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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SF - 과학소설 전문무크 창간호 1 ㅣ 과학소설 전문무크 Happy SF
행복한책읽기 편집부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SF를 처음 알게 된 때를 나는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때 쯤,우리집에 아버지 친구분이 찾아오셨다. 그분은 그때 가장들이 실직을 하게 되면 가지는 직업(월부 책장수)전선에서 생계를 해결해 보고자 우리 아버지를 찾아오셨던 듯 하다.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 살림에 몇십권짜리 전집을 고르기 어려웠던 아버지는 소박하게 열두권짜리 전집을 골랐는데 그게 광음사의 SF전집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전집 열두권의 제목을 1번부터 말할 수 있다. <별나라에서 온 소년>부터 <우주전쟁>까지. 그 전집에는 선하고 인간보다 훨 나은 외계인부터 기괴하고 파괴적인 외계인까지 갖가지 외계인이 나왔고, 인간이 달에 가는 과정이 나왔고, 화성을 여행하는 소년소녀들이 나왔다. 그리고 동면을 통해 미래로 가는 사람도.....
그 신비하고 경이로운 세계는 어린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그 책을 중학교 때까지 몇십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댔다. 그리고 그걸로 끝. SF와 헤어졌다. 아마 관심을 갖고 뒤져보면 중고교 시절이나 대학 때도 SF는 출간되었겠지만 다른 책들에 눈을 돌리면서(중학교 때는 웬지 데미안이나 생의 한가운데, 이런 걸 읽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SF는 내 관심사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다 몇년 전 쯤, 종로서적엘 갔는데 거기서 이책 저책 뒤지다 그리폰 북스라는 걸 발견했다. 표지가 온통 시커먼 책이었다. SF? 어, 나 어린 시절 SF 좋아했는데.....그 때 산 책이 <중력의 임무>이다. 그 책을 읽은 후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그리폰 북스 전권을 모으려고 했으나 그 땐 이미 시리즈의 대부분이 품절, 절판 된 뒤였다. 오호, 통재라. 그때부터 나는 인터넷 서점 곳곳을 뒤졌고, 대형서점이건 동네 서점이건 들르기만 하면 시커먼 책들을 유심히 보기 시작해서 지금은 열권 정도의 그리폰 북스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때부터 책이란 나왔다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참 일찍도 깨달았다) 나는 SF가 나오면 대부분 구입을 하여 책꽂이를 채웠다. 그리고 절판된 책들은 도서관에 가서 빌려 보았다. 그런 광기를 부린 덕에 나는 이 책 Happy SF에 나오는 '초,중,고급자를 위한 SF목록' 100여권 중 거의 60권에 이르는 책을 2,3년 새에 다 읽었다.
그렇게 읽어댔어도 내게 SF는 절대 만만한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이과 계통이 아닌 탓도 있겠지만 요즘 나오는 SF 단편집 같은 걸 보면 내게는 두 가지가 다 부족한 듯하다. 첫째는 소설 자체의 문법에 대한 이해이고, 둘째는 SF란 장르의 문법에 대한 이해이다. 두가지가 다 부족한 탓에 오래 전에 나온 SF의 고전은 어느 정도 이해가 쉬우나, 요즘 나온 신간들을 읽으려면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쿼런틴을 읽다가 머리털 다 빠지는 줄 알았다).
리뷰를 쓴다면서 엉뚱한 얘기만 계속 지껄였다. 그래도 언젠간 이 얘기를 꼭 하고 싶었다. 나와 SF에 대한 이야기를 말이다.
이 무크지는 나왔다는 것 만으로 별 다섯개를 줄 수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뭔가 해보려 했다는 것 만으로도. 그러나 테드창 작가선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구입한 나로서는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좀 점수를 깎아먹었고, 여기 실린 우리나라 작가들의 창작 SF에 대단히 죄송하지만 많은 점수를 줄 수 없어서 말이다. 특히 마지막 단편은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였다.
나같은 독자를 위해 이 출판사에서 세운 원대한 계획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텐데..... SF 총서 100권, 작가선집, 장편소설, 연대별 앤솔러지.....아, 원대한 꿈이로다. 행책이 망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