내장을 뒤틀며 맹렬하게 번지는 불의 열기, 신경절 마디마디에서 폭발하는 발화의 전율, 규칙적으로 뛰는 내 심장 소리. 왼쪽에서 출발한 칼날은 삽시에 오른쪽 귀밑에 이르렀다. 벌어진 턱 밑에선 뜨거운 피가 왈칵왈칵 솟구치며 내 얼굴과 계단참 벽과 바닥을 뒤덮어버렸다. 나는 눈을 감고 어머니의 머리채와 손을 집어던지듯 밀쳐냈다. 어머니는 쿵,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몸이 계단을 타고 미끄러지는 소리가 텅,텅,텅 울렸다. 이어 고요해졌다.


한유진이라는 껍데기 속의 들어있는 악마 (= 유전자). 인류라는 전체의 개념이 아닌 한유진 속의 악마라는 단일 개체로 봤을 때, 자신의 생존은 악마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정석주를 뛰어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붉은 소파>의 청년. 완벽한 냄새를 만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향수>의 그르누이의 목적과 비교했을 때, 가장 순수하고, 또 가장 잔인한 목적이었다.


삶의 의지가 누군가의 죽음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비극. 한유진의 "나는 왜 살인 기계가 되어야 했나?"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어머니의 일기장. 이 두 텍스트의 얽힘은 "인간은 살인으로 진화했다"는 <종의 기원>의 가장 일반적인 읽기방식이다.


2. 어머니의 일기장


259. 유진은 뇌 편도체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아이였다. 먹이사슬로 치자면 포식자. ..."유진이는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300. 포식자는 보통 사람과 세상을 읽는 법이 다르다고, 혜원이 말했다. 두려움도 없고, 불안해하지도 않고, 양심의 가책도 없고, 남과 공감하지도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남의 감정은 귀신처럼 읽고 이용하는 종족이라고 했다.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다고 했다.


유진이 유치원을 다닐 때 그린 잔인한 그림으로부터 이모가 유진의 공격성을 읽은 것(255. 유진 또래의 남자애들에게는 모든 여자가 다 엄마의 화신이고, 아이가 엄마 목을 잘라서 우산대에 꽂았을 땐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예기치 않은 사고로 형과 아버지를 한꺼번에 잃고 난 이후에 유진은 이모인 혜원에 의하여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로 분류된다.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으로 말미암아 유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물을 복용한다. 어머니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감시하고 그의 일과를 통제한다. 그가 좋아하던 수영선수라는 꿈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들인 유진 대신에 애정을 쏟을 존재로 해진을 그들의 가족으로 새롭게 받아들인다. 이것으로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을 사이코패스로 만들어버린 진단 하나로 인하여 유진의 자유의사와는 관계없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결정해버린다. 그리고 훗날. 진단 결과로 상상했던 모든 우려스러운 일들이 모조리 현실이 되어 이들 앞에 나타났다.  


300. 혜원은 '그날 일'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라고 했다. 유진이가 포식자로서 처음으로 '해치운 짓'이었다. 놔두면 언제든 반복될 행위라고 했다.


'그날 일'은 정말 유진이가 사이코패스라서 포식자의 본능이 나타난 것 때문일까? 나는 지원-혜원 자매를 외탁한 유민-유진 형제 사이의 강한 경쟁심때문에 우발적으로 '그날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다. 형제 간의 서바이벌은 단순히 장난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위험한 수준의 놀이였. 이 위험에도 아랑곳않고 서바이벌을 즐기는 형제의 강한 승부욕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서 찾은 어머니의 일기 중 일부 내용은 이 위험한 장난을 일으킨 강한 경쟁심의 우발성이 형제에게서만 아니라 그들의 어머니와 이모 사이에서도 일어날 수 있겠다 싶었다.


255. 돌이켜보면, 우린 어린 시절부터 자매라기보다는 경쟁자에 가까웠다. 연년생인 탓에 옷도 함께 입어야 하고, 책도 함께 봐야 했다. 혜원은 전교 1등을 도맡아놓고 하면서도 내가 글짓기대회에 나가 상 하나 타오는 걸 견디지 못했다. 똑똑하다는 칭찬을 밥 먹듯 들으면서 가끔씩 내 몫으로 오는 '어른스럽다'는 말을 참아내지 못했다. 내가 아끼는 세계문학전집에 제 이름을 큼직하게 써넣기도 하고, 내가 받은 상장에 중간 이름만 바꿔 제 상장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내 독후감을 훔쳐다가 제가 쓴 것처럼 제출해버리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 각자의 인생을 살게 된 후에도 우리 사이에는 늘 껄끄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데면데면한 것과는 다른, 기싸움에 가까운 대립이었다. 남편이 가끔 '처제가 나를 우습게 본다'라고 불평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상상력을 조금 보태자. 혜원은 어떠한 이유로 결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자식을 낳아서 키울 수 없는 이모가 자상한 남편과 어려움없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언니의 가정을 우발적으로 질투해서 조카를 사이코패스라고 진단했을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 언니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망쳤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혜원이 갖지 못한 것을 언니도 갖지 못하게 한 것이기에 255페이지의 혜원의 성격으로서는 가능한 행동일 수 있겠다. 상상해보았다.


악은 우리 유전자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이다. 그리고 악인은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나를 포함한 '누구나'일 수도 있다.는 작가의 두번째 명제에 따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유진에게 부여된 악의 근원이 사이코패스라는 선천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와 친척 관계에 있는 또 다른 악으로부터 유전적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면, <종의 기원>은 조종하는 Vs 억압된 악 이라는 새로운 대결 구도로도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말 383. 내가 왜 인간의 '악'에 관심을 갖는지에 대해 대답할 차례다. 평범한 비둘기라 믿는 우리의 본성 안에도 매의 '어두운 숲'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아나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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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6-08-24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히려 단예님이 한 추측이 반전이라는..이 책은 너무 반전이 없어서-

단예 2016-08-24 07:38   좋아요 0 | URL
반전은 없지용. 그래서 하나 짜봤습니다.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 - 이중섭의 삶과 예술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예술기행
허나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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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나영 작가의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은 이쪽 계통은 문외한인 나에게 이중섭 화가의 고난의 삶과 세상에 남긴 흔적으로 안내해 주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십대 시절 그녀는 이중섭 화가의 <흰 소>를 처음 마주하면서 느꼈던 흰 소의 굳건하고 의연한 인상 덕분에 미술인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는 현실적인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천재화가 이중섭에 대한 짝사랑은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으로 비로소 결실을 맺게 되었다.


2.


작가는 마치 순례 기행을 하는 것처럼 이중섭 화가가 생전에 머물렀던 고장(일본, 부산, 제주도, 통영, 진주, 대구, 서울 등)을 답사하고, 도시가 되어버린 현재의 공간에서 이중섭의 흔적을 찾으려 애쓴다. 물론, 사후 60년이 지난 뒤에서야 방문한 그곳에는 이중섭이 남긴 흔적보다는 이중섭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이 대부분이었다.

허나영 작가는 이중섭 화가의 어려웠던 시절의 삶과 어쩔 수 없이 일본으로 보낸 가족과의 재회를 꿈꾸며 절박하게 작품 활동을 했던 이중섭 화가를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을 우리들에게 소개한다. 대중들에게 공개된 이중섭 화가의 작품에 대한 여러 갈래의 전문가 해설들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자신의 의견도 간결하게 전달해준다.


민족화가 이중섭의 한국 화공이라는 정체성과 이중섭 화가의 분신으로 평가받는 소의 몸짓을 그린 역동적인 작품, 아이들. 특히 이중섭 화가의 자식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그려낸 군동화. 그가 머물렀던 고장의 목가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 풍경화, 그리고 담배를 감싸는 은지에 스케치(드로잉)를 한 은지화, 마지막으로 일본으로 떠난 아내와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와 엽서에 그린 작품들까지. <이중섭, 떠돌이 소의 꿈>에서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3.


이 책에는 작품의 모범 답안이 있다. 그렇지만 인상 깊었던 몇 가지 내용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느낀 것을 써보려 한다. 다음에 이중섭 화가와 관련된 작품을 다시 만났을 때를 위해서.


107. 이중섭이 그리는 아이들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특유의 간단한 윤곽선으로 아이들의 다양한 움직임을 그리고, 많지 않은 색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래서인지 이중섭의 군동화는 인기가 꽤 높다. 어쩌면 우리 역시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추억하고 있어서는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그림 속에서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이중섭이 그린 아이들은 즐거움, 행복, 기쁨 등 긍정적 감정으로 충만하다.


이중섭 화가가 그린 군동화의 특징은 작가가 소개하는 그대로다. 대표적으로 <서귀포 환상>이라는 작품이 그렇다.  

 

나는 이 작품의 밝음에서 이중섭 화가의 더 큰 쓸쓸함을 감지한다. 배고프고 추운 날의 추억이었지만, 온 가족이 함께 였었던 제주도에서의 1년 남짓한 시간. 그림에 담긴 찰나의 행복을 다른 시간으로 끌어왔다는 점에서 이중섭 화가는 작금의 힘든 현실을 어떻게든 이겨내려 애쓰는 마음이 느껴졌다. 이중섭 화가는 아름다운 순간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이러한 밝음을 과시하듯이 꺼내놓음으로써 조금씩 희미해져가는 희망을 채우고,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의지를 굳건하게 다지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SNS에 올리는 행복한 사진들처럼 말이다.


4.

이중섭 화가가 그린 소들의 모습은 조금씩 변화하는 그의 자화상을 옮겨 그린 것으로 생각된다.


144. 이중섭에게 소는 가장 오랫동안 그렸던 소재로, 오산학교 시절부터 소를 그려왔다. 소를 오랫동안 그린 것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다. 첫째로는 한국의 민족성을 상징하기 위한 소재로 소를 사용했다는 견해다. 일본 유학시절 당시 여자 친구였던 마사코에게 자신이 그린 것은 조선의 소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사실과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조선 유학생들 사이에서 소와 관련된 그림이나 연극이 공공연하게 만들어졌다는 점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중섭이 소로 한국의 민족성을 드러낸다고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한국의 화공이므로 한국적인 것을 표현해야 한다고 언급한 점에서 한국을 재표하는 동물로 소를 화폭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관점으로 이중섭이 그린 소는 불알을 강조한 수소라는 점에서 화가 자신의 은유적인 표현이라는 것이다.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이 어떠한 고난에도 굴복하지 않으며, '소처럼 무거운 걸음'을 걸으며 그림을 그린다고 쓴다. 조카 이영진이 회상한 서귀포 단칸방 벽에 있던 시 <소의 말>에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라면서, "맑에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라  쓰고 있다. 슬픈 현실이지만 희망을 갖고자 하는 이중섭의 심경을 담았다는 것이다.


146. 특이한 점은 소만을 단독으로 그린 소 그림에서 유독 거친 붓질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군동화나 소가 아이들이나 가족과 함께 있는 그림에서는 둥근 윤곽선으로 형태를 그리고 화면도 밝은 분위기가 대부분이다. 히자만 소가 단독으로 그려진 그림에서는 유독 매우 화가 나 있는 듯 거칠게 표현되어 있다.  

 

가난 때문에 가족과 생이별하게 되었어도 재능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우수한 작품을 남긴다면 잃어버린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이고 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그린 소의 모습은 이처럼 거칠었지만 위풍당당한 자신을 그대로 닮아 있다. 그러나 곧이어 소개하는 그림은 이중섭 화가의 자아와 그의 굳건한 믿음을 방해하려는 무언가의 싸움을 의미하듯 두 마리의 소가 서로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  

 

이 싸움을 두고 허나영 작가는 예술성만 쫓고 싶은 이상적 자아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적 자아의 싸움으로 해석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이것은 궁핍하지만 모든 어려움을 창작 활동을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뜻하는 흰 소와 이런 마음가짐으로 온 종일 창작 활동에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도무지 진전을 보이지 않는 현실에 대한 좌절감을 뜻하는 푸른 소의 싸움이 아닌까 싶었다. 실제로 그가 그린 작품들은 팔리긴 했지만 제 값을 받지도 못하거나 돈을 떼이기가 부지기수였고, 그나마 벌어들인 돈도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느라 탕진해버렸으니 말이다.


151. 이중섭에게 소는 바로 자신이다. 동시에 자신이 '한국의 화공'이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듯 한국의 소이기도 하다. 그는 다른 어떠한 소재보다 황소의 움직임 하나하나, 표정 하나하나를 더 자세하게 표현했다. 이는 이중섭이 얼마나 소와 하나가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다. 머릿속으로 익히고 가슴속에 새겨 손을 통해 표현되는 경지를 넘어 자신이 울 때 함께 울고, 괴로워할 때 함께 소리쳐주는 그런 존재인 것이다.   

시간차를 두고 그린 동일한 배경의 황소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노쇠함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듯이 그렸지만 살아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 어쩌면 이중섭 화가의 말년의 비극을 예고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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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
제임스 도티 지음, 주민아 옮김 / 판미동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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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크릿>처럼 설득력도 없이 우주의 기운 운운하며 '성공/처세'에만 매달리는 자기계발서를 매우 싫어한다.


2.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은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같은  '자기계발형 소설' 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믿어지지 않게도 이 이야기가 놀랍게도 모두 실화라고 한다. 그것도 신경외과 의사이자 달라이 라마의 후원을 받는 단체에 속해있으며. '연민과 이타심 연구 및 교육 센터'의 창립자'인 작가. 제임스 도티가 직접 겪은 일이라고 한다.

이 책은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딛고 일어난 자신의 인생담을 대중들에게 강연하던 중 이야기 자체에 흥미를 느낀 출판업자의 권유로 쓴 글이라고 한다.  


3.


<닥터 도티의 마술가게>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자기계발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주인공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한 사람의 멘토가 우연히 등장한다. 그 멘토는 자기 계발 공식을 하나씩 나열하고, 주인공은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배운다. 

루스의 마술로 이름 붙여진 이것을 작가는 1. 몸의 긴장 풀기, 2. 마음 길들이기, 3. 마음 열기, 4. 의도를 명확하게 하기로 분리하여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다. 이것을 멘토와의 대화로 풀어보고, 직접 요약정리까지 해준다. 요약한 바에 따르면 루스의 마술이라는 4단계 공식은 명상과 <시크릿>류 같은 로드맵 그리기 같았다. 그것을 받아들인 주인공은 당연하게 성공에 이르게 된다.


이 책의 해답이 수많은 자기 계발 작가가 내린 정답과 가까운 것은 맞지만, 이 책만이 유일한 정답을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꼈다.


4.


솔직히 처음에는 <시크릿>처럼 싱겁게 끝날 것 같아서. 이 책을 추천한 사람들은 정말로 제 정신이 아니구나 싶은 배신감도 들었다. 그런데 자신의 삶을 털어놓는 2부와 3부. 그의 소망대로 의사가 되기 위한 여정과 자신의 뜻대로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점점 오만해져가는 주인공. 그리고 롤러코스터같이 오르내리는 인생의 성공과 좌절의  과정을 읽으면서 <시크릿>과 조금은 다른 점들을 찾을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크릿>은 세속적인 성공 비법만을 다루는 책이지만, <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는 물질적 성공보다는 내면의 평화로움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책이다. 거기에 덧붙여 내면의 평화로움이 실제로 몸의 건강과 연결되는 이유 뇌와 심장의 연결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설득력있게 주장하는 책이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의 중요성은 ​도티 박사에게 찾아온 두 번의 커다란 위기를 겪으면서 드러나게 다. 7500만 달러를 날려버리고 파산했을 때, 그리고 임사체험을 겪을 때, 그를 지탱한 것은 물질적 풍요로움이 아니었다.  


271. 마음의 나침반. 미주 신경을 통한 뇌와 심장 사이에 존재하는 사실상 일종의 의사소통이다. 흔히 뇌가 심장에 많은 신호를 보낼 것 같지만 연구에서 밝혀진 바로는 심장이 뇌에 훨씬 더 많은 신호를 보낸다. 체내 인지 체계와 감정 체계는 둘 다 지능형이지만, 심장에서 뇌로 가는 신경 연결이 그 반대 경우보다 훨씬 많다. 우리의 사고와 감정은 둘 다 강한 힘을 갖고 있지만 강렬한 감정은 사고를 침묵시킬 수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강렬한 감정에서 쉽사리 빠져나올 수는 없다. 우리는 뇌를 합리형으로, 심장을 관계형으로 구분하고 둘을 따로 분리하지만 궁극적으로 뇌와 심장은 하나의 통합된 지능 체계 중의 일부다. 심장을 둘러싼 신경 회로망은 사고와 추론에 있어 필수적인 부분이다. 개개인의 행복과 집단의 안녕은 뇌와 심장의 통합과 공동 작업에 달려 있다. 루스가 나한테 시켰던 훈련은 내 몸 안의 두 개의 뇌, 다시 말해 '머리-뇌'와 '심장-뇌'를 통합하는 데 유용했을 것이다.


5.


147. "계속 그렇게 하면. 날마다, 매주, 매달, 해마다, 네 머릿속에서 그 창을 통해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건 뭐든 진짜 현실이 될 거야. 그 창 안에 있는 것을 네가 이미 가졌다고 상상하면 할수록, 또는 그 창 안에 있는 모습대로 네가 이미 되었다고 상상하면 할수록, 그 일은 더 빨리 이루어질 거야."


다시 고민한 결과, 정말 솔직하게 말해서 <닥터 도티의 마술가게>에서의 도티의 성공에 <시크릿>이 일정부분 맺어져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닥터 도티의 마술가게>는 <시크릿>처럼 당신이 품고 있는 모든 탐욕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성공'이라는 문제를 나와 타자. 개인과 사회로 확장시켜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평화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한다. 이것이 루시의 진심이었고, 이 사실 뒤늦게 알게 된 도티는 '마음의 글자'로 내면을 평화롭게 하는 비법을 밝혀내었다.


281. 가르침의 핵심이 마음의 문을 여는 것. 그건 바로 뚜렷한 의도와 목적을 갖고서 친절하고도 연민 어린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내가 마음을 빼앗긴 분야 중 하나는 뇌와 심장이 어떻게 역할하며 상호작용하는지 이해하는 것이었다. 연민, 친절, 배려는 뇌 안에서 그들만의 전형적인 테마를 구성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쪼록 작가의 진심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는데. 이 책을 만든 사람들이 앞부분을 너무 <시크릿>으로 만들어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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