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 선택을 선택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는데요?

어제는 정희진처럼 쓰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5권 <새로운 언어를 위해 쓴다>를 재독했다. 작년에 읽을 때는 ‘공부’에 대한 의미를 재의미화하는 부분에 꽂혀서 읽었는 데, 이번에는 논쟁의 구도나 지식의 전제 같은 부분들이 눈에 더 많이 들어왔다. 차피 또 읽을 거라서 독후감을 쓸까 말까 하다가 이번에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부분을 좀 적어두고자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선생님이 줄곧 주장해오신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미소지니misogyny로 바꿔 부를 데에 대한 요청인데… 지금까지 난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고. 여전히 “그건 미소지니예욧!!!”라는 말로는 저들의 말(과 행동)을 무력화시킬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으잉~? 지니??🧞‍♂️ 소원을 말해봐??! 할 것이 뻔함. 그에 비하면 “그건 여성혐오예욧!!!” 가해자가 되길 꺼려 하는 세상에서 거북함과 거부감을 끼얹는 공격의 언어로 매섭고 날카롭지 않나? 어차피 말로 상처주는 세상. 나도 니들을 상처주고 싶은 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가 여혐/남혐의 이항대립 구도를 강화시켜서 더 중요한 다른 문제를 은폐하게 돼버리는 현실에 대한 지적은 중요하다. 용어를 바꿔쓰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번에 내 눈에 *쎄게* 읽힌 부분은 바로 이 문장들이었다. 


-(180) (특히 20, 30대를 중심으로) 사안에 따라 젠더 문제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모두 ‘여혐, 남혐’으로 몰고 간다.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서로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나 역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일 놀란다. 일단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젠더 갈등, 젠더 전쟁으로 미화되고 있다. 


-(183) 검찰 문제를 다루는데 왜 배우자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들먹이며 비난하거나 반대로 개방적인 척 하는가. 윤 씨 측의 물타기인가, 진보 진영의 무지인가. 어쨌든 결과적으로 검찰 문제는 은폐되었다. 위 두 가지 사안은 복잡한 현실을 젠더로 은폐하거나 젠더 문제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젠더만 동원된 것이다.


특히 나의 어떤 부분을 긁은 것 같은 문장. 


-(236) 이제까지 여성주의자들은 사회 구조로서 젠더를 가시화하는 데 주력해왔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나 노동 시장의 성차별, 성별 분업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젠더는 동시에 다른 사회적 문제를 은폐하는 데 동원되기도 한다.* 김건희 씨 사건의 경우 젠더는 본질적인 문제(검찰 개혁)를 은폐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더구나 내가 가장 좌절한 점은 김건희 씨가 여성성이라는 자원을 활용한 점을 비판한 페미니스트도 없었고, 이를 문제 삼은 내가 여성주의자들로부터 ‘여성 혐오’라고 비난을 받은 사실이다. 이는 현재 한국 여성주의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매우 우려스럽다. 김건희 씨는 억울하다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여론은 그를 도왔다. ‘회원 유지(Yuji)’와 ‘쥴리’는 비판이든 조롱이든 냉소든 그 자체로 윤 씨를 삭제하고 문제의 성격을 이동시켰다.


지역 감정과 분단 현실을 이용한 (하, 슬프게도 한국 사회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일까) 선동 정치는 신자유주의의 직격탄(노동시장 자체에 진입 어려움 ㅠㅠ)을 맞은 2030세대가 헬조선/흙수저 담론으로 본인들의 위치성을 자각하는 것 보다 여혐/남혐 대결을 조장하는 것이 통치에 더 유리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습득했을지도 모르겠다. 젠더를 정치에 활용하는 것, 그게 얼마나 위력적인지는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정치를 보면 안다(오스트레일리아의 여성 정치인 줄리아 길라드와 관련한 여성 영화(트랙백 참고)를 본 적이 있는 데, 정말 정말 속상했다). 1세계들의 민주주의도 젠더가 정치의 최종 심급이 되어버린 현실. (희망적으로 보아야 하나? 미국 페미니즘 책 보면 뭔가 희망이  꿈틀 느껴지기도...) 


그런데 한국은. 논쟁의 구도가 여혐/남혐으로 정리돼버리면 백전백패다. 왜냐면 남자도 여자 미워하고 여자도 여자 미워하거든. 심지어 여성주의자도 여자 미워함. 이러다 젠더(성역할 고정관념)를 문제화 하는 데 주력해온 여성주의적 성과마저도 다 무너지는 꼴이 날 지도 모르겠다. 한 줌의 빨갱이를 골라내려다가 후퇴한 민주주의가 얼마인가. 한국은 보수/진보 였던 적이 없다. 레드 콤플렉스와 지역감정을 이용한 정치였지. 언제나.  


논의를 이항 대립으로 끌어서 획득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정치는 대단하게도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켰다.  됐고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점점 더 유효해질 것 같다. 마치 종북논란처럼 논의를 산으로 끌고 가는 데 여혐/남혐 이라는 정치적 선동 구도는 말이다.


- 이러한 신자유주의 시대의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가부장제의 일시적 패퇴*다. 물론 성차별은 여전하지만 그 작동 방식이 바뀌었다. 역사상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경제 패러다임은 없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계급과 젠더 질서를 가시적으로 변화시켰는데, 이 가시성이 지나치게 과잉 재현되어 ‘남성 역차별’이라는 난센스를 낳았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보다 남성과 남성의 차이, 여성과 여성의 차이가 커졌을 뿐인데, ‘흙수저 남성의 군 입대 vs 중산층 여성의 사회 진출’로 왜곡되었다. 이 왜곡은 이대남 현상, 페미니즘의 대중화, 현실 정치에서 젠더 이슈의 비중이 높아진 점(정치 지도자들의 성범죄와 남성 유권자의 분노) 등으로 드러났다.


사실 이는 *여성의 지위 향상이 아니라 생계 부양자로서 남성, 가사노동자로서 여성이라는 기존의 가족 이데올로기가 실업의 만연화로 남녀 모두 더 이상 실현 불가능해짐으로써 나타난 현상*이다. 저출산, 비혼, 1인 가구의 등장, 남성의 계급분화의 가속화는 실업에 대한 대응이자 현실이다. 취업과 결혼이 동시에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본주의는 여성에게 가족 내 성 역할이 아닌 사회적 개인으로서의 지위를 부분적으로 부여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의 기술 발전의 산물인 1인 매체, SNS는 여성과 사회적 약자가 남성과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가 되었다. 여성은 더 이상 참지 않는다. 비록 여성 노동시장의 질은 100위권 밖이나, 한국 여성의 높은 교육 수준은 여성주의 언어에 대한 접근성을 높였다. 남성 지배 문화에서 여성과 사회적 약자의 개인화는 신자유주의 가장 원치 않은 결과이다.  (릿터, 31호 <정희진 ‘모두가 작가인 시대’를 사는 법-신자유주의 시대의 자아와 글쓰기>)


나는 똑똑하다. 얼마나 똑똑하냐면. 취업과 결혼이 동시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 (ㅋㅋㅋ)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넘나 기력과 체력이 없으므로 반려묘 돌봄 + 자기 돌봄도 간당간당한 처지에, 돌봄을 동거인 남성 및 낳게 될지도 모르는 자식에게 제공할 여력이… 그래… 나는 없다… 나는 내게 그런 대단한 에너지와 사랑이 없다는 것을 슬프지만 인정해야했던 것이다.


여성의 개인화는 신자유주의의 가장 원치 않는 결과이긴 했겠지만… 내가 신자유주의 덕분에 암튼 저임금이나마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나는 아주 좋고… 하하하하하!!! 성역할 때문에 왠지 해야할 것만 같은 돌봄 안 하는 대신 자기 돌봄에 매진하며 책 읽고 독후감 쓸 수 있는 것도 정말 좋은 데… (ㅋㅋㅋ 내 자랑 그만하고)


남성vs남성의 차이, 여성vs여성의 차이가 / 남성vs여성의 차이보다 더 커졌다는 지적이 맞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가시화라기 보다는 내 현실에서... 사회의 노동력이 되어야 하는 진입 단계에서랄까. 어쨌든 IMF이후 이젠 일하지 않는 여성은 거의 없다. 전문직 종사자가 아니라면 나보다 윗 세대 여성 대부분은 돌봄과 관계된 저임금의 일자리와 자영업을 할테고, 그녀들은 나에게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와 동생들(여남 둘 다 해당된다)이 사회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의 대부분은 또래 여성/남성들과의 불화가 아니었다. 이미 기득권이 되어있는 윗 세대 (가부장)남성 집단의 빻음—무능력, 일대신 정치, 각종  허세, 눈치 없음, 갑질, 행패, 멸시, 희롱, 추행, 성 역할 강제 및 저임금 강요(이중 노동) 등등—이다. 나는 삼진그룹영어토익반 영화를 보다가 엉엉 운적이 있었는 데... 존경할만한 남자 어른을 만나는 것이 로맨스보다 더 심각한 판타지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 뭐 그래 이것도 흙흙수저 우리 가족 기준 일반화다. 내 친구들은 여자 상사 비위 맞추는 게 더 힘들다고 했다. 나도 그런적 있고. 직군과 직종마다 또 다를테지. 여초회사에서는 여성들 간의 문제가 더 도드라질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생각했었다. 젠더 보다 계급보다 지역에 대해. 흙수저 그리고 지방수저가 있다고. 월급 180을 받던 지방 출신 나는 월세로만 50만 원을 냈다. 같은 월급을 받던 동료는 집에서 다니면서 시드머니를 모았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다르다. 다르더라. 나는 쪼잔해지지 않기 위해서 퇴근 후에 치맥이라도 한잔 할라치면 기꺼이 반띵을 했지만, 옷 좀 사 입으라면서 상사한테 은근 비교 당할 때는 정말 화딱지가 났다. ㅋㅋㅋㅋㅋㅋ (옷 안사고 치킨 먹고 맥주 마시는 게 더 중요햇!!) 


직장 동료와 나는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긴 했지만, 일자리 자체가 없는 현실에서, 이직으로 경력 물타기하면서 버텨야하는 사회 초년생의 처지는 많이 다르진 않았다. 다 흙수저였고 나는 좀더 흙흙이었다는 소리. 그런 우리에게 일도 주(떠넘기)고 모욕도 주는 상사/대표 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권력에 도취되어 눈치없이 쩝쩝대는 생긴것 포함 한남스러움의 표본이 바로 *선출*된 현 대통령이시다.) 무슨 말이냐면. 나의 남혐에는 근거가 있다!!!!!는 소리다. 물론 이것도 생물학적 남성이라기보단 개인적 인격과 그 위치가 근거란걸 인정해. 그리고 일반화/유형화 할 수 있을만큼 그런식으로 사회화된 인간들이 득시글 거리지.  


그런데 동년배 또래의 남성들에겐? … 곰곰 생각해 봤다. 인터넷에서 여성 혐오하는 이상한 놈(이 치들의 포르노에 쩐 뇌에 대해서는 내가 그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포르노는 너무도 너무도 대중화 되어서  다 똑같다. 정도의 차이지만 관대하게 패스하겠다.)들 말고, 일상에서. 남자들. 어떤 종류의 대화를 하면 너무도 역지사지가 안되는 데다가 맨스플레인을 일삼지만, 나는 말을 잘해서 내 앞에서는 차마 맨스플레인을 하지 못하지 니들. 그래. 너희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나는 모른다. 


생각해보면 젠더 갈등은 남친이랑 했고, 동료 남자들과는 그냥 담배나 노나 피면서 윗사람들 욕하기 바빴다. 그러니까. 신자유주의 직격탄을 맞은. 취업 시장에서는 경쟁했었어야하며, 결혼 시장에서는 아마도 미리 탈락된. 나와 비슷한 계층의 또래의 남성들에게. 인간적으로는 애잔한 마음이 든다.…  (근데 그걸 포르노로 풀고 여혐으로 풀면 안되지 않을까? 하, 됐다. 입아픔) 


어쩌면 정말은. 또래 남성들에게 느낀 남혐의 근거는. 관습적 이성애 사회에서 친밀한 관계의 실패 경험일테다. 성적 대상화, 평가. 질 나쁜 연애. 질 나쁜 섹스. 혹은 실패한 연애. 위험했던 섹스. 몰 이해. 소통 실패. 사회생활 속 이중의 억압에 대한 하소연에 돌아오는 맨스플레인. 그들과 비슷한 몸을 한, 좀처럼 성찰하지 않는 종족 일반에 대한. 그리고 인터넷 덕에 드러난 그들의 저열한 문화와 서열질, 속내. 뭐 그런 것들.을 깨치고 나면. 로맨스는 불가능하다. 취할 것이 없는 걸리적/징징 거리는 집단. 나에게 남성은 그런 종족으로 타자화되어 버렸을 지도.


그리고 어떤 집단을 타자화하는 건 여남 불문 빌어먹을 인간의 속성이기도 하다. 

“(182) 문명은 여성의 타자화로부터 시작되었다. 남성을 인간의 대표로 만들기 위해 다른 인간은 배제되어야 했다 겉보기에 남성과 다른 존재, 타자(the others)가 필요했고 ‘바로 옆에 있는’ 대상인 여성이 가장 적합했다. 백인과 유색인종,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가 대칭을 이루지 않는 것 처럼 남성과 여성도 대칭적이지 않다. 단지 가부장제가 인간을 남녀로 구분했기 때문에 여성이 인구의 반이라는 현실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타자 중에서 가장 큰 집단이기에 대칭적으로 보이기 쉽다.”

- 정희진 <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펼쳐진 성애화된 여성성의 이미지(포르노)를 볼 때마다 눈을 질끈 감게 되는 것은 논외로 치자. 이 책이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모든 걸 환원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선후차의 문제가 아니다. 젠더가 뒤에 오는 문제도 아니지만(해일 오는 데 조개 줍는) 맨 앞에 항상 위치해야 하는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이미 완전 승리해버린 한국 사회에서 젠더 가시화가 아니라 젠더가 다른 사회적 문제를 은폐하는데 동원되는 방식으로도 쓰인다는 지적은 건조하게 놓고 생각하면 정말 소름끼친다. 마치 지역 감정과 레드 콤플렉스처럼 사람을 재빨리 아메바로 만들어 버리는. 


언젠가 가까이에 있는 대상을 다른 존재로 규정하고 배제하고 싶은 감각(감정)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https://blog.naver.com/jyanggrim/223134792973- 작가라는 문제, 대상화의 문제, 유대인 문제 /  


미세하게 추적해 보면 출발은 위기 앞에서의 자기 보호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지배와 통제가 목적이기도 할테지만 조금 더 원초적인 것은 방어- 아닐까.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시절이다. 사실 나는 그것에 거의 완벽히 지쳐버렸다. 살아남은 것은 그것대로 장한 일이지만, 타인에게 가혹해지는 순간들은 낯설었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내 익숙해져야 했다. 매번 나를 낯설게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나와 타인에게 미세하게나마 관대해지기로 한 것은 어찌저찌 살아 남은 후에 고독을 구축할 수 있게 된 후 부터다. 그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셀프 마취(대체로 취해 있었음).


힘듦과 불안의 이유를 내 안에서가 아니라 나의 외부에서 찾는 것. 가까이 있는 미운 타인에게서 찾기는 참말로 쉬운 일이라, 일찍/이찍을 서로 비난하는 정치만큼이나 여혐/남혐은 심해질 것 같다. 정희진의 지적대로 *신자유주의 덕분에 정말로 젠더가 가시화*되어버린 것이다. 경쟁에서 탈락된 젊은 남성들의 열등감 폭발은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는 노릇이고. 그들이 자신들의 불만을 가장 쉬운 약자를 혐오하는 방법으로 찾고 있는 것도 너무 짜증스러운 일이지만. 논의를 자꾸 여남 대결로 몰고 가는 것에 대해서는 예리하게 보아야 할 것 같다. 


얼마 전 위근우의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위근우 인스타그램 @plusratioquamvis99)


갈등 자체를 문제시 하는 프레임. 페미니즘 때문에 역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이대남. 허어... 어렵다. 어려운 줄은 알았지만, 너무 어렵네. (한숨 폭폭~😮‍💨) 


무언가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지만, 나는 페미니즘에서 나의 언어 찾고 공부하는 여성주의자다. 다만 내 여성주의적 언어 생산(?)이 현실에서 여혐/남혐의 구도를 부채질해 중요한 다른 문제들을 덮어버리는 데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어떤 언어를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을 더 해야한다는 것, 더 면밀히 보아야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동안은 머뭇머뭇했지만, 또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달라지긴 하겠지만 앞으로는 여성 혐오라는 표현보다는 미소지니라는 용어를 더 자주 써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맘을 좀 고쳐먹었다는 소리다. 하지만 역시 입에 착 달라 붙진 않네.



어쨌든 복잡한 현실이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을 하자.

공부하자 공부하자 공부를 하자.


왜?


생각 안 하고 공부 안 하면 영원히 일찍/이찍으로만 싸워야 할 테니. 


그런 공동체에서 이미 충분히 살아 왔으며, 싸우느라 맘이 격해져서 계속해서 모두 함께 멍청해지는 기분… 난 좀 싫다. (물론 싸울 땐 싸울 거다. 그러나 미련을 남겨둔 편향을 인식한 결단 쯤으로.) 



2023. 8. 12.


(여름에 썼던 거 가져옴 ㅋㅋ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젠더 갈등이 아니라 성차별이다" 부분 읽어보면 좋을 듯!)



https://blog.naver.com/jyanggrim/223181537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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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2-18 18: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 하트도 여름 거 가져옴.

공쟝쟝 2023-12-18 18:24   좋아요 2 | URL
히히❤️❤️❤️❤️❤️❤️❤️❤️❤️❤️❤️❤️❤️❤️❤️❤️❤️
근데 나 그거는 못하게쒀여. 쭈아아압쫩~! 이건 은오님 주자.

단발머리 2023-12-20 1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안타까운 건 과계몽된 여성들과 이해 못 하는 남성들간의 간극이겠죠. 여성혐오는 미소지니로 번역된 것이 옳았을 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오천년 가부장제에 도전(?)하고 일부 성공한 건 신자유주의 뿐이라는 정희진 선생님의 말씀에 완벽 동의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여전히 여성이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한줌의 이대남들이 과대표되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소리는 더 크게 나지만 투표율은 20대 여성이 더 높다고 하죠.

대상화와 타자화에 대해선, 저도 더 생각해보려고요. 그게 참 어려운 문제더라구요.

공쟝쟝 2023-12-21 09:59   좋아요 1 | URL
대상화 타자화는 저도 읽는 사람에 머무르는게 아니라 쓰면서 계속 가지는 질문였어요. 한번에 결론 빵 나면 것두 윤리라고 하긴 어렵지 않겠습니까?… 저는 읽는 사람에 대한 예의와 쓰는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하겠다… 정도로만 맘 먹었어요. 아무도 상처주지 않는 글을 쓰는 것 역시 환상이라고 생각하니깐요! (찡긋-!)

그리고 그래봤자ㅋㅋㅋ!! 독후감ㅋㅋㅋ 더 잘 쓰고 싶긴 합니다!!

단발머리 2023-12-21 10:00   좋아요 1 | URL
그 지점 좋네요.
그리고 그래봤자 ㅋㅋㅋㅋㅋ독후감ㅋㅋㅋ
많이 안 읽으심, 내 글을 ㅋㅋㅋㅋㅋ
누가 주의해서 보신다고 이리 조심하나요?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2-21 10:0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그래봤자 좋아요 50 안된다 ㅋㅋㅋㅋ 하지만 난 안다. *중요한 건 필력이다*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12-21 10:04   좋아요 1 | URL
좋아요 100 넘으면 나도 좀 진지하고 알차고 자기성찰적인 글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써보려 합니다. 그러나 50이 안 된다 ㅋㅋㅋㅋ 그것도 이웃님들이 💜으로 눌러주시는 것임 ㅋㅋㅋㅋ 여러분, 감사해요 💕

공쟝쟝 2023-12-21 10:05   좋아요 1 | URL
😊😊😊😊😊😊😊😊💕💕💕💕💕💕💕💕💕💕💕💕

단발머리 2023-12-21 10:43   좋아요 0 | URL
🤣🤪🤣🤪🤣🤪🤣🤪🤣🤪🤣🤪🤣🤪🤣🤪🤪❤️🧡💛💚🩵💙💜💖
 

올해의 책을 <감정의 문화정치>로 할지 <가치 있는 삶>으로 할지 고민 중이다. 아마 다 읽게 된다면 감정이 되겠지만. 가치를 올해의 책으로 남기고 싶어서 홀딩한 상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6장. 책임의 윤리학


그런 책들이 있다. 제대로 읽기 위해서 내 삶을 바꿔야 하는 책들이. 그리고 그런 책이 있다. 나를 바꿔 온 까닭이 이 책을 읽어낼 수 있기 위함이었다는 알게 하는 책들이. 그러니까 읽다 보면 그런 저자들을 만난다. 내게 전자는 정희진. 후자는 미셸 푸코.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전자일지 후자일지 물음표인) 사라 아메드. 살아남기 위해 굳혀버렸던 나의 감정을 풀어헤쳐 이해하고 내게 가능한 수준의 언어의 형태로 바꿀 수 있을 때까지. 이제 나는 (정희진의) 몸으로 읽는다는 말을 안다. 감정은 (이성의 반대가 아닌) 체현된 사상이라는 문장을 몸으로 산다. 


그러니까 애석하게도 나라는 인간에게 기억이 윤리적 장치였던 것이다.


삶에서 (때로는 역사에서) 어떤 단절과 비약을 염두에 두지만, 단절은 망각이 아닌 기억을 전제한 것이어야 한다. 잊지 않는 까닭이 있다. 반복 강박은 삶이 보내는 신호다. 내겐 다르게 살기 위한 숙제 같은 거였다. 물론 망각은 중요하다. 그것은 새롭게 살 수 있는 여분의 가능성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기억도 중요하다. 기억은 윤리적 장치다. 스스로가 해로운 인간으로 기능하지 않기 위해.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잊어버렸을 것이며, 몸을 다 지워버렸을 거다. 


“(189) 기억한다는 행위는 충실함을 의미한다. 기억은 어떤 사건을 우리의 의식에서 지워 내고 싶은 유혹에도 우리가 그 사건이 남긴 흔적과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윤리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190) 사실 내가 현재에 충실한 삶이라는 이상을 보편적인 삶의 철학으로 대중화하려는 시도가 너무나 근시안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과거의 지혜를 낭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에게는 현재 가지고 있는 욕구의 관점에서 과거를 다르게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우리가 욕구를 더욱 잘 충족시키기 위해 과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것이 희미해져 가는 과거를 영감이 가득 깃든 삶의 양식으로 바꾸는 것이 때때로 가능한 이유다.


(191) 현재를 충실하게 산다는 이상은 (중략) 우리가 현재에서 과거의 흔적을 더욱 몰아낼수록 과거를 능가할 수 있을 거라는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 책이 주장하는 것은 정반대다. 과거가 현재의 삶을 통제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현재에 당면한 문제와 과거의 관련성을 지속적으로 의식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다. 과거가 지닌 무게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며, 특히 대인 관계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오직 타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아를 갖는다는 사실, 기질의 발달뿐만 아니라 개인의 생존이 타인의 존재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는 우리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며, 이 책임은 도덕적인 사고 과정을 처리하는 의식적 세계 너머의 무의식적 열정이 머무는 뒤죽박죽 지하 세계까지도 닿는다.


(193) 우리도 우리 자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타인들도 똑같이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



무의식적 열정과 뒤죽박죽 지하 세계. 마리 루티 답다. 무의식이 강요한 일에 대한 책임까지도. 


잊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에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맞춤하게 찾아와 나 자신을 해석하게 하는 독서라는 노동은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다. (모두가 나처럼 읽지는 않는다는 건 내게 자존감이 되었다.) 


나는 내 삶을 잘 책임지고자 한다. 그건 오직 나 하나일 테지만 나와 관계 맺은 모든 것과 때때로 내가 잊어버린 그러나 잊지 않으려 하는 기억들과 관계된 일이라 가끔은 벅차고 난망하게 느껴진다.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서는 쿨내 진동하며 아예 다 잊고 살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게 사는 일은 충분히 넉넉히 부끄러워하는 일이겠지. 우리는 부끄럽기 싫어서 사과하고 싶지 않아서 더 무자비하게 망가져가는 게 아닐까. 가끔은 정성들인 것들을 대범하게 망칠 필요도 있지만. 어쨌든.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전제를 흔들어야 하는 것이고. 다른 각도로 살펴볼 수 있게 될 때까지 멀어져야 하는 것이며. 멀어지는 것은 달아나기 위함이 아니라 마주보기 위함이라고. 


상처를 기억하는 것. 지금의 삶이 요구하는 것에 맞추어 다르게 읽어내며 기억하는 것이. 내게는 #가치있는삶 처럼 느껴진다. 나는 과거와 다르게 읽을 수 있는 몸으로 나를 만들어왔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읽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다르게. 어제와는 조금 다르게. 계속 이렇게 살면 되는 걸까. 더 웅크려있기를 처방했던 23년도 딱 16일이 남았다.

기억한다는 행위는 충실함을 의미한다. 기억은 어떤 사건을 우리의 의식에서 지워 내고 싶은 유혹에도 우리가 그 사건이 남긴 흔적과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윤리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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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3-12-15 14: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멀어집시다. 마주봐야 하니까. 후후후. 올해는 제 인생에 두고두고 기억에 깊이 남을 한 해인데_ 내 생에 중요하고 중요한 두 사람을 만났기에. 그 중에 한 명은 쟝님입니다. 쟝님과 만나 읽기와 쓰기에 대해서 가벼이 여기던 마음을 좀 접을 수 있었습니다. 내내 읽고 사유하시어 이 게으르고 게으른 중년의 손을 놓지 말아주소서.

공쟝쟝 2023-12-15 14:14   좋아요 2 | URL
아 나란 얼마나 진지한 독자인가.
저는 *과정을 쓰는 것*에 대해 배웠고. 읽고 쓰지 않고 느끼는 법도 배웠고. 무엇보다 수이님 아니었으면 *사랑*이라는 탐구주제는 10년 뒤로 미뤘을 듯. 저 정희진의 공부가 꼽은 올해의 인물 ‘구독자’인데요. 이 훌륭한 제가 꼽는 올해의 인물도 ‘수이’언니 할게요! 서로 나눠주는 거 아니고. 정말로 많이 배웠어요. 제가 워낙 잘 배우는 사람이긴 한데 쑥쑥 크는 건 역시 알라디너 언니들 때문이다!!! 내년에도 잘부탁합니다!
 


드디어 왔다…. ㅠㅠ


선생님 공부 열심히 할게요. 사실 저는 뭐든 열심히 하는 게 평생 문제였는 데… 

샘께서 몸소 실천해 보이시 듯 #정희진의공부 란,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서문에 거다 러너 인용해 주셔서 내 안의 지적 오만이 하늘을 찌르네요. 연말 선물 감사합니다 💕



“(19) 또한 서구 여성사를 개척한 거다 러너의 말대로, 여성/사회적 약자들은 자기 동료의 글을 모르고/읽지 않고 ‘초기 개척자의 사명’을 반복한다. 여성의 글은 인용하지 않는다. 여성의 지식은 제대로 계승되지 않는다. 그러니 언어의 발전이 없다. 나는 이 문제가 사회적 약자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고 본다. 이 글을 부록으로 게재한 이유에는 이러한 문제의식도 있다.


(20) 여성학, 여성 운동은 모든 담론과 마찬가지로 언어의 경합을 통한 생산적인 갈등 없이는 진전도 없다. 한국의 여성주의가 나아감 없이 여성의 생존의 목소리가 왜곡되어 미소지니의 타깃이 되지않기를 희망한다. 나는 여성의 공부, 다른 언어, 남성 사회가 못 알아듣는 언어가 최고의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남성 사회의 질문에 답하지 말고, 그들이 못 알아듣는 새로운 언어로 말하자*.”



내가 추구하는 공부다.

쓸님이 <정희진의 공부> 어록 정리해 주신 거 읽다보니 더 감동적이라 링크.

https://blog.naver.com/iskii82/223276894061


나는 여성의 공부, 다른 언어, 남성 사회가 못 알아듣는 언어가 최고의 저항이라고 생각한다. *남성 사회의 질문에 답하지 말고, 그들이 못 알아듣는 새로운 언어로 말하자*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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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11-29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받았지롱요!!!!!!!!!!
진짜 알림 떴을 때 크리스마스 선물받는줄...... >_<

공쟝쟝 2023-11-30 12:45   좋아요 2 | URL
맞아요. 저는 개인사와 얽혀서 정말 선물 같았어요. 알림 소식만 떴는데도 눈물이 펑펑.
우리 은오님도 이 책 재밌게 읽고 은오님만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은오 2023-11-30 20:01   좋아요 1 | URL
희진쌤이 쟝님한테 큰 위로가 되어주시는군요ㅠㅠ 진짜 선물이네요. 쟝님 뚝!!! 이리와요 안아줄랑게!!!!! 😭😭💕
그리고.... 쟝님도 “우리” 은오님 금지

수이 2023-11-29 2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쟝님의 언어가 제일 기대됩니다. 읽고 내내 페이퍼 써주세요.

공쟝쟝 2023-11-30 12:51   좋아요 1 | URL
연필 형광펜 색연필 번갈아가면서 밑줄 긋고 있고요. 선생님의 혜안과 드넓은 이해력과 포용심에 또 한번 스스로의 간장 종지만한 그릇을 느끼며....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희진 선생님의 한남 돌려서 까기 실력은 저는 따라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이를 테면 이런 문장.
˝어느 사회나 일부일처제의 결혼의 가장 큰 동기는 남사는 가사 노동자를 구하는 것이고, 여성은 원가정에서 독립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가사 노동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남성에게 여전히 결혼은 필요하다 ....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남성이 가사 노동을 절대로, 죽어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페크pek0501 2023-11-29 2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의 도전, 을 읽은 자로서 이 책도 꼭 읽어야 할 책으로 생각합니다.^^

공쟝쟝 2023-11-30 12:50   좋아요 2 | URL
페크님, 이 책은 20년 전 페미니즘을 소개하던 시절에서 변화하지 않은 현실과 또 변화한 현실을 함께 보여주네요. 꼭 읽어보시고 좋은 감상과 추천 부탁드립니다.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성정치학의 쟁점들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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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년 동안 변화(없음)가 한마디로 진단 끝. “(55) 여성의 ‘사회’ 진출이 사실상 공사 영역에 걸친 이중 노동이라는 현실 때문에 여성들은 과로와 경력 단절을 피해 비혼을 선택하고, 이는 저출산과 동물과의 반려 인생으로 이어졌다. 도대체 언제까지 ‘성차별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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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24 19: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엥 어떻게 벌써 읽죠? 관계자입니까?! ㅋㅋㅋㅋㅋ

공쟝쟝 2023-11-24 19:38   좋아요 4 | URL
정희진 선생님과는 관계가 없지만 그분에게 진심인 천하장사 소시지와 관련있는 분의 관계자입미다 ㅋㅋㅋㅋ 구매 기념 책속에서의 문장만 보고도 이미 별다섯은 확정이라 ㅋㅋㅋㅋㅋ 북플이 자동으로 읽었다고 해버리네욬ㅋㅋ 고쳤습니다!! (천하장사 소시지의 진심 앞에서는 진실해질 뿐…)

잠자냥 2023-11-24 19:41   좋아요 4 | URL
서문은 저도 미리보기로 읽었삼 ㅋ

공쟝쟝 2023-11-24 20:30   좋아요 3 | URL
너무 읽고 싶어서 손떨리는 현상😫😫

잠자냥 2023-11-24 22:27   좋아요 4 | URL
밥 먹어!

단발머리 2023-11-26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금요일에 당일 출고라더니 어제 확인해보니 화요일에 출고된대요. 어찌된 일인지… 🤔

공쟝쟝 2023-11-26 23:29   좋아요 1 | URL
제가 구매할 때는...... 화요일에 출고예고가 되어있었다는 ....... 그전에 빨리 <애국의 계보학>을 다 읽어야할텐데요.....🤔 참고로 저 책 맛도리입니다! ㅋㅋ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 - 삶을 파괴하는 말들에 지지 않기
아라이 유키 지음, 배형은 옮김 / ㅁ(미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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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의 강추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정주행했다. 매 화가 다 좋았는데, 주인공이 우울증에 걸린 상황을 볼 때 눈물이 계속 나서 힘들었다. 재경험. 재인식. 애도. 필요했던 과정이라고 애써서 생각하지만. 가끔 참기 힘든 마음은 내가 나를 이상하고 아픈 애라고 스스로 여겼다는 거다.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학습된 성격과 무기력의 결과겠지.



별 뜻 없이 했을 말들만 귀에서 울려 퍼지고 가슴에 남아서 나를 할퀴더라. 뒤늦게 지속적으로 상처받고 말았다. 여전히 상처는 벌어져 있는 모양. 내 마음을 나는 보호할 줄을 몰랐다. 귀를 막을 줄을 몰랐다. 그래. 어쩌면 나는 앞으로 내가 해서는 안 될 말들을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배웠어야 했던 거다.


올해 읽으면서 가장 많이 운 책은 이 책.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보다 80배는 정교한 방식으로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제재 받지 않은 혐오의 말들이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킬 때 세상에 어떤 지옥이 펼쳐지는 지를 세밀하게 알려준다. (동시에 가능성도)



- (30) 언어에는 내리 쌓이는 성질이 있다.


나는 이 문장을 나의 방식으로 그러나 아라이 유키의 의도에 가깝게 이해할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마지막 잘못 빼든 젠가 같은 거지. 내 존재를 빼서 그 위에 하나하나 올려두는 말들. 기우뚱하다가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까지. 내가 들었던. 내게 쌓이고 쌓인 못된 말들. 나를 통제하기 위해 했던 말. 내가 나를 포기시키기 위해 했던 말.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못 들은 척 나는 아닌 척 했던 말이. 나를 내가 공격하는 말로 바로 바뀌는 순간. 그래 어쩌면 이건 자기 비판적인 성격의 내 경우일 테고, 대부분은 타인들을 공격해도 되는 (때로는 물리적으로까지) 정당화의 근거로 사용되는. 말은 사회적이다. 말은 맥락적이다. 말은 권력적이다. 말은. 그래서 누군가를 살리고. 가차없이 누군가를 죽인다. 그러니까. 말은 닿는다. 글은 닿는다. 닿는다. 닿는 단다. 어떤 마음을 품고 써야 하는 건지. 어떤 건 왜 혼자 만의 일기장에 써야 하는지 까지도.


(30) A 선배가 겪은 ‘마음의 병’에 대해서도 “나약하다”, “어리광부린다”, “게으름 피울 뿐이다”라고 평하곤 한다. A 선배도 ‘마음의 병’으로 휴직한 동료들에 대해 비슷한 말을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이 쌓이고 쌓여 이번에는 본인이 그 ‘압력’에 짓눌리게 되었다. 바쁘고 피곤하면 “힘든 건 나도 마찬가지야”라고 불평 한마디 흘리고 싶어진다. 욕하고 싶을 때도 있다. 나 역시 그런 감정과 아무 연 없이 살고 있지 않다. 

하지만 ‘살기 괴로운’ 정도를 서로 비교해봤자 결코 편해지지않는다. 도리어 ‘입을 다물리는 압력’이 높아질 뿐이다. 이런 ‘압력’을 높여서는 안 된다. ‘살기 괴로운 사람이 불쌍하기 때문’이 아니다‘불쌍하다’는 감상은 ‘나는 그런 문제와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발상이다. 그 압력을 높여서는 안 되는 이유는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좋았던 것은. 몰랐던 세계를 알아가는 느낌들보다는 (증상에 대한 연출이 정말 대단하다) 내가 나를 통해 어렵게 닿게 된 인식이 사람들이 공감하며 생각해 볼 수 있을 만한 콘텐츠로 만들어져서 유통되고 있구나 하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어딘가에서 짓이겨 망쳐지고 있는 언어들이 어딘가에서는 보듬어지고 다독여지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 아라이 유키 책을 읽을 때와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안도감.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아팠던 것은 아팠던 거였고, 힘들었던 것은 힘들었던 거라서.

그때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니까. 음.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내 마음은.


분명한 건.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는가가 그다지 상관 없어졌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보는 방식이 바뀌었으니까. 아직은 좀 아슬아슬한가.

그런데 과정에서 벼려지게 된 생각과 글들이. (나 스스로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매번 내 놓고 나서는 생각보다는 후유증이 남는 나름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었나 보다.

여전히 어떤 동의를 구하는 것만 같은 내 연약한 마음이 좀 서글퍼서 좀 뒤척였다.


그래 나는 나약하다. 내가 여린 것은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강하고 독한 부분도 있다. 그것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힘내고 싶은지, 더 용기 내고 싶은지, 혹시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은 것인지까지도.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 아니, 난 그냥 일상을 잘 지내고 싶어.


사랑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사랑받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글은.

모든 글은 부치지 않은 편지다. 그것은 언어가 그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의식적으로는 모두가 안다. 그러므로. 취향으로 에두를 필요가 없다.

발신인 자신이 모른다고 주장해도. 수신인은 알아차린다.

오배송되었다 하더라도. 이미 그 문장은 내게 도달했다.

그리고 언어는 내리 쌓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하는 거다.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엄마, 사랑해. 전화를 끊고.

누구의 사랑을 받고 싶은지. 어디에 서 있고 싶은지를 묻는다.

당연히 나는 내 편이며, 나를 사랑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옆에 서 있고 싶다. 이젠 서운하거나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내가 나를 살고 있다는 뜻인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맛있는 것을 먹어야겠다. 그래야겠다.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는 경계인들이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엔딩멘트-

언어에는 ‘내리쌓이는’ 성질이 있다. 입 밖으로 나온 언어는 개인 안에도, 사회 안에도 내리쌓인다. 그러한 언어가 축적되어 우리가 지닌 가치관의 기반을 만들어간다. ‘배려 없는 말’이야 예전에도 있었지만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말의 축적’과 ‘가치관 형성’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졌다. 심지어 그 폭발을 누구나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무섭다.
‘누군가를 입 다물게 하기 위한 말’이 내리 쌓이면 ‘입을 다물게 하는 압력’도 반드시 높아질 것이다. ‘삶의 괴로움을 떠안은 사람’이 "도와줘"라고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압력이다. - P30

오해의 우려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장애인들은 전쟁을 찬미하도록 강요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발적’으로 찬미했다. 정확히 말하면 ‘자발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졌다.’ ‘내 생각이 그러하다고 표명한 순간에만 세상으로부터 괴롭힘당하지 않고 조금이나마 편해질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했다. 이는 노골적으로 무언가를 ‘강제‘당하는 일보다 훨씬 무섭다. 강권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우선 누군가에게 ‘쓸모없다는 낙인’을 찍는 데 망설임이 없어진다. 다음에는 낙인 찍힌 사람들을 박해하고 배제하고 입 다물게한다. 입을 다물린 뒤 이번에는 거꾸로 말하게 한다. ‘이렇게 말하면 동료로 받아줄 수도 있다‘는 태도를 취하며 ‘강제’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말하게 만든다. ‘강제로 말하게 한 사람’의 책임은 이런 식으로 사라지고 ‘자발적으로 말한 사람’만이 상처받는다. - P101

누군가에게 ‘쓸모없다‘는 낙인을 찍는 사람은 남에게 ‘쓸모없다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나는 무언가에 쓸모가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특히 그 ‘무언가‘가 막연히 커다란 것이라면 주의할 필요가 있다(‘국가’, ‘세계’, ‘인류’ 등 말이다). 제6화에서 언급한 사가미하라(장애인 시설 살상) 사건의 범인에게서도 같은 문제가 파악된다.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것’이 ‘쓸모없는 사람을 찾아내 비난하는 것’을 뜻한다면 나는 절대로 어떤 쓸모도 있고 싶지 않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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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23 23: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사랑한다고 포도만 주는 사람한텐 그래도 노라고 말하는 쟝이 되길.

공쟝쟝 2023-11-24 06:54   좋아요 4 | URL
여성들이 사회 속에서 싫어요, 안돼요, no라고 조금 더 수월하게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해온 따뜻하고 멋진 잠자냥🐈‍⬛님~ 사과에 땅콩 잼을 발라서 먹으면 맛있어요. 포도만 주던 엄마는 좀 바보.

독서괭 2023-11-28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보다 80배는 정교한 방식으로,,라니, 궁금해지는 책이군요.
˝모든 글은 부치지 않은 편지다. 그것은 언어가 그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기에 밑줄 쫙 긋고요.
저도 이 드라마가 누구나 정신질환을 겪을 수 있는 경계에 있다고 잘 보여주고 있어서 좋더라고요. 아직 박보영의 우울증 극복기는 못 봤는데, 얼른 보고 싶네요.
잘하고 있는 쟝쟝님!!♥

공쟝쟝 2023-11-29 17:5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잘 해내고 있는 독서괭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