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즐거운 불편 - 소비사회를 넘어서기 위한 한 인간의 자발적 실천기록
후쿠오카 켄세이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부분은 일본의 신문기자인 저자가 가족과 함께 '물자나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도 더 행복할 수 있음'을 증명함으로써 무한소비사회를 넘어서는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기록한 것이며, 뒷부분은 저자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대안을 찾아 실천하고 있는 일본의 각계 각층의 지식인과 실천가들을 찾아가 대담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생각은 책 제목 그대로 '즐거운 불편'이다. 나는 이 말이 너무도 공감이 되었다. 아무리 현재의 소비만능사회가 위험하다, 후손들의 미래가 걱정된다, 지구가 고갈되고 있다고 증거를 조목조목 들어 이야기해 주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자기자신이 소비를 억제해야 한다거나, 금욕을 실천해야 한다거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거나 하면 사람들은 즉시 외면해 버린다. 게으른 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저자는 아주 작은 불편부터 실천에 옮기고, 그것이 금방 즐거움으로 변하는 것을 바라보고, 다시 조금 더 큰 불편을 실천하는 식으로 한단계 한단계 가족들과 함께 나아가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어서 우리가 '불편함'에 겁먹지 않도록 해 준다.
처음에는 자전거 출퇴근과 자판기 음료수 먹지 않기부터 실천한다. 천천히 무리없이 항목들을 늘려나가 나중에는 자그마한 논에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지어 식구들 먹을 쌀을 자급자족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 와중에 힘든 일이야 많았지만 그의 기록을 읽다보면 그 고생과 불편은, 금방 그런 불편을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는 기쁨으로 바뀐다. 그야말로 '즐거운 불편'인 것이다.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자전거 통근은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침저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고지혈증에 체중과다였던 지은이에게 건강을 되돌려 주었고, 20층 계단 오르기는 성취감을 고양시켜 주었으며 힘들 것만 같았던 농사는 지역주민들과의 인간관계를 이어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들은 단순히 이 세상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의 완전성을 위한 것이다. 내가 먹는 것은 어디에서 오며, 내가 싸 놓은 것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아무런 자각없이 살고 있는 현대생활은 절대 정상이 아니며 개인을 파편화된 조각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삶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다보면 느끼게 된다.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기르던 오리를 잡는 장면이었다. 1년동안 잡초와 벌레를 잡아먹어주며 농사를 도와주었던 고마운 오리를 벼이삭이 여물 무렵 이들 가족은 직접 죽여 요리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아이들을 참관시킨다.(물론 자발적 참여이다) 언뜻 생각하면 이 무슨 잔인한 짓이냐 싶지만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살기 위해 무언가를 죽이고 있다. 아이들이 될 수 있는 한 그것을 빨리 깨닫고 희생된 생물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요즘 엄마들은 걸핏하면 "가엾어라!"하거든. 홋카이도에서 컴백 섀먼 운동을 취재했을 때, 어머니들이 열심히 운동을 벌이고 있더군요. 그런데 돌아온 연어의 머리를 곤봉으로 쳐서 죽이는 것을 보고, 그 어머니들이 잔인하다고 난리가 아녜요! 그러면서 자기들은 프라이드 치킨을 잘도 먹는단 말이야! 이런 사람들하고는 안 되겠다 싶더라고.
그러면서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남들에게 떠미는 것 아니겠어요? 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생물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잖아요. 그건 어쩌면 차별을 낳게 하는 원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익만 가로채는 거요. 지금 현대인의 생활상을 보면, 그런 생생한 삶의 근원과 관련된 작업을 모두 가정 밖으로 몰아내서, 눈에 보이지 않게 하고 있잖아요? 출산도 사람이 죽는 것도 병원에서 하고, 고기도 생물을 죽임으로써 비로소 얻어진다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포장돼서 진열냉장고에 깨끗하게 장식되죠. 그것을 들고 계산대에 가서 돈만 내면 내 것이 되니......
뒤의 대담 부분에서는 주로 '최대소비가 최대행복'이라는 현대사회의 슬로건의 맹점과, 그런 식의 소비를 조장하는 슬로건이 넘칠 수 밖에 없는 시장경제 시스템에 대한 고찰과 개인이 이에 맞서 어떻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겠는지의 대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서 제시하는 대안은 너무 개인적이기도 하고, 근본적이지 못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람이 거시적이고 전체적인 것만 생각하면서 정작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외면한다면(바로 내가 그렇다) 그는 정말 불성실한 사람이 아닐까?
성실성의 개념은 흔히 '말한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라'는 말로 표현되고는 한다. 자신은 솔선하지 않으면서 지구를 위한 희생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혹은 나만 뒤로 빠지고 타인을 위험 속으로 몰아넣어서도 안된다.
이 말을 여기에 인용하였으니, 나도 뭔가 나의 생활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겠다.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그러고 나서야 지구가 어쩌고 미래가 어쩌고 환경이 어쩌고 지껄일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1. 걸어서 출퇴근하기(왕복 1시간 20분 걸린다)
2. 봄이 되면 베란다에 채소 기르기
3. 빈 손일 경우 계단으로 다니기
일단 이 세가지를 결심한다. 그리고 이것은 꼭 환경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내가 즐겁기 위해서이다. 이 불편을 감수함으로써 내가 조금 더 행복해질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지만 일단 편안해지면 얼마나 금방 지루해지는지!
인간에게는 자기자신을 변화시키고 싶다, 타인과 교류하고 싶다, 타인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확실히 있다. 그것은 문명의 무통화를 추진하는 '육체의 욕망'과 정반대의 욕망으로, 그것이 충족될 때 인간은 삶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지금의 생활이 무미건조한 것은 육체의 욕망에 의해 생명의 욕망이 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육체의 욕망이 아닌 생명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유혹하여, 기차의 레일을 바꾸듯 욕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나도 나라는 기차의 레일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