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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ivation Of Claudius' guilt  
  윌리암 세잌스피어의 <Hamlet>은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소설이다.

한 왕실에 얽힌 음모와 그로 인한 후유증을 비극으로 그려낸 4대 비극 중의 하나이다.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Hamlet"에도 창조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여러 인물들 중에, 특히 나에게는 음모의 주동자였던, 그리하여 그 음모의 댓가로-By Costs-권력의 보좌를 차지하게 되었던 클로디어스를 주목하게 되었고, 그 클로디어스의 guilt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특히 클로디어스의 죄책은 햄릿이 고안한 연극 공연으로 말미암아 자극되어져 그의 guilt는 정점(頂點)에 치닺게 된다. 그 peak에서 클로디어스는 참회 아닌 참회-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클로디어스가 '참회기도'를 하긴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참회라 할 수 없는 것이 그는 이 참회 이후에 자신의 잘못과 살인과 범죄를 은닉하는데 더 혈안이 되어 조카인 햄릿(클로디어스의 guilt의 폭로자, 선동자)을 광증(狂症)이라는 빌미로 영국으로 보낼려는, 더 나아가 죽일려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가 나타나는데, 개인적으로 내가 받은 인상은 자기의 형을 독살한 클로디어스라는 인물에게서

어떻게 이러한 guilt가 나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어떻게 그렇게 파렴치한 인간에게서 그러한 심각한 guilt가 나올 수 있냐 이 말이다. 그 의문점이 나를 클로디어스라는 인물에게로 이끈 Motivation이라고 할 수 있겠다.

 

 

 

 

guilt Of Claudius
  클로디어스는 자기 형인 선왕(先王)을 독약으로 죽이고서

 

그 덴마크의 왕좌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햄릿의 어머니이자 왕비인 거트루드와 재혼을 한다.

자기의 계략대로 모든 것들이 자기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지만 그 모든 음모를 빤히 들여다보듯이

그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 연극 공연을 관람하면서부터 그의 잠재된 guilt는 시작된다. 물론 이 연극의 내용은 햄릿의 계획에 의해 설정되어진 것이다.

 

클로디어스의 guilt는 아주 단말마적이다.

 제3막 제3장에만 드러나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클로디어스의 행동에 이렇다할 guilt의 흔적이 없다(그 이후에도 없다).

그러다가 갑자기 제3막 제3장에서 봇물 터지듯이 그러나 아직 짧고 굵게 나타나는 guilt에 대해서 나는 조금은 어색한 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클로디어스가 그런 guilt를 느끼는 인간이라면서 어떻게 자기 친형을 죽이고 더 나아가 형수를 가로챌 수 있단 말인가? 그 엄청난 살인과 간통의 참상을 저질렀던 장본인이 참회의 기도를 드린다는 데서 조금은 어불성설한 느낌을 주는 작자의 '인물의 통합성(Unity of character)의 defect'를 지적하고 싶다. 허나 가만히 좀 더 들여다보면 왕비인 거트루드-거트루드의 성격창조는 많이 거슬리는 부분이 없지 않다-의 맘에 조금이라도 동(動)하게 한 인물이라면 이러한 guilt를 느끼는 것이 조금은 수용되어진다. 

 클로디어스의 guilt의 고백은 다음과 같이 비통하고 절실하다.

심각성을 스스로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 이 죄악, 악취가 하늘까지 찌르는구나.

인류 최초의 저주를 받으렷다. 형제로 죽인 죄로-기도도 드릴 수 없구나, 심정만은 간절한데...설사 이 저주받은 손목이 형의 피로 두꺼워졌다 할지라도, 하늘에는 이 손을 백설처럼 희게 씻어줄 단비는 없을까?

...그렇다면 나도 희망의 눈을 들어 우러러보겠다. 내 죄과는 이미 지나간 일, 하지만 어떠한 기도를 드려야 내 경우에 알맞을까? 그저 빌며 '비열한 살인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할까? 안될 말이지. 게다가 난 살인죄에서 얻은 소득을 보유하고 있쟎은가, 왕관과 야심과 왕비를, 죄의 결과를 얻은 소득을 보유하고서도 죄의 용서를 받을 수가 있을까?...하느님 앞에서는 피할 도리가 없고, 죄상은 그 본체를 드러내고, 그리고 죄상에 대해 일일이 증거를 실토할 수밖에 없으니까...아, 덫에 걸린 새 같은 이 영혼, 몸부림을 칠수록 더 죄어들기만 하는구나.

나를 도와주소서...만사 다 잘되게 해주옵소서(무릎을 꿇는다)."

 

 

 

  클로디어스의 기도에는 자신의 죄에 대한 철저한 인식(認識)-밑줄 친 부분-, 죄의 결과로 얻은 소득에 대한 자각과 죄책(罪責)-기울여진 부분-을 충분히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limit Of his guilt
 그러나 그의 회개의 한계는 여기에 있다.

"만사 다 잘되게 해 주옵소서"

   그의 기도에는 일종의 후회나 회개나 참회의 기미는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은 후회도 아니요, 회개도 아니요, 참회도 아니다. 그냥 넋두리에 불과하다. 자신이 벌인 죄악의 열매를 다 먹으면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회개와 참회는 그 자리에서 돌아서는 것,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클로디어스의 guilt는 불완전하고도 온전치 못한 guilt이다. 이것은 인물창조의 일관성에도 조금은 위배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다.

 

 

Epilogue...

   guilt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은전30에 팔았던 가룟 유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의 스승을 판 제자같지 않은 제자였다. 처음에는 그가 물질, 금전에 욕심을 부려 예수를 팔았지만 후에는 그것에 대한 강렬한 guilt를 느낀다. 그 guilt는 곧 목매달아 자살하는 지경에 이르른다. 그것은 가룟 유다의 guilt의 peak였다. 클로디어스의 guilt도 Judah처럼 자살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이야기하고픈 것은 최고의 악한에게도 일말의 양심(consciousness)은 있기에 그것은 죄의식 즉 guilty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넋두리처럼, 클로디어스의 guilt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기엔 일종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적(的)으로 이해하면 될까?

비록 그가 엄청난 참상을 저지른 흉악범이지만 그에게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내부에는 언제나 지킬박사(善)적인 면모와 하이드(惡)적인 면모가 공존한다. Shakespeare는 이러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과 안목을

 

자신의 인물창조에도 녹아나게 했다고 말하면 지나친 아부일까?

 

 

 

 

 

여담......

 

 

 

 

 

히가시노 게이고의 <기린의 날개>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고교 수영부의 유망주였던 2학년 요시나가 도모유키, 3학년들은 2학년이 잘 나가는 것에 질투와 시기가 가득했다. 수영부원들은 장난 비슷하게 도모유키를 괴롭히다가 수영장에서 질식사시킨다. 살해하고 만다. 고의성이 있어지만 죽이기까지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는 죽었다. 수학선생이자 수영교사인 이토가와는 이를 은폐한다. 학교의 명예와 자신의 미래와 모든 것을 고려해(?) 청소년들의 살해사건을 감춘다. 이를테면, 왕따 이후에 특별훈련이란 명목하에 훈련하다가 수영장에서 질식했다는 것이다. 선생이 죄를 덮고 수영부원들은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어찌 하지도 못한 채 죄책감 속에 살아가게끔 만든다.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고요? 거짓말 하는게 어떻게 아이들을 위한 길이란 말입니까?...3년전 당신은 세 아이에게 그렇게 가르쳤어. 그래서 스기노가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거야."(기린의 날개,141.p)

 

스기노는 자신들의 그 옛날의 잘못된 범죄가 드러날까봐 죽은 학생, 요시나가 도모유키의 아버지 다케아키까지 살해하고야 만다. 진실이 은폐되면 은폐될 수록 진실을 더 감추기 위해 인간은 더 끔직한 만행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야 만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건가싶고, 한 사람의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망쳐놓고 이렇게 태연하게 살고 있다니, 인간실격이죠."

(3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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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1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햄릿의 글은 대학때 쓴 글이라 부끄럽네요!
 


 

 

 

 https://karl21.tistory.com

에 가시면 제 글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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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8-11 1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선과학실록> 보니 세종이 아무래도 수학을 공부한 최초의 한국왕이었던 거 같고(그때 수학 책을 쓴 한국 식자가 있었던 게 큰 요인), 문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매사냥을 즐겨했다는 정보도 알게 되었죠^^ 전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더 재밌더라고요ㅎ

카알벨루치 2018-08-11 15:42   좋아요 0 | URL
세종이 운동을 좋아하지 않은것은 사실입니다 사냥은 아무래도 즐겼을 것입니다 위대한 군주 세종대왕이십니다! Agalma님 친구받아주셔서 감사드리고 많이 배울께요^^
 

 대박이다! 이런 책이 있다니!(나는 이 책을 통해 4차산업혁명의 문을 열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래보고서, 4차산업혁명, 인공지능이 몰고 온 후폭풍.

전반부는 인공지능이 발전하면, 인간의 생존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하며, 실업은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를 데이터를 통해 증명한다.

후반부터는 미래사회를 총체적, 거시적으로 다루면서 특히 작금의 시대적인 인문학 열풍에서 '인문학'은 '한국식 인문학'과 '서양식 인문학'이 차이가 있음을 밝혀준다. 우리의 '한국식 인문학'은 서양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왜곡과 굴절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굉장히 신선한 충격이다!

저자는 인문학 안에 '과학'이 빠져있다는 이야길 한다. 미래사회는 과학의 지평에서 인간학을 다뤄야 하는데, 과학을 모른 채 무시하며 인문학을 운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나는 X세대이고, 아내는 C세대이다. 우리아이들은 O세대들이다. 저자는 앞으로의 '자녀교육'에 대한 부분도 터치한다. 과학과 함께 더 넓어지고, 더 탄력적이 된 사이버 물리적 지평 가운데서 정말 특별한 통찰insight가 요구된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왜 과학서를 그렇게 탐독하는지 알 것 같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여러 가지 외국어에 능통하다(심지어 히브리어와 한국어도 할 줄 안다고). 그가 외국어를 왜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최신과학잡지나 뉴스나 이슈를 알기 위해선 외국어를 해야 한다. 외국의 최신의 자료나 정보가 국내에 번역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최신의 자료는 독자의 손에 번역서로 들려질때는 이미 구식의out of date 자료가 되버리기 때문이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한 세대나 한 시대만 먼저 태어났어도 그렇게 과학독서에 목매진 않았을 것이다.

미래사회는 인공지능과 함께 가는 사회이고, 지식이 이제 빅뱅의 시점에 이르렀고, 그 지식을 인간 안에 가둘 수 없고, 인공지능은 인간의 한계를 넘는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그게 너무 굉장하다.

디지털이민자인 우리 세대 VS 디지털 원주민인 자녀세대의 갭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기에 디지털 아테네를 만들어가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잡킬러는 인간이 만든 과학이고, 인공지능이고, 로봇이지만, 그 과학적 결과물을 만든 것은 바로 인간이다. 결국 인간이 잡킬러Jobkiller이다. 이 말은 또 다른 측면에서 여전히 '인간'이 모든 궁극적인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노령화사회의 문제점, 2060년에는 생각하기도 싫은 미래가 우리 자녀들에게 도래한다. 그 궁극적 어두운 먹구름 앞에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인문학을 읽지만, 신앙인으로서 '인간의 지혜 VS 하늘의 지혜'란 테제를 생각해 보기도 했다.

 

굉장히 흥미로운 사회가 전개되고, 예상치 못한 문제들도 도래하겠으나, 역시 여긴 지구이고, 우리는 인간이다.

판후이가 알파고와 바둑을 두면서 세계랭킹 300위로 도약하고선 "So beautiful! So beautiful!"이라고 했다고 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판후이의 찬사이다.

 

잡킬러는 바로 인간이다. 인간으로부터 모든 것이 쏟아져 나왔기에, 인간이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지혜와 통찰,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만 잡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이들(어른도 마찬가지지만), 유튜브에 들어가면 디지컬 이민자인 부모세대가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정보와 동영상의 바다에 빠져있는 원주민인 우리 아이들, 그들은 디지털 원주민이다...이민자인 우리가 원주민을 대놓고 욕하고 윽박지를 수만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들은 원주민이다. 원주민! 디지털 원주민의 생태계이고 문화이다. 그러기에, 여기에 나는 사피엔스의 지혜와 호모 데우스의 지혜가 필요하고, 더 나아가 하나 더 추가한다면,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고 성찰케 하는, 우리의 영역 밖을 넘어서는 '하늘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의 결과이다.

 

디지털 원주민인 다음세대인 우리 자녀들에게 우리의 책임을 다한 후에 우리도 그런 감탄을 내뱉을 수 있음 좋겠다!

“So beautiful! So beautiful!”이라고...

 

 

-클라우스 슈밥의 책은 꼭 읽고 싶다.

근데, 자꾸 먼지만 쌓인다는...그래도 서재에 꽂혀 있으면 언젠가는 읽는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후덜덜! 

(내가 이 페이퍼를 다 치고 난 후, 익스플로어가 에러가 나버렸다. 글이 다 날아갔다. 임시저장되었는줄 알았는데, 제목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아! 울화가 치밀고...하악! 그래서 다시 안전하게 저장한다고 한글에서 워드를 쳤다. 그리고서 복사한 마우스를 들고 알라딘에 다시 떡 들어왔는데, 이런...다 저장되어 있었다는...아! 이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가 아니란 말인가!ㅠㅠ그래도 본의 아니게 퇴고의 과정을 거치는 계기가 되었다고 자위한다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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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8-08-10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저께 올린 사진들이 다 날아가버렸어요.
저장도 안 되어 있고요.
그것도 두번씩이나...ㅠㅠ

비가 와도 여전히 덥네요.
오늘은 조금이라도 시원할 줄 알았는데...
시원한 하루 되시고 항상 건강챙기세요.^^

카알벨루치 2018-08-10 12:31   좋아요 0 | URL
속상하셨겠어요 더운데 더 더워지셨겠네요 그래도 새벽에 비가 좀 내려 에어컨 안 켜고 선풍기만 켰는데 시원하던데...귀에는 매미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네요! 더위조심하십시오!

cyrus 2018-08-10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외국 문학작품도 읽으려면 외국어를 공부해야 돼요. 책 읽는 시간이 아까워서 외국어 공부를 손에서 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선택이었어요..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8-10 12:28   좋아요 0 | URL
또 다른 언어를 하나 더 섭렵한다는 것은 엄청난 이득입니다! 그런데 그게 만만치 않다는거죠 근데 다치바나 다카치처럼 개인교사를 둬서 공부하고....가장 중요한 것은 동기인데, 동기부여 동기유발이 되면 더 수월하겠죠 하지만 현실은....ㅎ cyrus님
말씀도 맞아요 번역가들이 모든 타언어의 책을 번역할 수 없죠 다카시 책이나 일본작가들 추천하는 도서는 번역안된게 너무 많더군요! 근데 외국어공부가 은근한 압박.언어도 수학 같은데 수학은 외우는게 중요한데 제가 그게 안 됩니다 ㅎㅎ감사해요
 

이 책은 주식초보자들을 위한 입문서라고 볼 수 있다.

허영만 만화가가 '커피한잔 하실래요?'를 집필하던 2015년 8월, 그는 갑자기 다음 만화에 대한 주제를 '주식투자를 해보면?' 그러면서 주식에 대한 책을 수십권 읽고, 전문주식투자자 5인을 만나 주식에 대한 소재를 준비한다. 그리고서 훗날 연재만화를 진행하게 되어 이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특별히, 전문투자가들의 이력을 소개하는데, 이들은 예전에 주식으로 다들 크게 한 번 망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다. 그 실패를 딛고 안전하게 망하지 않고(?) 주식투자를 통해 이윤을 남기는 본보기를 5명의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이게 원래 실시간 주식투자 현황을 만화를 담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면 법적인 문제가 있어 결국 투자한 결과를 2주후에 연재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고 한다.

 

중간중간에 주식에 대한 만화를 싣고, 매일매일 카톡을 통해 주식을 사고 파는 건에 대해 전문투자자의 충고를 받아 허영만 화백이 주식세계로 들어가는 내용이다. 카톡그림을 통해 주식을 사고 파는 것, 왜 그러한지 이유를 묻고 투자방향 등을 나눈다. 기업체에 대한 정보요약도 담겨 있다.

 

1권 부록에선 '비트코인'에 대한 이야길 다루고,

2권 부록에선 '모바일 계좌 만들기와 투자하기'를 다룬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은 가게가 치킨가게란다. 창업을 앞둔 사람들은 대다수 치킨가게나 커피숍 등을 선호한다. 하지만, 독서를 하면 시대의 정신과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2018트렌드>나 <명견만리>를 보면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한다. 독서는 그런 면에서 예지력을 소유하게끔 한다. 주식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전문투자가들 중에는 일년 내내 휴양지에서 가족여행을 하면서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전문투자가가 되려면, 역시 공부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 그리고 자신이 투자하는 기업과 사업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과 식견이 요구된다. 전문투자가들은 자신이 투자할 기업이나 사업에 대해선 미리 회사를 찾아가 미래의 전망과 가치가 있는지까지 두루두루 정보를 섭렵한다고 한다. 많이 알아야 제대로 투자할 수 있단 말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유리할 것이다.

 

주식을 해서 집 한 채를 샀던 지인이 있다.

하지만 몇년 후, 주식 때문에 파산하여 망했다. 그래서 주식은 내게 그렇게 곱게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허영만은 주식투자를 통해 미래를 설계하면 어떠냐? 라며 이 책을 쓰고 있다. 물론 허영만의 주식투자 방식이 단타방식이라 이리저리 말이 많다고 한다. 주식투자현황을 보면, 몇 십분, 몇 시간 만에 돈이 수배로 불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식투자는 '시간(타이밍)'이 중요하다고 한다.

 

산악인들이 등정을 할 때 정상에 오르기 위해 자신의 에너지를 다 쓰면 위험하다는 말을 한다. 왜냐하면 올라갈때도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내려올 때도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산하는 중에 에너지가 고갈되어 싸늘한 시체로 남겨두고 오는 산악인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이 말을 주식에 적용하면, '한 방의 대박'을 노리고 자신의 투자금 전체나 대부분을 투자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는 이야기이다. 전문투자가들은 자신의 투자금의 본전(?)을 항상 비축해두고 조금씩 조금씩 투자한다고 한다. 절대 무리는 금물이란 이야기이다.

 

  이런 스타일은 김진명의 소설 <카지노>에서도 나타난다.

  <카지노>는 저자의 <도박사 1,2>와는 완전 다른 스토리로 '카지노'를 썼다고는 하는데, 내가 보니 비슷하다. 도박 스페셜리스트 서후나 우학장의 제자 한혁이나 혜기의 도박스타일도 이와 비슷하다. 본전을 남기고 남은 금액으로 딜을 하고 또 금액을 불리면 금액을 올려 딜을 하고, 차곡차곡 올라가되, 순간 잃을 수도 있지만, 잃는 금액은 최소한으로 하고, 이윤을 계속 조금씩 조금씩 남겨 쌓아가 도박장을 떠날때는 돈을 '따서' 갈 수 있는 것이다.

 

"도박사는 철학이 있어야 해요. 눈 앞에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돈을 무심히 볼 수 있어야 해요. 그게 돈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자세지요. 돈을 그렇게 많이 다루면서도 결코 돈에 중독되지 않아야 참된 삶을 볼 수 있어요. 나는 가난이 좋아요. 가난해야 눈에 보이는 게 있어요. 인류의 스승들은 모두 가난했어요. 아니, 가난을 자청했어요. ..."

 

난 이 말이 너무 가슴에 다가왔는데, '나는 가난이 좋아요. 가난해야 눈에 보이는 게 있어요. 인류의 스승들은 모두 가난했어요. 아니, 가난을 자청했어요...' 이 대목이 너무 좋은데, 너무 가난에 찌들면, 그것도 힘든 것은 사실이다. 카지노의 주인공은 돈에 연연하지 않게끔 설정되었다. 소설이니.

"카지노 게임이란 본래 지는 겁니다. 숱한 패배 속에 살아남는 지혜를 터득하고자 하는 인간의 몸부림이에요. 인간의 내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도박이란 본능을 어떻게 처리하냐느가 인간의 숙제예요. 그러나 두 사람은 도박에 이기게끔만 설계되었어요. 많은 노름꾼들이 다 그렇지요...."(p.427).

 

"카지노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의 게임"(p.436)이라고 한다.

 

도박이란 것이 진짜 마음의 게임이다. 포커페이스란 말이 있지 않은가!

대학원 면접 때 내가 평소에 내심 존경했던 교수가 나더러 대뜸 질문을 두 가지 했는데, 하나는 류시화의 <시로 납치하다> 리뷰에 적었다. 꼭 들추어 보란 말씀은 아닙니다.ㅋㅋㅋㅋ

(어 근데, 이 상품정보가 언제 들어갔죠? 희한하네....)

 

또 하나는 '포커를 많이 쳐봤느냐?"...헉! 어떻게 그런 질문을! 순간 머리가 하애졌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인터넷 포커를 쳐봤다고 했다(당시 세이클럽에선 그런 게임이 인기였다). 건강하고 건전한 대학원의 교수님이 나에게...내가 도박에 찌들어 사는것처럼 보였나? ㅋㅋ군대 있을때 장난삼아 심심풀이 땅콩으로 포커를 쳐서 푼돈을 많이 잃었다.ㅜㅜ 당시 포커계를 평정했던 친구는 나더러 '너는 포커를 치지 말라!'고 조언까지 했을 정도다. 포커페이스는 쉬운 것이 아니라는. 한 방에 무언가를 할려고 하다가 패가망신하는 것이 바로 도박이고, 주식이란 말씀!

(근데, 한병철의 <투명사회>에서 그런 이야길 한다. 온라인 세계에서 자신을 노출시키는 투명성이 리스크 부담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나중에 제가 도박꾼으로 매도되는 것은 아닌지. 자숙자숙 겸손겸손 반성반성....)

 

어찌하다 도박이야기까지 나왔다...  

 

주식에 대한 입문서와 같은 <3000만원>, 나중에는 투자자가 한 명 더 추가되어 진행된다. 참, 이 책은 투자금 3000만원으로 5명의 전문투자가들이 각각 600만원씩 투자금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한다는 설정이다. 나중에는 1명 더 추가되니 36000만원으로 증가하게 된다. 2권 현재상황은 흑자를 계속 기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주식 투자를 할 때 잘 나가는 투자지점을 한 곳에 몰빵하는 것은 위험하고, 다양한 분야의 투자할 곳에다 투자하라는 이야길 한다. 한 곳에 몰빵(올인)하는 것은 리스크가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관심있으신 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듯 하다.

 

참고로, 저는 이 책이 주식투자인지도 모르고 빌렸답니다.

왜냐구요? 전 허영만, 이현세 만화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 만화들과 함께 제가 학창시절을 지냈고 제가 또 어릴 적 꿈이 만화가였다는 겁니다. 저희 삼촌이 그때 만화가이셨거든요. 삼촌의 DNA가 저에게 물려졌는지 어땠는지. 만화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허영만 만화를 빌렸는데, 주식투자라니...그래도 이 만화를 통해 생경한 주식에 대해 '새발의 피'만큼이지만 알게 되었네요. 비트코인, 가상화폐, 블록체인...이런 주제들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 ㅎ 3권도 읽어보고 싶네요. 도서관에 주문했습니다!

 

-오늘 리뷰는 여기까지!

글을 쓰고 싶었는데,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때,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고 하면 핑계일까요? 하지만 지금은, 하루에 한번이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네요. 그것이 삶의 스토리이면 더 좋겠지만, 지금은 삶을 이야기할만 것이 없기에, 텍스트 스토리만이라도 끄적이는게 감사하고 행복하네요! 

수필, 에세이, 산문집을 내시는 분들은 진짜 대단하신 것 같아요! 삶의 스토리가 빈약하기에 제가 에세이를 잘 못 읽는 것인지도 모르죠.ㅎㅎ 암튼 에세이 잘 읽으시는 분들 부럽습니다.

 

이웃님들, 제가 알라딘으로 와서 여러분들 때문에 독서에 대해 굉장한 도전을 받고 있는 것, 너무 감사드립니다. 올라가야할 정상이 높다는 것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부족하지만, 오늘도 읽습니다!

근데, 요즘 '읽고 싶은 책'이 '읽은 책'을 넘어갈 것 같네요! ㅋㅋ

굿밤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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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08 2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님의 가열찬 정상등반을 응원합니다.

카알벨루치 2018-08-08 23:06   좋아요 1 | URL
Syo님 몇일동안 20권 읽었다 하셨죠? 우아 넘하셔! 난 7월 한달 겨우 20권 넘겼는데. Syo님 많이 읽으시고 많이 도전주세요!ㅎ

syo 2018-08-08 23:13   좋아요 2 | URL
이런 반응을 만날 때 제가 늘상 드리는 말씀이,
1. syo는 백수라 책 읽는 게 하루 스케쥴의 전부입니다
2. syo는 애들용 쉬운 책들로 권수를 채우는 얍삽이를 사용합니다. 이번주는 <만화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를 이용했지요.

카알님께서는 저 같은 무지렁이는 지나치시고 더 훌륭하신 분들을 꺾어버리시길!!

카알벨루치 2018-08-08 2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전을 만화로 풀어낸 책들을 전 쉬이 보지 않습니다. 저도 <자유론>이나 <자본론>을 그렇게 접근했거든요. 조만간 읽다가 만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청소년판으로 읽을 계획입니다. 그것도 순전히 Syo님 덕분입니다. 개구리가 더 큰 비상과 도약을 위해 움츠리듯이 Syo님 그렇게 준비하신다는 거 잘 알고 앞으로 주목할 것입니다. ㅎㅎㅎ

syo 2018-08-08 23:39   좋아요 1 | URL
뭘 또 그렇게까지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우리 열심히 읽읍시다요!!

카알벨루치 2018-08-09 10:38   좋아요 0 | URL
자라투스트라 ㅋㅋ짜라투스트라 ㅎㅎ위버멘쉬가 기억나네요

아트 2018-08-09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알라딘으로 와서 정말 독서의 고수님들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카알벨루치 님도 그 중 한 분이세요~ 저는 독서 입문자이지만 고수님들 보며 자극받고 열심히 읽고 싶어집니다 😸😸 그래서 북플에 매일같이 출석할 수 밖에 없답니다ㅡ

카알벨루치 2018-08-09 09:22   좋아요 1 | URL
저도 독서 제대로 한 지 1년도 안됐어요 저도 초보!!!ㅋ

아트 2018-08-09 09:56   좋아요 1 | URL
헉 저도 이제 1년을 채워가는데, 카알벨루치 님이 1년이 안되셨다니 😹😹😹 갈길이 머네요..!!
 

-소외의 이중성Doubleness...신으로부터의 소외 & 인간으로부터의 소외

‘고도를 기다리며‘는 두 인물, 즉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Godot라는 막연한 인물을 기다리며 벌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벌어지는 사건이란 지루하고도 반복적이며 순환적인 일상뿐이다.

나무아래에서 에스트라공(GoGo), 블라디미르(DiDi)는 약 오십 년을 ‘Godot라는 인물 기다리기‘에 생을 할애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Godot의 정체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는 없다. 불가지한 상태이다.
물론 가끔씩 소년이 와서 그들에게 고도가 <내일> 올 거라는 가망없는 반복적인 말로 알려준다는 것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들의 삶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아무도 안 오고, 아무도 안 떠나고 참 지긋지긋하군‘이라는 GoGo의 말로 대변된다.
그들에게 이처럼 모든 것이 불확실하며 무의미하며 무가치하다.
그러나, 유일하게도 의미있는 것은 ‘이 광막한 혼란 가운데서 우리가 고도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그 점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DiDi와 GoGo의 존재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이 둘은 정이 들만한 긴 세월을 같이 보내며 지냈지만
상대에게서 풍기는 ‘마늘냄새‘ 때문에 서로의 존재를 부둥켜 안지 못한 피상적인 관계가 된다
-그들은 서로를 소외(Estrangement). 이걸 1)인간으로부터의 소외라 칭하자-.
그러나, 이런 피상성이 그들의 관계를 파괴시키진 못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함께 함(Togetherness)‘은 또 하나의 삶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작태는 현대인의 치부-피상성의 굴레-라 해도 좋겠다.

둘은 그런 갑갑하고도 지루한 일상을 탈피하기 위해서 ‘목 매다는 일‘도 몇 번 시도해 보지만 결국 그들의 거대하고도 유일한 대의명분 ˝Waiting For Godot˝-이것은 ‘희망없는 희망(hopeless hope)이며 ‘비극적 희망‘인 것이다-
로 인해 내일로 미루는 사이클로 치장된다.

때때로 ‘에스트라공‘과 ‘뽀조‘는 망각의 존재로 나타난다.
바로 어제의 일도 제대로 기억치 못하는 레테에 빠져 있다.
작자는 ‘DiDi와 GoGo‘의 지루한 일상과 ‘GoGo와 뽀조의 이러한 망각 현상‘을 통해 인간상황의 부조리와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내비춘다.
더 나아가 뽀조와 럭키의 인물 구도를 보자면,
뽀조는 강압적 명령자라면, 럭키는 무조건적인 순종자로 대비된다.

첫 번째 등장화면에서 아주 강한 이미지를 풍긴 뽀조는 점차로 무기력한 존재로 나타나고, 럭키는 여전히 포승줄에 목이 매인 채 살아가는 작태를 보인다. 이런 초상화는 나에게 뽀조는 신(God)을, 럭키는 무의미하게 고난받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각을 투영시키게 한다.

더 나아가서는 이 장면 구도는 바로 ‘신의 몰락‘을 그리는 것이라 본다.
‘저 놈(럭키)은 어느 날 벙어리가 되었고 나(뽀조)는 어느날 장님이 되었고, 또 어느 날엔가 우리(럭키와 뽀조)는 귀머거리가 될거요.‘

벙어리→장님→귀머거리

이런 육체적인 불구의 점층적인 구도를 보면 ‘신의 몰락‘의 구체적인 기상도가 그려진다.
또한 이러한 뉘앙스는 뽀조가 럭키의 근래에 추는 유일한 춤의 이름-‘전구제조인의 죽음‘, ‘늙은이의 암‘, ‘그물 춤‘-속에 내재되어 있다.

<신의 몰락>,
<신의 무기력한 존재로서의 전락>은 뽀조가 자빠져서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일어나지 못하는 상(image)을 보면서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선 블라디미르는 이런 뽀조의 곤궁을 보며,
이것을 온 인류의 딜레마(Dilemma)로 끌어 올린다.

‘우리가 방금 들은 구원 요청은 차라리 인류 전체에게 보내어진거야‘

또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온 인류를 상징하는 이름인 ‘아벨‘, ‘카인‘을 뽀조를 부를 때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이 신으로부터의 소외-소외.2가 되겠다-를 체험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신의 몰락, 그 자체가 바로 유한한 인간에겐 또 하나의 소외현상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사무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그 당시의 역사적인 현실
-세계대전 이후의 암담함, 처절함, 절망성-에서 느끼는 세상의 고통과 악몽같은 허망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사무엘 베케트는 스승이자 친구인, ‘율리시스‘의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의 비서였다고 한다.

*비슷한 주제의 최근에 읽은 소설은 어떤게 있을까? 폰은 10권이 맥시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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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8-08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존주의의 관점으로 <고도를 기다리며>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카알벨루치 2018-08-08 16:13   좋아요 0 | URL
이 작품이 나온 배경이 실존주의 태생과 연결되지 않을까 싶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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