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레 월요일이면 드디어 기말고사입니다.

저희는 시골이기에 수시로 대부분 대학을 가는데,

수시는 3학년 1학기 기말고사까지만 성적을 반영하므로

저는 이번 시험만 치르면 저를 옭아매왔던 시험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벌써부터 나흘만 있어봐라, 하고 싶은 거 다 할 거니까,

라고 중얼거리면서 계획도 세우고 있어요.

(사실 지금도 영화 볼 거 다 보고 있지만)

이렇게 짬 내서 들어올 시간도 없이 공부해야할 텐데.


시험 끝나면, 집에 쌓인 책 읽고, 알라딘도 다시 열고,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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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4-07-05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뽜이링~~~!!!
나중에 후회 남지 않는 나흘 되시길 바라요 :)

꼬마요정 2014-07-05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힘내요!!
나흘이면.. 나흘이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요~^^
나흘동안 후회없이 불태워요~^^

비연 2014-07-06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이팅~ 에요~ 이제 알라딘에서 자주 뵐 수 있겠네요^^

2014-07-08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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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알고 있다. 내가 죽음에 관하여 얼마나 약한지.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척 연기하지만, 속에서 끓어오르는 혼란과 공허감을 얼마나 견디지 힘들어하는지 너는 안다. 혹여 그 죽음에 좁쌀만큼의 희망이나 행복이 비칠 때 나는 미치기 직전에 이른다는 사실을 너는 안다. 입술을 깨물고 두 눈을 부릅뜨며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너는 수없이 보아 왔다. 너는 내 등을 다독이거나 어깨를 붙잡거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거나 떨리는 목소리로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너는 묵묵히 내 옆에 앉아 있다. 내가 손을 뻗어 너의 허리를 감싸 안고 엉엉 울 때까지 너는 망연히 앞만 바라보고 있다. 무심히 너는 내 팔을 잡아 네 몸쪽으로 밀착시킨다. 나는 너의 손길이 따뜻해서 너에게서 몸을 떨어뜨린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너의 행동을 따라 한다. 앞을 본다. 우리의 시야를 가로막은 높은 건물을 응시한다.

너는 강하다. 세상의 질감을 만져가며 느리게 걸어가는 너는 두려움이 없어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네가 의연하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천진한 문장을 분쇄하여 흩뜨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다. 내가 틀렸다. 그들도 틀렸다. 너는 강하지도 의연하지도, 그렇다고 초연하지도 않다. 너는 나보다도 그들보다도 여리다. 너는 나보다도 그들보다도 약하다. 너를 강해 보이게 만드는 것은 난도질당하여 피가 철철 흐르는 네 작은 심장을 감싸고 내려앉은 수 겹의 딱지이다. 너의 눈물과 피가 더는 보기 싫었던 시간이 내린 단단한 더께이다. 너는 무수한 깊은 상처가 무디어진 결과이다. 너의 심장을 건드리는 고통은 더는 없다. 


네가 우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다. 너는 불평하거나 투정부리지 않는다. 너는 내게(어쩌면 다른 이들에게도) 기대지 않는다. 의지하려 하지 않고 네 감정을 철저히 숨긴다. 너는 늘 받아주는 쪽이었다. 반듯이 한자리에 서서 나의 고통을 너는 말끔히 흡수하여주곤 했다. 나는 네게 미안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으면서도 고통을 덜어내고 싶었기에 나를 네 앞에 모조리 뱉어내 왔다. 너의 시선은 내 말을, 단어들을 지켜보듯 우리 사이의 공간에 머물러 있었다. 하루는, 말이 없던 네가 입을 열었다. 공간이 젖어 있어. 나는 그 후로 네게서 떨어지는 눈물을 읽을 수 있었다. 네가 길을 걸어갈 때마다, 숟가락을 들어 밥을 퍼 입에 욱여넣을 때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때마다 운다는 것을 발견했다. 너는 조용히 네 감정을 배출하고 있던 것이다. 무엇이 너를 이토록 은밀히 울게 하나. 어린 너를 장악하고 완전히 바꾸어버린 그 봄인가. 네가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시리디시린 그 봄인가.


네게 너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이 무어냐고 물어보았을 때 너는 허기라고 답했다. 그 봄 이후로 너는 먹는다는 것에 치욕을 느꼈다. 음식을 앞에 두고 손을 바삐 움직여 주린 배를 채워야 하는 의무가 역겨웠다. 너는 굶을 수 없었으므로 죽지 않을 정도로만 밥을 먹었다. 그마저도 목을 넘기기 전에 뱉어내기 일쑤였다. 쌀알은 모래 같았고 김치는 최루탄 같았다. 너는 수척해졌고 깡말라갔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다. 죽음에 결부된 슬픔을 끝까지 견뎌보자고 마음먹은 나를 번번이 굴복시킨 것이 허기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익숙해진 장례식장에서, 어린 나는 새빨간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육개장을 함부로 퍼먹으며 엉엉 울었다. 속에 생긴 빈자리에 토란 줄기와 퉁퉁 불은 쌀알이 박혀 영영 소화되지 않고 내 신체를 이룰 것 같아서 구역질이 났다. 나 자신에게서 욕지기가 났다. 먹는다는 것은 너무도 일상적인 행위이기에,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도 그만둘 수 없다는 사실이 싫었다. 진심으로 애도하는 것 같지가 않아서, 죽음이 일상이 되는 것 같아서 밥숟가락을 들기 힘들었다. 

 

아무것도 읽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허기가 느껴졌다. 어머니가 부쳐준 올배쌀을 공기에 담아와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묵묵히 쌀알을 씹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네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가끔 죽은 이들을 생각한다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입에 무언가를 넣고 씹고 있다. 음식물의 즙이 입천장으로, 혀로 배어들 때 나는 죽은 이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피가 모조리 빠져나가 쪽빛으로 푸르렀던 주검의 얼굴, 뇌가 멈추었지만 아직 심장만은 남아서 뛰고 있는 평온한 얼굴, 중력으로 늘어난 피부 위에 아로새겨진 주름이 가득한 얼굴. 얼굴에 놓인 표정은 모두가 어둡다. 찡그려져 있다. 마치 나는 힐책하듯. 나는 입에 든 것을 뱉고 싶어진다. 토하고 싶어진다. 죄의식을 내게서 떨쳐내고 싶어진다.

악취미…… 라고 너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나는 너를 언제나 아파한다. 나는 너를 염려한다. 네가 세상을 등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으려 하면 나는 가슴에 무언가 마치는 것이 느껴진다. 너를 어떻게든 돌려놓고 싶지만 그렇게 하는 게 너를 더욱 상처입히는 일 같아서, 사실 그것은 너를 위한 행동이 아닌 나를 위한 행동인 것 같아서 나는 매번 포기한다. 너는 내 이야기를 전부 듣고 나서 한마디씩 너를 꺼낸다. 너의 봄을 내게 한 덩어리씩 꺼내 놓는다. 너의 목소리는 나직하다. 떨림이 없다. 시를 낭송하듯 무감각하게 너를 읊는 네 모습은 결기로 둘러싸여 있다. 나는 그 순간이 아프다. 너를 알고 싶으면서도 너를 아는 것이 두렵다. 무섭다. 너의 목소리가, 너의 단어들이 활처럼 내 심장에 와서 박히므로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피를 흘리는 셈이 된다. 생각한다. 내가 흘리는 피의 양은 네게 비하면 얼마나 적은가.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끼는 고통은 네게 비하면 얼마나 하찮은가.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이 옳은 일인가 회의한다.

나는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범죄자를 구타하고 불태워 종내 죽이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끔찍한 영상이라며 무심코 네게 보여주었다. 영상이 중반쯤까지 재생되었을 때, 각목에 맞아 튀어나온 자신의 눈알을 보고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사내가 구타하는 자의 다리를 힘겹게 붙드는 장면이 눈에 비치었을 때에야 나는 깨달았다. 너에게 이걸 보여주다니.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너를 돌아다보았다. 너는 담담히 영상을 보고 있었다. 너의 시선은 맞는 자에게도 구타하는 자에게도 향해 있지 않았다. 너는 눈알을 보고 있었다. 사내 옆에 떨어져 흙이 잔뜩 묻은 눈알. 이제 제구실을 더는 하지 못하게 된 그것을 너는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영상을 종료하지 못했다. 사내는 그사이 자신의 마지막 힘을 다해 눈알을 쥐었다. 사내의 숨이 외마디 신음과 함께 끊어지고 나서야 너는 몸을 움직였다. 너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너의 눈은 공허했다. 너의 뇌가 들여다보이는 듯 텅 비어 있었다. 너의 눈은 빨갰다. 어찌나 힘을 주었으면 실핏줄이 터졌다.

그리고, 쏟아지는 말들.

나는 그것을 잊었다. 잊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너의 고통, 그네들의 고통, 나와 비견할 수 없는 그것을…….

 

나는 떠오르는 죽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곤 한다. 아무도 들을 수 없을 작은 목소리로 나직이 그들의 이름을 한 글자 한 글자 읊조린다. 죽은 이의 이름을 부르는 건 일종의 초혼(招魂) 의식이기에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혹여 그가 왔을까. 기척이 느껴질까. 너의 어머니가 네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 네가 그곳을 떠난 뒤였을 것이다. 네 어머니는 구부러진 허리를 지팡이로 지탱한 채 대문을 나왔다. 그녀로선 최고 속력이었다. 느릿하게 대문을 나온 뒤 네가 걸어갔을 땅의 자취를 눈으로 훑었다. 네가 남기고 지나간 체취를 감지한다. 그녀는 쉰 목소리를 내뱉는다. 그녀는 외로우시다. 그녀는 매일 자기를 책망한다. 너는 네가 변한 것처럼 그녀 또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네가 잘못했단 말은 아니다.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나는 위로하는 법을 모른다. 우는 사람 곁에 있으면 나는 얼어붙는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포기한다. 어설픈 말을 건네기보다 너를 흉내 내 가만히 있기로 한다. 우는 네 곁에 함께 있어주기로 한다. 언젠가 네 상처가 모두 아물고 딱지가 떨어지고 새 살이 돋는 그 날까지 동행하기로 한다. 네 이름을 자꾸 부르며 너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않기로 한다. 네가 나를 돌아보면 봄의 시린 풀빛을 지울 수 있는 따듯한 미소를 너에게 건네주기로 한다. 내게 사원이 된 네 속에 나의 촛불이 아른거리면 나는 그제야 걷는 것을 멈추기로 한다. 다짐한다.

 

나는 강둑에 앉아 있다. 내 시야를 가로막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눈앞에 강이 흐른다. 촉촉한 소리를 내며 강이 흐른다. 자유롭다. 자유다. 자각하지 못했던 자유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는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운다. 슬픔이 아니다. 양심. 그렇다, 양심이다. 고개를 들고 입술을 깨물고 다시 운다. 네 손길이 내 어깨에 닿는다. 너 또한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있다. 너는 위대하다. 너는 숭고하다. 너는…… 너를 지킨 사람이다.

 

군인들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누구도 너의 앞에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눈을 감고 묵념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너를 지킨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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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4-06-23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말고사 좀 있으면 시작이죠? 잘 보세요.화튕

루쉰P 2014-06-2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후 공부 잘하고 계시죠. ㅋ
저도 서재에 왔어요 침묵을 깨고 ㅋ
 






잠이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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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5-3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냐? 벌써 덥다. 더위 먹지 말고 건강하게 여름 나라.^^

jo 2014-06-03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고3고3고3고3고3고3고3고3~!!!!!! 고등학교를 어디로 가야할 지 아직도 헤메는 중3입니다.. 국제고를 생각하고 준비를 했다가 거창고를 생각했다가도 다시 외고입니다. 하..
 






오랜만에 글을 쓰고자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창을 띄우니, 전엔 이 넓은 페이지를 어떻게 채웠나 하는 놀라움과 제목을 짓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수백의 피지 못한 꽃이 한 줌 가루로 낙화한 지도 한 달 남짓 지났는데 아직 그때의 상처가 씻기지 않고 있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기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난 뒤 더욱 공허하게만 보이는 진도체육관의 사진을 보며 진저리 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생에 세번째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 나는 읍내에 신설된 장례식장에서 그를 추모했다. 믿을 수 없는 죽음이었기에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나와 친구들의 발걸음은 얇게 언 호수의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웠고, 우리들의 자취에는 침묵과 슬픔이 서려 있었다. 마침내 까만 물결이 치는 건물 앞에 당도했고 우리는 서로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쉬고 나서야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참담한 눈길로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것은 상아색의 대리석 벽이었다. 시린 형광등 불빛이 반사되어 투명하고도 새하얀 빛의 떨림이 눈을 통해 틈입하는 것을 나는 느꼈다. 온몸을 장악하는 듯한 상아색의 벽은 분향소 공간 전체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를 지나는 새까맣고 두꺼운 선. 그것은 마치 생사부의 이름 위에 그어진 붉은 색의 선 같아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주저앉아서 고개를 숙여 얼른 그 벽에서 눈을 떼고 싶었다. 죽은 자의 신음 같은 빛의 파동에 심장이 계속 떨려왔다. 나는 친구들 틈에 껴서 얼른 묵념을 하고선 다신 그 공간에 눈을 주지 않았다. 



공간이라는,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서 주는 장악력을 나는 그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직 그곳에 남은 가족들, 밝은 기억만 가지고 견디기엔 너무도 힘들어서 마지막까지 기다리는 그들, 온힘으로 기다리는 그들이 그곳에서 느낄 감정이 어떨지 나는 공간에 관해서만 조금은 알 것 같다. 



……글을 쓰니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늦은 밤까지 거리를 떠돌며 찬바람에 식혀야 했던 슬픔, 서럽게 울던 친구를 품에 안고 도닥거리며 받아주어야 했던 상처, 주저하게 되고 머뭇거리게 되던 떨림을 잊을 수 없다.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더욱 안타까웠던 시간들. 하지만 나는 무덤덤했다. 벌써 두 번의 가까운 죽음을 겪어보았기에, 어떻게 그 상실감을 달래야하는지 방법을 터득했기에, 나는 친구들보다 빨리 그것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잊는 것이었다. 내 방법은 어떻게든 그것에 관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소진이 정욱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동안, 나는 거실 바닥으로 내려와 소파 다리에 등을 기댄다. 눈을 감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든다. 혼곤한 잠 속에서 방향을 잃는다. 여기가 어딘가, 저건 어떤 아이의 울음소린가. 언제인가. 나는 지금 언제에 와 있는 건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어지럽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어쩌면 이렇게 환한가. 물이 번쩍이는 건지 공기가 번쩍이는 건지 알 수 없다. 다시 열세 살인가. 열세 살의 여름방학인가. 작은아버지를 따라 처음 고깃배를 탔나. 흔들리는 배의 이물에 납작하게 몸을 낮춘 채 나는 겁먹고 있다. 바다 가운데로 나오자, 눈부신 잔멸치 떼가 일제히 배 밑을 헤엄쳐 간다. 빠른 빛이다. 셀 수 없는 빠른 빛이다. 배까지 쓸려 뒤집힐 것 같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난 뒤, 물의 정적이 숨을 틀어막는다. 기포처럼 내 몸이 부서진다. 영원히, 시간이 정지한다. 나는 떤다. 두렵기 때문이다. 너무 아름다운 것도 고통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못이나 씨앗처럼 몸 안에 박히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평생토록, 끈덕지게 죽지 않고 살아 꿈틀거리리라는 것까지 열세 살의 나는 아직 모른다. 갈망과 절망, 풀리지 않는 긴장으로 내 몸이 들뜨고 지칠 것임을 모른다. 다만 두렵고 모호한 예감을 잠재우기 위해, 두 손을 빳빳이 펴 오목한 가슴을 누르고 있다. 강한 물빛 때문에 거의 눈을 감은 채, 토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침을 삼키고 있다. 부신 눈을 가까스로 부릅뜨자, 입가에 온통 흰 우유를 묻힌 아이가 뒤뚱뒤뚱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무방비 상태의 웃음을 물고 있다. (노랑무늬영원, '노랑무늬영원' 293p)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혹은 할 수 없을 때마다 나는 한강의 이 소설집을 꺼내든다. 소수의 파랗고 붉은 점들의 앞뒤로 비치는 수많은 노란 점의 그림을 나는 망연히 응시하곤 한다. 한강이 소설에서 밝혔듯 이 점들은 해질녘, 산 너머로 이우는 해와 함께 몸 안에서 무언가가 함께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그 시각, 나뭇잎 사이로 조각조각 나뉘는 샛노란 빛을 찍어낸 것이다. 무언가 빠져나간 빈 공간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生을, 광명을 바라보는 것은 나로 하여 애잔한 기분을 갖게 한다. 지금도 지나가버리고 있을,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안타까워서 나는 항상 나무 밑에서 고개를 처들곤 한다.



한강의 이 소설집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가 성숙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고,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글의 가지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소설집의 마지막에 실린 중편소설 '노랑무늬영원'이 특히 그렇다. 처음에 나는 잔멸치 떼가 상징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게는 서로에게 질린 한 부부의 냉소와 그와 대비되는 산에서의 짧고 어색한 만남의 떨림만이 들어올 뿐이었다. 한강이 감각적으로 써낸 것을 나는 오로지 감각으로밖에 읽어내지 못했다. 두번째로는 '영원'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서 글을 읽었다. 단어가 주는 울림에 몸을 맡긴 채, 감정[感]은 스스로 팽창하거나 수축하거나 했다. 이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잔멸치 떼'이다. 내 밑을 훑고지나가는 잔멸치 떼. 셀 수 없이 빠르고 거대한 무리. 순식간에 다리 밑을 스쳐지나는 그것. 그것은 生의 격정 자체이다. 격렬하게 生이 스치고 간 뒤 남는 공허감. 갈망과 절망, 가없는 동굴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공포감. 



生이란 너무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고통이 되는 것이다.



바닥에 떨어뜨린 유리가 깨어지듯 마음 속에서 어떠한 장면이 솟구쳐 오른다. 살아남았으므로 비통한 자들의 눈물,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홀로 누리게 된 고통에 가슴 치는 이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어찌하여 생명은 이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일까.








죽음에 관한 짧은 수필을 쓴 적이 있다. 동아리 신문에 투고하기 위해 밤을 패가며 써낸 수필인데 신문의 편집을 맡은 친구가, 글을 메일로 보낸 다음날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친구의 말로는 자기가 글을 읽으며 크게 감동받은 적이 딱 세 번 있는데 그 중 한번이 바로 내 글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칭찬을 듣고 얼마간 의아해하며 집에 와서 다시 글을 읽어보았다. 새벽에 손이 가는 대로 적었던 글에는 죽음은 곧 진입이며,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들어가게 되는 곳은 바로 無의 세계라는 약간은 피상적인 문장들이 가득했다. 가슴 깊이 느끼지도 못하면서 용케도 이런 글을 적었구나, 하고 자조하며 마지막 문단을 읽는데 가슴에 무언가가 마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쓴 글임에도 생경했다. 내가 예전에 시를 한 편 읽었는데, 그게 자꾸 떠올라. 뭔데. 상갓집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신발들 있잖아, 그게 죽음이라고. 결국 죽음은 생과 분리된 게 아니라 생과 결부된 것, 더 나아가 생 그 자체인 거라는 말이지. 그도 발걸음을 멈췄다. 호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나를 응시했다. 그건 아닌 거 같다. 죽음이 생이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닌 게 되잖아. 나는 고개를 내려 그와 눈을 맞췄다. …모르겠어.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우리는 서로 피식 웃었다. 나는 내가 이때 무슨 생각을 하며 이 문장을 적어내려갔는가 떠올리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죽음과 생의 결부…… 무엇일까. 내게 이런 글을 쓰게 만든 힘은.



그러나 나는 내가 적은 글이 한낱 고등학생의 중얼거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이제 죽음에 관해 정의하기보다 가슴으로 느끼려 한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내게 그 시초가 된 영화이다. 뇌종양과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남자가 같은 병실을 쓰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둘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공통점 외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절제에 서툴어 난폭하고 거칠기만 한 마틴과 그를 마뜩잖은 눈길로 바라보는 루디. 둘은 서로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병원 주방에서 데킬라를 나눠 마신다. 데킬라 한 병과 소금, 많은 레몬… 그리고 바다. 루디는 자신이 바다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마틴은 그런 루디에게 천국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천국에 관해서 못 들어봤니? 그곳엔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없어. 

……바다의 아름다움과 바다에서 바라본 석양을 얘기할 뿐이야.

물속으로 빠져들이 전에 핏빛으로 변하는 커다란 공.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그 강렬함과 세상을 뒤덮는 바다의 냉기를 이야기하지.

영혼 속의 불길만이 영원한 거야…….



마틴과 루디는 바다를 보기 위해 병원을 탈출한다. 生의 끄트머리, 천국의 문 앞에서 그들은 당돌해진다. 은행을 털기도 하고 주유소에 침입해선 자연스러운 연기로 경찰을 피하기도 하고, 호텔에 숨었다가 차를 훔치고…… 그러다보니 둘은 단지 바다를 보기 위함이었을 뿐이었는데 강도로서 쫓기는 신세가 되어 있다. 둘은 그 와중에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하나하나 달성해나간다. 마틴은 어머니에게 차 한 대를, 루디는 두 여자와의 잠자리를 이뤄내고야 만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언덕 앞에 선다. 바람이 부는 갈대밭이 퍼져 있는 낮은 언덕. 그리고 언덕을 넘어 바다가 나오고.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심장을 뒤엎는 것 같다. 장엄하게 펼쳐진 거대한 바다 앞에서 그들은 잠시 멈춘다. 파도를 만드는 바람을 맞으며 둘은 걷는다. 둘은 떨리는 눈으로 바다를 응시한다. 한참을 본다. 눈이 붉어진다.



쓰러진다. 모래 위에 검은 그림자가 쏟아지고, 파도는 친다. 끊임없이.



……결국 生은 바다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生은 데킬라 한 병과 소금, 많은 레몬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하여 내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이 헛됨이 아님을 안다. 生은 바다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위대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찮은 생명은 하나도 없기에 우리는 죽음에 슬퍼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의 위대한 별이 지는 것이기에, 그 별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두 번 다시 생기지 않을 것이기에. 


간단하지가 않은 것이다.



바다를 보고 싶다.



그러나 마주할 수 있을까. 그 앞에 마틴과 루디처럼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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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5-18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어지지 않는 정말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일들이예요. 4월 16일 오전에 무심코 인터넷 포탈에서 아이들의 소식을 읽고 전원구조,라는 그 표제 기사에 아, 그렇구나, 다행이네, 별일 아니네, 했던 기억이 악몽으로 변했던 시간들. 님은 더더욱 같은 고등학생 친구들이라 많이 아팠을 것 같아요.

조금씩 덜 울고 잊어버리기도 하면서 하지만 또 떠올리면 울분이 치밀어 오르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도 해보고. 가까운 이의 죽음을 두 번씩이나 경험했다니, 소이진님이 이야기하는 죽음은 저보다 더 깊고 아파 보입니다. 저는 영원히 죽음은 잘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시간이 가는 게 여러모로 무서워요.

이진 2014-05-18 19:48   좋아요 0 | URL
별일 아니구나. 전원 구조, 면 다 된거지. 선생님 배가 하나 뒤집어졌다는데 기사나 찾아봐요, 하면서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이용하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럽네요. 저희는 그저 놀랍고 무서웠어요. 저희 학년이 작년에 배를 타고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다녀왔고, 얼마 안 있어 이학년들의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다들 안도하면서도 미안하고 그랬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상처가 곪아가니까요...

2014-05-18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8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2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수꽃다리 2014-05-23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군요!
나에겐 유구무언의 시간.
이진씨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반가운데 말이에요.
한강의 글을 꼭 읽어봐야겠어요.
열심히 거기 있기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인강을 듣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찾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에 발을 디디고부터는 거의 이런 식이다.

한국지리 인강을 듣고 있는데, 왜인지 집중이 전혀 되지 않는다.

선상지니 범람원이니 하는 개념들이 자꾸 떠돌기만 한다.

사흘 전부터 계속 이래서 공부를 하지 못했다.


……짜증이 많아졌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남들의 말에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쓰러진다.

그렇게나 아끼던 친구들도 가까이하기 꺼려지고 주저하게 된다.

공부에 관련된 개념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머릿속에 침투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고삼이 힘든 이유는 역시 정신적인 면에서 고통스럽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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