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0 위트 넘치는 이기호!

이 책은 40여개의 이야기들로 구성된 단편소설집이라고 보면 되겠다. 짤막한데 이기호의 지적과 통찰이 돋보인다. 그리고 가끔씩 독자를 웃게끔 하는 이기호 특유의 위트가 제법 맛있다!

 

이기호의 <작가의 말>이다.

 

짧은 글 우습다고 쉽사리 덤볐다가

편두통 위장장애 골고루 앓았다네

짧았던 사랑일수록 치열하게 다뤘거늘

 

 

1 청춘

 

준수는 강원도를 향하는 내내 말없이, 어쩐지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 얼굴로 앉아 있었는데, 나는 그게 단순히 우리 미취업자들의 일상 표정이라고만 생각했다. 눈높이를 낮추라는 말과 땀에서 배우라는 말,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점점 무표정하게 변했갔고, 결국은 지금 준수가 짓고 있는 저 표정, 그것이 평상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웬만해선 아무렇지도 않은 표졍...나도 눈높이를 낮추고 취업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찌된 게 이놈의 나라는 한번 눈높이를 낮추면 영원히 그 눈높이에 맞춰 살아야만 했다. 그게 먼저 졸업한 선배들의 가르침이었다. 내 땀과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의 땀의 무게가 다른 나라, 설령 눈높이를 낮춰 성공했다 하더라도 월급에서 학자금 융자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나라...’(26p)

 

 

나는 문득 아는 지인이 생각이 났다. 그 놈이 영어학원 강사를 했었다. 그러면서 어찌어찌 작은 소자본으로 대패삼겹살 집을 오픈해서 아주 잘 나갔다. 그래서인지, 후에 들리는 소문에 이 놈이 BMW20대에 산 것이다. 내가 조금 놀랬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도 자기가 그렇게 사고 싶으니...그리고 후에 들리는 소문이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했다. 나는 문득 90년생이 온다의 이야기가 메아리쳐 울린다. 2016년인가 27만명이 공무원시험에 응시했는데, 합격자는 6천명이라고 했다. 그 나머지 친구들은 재수, 삼수, 사수...그렇게라도 해서 되면 좋은데, 안 되는 애들이 너무 많은 나라. 근데, 그놈이 4월에 시험친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다...

 

 

그래서 고미숙은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란 책을 펴냈던가! 20, 30대의 대한민국의 백수들을 위한 연암 박지원의 이야기를 사이다 발언으로 잘 적어놓았다. 하지만, ‘백수라는 말 자체가 주는 엄청난 부정적인 이미지가 20대가 아닌 30, 40대에겐 극혐의 단어가 아닐까! 처음에는 청년들을 위한 아프니깐 청춘이다의 현대버전이다라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읽고난 후 현실의 치열함에 작가는 너무 이상적으로 이야길 펼쳐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정말 20, 30대의 백수들이 고미숙이 이야기한 그 합숙소같은 공간에서 식도락을 같이 하면서 백수 아닌 백수의 삶을 즐기는 이야기는 어찌 보면 혀를 찰 수도 있는 부분, 어찌 보면 새로운 청춘에 대한 대안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싶다.

    

 

 

만년백수로 지내는 아들이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 부모님을 위해 또띠아를 해보고자 시도했지만, 그게...

어머니 왈, “뽀삐를 왜 해먹어? 이 새벽에?”

그놈의 취업이 무엇인지, 좌로 가도, 우로 가도, 동서남북 어디를 가도 걸린다. 이게 우리 젊은이들의 자화상이라니...이기호는 그런 시대의 슬픔과 아픔과 애환을 유쾌하게 그려주고 있다. 이것이 이기호의 맛이다.

 

 

 

 

2 아내

 

이런 말을 하면 좀 미친 사람처럼 보이겠지만.....우리 집 막내는 제 엄마가 빨래가 되어버렸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가 사라지고 난 베란다엔 아무런 흔적 없이 아내가 평상시 집에서 입던 목 부위가 늘어난 티 한 장만이 건조대 위에 초라하게 널려 있었거든요. 세탁기가 있고, 빨래 건조대가 있고, 재활용품 모아두는 통이 있고, 아내의 간이침대가 있는 베란다에 외롭게 걸려 있는 아내의 늘어난 티셔츠 한 장....저는 아내의 간이침대에 앉아 그 티셔츠를 오랫동안 쳐다보다가 베란다 창문을 바라보았습니다. 베란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것은, 바로 앞 동 아파트의 불 켜진 주방이었습니다. 그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밥을 짓는 다른 많은 아내들....아내 또한 그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았겠죠.

한데 정말 제 아내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정말 빨래가 되어버린 것일까요? 저는 정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48-49p)

 

 

아내가 증발해버렸다. 우리 시대의 수많은 아내들은 증발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인생이 휘발되어진다는 느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여성들의 초상화이기도 하다. 20, 30대의 수많은 부부들, 그리고 남편과 아내들. 그들에게 짐 지워진 육아의 무게. 삶이 만만치 않다.

 

 

 

이기호 작가는 언론사와 30년을 계획하고 육아일지를 연재하기로 했지만, 3년만에 그만두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3년동안 연재한 내용이 글로 묶어져 나온 것이 바로 세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이다. 표지에는 가족소설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기호 작가의 육아일기(일지)인 셈이다. 그가 느끼는 작가로서의 감수성과 생각들, 특별히 말 많다고 싫어하죠?’고 집에서 잠시 생활하게 된 조카의 고백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3 애완견

사람한테 일 년이 강아지한텐 칠 년이라고 하더라. 봉순이는 칠 년도 넘게 아픈 몸으로 지켜준 거야. 내 양말을 제 몸으로 데워주면서.”(83p)

 

사람이 개만도 못할 때가 있어서인지 사람들은 종종 동물들에게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쏟아붓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어디 있던가! 그래도 나만 보면 반갑다고 꼬리치는 동물들의 리액션에 어찌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있으랴!

 

 

 

 

4 부모

저승에 도착했다. 304호는 주인공이 지낼 방이다. 저승치고는 의외로 지낼만하다 싶었다. 그런데, 불을 켜주지 않는다. TV는 전원은 들어왔지만 화면은 나오지 않고 음성만 들렸다. 눈을 떠도 암흑천지인 방이었다.

불로요양병원 304호에 묵을 주인공은 영원히 어둠 속에서만 지내야할까?

선생은 어머니께 얼마 만에 한번씩 찾아갔습니까? 딱 그 주기에 한 번씩 선생 어머님 마음에도 불이 켜졌겠지요. 여기도 이승과 똑같습니다. 그럼, 전 이만.”(109p)

 

이기호의 이 단편소설은 너무나 짧다. 그리고 이 소설은 이솝우화가 아니라 이기호 우화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58일이 생일인 아들은 자기 생일이 어버이날이라 얼마나 복잡할까? 이런 구상과 아이디어를 글로 엮어낸 이기호의 위트가 참 빛난다.

 

 

아버지가 담뱃값 인상을 대비해 집을 담보로 해 융자받아 2500만원으로 담배를 사재기했다는데...담배를 피우지 않던 아들은 그 담배를 유통기한 때문에 팔지를 못해 20년동안 피웠는데, 아직 2천 갑이 더 남아 있다고...그는 담배를 피울 때마다 아버지를 그리워할 수 밖에 없다...담배를 2500만원어치 샀다. 담배값이 2천원씩 오르기 전에 아버지가 생각한 투자였다. 하지만, 담배는 몇 개월이 지나면 맛이 변한다고...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담배 사재기를 했을 것인데...

 

 

 

 

5 기득권

치킨 배달하는데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이용 불가라고 한다. 1702호에 치킨 배달을 가려면 계단이 320개가 넘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치킨집 주인이 치킨 알바구한다고 할 때 필수요건을 원동기운전면허증이 아니라 체력이라고 꼽은 이유가 있었다.

 

그 두달 동안 나는 치킨 배달 아르바이트가 아닌, 흡사 히말라야 산악인들을위한 세르파가 된 심정이었다(언젠가 한번은 18층까지 낑낑거리며 올라갔더니 내 또래 젊은 여자가 어머, 우리는 프라이드 아니라 양념 시켰는데요?‘라면서 다시 갖다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142p)

 

이게 왜....이런 일들이 생긴 거죠?”

글쎄요. 아파트에 사니깐 아파트만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닐까요?”(143p)

 

우리 이러지는 맙시다. 아무리 배달의 민족이지만.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그렇게 알바하는 애들이 다 우리 자식이고 자녀들이고, 후배들이고 동생들인데...

 

 

 

이기호 우화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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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6-06 0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치킨 배달하시는
분에게 걸어서 올라 오라는 건 정말
최고의 갑질인 것 같습니다.

영화나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실제로
벌어진 다는 게 씁쓸하네요...

카알벨루치 2019-06-06 10:47   좋아요 1 | URL
소설도 영화도 레알이니~인생은 차마 믿기 어려운 일들도 레알로 일어나는 것인지라~휴일 잘 보내세요^^
 
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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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위화의 인생의 원제는 살아간다는 것이다. 위화는 그 살아가는 힘이 절규나 공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인내, 즉 생명이 우리에게 부여한 책임과 현실이 우리에게 준 행복과 고통, 무료함과 평범함을 견뎌내는 데서 나온다’(8p)라고 했다. 이 작품은 고난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위화의 말은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의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살아간다는 것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2

언젠가 지인의 부탁으로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의 장례식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지인의 친구 두 분과 나, 이렇게 3명이서 장례식을 치뤘다. 세상에나 그렇게 외롭게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언젠가 내가 페이퍼에서 영화 <밴드 어브 브라더스>에서 한 전우의 죽음에 수많은 사람들이 조문객으로 참여했다고, 그 사람의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교훈을 읊조린 적이 있다. 물론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의 장면이 을씨년스럽지 않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내가 위화의 인생을 읽고 나서 느낀 것, 위화의 작가의 말을 보고서 느낀 것은 삶이란, 인생이란, 대단한 업적과 공적과 이름과 명성과 인기와 부귀영화를 누리고 떠나는 유명인의 삶도 중요하지만, 장례식장에서 가족친지 하나 없이 죽어간, 내가 참석했던 그 장례식의 영정에 걸린 사진의 주인공의 삶도 삶이고, 인생인 것이다. 그 삶도, 그 인생도 그 나름대로 유의미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모든 가족들의 장례식을 다 치른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 장인으로서의 푸구이, 그들보다 오히려 더 오래 세월을 살게 된 주인공 푸구이는 자신의 베개 밑에 자신의 장례비용인 10위안을 넣어둔다. 자신이 죽으면 마을 사람들이 장례를 치러 달라는 의미였다.

 

 

 

 

3

푸구이는 잘 나가는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도박과 노름으로 집안 가산을 탕진하며 하루아침에 가난을 등에 걸머지게 된다.

 

옛날에 우리 쉬씨 집안 조상들은 병아리 한 마리를 키웠을 뿐인데 그 병아리가 자라서 닭이 되었고, 닭이 자라서 거위가 되었고, 거위가 자라서 양이 되었고, 양이 다시 소가 되었단다. 우리 쉬씨 집안은 그렇게 발전해왔지.”

 

내 손에서 쉬씨 집안의 소는 양으로 변했고, 양은 또 거위로 변했다. 네 대에 이르러서는 거위가 달이 되었다가, 이제 닭도 없어졌구나.”(52-53p)

 

 

하루 아침에 몰락의 길을 걸어가는 푸구이의 집안, 그러나 푸구이의 어머니는 이런 말을 날린다.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가난 따위는 두렵지 않은 법이란다.”(57p)

 

도박판에서 속임수로 푸구이의 재산을 몽땅 손에 넣은 룽얼이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토지개혁이 시작되었고, 공산당 정부가 정권을 잡았다.

 

옛말에 큰 재난을 당하고도 죽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복이 있을거라 했네. 그래서 난 내 나머지 반평생은 점점 더 나아질 거라 믿기로 했지. 자전에게도 그렇게 말했더니 그녀는 이로 실을 끊으며 이렇게 말하더군.

 

저는 복 같은 거 바라지 않아요. 해마다 당신한테 새 신발을 지어줄 수만 있다면 그걸로 됐어요.”(111p)

 

...자전의 말이 맞아. 가족끼리 매일 함께할 수만 있다면, 복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112p).’

 

 

인생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이 행복인가? 행복의 중심에서 가족이 있는 셈이다.

 

우리 모두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펑샤를 돌려보내지 않겠소.”

 

그 말에 자전은 배시시 웃어 보이더군. 웃는 얼굴 위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지(127p).

 

가족이란 것은 함께하는 데서 큰 기쁨이 있는 것이고,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인해 떨어져 있으면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사무치는 것이다. 농아인 펑샤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 그러했다.

 

유칭이 이제 이 길을 달려올 수 없겠군요”(199p)

 

 

 

4

위화의 스토리는 대화체로 흘러가는데, 푸구이 가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비극과 슬픔과 아픔과 고난을 기술함에 있어 아주 속도감 있게 전개해 나간다. 그 고통과 비극과 그 아픔이 얼마나 깊숙한 그늘을 지워지게 했을지라도, 우리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 흘려 보내는 수많은 차창 너머에 보이는 풍경들처럼 그렇게 부여잡지 않고 놓아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월은 흘러가야 하는 것이고, 슬픔도, 고통도, 눈물도 흘러가야 하는 것이다. 인생도 흘러가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이 네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네.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잠은 아무데서나 자서는 안 되며, 문간은 잘못 밟으면 안 되고, 주머니는 잘못 만지면 안 되는 거야.”(200p)

 

 

 

 

5 작가의 말이다

모든 독자는 문학작품에서 자기가 일상에서 느껴온 것들을 찾고 싶어한다. 작가나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자기가 느껴온 것 말이다. 문학의 신비로운 힘은 여기서 나온다. 모든 작품은 누군가가 읽기 전 까지는 단지 하나의 작품일 뿐이지만, 천 명이 읽으면 천 개의 작품이 된다. 만 명이 읽으면 만 개의 작품이 되고, 백만 명 혹은 그 이상이 읽는다면 백만 개 혹은 그 이상의 작품이 된다(머리말 중에서 5-6p).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역시나 순식간에 지나온 것 같아. 정말 평범하게 살아왔지. 아버지는 내가 가문을 빛내기를 바라셨지만, 당신은 사람을 잘못 보신 게야. 나는 말일세. 바로 이런 운명이었던 거라네...’(278p)

 

 

6 위화의 글쓰기는

진정한 작가는 언제까지나 마음을 향해 글을 쓴다. 마음의 소리만이 그의 이기심과 고상함이 얼마나 두드러지는지를 그에게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다. 마음의 소리는 작가가 진실로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자신을 이해하면, 곧 세계를 이해한 것이다...따라서 글을 써야만, 쉬지 않고 글을 써야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고,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 마치 떠오르는 태양빛이 어둠을 비추듯, 영감은 이런 순간에야 불현 듯 떠오르는 법이다....나는 언제나 마음이 요구하는 대로 글을 쓴다. 냉철한 이성은 나의 글쓰기를 대체할 수 없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아주 오랜 세월 분노에 가득 찬, 또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작가였다...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속의 분노가 사그라지자, 나는 진정한 작가가 찾으려는 것은 진리, 즉 도덕적인 판단을 배격하는 진리라는 걸 깨달았다. 작가의 사명은 발설이나 고발 혹은 폭로가 아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고상함을 보여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고상함이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을 이해한 뒤에 오는 초연함, 선과 악을 차별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동정의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내가 고상한 작품을 썼다고 생각한다.’(10-13p)

 

푸구이 노인의 아내 자전의 말이다. 이 말은 작가 위안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담고 있다.

 

내 한평생도 이제 다 끝나가네요.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니, 나도 마음이 흡족해요. 나는 당신을 위해 두 아이를 낳았어요. 당신에 대한 보답인 셈이죠. 다음 생에서도 우리 같이 살아요.”

 

펑샤와 유칭 둘 다 나보다 앞서 떠났으니 내 마음도 편안하네요. 더 이상 그 애들 때문에 마음 졸일 필요가 없으니까요. 어쨌든 나도 어미였고, 두 아이 모두 살아 있을 때 나한테 지극정성이었으니 사람이 그 정도 살았으면 만족할 줄 알아야죠.”

 

당신은 앞으로 계속 잘 살아야 해요. 쿠건과 얼시가 있잖아요. 사실 얼시도 당신 아들이나 다름없고, 쿠건도 크면 유칭처럼 당신한테 잘할 거고 효도할 거예요.”(256p)

 

 

 

 

7

사람들은 보통 남이야기를 하기를 즐겨한다. 그것이 뒷담화이다. 푸구이의 인생과 가족 내력을 본다면, 많은 이들이 그 집안에는, 그 가문에는 마가 끼였다’, ‘저주가 가득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 위화의 삶을 바라보는 관용적 태도, 고난을 대하는 작가의 긍정적인 자세는 오히려 작가가 보여준 푸구이의 아버지가 빚을 탕감해주는 부분이나 푸구이를 용납하는 자전의 태도를 통해 <용서와 화해>의 길로 나아간다. 푸구이의 치열한 현실관계에서의 자신이 받았던 화해의 힘이 그를 앞으로 살아가게끔 만들어 준 것은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해 본다. 아내 자전이 유언처럼 남긴 말, ‘당신은 앞으로 계속 잘 살아야 해요라는 말이 독자들에게 작가가 주는 메시지로 들려지기도 한다. 인생이니깐.

 

     

-당신도 앞으로 계속 잘 살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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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9-05-30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든 물건들은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 본질이 결정된 후에 존재하게 되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목적의식 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다.라고 한 사르트르 행님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인간은 외롭고, 힘들고, 비참하기 때문에 스스로 창조적으로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고난을 떠안았다 봅니다.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자세로 현실에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의미 없는 삶을 자유의지로 채워나가는 과정이 곧 실존이라고 한 점. 아무런 존재 이유 없이 실존하고 있는 과정에서 구토를 느낀다고 역설한 점이 위화의 인생에서 언급한 점과 공통점이 있네요^^; 이 책 크로싱으로 받아서 못 읽은지 어언 몇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ㅎㅎ

카알벨루치 2019-05-30 15:34   좋아요 1 | URL
북키님 이 책 읽으신줄 알았는데 북키님 땜에 이책 중고로 사서 넘 잼나게 읽었네요 감솨^^🎶

레삭매냐 2019-05-30 15: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모르는 분의 장례식을
치르셨다니요 -

위화의 작가의 책들이 요즘에는 좀
약빨이 떨어진 느낌이랄까요... 예전
작품들이 더 좋은 것 같아요.

카알벨루치 2019-05-30 15:33   좋아요 0 | URL
전 이 작품이 입문격이라 ~좋네요! 레삭매냐님 안 읽은 책 찾아서 읽어야겠군요 ㅎㅎㅎ

munsun09 2019-05-30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카알벨루치 2019-05-30 17:44   좋아요 1 | URL
늦깍이로 읽었습니다 ㅎ^^

2019-05-30 18: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읽은지 백만년은 된 것 같은데 이렇게 리뷰로 보니 다시 읽고싶어졌어요. ^^

저도 고독사할 것 같은데 그때 카알벨루치님 같은 분이 계셔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에 눈시울이 ㅜㅜ

카알벨루치 2019-05-30 18:13   좋아요 2 | URL
젊은 사람이 고독사는 무씬~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하시고 저녁 맛나게 드세욧! ^^살아가면 되는 겁니다 존버정신으로~홧팅!!!

조그만 메모수첩 2019-05-30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허삼관매혈기 말고는 위화는 읽은 것이 없는데 이 책 꼭 읽어보고 싶어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 2019-05-30 19:26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이 첨이라 위화 작가 책 좀더 읽어보려고 합니다~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두 감사해요^^

syo 2019-05-30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카알님 다정한 사람. 나는 진작에 알아봤지.

카알벨루치 2019-05-30 23:25   좋아요 0 | URL
다정하진 않고요. 그냥 부탁을 거절치 못해 갔어요. 확대해석하지 마시고요. ㅎㅎ설 가면 대구가 휑할텐데...어쨌든 화이팅🙆‍♀️

syo 2019-05-30 23:29   좋아요 1 | URL
이것 봐 내 화이팅도 해주고 대구 걱정도 해주시잖아요 ㅎㅎㅎㅎ 감사합니다 다정한 카알님🐥

희선 2019-05-31 0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자 살다 죽는다고 그 사람이 그렇게 쓸쓸할까 싶어요 장례식에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것도, 없으면 어떤가 싶기도 합니다 쓸쓸하게 여기는 건 산 사람이군요 장례식에 사람이 많이 오지 않아도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름대로 살다 간 거죠 저도 그럴 텐데... 좋은 일 같은 거 없어도 사는 거죠

예전에 위화를 우연히 알고 이것저것 읽었는데, 생각나는 건 별로 없군요 다른 사람이 무언가를 빨리 알아서 부러울 때도 있고 다른 사람이 나중에 알아서 부러울 때도 있다니...


희선

카알벨루치 2019-05-31 08:12   좋아요 0 | URL
무감무색무취무향의 삶도 삶이니깐~ 솔직한 댓글 감사드려요 늘 글 쓰시니깐 자기 느낌이 육화가 잘 되시는 듯 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1

박상영의 단편소설집이다. 단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알고보니 이전에 작품집에서 보았던 내용이었다. 그래서 스킵! 어디까지가 연결되고 어디까지가 끊기는지 유심히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마치 제리의 색다른 BL버전이라고 할까?  

    

 

2

   소라는 갑부집의 망나니같은 딸로 연기하지만, 실은 3년째 엄마 병수발을 들고 있는 여자이다. 그런 비밀을 문경 언니에게만 고백하고 살아왔는데, 문경 언니가 뒷통수를 친다. 군대에서 휴가나온 연하 남자친구(섹스파트너?) 태혁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나오는 자리, 소라는 식욕억제제를 먹은 탓에 화장실에 간 사이에 문경 언니의 뒷담화를 우연히 듣게 된다.

 

‘“쟤 원래 저래. 남자에 죽고 못 살잖아.”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그렇긴 하지, 라고 대답했다. 더럽게도 방음이 안 되는 화장실이로군. 남자에 죽고 못 사는 여자가 누군지 웬지 알 것만 같았다. 대차게 문을 열고 나가 그 여자가 누구냐고 물어봐야 하나, 아니면 눈물이라도 찍어 삼겨야 하나, 어쩔까 고민하다가 속으로 삼십 초를 세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식당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라야. 너 그거 피해 의식이야. 사람들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어.”

 

김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었다. 사람들이 아니라 오빠가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거겠지. 그렇게 시작된 싸움은 언제나 큰 일을 내고서야 끝났다.

 

식당 밖으로 나가자 문경 부부와 태혁의 뒷모습이 보였다. 멀뚱히 서 있는 태혁의 뒤에서 슬그머니 팔짱을 꼈다. 넓은 태혁의 어깨에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알게 뭐야. 추울 때 남자만한 건 없지. ‘남자에 죽고 못 사는 여자, 박소라라니. 꽤 그럴 듯한 로그라인인데? 다음 영화에 써먹어야겠어. 자꾸 웃음이 나왔다. ‘(111-112p)

 

 

 

 

3

모더니즘이 해체되고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넘어오면서 모든 것이 본질이 해체되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관계>, 바로 <관계의 해체>가 아닐까 싶다. 소라와 같이 사는 김, 두 사람은 같이 동거는 하지만, 섹스는 따로 한다. 두 사람 모두 그걸 보이지 않게 인정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영화를 보다가 속이 좋지 않아 태혁이 먼저 호텔로 간 사이, 소라는 술에 만취되어 택시를 타고 가다가 무임승차, 폭행, 기사의 관자놀이에 남은 손톱만한 구두굽 자국의 폭행의 근거를 남긴다. 파출소에 태혁이 들어왔다.

 

‘“박소라씨 보호자 되십니까?”

, 그게 저...제가 보호자는 아닌데....”

두 분 어떤 관계이십니까

제 사촌동생이에요.”

 

....몸을 기댄 채 걷는 우리의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도 사촌처럼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모와 조카 같아 보이지 않으면 다행이려나. 이런 내 모습을 보면 김은 또 자의식 과잉이라고 욕을 할테지. 사람들은 네가 누구랑 있든 아무 신경도 안 써.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김의 문자였다. 역시 양반은 못 됐다.

-나 플랜트 관련 미팅이 있어서 울진에 왔어. 저녁 먹고 커피 한잔 하는 중, 바쁘지?

-. 오빠, 촬영 일정이 정신없네. 연락 못 해서 미안해.

-바빠서 그런 건데 뭐. 힘내 소라야, 보고 싶네.

-오빠도 힘내. 나도 보고 싶어

 

문자만 보면 우리는 서로를 몹시고 사랑하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커플처럼 보인다. 서로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고, 피 튀기게 싸우도 신고를 당하고, 서로를 제외한 다른 많은 사람들과 섹스를 하고, 함께 기르던 반려견을 잃어버린 존재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많은 추잡한 일들을 공유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가장 내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하긴 상대방에게 진실을 숨긴 채 다른 것들을 욕망하며 사는 우리의 관계야말로 지극히 일반적이고도 정상적인 커플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122-123p).’

 

 

 

 

4

모든 것의 해체 이후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박소라는 술만 마시면 맥도날드 햄버거가 그렇게 땡기는 인물이었다. 맥도날드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고, 술은 만취된 상태에서 모래사장을 걷다가 하이힐을 벗어버린다. 스타킹은 구멍이 났고, 자신의 핸드폰 액정은 산산조각났고, 태혁의 구형 핸드폰은 배터리가 죽어 있었다.

 

성치 못하고 쓸데 없는 것만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게 꼭 내 인생 같네.’(134p)

 

 

 

...이 헛헛함이여! 박소라, 왜 이렇게 불쌍해...

그러는 와중에, 그녀는 어쩐지 핸드폰이 켜져 있기만 하다면 내 처지에 대해 투명하고 담백하게 인스타 업로드를 할 생각을 한다. 그래도 생의 심각한 절망 가운데서도 누군가 자신의 허세를 바라봐주길 바라는, 관심주기를 바라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우리의 모습이다.

 

'나 #박소라

전직 #피팅모델이자 #사회운동가, 그리고 #영화감독.

이제는 #서른둘의 #파혼녀

네 시간 전에 있었던 곳은 #부산국제영화제

몸이 좋고 커야 할 것이 적당히 큰 군인의 #물주이자 #자살연습생. 말기 암에 걸린 엄마를 돌보는 #암수발녀. 조만간 #상주가 될 예정. 한때는 충실한 #약혼녀이자 #패리스 힐튼의 #반려인이었으나 지금은.

#'

 

 

 

 

5

  유튜브가, 동영상(디지털 플랫폼)이 현대인의 새로운 인기몰이를 하면서 유튜버들의 인기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초딩애들의 꿈을 물으면, ‘1인 크리에이터란 직업에 대해 쉽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 직업은 사람들이 그를 바라봐 주어야 되는 직업이다.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구독좋아요가 돈이 되는 시대가 된 지는 오래다. 요근래 1인 크리에이터의 개인방송과 방송사 간의 갈등으로 인한 사건을 알게 되었다. 핵심은 뷰봇을 사용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이다. 뷰봇이란 말을 첨 들어봤다. 글을 쓰다가 한번 찾아 봤다.

 

viewer bot "viewer bot"의 음차, 줄임말. 인터넷 봇(인간의 행동을 흉내내도록 만들어진 응용 소프트웨어)의 일종으로, 개인 방송등 에서, 시청자수를 늘리도록 프로그래밍 된 인터넷 봇을 의미한다(출처: 네이버사전).

 

구독과 좋아요, 시청시간 등등이 돈이 되니, 이제 뷰봇이 등장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봐주고, 시청해주고, 감상해주고, 리액션해주는 상품도, 컨텐츠도, 크리에이터도 살아남는다.

 

 

 

 

6

소라야. 너 그거 피해 의식이야. 사람들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어.”

소라의 동거남, 김의 대답인데, ‘사람들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어라는 문장이 남는다. 오프라인의 관계는 점점 잠식되어지고 온라인의 관계가 더 활성화되고 있다. 주인공 박소라는 인스타마니아이다. 삶의 혼돈과 혼란 가운데서도 여전히 그녀는 관심을 갈구하고, 관심의 시선을 받고 싶어한다. 동거남 김의 관심을 받지 못한 그녀가 자꾸 떠돈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너한테 아무 관심이 없어’....

 

그런데도, 그녀는 사람들의 헛헛한 관심을 받고자 핸드폰을 떠올리는 포노 사피엔스(‘포노 사피엔스에 대한 이야긴 제 리뷰를 참고하시길)이다. 포노 사피엔스에게 SNS는 필수이다. SNS에서 그녀는 해체된 관계를 보상하려고 하고 있다.

    

박소라의 모습을 보면서 현대인인 우리에게 어쩌면 영혼의 뷰봇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뷰봇이 필요해?!?!?

 

때로는 신경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크 맨슨의신경끄기의 기술이란 제목이 떠오른다! 마크 맨슨도 몇 년동안 따라다녔던 스토커가 있었다고....

 

 

"남들로 하여금 말하게끔 내버려두어라. 그리고 너는 너의 길을 걸으라"

-단테의 <신곡>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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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 꽃이 피었습니다 - 신지균 포토 묵상에세이
신지균 지음 / 킹덤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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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삼천포에서 태어났다. 흔히 바닷가에서 누릴 수 있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동심이 그의 삶의 배경이 되었다. 그림을 즐겨 그렸던 그 소년이 이제는 사진기를 들고 사진으로 삶을 그려내었다.

 

 

 

 

2

사진기에 대한 욕망이 일었던 때가 있었다. 사진에 대한 욕망인지, 사진기DSLR에 대한 욕망의 메카니즘인지 구분이 가지 않지만, 어쨌든 아내를 졸라 기어이 보급형 DSLR을 들고 사진을 찍을 때가 있었다. 나는 부지런하지 못하다. 사진을 취미로 삼는 사람들은 부지런하다. 그들의 사진에는 열정의 광기가 묻어나 있다.

 

작가와 함께 출사를 떠났던 기억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 임실의 산등성이를 오를 때였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의 풍경샷을 찍기 위해 그 새벽에는 이미 곳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산등성이 이곳 저곳에 포진해 있었다. 기이한 풍경이었다. 충격이었다. 그리고, 고령화시대가 되어 여유가 좀 있는 어르신들이 가장 접하기 쉬운 취미가 또 사진이라, 사진기를 들고 그렇게 출사를 다니신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새벽 1-2시에 이미 올라와 선점하기도 한다고 했다. 날씨는 추웠다. 옷을 여미고, 파카를 입고, 담요까지 챙겨야만 했던 날씨였다. 나도 덩달아 사진을 찍어댔다. 사각형의 프레임frame 안에다 자신의 주제와 생각과 사유를 한 컷으로 담아내는 것이 사진이다. 순간을 포커싱해서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 순간, 그리고 샷shot!

 

몇 년 후에 나의 사진기는 고장이 났다. 본사에 알아보니 수리비용 보다 차라리 새 것으로 교체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이야기를 했다. 사진기를 처음 구입할 때의 마음의 기운이 많이 사그라진 상태라 나는 사진기를 내려놓았다. 이제 내 사진기는 그냥 골동품에 불과하다. 공간만 차지하고 아무런 쓰임새도 없는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아쉽지만...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에 애정을 가지고 달려들다가 버리고 버려지고 내팽개친 것들이 많을까? 인생에는 그 모든 것들이 다 필요하겠지.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사진들을 찍어대고 그리고 그 수많은 사진들 가운데 선별된 몇 장의, 몇십 장의 사진만이 선택되어 사진집에 실리고 사람들에게 선보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진들이 필요 없는 낭비인가? 그렇지도 않다. 삶의 매순간 매순간이 다 소중한 것이다. 박웅현은 삶은 순간의 합이다라고 하지 않았나! 좋은 순간, 좋지 않은 순간, 나쁜 순간, 아찔한 순간, 지우고 싶은 순간...그 모든 순간들이 모이고 모인 합이 이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에는 그 작가의 삶이 녹아나 있고, 그 작가의 철학과 생각과 좌표가 보인다. 사진도 생각해보면 생각해볼수록 요물인 듯 하다.

 

사진을 찍으려면 바지런해야 하고, 사진에 대한, 사진예술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아닌 듯 했다.

 

 

 

 

3

사진작가가 되려면 자신이 찍은 사진을 현상을 해서 그것을 공모전에 투고를 한다. 공모전에서 심사위원들에게 심사를 받아 입상이 되어야 한다. 입상이 되면 포인트를 준다고 한다. 그 포인트가 쌓이고 쌓여야, 실적과 경력이 쌓여야 엄연한 사진작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처음 그 사실을 알았다. 땀과 수고와 열정과 시간이 축적된 결과물이 인정받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4

이 책은 포토묵상 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가 찍은 몇 년 동안의 사진집인 셈이다. 사진도 좋고, 글도 좋다. 사진과 어우러진 글이 마음의 파고를 일으킨다. 신앙인이라면 꼭 한번 읽으면서 묵상하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추천한다.

 

 

단풍

 

가을 단풍 구경 나온 사람들에게

내 온몸으로 짜낸 것을

선물로 드립니다.

 

푸르름 안고 여름을 보내다

찬바람 세월에

온몸을 물감으로 새겼습니다.

 

시원한 가을바람에 힘입어

떨어지는 단풍은

내 삶의 추억이자 영광입니다.

 

주님, 당신의 몸에 매였던

십자가도 당신의 삶에 단풍이기에

고이고이 내 삶의 갈피에 끼워봅니다.(193p)

    

    

 

 

5

신약성경 사도행전 16:9에 보면,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이란 구절이 있다. 작가는 목사이다. 작가는 사진작가 이전에 목사이다. 그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본문을 가지고, 자신이 육지에서 사역을 하다가, 제주도로 개척을 하게 된 이야기를 했다. 그 스토리를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그는 아무 연고도 없는 그 낯선 제주도의 허전한 공간, 그 도시에서 개척을 시작했다.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예배당 문을 두드린 한 사람, 임산부 아줌마...문득 포토묵상 에세이를 보다가 보니 작가의 삶의 스토리가 엿보여 여운이 피어났다.

 

 

꿈이 하나 될 때

 

건너편의 한 영혼을 위한

하나님의 꿈에 내 꿈이 실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나의 남은 인생의 항로는 하나님의 꿈을 담고

건너편을 향해 달려가길 기도해봅니다.(1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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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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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두 가지 편견을 깨다

 

첫째, 김영하는 소설가이다. 소설가가 에세이라니?

둘째, 김영하는 여행가가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김영하를 좋아해마지 않을 수 없었고, 그가 여행에서 만나는 뜻밖의 사실을 나도 재발견하게 되었다.

 

 

 

 

2 여행지는 기억과 추억을 소환한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부부가 여행지에 갔는데, 상대가 아닌 다른, 이전에 사귀던 연인과 같이 간 여행지로 다시 가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상대방과 처음으로 가는 곳을 여행지로 삼은 부류가 있었다. 각기 자기들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최선the best이라고 생각하는 곳으로 여행 목적지를 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전에 다른 연인과 갔던 곳으로 다시 재탕(?)하는 남편에 대한 주위분들의 질문이 집요했다. ‘꼭 그곳을 가야만 하는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지는 장소이고, 그 장소는 추억을 소환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일단 경험해 본 최적의 장소로 그곳을 선택했지만, 아내의 입장에선 자존심 상할 수 있다. 근데 괜히 나 자신도 찔린다. !

 

 

여행의 장소는 추억을 소환한다. 추억을 리멤버remember하게 한다. 작가는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대학시절의 추억을 소환한다.

 

 

 

 

3‘김영하, 이 양반 에세이 너무 잘 쓰는거 아니야?’

그러면서 나는 이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희망도서 일빠로 주문했는데, 다른 분도 중복신청했다는. 그런데, 내가 먼저 선점을 했는데, 요즘 독서가 잘 안되서 여행에세이 같은 거 잘 안 읽을 것 같아. 도서관 사서에게 그분(중복신청했다는) 먼저 읽으시라고 양보하려고 했는데, 사서는 ‘2주면 다 읽지 않나요?’그 말에 어쩔 수 없는 권유에 업고 오긴 왔는데.

! 근래에 들어 가장 흥미로운 산문인 듯 싶다. 김연수의 언젠가, 아마도도 흥미로워서 빌려 읽다가 말다가 읽다가 미루다 도저히 안 되서 반납하고 책을 구입했더랬는데. 김영하의 이 작품은 정말 부러울 정도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너무 팔방미인인거 아닌가? 부러우면 안도ㅑ!!!!

 

 

 

 

4 삶의 안정감, 그리고 삶의 생생한 안정감

작가는 삶의 안정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보통 한 곳에서 정착하여 거기서 익숙해지고 편안해져가는 느낌을 안정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면에 한 곳이 아니라 이곳 저곳으로 여행을 하기를 즐기는 부류의 사람은 안정감이 없다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것을 삶의 생생한 안정감(60p)이라고 표현한다. 김영하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이곳 저곳 원치 않는 강제 전학을 당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 어린시절의 경험이 큰 트라우마와 콤플렉스가 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런 삶의 배경, 백그라운드가 자신을 여행을 즐기는 이로 성장하게끔 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207p)

 

 

 

 

5 여행은 삼십육계

재미난 이야기가 있었다.

 

이십대, 삼십대에는 일년 짜리 적금을 부어 여행을 다녔다. 때로는 신용카드 할부로 항공권을 구입해서도 나갔다. 그 돈을 모아서 집부터 장만하러던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의 부모는 강남에만 열 채가 넘는 아파트를 가지고 있었다. 선배는 결혼하면서 그 중 하나를 증여받았다. 자기가 번 돈으로 청약저축 한 번 부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런 충고를 들었을 때도 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풀리지 않는 삶의 난제들과 맞서기도 해야겠지만, 가끔은 달아나는 것도 필요하다.’(66-67p)

 

 

그러면서 김영하는 중국의 고대 병법서 삼십육계이야길 한다. 적의 힘이 강하고 나의 힘이 약할 때 마지막 히든 카드 <패전계>가 바로 삼십육계이다. 김영하는 여행지에서 호텔방의 낯설지만 기분 좋은 침대시트 위로 36계의 여행을 한 셈이다.

 

 

 

 

6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리베카 솔닛은 걷기와 방랑벽에 대한 에세이에서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생각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방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82p)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우아!’이런 감탄사가 나왔다. 김영하!!! 절대 감탄사를 연발케 하는구나! 소설검은꽃을 읽을 때, 있을 법한 이야기를 사료를 참고하여 어우러지게 만든 작가의 솜씨에 혀를 내둘렀는데, 이 표현은 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김영하의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나같이 방콕을 좋아하는 인간이 이 책을 읽을만한 무슨 동기가 있지는 않았는데, 여행에 대한 전방위적인 생각을 하게끔 하는 부분에서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다.

 

 

 

 

7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라고 명명했다. 저자가 언급한 BBC 다큐멘터리 인간사냥꾼을 나는 직접 찾아 뒤져서 아이들과 같이 보기도 했다. 다른 모든 동물과는 대별된 인간의 특별한 점은 바로 지구력이다. 그 지구력은 걷고, 움직이고, 이동하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여행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동물들중에 가장 빠르다고 하는 치타가 120km까지 빠르게 달릴지라도, 계속 달리진 못한다. 왜냐하면 동물들은 한 번 오른 열은 쉬어주면서 열을 식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열이 오르면 땀으로 배출시키면서 열을 식혀주는 일종의 자가관리의 신체구조를 가짐으로써 지구력을 확보할 수 있다. 원시 인류가 사냥감이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쫓아가서 사냥감을 포획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간의 이런 감각 때문이다.

 

 

 

 

8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

작가가 출연한 TV 프로그램 <알쓸신잡>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여행을 한 사람은 본인인데, 여행한 이야기를 편집하여 방송을 시청할 때의 느낌이 아주 남달랐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1인칭과 3인칭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일본의 한 코미디언이 비싼 포르쉐를 샀지만 막상 운전을 해 보니 자기가 모는 모습이 보이지가 않더라. 그래서 친구더러 운전을 하라고 시키고 자기는 택시를 타고 따라갔다는 얘기가 떠오른다. 그가 택시 기사에게 저기 가는 저 포르쉐가 자기 차라며 정말 멋지지 않느냐며 자랑을 하자 택시기사가 어이없어하며 그런데 왜 택시를 탔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바보 아니세요? 내 차에 타면 내가 안 보이잖아요?”’(102p)

 

 

이 짤막한 이야기는 굉장히 많은 것을 시사하는 듯 하다. 포르쉐를 타고 있는 1인칭은 자신이 얼마나 굉장한 차를 탄 것인지 제3자가 아니라서 볼 수가 없다. 그래서 3인칭으로 접근했다는 에피소드, 어쩌면 우리가 셀카를 찍고 사진을 SNS에서 올리는 이유와도 상관이 있겠다...우리가 한 도시, 예를 들어 피렌체를 여행했다고 치자. 하지만, 피렌체를 다녀왔다고 해서 피렌체를 다 안다고도 할 수 없고, 작가의 말대로과연 그 도시를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피렌체를 수박 겉 핥기를 했는가? 아니면 거기서 영역표시용으로 똥싸기라고 하고 왔는가? 아니면 거기서 몇 개월 혹은 몇 년을 살았다는 말인가?

 

 

어떻게 보면, 우리는 끊임없는 여행자가 되어야 하는 부분인 것 같기도 하다. 한 도시, 한 마을, 한 공간을 안다고 할 때, 여행했다고 할 때, 과연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이것은 마치 우리가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관계를 맺었다고 치지만, 과연 그 사람은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또 다른 측면으로 1인칭인가, 3인칭인가 뭐 이런 질문들까지 해볼 수 있겠다.

 

 

김영하에 대해 내가 놀랍게 발견한 대목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여행이야기라고 하길래 여행 가서 체험하고 경험한 것을 감상 정도를 콤멘트하고 끝날 것이라는 나의 얄팍한 기대는 단숨에 무너지게 만들었다. 여행을 많이 다녀 본 자만이 가지는 그 묵직함과 깊이, 철학적인 성찰, 김영하의 내공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언젠가 김어준에 대해서 그는 독서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인데, 어떻게 그렇게 해박함과 통찰을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해 어디서 들었는데, 정확한 출처는 기억 나지 않는다. 아무튼, 김어준은 어릴 적부터 여행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 그 여행감각과 경험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이다.

 

 

나 역시 시청자와 마찬가지로 다른 출연자들을 통해 한 도시를 간접적으로 여행하고 있는 셈이다. 분명 그들과 함께 아테네, 진주, 피렌체, 부산 등을 다녀왔지만 내가 다녀온 곳은 그 도시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그 도시를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은 마치 금강산 유람을 떠난 조선시대의 양반이 높은 봉우리는 하인을 시켜 다녀오게 한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실제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20세기 이전에는 힘든 여행은 아랫사람을 시키고 지체가 높은 이들은 유람의 범위를 벗어나는 모험을 삼가왔다. 21세기의 우리는 남을 시켜 좋은 구경을 하고 오게 하고 나중에 이야기만 전해 들었던 유럽의 귀족이나 조선의 양반을 비웃지만, 과연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다를까?’(110-111p)

 

 

 

 

9 여행, 비여행, 탈여행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에 대한 이야기를 피에르 바야르의 입을 빌어 김영하는 이렇게 보여준다.

 

여행을 하는 동안 내내 자신의 선실 안에 머문다는 이 관념은 우리가 어떤 장소에 접근할 때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성찰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자신이 통과하는 나라들에 대해 포그는 그곳을 방문하여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더 강력하게 바로 그런 활동들에 완전히 전념할 수 있는 것이다.’(113p)

 

포그는 지리학에 통달한 인물이기에 여행지의 디테일에 함몰되지 않고 총체적인 시각을 갖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영어의 ‘armchair traveler’(방구석 여행자)도 여행자라는 이야길 한다. 우리가 몸소 발을 디디고 여행한 것만이 진짜 여행이 아니라 TV프로그램 하나를 보고 남은 강렬한 인상이나 임팩트가 축적되면 오히려 그것이 또 하나의 여행 경험이 되는 셈이라고. 그리하여 여행, 비여행, 탈여행...이 모든 것들이 다 여행인 셈이다.

 

 

 

 

10 여행에서 지극히 중요한 것, <환대>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소설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스토리는 악마가 주인공 슐레밀에게 행운의 자루를 줄테니 그림자를 자신에게 팔라고 한다. 그림자가 무슨 대수냐 싶어 그는 도깨비방망이와 같은 행운의 자루를 거머쥐지만, 그림자 없는 사람이 당하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그는 점점 느끼게 된다. 후에 악마가 그림자를 돌려 줄테니 죽은 뒤의 영혼을 자기에게 팔라고 하지만, 갈등 후에 주인공을 거절한다는 이야기. 김영하는 이 소설 이야기를 하면서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라는 이야기로 넘어간다. 김현경은 이 그림자라는 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무엇이라고 해석한다. 그림자가 있는 사람은 사람으로서 환대받을 자격이 있는 성원권을 지닌 셈이다. 이 이야기를 가지고 김영하는 여행에서 받는 낯선 사람으로부터의 환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 부분이 상큼하다. ‘환대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인생이라는 큰 구도에서 여행자이기에 그 누군가의 환대로 인해 생존해가고 생활해가고 활력을 얻는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저와 피더백하며 소통하는 그것 또한 환대인 것이다.

 

 

 

 

11 여행은 노바디Nobody의 삶

우리는 우리 인생의 그 무언가 대단한 존재, ‘섬바디somebody’의 삶을 산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섬바디가 아닌 노바디nobody’의 체험을 한다. ‘아무것도 아닌, 노바디가 되는 경험, 무명의 경험, 거기서 우연찮게 찾아오는 환대’. 이 모든 것, 그래서 길 위의 날들의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82p)는 이 문구가 더 다가오는 듯 싶다.

 

 

 

 

12 우리는 3인칭으로 보면, 지구의 승객riders, 여행자이다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이란 챕터에서 김영하는 196812, 처음으로 달에 도착한 지구인의 이야기를 한다. 인류 최초로 지구란 행성을 벗어난 이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달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은 칼 세이건이 말한 대로 창백하고 푸르른 점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지금 현대인들에겐 익숙한 장면이지만, 당시 지구인들에겐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그 작은 구슬 같은 지구에 인류가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 아치볼드 매클리시는 아폴로 8호가 달 궤도에 진입한 다음날 크리스마스에 발행된 뉴욕타임스에 저 끝없는 고요 속에 떠 있는 작고, 푸르고, 아름다운 지구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지구의 승객riders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썼다.‘(136p)

        -우리는 3인칭으로 보면, 지구의 승객riders, 여행자이다

    

 

 

 

13 우리는 21세기판 오디세우스

오디세이아의 오디세우스는 그리스어로 우티스Outis, 영어로는 노바디Nobody, 우리말로는 아무도안이라고 답한다고 천병희씨의 글을 작가는 인용한다. 자기 영역을 침범한 오디세우스를 키를롭스가 가장 마지막에 아무도안‘(인 놈을) 잡아먹겠다고 한 대목, 키클롭스가 오디세우스에게 두 눈이 찔린 채로 고통가운데 있을 때 부하들이 달려와 누가 당신을 괴롭혔느냐고 물었다. 키클롭스는 나를 죽이려는 놈은 아무도안이야라고, 영어로 ’Nobody is killing me’라고 번역할 수 있다. 얼마나 재미있는 대목인가! 김영하는 이 고전을 이렇게 연결시킨다.

 

 

그러니 현명한 여행자의 태도는 키클롭스 이후의 오디세우스처럼 스스로를 낮추고 노바디로 움직이는 것이다. 여행의 신은 대접받기 원하는 자, 고향에서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자,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자를 징벌하고, 스스로 낮추는 자, 환대에 감사하는 자를 돌본다. 2800여년 전에 호메로스는 여행자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태도를 오디세우스의 변화를 통해 암시한다. 그것은 허영과 자만에 대한 경계, 타자에 대한 존중의 마음일 것이다’(185p)

 

 

 

14 왜 여행을 꿈꾸는가

인간은 왜 여행을 꿈꾸는가. 그것은 독자가 왜 매번 새로운 소설을 찾아 읽는가와 비슷할 것이다. 여행은 고되고, 위험하며, 비용도 든다. 가만히 자기 집 쇼파에 드러누워 감자칩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게 돈도 안 들고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라고도 말할 수 있다.’(206p)

 

 

 

15 Epilogue...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리뷰하고 글을 쓰는데, 혹은 내가 쓴 글로 인해 작가가 피해보는 일이 없었음 한다. 이미 이 책은 엄청나게 팔리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책이고, 당연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왜 이런 이야길 하느냐? 때로 내가 너무 세세하게 리뷰를 해서 리뷰만 보고 책은 읽지 않아도 되겠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분명 작가에겐 피해를 주는 행위가 되는게 아닌가!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할까? 역시 김영하의 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베이스볼큐브닷컴에서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신인 드래프트 결과, 프로구단에 드래프트된 전에 아마추어 선수는 17,925명이었지만 메이저리그에 한 번이라도 뛴 선수는 1,326명에 그쳤다. 이는 약 7.4퍼센트에 불과하다. 마이너리거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원래 추구하던 것과 다른 것을 얻었다. 그들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대박을 터트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불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 인생을 살아냈을 뿐이다. 경기에 출천해 최선을 다했고, 사랑하는 파트너를 만나 가정을 이뤘고, 은퇴한 후에 코치가 되어 후진양성이나 다른 일을 찾았다. ‘어쨌든 살아남지 않았는가?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옆에 있고, 남 보기에는 보잘것없을지언정 평생을 들여 이룬 작은 성취가 있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24p)

 

 

   우리도 작가처럼 그렇게 고백하길,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82p)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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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5-21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이저리그 하니 문득 드래프트 픽 생각이 나네요.

드래프트 픽 1순위의 선수들이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더라는.

마이크 피아자처럼 거의 꼬래비로 픽한 선수들이
명전에 가는 가 하면, 마크 프라이어 같은 선수는
한 시절을 호령할 것 같았는데 혹사로 그만...

김영하 작가는 에세이보다 본업인 소설쓰기에
전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 핫하 !

카알벨루치 2019-05-21 16:3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마크 프라이어는 너무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2019-05-21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1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5-21 1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핫한 신간도서를 예약하거나 희망대출도서를 신청했으면 책 오자마자 읽는 게 낫습니다. 그 책을 먼저 읽는 사람이 대출기한을 지키지 않고 연체할 수 있거든요. 이런 상황이면 애가 탑니다..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5-22 10:44   좋아요 0 | URL
책을 향한 시루스님의 맘이 느껴집니다 ㅎㅎ

뒷북소녀 2019-05-23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게 가장 좋았어요. 여행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꼭 뭔가를 하거나 이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저한테는 비행기 티켓을 끊고, 일정을 짜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일이지,
굳이 여행 가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지는 않거든요. 근데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너무 싫었는데,
김작가님도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너무 좋았어요.
특히, 계획대로 차곡차곡 진행된 여행은 정말 아무것도 기억 안나는데...
뭔가 잃어버리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의 여행만 기억에 남아서... 너무 좋았어요.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5-23 14:21   좋아요 1 | URL
아는 지인이 이탈리아에서 지갑 소매치기 당한 사건이 떠오르네요 그것도 신혼여행에서 ㅎㅎ여행마니아 뒷북소녀님이세요~

뒷북소녀 2019-05-23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물건 사고 실수로 카운터에 제 핸폰 두고 나왔는데, 점원이 온 골목을 다 뒤져서 저를 찾아 왔어요.ㅋ 눈 앞에서도 폰 훔쳐 간다는데, 저는 이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ㅋ

카알벨루치 2019-05-23 14:29   좋아요 0 | URL
복이 많으세요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19-05-26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왜 이렇게 뜨는 걸까,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고정 팬이 많은 듯하고... 그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은 모양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5-27 10:00   좋아요 0 | URL
책이 좋아요 글이 좋아요 어쩔수 없어요 비가 와서 축구를 쉬어야하는 것처럼 어쩔수 없어요 ㅎㅎ

coolcat329 2019-06-15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여행을 안 좋아하는 제가 이상하거든요ㅠ

카알벨루치 2019-06-15 20:20   좋아요 0 | URL
저도 여행을 즐기는 스탈은 아닙니다 근데 책은 너무 좋습니다 진짜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