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봄 우리 집 베란다에는 모란꽃이 곱게 피어 있었다. 꽃이 피기만 기대하며 모란 화분을 애지중지하던 우리 엄마는 꽃이 필 무렵 수술을 하게 되었고, 결국 모란꽃이 활짝 피고 질 때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남들이 보면 대단하다고 할 만큼 난 많이 울지도 않았고, 쇠약해진 엄마를 매일 같이 마주해도, 씩씩하게 회사도 잘 다녔다. 내가 남들보다 강해서 해야 할 일을 다 해낸 건 아닌 거 같고, 이상하게 난 우리 엄마가 완치될 것만 같았다. 비록 두 번째 수술이지만, 첫 번째 수술에서 미처 못했던 치료를 하는 거라고, 다시 재발한 거 아니라고 나를 계속 다독였다. 그렇게 잘 버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거실에서 멍하니 흰 모란꽃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자기 좀 봐달라고 모란꽃이 드디어 피었는데, 우리 엄마는 저렇게 귀엽고 예쁜 모란꽃 한 번을 못 보고 병원에 내내 누워 계신단 생각에 어찌나 슬프고 원통하든지.


  올해 재발 소식을 들었을 땐 슬프기보단 너무 놀라웠다. 우리 엄마 작년에 항암 했는데? 며칠 전 추석 때만 해도 나랑 동인천까지 같이 걸어가서 휴지통도 사고, 카페도 다녀왔는데? ? 그렇게 건강하고 즐거워 보이던 엄마가 왜 또 수술을 해야 돼? 화도 안 나고 그냥 계속 어처구니없고 황당했다.


  왜? 왜 우리 엄마야? 란 생각만 며칠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마는 또 국립암센터 입원실에 누워 있고, 몸에는 흉수관을 포함하여 피주머니만 열댓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내일은 피주머니 하나라도 제거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게 바로 작년 봄 인데.


  병원에서 많은 환자를 보며 느끼는 세상사의 진리는 우리가 사는 인간 세계에선 상도 벌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결국 아플 사람은 아프고,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한 사람은 천년만년 건강하게 잘 산다. 착하게 살면 상 받고, 나쁘게 살면 벌받아야 하는데 말이다.


  요즘 우리 가족은 마치 문밖에 누군가가 큰 기관총을 들고 문 열라고 문을 쾅쾅쾅쾅 두드리는데 허술한 문에 덜컹거리는 자물쇠 하나 걸어놓고 벌벌 떨고 있는 거 같다. 언제 어느 때라도 문밖의 사람이 총으로 문을 부수고 방으로 들어와 두두두두 미친 듯 총을 갈겨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하늘은 파랗고, 나는 출근을 했고, 병원의 사람들은 여전히 아프다. 너무 잔인하다.

 

P.S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3865

제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말로만 듣던 청와대 국민 청원을 올렸습니다.

글을 보시는 분들은 한번씩만 동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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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6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06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06 16: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06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1학년이면 꼭 이수해야 했던, 문장작법 과목의 시간강사가 소설의 다인칭기법을 설명하며 밀란 쿤데라를 거론하길래, '농담' 을 찾아 읽었다.

  나중에야 그 작품이 밀란 쿤데라의 데뷔작임을 알 게 되었다. 이런 거 보면 결국 글쓰기도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거란 생각하게 된다.


  '농담'이 워낙 재밌어서 학교 도서관에서 그의 작품을 찾아보다가 '히치하이킹 게임' 이라는 단편을 읽었는데, 읽은지 아주 오래 전이지만, 아직까지도 그 내용이 너무 생생하고 아직까지도 기분이 너무 더럽다.


  하지만, 밀란 쿤데라의 '히치하이킹 게임' 은 정말 탁월한 단편이다. 불편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사랑의 속성을 너무나도 절묘하게, 말 그대로 까발리는 작품. 정말 짧았던 단편으로 기억하는데, 여운이 아직까지도 있는 걸 보면 분명 잘쓴 단편이다. 


  이 작품의 남자 주인공은 밀란 쿤데라 소설 속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고차원 잡놈의 엑기스 같은 놈이다. 대학 시절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땐, 여자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여자 역시 아주 수동적으로 남자가 원하는 여자의 모습만을 보여주며 애인을 만났고, 결국 남자나 여자나 거기서 거기인 거였단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과연 나는 안그런가? 결국 나도 그렇다.


  누군가를 정말 조건없이 사랑한다는 거 사실은 허상이란 생각이 든다. 난 정말 믿고 싶다. 진정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작년에 본 '머드' 에서 주인공 소년이 진정한 사랑이 있다고 절박하게 믿고 싶어하는 걸 보면서 꼭 나같았다.


  하지만 나도 정말 아무 조건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순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내가 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점이 보이면 죽도록 실망한다.


  밀란 쿤데라 작품을 '농담', '영원' 을 읽고 여기 말한 '히치하이킹 게임' 까지 읽은 후, 전혀 읽지 않고 있다. 사실 읽을 용기가 없다. 아무리 허구라고 해도 소설 속 남자 주인공들의 비열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 차라리 사람 때리고 약한 사람 괴롭히는 악동 같은 놈들 행각을 읽는 게 낫다. 밀란 쿤데라 소설 속 남자주인공 같은 놈들 얘기는 정말 읽고 있기 괴롭다.


  요즘 몇가지 책을 읽다가 다시 도스토옙스키 책을 읽고 있는데, 내가 도스토옙스키 책에 집착하는 이유도 이거와 연관시키면 일면 이해가 간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 사람들은 분명 병적이고 비정상적이지만, 보통은 남자가 여자를 아니면 여자가 남자를 죽도록 사랑하고 웬만해선 그 마음이 변하지 않으니까... (다들 사랑이 너무 안변해서 문제이신 분들만 등장하니 ㅋㅋㅋ) 읽으면서 내심 안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농담' 을 다시 읽으려고 사놨는데, 첫 장을 펼치지도 않았고, 저 '히치하이킹 게임' 도 지금 읽어도 엄청난 명작일까? 궁금하여 다시 읽고 싶지만, 다행스럽게도(?) 절판이네. 다시 읽지 않는 게 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긴 하다. 또 다시 읽었는데 내 기억 속처럼 대단한 명작이 아니어서 실망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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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고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줄 궁극의 건물이 가능하다고 치자. 그런데 그런 건물을 
세우려면 단 한 명의 미약한 생명, 이를테면 아까 말한 조그만 주먹으로 자기 가슴을 치던 불쌍한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것이 불가피한
 일이라 치자. 무고한 아이의 보상받을 수 없는 눈물을 토대로 그 건물을 세워야 한다면, 너는 그런 조건하에서 건축가가 되는 것에
 동의할 수 있겠니? 자 어디 솔직히 대답해 봐! 네가 건설한 건물 속에 사는 사람들이 어린 희생자의 보상 없는 피 위에 세워진 
행복을 받아들이는데 동의하고 결국 받아들여서 영원히 행복해진다 하더라도, 너라면 과연 그따위 이념을 용납할 수 있겠니?”


평소 진짜 뜬금없는 데서 눈물을 콸콸 흘리곤 한다. 
어쩔 땐 그게 단어 하나일 때도 있고, 짧은 수식어 하나일 때도 있다. 
몇 년전에 체호프가 쓴 소설에서 엄마에게 아직 잠들지 않았음을 알리는 아이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잎사귀가 볼을 스쳤다는 내용의 문장을 읽고 눈물이 핑 돌았던 적이 있다. (회사라 정확히 쓸 수 없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앙선데이에서 석영중 교수가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글을 연재하는데, 거기에 발췌된 글을 읽고 뜬금없이 월요일 아침부터 아침부터 눈물을 훔쳤다.

모두의 행복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모두의 행복이 진짜로 모두의 행복인 경우는 없었다. 그들이 말하는 모두의 행복은 자기들만의 행복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누구도 타인에게 희생을 강요할 순 없으며, 그들의 행복추구권을 빼았을 순 없는건데, 사람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약자들을 짓밟곤 한다. 나는 항상 짓밟히는 쪽이라고 생각했지만, 글쎄... 아마 나도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무시한 적 있었겠지. 
그런데 그게 어떤 일이었는지 언제 였는지 지금은 기억조차 못한다는 게 때론 부끄럽고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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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관을 덮고 못을 박고 마차에 실었다. 나는 거리가 끝나는데까지만 그를 전송했다. 마부가 속력을 냈다. 노인이 그 뒤를 쫓아가면서 울부짖었다. 그의 울음소리는 달리는 속도에 따라서 떨리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했다. 가엾은 노인은 모자를 떨어뜨렸지만 그것을 줍기 위해 멈춰 서지도 않았다. 그의 울음소리는 달리는 속도에 따라서 떨리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했다. 가엾은 노인은 모자를 떨어뜨렸지만 그것을 줍기 위해 멈춰 서지도 않았다. 그의 머리가 비에 젖었다. 바람도 불어왔다. 찬 서리가 그의 얼굴을 때리고 찔렀다. 노인은 궂은 날씨도 느끼지 못하는지 마차 이쪽 저쪽을 번갈아 달리면서 울부짖었다. 그의 낡은 프록코트 자락이 날개처럼 바람에 펄럭였다.옷에 달린 주머니에서는 온통 책들이 비어져 나왔다. 그가 내내 꼭 쥐고 있던 커다란 책은 여전히 손에 들려 있었다. 길 가던 사람들은 모자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어떤 사람들은 가는 길을 멈추고 가여운 노인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주머니에선 계속 책들이 빠져나와 진흙탕 속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그를 멈춰 세우고 떨어뜨린 물건을 가르켜 보았다. 그는 그것을 주워 들고 다시 관을 쫓아 달렸다. 


생전 책을 좋아하던 대학생 아들이 죽었고, 아버지인 노인은 아들이 좋아하던 책을 주머니에 가득 넣고 울부짖으며 아들의 시체를 실은 마차를 따라 달리는 장면인데, 퇴근길에 이 부분 읽고 너무 슬퍼서 울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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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욕에 불타서 리뷰를 열심히 쓰던 기간은 겨우 한 달 남짓.

내가 하는 짓이 다 그렇긴 하지만, 회사가 너무 바쁘기도 했다.

언젠가는 감상문을 쓰리라 생각만 하면 죽어도 못쓸 것 같아, 성의 없게라도 그동안 읽은 책들에 대해 쓴다.


내가 원래 읽고 싶은 책은 '다시찾은 브라이즈헤드' 인데, 번역된 책이 없어 에벌린 워 책 중에 유일하게 번역된 이 책이라도 읽자 싶어서 읽었다.

빅토리아 시대에 남자들은 이혼을 할 때도, 내가 바람피운 거 마냥 속여서 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역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대체로 영국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 다소 우스꽝스럽게 살았던 거 같다. 푸하하하. 쓸데없는 엄격진지근엄한 모습 있자면 진짜 같잖다. 에벌린 워가 그런 모습을 대놓고 풍자하는데 꽤 재밌었다.

읽다 보면 브랜다 때문에 짜증이 막 치미는데, 자기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카드 놀이 하고 있는 토니 라스트도 그다지 정상은 아니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저택에 집착하는 거 어쩔 거임... 하지만, 토니 라스트의 말년 삶은 너무나 충격과 공포였다. 작가양반! 거 너무 잔인한 거 아니오? 

페이지가 엄청 빨리 넘어가는 책이었고, 이 책을 보니 '다시찾은 브라이즈헤드' 도 재밌을 거 같은데, 출간 소식은 들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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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서점에서 완전 새 책이 2천 원 이길래, 중학생 시절 추억도 떠올림 겸 사서 읽었다.

뜬금없이 터지는 포인트가 꽤 있었다. 특히 '딩크 포슨' 이라고 이름 계속 잘못 부르는 거 별거 아닌데 웃겼다 ㅋㅋㅋㅋㅋㅋ

거창하게 삶의 진리, 의미, 구원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심오한 소설들은 아니지만 재밌었다.


내가 소설을 읽으며 감탄할 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쩔 수 없이 찌질하고 째째한 인간의 모습을 기막히게 묘사할 때인데, 오 헨리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다들 착해서 조금 아쉽긴 했다.

미국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 지 알 것 같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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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메튜 베리 좀 변태 같다.

웬디가 남자 동생들과 몇 살차이도 안 나는데 엄마처럼 바느질해주고 밥 차리고 하는 모습... 내가 여자라 그런가 읽다가 계속 짜증 났다.

그리고 예전에 셜록홈즈 읽으면서도 느낀건데, 그 시대 영국 사람들은 백인 외 다른 인종은 원숭이와 사람의 중간쯤 되는 존재로 규정하고,절대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읽으면서 몇 번이나 정신이 아득해졌다. 

읽는데 진짜 힘들었다. 재미 더럽게 없었다... ㅜㅜㅜ

'피터팬' 읽다 보면 '왕자와 거지' 가 얼마나 대단한 책인지 사무치게 깨닫게 된다.

중고로 샀는데도 책값 아까웠다. 표지만 예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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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책이었다. 이보다 더 섬세할 순 없는 문장들.

나는 강원도 깡시골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7살까지 살았는데 하루 종일 나가서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며 찾아 다닐 때까지 절대 집에 들어오지 않는 어린이였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다섯 살쯤의 나는 맨드라미가 피어있는 화단에서 채송화를 구경하다가, 채송화 씨를 따서 흙에 뿌렸고, 별안간 곱게 핀 채송화 꽃을 꺾어서 돌로 막 짓이겨버렸다. 별 것도 아니었던 그날, 그때 목덜미에 꽂히던 뜨거운 태양빛이 가끔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다.

책을 읽으며, 시골에서 항상 혼자였던 그래서 때로는 작은 심술을 부리기도 했던 내 유년시절이 떠올라서 자꾸 눈물이 핑 돌았다.

모든 시절 얘기가 다 훌륭했지만, 개인적 경험 때문인지, 유년시절 이야기가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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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4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케이 2019-01-15 10:14   좋아요 0 | URL
요즘에는 포스팅 전혀 안하고 있어요. ㅜㅜ 올해는 할 수 있을지... 한두개씩이라도 쓰려고 노력해봐야겠어요. 댓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