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팬데믹 - 코로나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기독교적 성찰
톰 라이트 지음, 이지혜 옮김 / 비아토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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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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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코로나 시대를 맞이했다. 전세계적인 전염병 바이러스의 시대, pandemic 시대이다. 신약학자 톰 라이트는 <하나님과 팬데믹>이란 책을 저술했다. 통찰이 번득이는 책이었다. 코로나 19 초기에 <타임>에서 코로나에 대한 글을 적어달라는 청탁으로 인해 이 글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하면서 오늘의 페이퍼를 전개하고자 한다. 팬데믹, 코로나의 재앙의 시대에 대한 대처방식을 먼저 역사적으로, 톰 라이트는 고대철학에서 가져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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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의 대안적 태도이다.

첫째, 스토아학파에서는 세상 만사가 다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바꿀 도리는 없으니, 그냥 거기에 맞춰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둘째, 에피쿠로스 학파가 있다. 이들은 모든 일이 무작위로 일어나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고 할 뿐이다.

셋째, 플라톤학파가 있다. 이들은 현세에 실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이 땅에서는 나쁜 일이 생기지만, 우리는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되어 있다.

당신은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가? 스토아학파처럼 순응파인가? 아니면 에피쿠로스 학파처럼 어떤 난리법석을 떨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마음의 평정,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 아니면 플라톤학파처럼 육은 악하고, 영은 선하니, 영혼만 제대로 구원받으면 된다는 주의인가? 톰 라이트는 기독교적인 입장을 표명한다.



신약학자, 톰 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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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 저자는 오늘날 기독교의 분위기가 플라톤학파처럼 흘러가는 모습을 지적한다. 이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고, 사람들은 이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더 큰 재앙, 종말의 징조로서 코로나 보다 더 한 것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여타 종교계에서 이런 식의 접근을 한다. 전세계에 유행되는 있는 전염병, 역병시대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것이 작금의 현실에서 쉽게 마침표를 찍지 못하기에 사람들은 더 두려워하고 공포에 젖어 있다. 사람들에게 공포와 위기의식을 불어넣어 주어 그들로 하여금 신앙의 세계로 돌이키게금 하자는 의도와 동기는 물론 선하긴 하나, 또한 그런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신앙의 세계로 들어서는 이들도 코로나 시대에 있긴 하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동기화작업 보다 더 중요한 맥락을 짚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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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바로 이 요한복음 11:35 한 구절로 압축해서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겠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요한복음 11장의 내용은 죽은 나사로의 부활 사건이 등장한다. 나사로, 그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과 특별히 친밀한 관계였다. 하지만, 나사로가 죽었다. 어떻게 죽었는지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죽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나사로가 죽기 전에 빨리 오셔서 어떻게 조치를 취해 주길 간절히 바랬다. 기도라도 해주시던지, 병을 잘 고치시니 다른 이들에게 행한 것처럼 치유의 기적을 베풀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지 4일이 지나(요 11:17) 느지막히 오셨다. 통곡의 장례식장이었다. 젊은 나이에 죽어간 남동생에 대한 비통함과 애곡함이 두 자매에게 가득했다. 이 사건은 신학적으로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대한 예표적인 sign을 주는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부활에 앞서 나사로의 부활을 먼저 보여주고자 하는 스토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초점은 그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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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곧 부활시킬 것이다.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고 하시면서 부활시킬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슬픔과 고통과 애곡과 비통의 현장에서 무슨 행동을 하셨는가?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35절)

-곧 부활시킬 것을 아시면서 왜 눈물을 흘리셨는가 말이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예수님의 마음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이다. 곧 일이 해결되고 사건이 수습될거니깐 사람들이 슬퍼하고 눈물짓는 그 현장에서 윽박지르거나 지적하거나 비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그들과 함께 우셨던 것이다. 눈물을 흘리셨던 것이다. 고통당하는 자들과 함께 우는 친밀함에서 나오는 긍휼의 눈물이었다.

‘죽음이 집과 가게로 스며들고, 건강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자신은 알지도 못한 채 바이러스를 옮기고 다니고, 거리의 낯선 사람이 모두 위험인물이고, 다들 마스크를 착용하고, 교회가 문을 닫아 사람들이 홀로 임종을 맞아야 하는 심각한 위기의 때, 지금은 탄식할 때다. 손쉬운 답이 없다고 인정할 때다. 위기를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외쳐댈 기회로 삼는 것을 거부할 때다. 친구들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다. 성령이 말할 수 없는 깊은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때다. 바울은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세상이 울고 있다. 교회의 첫 부르심,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부르심은 우는 사람들 사이에 겸허히 자리 잡는 것이다.

슬픔도 사랑의 일부다. 슬퍼하지 않는 것, 애통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흘러나오는 가장 내밀한 마음 속 같은 장소의 문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우리 사횡가 슬픔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두려움 자체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그렇다. 친구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처럼 강해야 한다. 예수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실 성령님, 하지만 지금은 말할 수 없이 깊은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신 성령님처럼 강해야 한다.‘(톰 라이트, 99-1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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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터졌다.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를 뒤덮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알팍하게 생각했는데, 이게 점점 시간이 지나가니 압도적이었다. 그러면서 코로나19의 이 재앙이 ‘왜?‘ 발생했는가? 하면서 ‘왜?‘라는 원인과 이유에 대해 지나치게 이야기하면서 누군가를 ‘탓‘하며 비판하기 일색이었다. 하지만, 톰 라이트는 ‘왜‘가 아니라 이제는 ‘어떻게?‘란 접근법이 필요하다 말한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선천적 맹인에 대해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한다.

9: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이니이까 그의 부모이니까

오늘날의 사람들처럼 제자들도 재앙의 원인, 고통의 이유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왜?WHy?‘라는 질문이엇다. 그러나,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신다.

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이 대목은 우리에게 굉장히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누구의 죄 때문인지, 원인과 이유 WhY?를 규명하는 것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과 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 드러내시고자 하는, What?의 계획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사실, 내가 지난 두어 주 사이에 들은 최고의 대답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무엇‘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있는가?‘(톰 라이트, 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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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당하는 팬데믹 사회와 시대에 대해 과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집중한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눈물‘로 압축된다. 천국 갈건데, 이 땅에서의 삶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플라톤주의 식 접근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현재 Here and now‘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눈물, 예수님의 눈물‘을 마음에 담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현재‘라는 말이다. 팬데믹한 지구촌의 현실에 함께 고통 당하는 이들의 현실에 직접 동참하기를 지지한다.

‘2-3세기에 심각한 질병이 마을을 덮치자 부자들은 산으로 피신했다(저지대의 공기 중 악취가 문제가 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떠나지 않고 사람들을 돌보았고, 그러다가 병에 걸려 죽기도 했다. 사람들은 몹시 놀랐다. ˝도대체 왜 그랬죠?˝ 그들은 ˝아, 우리는 이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구하려고 자기 목숨을 내려놓으셨기에 우리도 그렇게 합니다˝라고 대답했다.‘(톰 라이트, 17p)


요한복음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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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톰 라이트는 ‘독일 전투기가 런던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었을 때 쓴 T.S.엘리어트의 <네 개의 사중주Four Quartets> 중 두 번째 시 ˝이스터 코커Easter Coker˝를 묵상해 보자‘고 제안한다.

‘나는 내 영혼에 잠자코 있으라고 말했다. 어둠이 그대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어둠이 임하도록...
나는 내 영혼에 잠자코 있으라고 말했다. 소망하지 말고 기다리라 말했다.
소망은 그릇된 것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사랑 없이 기다리라.
사랑은 그릇된 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믿음이 있다.
그러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모두 기다려야 한다.
생각하지 말고 기다리라. 그대는 아직 생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테니.
그래서 어둠이 빛이 되고, 멈춤이 춤이 되어....
그대가 알지 못하는 곳에 도달하려면
그대는 무지의 길로 가야 하리....‘



T.S.엘리어트는 ‘힘든 상황에서 우리가 얻으려는 모든 손쉬운 위안은 망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그 위안을 붙잡는다....기도할 때나 살아갈 때나 미봉책을 붙잡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 탄식하라는 요청과 함께 사는 삶. 성령의 신음에 동참하는 삶은 힘들고 괴로울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아들의 형상으로 변화된다.‘(톰 라이트, 100-101p)


T.S.Eli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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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요한복음 11:35)

나사로의 부활이 예정되어 있다면, 눈물이 필요없다? 그랬다면, 예수님께서 우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함께 애통해하셨다. 기독교는 우리의 정서를 무시하거나 배제하거나 거절하지 않는다. 우리의 정서와 함께 공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정서를 함께 공유하시는 예수님이시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고 계실 것이다. ‘공감‘과 ‘공유‘의 대변자였던 예수님은 나무 십자가에서 이미 모든 것을 다 보여주셨지 않는가! 예수님은 나사로의 장례식에서 우리가 잘하는 비판의 칼을 갈지 않으셨다. 그냥 우셨다. 눈물을 흘리시며 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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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의 눈물‘을 자기화하는 것이 아닐까? 하나님의 눈물을 배우는 것이다. 현재의 삶에서 우리가 당하는 것이 물리적 코로나이든, 정신적인, 영적인 코로나 이든지 간에 ‘함께 하는 마음‘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기도 하다. 히브리어로 긍휼은 레헴이다. 이 단어는 ‘자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품을 수 있고 키울 수 있고 케어할 수 있는 여성의 보금자리가 바로 자궁이 아닌가! 그런 따뜻한 마음이 바로 ‘긍휼‘이다.

마태복음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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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14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7-14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20-07-14 0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 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겠지요

누구를 탓하기보다 모두가 힘을 합쳐서 지금을 잘 넘어가면 좋을 텐데, 그런 일보다 안 좋은 일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한국 사람이 공격 받았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잖아요 한국 사람이라고 그러지 않은 건 아닐지도... 중국 사람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봤습니다 그렇게 해도 퍼진 곳도 있던데... 이렇게 오래 갈지 몰랐네요 오래 간다 해도 쉽게 퍼지지 않으면 나을 텐데 그렇지 않네요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됐다 나으면 별로 안 좋다는 말도 있고... 어느 한나라 탓은 아닐 거예요 인류가 이렇게 만든 거겠지요

카알벨루치 님 건강 잘 챙기시고 가끔 서재에 글 쓰시기 바랍니다


희선

2020-07-14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20-08-03 1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잘 계시죠?
자주 좀 들리세요 그립습니다^^

카알벨루치 2020-08-20 11:21   좋아요 0 | URL
북프리쿠키님~잘 계시죠? 요즘 개인적인 사정으로 조금 뜸합니다 안부인사 감사드리고 늘 건강유의하소서!

페크(pek0501) 2020-08-10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뜸하십니다.

카알벨루치 2020-08-20 11:22   좋아요 1 | URL
페크님의 안부가 참 정겹습니다❤️

2020-08-20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목
김금숙 지음, 박완서 원작 / 한겨레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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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첫 작품 <나목>이 김금숙의 만화로 다시 태어났다 김금숙의 시선과 해석을 덧입혀 6.25전쟁 70주년을 앞두고 출간되었다 고 박수근화백을 소재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전쟁을 지나오면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봐도 무방하겠다 이런 만화 절대적으로 환영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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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0-09-12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히 땡기는 책입니다.ㅠ

카알벨루치 2020-09-12 19:32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서 쓰윽 빌려봐보심은 ㅎㅎ소장각????ㅋㅋ

북프리쿠키 2020-09-12 19:39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 있을라나요.
검색해볼께요^^

카알벨루치 2020-09-13 14:36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 없을수도~전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봤던 기억이...즐건 하루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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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은 나보다 젊은 작가였다. 80년대생이었다. 신은 참으로 불공평하구나! 젊은 작가가 이렇게 글을 잘 쓰다니 그런 생각이다. 젊은작가 수상작품집을 두어권 읽었는데, 나는 이제 젊은 작가에 들어갈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세월은 구약성경의 표현처럼 장사의 쏜 화살처럼스피드하게 흘러가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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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 보면 그는 형용사부사의 사용을 굉장히 배제하거나 꺼린다. 주어와 동사로 모든 문장을 완벽하게 기술할 수 있는 단문, 간결함, simplicity를 추구했다. 거추장스럽거나 아니면 군더더기가 많이 장식된 문장과 단어를 극도로 자제한다는 의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쓰는 문장에는 얼마나 많은 수사여구와 부연설명하는 품사들이 많은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문득 우리의 삶을 생각해볼 때, ‘존재를 주어라고 하고, ‘(살아냄)’을 술어라고 했을 때, 그 안에 들어가는 수많은 품사들과 단어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주어와 술어 사이에 등장하는 무수한 컨텐츠들...‘존재와 삶(인생)’이라는 카테고리 안에는 수많은 것들이 들어가거나 빠지거나 삽입되거나 추가되거나 삭제되고 생략되기도 한다. , 명예, 권력, 직업, 결혼, 자녀, 승진, 실직, 이혼, 파산, 연애, 인간관계 등. 작가 김애란은 스티븐 킹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부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을 바라보는 느낌.

부사는 마음을 닮은 품사다.’(89p)

 

주어와 술어, 주어와 동사 사이에 들어가는 부사에 대해 애정을 듬뿍 담은 김애란의 말들이 흥미롭다. 품사 가운데 애정을 유독 가진 품사가 내게 있을까? 언어에 대해 많은 생각과 사유가 있었던 작가이기에 그런 고백을 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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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수록 아는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쥐게 된 답보다 늘어난 질문이 많다. 세상 많은 고통은 사실 무수한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걸, 그 당연한 사실을, 글 쓰는 주제에 이제야 깨달아간다. 나는 요즘 당연한 것들에 잘 놀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려 한다.’(124p)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만권을 읽을 수 있을까? 강안독서의 저자가 그런 이야길 했던가! 독서노트의 메모가 어디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요즘 글을 쓰는 것도 힘든데, 이것 찾고 저것 찾고 할라믄 오히려 글쓰기의 줄기가 휘어지고 시들어질 듯 해 그냥 내버려 두련다. 아무리 많은 책을 쓰고,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뿐이기에 우리의 한계와 유한함을 날마다 인식하며 무지의 지를 소유하고 유지해야 더 겸손해지지 않을까 싶다. 나의 무지의 지를 유지할 때 일상은 언제나 순전한 깨달음으로 경이롭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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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아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테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 읽는 글이니 그렇고, 글에 담긴 시간을 함께 살아 낸거니 그럴거다.’(141p)

 

김애란은 자신이 읽은 문장이 아닌 산 문장이란 표현을 쓴다. 우리가 독서를 하며 글자를 읽고 판독하는 것은 단순한 to read의 의미가 아니라 to live의 의미라고 저자는 해석한다. to read가 아니라 정말 to live의 독서가 된다는 것은 그 작품속에 녹아나는 체험일 때 가능할 것이 아닐까? 우린 독서를 하면서 잠깐 그 문장과 단어와 그 텍스트가 뿜어져내는 모든 배경background 속에서 잠시 머물다가 빠져 나온다. 단순한 읽는 행동이지만, 단지 간접적인 체험 행위에 불과하지만, 그 독서가 머묾의 체험이 되어진다는 말. 몇 십분, 몇 시간을 투자하여 잠시 다른 세계와 다른 시공간에 머물다가 오는 행위는 독서만한 것이 있을까? 멀티미디어도 그런 역할을 하겠지만, 거기에 상상력의 부재’, ‘상상력의 결여가 있음을 기억하자. 독서만이, 텍스트를 읽는 것만이 상상력을 키워주는 행위임을. 그냥 좋은 문장이라 몇 마디 한다는게 글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표류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오늘은 이렇게라도 글을 적어야겠다 싶어 노트북을 펼친 것이니 이해해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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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심연을 도 들여다 볼 수 없는 골짜기’(161p)’

 

라고 김애란은 표현한다. 이 표현이 참 좋다. ‘신도 들여다 볼 수 없는 골짜기가 바로 인간의 심연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갈래가 여러 갈래라서 어떻게 표현하기가, 형언하기가 힘든 공간이다. 그 마음에 천사가 존재하기도 하고, 악마가 존재하기도 한다. 죄와 벌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마음은 세계를 일으킬 수도 있고 세계를 무너지게 만들 수도 있다. ‘신도 들여다 볼 수 없는이란 말에 인간 고유의 고독하고 외롭고 혼자서 사수할 수 있는 깊은 갱도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정신적, 영적인 갱도 말이다. 하지만 그 골짜기 안에 너무 고립되어 있으면 인간은 정말 헤어나올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어쩌다 읽게 된 30억 빚을 진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서 저자 박종혁은 이런 이야길 한다. 그는 38세에 30억 빚을 진 인물이다. 20대부터 자동차딜러로 사업을 확장하다가 모자쇼핑사업도 망하고, 대리운전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이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빚을 갚고자 일하는 평범한 인물이다. 그는 책을 많이 읽어서 글을 쓴 인물이 아니다. 그냥 자신의 삶의 생채기를 있는 그대로 토해낸 글이라 더 공감이 간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진정한 친구 단 한명만 사귀어도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내가 친했다고 생각한 사람이 나에게 등을 돌리기도 모자라 비난하는 것을 경험했다. 반면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 내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었다. 연이어 발생한 상황들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걸러졌다. 그리고 사람들에 의해 마음이 닫히고 열리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지금 내 주위에는 나를 살아가게 해주는, 어쩌면 생명의 은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내가 벌인 일이니 빚을 갚고 살아가는 것은 나 혼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내가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고통의 시간을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 마디가 살아가는 동력이 되고, 그 파급력은 생각보다 컸다.’(박종혁, 224p)

    

신도 들여다볼 수 없는 골짜기라는 말을 생각해보니 문득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른다. 그 작품의 주인공 그레고르는 가족을 위해 뼈빠지게 고생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결국 흉물스러운 괴물, 벌레로 변해버렸다. 김종원의 사색이 자본이다라는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한다.

 

독일어로 벌레(Ungeziefer)라는 단어는 기생충이라는 의미이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해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가족에게 없애야 할 기생충 취급을 당했다. 작가인 카프카 역시 그레고르와 닮은 삶을 살았다. 그는 나이가 들어도 자립하지 못한 채, 부모에게 얹혀 세상과 고립되어 살았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그와 아버지의 관계가 마치 주인과 노예를 보는 것 같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기생충 같은 삶을 살았다. 결국 변신 후에 가족에게 학대받는 그레고르의 일생은 작가인 카프카의 인생과 닮아 있다.

그가 작품을 통해 세상에 하고 싶었던 말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카프카를 살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려보면 된다. 바로 상처다. 그가 위대한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안에 빛나는 상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고통 그리고 가족 안에서도 언제나 고독했던 삶이 그를 괴롭혔지만, 그는 자신의 상처를 받아들이며 비로소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글쓰기라는 도구로 자신의 상처와 세상의 모든 상처를 연결시켰다. 세상에 상처 없는 사색은 없다. 그는 자신의 글로 세상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상처를 숨기지 말고, 세상에 당당하게 내보이라. 사람은 상처를 통해 성장하는 거니까. 사색이란 결국 나의 상처와 세상의 상처를 통해 이뤄지는 거니까.”(김종원, 191-192p)

 

작품의 주인공 그레고르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만, 작가 카프카는 변신의 그레고르를 세상에 표현해냄으로 상처를 덜어낸 결과가 된 셈이다. ‘신도 들여다볼 수 없는 골짜기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상처가 아닐까? 남에게 내보일 수 없는, 도저히 끄집어낼 수 없는 상처! 하지만, 그 상처는 끄집어내는to drag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걸 앞에서 이야기한 텍스틀 읽는 것은 머묾’, ‘잠시 산다는 말로 이해했는데, 조금 더 확대하자면, to readto live가 되고, to live는 다시 to drag가 되어야 한다는 걸로 나아갈 수 있겠다. 내가 독서를 통해 작품을 읽으면서 잠시 간접적인 경험과 체험을 통해 그 작품 속에 머물지만, 잠시 머묾은 내가 망각했고 잊혀졌던 모든 상처와 트라우마와 콤플렉스와 신조차 건드릴 수 없는 골짜기를 체크하고 드래그해내는 것이다.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독서를 하면서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저자의 체험이나 작가의 작품을 통해 내가 경험한 그 어떤 무언가가 교집합처럼 만났을 때 우리의 영혼에 미세한 울림의 신호가 온다. 그리고 그게 더 나아가면 to drag의 순간(momentum)이 되는 것이다.

 

김종원의 상처를 숨기지 말고, 세상에 당당하게 내보이라. 사람은 상처를 통해 성장하는 거니까. 사색이란 결국 나의 상처와 세상의 상처를 통해 이뤄지는 거니까.” 이 말은 참 공감되는 대목이다. 쉽지 않은 것이지만, 인생은 그런 쉽지 않은 과제task를 해결하면 또 나아갈 수 있고, 해소되면 전진할 수 있고 그런 것이 아닐까!

 

 

 

 

6

한때 크고 좋은 말들을 가져다 아무 때고 헤프게 쓰는 정치인들을 보며 언어약탈자라 생각한 적이 있다.’(263p)

 

언어약탈자’...진짜 멋진 말이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규모와 행태를 지지하고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데 그게 언어약탈자의 작태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언어의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언어를 욕되게 하진 않는지. 뭐 언어숭배자가는 아니지만. 그런 생각...주절주절 해 본다.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 이해가, 경청이, 공감이 아슬아슬한 이 기울기를 풀어야 하는 우리가 할 일이며...그 때 우리가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다는 건 수동적인 행위를 넘어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 될 것이다....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과 불행을 구경하는 것을 구분하고, 악수와 약탈을 구별해야 하는 까닭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김애란, 269p)

 

 

 

 

7

김애란이 영화 <서편제>이야길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눈먼 송화가 산간 벽지에 들어가 매일 <심청가>를 연습하는 장면을 보자 얕은 탄식이 나왔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데, 아무도 청하지 않는데, 스스로 어떤 수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수준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마음 아팠다. 어쩌면 거기에 문학의 앞날이 조금은 겹쳐 보여 그랬는지도 모른다.’(272-273p)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데, 아무도 청하지 않는데, 스스로 어떤 수준에 도달하고자 하는 수준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그런 모습이 인생에게 필요하다. 김애란이 이야기한 문학의 앞날도 그러하지만, ‘우리 인생의 앞날도 그러해야 하리라. 나를 비롯한 요즘 세대와 시대가 너무나 얄팍한 명성과 인기에 목매어 정말 진득한 깊이를 가지지 못한다면, ‘신도 들여다 볼 수 없는 골짜기의 상처, 나의 상처는 끄집어낼 수 없는 것이다. 언제나 그 골짜기는 깊이 내려가야만 도달할 수 있는곳이기에 얄팍함으로 어림도 없는 것이다. 우리의 상처가 우리가 영광이 되려면 말이다.

 

 

    

 

8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 짧은 편지를 오랫동안 읽었다. 쉽게 읽히는 글은 아니었다. 분량이 길어서가 아니라 스토리의 전개나 문체가 그러했다. 아마도 이런 스탈의 글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페터 한트케의 작품을 읽고 작품해설을 읽으면서 그의 일생을 들여다보면서 그의 문학적인 스타일에 조금은 공감하게 되었다. 페터 한트케는 1942년 오스트리아 작은 마을에서 아들을 낳았다. 당시 2차 세계대전 당시 한트케의 어머니는 경리장교와 사랑에 빠져 페터 한트케를 가졌지만, 그는 이미 유부남이었다. 젠장! 사생아를 낳게 할 수는 없다는 집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힌 어머니, 그러던 중에 그녀에게 강한 연민의 정을 느낀 하사관 브루노 한트케가 그 모든 조건을 감수하면서 그녀와 결혼식을 올린다. 이런 가정배경이 페터 한트케의 예사롭지 않은 운명을 예견했다. 아니나 다를까 1971년 페터 한트케의 어머니는 51살에 자살하고 만다. 불행했던 결혼생활과 인생살이의 어머니, 페터 한트케도 그러한 음울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스토리라인이나 컨텐츠에 집중하기 보다는 문학의 존재 근거는 언어 그 자체이지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인식에 있지 않다.”(페터 한트케, 206p)고 했다. 한트케의 초기 사상적 토대였던 러시아 형식주의, 언어의 관계성에 주목한 프랑스 구조주의, 언어의 유희성을 강조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 있다. 세계대전의 큰 재앙은 철학사와 역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의미찾기 보다는 오히려 형식’, ‘언어그자체에 집중하는 분위기는 철학뿐 아니라 페터 한트케 개인 가정사에도 영향을 미쳤던 것은 분명하다. 순전한 내 생각이고 내 해석일 뿐이다. 하지만, 그 페터 한트케의 신도 들여다 볼 수 없는 골짜기가 그를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상을 받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to drag하려고 몸부린 친 결과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상처가 영광이 될 수 있도록 처음부터 글을 쓴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최근에 읽은 책들 내용을 기억하다가 보니 이것저것 끄적였다. 내 상처가 영광이 되진 않더라도, 내가 살아가고 숨을 쉬기 위해서라도 글쓰기는 계속 되어야할 것 같다. 여러분도 그렇게 살고 쓰기를 바라. 마침내는 ...상처가 영광이 되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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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2-02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애란은 일찍 작가가 됐지요 그래서 여전히 젊은 작가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우연히 저는 김애란을 일찍 알고 첫 소설집도 만났지만, 그렇게 잘 읽지는 못했습니다 지금도 한국 소설, 단편은 어렵습니다 한동안 안 보다가 몇해 전부터 보기는 하는데... 언제쯤 알지... 꼭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요 뭔가 느끼기라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오랜만에 글 쓰셨네요 설은 잘 쇠셨는지...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카알벨루치 2020-02-02 08:57   좋아요 0 | URL
따뚯한 환대가 너무 감사합니다...안부도 물어주시고 고맙습니다 ^^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레이먼드 카버 지음, 손성경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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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레이먼드 카버의 <제발 좀 조용히 해요>22개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소설집이다. 카버는 단편소설의 대명사인 체호프의 이름이 늘 그에게 따라 다닌다. 존 치버(‘교외의 체호프’)와 함께 미국의 체호프라고 불릴 만 하다. 그의 생애를 보면 1973(35)에는 존 치버와 함께 아래층, 위층에 살았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라 할 수 있다. 아래층 치버, 위층 카버! 어찌 이런 일이!

 

 

 

2

작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체호프를 비롯하여 스승이었던 존 가드너, 셔우드 앤더슨, 작가이자 편집자인 고든 리시, 그리고 존 치버까지 무수한 문인들이 그를 단편소설의 거목으로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레이먼드 카버를 흔히 헤밍웨이 이후 가장 영향력있는 소설가라고 이야기한 대목에서 그에게서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 없다. 아마도 그것은 헤밍웨이로 대별되는 빙산이론”(생략이론)이 카버에게선 미니멀리즘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의 멘토이기도 했던 존 가드너는 25개의 단어로 말할 것을 15개의 단어로, 15개의 단어를 5개의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낫다는 식의 조언은 카버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친 셈이다. 그러기에 카버의 단편들은 압축적이며, 함축적이고 상징적이기도 하면서도 심플하다. 이것이 카버의 미니멀리즘이다. 하지만 카버의 이야기의 소재는 광활한 우주 저편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적인 소재가 아니라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기 때문에 가장 끔찍한”(426p)은 가져오는데 그건 바로 우리의 일상에서이다. 일상에서 삶에서 가져오는 흔하디 흔한 소재와 그 안에 숨겨둔 메시지의 검이 독자를 찌른다. 그것이 카버의 단편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3

카버는 19세에 멋도 모르는 나이에 메리언과 결혼을 해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책임감에 생계에 늘 시달리면서 생활고의 압박감 가운데서 글을 썼다. 그가 거했던 가정과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그의 글의 소재이다. 그렇다고 그가 전적으로 자전적인 소설가란 말은 아니다. “가족이란 보따리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말이다.

 

 

 

 

4

, 이제 카버의 단편이야기들로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22개의 단편에 대한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을 것이고 내가 느낀 것만 적고 싶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잡초에 대한 화두이다. 우리는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부부와 자녀들과 관계를 맺고 이웃과 관계를 맺으면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잡초란 것은 가만히 놔두어도 잘 자란다. 장마 때는 잡초는 아무런 터치를 하지 않아도 쑥쑥 자라는 것이 잡초의 생리이다. 우리의 사람의 마음 속에도 이런 잡초가 자란다. 그 잡초를 미리 잘라내지 않으면 혹독한 고통을 맛보게 마련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날카로운 시각은 이런 가정 안에 나타난 마음의 잡초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마음의 잡초는 보이지 않는다.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소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정도의 것들이다. 하지만, 그 잡초 자신은 땅에 기생하다가 나중에는 기세를 등에 업고 땅을 장악하는 힘이 있다. 가족, 가정의 터전 위에도 마음의 잡초는 기생하는 듯, 위태위태하게 생명력을 유지하지만 후에는 가정을 장악하여 압도하고 초토화시키는 것이다.

 

 

 

 

 

5

단편 <이웃 사람들>에서는 이웃 사람이 맡겨두고 간 열쇠로 이웃집을 허락도 없이 문을 따고 들어갔다가 열쇠를 두고 문을 잠가 버린 가족이야기가 나온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이웃집에 대한 열렬한 호기심이 그들의 마음의 잡초였다. <제리와 몰리와 샘>에서 아빠이자 남편인 앨은 애완견 수지를 거추장스런 존재라고 여기고 가족들 몰래 버리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는 수지를 속시원하게 버리고 집으로 돌와왔을 때 집안은 완전 난리법석이었다. 수지가 오줌을 싸고 집안 이곳 저곳에 흉터를 남긴 것 뿐만 아니라 자신에겐 성가신 존재였지만, 아내와 자식들에겐 사랑스런 소중한 존재였던 것이다. 단순히 개를 버린 행위만이 문제가 아니라 앨에겐 가정에서 자신이 보지 못하는 자기 안의 마음의 잡초를 보지 못했던 것이다. <제발 조용히 좀 해요>에서는 남편 랠프는 아내 매리언의 몇 년전의 부정한 행위에 대해 추궁하기 시작한다. 행복하고 평범해보였던 가정에 균열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랠프는 계속 물어대자 아내는 몇 년 전 이웃집 앤더슨 부부와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우연히 술에 취해 앤더슨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고 거기에서 그 사람이 우리 한번 할까요. 그러더라구요.”(393p) 이 사태로 인해 남편 랠프는 밖에서 표류하며 방황하며 밤을 새고 들어와 욕실로 들어간다. 아내가 머라고 머라고 한다. 이 가정에 심겨진 마음의 잡초로 인해 랠프는 매리언에게 제발 조용히 좀 해요.”라고 말한다.

 

 

 

 

6

우리는 매일 매일 마음의 잡초를 쳐내야 새로워질 수 있다. 잡초는 땅에 기생해서 나중에는 땅을 잠식해 들어간다.

 

구약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아가서 2장 15절에 있는 구절이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커버는 이 마음의 잡초를 보여준다. 꽃이 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세밀하게 그려준다.하지만 대안은 없다. 보여줄 뿐이다. 문학은 대안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보여줄 뿐이다. 압축하고, 축소하고, 작게하고, 상징화해서 이야기를 소설이란 식탁에 내놓는다. 그래서 레이먼드 카버의 이 작품은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은 작품이다.

 

 

 

 

7

근데 카버도 참 힘들게 살았구나 싶다. 파산도 두 번, 결혼도 두 번, 별거생활, 알코올 중독, 중독치료차 병원에 입원에, 39세에 금주를 결심하고 살고, 전처의 친척들과의 복잡한 관계들로부터 피하기도 하고, 폐출혈, 폐절제수술 그리고 암, 방사선치료, 19888, 50세에 죽었다니 말이다. 그것도 잠결에 죽었다는데 두 번째 부인인 테스의 마음이 참 아팠겠다 싶다. 레이몬드 카버도 평생 가난과 혈투를 벌이며 글을 썼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그의 마음의 독소, 그의 마음의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아니면 잊기 위해 그는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버린 셈이다. 그것이 그의 인생을 단명하게 만든 셈이기도 하다. 그는 사망하기 한 달 전에 인터뷰에서 내가 작가 말고 다른 것으로 불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시인 정도”(438p)라는 묘비명에 가까운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에게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더 많은 단편들과 소설들, 그리고 시를 독자인 우리들은 음미해 볼 수 있었을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인다. “아메리칸 체호프레이먼드 카버는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수 많은 마음의 잡초를 보여주었고, 자신 또한 인간적인,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인 존재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떠났던 것이다.

 

    

 

 

8

오늘따라 그의 생애가 더욱 내게 위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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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1-11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마음의 잡초! 카버도 카버지만 카알님의 리뷰가 압권이네요.
게다가 성경 말씀 인용도 완벽하고.
이달의 리뷰로 점쳐 봅니다.^^

카알벨루치 2020-01-11 19:44   좋아요 1 | URL
예언자 나셨네요 ㅎㅎ잘지내시죠? 요즘 삶이 힘드네요 문학이 줄 수 있는 위로가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스텔라님 새해복많이 받으소서! 새해 인사도 이걸로 퉁치는걸로 ㅎㅎ

페크(pek0501) 2020-01-12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의 죽음이 안타깝네요. 좋은 글을 오래 쓰기 위해선 건강 관리에도 힘써야겠습니다.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일도 없어야 하겠고요.

카알벨루치 님, 새해에 좋은 일 가득하시길...
더불어 건필을 기원합니다.

카알벨루치 2020-01-14 21:15   좋아요 0 | URL
제가 페크님께 건필을 부탁받는게 아니라 제가 페크님께 건필을 부탁해야하겠습니다 글보다 삶이 더 빛나시길 기도합니다~

희선 2020-01-13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얼마전에 레이먼드 카버가 살았던 곳을 찾아가는 글을 봤어요 거기에서도 여러 소설을 이야기하기는 했는데... 잘 해 보고 싶지만 잘 안 되는 마음,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카버는 소설이나 시를 남겼네요 더 쓰지 못한 건 아쉽지만... 마음이 잡초, 어쩐지 저한테도 그런 게 있는 듯합니다 잘라내고 싶지만 잘라내지 못하는...


희선

카알벨루치 2020-01-14 21:14   좋아요 1 | URL
방문 감사합니다 잘 안되는 것, 삶의 문제는 바로 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
 
빨강 머리 여인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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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읽은 지는 꽤 됐는데, 이제야 리뷰를 적는다고 하니 기억이 되살아날지 의문이다.

 

오르한 파묵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고, 스핑크스의 수수께기를 푼 서양의 오이디푸스 신화와 동양의 뤼스템(아버지)과 쉬흐랍(아들)의 페르시아 고전이야기를 작품의 현실에 녹아내어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는 문학성, 예술성, 그리고 대중성까지 고루 갖춘 스토리텔러로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아버지 없는 아들에게 그러하듯 아무도 아들 없는 아버지를 따스하게 껴안지 않는다.’-페르도우시, 왕서

 

 

 

 

2

우물 파는 실력자 마흐무트 우스타, 그의 10대 조수 젬, 젬에겐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아버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젬은 왼괴렌에서 아버지를 대체할만한 부성애를 느낀 마흐무트 우스타를 만난다.

 

조수를 믿지 못하면 우물 파는 명수가 될 수 없단다. 명수는 지상에 있는 아이가 모든 것을 옳고, 반듯하게, 제시간에, 주의 깊게 한다는 것을 확신해야 일에 열중할 수 있지. 살아남으려면 우물 파는 사람은 아들을 믿는 것처럼 조수를 믿어야만 한다. 나의 스승이 누구였는지 알아?”

 

나의 스승은 나의 아버지였어. 너도 유능한 조수가 되고 싶으면 내 아들이 되어야 한다.”

 

마흐무트 우스타에 의하면 스승인 명수와 조수 사이에 갖는 관계의 비밀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모든 스승은 아버지처럼 조수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가르칠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그 일이 조수에게 유산으로 남기 때문이다.

(65p)

 

 

명수와 조수의 관계는 더 끈적끈적할 수밖에 없는 것은 명수의 생명이 조수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우물 파는 일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3

하지만...

왼괴렌에서 만난 마흐무트 우스타,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또 다르게 결정짓게 할 빨강머리 여인, 귈지한도 만나게 된다. 10대 소년의 가슴에 첫사랑의 불을 지핀, 빨강머리 여인.

 

1부의 이야기는 이랬다.

 

 

 

 

4

2부에서 젬은 자신 고향 땅을 떠나 왼괴렌에서 만난 우스타와 귈지한이 앞으로 어떤 인생으로 이어질지 작가는 드문드문 불안한 신호를 보내준다.

 

최선의 방법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거야.”(176p)

 

마흐무트 우스타 덕분에 지질학을 공부한 젬은 연인 아이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다. 이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5

페르시아의 고전에 등장하는 뤼스템이야기가 오이디푸스 이야기와 연결된다.

 

뤼스템은 이란에서 탁월한 영웅이자 용장이었고 전사였다. 모든 이들에게 인기와 사랑을 독차지한다. 어느 날 뤼스템은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어버린다. 며칠을 헤매다가 적국의 땅인 투란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의 유명세는 이미 그곳에서도 퍼져있었기에 그는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 뤼스템이 식사를 마치고 방에 왔을 때 투란 왕의 딸인 타흐미네가 잘 생긴 뤼스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이름난 영웅이자 영리한 뤼스템의 아들을 낳고 싶다고 애원한다. 뤼스템은 그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사랑을 나눈다. 아침에 뤼스템은 태어날 아이에게 자신이 주는 징표로 팔찌 하나를 놓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타흐미네는 아버지 없이 태어난 아이에게 쉬흐랍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는 장성한 쉬흐랍에게 아들의 아버지가 뤼스템이라고 일러준다.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 이란으로 떠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란? 전설적인 전사 뤼스템과 아들 쉬흐랍은 전장에서 서로의 적으로 마주치게 된다. 물론 갑옷을 입었고, 부자는 마치 오이디푸스와 그 아버지처럼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셋째 날 결투에서 뤼스템이 아들을 땅에 눕힌다.

 

 

 

 

6

서양의 신화의 주인공,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였다면, 동양의 고전의 주인공, 뤼스템은 아들을 죽인 이야기이다. 여기서 작가는 아주 특별한 해석을 한다.

 

오이디푸스의 죄악은 아버지를 죽인 것이 아니라 신이 그를 위해 정한 운명에서 도망치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식으로 해석하자면 뤼스템의 죄악 역시 아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하룻밤의 정사로 아들이 생겼고, 이 아들에게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죄책감에서 자신을 장님으로 만들어 벌을 주었을 수도 있다. 고대 그리스 관객들은 그가 신이 부여한 운명에 맞섰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안도했다. 똑같은 논리로 생각하면 아들을 죽인 뤼스템도 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동양 이야기의 결말에서 아버지는 벌을 받지 않고 우리 독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뿐이다. 그 누구도 동양인 아버지를 벌하지 않을 것인가?’(213p)

 

작가는 끊임없이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아버지의 이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무언가 터질 듯 한데 터지지 않는 이야기꾸러미...

 

 

 

7

오이디푸스와 쉬흐랍을 서로 그렇게나 형제처럼 닮게 만든 것은 아버지의 부재와 아버지를 찾는 안타까움이다...어쩌면 내가 나의 아버지를 원한다는 것을 내 자신에게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이성의 한 구석에서 갈수록 작아지는 어떤 사람이 세상의 한 끝에서 다른 끝을 향해 우물을 파고 있었고, 때로 다른 옷을 입고 내 꿈속에 들어와 이야기를 해 주었다.’(221p)

 

젬과 아이쉐는 아이가 없었다. 그들은 쉬흐랍이란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한다. 회사는 승승장구했다.

 

나는 아이쉐에게 말한다. ‘이 왼괴렌 마을에는 내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동화처럼 불운이 감도는 뭔가가 있는 것 같아....이곳에서는 일단 건축 일은 하지 말자고. 그곳에서 가장 좋은 경치는 분명 별들로 반짝이는 밤하늘일거야.’(239p)

 

 

집을 나가 사라진 아버지, 아버지로 대체하고 싶었던 우스타, 사랑하는 아내 아이쉐와 세운 쉐흐랍’, 그리고 계속 떠나지 않는 왼괴렌, 그리고 잊혀진 줄로만 알았던 빨강머리 여인, 궐지한...

 

우리 아이가 없고, 내가 사라지면 이 모든 것이 주인 없이 남겨지기 때문일까? 울적해질수록 아이쉐와의 우정에 의지했다. 그녀에 대한 나의 충실함이 강하고 영리한 영자와 가까이 있고 싶은 나의 필요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아이쉐는 직감했다. 내가 그녀를 절대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에게 감추는 정신적으로 은밀한 삶, 바람, 비밀이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쉬흐랍의 사무실에서 서로를 한 시간 이상 보지 못하면 휴대 전화로 전화를 걸어 어디 있어?”하고 물었다. 이 친밀함이 부여하는 자신감과 암암리에 느끼는 일종의 자만심은 2013년 초 쉬흐랍에 큰 피해를 안기는 실수의 원인이 되었다.’(265p)

 

 

 

8

빨강 머리 여인을 다시 만나고 싶은지, 아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지, 자신이 그 아이와 친해지기를 원하는지 물었다. 우리가 평생을 오이디푸스 왕과 뤼스템과 쉬흐랍에 얽힌 이야기와 해석들을 조사한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도....’(277p)

 

 

9

아버지 없이 자라면 세상에 중심부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결국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그래서 삶에서 어떤 의미를, 어떤 중심을 찾으려 애쓰죠. 당신에게 아니다라고 말해 줄 누군가를 말이에요.”(305p)

 

현대인은 도시의 숲에서 길을 잃은 사람입니다. 어떤 면에서 아버지가 없다는 의미지요. 하지만 아버지를 찾는 것도 사실은 쓸데없습니다. 현대적인 감각을 지닌 개인이라면 도시의 군중 속에서 아버지를 찾지 못할 겁니다. 찾는다면 이번에는 개인이 되지 못하는 거지요. 프랑스의 현대성의 선구자 장 자크 루소는 이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네 명의 자녀가 현대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일부러 그들을 떠났고, 아버지 노릇을 하지 않았습니다. 루소는 자녀들을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한 번도 찾지 않았지요. 당신도 내가 현대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해서 떠났나요? 그렇다면 당신이 옳았네요.”(319p)

 

 

아버지와 아들의 연대감, 관계는 어김없이 어그러진다. 오이디푸스 신화도, 뤼스템과 쉬흐랍의 이야기도, 그리고 파묵이 보여주는 젬의 이야기도. 아버지는 여러 가지 의미를 상징할 수 있다.

 

내가 아버지에게 복종했더라면 행복했을까?”

어쩌면 좋은 아들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진정한 나는 될 수 없었을 거야.”

 

그 개인주의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안달복달 때문에 유럽을 선망하는 우리 부자들은 개인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조차 되지 못했다고. 유럽 스타일의 터키 부자들은 신을 믿지 않아. 왜냐하면 자신들이 무엇이나 되는 거처럼 생각하니까. 그들에게 개성은 아주 중요한 문제지. 대부분이 오로지 다른 사람과 같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신을 믿지 않는 쪽을 선택해. 심지어 신을 믿는다는 말조차 하지 않지. 하지만 믿음은 다른 모든 사람처럼 되는 거야. 종교는 겸손한 사람들의 천국이며 위로라고.”(321p)

 

 

 

 

10

현대는 이미 신을 버린 세대이고 시대이다. 신을 버리고, 신을 죽인 세대이다. 아버지와 같았던 신을 버린 이 시대를 상징하는 젬, 아버지 없이 자란 젬, 엔베르, 상처는 상처를 낳고, 데미지는 데미지를 낳고, 아들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해 무기를 가지고 간 아버지가 오히려 화를 당하고야 만다. 내가 이야기를 두리뭉실하게 접근한 것은 스포를 최대한 자제하기 위해서이다. 이전에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이란 이야기를 했던가! 우리는 아버지를 아버지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자기 존재 안에서 찾는 것이 최고의 덕목이요, 미덕임을 주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전자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기에 생각이 다를 수 있겠다. 아버지를 그토록 그리워했지만, 아버지 없이 지낸 삶에서 축적되고 누적된 분노와 화는 결국 상처를 낳고, 그 상처는 결국 의도치 않게 아버지를 공격하고야 마는 신화와 현실의 이야기! 남의 이야기가 아닌 듯 하다.

 

오르한 파묵! 엄청난 이야기꾼이구나!

 

 

 

신화와 고전과 현실이 마구마구 뒤섟이면서도 결코 흥미와 재미를 놓치지 않게 하는 오르한 파묵의 이 소설은 너무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은 정말 이렇게 써야 한다. 근데 빨강머리 여인내 이름은 빨강은 다른 작품이란 것을 책을 읽고나서야 알았다. ‘빨강이 들어갔다고 다 똑같은 내용의 작품이 아니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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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12-19 14: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마지막 글이... 오르한 파묵이 빨강을 좋아하나 봐요.ㅋㅋㅋㅋ
그렇지 않아도 파묵의 책 있긴한데 아직도 읽을 생각을 못하고 있네요.
전 이상하게 노벨상 알러지가 있어서.ㅠ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12-19 15:00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어요 <하얀 성>보다는 확실히 잘 읽힙니다 잼납니다 ^^

레삭매냐 2019-12-19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다만 파묵의 책들을 다시
읽어야 하는데...

다른 책들에 휩싸여서 쉽게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12-19 21:29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은 한번 읽으면 아예 작가를 파버리니깐 천천히 파헤쳐도 되겠습니다 ^^

서니데이 2019-12-24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카알벨루치 2019-12-24 18:11   좋아요 1 | URL
늘 꼼꼼하게 챙기시는 서니데이님 덕에 클스마스 이브가 더 훈훈해지네요 서니데이님도 서재의 달인 축하드리고 메리 클스마스 되시길 ^^

페크(pek0501) 2019-12-27 2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멋진 독서를 하십니다. 고전의 세계는 매혹적이죠.
저는 왠지 민음사 책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고전은 민음사 것을 선호합니다.
글씨체도 맘에 들더라고요.

새해에도 멋진 독서로 자극을 주시기 바랍니다. 복도 많이 받으시고요...^^

카알벨루치 2019-12-30 13:25   좋아요 0 | URL
네 페크님 한해동안 수고많으셨어요 새해에는 더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 소원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12-28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지난 한 해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독서도, 좋아하시는 운동도 마음껏 하시는 한 해 되세요!^^:)

카알벨루치 2019-12-30 13:26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의 지성과 열정에 늘 탄복하는 1인입니다 새해엔 더 많은 도전과 열정으로 우리를 기쁘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9-12-3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조금 있으면 2020년 경자년이 됩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고 가정에 평안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소원하는 일을 이루는 시간 되셨으면 좋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희선 2020-01-01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알벨루치 님 2020년이에요 십이월 마지막 날에 써야 할까 새해 첫날 인사를 할까 하다가 2020년이 됐습니다 자주 인사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네요 카알벨루치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카알벨루치 님과 카알벨루치 님 식구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새해 하고 싶은 거 즐겁게 하시면서 지내세요


희선

카알벨루치 2020-01-03 12: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희선님도 늘 건강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