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쓰고자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창을 띄우니, 전엔 이 넓은 페이지를 어떻게 채웠나 하는 놀라움과 제목을 짓는 것이 참으로 어려웠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수백의 피지 못한 꽃이 한 줌 가루로 낙화한 지도 한 달 남짓 지났는데 아직 그때의 상처가 씻기지 않고 있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기에,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난 뒤 더욱 공허하게만 보이는 진도체육관의 사진을 보며 진저리 친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생에 세번째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 나는 읍내에 신설된 장례식장에서 그를 추모했다. 믿을 수 없는 죽음이었기에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나와 친구들의 발걸음은 얇게 언 호수의 위를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웠고, 우리들의 자취에는 침묵과 슬픔이 서려 있었다. 마침내 까만 물결이 치는 건물 앞에 당도했고 우리는 서로 모르게 깊은 숨을 내쉬고 나서야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참담한 눈길로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이는 것은 상아색의 대리석 벽이었다. 시린 형광등 불빛이 반사되어 투명하고도 새하얀 빛의 떨림이 눈을 통해 틈입하는 것을 나는 느꼈다. 온몸을 장악하는 듯한 상아색의 벽은 분향소 공간 전체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를 지나는 새까맣고 두꺼운 선. 그것은 마치 생사부의 이름 위에 그어진 붉은 색의 선 같아서, 나는 소름이 돋았다. 주저앉아서 고개를 숙여 얼른 그 벽에서 눈을 떼고 싶었다. 죽은 자의 신음 같은 빛의 파동에 심장이 계속 떨려왔다. 나는 친구들 틈에 껴서 얼른 묵념을 하고선 다신 그 공간에 눈을 주지 않았다. 



공간이라는, 인간을 둘러싼 환경에서 주는 장악력을 나는 그때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직 그곳에 남은 가족들, 밝은 기억만 가지고 견디기엔 너무도 힘들어서 마지막까지 기다리는 그들, 온힘으로 기다리는 그들이 그곳에서 느낄 감정이 어떨지 나는 공간에 관해서만 조금은 알 것 같다. 



……글을 쓰니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늦은 밤까지 거리를 떠돌며 찬바람에 식혀야 했던 슬픔, 서럽게 울던 친구를 품에 안고 도닥거리며 받아주어야 했던 상처, 주저하게 되고 머뭇거리게 되던 떨림을 잊을 수 없다.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더욱 안타까웠던 시간들. 하지만 나는 무덤덤했다. 벌써 두 번의 가까운 죽음을 겪어보았기에, 어떻게 그 상실감을 달래야하는지 방법을 터득했기에, 나는 친구들보다 빨리 그것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잊는 것이었다. 내 방법은 어떻게든 그것에 관한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소진이 정욱이에게 우유를 먹이는 동안, 나는 거실 바닥으로 내려와 소파 다리에 등을 기댄다. 눈을 감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든다. 혼곤한 잠 속에서 방향을 잃는다. 여기가 어딘가, 저건 어떤 아이의 울음소린가. 언제인가. 나는 지금 언제에 와 있는 건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다. 어지럽다. 가슴이 울렁거린다. 어쩌면 이렇게 환한가. 물이 번쩍이는 건지 공기가 번쩍이는 건지 알 수 없다. 다시 열세 살인가. 열세 살의 여름방학인가. 작은아버지를 따라 처음 고깃배를 탔나. 흔들리는 배의 이물에 납작하게 몸을 낮춘 채 나는 겁먹고 있다. 바다 가운데로 나오자, 눈부신 잔멸치 떼가 일제히 배 밑을 헤엄쳐 간다. 빠른 빛이다. 셀 수 없는 빠른 빛이다. 배까지 쓸려 뒤집힐 것 같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난 뒤, 물의 정적이 숨을 틀어막는다. 기포처럼 내 몸이 부서진다. 영원히, 시간이 정지한다. 나는 떤다. 두렵기 때문이다. 너무 아름다운 것도 고통이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못이나 씨앗처럼 몸 안에 박히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평생토록, 끈덕지게 죽지 않고 살아 꿈틀거리리라는 것까지 열세 살의 나는 아직 모른다. 갈망과 절망, 풀리지 않는 긴장으로 내 몸이 들뜨고 지칠 것임을 모른다. 다만 두렵고 모호한 예감을 잠재우기 위해, 두 손을 빳빳이 펴 오목한 가슴을 누르고 있다. 강한 물빛 때문에 거의 눈을 감은 채, 토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침을 삼키고 있다. 부신 눈을 가까스로 부릅뜨자, 입가에 온통 흰 우유를 묻힌 아이가 뒤뚱뒤뚱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무방비 상태의 웃음을 물고 있다. (노랑무늬영원, '노랑무늬영원' 293p)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혹은 할 수 없을 때마다 나는 한강의 이 소설집을 꺼내든다. 소수의 파랗고 붉은 점들의 앞뒤로 비치는 수많은 노란 점의 그림을 나는 망연히 응시하곤 한다. 한강이 소설에서 밝혔듯 이 점들은 해질녘, 산 너머로 이우는 해와 함께 몸 안에서 무언가가 함께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그 시각, 나뭇잎 사이로 조각조각 나뉘는 샛노란 빛을 찍어낸 것이다. 무언가 빠져나간 빈 공간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生을, 광명을 바라보는 것은 나로 하여 애잔한 기분을 갖게 한다. 지금도 지나가버리고 있을,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안타까워서 나는 항상 나무 밑에서 고개를 처들곤 한다.



한강의 이 소설집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가 성숙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고,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글의 가지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소설집의 마지막에 실린 중편소설 '노랑무늬영원'이 특히 그렇다. 처음에 나는 잔멸치 떼가 상징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게는 서로에게 질린 한 부부의 냉소와 그와 대비되는 산에서의 짧고 어색한 만남의 떨림만이 들어올 뿐이었다. 한강이 감각적으로 써낸 것을 나는 오로지 감각으로밖에 읽어내지 못했다. 두번째로는 '영원'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서 글을 읽었다. 단어가 주는 울림에 몸을 맡긴 채, 감정[感]은 스스로 팽창하거나 수축하거나 했다. 이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잔멸치 떼'이다. 내 밑을 훑고지나가는 잔멸치 떼. 셀 수 없이 빠르고 거대한 무리. 순식간에 다리 밑을 스쳐지나는 그것. 그것은 生의 격정 자체이다. 격렬하게 生이 스치고 간 뒤 남는 공허감. 갈망과 절망, 가없는 동굴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공포감. 



生이란 너무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고통이 되는 것이다.



바닥에 떨어뜨린 유리가 깨어지듯 마음 속에서 어떠한 장면이 솟구쳐 오른다. 살아남았으므로 비통한 자들의 눈물,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홀로 누리게 된 고통에 가슴 치는 이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어찌하여 생명은 이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일까.








죽음에 관한 짧은 수필을 쓴 적이 있다. 동아리 신문에 투고하기 위해 밤을 패가며 써낸 수필인데 신문의 편집을 맡은 친구가, 글을 메일로 보낸 다음날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친구의 말로는 자기가 글을 읽으며 크게 감동받은 적이 딱 세 번 있는데 그 중 한번이 바로 내 글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칭찬을 듣고 얼마간 의아해하며 집에 와서 다시 글을 읽어보았다. 새벽에 손이 가는 대로 적었던 글에는 죽음은 곧 진입이며, 죽음으로 인해 우리가 들어가게 되는 곳은 바로 無의 세계라는 약간은 피상적인 문장들이 가득했다. 가슴 깊이 느끼지도 못하면서 용케도 이런 글을 적었구나, 하고 자조하며 마지막 문단을 읽는데 가슴에 무언가가 마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쓴 글임에도 생경했다. 내가 예전에 시를 한 편 읽었는데, 그게 자꾸 떠올라. 뭔데. 상갓집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신발들 있잖아, 그게 죽음이라고. 결국 죽음은 생과 분리된 게 아니라 생과 결부된 것, 더 나아가 생 그 자체인 거라는 말이지. 그도 발걸음을 멈췄다. 호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나를 응시했다. 그건 아닌 거 같다. 죽음이 생이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닌 게 되잖아. 나는 고개를 내려 그와 눈을 맞췄다. …모르겠어.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우리는 서로 피식 웃었다. 나는 내가 이때 무슨 생각을 하며 이 문장을 적어내려갔는가 떠올리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죽음과 생의 결부…… 무엇일까. 내게 이런 글을 쓰게 만든 힘은.



그러나 나는 내가 적은 글이 한낱 고등학생의 중얼거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이제 죽음에 관해 정의하기보다 가슴으로 느끼려 한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내게 그 시초가 된 영화이다. 뇌종양과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남자가 같은 병실을 쓰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둘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공통점 외엔 전혀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절제에 서툴어 난폭하고 거칠기만 한 마틴과 그를 마뜩잖은 눈길로 바라보는 루디. 둘은 서로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병원 주방에서 데킬라를 나눠 마신다. 데킬라 한 병과 소금, 많은 레몬… 그리고 바다. 루디는 자신이 바다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마틴은 그런 루디에게 천국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천국에 관해서 못 들어봤니? 그곳엔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없어. 

……바다의 아름다움과 바다에서 바라본 석양을 얘기할 뿐이야.

물속으로 빠져들이 전에 핏빛으로 변하는 커다란 공.

사람들은 자신이 느꼈던 그 강렬함과 세상을 뒤덮는 바다의 냉기를 이야기하지.

영혼 속의 불길만이 영원한 거야…….



마틴과 루디는 바다를 보기 위해 병원을 탈출한다. 生의 끄트머리, 천국의 문 앞에서 그들은 당돌해진다. 은행을 털기도 하고 주유소에 침입해선 자연스러운 연기로 경찰을 피하기도 하고, 호텔에 숨었다가 차를 훔치고…… 그러다보니 둘은 단지 바다를 보기 위함이었을 뿐이었는데 강도로서 쫓기는 신세가 되어 있다. 둘은 그 와중에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하나하나 달성해나간다. 마틴은 어머니에게 차 한 대를, 루디는 두 여자와의 잠자리를 이뤄내고야 만다.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언덕 앞에 선다. 바람이 부는 갈대밭이 퍼져 있는 낮은 언덕. 그리고 언덕을 넘어 바다가 나오고.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심장을 뒤엎는 것 같다. 장엄하게 펼쳐진 거대한 바다 앞에서 그들은 잠시 멈춘다. 파도를 만드는 바람을 맞으며 둘은 걷는다. 둘은 떨리는 눈으로 바다를 응시한다. 한참을 본다. 눈이 붉어진다.



쓰러진다. 모래 위에 검은 그림자가 쏟아지고, 파도는 친다. 끊임없이.



……결국 生은 바다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生은 데킬라 한 병과 소금, 많은 레몬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하여 내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이 헛됨이 아님을 안다. 生은 바다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것이 위대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찮은 생명은 하나도 없기에 우리는 죽음에 슬퍼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나의 위대한 별이 지는 것이기에, 그 별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것은 두 번 다시 생기지 않을 것이기에. 


간단하지가 않은 것이다.



바다를 보고 싶다.



그러나 마주할 수 있을까. 그 앞에 마틴과 루디처럼 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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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5-18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믿어지지 않는 정말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일들이예요. 4월 16일 오전에 무심코 인터넷 포탈에서 아이들의 소식을 읽고 전원구조,라는 그 표제 기사에 아, 그렇구나, 다행이네, 별일 아니네, 했던 기억이 악몽으로 변했던 시간들. 님은 더더욱 같은 고등학생 친구들이라 많이 아팠을 것 같아요.

조금씩 덜 울고 잊어버리기도 하면서 하지만 또 떠올리면 울분이 치밀어 오르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도 해보고. 가까운 이의 죽음을 두 번씩이나 경험했다니, 소이진님이 이야기하는 죽음은 저보다 더 깊고 아파 보입니다. 저는 영원히 죽음은 잘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시간이 가는 게 여러모로 무서워요.

이진 2014-05-18 19:48   좋아요 0 | URL
별일 아니구나. 전원 구조, 면 다 된거지. 선생님 배가 하나 뒤집어졌다는데 기사나 찾아봐요, 하면서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이용하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럽네요. 저희는 그저 놀랍고 무서웠어요. 저희 학년이 작년에 배를 타고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다녀왔고, 얼마 안 있어 이학년들의 수학여행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죠. 다들 안도하면서도 미안하고 그랬어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상처가 곪아가니까요...

2014-05-18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18 1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2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수꽃다리 2014-05-23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군요!
나에겐 유구무언의 시간.
이진씨 이름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반가운데 말이에요.
한강의 글을 꼭 읽어봐야겠어요.
열심히 거기 있기입니다!
 






여느 때와 같이 인강을 듣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찾아왔다.

고등학교 2학년에 발을 디디고부터는 거의 이런 식이다.

한국지리 인강을 듣고 있는데, 왜인지 집중이 전혀 되지 않는다.

선상지니 범람원이니 하는 개념들이 자꾸 떠돌기만 한다.

사흘 전부터 계속 이래서 공부를 하지 못했다.


……짜증이 많아졌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남들의 말에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쓰러진다.

그렇게나 아끼던 친구들도 가까이하기 꺼려지고 주저하게 된다.

공부에 관련된 개념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머릿속에 침투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고삼이 힘든 이유는 역시 정신적인 면에서 고통스럽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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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니 있다가도 눈물이 흐른다.

코 끝이 찡해오고 가슴이 답답해서 눈물을 닦을 생각을 못한다.

국민들의 슬픔과 애통함이 점차 분노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나 또한 그 단계에 몸을 싣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

 

홀로 남아 아이들을 구하려 힘쓰다 순직한

젊은 여 승무원의 이야기를 듣고

그만 가슴이 무너져 엉엉 울었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을지

얼마나 울고 얼마나 땀흘렸을지 알기에, 그 죽음이 값지다.

대한민국이 멈췄다. 나도, 우리도 모두 멈췄다.

아이들이 이 추운 물속에서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온몸이 떨리고 가슴 껍질이 벗겨지는 듯 저려온다.

나도,

촛불을 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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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다.

이 일을 모니터 화면으로만, 뉴스 앵커의 목소리로만 전달받아 보는 사람의 입장으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답답하고 억울하다. 경주의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건이 기억 저편으로 묻힌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또 일어나서 우리의 마음을 할퀴어댄다. 학교에서도 우리들의 화두는 진도 세월호 침몰 사건이었다. 누군가 배가 좌초되었다며 사백 명이 넘는 사람이 물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했고, 휴대전화를 내지 않은 아이들의 합심으로 사건의 전말이 점점 밝혀지기 시작했다. 지금에서 보면 모조리 거짓이고 소문이었지만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잠시의 뉴스는 우리 모두를 안심시키는 데 충분했다. 그 때문인가 우리들은 반 농담으로 낄낄 웃어대며 사건을 희화하곤 했고 수업을 쉬어가기 위해서 꺼내는 이야기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 일이 이토록 심각했을 줄이야….

나도 작년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그 출발의 설렘과 기쁨, 친구들과 마주하며 웃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많은 학생들, 그들이 배에 발을 디뎠을 때의 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가슴이 저려오는 듯하다. 수학여행 간다고 부모님이 돈 만 원 쥐어주셨을 거고, 소풍 때 못 찍은 사진 수학여행 가서 한없이 찍고 오자고 친구들과 약속했을 얼굴들이 눈 앞을 자꾸만 스쳐지나가서 마음이 영 나아지질 않는다. 다른 일을 손에 잡을 수가 없다. 무사하길 기도하는 것은 애석하게도 이제 늦은 것 같다. 그저 바라는 것은 모두를 찾아서 가족의 곁으로 갈 수 있도록. 서로의 마지막을 기억으로 맞이하지 않기를.

이 혼란 속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나는 너무 걱정스럽다. 그들이 평생 죄책감 속에서 살아가게 될까봐. 얼마나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아플까. 그러지 않았으면. 그래도 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러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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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4-04-17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이 오지 않아요. 스마트폰이 없어서 퇴근하는 내내 뉴스를 못봤거든요. 시장 들렀다 오자마자 뉴스보면서 한시간을 울었어요.
 
바람이 분다, 가라 -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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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세차다. 창문이 으스러질 듯 몸을 흔든다. 귓바퀴를 건드리는 파열음이 거세어지자 나는 몸을 일으켜 창 밖을 내다본다. 아스팔트 도로에 은행잎이 한가득 떨어져 있다. 비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며 차와 사람에 밟혀 뭉개어지며 쓸쓸히 버려져 있다. 창문 틈으로 비치는 형광등 불빛에 의지해 겨우 숨을 이어가는 은행잎을 측은히 여기며 나는 팔짱을 낀다. 저항하듯 바람은 더욱 거칠어진다. 나는 괜히 소음을 뿜어내는 제습기를 발로 툭툭 건드린다.






  의자에 앉아 몸을 비튼다. 새우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 눈을 감는다. 말러의 2번 교향곡을 재생시킨다. 숨죽인 밤, 너울 치듯 몰아오는 어둠의 물결 틈을 '부활'로 파고드는 음악. 쏟아지는 음표의 무리에 나는 이미 무너진 몸을 가누지 못한다. 산산히 조각난 몸. 활이 현에 몸을 비빌 때마다 떨리는 음, 심장을 베는 듯한 소름 끼치는 비명에 나는 진저리친다. 나는 왜 매일 실패하는가. 나는 왜 패전한 군대처럼 무릎을 꿇는가.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의 끝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회색 거인의 거대한 몸뚱어리는 과연 몸을 일으킬 수 있을까. 걸어갈 수 있을까. 담장위를 걷는 소년같이 조심스레 무거운 발을 내디딜 수 있을까. 창문 틈으로 바람이 소리를 지른다. 넌 안 돼. 나의 억센 팔로 너의 몸을 옭아매었어. 덩굴 줄기가 잘리지 않는 한 너는 내 족쇄를 벗어날 수 없어.


  장중한 음의 파도에 사람의 목소리가 새어들기 시작하면 나는 끝내 몸을 쓰러뜨린다. 고통의 시작이자 절정, 그러나 부활의 징조인 그것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떨림으로 울려온다. 세상을 초월한 것처럼 들리는 목소리. 그때의 감동-팀파니와 북을 마구 때리고 온갖 금관악기를 폐가 터지도록 불어댄다 해도 결국 표현하지 못할 어떠한 폭발을 나는 글로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여리면서도 폭발적인 역설과 환희로 범벅된 말러의 음악은 한강의 손을 거쳐 한 편의 장편소설로 변화하였다. 말러의 교향곡이 악장별로 나뉘어 글에 녹아든, 음악 그 자체의 소설. 소설의 짜임과 철근 같은 이야기를 제쳐두고 작곡하듯 단어와 문장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긴 신체소설. 오로지 감각으로 작문에 임하여 감정을 제출한, 결기와 치기가 단단히 뭉쳐진 소설.









그 무렵, 때로 늦은 시간에 인주는 나에게 전화했다.

첫 마디는 언제나 정희야,였다.


(…)


정희야, 자니?

얘기할 게 있어서 전화했어.

나쁜 일이라고도 좋은 일이라고도 할 수 없어.

민서가 왔어.

어제. 짐 다 싸서 데려왔어.



정희야.

…민서 못 만나고 지낸 몇 달 동안, 다 끝났다고 생각했어. 남김없이 파괴됐다고, 완전하게 죽었다고 느낀 순간도 있었어. 그때 내가 정말로 죽었던 거라면,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아니, 죽기 전의 어딘가로 돌아갈 수는 없어. 되돌아가는 길 따위는 없어. 난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다시 시작하는 게 가능하다면… 정말 가능하다면 말이야. 뭔가를 되살리는 게 아니라, 복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부서야 하는 것 같아. 아니, 그건 달라.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부서야 하는 거야. 누군가가 지금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말해. 지금까지 내가 그렸던 그림들… 살아내려고, 어떻게든 존재해내려고 필사적으로 그렸던 모든 것들이, 다 가짜라고. 


아니, 아무것도 안 무서워.

아무것도 후회 안 해.

지금부터 시작이야.


P. 322-4









  교향곡이 절정에 다다르면 모두는 땀에 젖는다. 마침내 도래한 부활의 날. 구원과 축복의 오라가 사람들을 감싸고, 연하고 투명한 희망의 막이 생성되는 시간. 새 시간. 세계가 바뀌고 사물이 바뀌는 천지. 환상의 아우성 속에 번지는 인주의 얼굴을 생각한다. 밤늦게 미시령을 찾아가 마녀처럼 흩날리는 눈발을 보았던 인주. 그녀는 낭떠러지에 떨어져 의식을 잃었고 종내 죽었다. 자살로 결론짓는 다수의 틈에서 홀로 반기를 드는 여인, 정희. 인주의 유일한 친구를 자처하며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 인주와 각별한 사이였던 것으로 보이는 남자 강석원과 맞서게 된다. 강석원은 인주의 유작전을 준비하는 동시에 인주의 그림들을 실은 전기를 작성했다. 핵심 내용은 인주가 자살했다는 것. 그에 대항해 정희는 자신만의 인주의 전기를 쓰려고 한다. 자신의 인주에 관한 추억과 기억들을 상기한다. 성인이 된 인주가 즐겨찾았던 사람들을 하나둘씩 만나며 인주에 대해 새로운 것을 환기한다. 정희는 결국 "나는 너를 몰랐다, 네가 나를 몰랐던 것보다 더.(335)"라는 고통스러운 고백을 내뱉는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인주는 결코 자살할 인물이 아니라는 것. 






  말도 안 되지. 서(인주) 선생이 왜 자살을 해. 당연히 사고지. 서 선생을 눈곱만큼이라도 아는 사람은 그런 말 못 해. 얼마나 아등바등 살았어. 얼마나 몸부림을 쳐댔어. 살려고 그렇게 몸부림을 쳤지, 죽으려고 그랬겠어요? 애는 또 얼마나 어리고. 그 애한테 얼마나 끔찍했어? 그렇게 정 많은 사람은 자살 못 해. 여기 배우는 애들한테도 정성이었어요. 안 해도 될 일들을 다 껴안고 골병이 들었지. 다들 그렇게(인주가 자살했다고) 생각한다구? 데려와봐요. 평론가? 교수? 미술판 사람들? 웃기고들 있군. 미안해요, 내가 요즘 마음이 이래… 이 빌어먹을 눈물이. (208)






  인주에게는 혈우병을 앓는 외삼촌이 있었다.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때로는 자신이 여자인지도 모른다'고 털어놓은 그는 피에 대해 경외감을 가지고 있다. 경외감은 그를 매사에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자신이 아닌 세상을 보호하려는듯 세심하게, 소심하게 움직이는 남자. 그를 인주와 정희는 사랑했다. 인주에게 그는 부모님 대신 자신을 키워준 보호자였고 정희에게 그는 사춘기의 두근거리는 감정을 해소할 이성이었다. 인주는 외삼촌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활기차고 쾌활하고 당당하게 살아갔고 운동신경이 좋은 강점을 살려 소질을 발하고 있었다. 정희는 심오한 철학을 지닌 미술가로서의 외삼촌에게 우주와 삼라만상에 대해 들으며 미술을 시작했다. 인주는 그림을 싫어했다. 정희와 외삼촌이 좁은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을 때면 홀로 마당에서 줄넘기를 넘거나 마루에 누워 낮잠을 자곤 했다. 그들은 늦은 저녁 함께 산책을 나가기도 했으며 감자를 삶아먹기도 했다. 그러다 그가 죽었다. 뇌에 피가 고여 작업실에 쓰러진 채로 발견되었다. 인주는 그날로 두문불출하기 시작했다. 장대높이뛰기를 하다 절게 된 다리를 계속해서 썩혀두며 한 발짝도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수 년 동안이나.


  인주는 그 사이 변하였다. 조용해졌고 여려졌다. 살은 쪽 말라 가죽만 보일 지경이었고, 가장 큰 변화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주의 그림은 어두웠다. 인간의 심연의 고통만을 꺼내 연필로, 펜으로 옮겼다고 표현할 수 있을 그림이었다. 인주가 수 년 간 감내해오고 묵혀두고 곪도록 두었던 상처의 둑 터짐. 고뇌 고통 고독 쓸쓸함 외로움 비애 비통, 그러나 신성함조차 느껴지는 그림. 









<김명숙>










  부활의 기쁨은 오래간다. 환희의 송가, 감동에 도취한 음악은 쉼 없이 흐른다. 인주의 마지막. 구급차 안에서의 긴박한 시간. 인공호흡기를 착용한 인주는 갑자기 숨을 내쉰다. 들숨과 날숨이 충돌한다. Breath Fighting. 삶에 대한 열망. 살고 싶다는 의지. 삶을 향한 투쟁 정신으로 인주와 정희는 이어진다. 살고 싶어. 살고 싶어. 죽고 싶지 않아. 살아야만 해. 살아 내야만 해. 삶의 아픔과 인간의 죄악을 낱낱이 폭로한 전작들에 대한 답변-살아 내야 한다. 갈대처럼 충분히 흔들리며, 불어오는 바람을 두 팔로 받아내며, 넓은 벌판에 발을 뿌리박고 견뎌내야 한다. 이 삶을 사랑해야 한다.


  구원의 시간이 끝나고 눈앞에 닥친 세계. 적응해 나가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통증은 모든 곳에 있다. 격렬하다.' 처음의 빛은 광명으로 인주를 감싼다. 그러나 그녀에게 처음의 빛은 너무 밝아 고통스럽다. 인주는 자신의 삶이 조금은 어두워지기를 바랐다. 탁한 음영 속에서 세계를 이해하길, 자기를 이해할 수 있길 소망했다. 인주는 거칠고 투박한 선의 그림을 버리고 외삼촌의 그림을 따라간다. 오로지 종이와 물, 먹으로만 이루어진 그림. 마치 우주의 탄생을 표현한 듯한 먹그림. 죽음와 삶의 경계를 종이 안에 담아내며 인주는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느낀 것일까. 죽기 일 년 전부터 그녀는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한다. 일 년 동안의 공백. 정희는 아득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무거운 두 발을 차례로 내딛는다. 회색 거인의 무거운 발. 거대한 두 다리. 걸어갈 수 있을까. 정희는 걸을 수 있었다.


  얇은 유리막 사이로 터져나오는 핏물. 닥쳐오는 죽음의 경계선. 격정의 폭풍이 몰아친다. 한 손엔 대항을, 한 손엔 저항을 들고 투쟁하는 인물들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신성한 격렬함. 끈질기게 삶을 이어나가는,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인물들을 한 손으로 가볍게 쥐어본다. 터지기 직전까지.


  심장 한 구석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듯 흐르는 감각. 각혈의 단어, 문장, 문단, 책.


  말러의 교향곡이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퍼진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두 번 부딪친다. 다시 앉는다. 정면을 응시한다. 두 팔을 한껏 옆으로 뻗어본다. 눈을 감고 느낀다. 어느새 근처에 펑퍼짐하게 팽배한 고통과 상처, 이 아픔들을. 달의 뒷면에 서려 있는 슬픔을.





  살아내야 한다.








  이 년 가까이 스테로이드 제제로 치료를 받았지. 부작용으로 온몸이 백 킬로그램 가까이 부풀어 올랐어. 견디기 어려웠어. 그렇게 육중한 몸으로, 조그만 상처도 내지 않으려고 절절매면서, 어린 누나가 안간힘을 다해 벌어오는 돈으로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는 게. 

  그러던 어느 날 밤 꿈을 꿨어. 꿈에 보니 난 이미 죽어 있더구나. 얼마나 홀가분했는지 몰라. 햇볕을 받으면서 겅중겅중 개울가를 뛰어갔지. 시냇물을 들여다봤더니 바닥이 투명하게 보일 만큼 맑은데, 돌들이 보였어. 눈동자처럼 말갛게 씻긴…… 동그란 조약돌들이었어. 그중에서 파란 빛이 도는 돌을 주우려고 손을 뻗었지.

  그때 갑자기 안 거야. 그걸 주우려면 살아야 한다는 걸.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걸.


  ……그게 무서워서, 꿈속에서 나는 조금 울었던 것 같아.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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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11-25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강만 읽고 있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 것 같네요. 저번 글에 얼핏 그런 말을 본 것 같은데..ㅎㅎ

이진 2013-11-25 23:45   좋아요 0 | URL
이얍, 가연님 빠르네요. 한강의 장편소설을 모조리 접수해보려구요. 지금은 <희랍어 시간> 읽고 있어요. <검은 사슴>만 읽으면 장편은 완전 정복!

꼬마요정 2013-11-26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러 2번 부활 완전 좋아해요.. 그리고.. 소이진님 표현에 전율을 느낍니다. 심장을 베는듯한 소름 끼치는 비명.. 아.. 그런거였어요. 그리고 절정에서 쏟아져내리는 환희.. 다락방님에 이어 소이지님도 조만간 작가의 반열에 올라서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ㅎㅎ(저 없는 새 벌써 책 내신 건 아니죠?) 이 책 동생이 갖고 있던데 빌려봐야겠어요~~^^

이진 2013-11-26 22:12   좋아요 0 | URL
꼬요님(꼬요 좋은걸요...? ㅎㅎ)
말러 2번 1악장이 저는 정말 좋아요. 전율까지야... 에이
다락방님에 비하면 저는 아직 감성팔이죠. 아니다, 감성팔이 정도도 못 돼요.
고등학생이 무슨 책이에요. 하긴 제 아는 동학년 중에 책을 낸 친구가 있다네요. 부러워요.

이 책은 꼭 읽어보셔야 해요. 후유증은 책임 못 져요. 힘들거예요, 무척.

2013-11-26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1-26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3-11-26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잘 지내시죠 ㅎㅎㅎ
열정적으로 등장하셔서 제 서제에 방문 해 주셨던 걸 잊지 않고 있어요 ㅎ
요즘도 공부 잘하고 계시죠?
전 늦은 나이에 대학생들과 어울려 도서관에 있답니다 ㅋ
물론 복장도 캐쥬얼하게 입고 이 학생들을 속이고 있죠 ㅎ

이진 2013-11-26 22:10   좋아요 0 | URL
으왑으왑 루쉰님!!
저 루쉰님 정말 좋아해요. 알라딘에서 왠지 애착을 가진 사람이 몇 있는데, 루쉰님도 한 분.
요즘 공부 너무 열심히해서 탈이에요. 근데 성적은 그닥이에요. 저희 학교 문과애들이 다 나눠먹는 지경이라, 저도 일단 젓가락으로 반찬 몇 개 집어들고 있긴 한데... 히히
루쉰님 얼마나 동안이면 학생들을 다 속여요. ㅋ.ㅋ

Shining 2013-11-26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가 처음으로 읽었던 한강 소설이에요. 아무것도 모르고 동네 마실 나가듯 주머니에 손 넣고 놀이터에 나갔는데 웬 단단한 주먹과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고수에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하면 표현이 좀 저렴한가요;; 낯설기도 했고 충격이기도 했고 아프기도 했던 기억이네요. 가끔, 그러면 안되지만 이 분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질때가 있어요. 절망의 단애를 훑는 그 손길이 참.. 이러한 글을 쓰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는 어떨까 하는 천박한 호기심 같은거요. 겨울이네요, 한강을 읽기에도 말러를 듣기에도 좋은 계절, 같아요. 감기 조심해요 :)

2013-11-28 0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3-12-1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한강의 작품에 집중(?)하는 모습이 정진(精進)을 생각하게 합니다...

jo 2013-12-30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과정 속 어려움을 한번 뛰어 넘어야 하는데 6학년때 앵무새 죽이기를 읽던 실력이나 지금 책을 읽는 실력이나 똑같아요.
이해가 안되도 계속 읽으면 재미를 붙일 거라는데 아직 너무 힘들어서 책에 손을 못 대고 있어요.
하는 것도 없는데 시간없다고 책도 못읽는 저를 반성 합니다!!!!!!
근데 소이진 님은 고딩인데도 열독하시네여.

jo 2013-12-30 11:50   좋아요 0 | URL
아 그런데 동영상 첨무는 어떻게 하나요? 동영상 링크를 입력해도 액박밖에 안 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