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가 그랬다더라. 오늘의 아메리카노를 미루지 말라고. 지금 당장 여기서 소소하게 행복해지기를 멈추지 말자고.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행복이란 실체가 희미한 멀리있는 무지개같은 것이었다. 잡을 수 없는, 달려가면 좀 멀어져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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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여름이었다. 오늘처럼 더운 날이었고, 신고 있던 슬립온 아래에서 끓고 있는 아스팔트가 느껴질 정도였다. 내일 만나야 하는 사람, 오늘 정리해야하는 일들 때문에 언제나 머리가 산란했었다. 너무 더워서, 너무 지쳐서, 대중교통 안에서 부대끼는 사람들이 너무 지겨워서 할 수 만 있다면 내 몸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겨우 버스에서 내렸는데, 발바닥에 생생하게 느껴지는 뜨거운 땅의 감촉에 화들짝 놀랐었다. 갑자기 삶이 확 끼쳐오는 것 같았다. 10초 전까지 내 몸이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안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아, 이건가? 살아있다는 거. 상황이 아니라 순간을, 지금의 기온을, 습도를, 여타의 감각들을 느끼는 것과 같은 건가?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여기,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머리를 굴리는 것이나 체험으로 겪어내는 것과는 또 다른. 몸의 감각을 여는 것. 순간에 머무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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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부터였나, 조금씩 달라졌던 것도 같다. 지금을 느끼기 위해서, 여기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좋은 상태에 머물러 있기 위해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보곤 했었다.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언제 좋은 기분인지.

그전까지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전형적인 근대형 인간.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no pain no gain -내일의 행복, 승리의 그날, 미래의 성공을 위해서 오늘을 견디고 지금을 참으면서 노오력, 노력하는.
도대체 설계가 불가능한 신자유주의에 살면서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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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주변의 상황과 여건, 나 자신의 능력과 상태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이 변했고 틈틈이 좋은 기분으로 있기 위해 이것저것을 한 것과는 별개로, 대체로 쉬지 않고 일을 했고 일을 하기 위한 일들을 계속했다.

‘지금/여기서/충분히/행복할 것’
같은 맥락의 글줄을 읽다가 울컥했다. 조금은 더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았다고 생각했는 데, 역부족이다. 도저히, 지금을, 충,분,히, 행복하게 여길 수는 없다. 아는 데, 행복은 강도보다는 빈도란거. 시시 때때 노력해야하는 거. 근데 그 빈도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밀도 있게 또 일상을 꾸려야 하고, 도저히 게으를틈이 틈이 없는 거다. 소소한 행복마저 노력 목록에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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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행복을 미래의 다가올 사태로 미뤄 놓는 습관은 여전히 고치지 못했다.

왜냐면 오늘이 너무 남루 하니까. 나는 도저히 지금에 만족할 수가 없다.

때때로 행복이 너무 먼 것 같아서, 현재의 기분 좋은 상태에라도 집중해보려 오늘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것들을 벌컥벌컥 마셔보지만, 그건 행복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도처에 널린 고통을 잠시 망각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힘들고, 겨우겨우 노력해서, 고작 이만큼 행복해졌다.

예전보다는 행복한데, 이게 내가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의 최대치라고 생각하면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난다. 도망치고 발버둥 쳐서 고통에서 겨우겨우 벗어난 상태가 행복이라고? 게다가 발을 젓지 않으면, 노력하지 않으면 고통이 금새 무릎에 영겨 붙는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법이다. 고통이 변수가 아니라 상수인 사람에게는 고통을 피하는 것 조차도 어마무시하게 노력을 해야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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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는 행복하지 않다. 그럭저럭 괜찮은 데, 나빠지지 않으려고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나빠봐서 안다. 관리하지 않으면 과거가 현재에게 복수한다는 것을. ) 미래에 대한 환상? 없다. 더 나아질거라는 보장 따위? 없다. 그저 하던 대로 해왔으므로 그냥 몸은 알아서 노력하고 있고, 관성처럼 내년엔 조금 더 괜찮아지지 않겠는가? 바래볼 뿐이다.
더 나아질거라는 희망에 그렇게 데여 놓고도, 그것를 좀처럼 버릴 수가 없다. 어쨌든 오늘은 노오력 하면서, 너무 나를 몰아붙였다 싶으면, 잠깐은 행복해지기 위해 오늘의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그리고 또 노오오오오오력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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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나아져야 한다, 열심히해서, 성장해서, 노력해서 좀 더 괜찮아져야한다. 그러면 조금 더 살아갈 만해지지 않을까? 이렇게 최면을 걸어야 겨우 오늘을 버틸 수 있다.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겨우 이 만큼이 내 인생의 최대의 행복치라면, 아메리카노 정도로 충분해야만 한다면... 그러니까 지금이 영원하다고 가정한다면.
아마 나는 당장 죽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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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8-14 2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늘 오늘의 아메리카노를 즐기지만, 그 아메리카노의 원두를 점점 고품질 고가의 것으로 바꾸어 나가는 삶 같은 것이 타협점이려나요.....

공쟝쟝 2019-08-14 23:54   좋아요 0 | URL
ㅋㅋ 쇼님 보니까 생각났어요. 기본소득 단체에 기부금 보내는 것... 돈 마니벌어서 좋은일 하는데 기부 마니 하고 싶다...

공쟝쟝 2019-08-14 23:55   좋아요 0 | URL
진짜 슬픈건 나만 이리 힘든 게 아니라 다들 힘들어 보여서 더 슬퍼요 ㅠㅠㅠㅠㅠㅠ

2019-08-15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19-08-15 00:53   좋아요 1 | URL
정말 힘들때는 힘든 걸 인식 조차 못했고, 조금씩 내려 놓고 나니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 지 이제 조금 알아요. 예전에 비하면 나 많이 좋아졌구나 토닥토닥 했는 데, 근데 이렇게 삶이 계속 된다면 이정도에서 쭉 이어진다면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걸 알아챘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노력해야 하는 걸까. 문득 내가 많이 지친 것을 알아챈 하루였어요. 뭐하러 이렇게 열심히 사나 싶은데 ㅠ 열심히 안살았음 이만큼도 못살았겠구나 싶구만요.. 반창고 딱 붙이고 쿨쿨자고 또 내일도 열심히 살겠지요? 저에겐 아메리카노 같은 것이 책읽기와 요 조그마한 폰으로 글쓰기 같아요 ㅎ 함께 읽고 써주어 고맙습니당 ㅎㅎ🌹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편집 & 그리드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13
이민기 지음 / 길벗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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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드에 대한 설명과 예시가 더 많았으면.. 중반부부터 갑분후가공으로..ㅎ (그리드랑 무슨 상관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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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모리스 컬러링북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미술관 지음, 조경실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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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길티플레져가 있다면... 하드한 컬러링북 사서 두장 칠하고 모시기... 하지만... 무려 윌리엄모리스 패턴이라니... 모르면 몰랐지 알고 안 살수는 ㅠㅠ 게다가 (기대도 안한) 그와 디자인에 대한 해설도 있음 + 엽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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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사물, 디자인의 사회사
에이드리언 포티 지음, 허보윤 옮김 / 일빛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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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만 하면 저자에게 소환되어 영혼까지 탈탈털리는 페브스너 (누군지 모르는 데도 애잔해짐)... ㅋㅋ 인물중심의 기존 디자인사를 넘어 사회적관계-관념을 이끌고 표현하는 디자인의 역할을 구조주의를 빌려 조명했다. 볼만했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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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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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히게 재밌어서 기막혀있음. 진짜 재밌는 소설은 진짜 재밌다는 말 말곤 할 말이 없다. 뒷장을 덮는 순간 약간 모르핀(?) 맞은 상태이므로 소설에서 빠져나오기 싫어서..오르부아르와 연결되어있다는 피에르 르메트르의 화재의 색을 기꺼이 ebook으로 결제하는 바이다!! 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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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8-04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사놓고 아직 안 봤는데, 지금 읽고 있는 책 다 읽으면 바로 시작해야겠네요.

공쟝쟝 2019-08-04 19:21   좋아요 0 | URL
후반부로 갈수록 너무 흥미진진해요~! ㅠㅡㅠ 추천 드립니당:)

블랙겟타 2019-08-04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막혀 있다니요 ㅋㅋㅋㅋ
그럼, 저도 곧 기막혀볼께요 ( •ᴗ•)