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인생 강의 - 논어, 인간의 길을 묻다
신정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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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이 책은 EBS에서 2014년 5월부터 방영된 <인문학 특강>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재구성한 책이라고 한다. 유학의 대가인 신정근 선생은 논어를 통해 인간이 가야할 길은 무엇인가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학(學), 정(政), 서(恕), 군자(君子), 예(禮), 신(信), 인(人) 등. 7개의 주제로서 우리들과 함께 올바른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일곱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자로서의 인(人)이다. 나머지 여섯 가지는 인간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218페이지를 보면 유교의 모범적인 인간상인 군자의 정신을 계승한 인간(人에서 仁로 진화)이 공자의 가르침인 학(學, 수용), 정(政, 확산), 서(恕, 공유), 군자(君子, 주체), 예(禮, 외화), 신(信, 연대), 덕(德, 확산), 의(義, 기준)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각 챕터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을 골라 옮겼다. 거기에 간단히 생각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2. 학(學, 수용), 왜 배워야 하는가

 

25. 인간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 거리가 있는 거죠. 그러므로 사람에게 남겨진 과제는 현실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상, 목표 사이의 거리를 어떤 식으로 메워야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인간은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서 자기가 바라는 상태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 비밀이 바로 <논어>의 제일 첫머리인 '학'과 관련이 있습니다.

 

학은 배움을 뜻한다. 인간은 왜 배워야 하는가? 자신이 품고 있는 이상과 현실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배움이 필요하다고 신정근 선생은 이야기한다. 이런 과정에서 배움은 괴로운 과정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남들의 '인정욕구'를 바라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며, 그러한 타인의 '인정욕구'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자신이 가야할 목표를 위해 노력한다면 배움이란 고통이 아닌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3. 정(政, 확산),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49. 섭공이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대답하길, "가까이 있는 사람은 만족해서 기뻐하고, 멀리 있는 사람은 동경해서 살러 오려고 하는 것이지요." (...) 즉 정치라는 것은 나의 주위로 사람이 모이게 만드는 힘을 가진 것이라는 거죠.

 

정치란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나라를 만들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 공자가 말하기를 첫째, 인구가 많아야 한다. 둘째, 넉넉하게 잘살게 해줘야 한다. 셋째,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좋은 교육을 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조건으로 들었다. 신정근 선생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우리나라의 정치는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4.  서(恕, 공유), 다른 이를 받아들이다

99. 내가 원하는 쪽으로만 일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상대를 사람과 사람으로서 만날 수 있는 공유지대호 초대하는 것이죠. 나도 상대를 초대하고, 상대도 나를 초대하는 것, 이것이 '恕'이고, 그것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이 서로 존중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겁니다. 이것이  '恕'가 말하는 관용의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개인은 내가 원하는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배우면 된다. 그런데 내가 아닌 타인은 어떻게 해야할까?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란 없다. 다양성도 있고, 그러한 다양성 중에 충돌도 발생한다. 그러한 갈등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공자는 타인을 다스리려 하기 이전에 먼저 관용을 베풀어 그들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타자와 공존이 가능하면, 사람이 서로 적대하지 않고 신뢰하는 사회의 밑바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5. 군자(君子, 주체), 스스로 삶을 설계하라

 

115.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와 소인은 흰색으로 가득 찬 사람도 없고, 검은 색으로만 가득 찬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그 경계를 어느 쪽으로 끌고 가느냐, 군자 쪽의 면적을 넓히느냐, 소인 쪽의 면적을 넓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내가 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신정근 선생이 말하기를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 싶으면 어떠한 유혹이 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굳건한 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군자를 목표로 하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을 군자의 모델에 가깝게 갈고 닦는 것이며 그 다음에서야 범위를 넓혀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릴 수 있다고 말한다.

 

6. 예(禮, 외화),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길을 찾다.

 

137. 예는 오고가는 것이다. 가기만 하고 오지 않으면 예가 아니다. 오기만 하고 가지 않는 것도 예가 아니다. 사람은 예가 있으면 편안하고, 예가 없으면 위태롭다. (...) 예라는 것은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이라는 겁니다.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질지에 대해 고려하는 것이죠.

 

신정근 선생은 예라는 것이 자신의 권위와 기분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받아들여서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허심탄회한 대회가 중요할 듯 싶다. 자신과 주변사람들의 판단으로 예의 정도를 파악할 것이 아니라 예를 주고받아야 할 당사자와 긴밀히 대화를 해야 나중에 벌어질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예라는 것을 신경쓰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것은 예이니 말이다.

7. 신(信, 연대),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다.

 

182. 자하는 말했다. "군자는 신뢰가 쌓인 다음에 백성을 동원한다. 아직 신뢰가 쌓이지 않았는데 동원한다면 자신들을 혹사시킨다고 생각한다. 또 신뢰가 쌓인다면 다음에 충고(반대 의견)을 한다. 아직 신뢰가 쌓이지 않았는데 충고를 한다면 자신을 헐뜯는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인간관계에서 믿음이라는 것이 예를 행하기 전에 먼저 쌓아야 할 조건이 아닌가 싶다. 믿음이 쌓여야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수도 있을 것이고, 조언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며, 올바르게 배울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8. 인(人), 불가능하지만 시도하다.

 

213. 여러분이나 저나 모든 것을 다 갖추고 태어나지는 않았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실패했다고 내 의식의, 긴장의 끈을 다 풀어놓아 버리는 게 아니고, 늘 자기 실패를 끊임없이 되감았다는 거죠. 풀리면 다시 감고, 또 풀리면 다시 감으면서 늘 다시 풀발하려고 했고, 그렇게 다시 출발하는 과정에서 앞서 느끼지 못했던 의미와 뜻을 깨달으면서 결국 인생에, 자기에게 던진 문제를 자기 스스로 풀어냈다는 거죠.

 

공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려고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공자는 인간을 소인에서 군자로 탈바꿈시키고자 한 평생을 계몽에 매달린 인간이자. 성인이지만, 그 역시 그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다른 성인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각기 다른 천성과 계급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을 군자로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이고, 공자는 그것을 알면서도 하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공자가 생각하기에는 그래야만이 모든 것이 각자 제 자리에서 충실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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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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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5. 아가타 쥰세이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 눈동자도, 그 목소리도, 불현듯 고독의 그림자가 어리는 그 웃음진 얼굴도. 만약 어딘가에서 쥰세이가 죽는다면, 나는 아마 알 수 있으리라. 아무리 먼 곳이라도.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이 없어도...

 

소설이 시작되기도 전. 페이지 한 면을 가득 채운 이 문장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참고로 츠지 히토나리가 쓴 Blu 버전의 첫 문장은 이와 같다.

 

Blu 5. 사람이란 살아온 날들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소중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난 믿고 있다. 아오이가 그 날밤의 일을 완전히 잊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해도...

 

결론이 무엇이냐면. 이 소설은 아오이는 쥰세이와 떨어져 있긴 하지만. 도저히 불가능함을. 어떤 무엇으로도 떨어질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내가 본 에로스 중에서도 가장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에로스가 <냉정과 열정사이>에 담겨있다. 마치, 두 사람의 결합이 신이 설계한 하나의 약속으로도 느껴진다. 거기서 우러나는 감정들. 한 남자. 한 여자를 서로 얼마만큼 사랑하느냐에 담긴 숭고한 정신을 나는 존경한다. 마빈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다.

 

2.

 

미안한 만큼 아쉬움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오이와 준셰이 간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제를 마련해두고, 이 두 사람을 맺어주기로 약속했다면. 마빈이나 메미를 누군가의 빈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억지로 채워놓은 희생자. 사랑의 실패자로 만들기보다는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마빈와 메미의 고민과 매력을 솔직하게 다뤄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생긴다. 이 두 작가는 그럴 능력이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일인칭 시점의 서사를 파괴해야 했을 것이라는 점에서의 불가피함은 인정한다.

 

3.

 

3. 마빈은 사람의 마음속까지 파헤치고 들어오거나 모든 것을 알려 들지 않는다. 혼자서 점점 상처받아 흥분한 두더지처럼 몸을 사리지도 않는다. 이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슬픈 얼굴로 내게 말없는 비난을 하지도 않는다. / 비는 내게 도쿄를 생각나게 한다.

 

마빈은 불쌍하다. 비는 내게 도쿄를 생각나게 한다는 문장 여태껏 읽은 문장 가운데서도 손꼽을 정도로 잔인한 문장이다. 이것은 blu에서 메미와의 관계 중에 아오이를 외친 준셰이의 경우처럼 화가 치미는 상황이지만, 이 문장에 숨겨진 은밀함은 그것을 훨씬 넘어선다. 게다가 이 문장을 기어코 마지막에 붙여둔 이유는 다분히 고의적이다. 독백이라는 점에서 아오이와 독자만 알고, 마빈만은 절대로 모른다. 아오이는 마빈을 따돌린 채, 이렇게 은밀한 방식으로 쥰세이의 기억과 함께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이런 상황에서 아오이로서는 마빈이 이렇게 적당히 머물러주는 걸로 충분했을 것이다. 50 페이지의 '소유는 가장 악질적인 속박인걸요.' 이 말은 더는 당신과의 거리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며, 마빈을 향해 건네는 일종의 짧은 경고로 생각할 수도 있다. 

 

44. 나는 이 사람의 어디를 좋아하는 것일까. / 올바른 것. 물론 그렇다. 마빈은 공정하고 명석하다. / 허벅지. 이건 절대적이다. 마빈의 허벅지는 정말 아름답다. / 기지. / 관대함. / 차분한 말투. / 그리고... / (...) 그렇게 땀이 돋은 마빈의 이마를 만지면서, 하나라도 더 많이 생각해 내려 했다. 하나라도 더 많이 세어, 무엇인가를 정당화하려는 것이리라.

엄밀하게 말해서 아오이는 혼자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혼자서 4년을 잘 보냈으니. 그런 와중에 마빈이 아오이를 향해 다가왔고, 아오이는 그저 거절하지 않았을 뿐이다. ' 어쩌면 이것도 괜찮겠지' 이런 생각으로 작품 내내 아오이는 마빈을 사랑하고 있노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그녀의 말대로 무엇인가를 정당화하려는 몸짓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51. '조용한 생활. 온화하고, 부족함도 과함도 없는, 아주 순조롭게 흘러가는 나날'은 아오이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인 날이고, 이 나날들을 무려 4년이나 지속했다는 사실은 누군가로서는 매우 고통스러운 나날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마빈이 불쌍하다고 느껴졌다. 마빈이 아오이를 사랑한 것은 조용하고 온화하고 부족함도 과함도 없는 순조로운 나날을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4.

 

184. 나의 들판 (La mia campagna). / 과거 그렇게 부르며 사랑한 남자가 있었다. 들판처럼 넉넉하고 환한 표정으로 웃는 사람이었다. 들판처럼 섬세하고, 그러면서 마음 어딘가에 야만적인 것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당신의 반쪽. 나의 들판을 떠올리는 순간 그녀는 걷잡을 수 없이 쥰세이의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이미 예정된 일이라는 듯이. 아오이의 감성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이제 마빈과 함께한 시간은 사라져버렸고, 이 책을 읽고 있는 우리도 역시 사라져버렸다. 아오이의 의식 안에는 쥰세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194. 아주 조금 주저하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그 목소리의 온도를 좋아했다. / 쥰세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지금 당장 듣고 싶었다. 세월 따위 아무 소용없었다. / 지금이라면 좀 더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무서웠다고. 나도 너무 어렸다고.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았다고. 외로웠다고. 도쿄는 밀라노의 일본인 학교 속 일본과는 전혀 달랐다고. 외톨이였다고. 오직 쥰세이만이 그런 나를 알아주었다고. 한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다고. 사실 내내 붙어 다녔고, 오누이처럼 어디든 함께였고, 모든 일이 즐거웠다고. 행복했다고. 그리고, 그런 식으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고.

 

잠깐 쥰세이의 시점(blu)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쥰셰이가 아오이를 그리워하는 것은 그럴듯한 논리적 체계가 있었다. 쥰세이는 과거를 회복하여 미래와 이어주는 복원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도록 그런 천성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가장 아름다웠던 과거를 공유했던 아오이와의 재회를 통해 그의 인생을 복원하려는 의지 역시 논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203. 나는 돌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 돌아갈 장소. 줄곧 그런 장소를 찾고 있는 듯한 기분도 들지만, 한 번도 없었다. / 쥰세이가 보고 싶었다. / 기묘한 열정으로,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만났다고 해서 뭐가 어떻게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다만 쥰세이와 얘기하고 싶었다. 내 말이 통하는 사람은 쥰세이밖에 없었다.

 

211. 나는 생각한다. 나는 누구의 가슴속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내 가슴속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누가, 있는 걸일까. / 쥰세이가 보고 싶다, 고 생각했다. 쥰세이를 만나 얘기하고 싶다. 다만 그뿐이었다.

 

233. 쥰세이와 얘기를 하고 싶다. 이런 식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쥰세이는 이해해 줄 것이다. 설명하지 않아도. 단순하게. 그러리란 확신이 있었다. 과거에 그랬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데, 이 문장을 읽어보면 아오이가 쥰세이를 원하는 이유가 본능적인 끌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유와 예속의 선언과도 다를 바 없는 그녀의 진심.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이 순수한 문장이 매우 아름답게 느껴진다.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마빈을 기억에서 지워버려야 가능하다. 이제 책을 읽는 우리들도 선택해야 순간이 왔다. 이 선택은 아오이의 거친 열정으로 강요된다. 마빈이 계속 눈에 밟히면 이 소설이 마냥 아름다운 소설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마빈을 떠나보내면 이 소설은 완전히 아름다운 소설이 된다.

 

5.

 

237. 내 안에, 이만한 의지가 있었다니,  놀랍다. / 아무런 주저도 없었다. 그 때 이미 마음이 정해져 있었다. 알베르토의 공방에서, 아침 햇살 속에서, 나는 그저 인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피렌체에 간다는 것을. 두오모에 오른다는 것을. 쥰세이와 나눈 약속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는 것을

 

5페이지의 복선이 드디어 현실로 이뤄지는 순간이다. 그녀는 쥰세이와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약속대로 두 사람은 만났다. 그 순간의 묘사. 에쿠니 가오리 작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기대했던 대로 아름다운 문장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토록 열정적인 독백을 이제껏 읽어본 적이 없다. 시대를 초월한 작가들의 명문장을 읽으면서 요즘 들어 '신'은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신'은 가까이에 있다. 아오이가 쥰세이를 바라보는 것 또한 인간이 신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248. 비현실감. / 그건 말 그대로 비현실감이었다. 빛 속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하지만 그것이 환상이 빚어 내는 빛의 숭고함이란 것을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고,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환상이 빚어 내는 빛. 그것은 일몰 같은 숭고함으로, 우리의 온몸을 구석구석 채웠다. / 아가타 쥰세이 / 나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완벽한 신뢰감으로 바라보았다. 그 풍요롭고 부드러운 검은 머리칼과, 놀람과 기쁨에 일일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눈동자, 때로 겸연쩍게 미소 짓는 엷은 색 입술, 곱상하게 자랐음을 드러내는 목덜미./ 알고 있다. 과거 나는 그 하나하나를 사랑하였고,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사랑하고 있다.  

 

<열정과 냉정사이 Rosso>는 두 사람이 정확이 50 : 50의 관계로 만나지만,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다. 쥰세이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는 적극적이었지만, 쥰세이를 완전히 잡아채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쥰세이는 자신보다 더 크게 느껴질만큼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오이로서는 차마 쥰세이를 자신의 의지대로 붙들어둘 수 없었던 것이다. 그저 쥰세이가 그녀를 붙잡아주길 바라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한없이 사랑에 약한 존재였고, 쥰세이로부터 아무런 말이 없었으니 아오이로서는 또다시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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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태엽 오렌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2
앤소니 버제스 지음, 박시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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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천적인 사이코패스의 내면. 살해 장면의 섬뜩한 묘사가 압권인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을 읽던 중에. 사이코패스를 다룬 다른 작품은 어떤 작품이 있고,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해서 네이버에 사이코패스를 검색했다. 그랬더니 <악의 교전>을 비롯해서 몇몇 작품이 올라왔다. 그 작품 가운데 눈길을 끈 작품 하나가 바로 앤서니 버지스 작가의 <시계태엽 오렌지>였다.   

 

2.

 

195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화자이자 주인공. 알렉스의 회고록 형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린 시절의 알렉스 패거리를 지어 다니면서 만만해 보이는 어른에게 이쁜 쩐을 갈취하고 그 돈을 유흥에다 썼다. 전에도 이런 일로 소년원을 들락거렸던 알렉스는 당시에 유행했던 밀크바에서 우유에 섞은 마약(칼)을 마시고 환각상태에 취해서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술집을 아지트삼아 하루를 보내곤 했다.  

 

소설에서 '이쁜 쩐' 이라고 불리는 이 패거리의 유흥비는 그날 벌어서 그날 다 써버리는 것이 원칙이었다. 왜냐하면, 쩐이라는 것은 없을 때 훔치면 되니까 소중하지도 않았고, 그걸로 경찰한테 꼬리를 잡히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 돈을 들고 있다가 경찰에게 잡힐 바에야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할머니들에게 공짜로 술을 대접하면 경찰이 패거리를 범인으로 의심하더라도 지금까지 계속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알리바이를 만들어주기도 했던 것이다.

 

미성년자들에게 마약과 술을 팔면서 돈을 버는 어른들, 술값을 대신 내줬다고 그들의 범죄를 못본체 하는 어른들. 그리고 가족의 무관심 (그 외 이 소설에서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학대와 차별과 빈곤 같은 것들) 그들이 더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언급된다. 앤서니 버지스 작가는 알렉스가 사이코패스가 된 원인으로 개인의 문제보다는 사회의 문제가 더 크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3.

 

알렉스 패거리의 간덩이는 어른들의 비호와 무관심 아래 점점 더 커졌다. 고삐가 풀려버린 그들의 자유로움은 폭행과 강도를 넘어서 무장강도. 집단강간. 그리고 안타깝게도 결국에는 살인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사건에서 알렉스는 동료들의 배신으로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사건의 무거움을 인정받아 소년원이 아닌 감옥에 14년 동안 갇히게 된다. 그가 패거리 생활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 삶의 유일한 낙이었던 음악과도 이별하게 되었다. 그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하는지는 이 문장을 통해 알 수 있다.

 

43. 음악이 흘러나왔어. 아, 축복, 축복, 천국! 나는 천장을 향해 벌거벗고 누웠지. 베개 위에 올린 팔에 대갈통을 괴고 눈깔은 감고 천상의 기쁨에 젖어 입을 벌린 채 아름다운 음악의 흐름을 들으면서. 아, 그것은 아름다움과 화려함의 화신이었지. 트럼본은 침대 밑에서 황동색의 음을 울려대고, 대강통 뒤에서는 세 개의 트럼펫이 은색으로 불타올랐고, 문가에서는 팀파니가 내 속을 흔드는 듯 달콤한 천둥소리를 내고 있었지. 아, 기적 중의 기적이었어! 그리고 그때 희귀한 천국의 금속으로 빚은 새처럼, 아니면 완전한 무중력 상태의 우주선 안에서 흐르는 포도주처럼, 바이올린 독주가 다른 현악기들의 선율을 타고 들렸지. 다른 현악기 소리가 비단으로 만든 새장처럼 내 침대를 둘러싸더군. 그러고는 플루트와 오보에가 백금으로 만들어진 벌레처럼 아주 두껍고 달콤한 금과 은의 음악을 파고들었지. 난 그런 축복 속에 있었던 거야.

 

4.

 

소설은 몇 가지 주제를 동시에 이야기하는데. 첫째는 위에서 말했듯이 청소년들의 일탈을 막지 못하는 허술한 시대정신의 비판과 둘째는 정치인들이 죄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것에 숨겨진 비인간적인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14년 형을 받은 알렉스에게 영국 정부는 정치범의 수용공간의 부족을 이유로 알렉스의 폭력성을 제거하는 어떤 실험을 받겠다고 사인하면 곧바로 석방시켜 주겠다고 제안한다.

 

111. 얘를 첫 케이스로 삼으면 되겠군. 젊은데다 대담하고 사악하니까.  

 

루도비코 요법(112~142)이라는 이것은 조건반사를 통하여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무의식에 심어놓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이 방식은 조건반사를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음악이나 성적인 행동, 문학과 예술(이 소설에서는 음악)을 이용하는데, 이것은 예상치 못한 빈번한 순간에 알렉스를 두려움에 노출시키게 하였다.

 

두려움에 젖어 서서히 갱생되어가는 알렉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그들은 이제 알렉스를 사회로 돌려보내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알렉스의 자유의지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식이었다. 좌파 지식인의 비판대로 완전한 인격살인이라고 불릴 만했다. 더욱이 알렉스 같은 범죄자가 아닌 다른 케이스로. 가령, 정치적인 대립으로 감옥에 갇힌 억울한 사람들에게 이 실험을 행한다고 가정해볼 때, 루도비코 요법을 실행하겠다는 것은 인간의 사상적 자율성을 극한으로 제한하는 전체주의 국가로의 선언과 다름이 없었다.  

 

183. 넌, 내 생각에도, 죄를 저질렀어. 그렇지만 그에 대한 처벌이 너무 심했어. 저들은 너를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었어. 네겐 선택할 권리가 더 이상 없는 거지. 넌 사회에서 용납되는 행동만 하게 되었어. 착한 일만 할 수 있는 작은 기계지. 이제 똑똑히 알겠구나, 조건반사 기법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음악이나 성적인 행동, 문학과 예술,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을 주는 근원인 게 분명해.

 

<시계태엽 오렌지>에서는 냉전시대를 살고 있는 정치인들의 권력싸움도 소재로 삼는다. 알렉스 개인에게 벌어진 사건이 국가적인 문제로 확대되는 것이다. 루도비코 요법을 허용하려는 전체주의 우파 정치인에 대항하여 183을 말하며 187을 주장하는 좌파 정치인들도 있었다. 과거에 알렉스 패거리들에게 아내를 잃은 작가 F. 알렉산더와 그의 동지들은 알렉스의 사례를 언론에 폭로하여 루도비코 요법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알리려고 한다.

 

187. 넌 아주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어. 이 사악하고 교활한 현 정부가 다음 번 선거에서 다시는 복귀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야. 현 정부의 제일 큰 자랑은 지난 몇 달 동안 시행한 범죄 통제 정책이지. (...) 야만적인 어린 깡패들을 경찰로 모집한 것,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고 의지력을 갉아먹는 조건 반사 기법을 도입하는 것 말이야.

 

188. 저들은 자신의 아들들이 너처럼 불쌍한 희생양이 되기를 원할까? 현 정부는 무엇이 범죄인지 자의적으로 결정하고 자기들을 언짢게 만드는 사람들이면 누구든 생명력과 용기와 의지력을 빼앗아버리려고 하는가?

 

그러나 이 시대의 좌파들도 우파들처럼 알렉스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 존중하기보다는 현재의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정치적인 선전도구로 이용하려 들었다. 앤서니 버지스가 보기에 좌나 우나 정치인들은 다 똑같았다. 조지 오웰이 풍자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F. 알렉산더가 진실을 알아버린 탓일 수도 있겠다.

 

196. 음악을 그렇게 사랑했던 내가 침대에서 기어 나와서 소리를 지르면서 벽을 쿵쿵 두드렸지. "멈춰. 멈추라고, 소리를 낮춰!" 그러나 음악은 계속되었고 오히려 더 커진 것 같았지. 그래서 주먹이 붉게 피범벅이 되고 피부가 찢겨나가도록 벽을 치고 소리를 질렀어. 그래도 음악은 멈추지 않았어. 그때 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작은 침실을 뛰쳐나가서 아파트의 현관문으로 갔지만 그 뭄은 밖으로 잠겨 있었기 때문에 나갈 수가 없었지. 그러는 동안 음악 소리는 점점 커졌고, 마치 무슨 의도적인 고문 같았지.


198. 기절하기 바로 직전 난 깨달았지. 이 끔찍한 세상에서 나를 위해줄 놈이 하나 없고, 벽 너머로 들리던 음악도 나의 새 동무라는 놈들에 의해 계획된 것이며, 그런 일이 벌어진 이유가 놈들의 더럽게도 이기적이고 오만한 정치 때문이라는 사실을.


201. 친구, 어린 친구여, 대중들은 분노로 활활 타고 있단다. 진짜로 넌 저 오만한 악당 놈들이 재집권할 가능성을 없애버렸다. 놈들은 영원히 사라져버릴 거야. 넌 '자유'를 위해서 아주 훌륭한 일을 했지. (...) 만약 내가 죽어버렸다면 너희 정치하는 자식들에게는 훨씬 더 좋았겠지. 그렇지 않냐. 이 가식적인 배신자 동무들아.

 

5.

 

얼마 지나지 않아 우파 정치인의 대표는 병상에 누워있는 알렉스를 방문하고, 아래와 같은 덕담을 건네며 사진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우스꽝스러운 풍자를 봤을 때, 좌파 정치인들이 알렉스를 이용해서 언론에 폭로한 선제공격은 매우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우파 정치인은 루도비코 요법으로 자유의지가 제거된 알렉스를 원래의 상태로 돌려놓기로 약속했고, 곧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알렉스를 위해서 국립 음반 보관소에서 음악 관련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

 

207. 나와 내가 각료로 있는 현 정부는 네가 우리를 친구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래, 친구지. 우리가 너를 원래대로 돌려놓았잖니. 넌 최고의 치료를 받고 있단다. 우리는 네게 해를 줄 생각은 전혀 없단다. (...) F. 알렉산더라는 이름의 불온한 책을 쓰는 작가가 있단다. 네 피를 보겠다고 떠들어대고 있지. 칼로 너를 찌르고 싶어서 제정신이 아니란다. 그러나 넌 지금 그 사람으로부터 안전하다. 그 자를 격리시켰으니까.

 

6.

 

알렉스는 정치인들의 다툼 덕분에 14년 형에서 2년 만에 석방되었고 게다가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알렉스는 예전처럼 다시 패거리를 모으고 의미 없는 하루를 이어간다. "자 이제 어떻게 될까?"로 시작하는 1부와 3부. 알렉스의 내면에 무언가 변화가 찾아온다. 아무 의미가 없었던 '이쁜 쩐'. 공짜 술을 대접하기 위해 식탁에 꺼내놓은 돈이 갑자기 소중하게 느껴졌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과거 동료의 모습으로부터 올바른 삶의 고민과 자극을 받기도 한다.

 

알렉스는 이것을 철이 들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이라고 고백한다. 결국, 과거의 방탕한 생활은 철이 없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의 삶을 회고하고, 작별을 선언했다. 세상은 구리고 더러울 수 있지만. 인간은 자연스럽게 철이 들게 마련이며. 각자 스스로 올바른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건네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222. 청춘은 가버려야만 해. 암 그렇지.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쬐그만 인형과도 같은 거야. 양철과 스프링 장치로 만들어지고 바깥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있어 태엽을 끼리릭 끼리릭 감았다 놓으면 걸어가는 그런 인형. 일직선으로 걸어가다가 주변의 것들에 꽝꽝 부딪히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청춘이라는 건 그런 쬐그만 기계 중의 하나와 같은 거야.

 

223. 여러분은 이 어린 동무 알렉스와 같이 고통을 느끼면서 여기저기를 다 다녔고, 하날님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놈들이 여러분의 동무 알렉스에게 집적대는 것을 보았어. 그게 다 내가 어리기 때문이었지. 그러나 이 이야기를 끝내는 지금 난 더 이상 어리지 않아. 알렉스는 어른이 되었단 말이야. 그렇고말고. 그리고 내가 지금 가는 곳은, 여러분, 여러분은 갈 수 없는 나 혼자만의 길이야. 내일도 향기로운 꽃이 피겠고, 더러운 세상이 돌아가겠고, 별과 달이 저 하늘에 떠 있을 거고, 여러분의 오랜 동무 알렉스는 홀로 짝을 찾고 있을 거야. 엄청 구리고 더러운 세상이야. 여러분, 자 이제 여러분의 동무로부터 작별 인사를. 그리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다른 놈들에게는 커다란 야유를. 엿이나 먹으라 그래.   

 

7. 요약

 

알렉스는 사이코패스다. 사회의 잘못이 그를 사이코패스로 키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말살하려는 모든 행위는 거부한다.

좌파나 우파나 똑같다.

질풍노도의 청춘은 자연스럽게 지나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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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Blu 냉정과 열정 사이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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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30. 하늘은 늘 변한다. 구름은 늘 자유롭게 모습을 바꾸어 간다. 하늘을 올려다본다는 것은 마음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하늘을 그릴 때면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았다. 여러 가지 하늘이 있듯이, 여러 가지 인간이 있다. (...) 낮은 하늘, 높은 하늘 / 넓은 하늘, 좁은 하늘 / 파란 하늘, 시커먼 하늘 / 맑은 하늘, 뿌연 하늘. 어느 하늘도 하늘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이 머리 위에 있으므로 나는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냉정과 열정사이>의 나. 쥰세이는 여러 가지 하늘이 있듯이, 인간도 여러 가지 성격의 인간이 있음을 털어놓으며,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우리에게 구하고 있다.


204. 나는 아직도 8년 전의 과거를 질질 끌며 살아가고 있다. 인류는 미래에서 희망을 보려 하는 동물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복원사는 직업상 과거를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가는 동물인 것이다. 

206.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낼 수 없다.

이러한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쥰세이의 조금은 남다른 성격에 따르면 쥰세이의 사랑은 틀린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랑일 뿐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깨달음과 자기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그의 독백은 끝내 메미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다른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일방적인 선고. 이로 인한 메미의 절규와 상실은 쥰세이에게. 그리고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소설 자체로서도 매우 아픈 손가락일 것이다.  


167. 나는 나야, 누구도 대신할 수 없어. 절대로 그런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 (...) 동정받고 싶지 않아. 여자에게 동정만큼 잔혹한 건 없단 말이야. (...) 나는 아오이가 없는 공간을 메워 주려고 쥰세이를 사랑한 게 아냐. 쥰세이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난 이렇게 살 수 없어. 더 이상 모욕당하기 싫단 말이야.   


2.


쥰세이의 미술 복원사로서의 천성과 재능. 그리고 그의 손에 의하여 작품이 복원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황홀함(186~187)은 사물을 넘어서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완벽한 복원이 가능하다는 희망으로 바뀐다. 이 희망은 불가능을 받아들일 수 없도록 하는 열정과도 같았다. 과거로의 복원으로 미래를 이어가기를 희망하는 쥰세이의 열정은 할아버지(130. 네게 그림을 권하는 것은, 네가 미래를 똑바로 쳐다보기를 바라서란다.), 인수(223. 인생은 한 번뿐이지만, 몇 번이라도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수 있다.), 다카시(155. 이제 흘러간 과거일 뿐이야.)  조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결심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쥰세이는 그들의 충고에 이렇게 답했다. (131. 미안해 (...) 그렇지만 난 결국 복원사로 살아갈 것 같아. 과거를 미래로 이어 주는 일에 자부심을 느껴. 나 같은 사람도 중요하니까. 223.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3.
쥰세이와 아오이는 8년의 시간을 건너서 결국,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만나게 되었다. 커다란 아픔을 맞이하기 전에 스쳐가며 했던 기억을 두 사람이 모두 기억했다는 사실은 쥰세이의 열정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과거의 연속이 아니었다. 미묘하게 차이가 있었다. 마치 밀란 쿤데라가 '향수'에서 이야기했던 괴리감을 상기시키는 이 문장들.


244. 아오이는 아오이가 아니었다. 245. 1초라도 빨리, 현재를 과거로 물들이고 싶었다. (...) 고작 사흘로, 우리는 8년의 공백을 복원시킬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같은 그림을 바라보면서도 제각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을 따름이다. 어느 쪽에도 그림을 복원시킬 만한 열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움만 간직한 냉정한 동창회와도 같았다,

246. 우리는 8년이란 시간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그러나 그것은 상대에게 전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그 8년을 납득시키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 눈앞에 있는 아오이가 8년 전의 아오이와는 다른 사람임을 깨닫는 데 고작 사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249. 열정이 냉정에 떠밀려 가는 것 같았다.

252. 결국 냉정이 이겼다.

 

결국 냉정이 이겼다. 이것으로 쥰세이는 항복을 선언한 것일까? 아오이를 만난 후, 시간의 차이가 빚어내는 두 사람 사이의 이질감과 괴리감. 그리고 허무함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쥰세이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 모든 낯선 감정을 한꺼번에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에 '새로운 백년'으로의 도전이라고 이름 붙인. 쥰세이로서는 매우 도전적인 행동을 예고한다. 이것은 직업병으로서의 복원과정을 의미하는 행동이다.

그의 오기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어머니의 부재가 낳은. 과거의 그리움을 갈구하는 태생적인 성향과 이 성향이 이끌어온 복원사로서의 직업적인 재능으로 형성되었다. 그렇게 쥰세이는 그를 떠나려는 아오이를 향해 다시 다가간다. 나의 광장을 향하여. 

 

178. 나의 광장. (...) 세상에 녹아들지 못하고 혼자 떠돌며 살아가던 내게 있어 그녀는, 막다른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도시의 광장처럼 시원스런 존재. (...) 그녀의 품에 안겨 있을 때, 나는 자신이 고독하지 않고, 행복한 존재라 생각할 수 있었다. (...) 대학 생활에서 겨우 마음을 쉴 수 있는 광장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것이 사랑이란 걸 깨달았다. 그래서 온 힘을 기울여 그녀를 사랑하고, 그 때문에 너무 힘이 들어가 사랑이 도를 넘어 버렸다. 서둘지 말라고, 늘 냉정한 그 사람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이제 Rosso를 읽을 차례다 아오이의 내면은 어떤 하늘의 모양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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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풀꽃도 꽃이다 - 전2권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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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르포문학으로서 대한민국 교육정책비판


조정래 작가의 장편 <풀꽃도 꽃이다>는 르포문학으로 분류해도 될 정도다. 수년에 걸친 시간, 각기 다른 교실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들과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인한 끔찍하고 엽기적인 비극의 반작용. 이 비극의 충돌은 <풀꽃도 꽃이다>의 세계 속에 아주 흔한 일상으로 독자들에게 공개된다. 서로 왕래하면서 관계하고, 견제하면서 질투하는 몇몇의 가정의 고민이제 더는 특별하지 않은 - 그래서 더욱 위험한 - 교실 내부의 갈등상태로 고스란히 옮겨놓음으로써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경쟁과 주입식 위주의 교육정책에 대한 부정적 밀도를 더욱 높였다.


<풀꽃도 꽃이다>은 조정래 작가의 작품 가운데 대표적으로 <허수아비 춤>처럼 가상의 현실과 우스꽝스러운 재벌의 겉모습으로 사회의 부조리를 풍자하지 않고, 실명을 드러내고 그가 행했던 정책들을 놓고 정면으로 비판한다. <풀꽃은 꽃이다>에서는 작가의 강한 정치적 입장이 표출되어 잘못된 교육정책과 노동정책 을 입안한 정치인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풍자를 배제하고, 최대한 사실을 써내려감으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


23. 하나의 가녀린 촛불이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으로 늘어나면 어떤 힘으로 변하는지 그 시위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어둠 속에 펼쳐진 드넓은 불꽃의 바다였다. 그리고 함성과 함께 율동하며 그 무수한 불꽃들이 흔들릴 때, 그 출렁임은 그 어떤 아름다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장엄한 불꽃의 파도였다. 그런데 장엄함을 넘어 숙연하도록 아름다운 그 불꽃의 파도가 콧날 시큰하고, 가슴 뭉클하도록 감동까지 자아내고 있었다. 그 불꽃의 바다는 밤마다 넓어지고 있었는데, 그 촛불 촛불들이 강제로 동원된 것이 아니라 어둠과 함께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밤새껏 경건하도록 아름다운 출렁임을 연출하고는 동이 터오는 여명과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이었다. 여러 계층의 시민들이 그렇게 자발적으로 모여들고, 쓰레기까지 말끔히 치우고 질서 정연하게 흩어져가는 그런 평화적 시위는 이 나라 현대사에서 처음 목격하는 일이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의 풍경을 기록한 조정래 작가의 문장이다. 김선우 작가의 <캔들 플라워> 이후 두 번째로 마주하는 촛불시위 풍경이었다. 이 시위 속에서 적극적인 청소년의 참여를 본 조정래 작가는 가녀린 시민의 긍정적인 부분을 발견한 것 같다. 아무튼, 지금도 광우병의 논쟁은 완전하게 끝나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허용하지 않는 저품질 소고기의 수입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굴욕적인 비칠 수 있는 FTA 협상이었고, 이 협상의 주체는 이명박 정부였다. 이 협상에 더불어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교육정책. 일제고사의 부활, 영어몰입교육, 자립형 사립고와 특목고 설립 등에 대한 비판을 이어간다.


36. 일제고사와 궁합을 잘 맞춰 탄생한 것이 '무한 경쟁'이었다. 인생은 유한할 뿐인데 무한 경쟁이라니... (...) 기업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종사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대통령은 사기업 출신답게 그런 경영 논리를 국가의 교육 경영에 도입하면서 '무한 경쟁'이라는 새 말을 신교육의 목표로 내건 것이었다.


2. 요지부동한 기존 사회의 속성, 부모들의 욕망, 아이들의 아우성


2권 72. 기존 사회는 언제나 자기들의 기득권과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기존 가치를 절대 신봉하는 동시에 그 어떤 도전 세력도 용납하지 않는 배타주의를 고수했다. 따라서 자기들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흠집 내거나 흔들려고 하는 대상이 나타나면 그 선봉장인 매스컴이 나서서 가차 없이 총칼을 휘둘러댔다. 그 일제 공격의 목적은 기존 가치를 수호하기 위하여 새로 터진 사건을 무조건 은폐하고 묵살하여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2권 73. 기존 사회가 그렇게 횡포를 일삼으면서도 절대 권력 위에 건재할 수 있는 것은 (...) 이 세상 사람들 절대 다수가 자기도 기존 사회의 특권층에 들고자 하는 욕망과 환상에 사로잡혀 살인적인 경쟁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출세주의, 물신주의, 이기주의에 중독되어 있는 그 속물 집단들은 바른 것도, 그른 것도, 독도, 악도, 구분하지 못하는 집단 망각증과 집단 불감증에 단단히 병들어 있었다.

2권 73. 그런 끔찍한 시(이순영 - 학원 가기 싫은 날)가 나타났으면 매스컴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꽃다워야 할 소녀의 마음에서 왜 이런 시가 나왔나.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단계적 접근을 해야 한다. (...) 그런데 매스컴은 그 어린 소녀를 무자비하게 '패륜아', '사이코패스'로 모는 언론 살인을 감행했고, 공부하는 자식을 둔 부모들은 '내 자식만 안 그러면 돼' 하는 이기주의로 그 소녀를 암매장하는 데 가담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이러한 경쟁과 문화 사대주의가 바탕이 된 정책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움직임과 세계경제위기가 찾아오기 전. 폭증하는 부의 흐름 속에 '권력과 부와 세계화' 를 미래의 중점적인 가치로 판단한 기존 사회의 어른들. 지금보다 더 올라가고 싶은 학부모들의 욕구가 손바닥 마주치듯 함께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들이 유지되고, 강화되었다고 생각한다.


41. 서울대학교! 아아, 내 아들이 서울대 학생이 될 수 있다! 그런 '가문의 영광'을 놓칠 수 없는 일이었다. 일가친척들 앞에서..., 친구 동창들 앞에서 그보다 더 폼 나고, 광나는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아들아. 등수를 조금만 더 올려. 그럼 서울대학교는 네 것이야. 네가 서울대 학생이 되는 거라구. 어땨, 기막히지? 그보다 더 신나는 일이 어딨니. 하자, 함께 하자. 아 엄마가 뒤를 팍팍 밀어줄께. 힘내! 조금만 더 힘내! 엄마는 황홀경에 취해 아들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2권 91. 부모들은 출세와 편안한 삶을 위한 무한 경쟁을 향해 질주할 생각뿐이었다. 그 거침없는 질주가 바로 무작정 학원 보내기였다. '남들보다 먼저 하면 이길 수 있다!' 부모들의 이 기대와 믿음을 확실하게 실행해 주는 것이 학원에 있었던 것이다. 그 유명한 '선행 학습'이었다. 그것은 '남들보다 먼저 해서 꼭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을 딱 받아 '남들보다 먼저 가르쳐주는 것'이니 그보다 잘 어울리는 찰떡궁합은 더 있을 수 없었다. (...) 서울의 경우 100퍼센트이니 선행 교육은 '선행'이라는 의미를 완전히 상실하고 '완행 교육'이 되고 말았다.


<풀꽃은 꽃이다>에서 굉장한 교육열을 보이는 주체는 학부모 전체가 아니라 어머니로 국한되어 서술된다. 이 작품에서 어머니는 '126. 일방적 자식 사랑이 과잉인 욕망 덩어리의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로 그려진다.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없이 돈만 벌어오는 존재로 그려지고, 엄마와 자식 간의 갈등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는 존재감이 없는 못난 아버지로 그려진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부분은 소설의 스토리를 매끄럽게 이어가기 위한 장치로 의도적으로 축소 기록되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갈등까지 그린다고 생각하면 어머니의 경우와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자녀의 문제를 엄마 혼자의 의지만으로 결정하고, 아빠는 그저 돈 벌어오는 기계일리가 없다.


134. 엄마맘이란 자식이라는 게 한발 건너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나와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또 하나의 나 자신인 거예요. 그런 소중한 자식이 자칫 잘못되어 담에 사회에 나가 좋은 직장도 못 얻고 가난에 찌들며 평생 고생고생하고 살 거라는 생각을 하면 정신이 하나도 없고, 가슴이 떨리고, 몸 달고,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공부를 닦달하게 되고,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사교육을 시키는 거예요.


171. 3년이야, 3년 SKY에 딱 붙여 남들이 다 부러워 죽는 최고 자식을 만들어야지. 그럼, 하나밖에 없으니 반드시 최고를 만들어야 해. 재력 있겠다. 빵빵하게 뒷받침할 테니까 안 될 리가 없지.


217. 무조건 돈 좋아하고, 권력 좋아하고, 잇속 좋아하는 거지 뭐야!

222. 엄마 말은 결국 뭐야. 내 의사는 싹 무시해 버리고, 돈이 최고다, 권력이 최고다, 출세가 최고다, 그것만 있으면 인생 행복이고, 인생 성공이다. 그거 아냐?


자식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부모 모두에게 '나와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또 하나의 나 자신'일 것이다. 자식에 대한 이러한 생각으로 인하여 소설 속의 예슬이는 하루하루 학원 생활의 답답함에 고통으로 신음한다. 게다가 예슬이와 비슷한 환경의 유지원과 한동유. 최윤섭. 원명준과 원누리. 그리고 수없이 많은 작금의 피로한 일과를 보내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대치동을 비롯한 전국의 유명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일제히 토해내듯 쏟아지는 이유였다.


2권 90. 교육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실천이었다, 지식의 일깨움이나 전달은 그다음이었다. 그런데 세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 반대로 세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그 반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공부가 강조되고, 경쟁이 신봉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실종되어 그 자취가 묘연했다.   


193. 엄마는 양심도 없어? 날 몇 살 때부터 과외시켰는지 잊어버렸느냐구. 유치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 과외, 국어 산수 과외, 유치원 들어가서는 그런 과외에다가 피아노 과외, 수영 과외, 초등학교 다니는 내내 그런 과외 계속하면서 성악 과외로 바꾸고, 기타 괴외로 바꾸고, 심지어 여자애한테 태권도까지 과외 시켰잖아. 그리고 중학생이 되자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국영수 과외 뺑뺑이를 돌리고 있잖아. 내 인생은 비참한 괴외 인생이야, 과외 인생. 엄마 뜻대로 몰아붙인 과외 인생이라고 근데 그것도 모자라 이젠 애완견처럼 목줄을 묶어 꼼짝달싹 못하게 끌고 다니겠다고? 난 그건 죽어도 못해. 차라리 학교를 때려치우고 말지.


위에서 열거한 한예슬, 유지원, 한동유, 최윤섭, 원명준, 원누리는 자기가 원하는 꿈을 찾았고, 강력하게 의지를 관철시켜서 부모로부터 해방되는 학생으로 분류된다. 그들이 부모의 어긋난 욕망에서 해방되는 순간에는 강교민, 이소정, 임기범, 이재균으로 대표되는 참선생의 도움이 있었다. 희망이 없는 듯한 한국의 교육계에 훌륭한 선생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강력한 교육 민주화'의 줄임말'이라는  강교민' 같은 선생님들은 자세히 찾아보면 존재한다. 다만, 여전히 일제의 잔재를 극복하지 못한 경쟁과 주입식 교육 현실을 떠받치는 세력들이 너무나도 견고해서 그들의 선량함이 우리들에게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2권 330. 일제 잔재를 다른 분야도 아닌 교육계에서 해방 70년 세월이 흐르도록 이렇게 무신경하고 무책임하게 방치하고 답습하고 있다는 것은 민족적 수치이고, 교육적 자해 행위입니다. (...) 이름표를 붙이는 것과 함께 성적표에 석차를 공개적으로 표시하는 것도 일본과 우리나라만 하고 있는 일제 잔재입니다. 달달 외우게 하는 주입식 암기 교육도 일본과 우리나라만 하는 일제 잔재입니다. 학생 지도로 체벌을 가하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두발 길이를 제한하고 단속하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교복을 꼭 입히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학제가 6-3-3-4인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봄에 새 학기를 시작하는 것도 일제 잔재입니다. 그리고 지난 정권에서 부활되었다가 많은 폐해만 남기고 사라진 일제고사도 일제의 잔재였습니다.


2권 329 '탈선 예방' 그 명분은 아주 교육적인 것 같지만, 그 의미를 꿰뚫어 보면 그것처럼 비교육적인 것도 없습니다. '탈선 예방'이라는 말은 학생 전체를 '잠재 범행자'로 전제한다는 의미입니다. 교육이란 상호 신뢰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며, 학생에게도 엄연히 인권과 인격이 있다고 인식시키면서 학생들을 '잠재 범행자'로 취급하는 것은 얼마나 논리 모순이며, 인권 침해입니까.


3. 무한 경쟁에서 탈락한 아이들의 세계. 그 안에서조차 빈번한 권력싸움


사교육의 노예가 된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 그리고 이러한 성적 경쟁에서 일찌감치 떨어져 나온 학생들은 학업 스트레스를 교실 내로 끌고 들어온다. 약간의 탐색과 잠깐의 세력싸움을 통하여 약자가 된 가난하고 힘없는 학생들은 이들의 노리개가 되어 따돌림을 당하고, 폭력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비극적인 선택을 한다. 성적 비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학생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빈도로 들려오는 것은 학교폭력의 잔인한 희생자가 된 학생들의 고통의 흔적들이다, 우리는 뒤늦게서야 언론을 통해 교실 내부의 잔인한 일과를 알게 된다.  


<풀꽃도 꽃이다>에서도 어김없이 이야기는 폭로된다. 자기 의지를 내비쳐서 오히려 친구들에게 시샘을 받고, 따돌림을 당하게 된 예슬이의 경우는 자기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서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김태호와 박동욱에게 가난 때문에 시달림을 당하는 배동기의 경우도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고, 힘을 길러 통쾌하게 복수를 함으로써 스스로 그 구렁텅이를 벗어난다. 배동기는 분명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지만, 기존 사회의 벽이 공고했던 덕분에 억울하게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점은 아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323.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지옥이 있다고 해도 이런 고통보다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놈들한테 하루 종일 시달리고, 또 창고 짐 나르는 알바로 밤이면 몸이 흐물거리는 것처럼 피곤한데도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어떤 날에는 아래가 발가 벗겨져 음모를 다 뽑히기도 했고, 어떤 날은 발가벗겨져 찍힌 사진이 동영상으로 올려지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팔다리를 묶인 채 전신에 볼펜으로 문신이 그려지기도 했고, 셔들을 거부해 거꾸로 매달려 두들겨 맞다가 죽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악몽은 그냥 허황되게 꾸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한두 번씩 당했던 일들이었다.


전남호와 한태식에게 당하고 있는 서주상은 한예슬과 배동기와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위태로운 상황으로 느껴졌다. 엄마 아빠 소원인 의대 입학의 꿈 하나를 위해서 전남호와 한태식의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하루하루 견디고, 버티며 학교 생활을 이어나가는 서주상. 그을 애처롭게 바라보던 유지원도 얼마 되지 않아 그의 곁을 떠났다, 그렇게 그는 정말 외톨이가 되었다. 그의 미래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교육문제보다 훨씬 더 답답했다.  


4. 문화사대주의의 혜택을 누리는 자들


사교육 시장의 핵심은 바로 외국어. 특히 영어교육이 아닐까 싶다. 소설에서도 아이들의 입에서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국영수가 아니라 영수국으로 바뀌어버릴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어. 이 영어는 대학 입학에 필요할 뿐만 아니라 현재 취업시장에서도 필수적으로 필요한 자격 중에 하나다. 영어나 중국어같은 외국어의 학습을 이토록 강조하고 강요하는 것은 우리가 내수로는 자생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라 마음이 아플 따름이다.


그런 면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미국인 원어민 교사 스미스와 포먼의 냉소적인 대화의 내용은 문화사대주의에 길들여진 한국인의 슬픈 자화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조정래 작가의 고뇌와 분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것의 일부를 옮겨본다.


383. 한국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인종차별은 특히 유별났다. 원장이 문자까지 넣어가며 새삼 강조한 백인, 푸른 눈, 금발은 그 대표적인 것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들 중에서는 무조건 미국 사람들을 최고로 쳤고, 그중에서도 최고로 치는 미국인의 조건이 바로 백인, 푸른 눈, 금발이었다. 그것은 할리우드에서 저 옛날 1950년대에 최고 미녀 배우를 가리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용케 알아내 남자한테까지 확대, 적용시키고 나선 것이었다.

384. 발음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적 편견이 심하게 작용(...) 미국을 대표할 수 있는 그 발음은 거의가 중부 지역 영어(...)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런 것 무시하고 뉴욕과 LA 발음을 최고로 쳤다. 그것은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큰 도시이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두 도시가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했던 것이다.

384. 백인, 푸른 눈, 금발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의 유별난 편견은 바로 흑인을 무조건 싫어하는 편견으로 이어져 있었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미국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흑인 차별에 비하면 미국의 차별은 아주 인간적인 편이었다. (...) 한국에서는 흑인을 차별하거나 멸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존재 자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극심한 편견을 드러냈다. (...) 그들은 흑인을 미리미리 피했고, 분명 영어로 무엇을 물으며 도움을 청하는데도 그들은 슬슬 피해 가기 바빴다.

386. 한국인들의 그 근거 박약한 편견은 그들만의 두 가지 착각을 낳고 있었다. 그 첫 번째 착각은 자신들이 흑인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믿음이었다. 그것은 자기들을 백인 다음가는 존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착각은 자기들이 미국을 비롯해 서양 여러 나라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서양 사람들도 자기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사실 한국 지식인들은 미국에 대해서 미국 사람인 자신들이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한국의 암기 교육의 효과였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만큼 미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그것은 지식의 차이가 아니라 관심과 무관심의 차이였다.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100의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미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387. 미국 사람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무관심은 저 아프리카의 가봉이나 잠비아 같은 나라에 대해 무관심한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안쓰러운 것은 한국 사람들은 결코 그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일반인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식견 있는 지식인들까지도 그런 사실을 사실대로 파악하지 않고 한국적 착각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한국에 5년 동안이나 있으면서도 풀지 못한 숙제고, 수수께끼였다.

"치유 불가능한 열등감과 선망"

388. 외국인, 특히 미국인에 대한 범죄가 전혀 없는 나라, 기초 회화만 해도 고액 수입이 보장되는 나라.(...) 어디 가서 잡담식으로 영어 좀 지껄이고 그 많은 돈을 벌 수 있단 말인가.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396. 하루 여덟 시간씩 근무하고 한 달에 받는 월급이 학원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 200만 원에서 600만 원 정도 까지야. 그런데 우리 학원은 A급에 해당해 400에서 600 사이에서 경력과 능력에 따라 결정해. 난 신체 조건이 A급이라 바로 450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최고의 보수를 받고 있어. 너도 아마 450부터 스타트하게 될 거야. (...)너와 나처럼 백인, 파란 눈, 금발!

2권 10. 그 사람들은 우리 서양 사람과 단독으로 마주 앉는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공부가 되기 시작하는 거야. 자꾸 서양 사람을 만나면서 거리감이나 두려움 같은 것을 없애고, 떨지 않고 말을 쉽게 주고받을 수 있게 되는 것. (...) 한국 사람들은 교과서 중심으로 영어를 배워서 회화에 자신이 없으니까 무슨 말이든 하기 전에 먼저 머릿속에서 문장을 만들려고 하는 습관이 있어.

2권 13. 인구는 별로 늘지 않는데 영어 사교육비는 왜 그렇게 폭증하는 걸까? 부모들의 경쟁의식 때문이야. 모두 다 하니까 우리 애도 시켜야지. 우리 애가 더 잘해야 하니까 더 비싼 학원엘 보내야지.

2권 14. 한국 사람들, 특히 어린 자식 둔 엄마들의 무한 경쟁의식은 굶주린 사자의 식욕 같아.

2권 16. 한국 사람들은 원어민처럼 발음을 잘하는 게 소원인데. 그러기 위해서 혀를 수술하는 거야. 유별난 한국 사람들 일부는 자기들이 혀가 짧아 R 발음과 L 발음을 정확히 구분해서 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 두 가지 발음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 혓바닥 아래 부분인 설소대를 잘라내는 수슬을 하는 거야. 혀를 길게 하기 위해서지. (...) 어린애들에게. (...)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네댓 살.

2권 17. 정말 한국은 서글픈 코미디의 나라구나.

2권 17. 그게 다 한국 사람들이 목숨을 거는 무한 경쟁의 산물인데, 한국 사람들은 촘스키 교수가 말한 '생득언어' 차이 때문에 제 2언어의 습득에는 필연적으로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또 다른 수술도 서슴지 않을 거야.

2권 18. 반기문. 한국 고등학생들 중에서 영어를 제일 잘하는 사람으로 뽑혀 미 정부 초청을 받아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인물이야. 그리고 평생을 외교 관료로서 영어를 하고 산 사람이야. 그런데도 영어를 잘 못한다고 유엔 무대에서 공개적인 공격을 받은 거야. 언어란 그런 거라구, 태생적으로 생득언어가 다르니까. 우리가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한국 사람들처럼 한국말을 잘할 수 있겠니?

2권 28. 미국이 진정으로 우방이라고 생각하고 믿고 있는 나라는 따로 있었다.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네 나라가 그들이었다. 그 네 나라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그 증표가 그들의 국기에 잘 나타나 있었다.

2권 38. 자기들은 글로벌 시대를 주도하는 1등 세계인이 되겠다는 거대한 꿈을 가지고 하는 일. (...) 어떻게 영어를 가장 중요한 과목으로 치는 거지? 그거 아주 간단해. 자기네 국어나 역사 시간을 줄여서 영어 시간을 늘리는 거야.

2권 40. 태아 영어 교실도 열리고 있어.(...) 태아가 배 속에서부터 영어를 들으면서 태어나면 영어를 원어민처럼 잘할 수 있게 된다는 프로그램.

2권 42. 너, 언어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말 고등학교 때 배웠지? 또, 언어는 인간의 영혼을 경작한다는 말도. 지금 한국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우리 미국의 문화식민지가 되려 하고 있어. 우린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벌써 그 현상들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그 많은 아파트들의 이름이 거의가 다 영어고, 그 많은 상점들의 간판도 날마다 영어가 늘어나고 있고,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들의 브랜드도 거의 다 영어고, 심지어 텔리비전 프로그램 이름이나 한글 신문들의 지면 타이틀까지도 영어투성이야. 이런 식으로 한 20년쯤 가면 한국은 어떻게 되겠어? 자기네 글 천대하고 우리 영어 떠받드는 문화식민지로 변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      


5. 참교육과 해법


90. 교육이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실천이었다, 지식의 일깨움이나 전달은 그다음이었다. 그런데 세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 반대로 세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그 반대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공부가 강조되고, 경쟁이 신봉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실종되어 그 자취가 묘연했다.


374. 고졸자 중에서 SKY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1.5퍼센트 정도였다. 그런데 그보다 7,8배의 수가 같은 목표를 향해 사교육에다 서슴없이 거액을 쏟아붓고 있었다.


조정래 작가는 자녀의 장래희망을 찾으려는 노력을 억압하고, 무작정 자신들의 욕망을 자녀들에게 투사하여 사교육시장에 거액의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안타까운 현실과 무한경쟁이 낳은 시대적인 비극을 바라보며, 대안학교와 혁신학교의 활성화를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대안학교와 혁신주의로의 맹목적인 쏠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녀의 소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녀가 원하는 진로를 계발할 수 있도록 알맞게 지원하는 것을 사교육 시장의 범람과 낭비를 막을 수 있는 해결책으로 제안한다. 물론, 단순하게 돈과 시간의 낭비 때문에 사교육 시장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다. 사교육 시장에서 배운 지식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있는데, 그것은 글을 잘 못쓰고, 말을 잘 못하고, 협동 능력이 떨어지고, 공감능력과 인성이 나빠진다는 점이었다.


144. 어린 자식이 있다면 최선의 능력을 다해 돕고 지도하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공간을 허용하는 일이다. 존재할 공간을. 아이는 당신을 통해 이 세상에 왔지만 '당신의 것'이 아니다.  -에크하르트 톨레


2권 281. 세 자식이 대안학교를 다니고, 각자 자기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만족이나 불만족은 그들 자신이 따질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인생을 자기들이 좋은 것으로 선택하고, 자기들의 노력으로 개척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저 부모로서 잘 해가기를  바라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 모든 부모는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족쇄로 채워서는 안 됩니다. 만약 저의 아내가 다른 엄마들처럼 애들에게 '너희들도 아빠처럼 교수가 되라'고 강압하면서 공부를 닦달하고, 사교육으로 내몰고 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2권 381. 하버드대학교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이 하나같이 방에 틀어박혀 밖에 나오지를 않았던 이유. 수업 시간에는 꼬박꼬박 나오는데 그 외에는 운동도 하지 않고, 동료들과 담소도 하지 않고, 봉사 활동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그들은 교재들을 외우느라고 사력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해도 책을 다 외울 수는 없는 일이고, 그건 지극히 어리석은 공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첫째 전체를 읽어 내용을 파악하고, 둘째 그 저자는 왜 그렇게 썼는가를 분석해보고, 셋째, 나는 어떻게 쓸 수 있는가를 구상해 보는 것으로 바른 독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유학생들은 무조건 외우려고드니 공부 효과는 떨어지고, 동료들과 담소를 안 하니 회화 실력은 늘지 않고, 책에 대한 평가나 독후감 같은 것을 쓰지 않으니 석 박사 논문 쓰기가 어려워져 70퍼센트 이상 학위 취득에 실패하는 것이었다. (...) 한국은 일본식 암기 교육으로 일본과 똑같이 선진국들의 기술을 모방해가며 급속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일본이 그렇듯 한국도 한계에 도달했다. 그 돌파구는 서양식의 토론 교육을 통해 창읡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다.


대안학교와 혁신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식 수업과 자기주도 방식의 학습 과정은 공교육과 사교육의 단점(381)을 해결할 훌륭한 수업방식이라는 점을 여러 번씩 강조한다. 조정래 작가는 우리의 부모들이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신들의 욕심을 내려놓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서 그들의 선택을 조금 더 많이 존중해주기를 바란다.

지금 유망한 직업이 훗날에도 유망한 직업이 되리라고 장담할 수 없고, 지금 천대받는 직업이 나중에 천대받는 직업이 되지도 않을 뿐더러. 어떤 직업을 선택하던 간에 열정이 있다면, 먹고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녀가 즐거워하는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 더 올바른 선택이 아니겠느냐 묻는다. 이렇게 좀 더 넓은 마음으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권력'과 '부자'에 취한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서 예로 들었던, 하찮고 천하다고 생각했던 대장장이 일도 남들에게 인정만 받을 수 있다면 일 년에 1억을 저축할 수 있다고 누가 생각했겠느냐 이말이다.

결과적으로 <풀꽃도 꽃이다>를 읽고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조정래 작가는 건립 후  지속되어온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 대하여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매우 큰 실망을 했다는 점이고, 동시에 지금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유럽의 제도를 본딴 대안학교나 혁신학교의 새로운 학제가 제발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점일테다. 아, 이 소설에서는 빠졌지만, 부모의 능력이 된다면, 홈스쿨링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2권 365. 인생이란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세상에서 최고라고 치는 것만 최고가 아니야. 그것 아닌 차선에서도 마음에 드는 길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 좀 여유를 갖고 생각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자. 선생님이 별다른 힘은 없지만 끝까지 네 편이 돼줄게. 함께 의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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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8-10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에서도 단예님 글을 읽을수 있어 좋네요. ^^

단예 2016-08-10 09:03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 같이 쓰는데 자동으로 올라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