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 버스에 가장 오래 앉은 사람은


가장 바깥에 산다 그곳은 춥다 "     -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1.






2.


버스에 앉아 창가를 물끄러미 내다본다. 스치듯 흐트러지는 풍경. 바삐 걷는 사람들, 올곧게 솟은 가로수, 밀도 있게 들어선 건물들, 그리고 공기와 생기와 삶들, 모든 곳에 녹아 있는 각자의 이야기. 단지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속삭이는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아무도 없는 버스 안에서 도로를 따라 덜컹거리는 좌석에 몸을 묻고 어디든 가본 고 싶을 때가 있다. 저마다의 풍경이 전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눈은 감은 채 세상 위로 부유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나는 외롭다. 그런 시간은 내게 있어 가장 추운 시간이고 몸을 움직이기 힘든 시간이다.


문득 그런 순간들은 찾아온다. 밥을 먹다가, 교실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친구들과 거리를 걷다가, 도서관에서 컴퓨터를 하다가, 친구와 메신저를 주고받다가, 친구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럿이 모여서 떠들고 있는 친구들을 보다가, 조용히 앉아 자습하는 친구들을 보다가, 창 밖으로 운동장을 지켜보다가, 학교 앞 화단에서 자라고 있는 야자수를 보다가 나는 울적해지고 외로워진다. 나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울해진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내 울증의 원인을 알고 있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아니 원인을 꺼내게 된다면 그것을 더 명확히 직면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나는 더 우울해질 것이 확실하므로 나는 그것을 속에 꽁꽁 싸매둔다.


관계, 라는 것이 나는 참 두렵다. 그리고 아직 잘 모르겠다. 


간, 쓸개도 빼주고 평생 붙어다닐 것만 같았던 친구와 소원해졌다. 분명 내 문제도 있었고 친구에게도 잘못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여만 갔고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친구는 내게 절교 통보를 해왔다. 우리는 본래 부산으로 진학해서 함께 자취하자는 계획을 짜놨었는데 그걸 파기하자는 거였다. 사흘 정도 연락이 없다가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선언한 것이었기 때문에 전화를 끊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맥없이 앉아 있었다. 정신이 들고 친구의 말이 절교 선언임을 깨닫고 난 뒤에 나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홀가분, 시원함, 섭섭함, 서운함, 허함, 슬픔, 외로움, ……. 아니다. 이렇게 단어로 형용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나는 다소 피로했고 감긴 눈을 뜨기 힘들었다. 


그 일에 대처하지 못한 채 사흘이 지난 저녁이었다. 친구는 술을 잔뜩 마시고 우리집에 쳐들어왔다. 한창 특별새벽집회에 반주를 나가느라 잠을 통 자지 못해 초저녁부터 잠을 보충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잠도 깨지 못하고 그를 맞아야 했다. 친구는 꽤 힘들어 보였는데 대학 때문인지 아니면 나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나는 그를 제대로 반기지 못하고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친구는 내 옆에 눕더니 내 팔을 잡아 당겨 자기를 감쌌다. 친구는 나를 정말 좋아하는 듯했고 나도 친구가 좋았다. 내게 있어 유일하다 싶은 친구였다. 


화해한 듯 했지만 내 육체는 그를 이미 차단해버린 것 같았다. 그가 불편했고 미소조차 지어지지 않았다. 눈 근육은 마비된 것처럼 경직되었고 친구의 전화도 반갑지가 않았다. 내 반응이 이토록 미적지근하자 친구도 점점 내게서 관심을 거두어갔다. 마침내는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는 더이상 서로에게 말을 걸지도 눈길을 주지도 않게 되었다. 내가 자초한 일인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다. 나 혼자만의 착각인 것만 같아 불안하다. 하지만 더이상 예전처럼 마음을 터놓을 수 없다는 걸 내가 느끼고 있고 알고 있다. 시간이 더 흐르지 않는 이상 나는 전처럼 친구를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몇 안 되는 내가 나에 대해 파악하고 있는 일이다.





3.


내가 문득 외로워지는 것은 그 때문인가.


요 며칠은 친하게 지내는 여자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부산에서 면접보는 친구를 따라가서 이틀 동안 놀기도 하고 피자도 먹고 치킨도 먹고 스파게티도 먹고 영화도 보고 즐겁게 놀았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고 집을 돌아왔을 때 나는 오래 멍한 상태에 머무른다. 내가 원하는 관계가 이것인가. 물론 좋다.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다. 하지만 관계적인 측면에 보았을 때 나는 현재 얼마나 위태로운 줄 위에 서 있는 것인지. 의지할 곳도 기댈 곳도 없는 외줄 위에서 바람 부는 대로 휩쓸리고만 있는 것 같다. 심장에 굳게 박혀 있던 기둥이 한순간에 빠져버린 듯, 허하기만 하고 추운 느낌. 





4.


그래서 더 위축된다.


스스로 작아지려 하고 있다.





5.




안나 윈투어의 헌정작이라고도 할 만한 '셉템버 이슈'를 어제 봤다.


미국 보그지의 편집장으로서 현 패션계의 정점에 서 있는 여자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거물 안나 윈투어 휘하로 보그 9월호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안나 윈투어의 말 한 마디에 패션계의 흐름이 좌지우지 되고 세계 4대 컬렉션의 순서가 바뀌며 디자이너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은 물론 마크 제이콥스를 발굴해낸 여인이라고 하니 그 위상이 얼마나 높은지는 짐작할 만하다.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가 유쾌한 연기를 펼쳐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모티프를 따온 여인이라고도 하니 어떤 여인일까 정말 궁금했다.


그녀는 냉철했지 냉정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를 나긋했고 웃음도 많았다. 메릴 스트립의 연기만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아주 차갑고 모진 얼음 마녀를 떠올렸지만 그녀는 오히려 패션계에 오래 근속한 일인자 혹은 우두머리라고 불릴만 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굉장히 뛰어나고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매끄럽다. 그녀가 냉철한 것은 오직 그녀의 잡지를 편집할 때 뿐. 잡지에 오를 사진을 고를 때면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스타일리스트인 그레이스의 사진마저도 빼버리는 결단력을 가지고 있다.


치열하고도 체계적인 그녀의 삶은 뭉클하게 다가왔다. 


무언가에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것, 어떤 분야에서 최고로서 군림한다는 것, 또 그 자리에 걸맞은 능력을 가지고 지휘한다는 것 모두가 부러웠다.





6.


영화를 봐야겠다.


한바탕 울고 속을 게워내야겠다. 아니다. 슬픈 영화는 보지 말아야지.


드래곤 길들이기를 봐야겠다.





7.









"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     -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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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3 0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3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3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2-03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4-12-04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오랜만이예요...
여전히 글이 따스하고 달콤하고 때로는 퇴폐적인 우울감이 들기도 해요, 개인적인 평가 미안해요. ^^

사람과의 관계, 그 마음 참 어려워요.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더라구요, 내게 얼마나 절실한가의 문제인 것 같아요.
늘... 사람이 제일 어려워요. 그러게요. 그리고 저도 마지막처럼 열정을 다해 살고 싶다고 꿈을 꾸네요.

고등학생 조카같았는데, 이제 성인이 되는군요..... ^^
 






남해는 정말이지 알바할 데가 없다.

웬일로 알바천국에 편의점 야간 알바를 구한다기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 전화는 처음인지라 한 시간 가량 고민을 하다 건 전화였다.

최저임금은 못 받지만 점장님은 좋은 분이라는 소리를 듣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오래 전화를 받지 않기에 끊으려던 찰나 수화기 건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편의점 점장인 듯한 남자는 다짜고짜 나이를 물었다.

열 아홉에 고삼 끝난 남해고 학생이라고 하니 십 초 정도 흠-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더니 힘들겠다면서 전화를 끊으셨다.

아 나는 당황스럽고 마음이 편치가 않다.

96년 생은 쓰지 않는다는 글을 많이 봤지만 실제로도 그렇다니.

친구랑 알바자리나 구하러 돌아다녀야 겠다.

팔십 만원이 필요한데 오만원밖에 없다니.

일단은 잠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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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마지막 날이었다.

나의 계획에 도서 구매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도서정가제 마지막 날, 모든 인터넷 서점이 마비되었다는 기사에

나의 청개구리 기질이 슬그머니 발동하기 시작했다.

알라딘에 들어오니 어이쿠, 로그인 자체가 되질 않는다.

결국 세 시간 가량을 새로고침하고 재접속하는 수고를 반복해 책을 주문했다.

7권에 십 만 원 정도. 이렇게보니 책 값이 비싸긴 비싸다.

왜 이런 정책을 만들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모르겠다.


대학이 확정되었어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놀러가야 하는데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지도 막막하고,

돈을 벌 만한 일자리도 쉽게 구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벌써 서울에 일본까지 여행 계획을 잡아놓은지라 돈을 안 벌 수도 없다.

날이 갈수록 놀러가자는 사람은 많고 놀러는 가고 싶고 돈은 없고.

아, 생각해보면 놀 생각에 걱정이 많다.

이것도 참 복에 겨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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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11-25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복에 겹다니 너다운 생각이구만. 부럽다, 소이진.^^

2014-11-25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만 하다 막상 돈을 벌려고 하면 굉장히 막막하져... 이진님 화이팅.
:)

2014-11-26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6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7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jo 2014-11-27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전 입시준비가 아직도 안끝났답니다.(다행이에요 ㅎㅎ)
입시가 끝나면 전 고등관문에 들어서게 됩니다. 응원좀요 막막해요

2014-12-01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 초에 13년간 부임하신 목사님께서 도시로 나가시고 도시에서 젊은 목사님이 새로 오셨다. 젊다보니 무척 열정적이고 활달하신 분이라 기존에 뿌리 박혀 있던 관습들을 하나하나 바꿔나가는 중이다. 오늘은 본래라면 교회 안에서 조촐하게 잔치를 열고 오손도손 추수감사주일을 지냈을 텐데, 새생명축제라는 이름을 내걸고 두 달 동안 온힘을 쏟은 예배를 드렸다. 전 교인이 예배당을 가득 채우는 것을 목표로 기도하고 전도를 다녔다. 목사님께서는 어젯밤까지도 걱정을 하셨는데 다행히 자리는 사람들로 꽉 찼고 목사님의 얼굴도 환했다. 


오늘 찬양대는 조금 특별했다. 바이올린을 전공하신 소프라노 대표주자 집사님이 바이올린을, 피아노를 전공하신 사모님께서 플룻을, 또 사모님의 아는 지인이자 오늘 교회를 처음 나왔다고 하는 중학교 2학년의 첼리스트가 첼로를 함께 연주했다. 참으로 보잘것없는 찬양대인데 오케스트라 덕분에 근사한 연주가 되었다. 다들 전공자였기 때문에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나였다. 나는 사모님께 어떻게 비전공자가 전공자와 협연할 수 있겠냐며 투덜거렸고 사모님은 처음에 받아주시다가 나중에는 덩달아 짜증을 내셨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고. 게다가 오늘은 추수감사제를 맞아 음악제까지 진행한 터라 나는 성가곡과 음악제에서 연주할 피아노곡 두 곡을 완벽히 연습해놓아야 했다. 심혈을 기울인 성가곡을 그럴 듯하게 연주해서 일단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음악제는 실패였다. 그래도 다들 좋아해주시고 비싼 연주 들었다면서 띄워주시기에 그래도 끝까지 웃을 수는 있었다.


첼로를 연주한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알고보니 내 친구의 동생이었다. 어쩐지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깜짝 놀랐다. 굉장히 예의가 바르고 수더분한 아이라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첼로 소리가 무척 매혹적이었기에 말을 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 2 치고는 몸도 크고 목소리도 변성기를 거친 것처럼 들려서 고등학교 1학년인 동생과 대화하는 느낌을 받아서 초면이지만 편하게 대했다. 오후에 했던 음악제 때는 서로 연주하기 전에 눈빛으로 격려하는 정도까지 친해졌다. 새로운 만남을 가지는 것은 즐겁다. 그럴 때면 헤어지는 것은 곤욕이다. 


이전에 부임하셨던 목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목사님께서 수능 날 전화를 하지 않으셨기에 내심 서운해하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어른의 전화를 기다리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내가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라고 뜨길래 놀란 가슴에 교회 장로님께 연락을 드려 바뀐 번호를 받았다. 목사님은 여전하셨다. 전보다 웃음이 많아지신 듯했고 다행히 전임하신 교회가 썩 괜찮은 모양이었다. 오래전 목사님께서 동국대만은 가면 안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꾸중들을 것을 각오하고 한 전화였는데 당황스러울 정도로 반갑게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셨다. 기쁘고 반가웠다. 방학을 맞으면 중고등부 학생들 모두 데리고 한 번 찾아뵙는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만남은 지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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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4-11-16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근사한 연주였겠네요. 소이진님, 피아노 치는 모습도 보고 싶군요.
전공자라고 다 잘하는 건 아니구요. 비전공자도 전공자만큼 잘 할 수 있어요. 나두 전공자는 아니지만, 피아노를 끌어안고... ㅋㅎㅎ
먼저 앉으면 내 자리랍니다~~~~
전화 잘 했어요, 소이진님*^^*

이진 2014-11-17 18:37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____^
저는 사실 피아노 잘 못쳐요. 시골이다보니 반주할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고 사모님께서 하실 순 없고 그나마 손을 놀릴 줄 아는 제가 맡고 있죠.
다행히 다들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하는데 내년엔 제가 남해를 떠나니까! ㅠ.ㅠ
감사해요, 전화하고 나니까 기뻤어요.

다크아이즈 2014-11-16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진님의 착한 심성이 그대로 드러나네요.
피아노 치는 소설가 또는 시인을 상상하게 되네요.
이진님의 현재도 매혹적이긴 하지만
이진님의 미래를 기대하고 상상하는 제 맘이 곧 피아노 선율이랍니다~~

이진 2014-11-17 18:38   좋아요 0 | URL
팜님, 저는 나중에 그런대로 살 만하다 싶으면 피아노 제대로 배우려구요.
아주 매혹적인 곡으로다가 쳐보려구요.
팜님의 댓글을 받아보는 제 맘이 곧 슈베르트입니다!

2014-11-17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7 1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viana 2014-11-2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시합격 추카해요.ㅎㅎ
이제 서울로 오겠네요.
홍대앞으로 오면 점심살게요.^^

이진 2014-11-25 17:20   좋아요 0 | URL
앗 XD
 




  0.


" 죽지 마.


  죽지 말아요. "     - 한강, 소년이 온다










 1.


  이맘때면 늘 들려오는 소식이 있었다. 일반 학생의 신분으로서 수능시험이 끝나고 성적을 비관하며 죽기를 택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나는 참 먹먹하고 답답했다. 의아한 기분조차 들었다. 대체 무엇이 아직 피어나지도 못한 꽃들을 스스로 낙화하게 만든단 말인가. 어떤 비참한 감정이 그들을 휩싸고 그들의 꽃줄기를 흔들었을까. 올해도 어김없이 들려왔다. 낙화의 아픔. 그것은 두려운 마음으로 예감했던 시일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수능 하루 전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17층에서 몸을 내던진 것. 친구들이 마침표를 찍으러 간 사이 그는 내세의 구불거리는 길을 홀로 걸어가고 있었다.


  세상이 늘 구름 위만 같았기에 통통 튀어다녔던 내가 어느새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명패를 가슴에 달고 치열한 경쟁 하에서 중간, 기말고사를 치르고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것이 천형인 것만 같았던 자기소개서를 몇 장 써내고 매 순간이 걱정과 염려, 불안과 두려움으로 그득했던 수시 철을 보내고 19년 한평생의 정점이자 종점이라고 감히 칭할 수 있는 수능을 끝내고 나니 그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지금 나의 기분이 어떠냐 하면 기쁘지도 즐겁지도 그렇다고 슬프지도 비관적이지도 않다. 마지막 과목인 사회탐구를 마치자마자 사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다른 차원으로 끌려온 듯 감정도 생각도 없다. 영화 '루시'에서 루시의 뇌 사용량이 극치에 달했을 때 경험했던 그토록 하얀 無의 세계. 나는 無를 생각하고 無를 살아간다는 느낌이다. 이것을 허탈이나 허무 등의 단어로 대치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수능 시험에 사활을 거는 수험생이 아니었다. 이미 수시로 대학에 합격한 상태였고 다른 대학의 최저학력기준을 맞추어도 가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에 수능은 내게 인생의 한 번뿐인 경험 이상은 아니었다. 수능 하루 전이었다. 수능 준비로 점심만 먹고 전교생 하교 조치가 내려졌고 나와 한 친구는 하굣길에 함께 했다. 그는 나의 수십 배로 열심히 공부한 친구였다. 그러나 수시에서 그가 원하는 대학교에 합격하지 못했고 남은 대학의 최저와 정시를 위해 수능 시험을 잘 쳐야 했다. 그러니 그때의 시간들은 그에게 그야말로 1분이 1초인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볼이 음푹 패이고 머리가 잔뜩 흐트러져 그의 모습은 초췌했다. 감기에 걸릴까봐 목욕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는 미안함을 느꼈고 친구도 그것을 느꼈는지 내게 장난을 치기도 했다. 친구는 내게 너는 이미 대학생인데 수능시험을 치러 올 것이냐고 물었고 나는 네 밑에 깔아주기 위해서라도 간다고 말했다. 친구의 집 앞에서 우리는 헤어졌고 다행히 친구는 수능 시험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


  어떤 면에서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세상도 잔인하다.





  2.


  나는 사람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험생이든 어린아이든 한창때의 사람이든 하나의 인생이 끝맺어진다는 것은 빛이 없게만 느껴진다. 전혜린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나는 특히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녀 하나의 죽음으로 그녀의 남아 있던 삶이 빛을 잃었고 그녀 곁에 있던 사람들이 빛을 잃었고 그녀가 살았던 곳과 다녔던 곳이 빛을 잃었다. 그녀의 존재가 있음으로써 가득하였던 공간과 시간 들은 이제는 텅 빈 지하처럼 공허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학생은 정치에 극히 흥미를 갖고 있다. 아데나워(지금은 은퇴했으나)의 욕설이 시작되면 끝이 없었다. '반항적'이라는 전통이 그대로 지켜져 내려오고 있는 그들은 시민적 도덕이나 소시민 근성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매우 반항적이었다. 핵무기 도입이 한참 신문에서 말썽거리가 되고 있을 때 그것에 대한 반대 데모 행진에 뮌헨 대학생이 거의 전원 참가했었고 에리히 케스트너가 '후버 교수 광장'에서 핵무기 반대 연설을 했을 때는 경관도 그의 경구와 아이러니에 넘친 멋있는 화술에 빙그레 웃음짓고 있었다. 

  온갖 물질의 결핍과 가난과 노동, 식사 부족, 수면 부족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그 하늘을 찌를 듯한 패기, 오만한 젊음, 순수한 정신, 촌음을 아끼고 인식에 바쳐지는 정열과 성의, 조금도 외계나 속물과 타협하려고 들지 않는 자기 유지의 노력, 정말로 이러한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팽팽한 세계가 뮌헨 대학생의 세계인 것 같았다. 

  반항을 위한 반항이 아니라 옳은 것을 끝까지 옳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실존적 성질에서 우러나온 반항이고, 자기를 외계의 비속화 작용으로부터 막으려는 그럼으로써 정신의 자유를 지키려는 데서 우러나온 빈곤의 감수요, 초연이며 자기 극복이다. (p 74)


  전혜린의 수필을 오래 읽으면서 나는 그녀의 삶에 대해 충분히 곱씹어보았다. 나는 한비야를 아주 좋아한다. 그녀의 서적을 모조리 찾아 읽고 그녀가 출연한 TV 프로그램도 하나하나 찾아보고 그녀의 인생관을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그녀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녀의 당당하고 활달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사랑한다. 나는 전혜린에게서 한비야가 품고 있는 야심과 에너지를 읽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두 사람 모두 한국을 떠난 사람들이다. 이 좁은 땅, 편협한 공간에서 떠나 드넓은 공간으로 나아간 사람이다. 전혜린이 거듭 언급했듯 '떠나기 위해서 떠나는' 사람들이다.


  그녀가 전달해주는 슈바빙 사람들의 이야기와 뮌헨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활자로 전해 듣고 있노라면 다리와 엉덩이가 근질거려 죽을 지경이다. 슈바빙의 사람들은 가진 것 없이 행복하고 평화로우면서도 예술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고 뮌헨의 대학생들은 가진 것 없이 정의롭고 패기롭고 씩씩하고 당당한 사람들이다. 그녀가 보았던 모든 것과 모든 이들을 나도 동일하게 경험해보고 싶었다. 슈바빙의 허름한 술집에 앉아 씁쓸한 맥주를 마시면서 수염이 길게 자란 노인과 문학을 논하고 뮌헨의 대학로를 걸으면서 학생들의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젊음과 패기, 뜨거움을 피부로 느끼고 싶었다. 그들과 전혜린은 삶을 즐기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제 2장의 수필에서 이렇게 말한다. " 젊음과 아름다운 풍경과 사랑만 있으면 사실 약간의 공복은 큰 문제가 아닌 것이지 않는가? " 아무도 보지 않을 그림과 아무도 읽지 않을 시를 쓰며 예술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실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그녀 또한 행복하지 않았을까.


  전혜린은 사랑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마지막 편지 - 장 아제베도에게'는 마치 혈서 같다. 그녀는 '너를 단념하는 것보다도 죽음을 택하겠'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수필을 읽으면 한때 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이 난다. 짝사랑이었으니 매우 고통스러웠고 때문에 화인처럼 심장 언저리에 찍혀 있는 사랑이다. 이 사랑이 좌절된 이후 나는 어떠한 사랑 이야기에도 공감하지 못하고 다만 그때의 감각과 감정을 희미하게나마 되짚어 억지로 느끼려고 노력한다. 전혜린의 고백은 나와 상당히 닮아 있다. 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어느새 굳어버린 감각이 약간은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물론 이 에세이집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부분은 육아일기이다. 산고를 모조리 안고 태어난 정화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지극하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이 아렸다. 대체 무엇이 이토록 사랑하는 아이를 두고 그녀를 죽게 만든 걸까. 나는 전혜린의 죽음으로 홀로된 정화의 심정이 자꾸 마음에 밟혔다. 지금은 교수를 하고 있다는 그 아이의 어린 시절은 엄마의 죽음으로 흔들렸겠지. 





  3.


  사강을 보면서 저 사람은 자기를 무척 사랑하고 있다고 느꼈었다.

 

  전혜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기애.





  4.


  다시, 한강의 책으로.


  내게 고통이라고 불리는 책이 두 권 있다.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와 한강의 '소년이 온다'이다. 전자는 가는 포스트잇을 군데군데 붙여 두고 쓸쓸할 때마다 가슴 한 켠이 아려올 때마다 수시로 꺼내 읽고 있지만 후자는 도무지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니 읽고 싶지 않다. 책을 휘 넘겨 동호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숨이 턱 막히고 코 끝이 시리다. 


  1980년의 광주에 몸을 묻은 동호와 남겨진 이들의 미래. 그 형체 없는 도로를 따라 천천히, 물이 떨어지듯, 뚝뚝, 묵묵히 걸어오는 동호. 나는 소설의 세번째 장 '일곱개의 뺨'에서의 고백이 인상 깊었다. " 치욕스러운 데가 있다, 먹는다는 것엔. 익숙한 치욕 속에서 그녀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배가 고프지 않을 것이다, 삶이 없으니까. 그러나 그녀에게는 삶이 있었고 배가 고팠다. 지난 오년 동안 끈질기게 그녀를 괴롭혀온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허기를 느끼며 음식 앞에서 입맛이 도는 것. " 


  한순간에 벗을 잃은 내 친구는 술을 마실 때마다 내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가 웃는 것, 먹는 것, 걷는 것, 숨쉬는 것, 살아가는 것이 죽은 친구에게 미안하다면서 자기도 확 죽어버리겠다는 소리를 자주 내뱉곤 했다. 친구의 고통이 기린의 긴 목뼈처럼 눈 앞에 보이는 듯했다. 나는 뼈마디 하나하나를 손으로 훑어내리면서 친구의 고통을 헤아리고자 했다. 그리고 위로했다. 그 애가 네게 원하는 것은 너와 함께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애는 네가 그 애의 몫만큼 삶을 더 행복하게 즐기는 것을 원한다. 친구의 고통과 죽음을 반기고 소원하는 사람은 없다. 너희가 진정한 친구였던 만큼 그 아이는 하늘에서 너의 모습을 지켜보며 행복하게 웃음 짓고 있을 것이다. 친구는 전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나는 친구의 이야기를 전부 들어주었다.


  죽음 앞에서 나는 언제나 숙연해진다. 먹는 행위는 치욕스럽다고 느낀다. 

  그러나, 먹어야 한다.





  5.


  어느 /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한강, '어느 늦은 저녁 나는'





  E. 


 " 언젠가 그에게서 왔던 참 즐거웠던 편지 하나가 기억났다.


  그것은 단지 흰 종이 위에 '죽었니?' 라고 써 있었다. "     - 전혜린,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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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5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7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5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17 1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14-11-15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이진님, 벌써 고3이었군요. 수시 합격 축하합니다. 이제 서울로 올라오겠네요. 우리반에도 동국대 신방과 수시합격한 친구가 있답니다. 요즘 영화만 보며 하루를 보내고 있더라구요.
친구를 위해 `깔아주기 위해` 수능을 봐준 의리가 고맙네요. 우리반 몇명은 그런 의리도 없고, 응시료 환불 받아서 통닭 사먹을 생각밖에 안하네요. 환불하려면 수험표 반납하랬더니, 그 새 잽싸게 수험생 할인으로 퍼머에 염색하고 왔더라구요.

이진 2014-11-17 18:36   좋아요 0 | URL
네, 브리니님! 오랜만이에요. 벌써 고삼인 소이진이 인사드려요.
저도 사실 수험표 환불받고 싶었는데 최저가 있는 곳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치렀어요.
저또한 영화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저는 그들과 다른 것이 영화과까지 꿈꿨다니까요!
저는 영화가 정말 좋아요.
저는 수시 1차 불합 환불금으로 치킨 사먹으려구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